'보스를 지켜라'가 보여준 로맨틱 코미디의 연기력, 그 중요성

'보스를 지켜라'(사진출처:SBS)

'로맨틱 코미디 우습게 보지마라. 너희는 과연 누군가를 진정으로 웃긴 적 있는가.'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를 빗대 로맨틱 코미디를 말한다면 이런 표현이 되지 않을까. 로맨틱 코미디라고 하면 어딘지 정극과 비교해 낮게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 특히 연기에 있어서는 더더욱 그렇다. 흔히들 "정극이 되네?"하는 반문 속에는 코미디 연기보다 정극이 훨씬 어렵다는 뉘앙스가 들어있다. 하지만 과연 진짜 그럴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시선은 잘못됐다. 로맨틱 코미디만큼 그 연기가 중요한 것도 없고 어려운 것도 없다. 그 이유는 이 장르가 가진 이중적인 특성 때문이다. 이 장르는 코미디가 가진 과장이 전면에 드러나면서도, 그 바탕에 드라마라는 진지함 역시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즉 로맨틱 코미디는 그저 코미디가 아니며, 또한 보통의 정극도 아닌 셈이다. 이 가벼움과 무거움을 동시에 해결하지 못한다면 로맨틱 코미디는 현실성을 잃고 허공에 붕 떠버리거나, 혹은 아무런 웃음도 주지 못하게 된다. 로맨틱 코미디만큼 연기력을 요하는 장르도 없다는 얘기다.

이런 사실을 가장 잘 알려주는 작품이 '보스를 지켜라'다. 이 한없이 웃다 보면 그 속에 담겨진 진한 삶의 페이소스까지 느끼게 해주는 작품은 마치 코미디 연기의 각축장을 보는 것만 같다. 지성은 확실히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이 구축해온 연기의 스펙트럼을 넓혀놓았다. 어딘지 진지한 정극에만 어울릴 듯 싶었던 지성의 이미지는 차지헌이라는 캐릭터를 만나면서 한결 편안해진 느낌이다. 시종일관 과장된 모습을 연기하지만 그러면서도 완전히 캐릭터에 몰입된 모습을 보여준다. 그 웃음 뒤에는 얼핏 이 캐릭터가 숨기고 있는 아픔 같은 것도 느껴질 정도다.

지성과 거의 비슷한 톤으로 명품 코믹 연기를 보여주는 차지헌의 아버지 차회장 역의 박영규는 극중 부자지간처럼 차지헌을 닮았다. 캐릭터가 닮은 것만이 아니라 그 연기방식도 닮아있다. 박영규가 연기하는 차회장이나 지성이 연기하는 차지헌은 모두 우리가 흔히 드라마를 통해 봐왔던 재벌의 그 고압적인 이미지가 아니다. 그들은 한없이 그 권위를 탈피해 스스로를 무너뜨리며 웃음을 준다. 그러면서 그 속에 담겨진 인간적인 면모들을 끄집어낸다. 차회장의 어딘지 상스럽게까지 보이는 어투와 행동은 자식에 대한 지극한 사랑으로 귀결되면서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주고 있다. 이것은 차지헌이 자신이 살아가는 스펙 사회 속에서 부적응자처럼 보이면서 노은설(최강희) 같은 스펙 제로의 인물을 좋아하게 되는 상황과 유사하다.

최강희는 '명불허전'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엉뚱 캐릭터 연기를 보여준다. 한없이 망가지면서도 그 모습이 귀엽게까지 여겨지고, 때론 스펙 없이 취업전선에 뛰어든 이들의 아픔을 대변하면서 깊은 공감을 끌어내기도 한다. 박영규와 지성, 그 사이에 최강희가 서 있으니 그 환상의 조합이 힘을 발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처럼 로맨틱 코미디란 그저 웃기기만 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 탄탄한 연기력이 밑바탕 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최근 우후죽순 쏟아져 나온 로맨틱 코미디들의 성패를 보면 얼마나 이 장르에서 연기력이 중요한 것인가를 알 수 있다. '여인의 향기'는 김선아표 로맨틱 코미디 연기를 통해 웃음과 눈물을 통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작품으로 성공적인 길을 달리고 있다. 반면 한예슬 사태로까지 번진 '스파이명월'이나 끝없이 추락하고 있는 '넌 내게 반했어' 같은 작품은 대본의 캐릭터도 문제지만 연기자들의 연기력 또한 문제로 지목되고 있다. 연기 경험이 상대적으로 일천한 에릭이나 한예슬, 그리고 정용화 같은 이들로서는 로맨틱 코미디라는 어쩌면 더 어려운 장르를 만난 셈이다. 우리를 웃기고 울리는 로맨틱 코미디. 웃기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우스운 장르는 아니다.


편성이 아쉬운 오디션 프로그램, '키앤크'와 '톱밴드'

'톱밴드'(사진출처:KBS)

왜 하필 그 시간대였을까. '김연아의 키스 앤 크라이'가 일요일 저녁이 아니라 금요일 밤이었다면 어땠을까. '탑밴드'가 토요일 밤 주말 드라마들의 격전장을 피했다면? 더 많은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는 프로그램이 되지 않았을까. 프로그램이 이룬 성취에 비해 이들 프로그램의 노출은 너무 약하게 느껴진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김연아의 키스 앤 크라이'가 편성된 시간은 이미 고정시청층을 확보하고 있어 주말 예능의 절대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해피선데이'가 있는 시간이고, 새롭게 대항마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나는 가수다'가 포진한 시간대다. 제 아무리 뛰어난 프로그램을 붙인다고 해도 장벽이 느껴질 수밖에 없는 시간대다. 즉 이 시간대에 '키스 앤 크라이'가 10%대의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는 것 자체가 대단한 결과라고 볼 수 있을 정도다.

또한 '탑밴드' 역시 주말 드라마와 경쟁해야 하는 시간대다. '탑밴드'가 시작하던 시점에는 MBC '내 마음이 들리니'가 자리하고 있었고, 이 드라마가 종영한 후 SBS '여인의 향기'가 그 시간대의 강자로 부상했다. 무엇보다 이 시간대는 방송사들 간의 주말 드라마들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터라, 예능 프로그램은 경쟁 자체에서 소외되는 경향이 생긴다. 시청률은 낮을 수밖에 없다.

시청률이 상대적으로 빈약하지만, '키스 앤 크라이'나 '탑밴드'는 시청률로는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보여주는 프로그램들이다. '키스 앤 크라이'는 지금껏 예능 프로그램에서 시도된 적 없는 피겨 스케이팅을 소재로 하고 있다. 매번 놀라운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달인 김병만은 물론이고, 피겨 스케이팅의 아름다운 선을 가장 잘 드러내는 크리스탈, 갈수록 의외의 매력을 보여주는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이규혁 등등. 이전에는 피겨 스케이트를 한 번도 타본 적이 없는 출연진들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경연은 이 프로그램의 백미다.

한편 '탑밴드'는 그간 방송이 외면해온 밴드들을 재조명한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입증되는 프로그램이다. 오디션에 참가한 인디밴드들은 물론이고 직장인밴드 같은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아마추어 밴드들이 벌이는 한바탕 음악의 향연은 경쟁마저 잊게 만드는 밴드음악만의 묘미를 전해준다. 여기에 그간 볼 수 없었던 신대철, 김도균 같은 록의 전설들이 심사위원과 멘토로 등장한다는 점도 특별함을 더한다. 특히 프로들도 감탄하게 만드는 참가 밴드들의 놀라운 실력은 그간 이들을 외면해온 방송이 이상하게 여겨질 정도다.

무엇보다 '키스 앤 크라이'와 '톱밴드'의 편성을 아쉽게 만드는 것은 이 두 프로그램이 모두 그간 주목되지 못했던 분야를 조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김연아라는 세계적인 스타를 통해 피겨 스케이팅의 묘미는 알려졌지만, 그 스포츠가 어떤 어려움이 있으며 그 세세한 기술들이 어떤 노력에 의해 만들어지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또한 현재 밴드 문화가 인디 레이블을 통해 퍼져나가고 있지만, 방송에서 다뤄지지 않으면서 여전히 일반 대중들에게 낯선 것도 사실이다. 이런 상황을 감안해보면 이 프로그램이 좀 더 많은 대중들에게 노출되고 그 저변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제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지만 아직까지 '키스 앤 크라이'나 '탑밴드'의 시즌2는 확정된 것이 아니다. 하지만 바로 이런 지속적인 관심을 요구하는 프로그램이야말로 시즌2가 더 절실하다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반드시 시즌2가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이고, 그 시즌2는 좀 더 많은 대중들이 접할 수 있는 편성 시간대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때론 방송은 시청률을 넘어서 그 소재를 조명하는 것만으로도 가치를 갖는 경우가 있다. '키스 앤 크라이'나 '탑밴드'가 바로 그런 프로그램이다.


유재석의 리얼 버라이어티쇼 장수 비결은?

'무한도전'(사진출처:MBC)

리얼 버라이어티쇼에서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일까. 즉각적인 상황에 대처하는 순발력? 쇼의 흐름을 이해하는 능력? 아니면 자신만의 캐릭터를 드러낼 수 있는 끼와 연기력?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체력이다. 아무리 순발력과 능력과 끼와 연기력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요구하는 강인한 체력이 없다면 모두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이다.

강호동과 유재석이 리얼 버라이어티쇼를 양분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강인한 체력이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천하장사 출신인 강호동은 말할 것도 없고, 유재석 역시 늘 준비된 체력의 소유자로 이름이 높다. 이런 유재석의 장점은 '무한도전'의 장기미션에서 돋보인다. 프로레슬링 특집이나 조정 특집에서 유재석이 프로그램의 동력으로 기능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체력이다. 조정 특집에서 그는 '젊은 간' 진운과 함께 배를 이끌었다. 진운과의 나이차를 생각해보면 그가 얼마나 평상시에 몸 관리를 잘 해왔는가를 알 수 있다.

강호동이 '1박2일'을 하차한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제기되는 것이 역시 '체력적인 부담감'이다. 무려 5년 동안이나 지역 곳곳을 돌아다니며 입수에 복불복에 야외취침을 해왔다는 것은 그 체력적인 부담감이 얼마나 큰가를 잘 말해준다. 제아무리 강호동이 천하장사 출신이라고 해도 누적된 피로감에는 장사가 없기 마련이다.

예능의 대세로 자리하면서 강호동과 유재석은 방송3사 모두에서 고르게 예능 프로그램을 하는 강행군을 펼치고 있다. 그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가장 체력적인 부담이 많은 것이 리얼 버라이어티쇼다. 그래서 강호동조차 리얼 버라이어티쇼는 '1박2일' 하나로 국한하고 있는 상황이다. 상대적으로 '무릎팍도사'나 '강심장', '스타킹'은 그래도 스튜디오 촬영이라는 편안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유재석이 그 와중에 '무한도전'과 '런닝맨'을 동시에 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나도 힘든 리얼 버라이어티쇼를 두 개나 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토크쇼가 적은 것도 아니다. '해피투게더'와 '놀러와'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무한도전'에서 그 힘겨운 조정 특집 같은 미션을 수행하면서, 동시에 '런닝맨'에서 태국으로 날아가 쉴 틈 없이 뛰어다니는 미션을 수행하고, 서울에서 경주까지 주사위 레이스를 벌이는 등 몸을 아끼지 않는 모습을 볼 때면 실로 유재석이라는 인물이 놀랍기까지 느껴진다. 그는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체력의 소유자란 얘긴가.

하지만 과연 이게 그저 체력이 받쳐주기 때문 만일까. 그렇지 않다. 유재석에 얽힌 방송가의 이야기들은 이것이 단지 체력이 아니라 그가 가진 특유의 성실성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는 걸 알게 해준다. 밤새 토크쇼를 녹화하면 거의 목이 쉴 정도로 자신의 모든 걸 쏟아 붓고는 다음 날 아침 녹다운이 되어 링거를 맞는 게 그의 일상적인 방송생활의 연속이었다는 건 이미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다. '소진'과 '충전'의 반복. 그 이외의 일들은 전혀 하지 않는 그 성실함은 제작진들이 그를 신뢰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사실 작금의 리얼 예능 상황에서 체력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그것이 모든 것이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건 성실성이 아닐까. 방송을 시청자와의 준엄한 약속으로 여기고 비록 최고를 보여줄 수 없다고 하더라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모습. 그것이 유재석의 진짜 장수비결일 것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가끔 다락방에서 꺼내온 아코디언을 연주하셨다. 아코디언하면 어딘지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의 '집시의 시간'에 나오는 음악 같은 걸 떠올리겠지만, 아버지가 연주하는 곡은 그런 게 아니었다. 그것은 트로트, 이른바 뽕짝이었다. 쿵짝 쿵짜작 하며 이어지는 아코디언의 반주는 기막히게 뽕짝에 잘 어울렸다. 아버지는 그 연주에 맞춰 '목포의 눈물'이나 '동백아가씨' 같은 곡을 잘도 부르셨다. 아버지가 연주할 때 어머니는 다소곳이 앉아 그 노래를 감상하시곤 했다. 마치 팬이라도 되는 듯이. 그래서일까. 어린 시절의 어머니를 생각하면 나는 왠지 '동백아가씨'를 떠올리곤 한다.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일로 지새우시던 어머니는 어쩌면 아버지의 노래 한 자락에 피로를 푸셨을 지도.

아버지에게 이어받은 끼 때문인지, 아니면 어린 시절부터 들어왔던 아버지의 아코디언 연주 때문인지, 나도 중학교 시절부터 통기타를 끼고 살았다. 누나가 가끔 집에서 하는 음악 동아리 모임을 귀동냥으로 들어가며 노래를 배웠고, 그 음악동아리에서 일일찻집을 할 때는 누나와 무대에도 올랐다. 목청이 꽤 좋았기 때문인지 사람들은 내 노래에 박수를 쳐주고 앵콜을 불러 주었다. 사람들 앞에 나서서 노래를 부르고, 그 노래가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그 공감의 기억은 평생의 자산이 되었다. 그래서 호주에 1년 정도 유학을 갔을 때 외로웠던 나는 무작정 통기타를 하나 구입해 노래를 불렀다. 외국친구들이 생겼고, 우리는 다 같이 존 레논의 '이매진'을 부르며 하나가 되었다.

요즘 쏟아져 나오는 오디션 프로그램들을 볼 때마다 나는 아버지를 떠올리고, 또 통기타를 들고 다니던 젊은 시절을 떠올린다. 음악이란 본래 그렇게 누군가 부르고 누군가 그걸 듣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경험이다. 1등이 되기 위해 지나치게 경쟁적인 모습을 볼 때면 '저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버지는 시골에 찾아온 '전국노래자랑'에 출전했지만 예선 탈락했다. 그래도 자랑처럼 얘기하시는 걸 보면 그 경험이 못내 즐거우셨던 모양이다. 음악이 진짜 감동을 주는 건 잘 불러서가 아니라, 그 속에 마음이 담겨서이고 그것이 상대방에게 그대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호주에 있을 때 그 먼 곳을 찾아오신 어머니와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정말 인가가 하나도 없는 허허벌판을 차를 몰고 달려가는데, 갑자기 어머니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셨다. 처음에는 한국에서 가져온 카세트테이프의 노래를 따라하시다가 나중에는 카스테레오를 꺼버리고 무반주로 트로트를 부르셨다. 그런 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깔깔 웃으며 운전을 하고 있는데 '동백아가씨'를 부르시던 어머니가 갑자기 조용해지셨다. 어머니는 울고 계셨다. 아마도 그 노래가 주는 정조가 한 평생 일만 하며 살아온 자신을 말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런 자신이 아들과 함께 이 이역만리에서 여행을 하고 있다는 게 기뻤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홍수처럼 쏟아지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챙겨보며 하루에서 수십 곡의 노래를 듣지만, 그 때 어머니가 불렀던 '동백아가씨'만한 감흥을 대신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음악이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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