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노’는 어느 길을 가게 될까

사극이 과거를 이야기하던 시대는 지났다. 사극은 이제 과거를 가지고 현재를 이야기한다. 사극 ‘추노’가 그렇다. 이 사극에서 역사는 한 발짝 저 뒤로 물러나 있고 대신 그 역사적 시점 위에 현재적 의미를 지닌 인물들이 등장한다. 양반이었으나 추노꾼으로 전락한 이대길(장혁), 한 때 타고난 무사로 소현세자와 함께 꿈을 꾸었으나 도망노비로 전락한 송태하(오지호), 한 때 태하와 동문수학하던 사이였으나 이제는 그를 누명에 빠뜨리고 스스로 암살자가 되어버린 황철웅(이종혁). 이들은 모두 ‘전락한 인물’들이다.

이대길은 송태하를 추격하고, 송태하는 소현세자의 막내아들인 석견을 제거하려는 황철웅을 추격하며, 황철웅은 송태하와 맞서며 석견을 추격하는데, 그들은 모두 자신을 위해 그 일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바로 이 지점, 목숨을 걸고 행하는 일이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위한 일이어야 하는 상황에 이들의 비극이 있다. 그 이면에는 이경식(김응수)이라는, 이 시스템을 쥐고 있는 희대의 권력자가 자리한다. 그는 대길을 시켜 태하를 추노하게 하고, 철웅을 시켜 석견을 제거하려 한다. 태하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대의를 위해서’ 석견을 지키는 일에 목숨을 건다.

이 자신이 소외되어 있는 상황은 바로 이 사극이 그리려는 노비의 상징적인 의미를 캐릭터를 통해 그려낸다. 드라마가 어떤 캐릭터가 가진 문제를 해결하려는 속성을 지닌다고 볼 때, 이 사극은 자신이 소외된 노비적인 상황 속에 갇힌 캐릭터들이 그것을 뚫고 나오는 지점에서 해결의 실마리가 열린다고 볼 수 있다. 즉 대길이 누군가의 지시에 의해 추노를 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을 위해 누군가를 찾게 될 때, 태하가 대의라는 명분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게 될 때, 철웅이 누군가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의 위치에서 성장할 수 있는 길을 발견하게 될 때, 이들 캐릭터들의 문제는 해결된다.

이것은 결국 이 정교한 시스템 속에 있어 그 시스템을 보지 못하는 이 인물들이 바깥에서 그것을 통찰할 때 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밖에서 보면 대길이나 태하나 철웅은 결국 같은 위치에 서 있는 자라는 것을 알게 된다. 권력을 쥔 자가 아니라 권력에 휘둘려 비극적 운명에 던져진 자. 결국 시스템의 꼭대기에 있는 이경식이라는 인물이 자신들의 엇갈린 운명을 조종하는 자라는 것을 알고 그를 향해 동시에 칼을 겨누게 될 때 이 ‘추노’가 현재에 던지는 결코 작지 않은 질문은 해결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주제의식은 이미 ‘양반을 죽이고 상놈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꿈꾸는 당’과 그 속에 들어가는 업복이(공형진)라는 캐릭터로 극단화되어 있다.

권력을 쥔 자와 권력에 휘둘리는 자들과 그 권력에 반기를 드는 이 세 축의 힘은 결국 말미에서 하나로 부딪치면서 해결책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드라마의 영상미학이라고 불리는 이 사극이 소재나 주제의식에 있어서도 충분히 걸작이 될 수 있는 자질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와 그 시스템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위해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 지도 모르게 살아가는 이 땅의 민초들에게 이 사극은 충분히 시사점을 제공한다.

하지만 어쩌면 이 걸작이 될 수 있는 ‘추노’에 드리워진, ‘범작으로의 후퇴’도 예상될 수 있는 일이다. 그것은 결국 이 드라마의 또 한 축이라고 할 수 있는 멜로에서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대길의 문제가 시스템 속에서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엇갈린 사랑이 가져온 비극이라고 그려질 때, 태하의 대의명분 속에서 희생된 개인의 행복이 섣불리 길에서 만난 혜원(이다해)과의 사랑으로 채워질 때, 이 사극은 걸작의 길에서 범작의 길로 내려서게 될 위험이 있다. 과연 ‘추노’는 어느 길을 걸어가게 될까.

'파스타'는 파스타라는 요리를 그대로 닮은 드라마다. 때론 톡 쏘고 때론 부드럽게 넘어가며, 때론 팽팽한 면발처럼 긴장감이 넘치는 '파스타'. 그 독특한 맛은 어떤 레시피로 이루어져 있을까.

1. 강한 마늘향 같은 마초 요리사의 톡 쏘는 맛 : 드라마 ‘파스타’의 기본 향은 강한 마늘향 같은 마초 요리사 최현욱(이선균)의 톡 쏘는 맛.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는 강한 인상을 갖고 있지만, 알다시피 이 마늘은 올리브 오일에 볶아지면 맛도 부드러워지고 향도 은은해진다. 최현욱이라는 캐릭터는 마치 마늘처럼 강한 향과 부드러운 맛을 오가면서 극에 긴장과 이완을 주는 인물이다.

2. 부드러운 올리브 오일 같은 여주인공 : 바로 그 마늘 같은 최현욱을 부드럽게 바꿔주는 부드러운 올리브 오일 같은 여자, 바로 서유경(공효진)이다. 그녀는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지만, 뭐든 그 속에서 요리해낼 수 있을 만큼 강인한 내면을 가진 여성으로, 요리하면 할수록 맛있어지는 파스타처럼 이 드라마의 과정을 성장스토리를 이어가며 재미있게 만드는 인물이다. 강하기만 할 것 같은 최현욱을 말랑말랑한 멜로의 감정에 빠뜨리면서 바꿔나가고, 나아가 주방의 강압적인 분위기도 부드럽게 바꿔주는 마치 파스타를 부드럽게 해주는 올리브 오일 같은 여자.

3. 파스타 면발 같은 팽팽한 긴장감 : ‘파스타’라는 드라마의 팽팽함은 두 가지 대결구도에서 나온다. 그 하나는 요리사들 간의 위계질서 속에서 생겨나는 긴장감. 그리고 또 하나는 남자 요리사와 여자 요리사 사이에 생겨나는 긴장감. 새로운 셰프로 들어온 전형적인 마초 요리사 최현욱(이선균)은 이 팽팽한 맛을 만들어내는 인물. 그로 인해 새로 투입된 요리사들은 기존 요리사들과 부딪치게 되고, “내 주방에 여자는 없다”고 주장하는 그로 인해 여자 요리사들은 모두 쫓겨나고 겨우 서유경(공효진)만 살아남는다. 한편 새로 라스페라의 셰프로 들어온 오세영(이하니)은 서유경을 사이에 두고 최현욱과 대결한다.

4. 바질이나 치즈 같은 풍미를 내는 조연들 : 기본적인 파스타 본연의 맛에 풍미를 가미하는 바질이나 치즈처럼 이 드라마에는 김산(알렉스)이나 오세영(이하늬) 같은 주연을 받쳐주는 인물들이 있다. 김산은 부드러운 치즈맛처럼 여주인공 서유경의 힘겨움을 감싸 안는 인물. 가시 위에서도 꽃을 피워내는 선인장 같은 서유경을 마음에 품는다. 오세영은 톡 쏘면서도 부드러운 바질 같은 향미를 가진 인물로, 최현욱의 호적수처럼 서면서도 사실은 그를 지지한다.

5. 그 밖의 맛을 가미하는 명품조연들 : 파스타에 따라 붙는 피클처럼 이 드라마에는 맛을 가미하는 다채로운 명품 조연들이 있다. 늘 쉐프 최현욱과 갈등구도를 세우는 부주방장 금석호(이형철)와 그 밑의 요리사들, 정호남(조상기), 민승재(백봉기), 한상식(허태희)이 그렇고, 최현욱이 데리고 온 이태리 유학파 요리사들, 선우덕(김태호), 필립(노민우), 이지훈(현우)이 그들이다. 이 둘로 나누어진 파트들은 드라마에 묘한 대비효과를 준다. 유학파가 비주얼과 스타일에서 서구적인 맛을 낸다면, 국내파는 친근한 토종 국산의 맛을 낸다. 이밖에도 퇴출된 여성 요리사들 이희주(하재숙), 박미희(정다혜), 박찬희(손성윤)나 사장이었다가 막내로 복귀한 설준석(이성민)은 모두 만화적으로 처리되어 웃음을 주는 캐릭터로, 드라마 '파스타'의 맛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이다.

6. 전체의 맛을 묶어주는 미드 같은 스타일 : 파스타의 맛에 빠질 수 없는 것이 그것을 먹는 레스토랑의 분위기인 것처럼, 드라마 '파스타'가 그려내는 스타일은 미드식이다. 남녀 간의 멜로는 쿨하고, 라스페라라는 직장에서의 일은 살벌할 정도로 긴장감이 넘친다. 이 둘이 서로 엮어지면서 때론 긴장을 주고 때론 이완을 주는 것이 이 드라마의 묘미다. 어찌 보면 '파스타'는 미드 '그레이 아나토미'의 요리사 판을 보는 것 같은 인상을 주기도 한다. 특히 드라마의 매 편마다 어떤 일정한 에피소드를 제시하고, 그 끝맺는 장면에서 음악과 함께 세련되게 연출되는 스타일은 미드의 그것을 그대로 빼닮았다.

'스타킹', 아주 일상적이면서도 특별한 쇼의 진화

1979년 MBC 인기 오락프로그램이었던 '묘기 대행진'. 인상 좋은 아저씨가 모자에서 연실 비둘기를 꺼냈다. 그 때마다 브라운관 앞에 앉은 시청자들은 탄성을 질렀다. 바로 1세대 마술사인 알렉산더 리, 이흥선 마술사다. 이 프로그램에는 송재철 관장이라는 초인간(?) 스타도 있었다. 그는 이륙하는 헬기를 80여 분 동안이나 멈추게 하고, 160톤짜리 보잉737기를 무려 38미터나 끌었다. 자기 배 위로 자동차를 지나가게 한다거나 입으로 자동차 끌기, 쌀 한 가마니 메고 달걀 위 달리기는 오히려 쉬워 보였다. 무엇보다 이 스타의 매력은 가끔 격파를 실패하기도 하는 그 인간적인 데 있었다. 볼거리만으로도 충분했던 시절, 이주일이 무대 위에만 오르면 강박처럼 "뭔가 보여주겠습니다"하고 말하던 시절, 이른바 쇼의 시대였다.

하지만 이흥선 마술사와 송재철 관장의 시대는 조금씩 저물었다. '묘기대행진' 같은 프로그램들이 묘기를 보여주기 시작하면서 실제 서커스단과 곡예단은 조금씩 설 자리를 잃었다. 동춘 서커스단이 해체 위기에까지 갔던 것은 TV라는 매체가 매일같이 쏟아내는 엄청난 볼거리 탓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특별한 볼거리가 너무나 많아지면서 쇼의 시대도 저물었다. 차돌을 깨고, 입으로 차를 끄는 차력이나, 비둘기를 모자에서 꺼내는 마술은 더 이상 대중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무엇보다 카메라가 일상 속으로 뛰어드는 마당에 '한정된 공간에서 무언가를 보여주는' 전통적인 쇼라는 형식은 힘을 잃었다.

이제 남은 건 보여주기 보다는 대화의 장으로서의 토크쇼와, 무대 밖으로 나가 현장의 리얼함을 스토리 형식으로 담아내는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전부다. 이런 시대, 말 그대로 '무언가를 보여주는' 쇼가 어떤 길을 가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스타킹'이다. 물론 '스타킹'의 시작은 'UCC의 프로그램화'에서 비롯됐다. 특별한 UCC의 주인공들이 무대 위로 초대되어 자신들만의 장기를 보여주고, 출연진으로 앉아있는 스타들이 이들에게 아낌없이 박수를 보낸다는 아이디어는, 인터넷이라는 매체에 의해 "이젠 나도 스타"를 외치게 된 달라진 세태를 제대로 포착해냈다.

하지만 과도한 경쟁의식에 의한 무리한 볼거리에 대한 집착은 이 프로그램의 훌륭한 초심을 흐려놓았다. 몇몇 아이템들이 비판의 도마 위에 올려진 것은 과도한 의욕 때문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계속 식상하지 않은 새로운 아이템을 발굴해내야 한다는 압박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게 논란의 논란을 거쳐 '스타킹'은 제작진까지 교체되는 수난을 겪어야 했다. 그리고 이 난관을 넘어서는 지점에서 '스타킹'의 달라진 면모가 드러난다. 그것은 한 때 우리 눈을 매료시켰지만 늘 반복적인 아이템과 비슷한 연출로 인해 사라져갔던, '무언가 보여주는 전통적인 쇼'의 현재적인 실험이다.

달라진 '스타킹'에는 과거 이흥선 마술사가 대중들의 입을 다물어지지 않게 했던 것처럼, 신세대 마술사 최현우가 출연해 출연진들이 가까이서 보는 와중에 동전을 둘로도 만들고 사라지게도 하는 마술을 선보인다. 그런데 과거와는 다른 특별함이 있다. 그것은 최현우 마술사 스스로 어떤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자신의 마술에도 어떤 이야기를 끼워 넣는다는 점이다. 똑같은 마술이라도 묵묵히 보여주기만 하던 시대에서, 이제 이 신세대 마술사는 출연진들과 대화를 나누며 마술을 선보인다. 때론 애프터 스쿨의 가희나 티아라의 효민이 마술을 보조하기 위해 무대 위에 올라서기도 하는데, 그녀들의 섹시한 이미지는 마술의 매력을 부가시킨다.

'특별한 볼거리'에 대한 범주의 확장 또한 특기할만한 점이다. 초창기 '스타킹'은 춤이라던가 노래, 웃음, 외모처럼 흔히 '무대 위에서의 특별함'을 소재로 한정지은 점이 있다. 이러한 외관에 집중하는 소재는 다름 아닌 '스타킹'이 비판의 불씨를 가지게 되었던 원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스타킹'은 '일상 속에서의 특별함'으로 그 소재를 넓혔다. 약수터에서 돌을 손바닥으로 쳐 건강을 유지한다는 약수터 건강킹 봉화산 때려맨이나, 불편한 몸으로 그저 아들을 위해 엄마도 뭔가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출연했다는 '앉은 꽃 예숙씨', 그리고 일을 하다가 스티로폼 쌓기의 달인이 된, '평택 이반장' 같은 인물들은 바로 그 일상 속에서 발견한 특별함을 갖고 '스타킹'에 나온 인물들이다.

이러한 '일상 속의 특별함'이 쇼로서 가능한 것은 그것이 갖는 독특한 이야기성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이런 일이'나 '생활의 달인'이 다큐의 형식으로 그 독특한 이야기성을 통해 프로그램화되는 것처럼, '스타킹' 역시 이들의 이야기를 쇼의 형식으로 프로그램화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기획 아이템으로 '스타킹'이 신년과 함께 내놓은 '숀 리의 다이어트 킹' 같은 코너는 이러한 스토리텔링을 갖게 된 '스타킹'으로 인해 가능해진 것이다. 한정된 기간 동안 살을 빼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 이 일상적이면서도 특별한 아이템은 작금의 쇼가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소소할 수 있는 일상이 이야기를 갖고 특별해질 수 있는 데는 '스타킹'만의 독특한 시스템 때문이다. 평범할 수 있는 일반인이 올라올 때, 스타들이 기꺼이 그를 보조해주는 조연역할을 자처하는 것은 '스타킹'만의 장점이었다. 하지만 달라진 '스타킹'은 그 영역 역시 넓혀가고 있다. 어린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배드민턴을 잘 치는 '리틀 이용대 추찬'이 나오자 실제 배드민턴 스타 이용대가 출연하고, 대한민국 인재상을 받은 '고딩 파바로티 김호중'이 출연했을 때 국립오페라단 소프라노인 이지은이 출연하는 식이다.

게다가 이를 담아내는 제작진들의 연출에 대한 노력이 이 볼거리를 더욱 빛나게 해준다. 통상적인 카메라가 스튜디오에서 고정된 위치에 머무르고 있는 반면, '스타킹'의 카메라는 끊임없이 무대를 휘젓고 다닌다. 스튜디오에서 ENG카메라가 유독 많이 활용되는 것은 그 현장감을 좀 더 생생하게 잡아내려는 제작진의 의도다. 심지어 스튜디오의 공간적 한계도 어떤 순간에는 무너져버린다. 스튜디오에서 배드민턴을 치고, 스튜디오 천장에 닿을 듯한 스티로폼 16개를 들고 방청객석의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을 굳이 찍는 장면은 스튜디오가 갖는 닫힌 공간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제작진의 노력이 엿보인다.

이것은 쇼의 진화, 혹은 생존을 위한 안간힘이다. 일반인과 스타 사이의 벽을 깨고, 비전문가와 전문가의 벽을 깨며, 그저 볼거리에 머물지 않고 그 속에서 적극적으로 스토리를 끄집어내고, 스튜디오의 한계를 넘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그들에게 남다른 진정성이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스타킹'은 이렇게 이 시대의 쇼에 대한 자화상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그 쇼는 늘 그래왔듯이 여전히 재미있다.

명품 남성 캐릭터 전시장, '추노'의 여성 캐릭터 문제점

'추노'의 이다해가 또 구설수에 올랐다. 과도한 화장, 노출신에 이어 이번에는 극중 송태하(오지호)와의 갑작스런 키스신이 도마 위에 올랐다. 항간에는 언년이 살생부, 혹은 '추노 데스노트'가 화제가 될 정도다. 언년이라는 캐릭터와, 그 캐릭터를 연기하는 이다해 때문에 줄초상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다해가 이렇게 드라마 속 캐릭터를 연기하며 논란이 됐던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에덴의 동쪽'이 방영될 때, 그녀는 민혜린이라는 캐릭터를 연기하다가 도중에 스스로 그만두었다. 이유는? 캐릭터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사실이 그랬다. 민혜린이란 캐릭터는 극 초반에는 거대 언론사 사장인 아버지에 반항하는 인물로 그려졌는데, 후에 가면 그 언론사의 실질적인 주인 역할을 하는 인물로 변모한다.

여성 캐릭터로서의 멜로에 있어서도 민혜린이라는 캐릭터는 요령부득의 인물이었다. 그녀의 언니인 혜령의 남자가 그녀를 사랑하면서, 그 언니는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기도 하고, 처음에는 노동운동을 함께 하던 이동욱(연정훈)과 연인관계인 듯 보였는데, 나중에는 그 형인 이동철(송승헌)을 짝사랑한다. 말 그대로 전형적인 민폐형 캐릭터에 상황에 따라 조변석개하는 인물이니 이다해로서도 연기한다는 게 실로 어려웠을 터다.

그렇다면 '추노'의 언년이는 어떨까. 마찬가지다. '추노'에는 멋진 남성 캐릭터들이 즐비하다. 대길(장혁), 최장군(한정수), 왕손이(김지석)는 드라마판 '놈놈놈'을 연상시킬 정도로 멋지게 그려지고, 그들이 추적하는 송태하(오지호) 역시 슬픈 운명 속에 굴하지 않고 서 있는 캐릭터로 시청자들을 열광하게 만들고 있다. 때론 해학적인 느낌을 주는 업복이(공형진)는 물론이고 심지어 악역을 맡고 있는 황철웅(이종혁)이나 천지호(성동일)조차 멋있게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여성 캐릭터들은 그렇지 못하다. 언년이는 날아오는 화살 앞에 그저 비명을 지를 뿐, 그 화살을 손목으로 받아내는 송태하 같은 능동적인 모습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원손을 구하기 위해 달려야만 하는 송태하의 발목을 잡는(스스로도 극중에서 그런 대사를 한다) 그런 캐릭터다. 오히려 대길 패거리와 함께 다니는 설화(김하은)가 능동적으로 보이지만, 이 캐릭터 역시 민폐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녀는 무리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기껏 노래를 불러주거나 말을 지키는 캐릭터다.

여각의 큰 주모(조미령), 작은 주모(윤주희) 역시 최장군만 바라보며 그를 연모하는 해바라기형 캐릭터들이다. 그들이 극에서 그 이외에 부여받은 역할은 잘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업복이 옆에서 애틋한 눈길을 보내고 있는 초복이(민지아)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명나라 자객인 윤지(윤지민)가 능동적인 여성 캐릭터였으나, 송태하의 단칼에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이러니 '추노'라는 사극에는 남성 캐릭터들은 우글우글한 반면, 이렇다 할 여성 캐릭터가 보이지 않는다. 뇌성마비 연기를 하고 있는 이선영(하시은)이 호평 받는 것은 그녀가 이 남성들의 판이 되어버린 사극에서 그 설정 때문에 한 발짝 물러나 있기 때문인 것처럼 보일 정도다.

그러고 보면 이 모든 화살을 이다해가 맞는 이유도 명백히 보인다. 이다해가 연기자로서 어떤 주장을 하지 않은 것이 죄가 아니라면, '추노'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언년이 논란은 모두 제작진의 문제라고밖에 볼 수 없다. 화장은 연출에 의해 의도된 것이고, 노출 역시 의도된 신들이며, 그것을 갖고 블러 처리를 하거나 뺀 것도 모두 연출에서 한 것이지 이다해와는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언년이의 수동적이고 민폐적인 캐릭터는 작가가 여성 캐릭터를 남성 캐릭터만큼 섬세하게 고민하지 않은 탓으로 보인다. 그러니 여주인공으로서 도드라진 이다해가 모든 돌을 맞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이다해가 "여배우로서 사는 게 힘들다"고 토로한 것은 이로써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드라마 속에서 여성 캐릭터를 하나의 인형이나 남성들의 판타지, 혹은 꿰다 논 보릿자루처럼 그려놓는 한, 그걸 연기하는 연기자는 그 한계 속에서 절망할 수밖에 없다. '선덕여왕'이 그린 여성 캐릭터와 '추노'가 그리고 있는 여성 캐릭터 사이에 엄청난 차이가 존재하듯이, 드라마를 보는 제작자의 여성에 대한 시선은 그 캐릭터에 그대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누구는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여성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지 않을까. '추노'는 멋진 남성 캐릭터들의 전시장이지만, 또한 여성 캐릭터들의 무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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