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결'이 배우보다 가수를 선호하는 이유

'우리 결혼했어요(이하 우결)'는 가상결혼을 소재로 한다. 물론 가상이라고 해도 사람인 이상 실제 감정이 완전히 숨겨질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도 분명한 건 가상이라는 것. 그러니 이 예능 프로그램에는 기묘한 줄타기가 생긴다. 가상과 실제 사이의 아슬아슬한 지점을 조심스럽게 밟아나간다는 점이 이 프로그램이 갖는 재미의 근간이다. 완전히 사실일 수는 없지만, 그 실험 같은 설정의 틀에 들어가면 드러나기 마련인 인간적인 면모나 숨겨진 속내 가 살짝 보일 때. 그리고 그 리얼함 위에 판타지적인 설정이 잘 어울릴 때. 시청자는 재미를 느끼게 된다.

조권과 가인은 바로 이 이율배반적인 양자를 잘 만족시키는 커플이다. 그들은 영어학원을 다니는 미션 속에서도 마치 진짜 연인처럼 행동한다. 가인에게 남성다운 면을 보이고 싶어 탄탄한 몸을 살짝 보여주려는 조권의 행동이나, 그걸 보고 화들짝 좋아하는 가인의 행동이 그렇다. 영어학원에 가는 것이 두려워 조권의 뒤에 달싹 붙어 따라가는 가인의 행동이나 같은 반에서 공부를 하며 다른 여자를 경계하는 가인의 모습도 그렇다. 특히 서로 겉으로는 툭탁대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속으로는 애정을 갖고 있다는 것이 드러날 때는 순간 이것이 가상결혼이 맞나 의심이 들 정도다.

이것은 가상과 실제가 잘 어울려 상승효과를 만들어낸 경우다. 즉 가상이기에 설정을 통해 판타지를 극대화할 수 있고, 동시에 그 속에서의 행동이 리얼하기 때문에 이 가상은 실제 같은 힘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때론 이것은 정반대의 효과를 만들기도 한다. 그 안에 들어와 있는 인물들의 리얼함이 잘 드러나지 않을 때, 즉 진정성이 전해지지 않을 때, 가상은 가식으로 바뀐다. 차라리 드라마라면 드라마려니 하면서 감정이입을 하겠지만, 적어도 반응에 있어서 리얼을 표방한 이런 프로그램에서 가식이 느껴지면 보기가 어려워진다.

조권-가인 커플과는 상반되게 이선호와 황우슬혜 커플에게서 어떤 공감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커플 패션 화보 촬영에서 지나친 스킨십과 대화로 문제가 지목된 것은 그 선정성 때문만이 아니다. 아마도 제작진은 그 과감함이 자연스러움으로 여겨졌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거리낌 없는 자연스러움은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어울리는 것이다. '우결' 같은 가상과 실제가 혼재된 프로그램 속에서 이 너무나 빨리 이루어진 자연스러움을 자칫 연기로서 보일 수 있다.

부산으로 여행을 떠나서 보여준 모습 역시 지나친 감이 있다. 계속 해서 뽀뽀를 요구하는 이선호의 모습은 비호감으로 보일 뿐만 아니라, 납득도 잘 가지 않는 것들이다. 게다가 그것을 결국 받아주고 인터뷰를 통해 "진심이 보였다"고 말하는 황우슬혜 역시 마찬가지다. 이렇게 된 것은 그 주인공들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그것을 지나치게 한 부분에 집중해서 드러낸 제작진의 문제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우결'의 대부분의 출연자가 가수라는 점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사실 배우들은 이 프로그램 같은 드라마적인 속성을 가진 리얼 버라이어티쇼에는 기본적인 난점을 갖고 있다. 그것은 그들의 본업이 연기를 하는 직업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배우들은 설정에 대한 몰입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나치게 능숙한 모습과 자연스러운 모습은 자칫 '우결'의 리얼리티를 해칠 수 있다. 만남에 있어 어딘지 어색한 구석을 보여주는 것이 오히려 더 리얼하다는 얘기다. 물론 이것은 배우에 대한 편견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편견, 즉 배우는 어떤 상황에서도 연기를 할 것이라는 생각 자체가 리얼리티에 어떤 장벽을 만든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허구에서의 리얼함은 연기를 잘 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지만, 리얼 버라이어티쇼에서의 리얼함은 연기를 못하는 데서(혹은 못한다고 생각되는 데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명가', 착한 메시지의 힘, 계몽적인 시선의 한계

'명가'에서 주인공 최국선(차인표)에게 그 부친인 최동량(최일화)은 "내가 너로 인해 큰 깨달음을 얻게 됐다"고 말한다. 그는 '청빈(淸貧)'의 길만이 가장 중요한 삶의 덕목이라고 생각해왔는데, 국선을 통해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이 잘 사는 '청부(淸富)'의 길 또한 가치 있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됐다는 것. 이 최동량의 대사는 이 드라마의 주제를 압축해 설명해준다.

'명가'는 '함께 잘 사는 길'을 고민하고 그 방법을 모색하는 사극이다. 병자호란으로 피난 온 사람들에게 곶간을 열어 구휼죽을 베풀면서 가세가 기울어 버린 집에서, 가난을 타개해 보고자 최국선은 집을 나서 저자거리로 간다. 거기서 그는 장길택(정동환)을 만나 그 상단에 들어가 돈을 벌지만 그것이 자신이 생각하던 '모두가 함께 잘 사는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은 '반계수록'의 저자인 유형원(이기영)이 준 깨달음 덕분이다. 그는 밥상 위에 여러 반찬을 올려놓고 그것을 이리 저리 옮겨 놓은 후, "이것이 바로 장사"라고 말한다. 즉 장사란 물건을 이쪽 저쪽으로 옮겨서 이문을 남기는 것일 뿐이라는 것. 즉 밥상 자체를 풍성하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장사가 아니라 농사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그의 멘토이자 할아버지인 최진립(장영철)이 유언을 대신해 남긴 '쌀되'는 국선의 뜻을 더욱 공고하게 한다. '쌀되'는 바로 '농사의 길'을 말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함께 사는 길'을 상징하는 오브제다. 세금으로 이자로 민초들의 식량을 수탈해가는데 사용되는 그 '쌀되'는 국선의 손으로 오자, 흉년에 구휼죽을 나눠주는 도구로 바뀐다.

'명가'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이 최국선의 삶을 통해 볼 수 있듯이 분명 착한 것들이다. 이 메시지가 승자독식의 사회, 흔히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 말하는 현재에 던지는 무게감은 적지 않다. 그런데 왜 '명가'는 대중적인 성공을 거둘 수 없었을까. 이야기가 너무 착해서였을까.

문제는 이 착한 메시지가 어떤 방식으로 제시되었는가에서 생겨난다. '명가'가 '청부의 길'을 제시하는 방식은 지나치게 교훈적이고 지나치게 도식적이다. 최국선에게 부친인 최동량이 깨달음을 말하는 장면은 물론 흐뭇한 설정이지만, 그것은 지나치게 설명적이다. 최국선은 물론 조선 후기에 농업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실제 인물로 현재에도 큰 의미를 던져주는 인물이지만, 드라마는 정작 이 꿈을 함께 일궈나가는 민초들을 자세히 조명하지 않는다. 민초들은 늘 가난함 속에서 먹고 살기 위해 심지어 죄까지 저지르는 인물들로 그려진다. 그런 그들을 긍휼히 생각하고 품에 안는 최국선의 모습은 뭉클한 것이지만, 그 방식에 있어서 민초들은 지나치게 수동적인 존재들로 그려진다.

이 착한 메시지를 가진 드라마가, 그 선함을 의심받게 되는 이유는 능동적이고 선구적인 일인과 대다수의 수동적인 민초들이 대비되며 나타나는 그 계몽적인 시선 때문일 것이다. 즉 우매한 민초들은 선견지명을 가진 한 인물에 의해 구원받아야 한다는 그 시선이 주는 뉘앙스가 현재의 능동적인 대중들에게는 어떤 거부감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결국은 부의 축적을 전제로 한다는 것, 그래서 자칫 잘못하면 부의 명분으로서 세워지기도 한다는 것을 이 시대의 대중들은 이미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다. 착한 사극 '명가'의 실패는 드라마 속의 최국선이 그러하듯이 현재의 대중들을 계도하고 가르치려는 그 태도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

달라지는 방송환경, 아나운서도 달라져야 한다

뉴스의 시그널송과 함께 등장한 앵커. 앵커로서의 권위는커녕 심지어 싼티마저 나보이는데, 거기에 부응이라도 하듯 한 바퀴 턴을 하고는 오프닝 멘트를 던진다.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가장 궁금한 건강정보를 깔끔하게 정리해서 5분간 전해드리는 비타5분의 전현무 앵커입니다. 뉴스 못해본 아나운서가 전해드리는 알짜배기 건강뉴스 비타5분 건강뉴스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트레이드마크처럼 되어버린 동작, 몸을 날려 데스크 위에 털썩 앉는데 이건 또 웬 일? 거짓말처럼 데스크가 반 토막으로 부서져 버린다. 100% 실제상황. 그러나 뉴스 프로그램이라면 엄청난 방송사고일 이 상황은 오히려 의외의 즐거움을 주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비타민'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비타5분'이라는 코너를 진행하는 전현무 아나운서가 보여준 해프닝의 한 장면이다.

전현무 아나운서의 이 '비타5분'이라는 코너는 실로 독특하다. 5분이라는 짧은 시간 속에 말 그대로 '알짜배기 정보'를 담아야 하기 때문에, 정확한 정보를 압축적으로 전달하면서도 머리에 쏙쏙 들어오게 하는 인상적인 방식이 필요하다. 숙면의 방법을 전달하면서 코고리(코에 고리를 끼워 코골이를 예방해주는 기구)를 설명하기 위해 전현무 아나운서는 짧은 상황극을 보여준다. 즉 코를 골다가 코고리를 끼우는 순간 코를 골지 않는 모습을 연출한 것. 그 과장된 동작은 예능처럼 웃음을 주지만 코고리가 어떻게 사용되는 것인지를 정확히 전달해준다.

이것은 '비타민'이라는 프로그램이 가진 성격을 극대화해 보여준다. 이 프로그램은 과거라면 아마도 시사교양 프로그램으로 분류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예능으로 분류된 이 프로그램은 정보에 즐거움을 더해 전해주는 형식을 보여주었다. 즉 인포테인먼트 시대에 정보 프로그램들이 걸어갈 길을 예시해 보여준 것이다. 즉 정보 프로그램이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은 이제 과거처럼 정확성이나 신뢰성에 머물지 않는다. 정보가 쏟아져 나와 도무지 주목할 수 없는 이 시대는 무엇을 전달하는 것만큼 어떻게 전달하는가가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시사교양 프로그램은 펀(fun)을 추구하는 경향이 생겼다. '자체발광' 같은 프로그램은 하나의 리얼 버라이어티쇼 형식을 정보와 연결시켰다. 한편 예능 프로그램은 그저 웃음만이 아닌 정보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지역의 특산물을 소개하면서 리얼 버라이어티쇼 형식을 취하는 '괜찮아U'나, 아예 정보 자체를 즐거움의 소재로 삼은 '스펀지' 같은 예능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사실 최근 시사교양 프로그램과 정보를 다루는 예능 프로그램은 구분이 어려워졌다. '신동엽의 300'이나 '위기탈출 넘버원'은 그 형식이 비슷해 보이지만 전자는 교양이고 후자는 예능으로 분류된다. '비타민'이 예능 프로그램이고, '자체발광'이 교양 프로그램이라는 사실은 분류표를 봐야 인식될 수 있을 정도다.

한때는 아나테이너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아나운서의 예능 외유가 하나의 트렌드인 적이 있지만 그 상황은 어느덧 저물어버렸고 아나운서들은 다시 본업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제 아나운서들은 새로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시사교양 프로그램과 예능 프로그램의 경계가 희미해지게 된 것. 최근에는 그것이 예능인지 교양인지 구분이 잘 되지 않는 그런 하이브리드된 프로그램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추세다. 이런 상황에서 아나운서들은 어떻게 해야할까. 과거처럼 정확한 정보 전달에만 집중해야 할까. 아니면 추세에 맞게 즐거운 진행을 연출해야 할까.

분명한 것은 정보가 즐거움을 추구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 시대에 아나운서가 엄격한 신뢰성의 틀 안에만 안주하는 것은 어딘지 부족한 인상을 준다. 정확한 정보만큼 중요한 것이 즐거운 정보가 된 세상이다. 즐거운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 아낌없이 망가져주는 아나운서 전현무는 어쩌면 이렇게 달라져가고 있는 방송환경을 징후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 아닐까.

복근에 담겨진 사회적 의미

드라마 '추노'는 몸뚱이 하나로 시대의 억압과 맞서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래서 몸에 대한 연출은 '추노'가 가진 메시지를 가장 잘 전달한다. 멋진 남자들이 훌러덩 옷을 벗어던지고 군살 하나 없는 복근을 보여주는 것이 단지 눈요기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 잘 단련된 복근이 드라마의 인기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다. 최장군(한정수)이 숙소로 돌아와 지친 몸을 씻을 때 드러나는 복근 앞에서, 송태하(오지호)가 날이 엇나간 장도를 휘두를 때 언뜻 옷깃 사이로 보여지는 몸 앞에서 시청자들의 눈은 분명 호사를 누렸던 것이 사실이다.

'추노'야 그렇게 몸을 드러내는 것이 드라마의 연출의도와 적합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드라마에서도 남성의 복근을 보여주는 것은 하나의 트렌드처럼 되어 있다. '파스타'에서 까칠 쉐프 최현욱(이선균)은 이태리파 요리사들을 옥상으로 불러 모은다. 새로 온 오세영(이하늬) 셰프의 육수가 감칠맛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무조건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에게 다짜고짜 옷을 벗으라고 하는 건 좀 생뚱맞다. 다분히 복근 노출을 통한 팬 서비스(?)의 의도가 강한 장면이다.

최근 송일국의 명품근육이 갑작스레 공개되며 화제를 불러 모았다. 그런데 그 기사들에는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의 주인공으로서의 송일국을 부각시켜 놓았다. '보석비빔밥' 후속으로 방영되는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의 홍보를 위해 송일국의 몸이 먼저 공개된 것이다. 반응은 나쁘지 않다. 남자들이 드라마에 출연해서 쓸데없이 상체를 드러내는 것에 대해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던 과거를 생각해보면 작금의 복근 노출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호의적인 편이다.

TV의 복근 노출은 드라마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너나 할 것 없이 다투어 복근을 노출한다. 아예 대놓고 "좀 보여주시죠"하는 MC의 요청과 거기에 대해 거리낌없이 옷을 들춰주는 토크쇼의 풍경은 이제 흔한 것이 되었다. 이른바 '찢택연'으로 대변되는 짐승돌들은 옷을 찢어가며 복근을 보여주는 퍼포먼스로 대중들을 사로잡았다. '승승장구'에 출연한 2PM의 준호는 멋지게 춤을 추는 것보다 한번 옷을 찢는 퍼포먼스가 더 대중들의 뇌리에 각인된다고 말한 바 있다.

물론 남성들의 복근 노출은 연예인의 몸에 대한 성 상품화가 여성에서부터 남성으로까지 넘어오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하지만 복근이라는 특정 부위는 이러한 단순한 의미 이상의 것들을 담아낸다. 이것은 과거 불쑥 나온 남자들의 배를 '인격(?)'이라고 부르던 시대와의 결별을 의미한다. 당시 권위주의적인 사회 속에서 남성들의 매력은 자기 자신보다는 배경으로 점수 매겨지곤 했다. 따라서 배가 나온 것은 '여유'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곤 했던 것.

하지만 배경 보다는 그 각자가 가진 고유한 매력으로 어필되는 작금의 상황에서 '인격'은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 이제 자기 몸을 관리하는 것이 더 중요하게 된 시대다. 사회가 축적하던 시대에서 이제는 소비하는 시대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못 먹어서 죽던 시대는 가고, 이제 많이 먹어서 죽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니 돈 많고 지위가 높을수록 오히려 자기 몸을 관리하는 데서 여유를 발견하게 된다. 즉 복근에는 이처럼 건강한 몸에서 연상되는 잘 관리된 삶의 태도(혹은 그렇게 관리할 수 있는 능력)가 투영된다.

이것은 작금의 대중들이 환호하는 남성과 여성들의 몸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태도다. 남성들의 복근처럼, 여성들의 이른바 '꿀벅지'는 이러한 건강한 몸에 대한 긍정적인 시선을 담고 있다. 과거처럼 남성들의 시선에 포획되어 억압받아온 바짝 마른 허벅지가 아닌, 스스로 건강한 허벅지의 노출이 잘 관리된 삶을 표상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복근 노출은 단지 성적인 의미만을 갖는 것이 아니라 이제 남성들의 삶까지 투영하는 매력의 상징이 되었다. 게다가 몸은 정직하게도 노력하는 만큼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어떤 진정성까지도 갖고 있다. 드라마에 내용과 상관없이 남성들이 복근을 드러내고, 가수들이 앞다퉈 옷을 찢으려는 것은 그 매력을 통해 자신들의 능력을 더욱 돋보이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연기나 노래 실력만큼 중요한 것이 그 사람이 가진 매력이 된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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