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이 담는 이별의 대물림과 연대하는 이웃들의 가치

 

연쇄살인범 까불이는 잡혔지만, 동백(공효진)은 용식(강하늘)에게 눈물의 이별을 고한다. 이것은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애초 용식이 까불이를 그렇게 잡으려 했던 이유가 동백이 떠나는 걸 막기 위해서였으니 말이다. 또 필구(김강훈)의 안전을 걱정해 친부인 강종렬(김지석)에게 아이를 떠나보낸 동백이 힘들어하는 걸 보고는 더더욱 빨리 까불이를 잡아 필구를 동백의 품으로 돌려보내려 했던 용식이었다. 그런데 이별이라니.

 

KBS 수목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이 보여주는 절절한 이별의 대물림은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만든다. 동백이 “이제 그만 헤어지고 싶다”고 하는 말에는 그간 그가 겪어온 삶의 고통이 묻어난다. 어려서 자신을 버리고 가버린 엄마와의 이별, 사랑했지만 점점 멀어져간 강종렬과의 이별, 편견 속에서 떠돌아 다녔던 자신처럼 여겨 보듬었던 향미(손담비)와의 이별 그리고 엄마의 혹이라는 소리를 듣고 엄마를 위해 떠나려 했던 아들 필구와의 이별.

 

이 이별이 대물림처럼 여겨지는 건, 그 근원이 가난으로부터 빚어졌기 때문이다. 너무 가난해 아이라도 살리고자 까무러칠 정도의 고통을 감수하며 아이를 버렸던 동백의 엄마 정숙(이정은)에서 시작된 이 이별의 대물림은 고스란히 동백으로 또 필구로 이어진다. 동백은 정숙이 자신을 버렸다고 말하지만, 자신 역시 필구를 위해 이별을 선택했다는 걸 알기에 그 엄마의 마음을 조금씩 이해한다. 이들은 상대방을 위해 이별을 선택한다. 정작 자신은 그 이별의 후유증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리지만.

 

어린 필구조차 그런 엄마를 닮아버린다. 그래서 동백의 눈치를 보고 용식을 만나는 엄마에게 자신이 혹이 되지 않기 위해 엄마를 떠난다. 하지만 끝내 아이는 그 속내를 숨기지 못한다. “엄마가 무슨 이제 결혼을 해. 엄마가 결혼하는 애는 나뿐이 없어. 엄마는 결혼이라도 하지. 나는 초딩이라 결혼도 못하고 군대도 못 가. 나도 사는 게 짜증나.”

 

결국 동백은 필구를 위해 용식에게 이별을 고한다. “연애고 나발이고 필구가 먼저”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용식에게 “여자로 말고 엄마로 행복하고 싶다”고 말한다. 이제 이 이별의 연쇄작용은 용식에게로 공이 넘어간다. 그는 너무나 동백을 사랑하고 이해하기 때문에 그 이별선언에 아무런 반박을 하지 못한다. 그저 같이 눈물 흘리며 이별을 받아들일 뿐.

 

<동백꽃 필 무렵>은 누군가를 위해 이별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그러면서 까불이 같은 살벌한 연쇄살인범의 존재만큼 우리를 힘겹게 만드는 게 무엇인가를 묻는다. 그건 가난이고, 거기서 비롯된 편견들이다. 그건 어쩌면 죽음보다 더 무섭고 아픈 고통일 수 있다고 이 드라마는 말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이 드라마는 이런 고통을 우리가 어떻게 버텨내며 살아가는가에 희망을 담는다. 그 힘겨운 상황들 속에서도 남아있는 인간으로서의 따뜻함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때론 지지고 볶으며 그 편견어린 시선에 나도 모르게 이끌리지만 그럼에도 같은 처지를 동감하며 지지하고 도와주려는 인간적인 마음이 존재한다는 걸, 동백이 겪는 고통과 그 주변사람들의 온기를 통해 전해준다.

 

“엄마 죽지 마. 콩팥인지 쓸갠지 내꺼 떼 주면 되잖아. 나 이제 헤어지는 것 좀 그만하고 싶어.” 엄마를 그대로 닮아가는 듯 보이는 동백이 쓸쓸해 보이는 엄마의 등을 쓸며 하는 이 말은 그래서 동백이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들린다. 자신이 자신을 보듬으면서 애써 버텨내려는 그 안간힘이 느껴진다. 그런데 이런 타인을 자신처럼 여기는 마음은 아마도 동백이 지금껏 버텨낼 수 있었던 힘이었을 게다.

 

<동백꽃 필 무렵>은 가난으로부터 비롯된 이별의 대물림을 보여주지만, 그 아팠던 이별이 자신을 위한 누군가의 더 아픈 선택이었다는 걸 마주하게 한다. 그래서 만날 수도 있고 헤어질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런 만남과 이별이라는 결과보다 중요한 것이 거기 담겨진 인간적인 이유라는 걸 보여준다. 또한 같은 사람으로서 그 아픔을 공감하고 그래서 타인이지만 연대할 수 있다는 희망을 말한다. 소소하고 작아 보이지만 이만큼 사람의 희망을 말하는 드라마도 없을 듯싶다.(사진:KBS)

‘동백꽃’, 퉁명스러워도 우린 남이 아니라는 건

 

“야 노규태 나 여기 있을 거야. 내가 밖에 있으니까 수틀리면 바로 나와. 뒤는 니 변호사가 책임질 거니까.” KBS 수목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향미의 살해 용의자로 지목되어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받는 노규태(오정세)에게 홍자영(염혜란)은 그렇게 퉁명스럽게 말한다. 그는 변호사로서 노규태와 함께 온 것이지만, 그 퉁명스러움 속에는 전 남편이었던 노규태에 대한 숨겨진 애정 같은 게 느껴진다. 밖에서 애타게 기다리며 당 떨어진다고 사탕을 꺼낼 정도로.

 

찌질한 노규태는 이 거짓말 탐지기 조사에 대한 두려움보다 아내 홍자영이 떠나간 것에 대한 후회가 더 크다. 그래서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자신의 마음을 전한다. 막판 세 개의 질문을 자신이 정하게 해달라 요청하고 그걸 물어볼 때 변호사도 참관하게 해달라는 것. 최향미와 애인 사이였냐는 질문과, 최향미의 모텔방에 들어간 적 있냐는 질문에도 “아니요”라고 답한 노규태는 “당신은 아내를 사랑하십니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한 후 속내를 털어놓는다. “예.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당신만을 사랑합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홍자영은 기막혀 하면서도 내심 안도한다. 먹으려 꺼냈던 사탕을 버릴 정도로.

 

이 짧은 시퀀스에는 <동백꽃 필 무렵>이 건네는 사랑과 정의 방식이 담겨진다. 어딘지 퉁명스럽지만 그래서 더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들의 표현 방식. 애초에 거짓말 탐지기 조사에 응한다고 했을 때부터 노규태는 이런 고백이 목적이었다는 게 드러난다. 왜 이런 조사에 응하냐며 화를 내는 홍자영에게서도 노규태는 담담히 말했다. “자영아. 죄 지었으면 벌 받겠지. 그냥 나 한 번 믿어봐.” 하지만 홍자영은 노규태를 물가에 내놓은 아이마냥 믿지 못하고 걱정한다. 막상 조사에 들어가면 어리버리할 것이 분명하다며. 노규태는 말한다. “당신 그래서 나 좋아했잖아. 당신 나 모성애로 좋아했지? 지금도 사고 친 자식 모른 척 할 수 없는 그런 마음이지? 미안해 당신 엄마 만들어서. 당신도 여자 하고 싶었을 텐데. 맨날 엄마 노릇하게 해서.”

 

퉁퉁대지만 그 안에 담겨진 은근한 마음의 표현은 <동백꽃 필 무렵>이 더 깊게 시청자들을 울리는 이유다. 이런 표현방식은 노규태와 홍자영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도처에서 활용된다. 동백이 박찬숙(김선영)에게 필구(김강훈)를 잠시 봐달라는 말을 힘겹게 말할 때 퉁명스럽게 쏘아대며 그 남다른 정을 전하는 박찬숙의 대사에서도 이런 방식이 보여진다. “얘. 너 너무 이렇게 예의차려도 정이 안가. 필구랑 준기랑 죽고 못사는 거 이 동네가 다 아는데 어떻게 이제야 처음으로 나한테 애 맡아달라는 소릴 햐? 그 소리를 뭘 그렇게 애를 쓰고 하고 자빠졌어?”

 

향미의 죽음을 알게 된 옹산 마을 사람들이 저마다 동백의 신변을 보호하려 나서는 모습들도 그렇다. 이 ‘소리 없이 봉기한 옹산의 장부들’을 담는 과장된 연출은 시청자들을 흐뭇하게 만들고 동백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든다. 번영회 핑계로 까멜리아를 가득 채운 옹산의 여자들의 모습에서 동백은 결국 훌쩍대며 고마운 마음을 꺼내놓는다. “그래서 저 지금 지켜주시는 거예요? 저요 옹산에서 백 살까지 살래요.”

 

이런 화법들이 전하는 진심은 그래서 더 뜨겁게 다가온다. 그리고 그건 <동백꽃 필 무렵>이 건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세상은 퉁명스러워 보이지만 그래도 우린 남이 아니고 그래서 살만하다고 이 드라마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슬쩍 꺼내놓고 있다.(사진:KBS)

좋은 작품과 캐릭터가 끌어내는 배우와의 시너지

 

좋은 작품과 캐릭터는 어쩌면 배우의 연기에 있어서는 가장 중요한 첫걸음이 아닐까. 그간 그리 주목받지 못했지만 작품 속 캐릭터와 만나 반짝반짝 빛나는 배우들이 있다. JTBC 월화드라마 <보좌관2>에서 시즌1에 이어 단단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 신민아, KBS 수목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인생캐릭터를 만난 손담비 그리고 JTBC 금토드라마 <나의 나라>에서 꽤 괜찮은 몰입을 보여주고 있는 김설현이 그들이다.

 

<보좌관2>에서 신민아의 연기가 새삼 돋보이는 건, 지금껏 그가 해왔던 캐릭터들과는 사뭇 다른 강선영이라는 초선의원을 만나면서다. 그간 로맨틱 코미디의 상큼발랄한 캐릭터만을 입어왔던 신민아였지만 이 작품에서는 사랑보다 일에 더 몰두하는 여성 정치인의 캐릭터를 만나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장태준(이정재)과 연인이면서 정치적 동지이기도 하지만, 자신만의 소신을 밀고 나가는 당찬 여성 정치인 강선영은 지금껏 봐왔던 신민아의 고정된 이미지를 깨주기에 충분했다. 좋은 작품이 좋은 연기를 끄집어낸 단적인 사례다.

 

<동백꽃 필 무렵>의 손담비 또한 마찬가지다. 아마도 이 작품에서 가장 큰 수혜를 입은 장본인으로 꼽히는 손담비는 향미라는 역할을 통해 인생 캐릭터를 만났고 인생 연기를 선보였다. 다소 맹한 얼굴로 무심하게 툭툭 던지는 그 대사들은 때론 섬뜩하게도 느껴지지만 그 이면에 존재하는 외로움이 슬쩍 드러나면서 시청자들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어려서부터 돌아갈 곳이 없던 그 부평초 같은 삶이 겨우 겨우 찾아든 동백(공효진)의 까멜리아에서 맞은 최후의 순간들은 시청자들에게 강렬한 여운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향미 역할에 손담비를 빼고는 생각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이 작품 속 캐릭터와 손담비는 맞춤옷처럼 잘 맞았다. 그리고 그 존재감 없이 자존감 없는 삶의 이야기는 마치 그토록 오래도록 연기를 시도해왔지만 이렇다 할 주목을 받지 못했던 손담비 자신의 이야기처럼 다가오는 면도 있었다. 이러니 인생 캐릭터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연기와는 사뭇 동떨어져 보였던 김설현 역시 JTBC <나의 나라>를 만나면서 연기자로서의 가능성을 보인 단적인 사례다. 서휘(양세종)와의 절절한 멜로는 물론이고 이화루라는 조직을 이끌어가는 수장으로서 만만찮은 카리스마를 가진 한희재라는 인물을 통해 김설현은 연기자의 기본이랄 수 있는 몰입의 경험을 하게 됐다. 아직 무르익었다 보긴 어렵지만 늘 연기력 논란에 시달리며 캐릭터와 자신이 겉돌던 연기가 일체되는 그 경험은 아마도 김설현에게는 향후 연기자로서의 행보에 소중한 자양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사실 제 아무리 연기력이 좋은 배우도 작품을 제대로 만나지 못하면 빛을 발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정반대로 아직 연기가 조금 서툴다 해도 그 연기를 200% 끄집어내주는 작품과 캐릭터가 있다. 그런 작품과 캐릭터를 만났을 때 비로소 그 연기자는 어떤 가능성을 경험하게 된다. 물론 중요한 건 그 이후다. 다음 작품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줬을 때 그 가능성은 비로소 확증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니.(사진:JTBC)

‘유퀴즈’이 찾아내는 우리네 서민들의 위대함, 그리고 공감

 

“제가 유퀴즈를 1년 넘게 했잖아요. 하여튼 이렇게 앞을 보고 있으니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인생에 정답이 없다고 하는데 우리 유퀴즈를 통해서 만나는 분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정답까지는 아니더라도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는 약간 이야기를 들으면서 많이 참고가 되는 것 같아요.”

 

tvN <유퀴즈 온 더 블럭>이 찾은 부암동 어느 한옥. 고종이 잠시 머물렀다는 그 곳에서 저 아래 풍광들을 내려다보며 유재석은 새삼 그간 이 프로그램을 해온 1년을 되새긴다. 유재석의 말 그대로다. 처음에는 낯선 길이었지만, 그 길 위에서 만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통해 참 많은 걸 배웠고 느꼈다. 그건 유재석만이 아니라 이 프로그램을 보는 시청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날 하루 부암동에서 만났던 일련의 사람들에게서도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의 결코 쉽지 않은 현실들을 읽어낼 수 있었다. 열혈팬이라며 과거 안쓰럽던 시절의 유재석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놨던 유명한 만두집에서 일한다는 서담희씨는 핸드폰 커버 안쪽에 빼곡하게 적혀진 메모로 유재석과 조세호의 시선을 끌었다. ‘최고가 되지 않아도 괜찮아’, ‘나 정도면 충분해’, ‘날 믿어주는 사람이 참 많아’, ‘나는 아직 소중한 기회가 많아’, ‘나는 혼자가 아니야’ 같은 글귀들이 적힌 메모지.

 

서담희씨는 그런 글귀들을 그저 읽고 지나치기보다 차라리 세뇌가 될 정도로 봐야겠다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핸드폰 커버 안쪽에 메모지로 붙여놓고 전화를 꺼낼 때마다 읽었다는 것. 웃는 얼굴이 그의 평소 삶의 태도를 잘 말해주고 있었지만, 서담희씨는 사실 홀로 굉장히 빈궁했던 시절의 기억을 갖고 있었다. 생계가 어려워 겨울에 온수도 제대로 쓰지 못했다는 서담희씨는 그 시절의 기억을 ‘깜깜한 터널 속을 벽만 짚고 걸어가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터널을 빠져나온 그는 이제 다시 긍정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또다시 그런 어려움이 닥쳐도 한 번 경험해본 것이니 괜찮다고 할 정도로.

 

길을 걷다 만난 산책을 하는 모자는 늦둥이 딸이 수학여행을 간 사이 데이트 중이라고 했다. 입만 열면 아들 자랑을 늘어놓는 어머니 때문에 유재석과 조세호는 물론이고 아들도 당황하는 티가 역력했다. 하지만 실제로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머니가 그렇게 아들 자랑하는 이유가 충분해 보였다. 어렸을 때부터 자기 마음을 들었다 놨다 했을 정도로 ‘여심저격수’라는 아들은 나이 터울이 있는 동생들을 그렇게 세심하게 챙긴다고 했다. 군대를 다녀오면서 어머니가 자신을 얼마나 챙겨주었는가를 알게 됐다는 아들은 제대한 후 알바를 하며 학교를 다닌다고 했다. 평범해 보이는 모자의 흔한 풍경이지만, 그렇게 서로서로 챙기는 가족이 있어 우리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닐까.

 

주말부부로 지낸다는 오진우씨와 이현주씨는 일 때문에 떨어져 지내지만 그래서 더 애틋해지는 마음이 있다고 했다. 삶의 속도에 관한 이날의 공식질문에 대해 오진우씨의 말이 의미심장했다. 시간의 흐름은 규정 속도보다 조금 빠르게 가는 것 같지만 자신의 삶의 속도는 천천히 간다는 오진우씨는 보통의 삶이 그러하듯이 뭘 했는지도 모르게 어느 순간 시간이 훌쩍 지나간 걸 느끼는 것 같았다. 젊었을 때는 “왜 그러고 살아? 하고 싶은 거 하면 되지?”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자신이 그 나이가 되니 그렇지 못하다는 거였다. 또 자신의 속도보다는 아이의 속도만 보며 살아가고 있다는 이현주씨의 말에서도 느껴지는 바가 있었다. 그것이 대부분의 부모의 삶이니.

 

도시가 내려다보이는 풍광이 아름다운 곳에서 햄버거와 콜라를 마시며 앉아있던 이규형씨는 취업 시험을 보고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힘들 때마다 그 곳을 찾아왔다는 이규형씨는 삼수를 하며 어려웠던 그 때를 이야기했다. 산에서 트럭에 어묵을 파시는 일을 했다는 어머니. 겨울에는 트럭 배터리가 방전되어 차갑게 식은 차 안에서 양말을 서너겹씩 신으시고 일을 했다는 어머니는 700원짜리 어묵을 팔아 한 달에 70만원인 자신의 미술학원비를 내주셨다고 했다. 그게 못내 죄송했다고 했다. 다행히도 합격 소식을 받았다는 이규형씨의 이야기를 들으니 어려워도 버텨나간 힘의 원천이 어디에 있었던가를 새삼 깨닫게 됐다. 어머니의 그 헌신 앞에서 애써 웃으며 노력했을 그의 모습이 생생했다.

 

<유 퀴즈 온 더 블럭>이 좋은 건 그 자연스러운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우리네 사회가 처한 결코 만만찮은 현실들을 발견하지만, 그 팍팍한 삶 속에서도 꿋꿋이 웃으며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서민들의 위대함을 찾아냈다는 점이다. 그런 분들의 이야기는 그 어떤 드라마나 영화보다 더 깊게 우리를 감동시키고 큰 위안을 준다. 또한 그건 바로 우리 옆에서 살아가는 분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우리에게 전하는 어떤 희망이 결코 적지 않다.

 

대학수학능력평가를 보는 수험생들에게 길거리에서 만난 분들이 하는 이야기에서는 그래서 깊은 진심과 삶의 내공이 느껴진다. “나침반이 많이 흔들린 후에 딱 그 곳이 북쪽이라고 알려줘요. 살아가며 흔들릴 일이 참 많지만 결국 방향을 찾게 될 거에요.(진명희)”, “마음 편하게 최선을 다하되 결과는 하늘에 맡기는 것(최병윤).” “안된다고 해도 수능이나 대학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니까 그런 과정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고 부담 없이 헤쳐나갔으면 좋겠어요.(이진경)” “너무 수고했고 너희들의 육년 삼년 삼년이 어떤 일을 했던지 간에 공부를 했던지 취업을 했던지 간에 여태까지 해왔던 게 하나도 허투루 된 것은 없었다는 그런 말을 해주고 싶네요(용길).”(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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