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듀’ 사태를 통해 보이는 국내 가요계의 기형적 구조

 

Mnet 안준영 PD와 김용범 CP가 구속되면서 <프로듀스X101> 사태의 윤곽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프로듀스101> 시리즈는 그 결과가 나올 때마다 잡음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 때마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의 당락이나 최종 합격이라는 게 모든 시청자들을 납득시킬 수는 없는 거라 여겨지며 넘어가곤 했다. 마지막까지 자신이 응원했던 연습생이 고배를 마시게 되도 그러려니 하며 받아들였던 건 그래서였다.

 

하지만 문제는 최종 결과에 의문을 가진 시청자들이 구체적인 수치가 일련의 배합으로 나타난다는 걸 찾아내면서다. 어느 정도의 개입은 있을 거라 심증을 갖고 있었고, 편집 정도를 통해 개입하는 건 ‘악마의 편집’이라 욕하면서도 시청률과 재미를 위해 그러려니 팬들 역시 받아들였지만 구체적인 조작의 수치가 등장하게 되면서 이는 더 이상 받아들여질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한 방송사의 보도에 따르면 결국 안준영 PD는 <프로듀스X101>과 전 시리즈였던 <프로듀스48>의 조작혐의를 인정했다고 한다. 다만 이전 시리즈의 조작혐의는 부인했다.

 

결국 어찌 됐던 조작은 사실로 드러났다. ‘국민 프로듀서’라는 시스템을 내세워 시청자들이 직접 뽑는다는 걸로 그 치열한 경쟁을 정당화했던 프로그램은 공정성 자체가 허구였다는 게 드러나면서 시청자들을 허탈하게 만들었다. 가장 큰 허탈감은 ‘공정성의 판타지’를 깼다는 점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결국 현실에 부재한 공정한 시스템을 프로그램이 판타지로서 제공하는 것으로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던 형식이다.

 

<슈퍼스타K2>의 허각 신드롬은 단적인 사례다. 실력이 있으면 그 어떤 조건과 상관없이 우승자가 나온다는 걸로 공정성의 판타지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현실과 마찬가지로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는 틀 역시 거래가 오고가는 현실을 드러냈다는 점이다. 대중들은 허탈해질 수밖에 없다. 현실은 물론이고 공정성을 내세웠던 가상의 프로그램조차 공정함이 없다는 걸 확인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어째서 Mnet은 이런 독배를 선택하게 됐는가 하는 점이다. 가장 큰 부분은 상업성이다. 사실 시청률이 두 자릿수를 기록하던 <슈퍼스타K> 초창기만 하더라도 Mnet은 굳이 이런 무리수까지 쓸 필요는 전혀 없었다. 방송 자체가 경쟁력이 있기 때문에 광고 매출 등으로 자체적인 수익성이 담보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디션 형식이 점점 퇴조하면서 수익성도 사라졌고 결국 <슈퍼스타K>는 폐지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때 수익성으로 들고 나온 게 기획사 연습생들을 출연시키는 <프로듀스101> 같은 아이돌 오디션이다. 어째서 아이돌이라는 새로운 출연자들을 무대 위에 세웠는가는 명백하다. K팝 아이돌을 꿈꾸는 연습생들이 부지기수로 늘었고, 이들을 키워내려는 기획사들도 우후죽순 생겨났다. 경쟁이 치열한 곳이니 오디션은 여러모로 수지타산이 맞는 틀이 될 수밖에 없다. <슈퍼스타K>처럼 일반인을 스타로 만드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본류는 그렇게 <프로듀스> 시리즈 같은 아이돌 연습생을 키우는 보다 상업적인 변종을 만들었다.

 

상업화된 판이 된 오디션 프로그램은 여러 욕망들이 투영되기 마련이다. 방송사는 최대한의 수익을 내려 했고 그래서 배출된 아이돌그룹을 어떻게든 오래도록 붙들어놓기 위해 계약서를 썼다. 기획사는 단 기간에 소속 연습생을 스타덤으로 올려 이를 통한 수익을 만들어내려 했다. 연습생들도 힘들지만 이 오디션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낼 기회를 가지려 했다. 그러니 상업화된 이 판에서 저마다의 욕망들은 갈등도 있었지만 맞아떨어지는 면도 존재했다. 적당한 조작(굳이 투표조작이 아니라 하더라도)은 그래서 알면서도 용인됐다. 실제로 이번 <프로듀스X101>의 참가자는 특정 기획사 밀어주기가 있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국민 프로듀서’라는 새롭게 탄생한 욕망의 변수가 또한 존재했다. 직접 뽑는다는 대의명분으로 등장한 이들도 프로그램이 어느 정도 편집 등을 통해 당락에 개입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 납득 가능한 비등점을 넘어서면서 결국 사안은 사건이 되었다. 최종합격자에 대한 의문 제기가 구체적인 수치에 의해 조작의심이 확증으로 드러나게 되자 자신이 참가자에게 쏟아 부은 정성과 욕망만큼 분노 또한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이 사안을 단지 갑을관계의 문제로 치부해 Mnet이 갑의 위치에서 만든 사건으로만 보면 문제의 핵심을 놓치게 된다. 그것보다는 방송사와 기획사 그리고 아이돌 연습생과 나아가 국민 프로듀서로 불리는 팬덤까지 모든 욕망이 결합된 상황이 그 배경을 만들어준 것이고, 그 위에서 범죄가 생겨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명명백백하게 잘잘못이 가려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만큼 이런 사태가 벌어지게 된 우리네 가요계의 기형적 구조를 다시금 들여다보는 것 또한 중요하다. 어쩌다 우리는 아이돌에만 이토록 집중하는 다양성이 사라진 가요계의 생태계가 만들어지게 된 걸까. 어째서 아이돌 이외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가수들이 저마다의 매력을 드러내며 성공할 수 있는 그런 다양성이 확보되지 않은 걸까. 방송사와 기획사의 비즈니스 관계로 움직이는 음악 방송의 편향은 물론이고 음원 순위 사이트의 문제까지 이번 사태와 무관치 않다는 걸 우리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게 아니면서 몇몇 구속으로 사태가 지나간 후 언제고 또 다른 사태를 만날 수도 있으니.(사진:SBS)

공식적 틀에 갇혀버린 tvN 드라마, 기획만 보인다

 

한때 잘 나가던 tvN 드라마가 어찌된 일인지 주춤하고 있다. tvN 월화드라마 <유령을 잡아라>는 애초 문근영의 주연작이라는 점과 지하철 경찰대라는 소재가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었지만 갈수록 기운이 빠져간다. 첫 회 4.1%(닐슨 코리아)의 높은 시청률로 시작했던 드라마는 매회 뚝뚝 떨어지더니 급기야 2.4%까지 추락했다.

 

이유는 첫 회에 끌어 모았던 주목을 드라마가 계속 이어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메인 스토리라고 할 수 있는 연쇄살인범 지하철 유령을 추적하는 이야기에 집중하기보다는 곁가지 스토리들로 매회 채워지고 있고 그 스토리들도 그다지 큰 몰입감을 주지 못하고 있다. 겨우겨우 유령(문근영)과 고지석(김선호)의 멜로 라인으로 이어가려 하고 있지만, 이 지하철 범죄 수사라는 공적 사안과 사적인 멜로의 결합은 어딘지 언발란스하게 느껴진다. 애초 기획과 소재는 그럴 듯했지만 빈약한 스토리가 만들어낸 결과다.

 

수목극으로 방영되고 있는 <청일전자 미쓰리>도 사정은 비슷하다. 사이다 풍자 코미디를 기대했던 시청자들은 퍽퍽한 고구마 현실로 가득 채워져 있는 드라마를 답답해하고 있다. 무엇보다 말단경리직원으로 있다 등 떠밀려 사장 자리에 앉게 된 이선심(이혜리)의 캐릭터는 누가 봐도 코미디 장르에 어울리는데, 스토리는 짠 내 나는 을의 위치에서 핍박받는 중소기업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어 시청자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 큰 문제다. 이 작품 역시 기대를 채워주지 못하는 미숙한 스토리 전개가 발목을 잡았다.

 

tvN이 <미스터 션샤인>이나 <아스달 연대기>, <호텔 델루나> 같은 작품들로 어느 정도 시청자들을 끌어 모았던 토일 시간대도 마찬가지다. <날 녹여주오>는 점점 관심에서 벌어져 이제는 1%대 시청률로 뚝 떨어져 버렸다. 지창욱이 주연으로 등장한 작품으로 이렇게 화제조차 안 되는 드라마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그나마 최근 tvN에서 화제성을 이어가고 있는 건 금요일 드라마 <쌉니다 천리마마트> 정도다. 하지만 <쌉니다 천리마마트>는 본래 웹툰 원작을 충실히 담아온 부분과 이를 과감하게 드라마화하겠다는 그 기획적 선택이 가장 주효했던 작품이다. 물론 연출이나 연기는 충분히 칭찬받을 만하지만 그래도 <쌉니다 천리마마트>의 성공이 tvN드라마의 기획 그 이상의 성취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은 이유다.

 

이렇게 tvN 드라마가 주춤하고 있는 사이 지상파 드라마들이 약진하고 있다. 월화에 새로 들어온 SBS <VIP>는 6.8%로 시작했던 시청률이 9.1%까지 올랐다. 불륜이라는 소재를 가져왔지만 우리네 사회의 위계구조를 VIP 전담팀이라는 특정한 직업군의 이야기를 더해 들여다본다는 점이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었다. 수목에는 KBS <동백꽃 필 무렵>이 신드롬을 만들고 있다. 6.3%로 시작했던 드라마는 입소문이 점점 퍼지더니 이미 18%를 넘겨서며 20% 시청률까지 기대하게 만들고 있다. 많은 드라마들이 물량공세에 도회적인 이야기들의 틀에 갇혀 있을 때 정반대로 촌스러움의 가치를 끄집어낸 역발상이 주효했다.

 

수목에 포진된 MBC <어쩌다 발견한 하루>는 시청률은 3%대에 머물러 있지만 화제성이 높은 드라마로 호평 받고 있다. 웹툰 속 캐릭터들에게 의식이 생겨나고 그래서 그 정해진 설정값(운명)을 넘어서려 노력하는 이야기는 판타지 설정이지만 현실적인 공감대까지 만들었다. 우리네 삶의 모습이 태생부터 정해진 설정값에 의해 움직이는 것과 그다지 다를 바 없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tvN 드라마가 이렇게 주춤하며 위기에 몰리게 된 건 어딘가 공식적 틀에 갇혀버린 느낌 때문이다. 이미 <위대한 쇼> 같은 전작들을 통해서도 느껴진 것이지만 창대한 기획 그 이상의 스토리의 완성도를 최근 방영된 tvN 드라마들은 보여주지 못했다. 적당한 스릴러나 코미디에 멜로를 더하는 방식은 과거 지상파 드라마들이 위기에 처하게 됐던 이유가 아니었던가. 애초 지상파에 밀리던 시절 tvN 드라마의 과감했던 그 선택들을 다시금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그게 아니라면 잠시 주춤하는 것이 아니라 어렵게 만든 위치가 무너지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니 말이다.(사진:tvN)

 

‘유퀴즈’, 이토록 짧게 삶의 위대함을 보게 해주다니

 

이건 마치 한 편의 감동적인 동화 같다.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어떻게 매번 이런 놀라운 분들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걸까. 서울 후암동 어느 골목길을 걷다 발견한 초등학교 바로 앞에 있는 작은 문방구 이야기다. 40년이나 된 문방구이니 어찌 이야기가 없을까마는, 남편을 2년 전 갑자기 여의고 홀로 그 곳을 지키고 계신 함범녀 할머니와 그 곳을 제 집처럼 드나들던 학교 아이들의 이야기는 마치 기적 같았다.

 

2년 전 갑자기 할아버지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시고 나서 가게 문을 닫을까 생각했던 할머니의 마음을 돌린 건 아이들이었다. 청소를 하다 발견하게 된 아이들이 남긴 쪽지. 거기에는 빼곡하게 아이들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할머니 너무 힘들어하시지 마시고 언제나 힘내세요(수민)’, ‘할머니 제가 문방구 많이 올게요. 힘내세요(예지).’, ‘할머니, 힘드시겠지만 열심히 지내세요!(별아)’, ‘할머니, 힘들어하시지 마세요 항상 밝게 웃고 힘내세요(서영)’, ‘슬퍼하지 마시고 힘내세요(하령)’, ‘할머니! 혼자 사셔도 힘내세요. 제가 많이 찾아갈게요(장연)’

 

할머니는 학생들을 부를 때 “우리 애들이”라고 표현하셨다. 아들 하나를 뒀지만 손주가 아직 없다는 할머니는 이 어린 학생들이 다 당신의 손주라고 하셨다. 애들이 너무나 따뜻하고 자신에게 잘한다고 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만든 빵을 갖다 주기도 하면서 자신을 좋아하고 따라주는 것 때문에 40년 동안 그 곳에서 일할 수 있었다고 한다.

 

40년을 일해 쉰두 살까지 된 졸업생이 가게를 찾아오기도 한다며 할머니는 최근 일이 다시 떠올라 울컥 하셨다. 찾아온 졸업생은 울면서 할아버지가 옛날에 잘 해줬던 이야기를 했단다. 김치찌개 끓여서 점심을 먹을 때면 막 찾아와 자기도 달라며 퍼먹던 애들이란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들어보니 할아버지가 생전 얼마나 주변 사람들을 챙기며 살아왔는가가 느껴졌다. 할머니는 늘 자기 건강만 걱정해주고 매일 아침 녹즙을 갈아주던 할아버지가 본인 건강 생각은 안했다며 마음 아파 하셨다.

 

할아버지가 쓰던 연장을 볼 때 가장 할아버지가 떠오른다는 할머니는 일하다 펜치를 보고는 눈물이 나서 혼자 막 울었다고 하셨다. 할아버지의 손때가 잔뜩 묻은 연장은 거기 그대로 남아있는데 할아버지가 없다는 사실 때문이란다. 하지만 연장에 담겨진 할아버지의 남다른 노력과 마음은 여전히 그 곳을 찾던 아이들의 가슴 속에 남았다. 아주 작은 일일지도 모르지만 친할아버지처럼 아이들을 들여다보고 있던 걸, 삼광초교 아이들도 알고 있었다.

 

은혁이는 어느 날 ‘오늘은 문방구를 쉽니다’라는 표지판을 보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걸 알았다고 했고, 조이는 처음엔 어디 가신 줄 알았는데 갑자기 없으시니까 깜짝 놀랐다고 했으며, 태희는 원래부터 알고 지냈던 할아버지인데 돌아가시니까 좀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아이들이 그렇게 생각한 건 평소 할아버지와의 자잘하지만 따뜻한 기억 때문이었다. 가은이는 뭘 떨어뜨렸을 때 할아버지가 주워 주였다고 했고, 서현이는 감기에 걸렸다며 마음으로 걱정해주셨다고 했다. 은석이와 우준이는 넘어졌을 때 일으켜주시고 밴드도 붙여주셨던 할아버지를 기억했다.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할아버지 이야기를 하면서 아이들에게 의외로 무거운 질문을 툭 던졌다. “죽음이라는 건 어떤 느낌이에요?” 그런데 아이가 한 답변은 놀라울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이 세상일을 다 한 거요! 자기가 땅에서 할 일을 다 한 거요” 재차 “할아버지는 그 할 몫을 다하고 떠나셨을까요?”라고 묻자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네! 충분히 하셨어요.”라고 답했다.

 

과연 우리네 삶이 누군가에게 저렇게 평가받을 수 있을까 싶었다. 나의 작은 배려가 깃든 말과 행동들이 누군가에게는 저토록 크게 자리할 수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었다.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그 할아버지에게 보내는 아이들의 마음을 담아 전해줬다. “이번 생에서는 할아버지가 저를 챙겨주셨고 만약에 또 만나게 되면 다음 생에서는 제가 할아버지 챙겨드릴게요(이가은).” “할아버지 저한테 잘해주신거 감사하고 다음에 또 뵙게 된다면 제가 더 잘 해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이동욱).”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뭔가 마음에 뭔가 빈 생각이 들었어요 할아버지가 전 지금까지 몰랐는데요 우리에게 많이 자상하게 해주셨던 걸 그 때까지 잘 몰랐던 거 같아요. 할아버지 하늘에서도 잘 계시길 바랍니다(박조이).”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유재석과 조세호는 주변 사람들의 작은 위로 하나가 힘겨운 삶에 크나큰 힘이 된다고 했다. 그것은 어쩌면 <유 퀴즈 온 더 블럭>이라는 프로그램이 길거리에서 만나는 분들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전하는 위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작고 소소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어떤 것보다 위대한 기적 같은 이야기들이 거기에는 넘쳐난다. 너무나 힘들어 살기 힘들어지는 세상 속에서 그나마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건 이런 실제 기적 같은 이야기들이 존재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건 <유 퀴즈 온 더 블럭>이라는 프로그램의 가장 중요한 가치이기도 할 것이다.(사진:tvN)

‘날씨의 아이’의 흥행실패, 과연 시국 때문 만일까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전작이었던 <너의 이름은.>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으로서는 이례적으로 370만 관객이라는 흥행을 거둔 감독이다. 국내에는 이미 그 작품 때문에 그의 전작들이었던 <언어의 정원>이나 <초속5센티미터> 등 또한 화제가 된 바 있다. 그래서일까. 이 영화에 투자한 영화사측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신작 <날씨의 아이>가 첫 주말에 약 33만 관객을 동원한 것에 적이 실망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 관계자는 공식 입장문까지 내놨다.

 

공식 입장문의 주요 내용을 보면 <너의 이름은>에 비해 <날씨의 아이>의 성적이 저조한 이유가 지금의 냉각된 한일관계 때문이라는 것이고, 이에 대해 안타까운 심경이 토로되어 있다. 물론 지금의 이런 시국이 이 작품의 성패에 영향을 준 건 사실일 게다. 아무래도 일본 영화라는 사실이 주는 막연한 부담감(?) 같은 것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첫 주말에 33만 관객을 동원한 것이 과연 실패라고 볼 수 있는지, 또 그 실패의 기준으로 <너의 이름은>의 흥행 성공을 내세우는 것이 온당한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작품으로만 보면 <날씨의 아이>는 전형적인 신카이 마코토 감독 스타일의 연출과 이야기 기법을 가져온 작품이다. ‘빛의 마술사’라는 지칭대로 빗방울 하나하나, 폭죽이 터지는 색감, 하늘의 풍경 등등이 만들어내는 감성들을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색채로서 화려하게 표현해낸다. 그래서 그 색깔에 빠져들면 단지 눈만 건드리는 게 아니라 보는 이들의 감성까지 건드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것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날씨의 아이>라는 날씨를 소재로 한 작품을 만든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이 작품은 세계적인 기상이변 같은 지구적 위기의 문제를 특유의 판타지적 기법으로 들여다보고 머리만이 아닌 감성으로까지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야망이 담겨져 있다. 하지만 그 기조에서 가장 중요해 보이는 건 날씨가 사람들의 감정을 좌지우지한다는 그 사실이고, 그것을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아니면 색채로 표현해내기 어렵다는 점이다.

 

영화는 충분히 재미있게 볼 수 있지만, 보는 이에 따라서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 특유의 감정 과잉 부분이 몰입을 오히려 방해한다고 느낄 수도 있다. 잔잔하게 흐르던 감정을 어느 순간 폭발시키고 그 상황에서 주인공들이 마치 구호를 외치듯 대사를 던지며 부감으로 거대한 도시나 자연으로 확장되는 그런 영상 연출과 음악이 이어지는 그 연출방식은 이미 <너의 이름은>에서도 충분히 반복되었던 것들이다. 그리고 그건 <너의 이름은>에서 큰 힘을 발휘한 연출이었지만, 이미 그것이 익숙한 관객들에게 비슷한 연출방식을 보이는 <날씨의 아이>가 그만한 효과를 발휘했을 지는 의문이다.

 

영화는 주관적 체험이고 그래서 그 반응은 상대적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영화의 흥행이란 객관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대중들의 주관적 판단에 의해 결정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날씨의 아이> 영화사측이 첫 주의 결과를 보고 내놓은 공식 입장문이 과연 공감할만한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공식 입장문에 담겨진 것처럼 영화사측은 ‘2019년 전 세계에서 가장 창의적인 감독 중 한 명의 작품’으로 <날씨의 아이>를 꼽고 있고 그래서 이 정도 성적은 일찌감치 실패이며 그 이유는 한일관계 때문이라 내놓고 있다.

 

물론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대단한 감독인 건 사실이지만, 모든 대중들이 영화사측처럼 생각하는 건 아닐 게다. 또 첫 주말에 33만 관객 수를 실패로만 보지 않는 관객도 있을 수 있다. 안타까운 건 알겠지만 자신들의 생각을 객관적 사실처럼 얘기하며 생각한 만큼 관객이 들지 않았다고 시국을 가져오는 건 너무 성급한 판단과 행동이 아닐까. 반드시 관객 수가 그 작품 완성도의 바로미터가 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사진:영화'날씨의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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