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위녀’, 김선아는 왜 돈을 얻고도 허망해진 걸까

“박복자씨, 당신은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난 처음부터 그걸 알았어요. 그렇기 때문에 나쁜 짓을 하면 행복할 수가 없는 거예요.” JTBC 금토드라마 <품위 있는 그녀>에서 우아진(김희선)은 박복자(김선아)에게 그렇게 말한다. 마침 박복자는 과거 호텔에서 우아진을 처음 봤을 때 그녀가 입었던 하얀 원피스를 자신도 만들어달라고 말하던 참이었다. 도대체 왜 박복자는 그 하얀 원피스에 집착하고, 우아진은 그런 그녀를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는 걸까.

'품위있는 그녀(사진출처: JTBC)'

화려한 장식이 들어간 색색의 원피스가 아닌 하얀 원피스를 입은 우아진. 아마도 박복자는 그런 우아진의 모습을 처음 접하며 거기서 우러나오는 ‘품위’를 자신도 갖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부모 없이 자라 버림받는 비천한 삶을 살아가는 자신과는 너무나 다른 그것. 하지만 도무지 자신을 가질 수 없을 것만 같은 가치. <품위 있는 그녀>가 그려내는 모든 사건의 시작이 바로 거기서부터였다면 박복자의 욕망이 그리 잘못된 것이라 말할 수는 없을 게다. 그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인지상정이니 말이다. 

하지만 박복자는 그 품위를 얻을 수 있는 것이 돈이라고 오해했을 게다. 거기서부터 비뚤어진 욕망이 비롯된다. 안태동을 유혹하고 그의 진심을 이용해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키려 했다. 그래서 결국 그녀는 안태동의 재산을 모두 가로채지만 결과는 어땠을까. 그것이 그토록 그녀가 원했던 우아진에게서 보이는 그 품위를 얻게 했을까. 

부유층의 동태를 그들의 집에서 일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감청함으로써 파악하고 이를 통해 그들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으려 하는 풍숙정의 오풍숙(소희정)은 절대로 박복자가 그 세계에 들어오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제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그녀는 여전히 ‘하류’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박복자 스스로도 넘치는 돈을 가졌지만 자신이 본래 얻으려 했던 그 ‘품위’는 얻지 못했다는 걸 깨닫는다. 결국 그녀는 우아진을 찾아와 그녀처럼 자신도 만들어달라고 애원한다.

우아진은 처음부터 박복자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아차린다. 그것은 그녀가 처음 우아진을 만났을 때 칸딘스키와 마티스를 알아보고 예술에 대한 어떤 동경 같은 걸 읽어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저 돈에 대한 욕망과는 다른 개인적 성취나 성장에 대한 동경 같은 것이었다. 물론 그것은 이내 돈에 대한 욕망으로 비뚤어지기 시작한다. 결국 우아진이 다시 박복자의 마음을 돌리는 순간에 칸딘스키와 마티스를 언급하는 대목은 그래서 중요하다. 그것은 애초에 박복자가 가졌던 본래의 마음으로 되돌리는 열쇠 역할을 하는 것이니까.

<품위 있는 그녀>는 첫 회에 박복자가 처참하게 살해당하는 장면으로 시작했다. 그런 장치를 만든 건 이 드라마가 그녀의 폭주 끝에 벌어진 살인사건이 있었고, 그 진범은 과연 누구일까 하는 궁금증을 계속 유지시키기 위함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이 장치가 가진 의미심장함은 ‘죽음’을 이 욕망에 대한 폭주 직전에 슬쩍 꺼내 보여줬다는 점이다. 

드라마가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는 지금, 우아진이 함께 하는 마음공부 모임에서는 저마다 유서를 써와 읽는 시간을 가진다. 결국 우리 모두는 죽는다는 것을 전제하고 바라보면 박복자가 가진 그 욕망의 허망함이 공감된다. 제 아무리 돈을 많이 얻었다고 해도 그것으로 삶의 ‘품위’가 얻어지는 건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삶의 품위란 죽음을 전제로 바라볼 때 그 삶이 얼마나 자신에게 진심어린 삶이었는가를 통해서만이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안태동 회장의 집은 그런 점에서 보면 욕망의 허위로 가득 채워진 곳이다. 그 곳에는 주인들도 혹은 일하는 사람들도 똑같이 그 욕망의 수레바퀴 안에서 휘둘린다. 박복자는 그 부유함이 삶의 품위를 가져다 줄 것이라 생각하고 그 세계 속으로 뛰어들지만 그것은 욕망의 수레바퀴에 휘둘리는 일일 뿐이라는 걸 엄청난 재산을 얻은 후에 돌아오는 허망함 속에서 깨닫는다. 우아진은 그 세계 속에서 그나마 자신을 지키며 살아오던 인물이지만 남편의 불륜을 알게 된 후 그런 삶이 그 속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고 탈출하는 인물이다. 결국 우아진은 홀로서고 그 누구와 비교되지 않는 자신만의 삶에 충만함을 느낌으로써 품위를 얻는다. 

<품위 있는 그녀>가 남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건 이 안태동 회장의 집에서 벌어지는 욕망과 진정한 삶 사이의 긴장감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누구나 느끼는 갈등 상황이라는 점이다. 누구나 강남의 부유층들이 살아가는 삶을 막연히 동경하고 그래서 그렇게 살기 위해 돈을 벌려고 하지만, 그들의 실제 삶이 과연 동경할만한 것인가 그리고 그 품위라는 것이 돈으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질문을 이 드라마는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그래서 막바지에 이른 <품위 있는 그녀>에서 궁금해지는 건 박복자를 누가 살해했는가 하는 그 의문이 아니다. 그것보다는 박복자가 그 세계 속으로 들어와 죽음에 이르기까지 느끼는 감정의 동요와 변화들이 어떠했는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그 죽음의 끝에서 그녀는 과연 진정한 삶의 품위가 무엇인가를 깨닫게 될까. 그래서 그녀가 동경하던 우아진의 삶이 사실은 외부가 아닌 자신의 내면에 존재했다는 걸 알게 될까. 칸딘스키와 마티스를 동경하던 그 마음 속에.

웃음 넘어 감동까지, 최고의 위치서도 최선 다하는 잭 블랙

순간 잭 블랙이 한국 사람은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긴 하지만 <무한도전> 출연자들과 언어나 문화의 장벽은 분명히 존재했다. 하지만 잭 블랙은 등장하자마자 1년 7개월 전 <무한도전> ‘예능학교 특집’에 출연했던 그 순간의 친밀함으로 다가왔다. 다 함께 발을 동동 굴리며 위로 뛰는 모습을 연출했고 누군가 어떤 동작이나 리액션을 요구하면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걸 열심히 해주었다. 언어 따위는 필요 없는 그의 친근함에 거리감은 사라졌고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주는 웃음은 그 이상의 감동까지 느끼게 했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특히 춤과 한국어를 그대로 따라하는 능력은 <무한도전> 출연자들을 모두 놀라게 만들었다. 덩치에 걸맞지 않게 날렵하고 귀여운 모습을 보여준 잭 블랙은, <무한도전> 출연자들의 춤을 복사 수준으로 척척 따라했고, “고마해라 마이 묵었나 아이가” 같은 대사를 진짜 한국 사람처럼 따라했다. 그러니 언어나 외모, 문화적 차이 같은 것들은 순식간에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지난 <무한도전> 출연 당시에도 화제가 됐었던 ‘고요 속의 열창’ 게임을 통해 잭 블랙은 놀라운 표현력을 보여줬다. 소리를 그대로 복사 수준으로 따라 부르면서 그 노래가 가진 특징들을 정확히 표현해냈다. 그건 그저 ‘노래 따라하기’의 남다른 능력이라기보다는 연기자로서의 표현능력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마치 진짜 임재범이 된 듯 완벽하게 불러내는 ‘고해’는 그가 얼마나 재능 있고 또한 노력하는 연기자인가를 잘 보여줬다.

사실 이번 <무한도전>이 잭 블랙을 만나게 된 건, 정준하 밀어주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미드 출연’ 미션을 수행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사전에 출연자들 각자 셀프 테이프를 준비해 할리우드에 보낸 <무한도전>은 오디션을 보기 위해 직접 LA로 날아갔던 것. 잭 블랙 출연은 그 오디션을 사전에 경험하게 해주기 위한 깜짝 ‘몰래카메라’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잭 블랙이 워낙 열심히 <무한도전> 출연자들과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여줘, 그것 자체가 ‘잭 블랙 특집’처럼 느껴지게 했다. 

중요한 것은 잭 블랙이 보여준 이러한 프로정신이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는 전 세계가 이미 인정하는 최고의 위치에 서 있는 배우지만 <무한도전>에서는 그저 친근한 ‘잭 형’의 모습이었다. 순식간에 모든 걸 내려놓고 <무한도전> 출연자들과 어우러졌고 우스꽝스런 동작과 표정연기, 말 따라 하기 같은 것들을 끊임없이 내놓으며 웃음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 열정과 노력에 <무한도전> 출연자들도 감복했다. 박명수는 “정말 또 많은 걸 배워간다”고 했고, 유재석은 “정말 우리의 선생님이다”라고 말했다. 

한때 <무한도전>은 ‘대한민국 평균 이하’라는 캐릭터를 내세워 주어지는 모든 것들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봅슬레이부터 프로레슬링 같은 실제로 도전하기 어려운 미션들까지 해내는 그 프로정신은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래서 시작점은 실제로 ‘대한민국 평균 이하’였지만 11년을 달려오며 어느새 ‘최고의 위치’에 서게 됐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건 바로 이 ‘최고의 위치’에 선 이후에도 멈추지 않는 프로정신이 아닐까. 

사실 스테판 커리가 나왔던 지난 주 미션 이전까지만 해도 <무한도전>은 어딘가 너무 느슨해진 느낌이 있었다. 몇 회간 새로운 기획의 참신함을 찾기가 쉽지 않았고 그래서인지 시청자들의 반응도 그리 호의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지난 주 스테판 커리가 등장해 <무한도전> 멤버들과 함께 한 농구경기는 충분한 재미와 의미를 남겨주었다. 그리고 이어진 ‘LALA랜드 특집’ 역시 잭 블랙의 출연과 더불어 이들의 새로운 도전이 남달랐던 한 회가 아니었나 싶다. 

무엇보다 잭 블랙이 보여준 ‘최고의 위치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무한도전> 출연자들에게도 어떤 자극제가 되어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잃을 게 없는 ‘평균 이하’에서 최선을 다하는 건 어쩌면 쉬운 일일 수 있다. 오히려 모든 걸 다 가진 최고의 위치에서도 과거와 다를 바 없이 최선을 다할 때, 그 프로정신은 단지 웃음 그 이상의 가치를 전할 수 있다는 걸 잭 블랙은 보여주었다.

‘팬텀싱어2’, 세상은 넓고 숨은 실력자들은 넘쳐난다

1월에 종영한 <팬텀싱어>는 겨우 반 년 만에 시즌2로 돌아왔다. 사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시즌 기간으로는 짧게 느껴지는 공백기다. 약 7개월여 만에 방송이 되는 것이지만 사전 녹화를 생각해보면 6개월도 안 되는 기간 만에 돌아온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조금 이른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올 법하다. 

'팬텀싱어(사진출처:JTBC)'

하지만 제작발표회에서 김형중 PD가 밝힌 것처럼, JTBC 예능 프로그램 <팬텀싱어>가 이렇게 빨리 시즌2로 돌아온 데는 그만큼 충분한 실력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라는 걸 단 첫 회 만에 확인할 수 있다. 김주택 같은 이태리에서 날아온 이미 세계적인 러브콜을 받는 바리톤이 출연하는가 하면, 독일에서 건너온 베이스 바리톤 김동현 같은 인물도 있었다. 또 조민규 같은 독특하면서도 매력적인 보이스를 가진 테너도 있었고, 연기력까지 겸비해 무대장악력으로 눈길을 끈 바리톤 권성준도 있었다. 

흥미로운 건 이들의 다양한 출신과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 사연들이다. 사실 조민규 같은 희소성 있는 목소리는 시청자들의 귀를 사로잡기에 충분했지만 오페라에서는 너무 날렵한 음색 탓에 혹평을 듣기도 했다고 한다. 여기에 대해 윤종신은 <팬텀싱어>는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관객에게 감동을 주기만 하면 된다며 그 목소리를 칭찬했다. 이런 점은 <팬텀싱어>가 왜 존재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미를 드러내줬다. 기존의 틀에서는 어울릴 수 없어도 크로스오버를 통한 새로운 틀을 추구하는 <팬텀싱어>에서는 그것이 색다른 신선함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

또한 김주택 같은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페라 바리톤이 <팬텀싱어>에 출연하게 된 사연도 흥미로웠다. 그 역시 많은 고민을 하고 내린 결정이라는 <팬텀싱어> 출연에는 여러모로 오페라라는 대중들에게는 조금은 멀리 떨어진 장르를 보다 친숙하게 알리고픈 마음이 느껴졌다. 제 아무리 좋은 오페라라고 해도 관객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그의 말은 그가 부담스런 오디션에 참여한 중요한 이유였다. 

조민규나 김주택, 김동현 같은 제대로 성악을 배운 이들의 무대는 자못 제대로 배우지 않은 아마추어들에게는 굉장한 부담감으로 작용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팬텀싱어2>에 출연한 아마추어들은 프로들마저 놀라게 할 정도의 실력을 보여주는 반전을 만들었다. 그 대표적 인물이 시즌1의 ‘성공한 덕후’라고 자칭한 최진호와 평범한 회사원인 강형호였다. 

최진호는 부담감에도 불구하고 슈베르트의 결코 쉽지 않은 곡을 너무나 편안하게 소화해내 심사위원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고, 강형호는 <오페라의 유령>의 ‘더 팬텀 오브 디 오페라’(The pantom of the opera)를 남녀 파트를 넘나들며 불러 듣는 이들을 소름 돋게 만들었다. 특히 강형호는 때론 부드러운 여성적인 보이스로 때론 강렬한 남성적인 보이스를 모두 소화해내 중창단에서 다양한 색깔이 가능한 인물로 급부상했다.

즉 시즌2는 시즌1의 성공으로 인해 더 강력한 출연자들이 모여든 것으로 보인다. 해외에서 넘어온 세계적인 실력파가 있다면 그들조차 감동받는 발굴되지 않은 원석의 아마추어들도 있었고, 독특한 목소리 때문에 각 분야에서는 주목받지 못했지만 크로스 오버를 추구하는 <팬텀싱어>에는 최적화된 인물도 있었다. 결국 <팬텀싱어> 같은 음악 프로그램의 핵심은 다양한 출연자들에게서 나온다는 점을 두고 보면 시즌2가 시즌1보다 훨씬 더 기대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음악적으로도 시즌1이 주로 이태리 음악에 치중되었다면 이번 시즌2는 첫 방송에서부터 러시아 음악은 물론이고 독일 가곡 같은 또 다른 매력을 드러내는 레퍼토리들이 등장했다. 출연자들도 다채롭고 레퍼토리 또한 다양해진 <팬텀싱어2>. 왜 서둘러 시즌2로 돌아왔는가가 이해되는 대목이다.

‘삼시세끼’, 산양유 하나로 이런 훈훈한 정경이라니

왜 하필 바다목장이었을까. tvN 예능 프로그램 <삼시세끼>에서 나영석 PD는 바다목장을 굳이 마련한 이유에 대해 “낚시에는 영 소질이 없어서”라고 했다. 하지만 그건 아마도 반은 진담 반은 농담이었을 게다. 낚시라는 소재가 방송에서는 물론 들인 시간에 비해 나오는 분량은 적을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무언가를 낚는다는 그 사실이 주는 즐거움이 있고, 그 낚은 걸로 삼시 세끼를 챙겨먹는 이 프로그램이 또 잘 어울린다는 건 이미 첫 번째 <삼시세끼> 어촌편에서 차승원과 유해진이 보여준 바 있다. 

'삼시세끼(사진출처:tvN)'

그러니 낚시 그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어떤 새로운 그림을 원했다는 게 더 맞을 게다. 저 멀리 바다가 보이는 목장에서 시청자들에게도 익숙한 잭슨 패밀리가 여유롭게 풀을 뜯어먹는 풍경. 그리고 그 젖을 짜는 특이한 체험만으로도 ‘어촌편’의 남다른 그림이 되어줄 테니까.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다. <삼시세끼> 바다목장편은 여기에 룰을 하나 더 추가했다. 그들이 짠 산양유를 제작진에게 파는 것이 아니라 마을 정자에 마련된 잭슨살롱 냉장고에 넣어두는 것. 득량도 마을 어르신들을 위한 프로그램 제작진들의 고마움의 표시인 셈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이렇게 마을 분들이 자연스럽게 모여드는 정자에 냉장고 하나 마련해 놓고 매일 짠 산양유를 제공해드리는 것뿐인데, 그것 하나가 가져오는 파급효과는 의외로 크다는 점이다. 자연스럽게 산양유를 냉장고에 넣기 위해 가는 길에 마을 분들과 출연자들은 교감하게 된다. 게스트로 온 한지민은 자전거를 타기 위해 내려가서는 어르신들에게 산양유 드셔봤냐며 맛은 어떻냐고 묻는다. 그 짧은 장면 속에서 어르신들의 훈훈한 정 같은 것들이 느껴진다. 

급기야 옆집 아저씨는 별거 아니라는 듯 비닐봉지로 둘둘 싼 걸 냉장고에 넣어두며 “산양유 값”이란다. 시골 마을에서 이처럼 음식을 주고받는 일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산양유를 맛보신 어르신들이 그냥 넘어갈 리가 만무다. 마을 분들은 김치도 넣어주고 잡은 게나 소라도 넣어준다. 출연자들에게 이런 의외의 득템은 이번 <삼시세끼>의 색다른 행복감이 될 수밖에 없다. 마을 분들에게는 대단한 것이 아닐지 몰라도 받는 입장에서는 굉장히 큰 무언가를 받은 느낌. 그건 바로 정이다. 

그렇게 받은 게나 소라가 <삼시세끼>의 밥상 위로 올라온다. 한지민이 마음을 졸여가며 정성을 다해 만든 해신탕에 마을 분이 준 게와 소라가 한 자리를 차지한다. 시청자들로서는 그런 밥상의 풍경 자체가 따뜻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다음번에는 또 어떤 분이 산양유 값이라며 무엇을 넣어주실 지가 궁금해진다. 이 정자에 마련된 ‘잭슨살롱’은 그저 냉장고가 아니라 마을 분들과 외지에서 온 출연자들, 제작진들 사이에 오고가는 마음이 나눠지는 공간이 된다. 

도시에서 살다보면 음식을 먹는 일이 너무 편의적이고 기능적으로 되기 마련이다. 그만큼 바쁘고 모든 음식들이 돈을 주고 사고파는 어떤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돈으로 환산되는 세계에서 인간적인 따뜻함이나 마음 같은 걸 느끼기는 어렵다. 그런 점에서 물건과 물건의 교환이 아니고(물건과 돈의 교환은 더더욱 아닌) 마음과 마음의 교감이 되는 잭슨 살롱이라는 공간이 주는 로망은 도시인들에게는 의외로 크게 다가온다. 

그렇게 음식을 주고받으면서 나눠진 마음 때문일까. 한지민이 화투 치는 동네 어르신 옆에서 살갑게 말을 붙이고, 그녀가 자전거를 타는 모습을 보며 마치 물가에 내놓은 자식을 보는 듯 걱정 한 가득, 대견함 한 가득을 드러내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남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작은 섬이지만 득량도의 이 동네에 드리워지는 한 가족 같은 포근함. 모든 게 돈으로 환산되는 도시의 삶에서는 도무지 느끼기 어려운 그런 것이 그 안에는 담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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