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끼줍쇼’, 왜 이경규가 요즘 대세인지 알겠네

요코하마에서 한인 찾기. 조금 과장을 더해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만큼 힘든 일일 수 있다. 한인촌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라 일일이 초인종을 눌러 사는 분이 한국인인지 확인을 해야 한다. 물론 이경규가 과거 몇 개월 일본에서 생활한 적이 있어 일본어를 조금 하지만, 그래도 익숙지 않은 그 일본어로 의향을 물어야 한다. 게다가 이곳은 일본이다. 좀체 속내를 보이지 않는 그 성향처럼 문도 잘 열어주지 않는 곳. 

'한끼줍쇼(사진출처:JTBC)'

JTBC 예능 프로그램 <한끼줍쇼>가 여름특집으로 요코하마를 저녁 한 끼를 함께 할 미션지로 선택한 건 그래서 조금은 무리해 보인다. 도움을 줄 수 있는 일본어가 능숙한 밥동무를 기대했지만 그런 기대는 이내 사라져버렸다. 망원동에서 했던 그 실패의 기억을 이경규와 강호동은 떠올렸다. 일본에 와서 하게 되는 ‘초심 특집’이 아니냐고 투덜댔다. 

사실 강호동은 이번 미션에서는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그것은 일본어를 잘 모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길바닥에서 아무나 붙잡고도 쉽게 친해지던 그 즐거운 ‘소통병’은 낯선 요코하마의 거리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그래서 아예 대놓고 그는 이번 특집이 ‘이경규 특집’이라고 자꾸만 내세웠다. 그에게 부담과 책임을 모두 지움으로서 나올 수 있는 결과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는 전략을 나름 새웠을 것이다. 잘되면 기적 같은 일이 되고, 잘 안 되도 충분히 그 노력과 도전의 의미를 찾을 수 있으니. 

이경규는 의외였다. 보통 이런 부담과 책임감을 늘 피하려는 모습으로 방송에서 자주 비춰졌고, 스스로도 ‘날방’을 하나의 콘셉트로 표방하곤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낯선 타지에서 온전히 방송을 이끌어갈 수 있는 이가 자신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된 이경규는 지금까지와는 너무나 다른 열정을 보여줬다. 40도에 가까운 폭염 속에서 한인들이 사는 곳을 찾기 위해 일본인들에게 묻고 또 물었고, 그래서 어찌 어찌 찾게 된 한인 음식점과 부동산을 통해 한인들이 대체로 어디에 사는 지를 알아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때부터였다. 일일이 맨션의 초인종을 눌러 확인하지만 아예 한인을 찾기가 어려웠던 것. 끊임없이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며 실패의 실패를 거듭한 끝에 겨우 만나게 된 한국인 아줌마는 그래서 한국말 하나, 또 문을 열어주었다는 그 자체로 감동이 아닐 수 없었다. 마치 인연이 되려고 했던 것인지, 마침 김치수제비를 만들고 있었다는 아줌마는 그 소박한 저녁을 함께 나누며 타지에서의 생활이 주는 고충과 그러면서도 굳건히 버티며 밝게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줬다.

최근 이경규는 새로운 전성기를 맞아 그를 부르는 여러 지칭들을 갖게 됐다. ‘예능 대부’라고 불리기도 하고 ‘갓경규’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지칭들이 대부분 의미하는 건 오랜 세월 예능의 중심에 서 있었기 때문에 그가 갖고 있는 노하우와 경륜 같은 것들이다. 그렇지만 <한끼줍쇼>가 보여준 건 이경규가 지금 다시 전성기를 맞은 것이 단지 오래 하면서 갖게 된 노하우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늘 날방을 내세우곤 했지만(물론 어떤 프로그램에서는 실제로도 그렇고 그게 웃음을 주기도 한다) 그 깊숙한 곳에 담겨져 있는 진정성이나 열정 같은 것들이 이번 <한끼줍쇼>에서는 느껴졌다. 그래서 요코하마에서의 이경규에게서는 웃음보다는 땀이 더 많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예전 같으면 결코 가지 않았을 정글 같은 곳에도 그가 이제는 들어가 생고생을 자처하는 게 새삼스럽게 보인다. 오래도록 그를 정상의 위치에 있게 해준 건 그저 재능과 끼만이 아니라는 걸 이번 <한끼줍쇼>는 제대로 드러내줬다.

‘학교 2017’, 학교가 부조리한 현실의 축소판이라는 건

이걸 어떻게 청소년 드라마라고 볼 수 있을까. KBS 월화드라마 <학교 2017>은 어른들이 불편한 드라마다. 학교라고는 해도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그대로 우리네 부끄러운 현실의 축소판이기 때문이다. 성적으로 줄 세우는 학교. 그래서 공부를 못하면 더 이상 다닐 수 없는 곳이 되어버린 학교. 심지어 공부를 못한다고 문제아가 되는 이 학교의 시스템은 가진 것 없는 서민들이 사람 취급 받지 못하는 현실 그대로다. 

'학교2017(사진출처:KBS)'

끝없이 이어지는 시험과 그렇게 나온 결과를 버젓이 벽보에 붙여 자신의 등수를 확인시키는 이 학교에서 은호(김세정)는 성적이 바닥이다. 공부에는 영 재능이 없지만 이 아이는 웹툰 작가가 꿈이다. 하지만 학교는 이 아이의 꿈 따위는 소중하게 바라봐주지 않는다. 애써 그려온 습작노트를 보고 그 꿈의 등을 두드려주지 못할망정, 선생님은 그 노트를 빼앗아가 버린다. 소중한 노트를 찾기 위해 교무실에 몰래 들어가게 된 은호는 마침 그곳에서 불을 지르고 있는 의문의 인물을 목격하고, 오히려 자신이 그 범인으로 몰려 퇴학 위기에 처한다. 

학교는 범인을 찾기보다는 희생양을 찾으려 한다. 범인 잡기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이른바 학교의 권위를 세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은호가 범인이라는 증거가 없음에도 그녀를 범인으로 몰아세운다. 가난하고 공부도 못하는 은호는 희생양으로서 최적의 인물이 된다. 제자를 구제하려는 담임선생님의 노력은 무시된다. 결국 그렇게 제자가 퇴학당할 위기에 처하게 되지만 선생님과 그녀와 아빠 같은 힘없는 어른은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하는 자신들을 자책한다. 

학교 바깥은 더 살벌한 현실이라는 것을 선생님들조차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학교가 그 현실로부터 학생들을 보호해주기는커녕 오히려 공부 못하는 학생들을 바깥으로 내몬다. 과연 이건 학교라는 곳이 해도 되는 일일까. 학교가 너무 쉽게 아이들을 바깥으로 내몬다는 담임선생님의 한탄 속에 우리네 현실의 부끄러운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여기서 이 학교라는 단어를 사회로 바꾸면 그 굴러가는 시스템이 완벽하게 똑같다는 걸 우리는 알 수 있다. 공부를 못하면 있을 수 없는 곳이 학교라지만, 그 공부 또한 어떤 부모를 만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우리네 현실이다. 고가의 학원을 보내고, 심지어 족집게 과외를 시키는 부모의 아이들이 학교의 상위권을 형성하고, 그 부모들은 자기 자식들만을 위한 학교가 되게 하기 위해 영향력을 행세한다. 가진 것 없는 집의 아이들은 소외될 수밖에 없다. 

범인으로 몰린 은호에게 공부를 못한다며 그래서 문제아라는 선생님의 지적이 이어지고, 청문회를 예로 들어 결국은 사실대로 다 불게 되어 있다며 몰아세우자, 은호가 오히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이들이 모두 수재였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장면은 그래서 따끔하다. 그렇게 부조리한 시스템에서 자신만 살아남으면 된다는 걸 몸으로 체득하며 자라나 이른바 성공이란 걸 한 어른이 어찌 제대로 사회에 기여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학교 2017>은 그래서 그저 청소년 드라마가 아니다. 그 청소년들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우리네 현실의 축소판이고, 그런 학교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바로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라날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다 청소년 드라마가 풋풋한 꿈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이런 살벌한 현실을 담게 되었을까. 그것이 우리네 학교의 현실이기 때문이겠지만.

‘집밥3’, 지금 백종원에게 필요한 건 일반인과의 소통

tvN 예능 프로그램 <집밥 백선생> LA특집에서 백종원이 한 요리 중 가장 빛난 건 아마도 한 교민의 가정집에서 한 짠지냉국이 아니었을까. 사실 가장 쉽게 만든 요리가 바로 짠지냉국이었다. 짠지를 그저 잘게 자른 후 물을 붓고 고명으로 파를 얹은 것이 요리의 끝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냉국을 먹어본 교민은 이내 먹먹해졌다. 오랜 타지에서의 생활로 잊고 있던 고향의 맛이 새록새록 떠올랐기 때문이다. 

'집밥 백선생(사진출처:tvN)'

그것은 ‘군내’라고 불리는 젊은 세대들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맛이지만, 나이든 세대에게는 어릴 적 먹던 기억이 새록새록 돋아나는 맛이었다. 결코 자극적이지도 또 화려하지도 않은 맛이지만 먹다보면 조금씩 찾게 되는 맛. 느릿느릿 시간을 두고 묵혀져 은근하지만 오랜 여운을 남기는 그런 맛. 짠지냉국이라는 어찌 보면 너무나 단순한 요리는 그래서 LA특집의 가장 큰 수확물로 남았다. 

그런데 만일 이 짠지냉국을 평소에 <집밥 백선생>이 하던 대로 스튜디오에서 제자들과 만들어 먹었다면 어땠을까. 거기에서 어떤 감흥을 느끼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즉 이 짠지냉국이 어떤 감동을 주는 맛으로 다가올 수 있었던 건, 바로 거기 그 맛이 고향의 맛으로 다가오는 교민이 있었기 때문이다. 맛이란 이처럼 일반화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맛이고 누군가에게는 심지어 싫어하는 군내에 불과한 것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눈물 나는 것. 그것이 맛의 실체다. 

그리고 이것은 <집밥 백선생>이 시즌3까지 이어오며 해왔던 쿡방 전도사로서의 ‘일반화된 맛’이 또한 갖게 되는 한계를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그간 양념이 과하다는 비판이 가끔 등장하기도 하고, 그래서 양념은 각자 입맛에 맞게 그 양을 조절하라고 굳이 백종원이 얘기를 했던 건 바로 맛의 일반화가 갖는 오류를 넘어서려는 노력이기도 했다. 

‘만능간장’으로 대변되는 백종원 쿡방의 가장 큰 장점은 누구나 쉽게 ‘어느 정도의 맛’을 내는 ‘일반적인 맛의 공식’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밥 백선생>에 남는 아쉬움은 그 공식이라는 것이 갖는 한계로 인해 비판의 소지 또한 감수해야 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번 LA특집은 이런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의외의 발견이 되지 않을까. 그것은 저마다 다를 수 있는 맛의 체감을 인정하고, 다양한 일반인들과 어우러지는 일이다. 교민이 참여했던 것처럼 일반인들이 가진 맛의 기억과 어우러지는 쿡방. 그래서 백종원이 일반적인 맛을 제안하면서도 그 특수성을 찾아 어떤 맛의 공감대를 추구하는 그런 방식으로의 진화가 가능하다는 걸 이번 LA특집이 말해주고 있었다.

쿡방이 범람하고 레시피 또한 넘쳐나는 시대에 백종원의 신 생존법으로 제시되는 건 그래서 일반인과의 소통이다. 지금껏 스튜디오 안에만 머물렀다면 이제는 일반인들이 사는 현장으로 다가갈 필요가 있다. 거기에 더 다양한 맛의 세계가 존재하고, 무엇보다 그들의 삶의 이야기들이 맛으로 녹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백의 신부’, 코미디로 무장하고 있지만 그 속내는

“중증 강박장애였을 거에요. 완전무결을 위한 강박. 피해망상. 박상철 그 사람 계속 나를 만나고 싶어 했어요. 마지막 구조신호였을 거예요. 마봉열씨도 그렇고 이번 일도. 의사인 내가 봐야할 걸 보지 않고 들어야 할 걸 듣지 않아서 생긴 일들일까요?” tvN 월화드라마 <하백의 신부 2017>의 윤소아(신세경)는 하백(남주혁)에게 정신과 의사로서 환자들의 아픈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 자신을 그렇게 자책한다. 

'하백의 신부(tvN)'

하지만 그녀는 또한 그렇게 정신이 아픈 이들의 삶에 연루되는 것을 버겁게 느낀다. 정신과 의사로서 누구보다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봐야 하는 것이지만 그로 인해 겪을 부담은 피하고 싶은 것. 그래서 하백에게 그 정반대의 감정을 토로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나는 그런 일로 책임감 갖거나 미안해하거나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요. 나는 그냥 내 생각하면서 살고 싶어요.”

하백은 그러나 그녀의 그 말이 진심이 아니라는 걸 확신한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어. 근데 하난 확실하지. 넌 네가 원하는 대로 살지 못할 거야. 넌 애초에 그렇게 생겨먹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그녀의 상황을 자전거 바퀴에 비유해 이야기한다. “내가 바퀴에 관심 있어서 좀 찾아봤는데 자전거라는 게 그렇더군. 넘어지는 쪽으로 핸들을 꺾어야 쓰러지지 않아. 네 마음이 넘어지려는 쪽이 어딘지 너만 모르는 거 아냐? 자꾸 억지로 반대로 꺾으려 하면 쓰러져 골병든다.”

사실 <하백의 신부>가 가진 이야기의 기조는 판타지와 코미디다. 그래서 조금 썰렁한 코미디들이 반복되고 또 허공으로 붕 날아오르거나 고층 건물 옥상에서 떨어지는 소아를 하백이 끌어안고 구해내고, 브레이크가 고장 난 차량 위로 탈출해 내려오는 판타지적 장면들을 보다보면 흥미롭긴 해도 어딘지 너무 가볍다는 느낌을 버릴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99%의 판타지 코미디적 설정들을 잘 들여다보면 이 드라마가 궁극적으로 하려는 1%의 진심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왜 윤소아가 하필이면 정신과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인물로 설정되어 있고, 여기 등장하는 신들이 물과 하늘같은 자연(주로 기후와 관련이 있는)을 관장하는 신들이며, 하필이면 하백의 경쟁자로 등장할 후예(임주환)라는 인물이 리조트 개발 회사의 대표인가에서 드러난다. 

후예가 하는 리조트 개발이란 다름 아닌 자연을 파헤쳐 인공적인 공간을 만들고 그것으로 부를 창출하는 사업이다. 그리고 지금 후예가 만들려는 리조트는 다름 아닌 하백을 대대로 받들어오던 윤소아의 조상들이 살던 터전이다. 그녀는 이 땅을 무려 7배의 가격으로 사겠다는 후예의 제안에 반색하지만 리조트 개발을 둘러싼 하백과 후예 사이의 대결구도는 어쩌면 윤소아를 흔들리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실로 자본의 세상에서 살아가며 돈이 신인 물신을 숭배하는 현대인들에게 <하백의 신부>는 하백이라는 자연을 상징하는 존재를 통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과연 ‘행복한 정신건강의학과의원’ 윤소아는 어떤 길이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까. 

신석을 잃어버린 무라(정수정)와 비렴(공명)은 하백과 대립하며 심지어 그의 신력을 시험하기 위해 윤소아를 위험에 빠뜨리기도 한다. 아마도 이것은 신(자연)이 갖는 무심함일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세상으로 오며 신력을 잃어버린 하백은 바로 그 점 때문에 이들과는 다르다. “배도 고프다며?”하고 묻는 비렴의 질문은 하백이 인간적인 고통이 무엇인가를 깨닫는 특별한 신이라는 걸 오히려 드러낸다. 

윤소아는 신과 인간적 욕망 사이에서 방황하며 헷갈려 한다. 정신과 의사로서 자신의 환자들이 위험에 처하게 된 것을 자신의 잘못으로 여기면서도, 자신은 그런 타인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자신만의 행복을 추구하는 그런 삶을 살고 싶어 한다. 그녀는 그래서 궁금하다. “신들이 다 이 모양이라 세상이 이 꼬라지인지. 세상이 이 꼬라지라 신들이 포기하고 저 모양인지.”

그럼에도 그녀에게서 발견되는 어떤 희망 하나는 힘들게 살아가며 투덜대면서도 그런 삶조차 고마워하는 마음이 남아 있다는 점이다. “고맙습니다. 또 살려준 거. 그리고 오늘 종일 바쁘게 해준 거.” 그녀가 하백에게 전하는 이 한 마디는 마치 우리가 힘겨운 현실에 나갔다 돌아와 잠자리에 들 때 작은 기도 속에 담는 희망을 닮았다. 99% 판타지 코미디의 외피를 갖고 있는 <하백의 신부>가 그 안에 촘촘히 숨겨놓은 1%의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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