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도’ 김수현, 영화 홍보 한 마디 없이도 빛난 게스트의 정석

말 한 마디가 만들어내는 놀라운 결과. 아마도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이 갖고 있는 또 다른 동력이 아닐까. 하하가 자신의 인맥 자랑을 하다 우연히 김수현과 통화하게 된 자리에서, 볼링이 준프로급이라는 이야기에 “언제 볼링 한 번 치자”고 했던 말이 현실이 되었다. 본래 정준하 대상 프로젝트 특집의 일환으로 뗏목으로 한강 종주하는 미션에 도전하려 했지만 갑자기 내린 비로 무산되자 새로운 아이템을 고민하다 문득 떠오른 것이 바로 김수현과의 볼링 대결이었던 것. 

'무한도전(사진출처:MBC)'

결과적으로 보면 이 김수현 출연은 뗏목으로 한강 종주하는 그 미션 수행보다 더 성공적인 재미를 안겨준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무한도전> 출연으로 인해 김수현에 ‘입덕’했다는 이야기들이 솔솔 피어난다. 잘 생겼지만 어딘지 빈 구석도 내보이며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이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김수현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다는 반응이다. 

그런데 이런 좋은 반응이 나오게 된 건 그가 단지 잘생겨서만도 아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빙구처럼 ‘강원도 사투리’의 억양으로 말하는 모습이 우스워서만도 아니다. 그것보다 중요했던 건 그가 흔히들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는 게스트들과는 사뭇 다른 면모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게스트들이 예능 프로그램에 나올 때면 그 대부분의 목적은 ‘홍보’가 되기 십상이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있거나 신보를 발매했거나 아니면 드라마 방영이 임박했을 때 그 출연자들은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적당히 재미를 선사하면서 자신들이 하는 프로젝트를 홍보한다. 이것은 예능 프로그램 제작진들도 어느 정도는 용인하는 일이다. 그래서 아예 대놓고 그들의 홍보용 멘트를 지원하기도 한다. 

김수현 역시 최근 영화를 찍었다. 오는 28일 방영 예정인 <리얼>이 그 영화다. 하지만 그는 단 한 마디도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저 그날의 목적인 볼링에만 집중했다. <무한도전> 멤버들이 레인에 가랑이를 벌리고 서고 그 안으로 볼을 굴려 스트라이크를 잡는 묘기를 선사하기도 하고, 무려 50점을 접어주고도 거뜬히 이기는 프로 수준의 실력을 과시했다. 

의외의 웃음을 주는 모습도 보여줬는데, 그것은 의도한 것이라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면서 생긴 웃음이었다. 강원도 사투리는 잘 생긴 이 청년에 ‘빙구’ 이미지를 덧붙여줬는데, 그 사투리 억양을 쓰게 된 이유는 지난 겨울 내내 강원도 스키장에서 보내다 보니 생긴 습관이라고 했다. 의외로 구성진 그 억양을 <무한도전> 멤버들은 베테랑답게 놓치지 않고 집어내어 캐릭터화했다.

던져 놓고 결과를 보지 않은 채 고개를 돌리는 이른바 ‘노룩패스’ 역시 전혀 의도된 것이 아니어서 더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었다. 사실 볼링 본 게임에 들어가기 전에 레인을 확인하는 프로들이 스플릿으로 남은 핀을 대충 스페어처리하는 과정에서 종종 보여지는 모습이다. 하지만 최근 바른정당 김무성 의원의 공항 ‘노룩패스’가 화제가 되면서 이 장면 하나 역시 의외의 웃음을 만들어냈다. 

김수현은 전화통화로 그저 지나가듯 한 말이지만 그 약속을 지켰고 방송에 나와서는 그 목적에 부응하는 볼링에 진지한 자세로 임했다. 또 한류스타라기보다는 동네의 친한 동생 같은 살가움도 보여줬다. 물론 예능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출연자들이 보이는 모습에 웃음을 참지 못하는 리액션이 자연스럽게 덧붙여졌지만 그 안에는 어떤 의도나 부자연스러움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특히 영화 홍보 한 마디 없이, 프로그램에만 열심히 집중하는 모습이라니. 시청자들이 기분 좋은 게스트의 정석을 그에게서 발견한 이유다.

‘비밀의 숲’, 시청자들은 그 숲에 기꺼이 빠져들었다

스폰서 검사들. 그 검사들에게 뇌물을 뿌려온 스폰서의 죽음. 그 스폰서가 갖고 있었다는 검찰 비리 관련 진실들. 그 죽음을 그저 단순 강도 살인으로 덮으려는 부장검사. tvN 주말드라마 <비밀의 숲>은 그 첫 회만으로도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가를 명확하게 드러냈다. 법 정의를 집행해야할 검찰이 오히려 가장 법을 많이 어기는 상황을 목도해오며 수없이 싸워왔지만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그들 앞에 오히려 내부고발자라는 낙인이 찍혀 왕따가 되어버린 황시목(조승우)이 그 검찰 비리를 파헤쳐나가는 이야기다. 

'비밀의 숲(사진출처:tvN)'

그런데 이 황시목이라는 인물의 설정이 독특하다. 어린 시절 뇌수술로 인해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일상적인 삶을 살기는 어려운 인물이지만 어째 바로 이런 무감정한 면들이 검찰 내부의 비리를 파헤치는 검사로서는 최적이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오로지 이성적인 판단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점이 그렇다. 황시목처럼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는 극단적인 캐릭터를 세워놓은 건 이 정도의 인물이어야 검찰 내부의 비리를 끄집어내는 일이 가능할 수도 있을 정도로 그 검찰이라는 ‘비밀스런 숲’이 깊고 어둡다는 걸 말해준다. 

하지만 황시목과 스폰서 살인사건으로 인연을 맺게 되고 향후 같이 이 힘겨운 진실 파헤치기를 해나갈 경찰 한여진(배두나)은 그와는 정반대의 캐릭터다. 그녀는 타인의 고통을 마치 자신의 것처럼 공감하는 인물이다. 피해자의 상가를 찾아와 그 노모를 위로하고 부조금을 낼 정도. 경찰로서 자신이 할 역할의 선이 분명하지만, 그 선을 넘어 인간적인 면모를 가진 그녀가 황시목과 파트너가 된다는 건, 황시목과는 정반대로 이 정도로 피해자의 고통을 공감하는 인물이어야 그 어떤 유혹에도 휘둘리지 않고 수사를 해나갈 수 있다는 의미다. 

무감하거나 다소 과하게 공감하거나. 사실 어느 쪽도 보통의 수준이라고 말하긴 어려운 인물들의 성향이지만 그래서 이러한 검찰 개혁의 문제를 환부 수준이 아니라 시스템을 고치는 계기를 만들 것으로 기대되는 인물들이다. 사실 스폰서 검사에 관한 보도들로 대중들도 검찰을 잘 신뢰하지 못하게 됐다는 건 무수히 많은 장르물들이 검찰을 얼마나 비리단체로 그리고 있는가로 잘 드러난다. <비밀의 숲>은 이러한 현실적인 대중정서를 소재로 끌어와 그들과 대적해가는 검사와 경찰 사이의 팽팽한 대결구도를 세워 놓았다. 

하지만 <비밀의 숲> 첫 회가 시청자들을 몰입시킨 건, 이런 대결구도와 정황들을 일일이 설명하지 않고 인물들 간의 부딪침을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내주었기 때문이다. <비밀의 숲>의 이야기 전개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보통 남녀 주인공의 첫 만남을 드라마가 그릴 때 다소 과장되게 극적으로 그려내는 것과는 정반대다. 

스폰서의 집을 찾아가는 황시목. 그가 길가에서 우연히 만난 스폰서의 어머니. 그래서 집에 함께 가지만 문을 들어서자마자 확인된 살인현장. 그래서 바로 현장 상황들을 통해 그 집에 왔었던 수리기사가 범행에 관련되었을 거라고 짐작하고 바로 쫓기 시작하는 황시목. 그렇게 다짜고짜 자기 길만 가는 황시목을 쫓게 되는 한여진. 그래서 결국은 용의자를 같이 쫓게 되면서 이어지는 인연.... 이런 이야기 흐름들이 너무나 인위적인 흔적 없이 흘러간다. 

사실 그래서 <비밀의 숲>에 대한 기대감은 바로 이렇게 자연스러운 전개를 통해 시청자들을 몰입시키는 이야기 전개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 전개 과정은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있는 그대로 사건들을 툭툭 던져 나열해 줌으로써 오히려 더 시청자들로 하여금 몰입하게 만드는 이상한 힘을 발휘한다. 그 무감함 속에 무언가 비밀스러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지만 애써 설명하거나 제시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더 집중해서 그 안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그런 힘.

이것은 황시목이라는 무감정한 캐릭터가 주는 몰입감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물론 거대한 검찰 비리와 맞서는 인물로서 오히려 힘을 발휘하는 캐릭터 설정이지만, 그 무감정함 뒤에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하는 그 비밀스러움이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자극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으로 다가온다. 

<비밀의 숲>이라는 제목은 그래서 여러 가지 차원으로 해석가능하다. 그것은 부패했지만 베일에 가려진 검찰 조직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고, 그들과 대결해가는 인물들 이를 테면 황시목이나 한여진 나아가 신출내기 수습 검사인 영은수(신혜선)가 숨기고 있는 어떤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시청자들은 이미 그 숲의 한 가운데 기꺼이 들어가 있다.

'최고의 한방', 희비극이 잘 엮어진 예능드라마

짠한 데 웃음이 나고, 우스운데 짠하다. KBS <최고의 한방>은 희비극이 무엇이라는 걸 제대로 보여주는 드라마다. 최우승(이세영)이 사귀던 남자친구가 자신의 룸메이트와 바람을 피우는 걸 박스 안에 숨어서 보다 들키는 시퀀스는 이 드라마가 가진 웃음과 짠함의 정체를 드러낸다. 자존심 상하고 창피한 우승이 박스를 뒤집어쓴 채 집밖으로 나가려 하고 그걸 막으려는 남자친구와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은 짠한데 웃음이 난다. 코미디가 가진 양면성, 즉 비극 속에 담겨진 희극적 요소가 주는 페이소스가 이 드라마에는 도처에 묻어난다. 

'최고의 한방(사진출처:KBS)'

힘겨운 공시생의 삶을 살아가는 우승은 일 년 간의 노력 끝에 들어간 시험장에서 갑자기 배탈이 나 결국 시험을 포기하게 된다. 그 상황 자체가 주는 절망감은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드라마는 이 비극적 상황을 웃음으로 풀어낸다. 배탈을 애써 버텨내려는 우승에게 시험 문제지의 글자들, 즉 ‘고비, 폭발, 쏟아지는, 산사태, 배출, 터져 나온다’ 같은 단어들이 그녀를 더 이상 참지 못하게 만든다는 설정은 웃음이 난다. 

매달 평가와 극단적인 다이어트를 일상으로 살아가는 기획사의 독종 연습생 혜리(보나)를 지훈(김민재)이 자꾸 자살하는 줄 알고 오해하는 장면이 반복되는 시퀀스들도 코미디적으로 처리되어 있지만 사실 그 안을 들여다보면 죽도록 연습을 해도 앞이 보이지 않는 그 청춘들의 땀과 눈물이 느껴진다. 그러니 그 연습생을 하도 오래해 ‘조상’으로 불리게 된 지훈이 월말 평가에서 대놓고 떨어지라 요구받은 랩에 자신의 심정을 담아내는 모습은 그토록 짠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엉뚱하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버텨내고, 눈물이 흘러도 눈물샘이 막혀 생긴 질환이라고 말하며 넘어가는 이 청춘들이 어느 날 가로등 아래서 진짜 힘겨움을 슬쩍 드러낼 때 그 무표정이 사실은 온통 세상의 무게를 버텨내고 있는 얼굴이었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이런 청춘들에게도 한 방의 기회는 과연 올 것인가. 

<최고의 한방>은 여기에 특별한 판타지 설정을 집어넣었다. 그것은 1990년대의 아이돌 스타 유현재(윤시윤)가 그 시대에서 갑자기 20년을 뛰어넘어 현재로 타임리프한 것이다. 유현재는 당시 최고의 스타로서 화려한 청춘을 구가했지만, 20년을 뛰어넘은 현재의 그는 어쩌다 지훈의 옥탑방에 얹혀 지내는 신세가 된다. 왜 <최고의 한방>은 최근 드라마에 많이 등장해 자칫 식상하게 느껴질 우려가 있는 타임리프 설정까지 굳이 집어넣어 90년대의 청춘과 현재의 청춘을 연결시킨 걸까.

그것은 아마도 현재의 청춘들이 겪고 있는 현실이 과거 한 때는 청춘이었던 지금의 중년들이 살아왔던 삶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일 게다. 지금의 현실은 과거들이 중첩되어 만들어진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과거의 청춘 유현재가 현재의 청춘 지훈과 가까워지고 소통하고 그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나아가 그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주려는 그 과정은 이 드라마가 그려내려는 ‘한방’의 실체가 되지 않을까.

짠한 상황 속에서도 웃음으로 그것을 전하려는 이 드라마는 그래서 힘겨워도 웃으며 버텨내려는 청춘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닮았다. 그 웃음을 따라가다 보면 그 밑에 깔려 있는 청춘들의 절망감이 공감된다. 유현재는 이제 중년이 된 시청자들의 시선이 되어 현재를 다시 돌아보게 해주고, 지훈과 우승은 지금의 청춘들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그래서 그 유현재와 지훈이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은 청춘이라는 공유점으로 세대 간의 소통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다.

<최고의 한방>은 ‘예능 드라마’라는 기치를 내걸고 있어 전면에 드러나 있는 건 코미디적 상황들의 연속이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시트콤 같은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자잘한 코미디적 상황들이 숨기고 있는 ‘한방’이 분명 존재한다. 그것은 청춘의 아픈 현실에 대한 공감과 위로라는 묵직한 메시지다.

‘알쓸신잡’, 치열한 삶의 궤적이 뒷받침된 수다의 진정성

tvN 예능 프로그램 <알쓸신잡> 순천, 보성편은 첫 회 통영편과는 다른 구성 방식을 나타냈다. 통영편은 유시민, 황교익, 김영하, 유희열이 통영에 도착해 각자 취향에 맞게 음식을 찾아 먹고 여행을 하는 장면들을 먼저 보여준 후 저녁 식사자리에서 뒤늦게 참여한 정재승과 지식 수다의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순천, 보성편은 앞부분에 살짝 그 날 이들이 여행한 장면들을 보여준 후, 바로 저녁 식사자리로 들어가 수다를 시작했고 그 수다 중간 중간에 그들이 여행한 장면들을 구성했다. 

'알쓸신잡(사진출처:tvN)'

이 구성 방식의 변화가 말해주는 건 <알쓸신잡>이 여행이라는 포인트 그 자체보다 지식수다에 더 초점을 맞추겠다는 의지다. 물론 순천과 보성을 여행하는 내용은 그 지식수다의 재료들이 된다. 그래서 그 지역이면 당연히 떠오를 수밖에 없는 조정래의 ‘태백산맥’ 이야기나, 김승옥의 ‘무진기행’ 같은 소재들이 그날 저녁 수다의 반찬이 된다. 

끝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지식 수다는 신기할 정도로 몰입이 된다. 황교익이 수다 자리에 갖고 나온 조정래의 ‘태백산맥’에 적힌 그 날 저녁 반찬으로 올라온 꼬막 요리법을 소개하고,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태백산맥의 배경이 된 빨치산 이야기, 여순 사건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조정래의 탑처럼 쌓인 육필원고 이야기는 육필과 컴퓨터 작업 사이의 창작의 차이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지고, 그 방식의 변화가 창의성의 변화와는 무관하다는 걸 정재승은 과학적 데이터로 알려준다. 이처럼 술술 풀려나오는 지식의 향연이 있을까. 남자들끼리 이렇게 오래도록 수다를 떨어본 적이 없다는 유희열의 이야기가 그저 의례적인 말이 아니라는 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 ‘알아두면 쓸데없어 보이는’ 지식의 향연이 더욱 놀라운 지점은 ‘신기하게도’ 우리가 흔히 아재들의 수다라고 하면 느껴왔던 ‘노잼’이나 어떤 ‘불편함’ 같은 것들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알쓸신잡>에도 너무 가벼운 아재 토크처럼 느껴진다거나, 여성 출연자가 없다는 식의 아쉬움의 목소리는 있다. 그리고 특히 여성 출연자의 부재는 이들 아재들만의 세상이 선입견을 갖게 만드는 주요 요인이기도 하다. 향후에 이 부분이 채워진다면 훨씬 균형잡힌 프로그램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런 아쉬움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알쓸신잡>을 큰 불편함 없이 보게 되는 건 그것이 단지 그들의 놀라운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지식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보다 선결되는 것이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이들이 지금껏 어떻게 살아왔는가일 게다. 말은 말 자체가 힘을 지닌다기보다는 그 말을 하는 사람이 살아온 행보에 의해 더 힘을 얻기 마련이다. 

유시민의 ‘항소이유서’는 그 단적인 사례가 된다. 아무 죄 없이 감옥에 가게 된 청년 유시민이 그 부당함을 토로하는 그 글을 생각하고 또 생각해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가며 썼을 그 모습이 고스란히 그려진다. 그것은 지금의 유시민이 하는 말들이 그저 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삶에 닿아있다는 진정성을 느껴지게 한다.

또한 김영하가 아내에게 요리는 내가 한다며 ‘주방 은퇴’를 하게 했다는 이야기 역시 그렇다. 왜 그렇게 했냐는 질문에 그는 아내가 주부로서 요리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다”며 그걸 없애기 위해서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하게 했다고 했다. 아재의 나이지만 구세대적인 아저씨가 되지 않으려는 그 모습은 그의 수다에서 지식 자랑이 아닌 어떤 호감을 느끼게 만든다.

사실 <알쓸신잡>은 그 액면으로 보면 아재들의 수다다. 하지만 그 액면을 들여다보면 그저 떠드는 시시콜콜한 잡담이 아니라 우리의 상상력을 확장시켜주는 지식 수다이고 그 지식들이 그저 머릿속으로만 채워진 게 아니라 치열한 삶을 통해서 체득된 것이란 걸 발견하게 된다. 이 부분이 신기하게도 아재들의 수다라고 하면 외면하곤 하던 우리들의 귀와 마음을 연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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