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순’, 어째서 멜로에 대한 기대가 커진 걸까

본격 장르물에 대한 시청자들의 기대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아져 있다. 그래서 과거에는 본격 장르물에도 멜로나 가족극 요소가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이런 멜로의 틈입에 대해 시청자들은 오히려 긴장감을 떨어뜨린다며 비판적인 시선을 갖게 되었다. 최근 방영됐던 <피고인>이나 <보이스> 같은 본격 장르물이 멜로 없이도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 끈 건 그래서다. 

'힘쎈여자 도봉순(사진출처:JTBC)'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JTBC <힘쎈 여자 도봉순>의 경우는 멜로에 대한 기대가 훨씬 더 커지고 있다. 물론 이 드라마를 본격 장르물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힘쎈 여자 도봉순>은 여러 장르들, 이를 테면 사이코패스가 등장하는 스릴러 장르와 코미디, 게다가 가족드라마적 요소들과 멜로까지 복합적인 장르를 보인다. 

그래도 그 메인으로 깔려 있는 건 여자들만을 공격대상으로 삼는 사이코패스가 만들어내는 긴장감이라는 걸 부인할 수 없다. 그 사이코패스와 맞서는 강력계 형사 인국두(지수)와, 재벌가의 승계를 두고 벌어지는 테러 앞에서 위협을 느끼는 안민혁(박형식)이 만들어내는 긴장감에 도봉순(박보영)이 양자의 문제를 해결하는 슈퍼히어로로 서 있는 구도. 

이미 도봉순은 자신이 그간 드러내지 않았던 힘을 제대로 써야 한다는 걸 각성했고, 안민혁과의 트레이닝을 통해 그 힘을 조절하는 방법도 배웠다. 그러니 그녀를 이길 수 있는 존재는 사실상 이 드라마 상의 어떤 악역들에게도 없다. 수십 명의 조폭들을 단신으로 상대하며 모두를 병원 중환자실로 몰아넣는 그녀가 아닌가. 백탁(임원희)은 그래서 그녀 앞에 일찌감치 무릎을 꿇는다. 

그렇다면 이미 자신의 힘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도봉순에게 진짜 목표는 무엇일까. 드라마는 결국 주인공의 결핍을 욕망으로 삼아 그것을 어떻게 쟁취하는가에 따라 동력을 얻기 마련이다. 물론 여자들을 감옥 같은 철창에 가둬두고 마치 전리품처럼 여기는 사이코패스가 버젓이 살아있지만 그를 잡는 건 이 드라마의 한 과정일 뿐, 목표 그 자체라고 보기는 어렵다. 

도봉순은 사실 정의의 실현 같은 것에 목을 매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존재를 그 자체로 소중하게 느낄 수 있는 것에 더 강력한 욕망을 갖고 있다. 힘이 세다는 것을 그녀는 숨기며 자라왔다. 여자가 힘이 세다는 것을 마치 무언가 대단히 잘못된 일인 양 받아들였던 것이고, 그래서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은 그녀는 자신을 부정하고 있었던 것. 

우리가 <힘쎈 여자 도봉순>을 보면서 이상하게도 도봉순의 멜로를 더욱 기대하게 되는 건 바로 그것이 그녀 스스로 자기 자신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누군가에 사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서다. 숨기고 왔던 괴력을 그대로 드러내면서도 그런 그녀를 그 자체로 사랑하는 남자의 등장은 바로 도봉순이 꿈꾸는 것일 테니 말이다. 

<힘쎈 여자 도봉순>의 멜로는 그저 남녀 간의 사랑만을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거기에는 남녀 간의 성별로 나뉘어지는 역할이나 선입견들을 깨는 요소가 들어가 있다. 남녀의 성역할에 따라 누가 누구를 보호해주고 보호받는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는 사랑의 이야기가 이 드라마의 멜로가 그려내려는 것이다. <힘쎈 여자 도봉순>이 스릴러 장르물의 틀을 가져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멜로에 대한 기대감이 더 커지는 건 그래서다.

‘윤식당’, 익숙한 듯 낯선 나영석 PD의 명민한 선택

‘나도 저런 데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 아마도 tvN 새 예능 프로그램 <윤식당>을 보면서 내내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을 지도 모르겠다. 인도네시아 발리의 어느 한적한 섬. 유럽과 호주에서 온 여행자들이 북적대며 오로지 여행의 설렘으로 가득 채워진 그 곳에서 작은 한식당을 연다는 건 나영석 PD가 기획의도로 밝힌 것처럼 누구나 한번쯤 꿈꿔보는 일이 아닐까. 

'윤식당(사진출처:tvN)'

여기서 키워드는 이 복잡한 도시를 ‘떠난다’는 것이고, 낯선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이다. 가끔 삶이 지긋지긋해지고 막막한 현실 앞에서 “이번 생은 글렀어”라고 얘기하게 될 때, 우리는 이 곳을 떠나 새롭게 시작하고 싶어진다. 사실 그건 ‘이번 생’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이 곳’이 잘못됐을 수 있고, 그래서 새로운 시작은 새로운 생을 가져다줄 기회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못한다고 얘기하지만 사실은 어떤 메뉴를 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하며 점점 빠져든 <윤식당>의 사장 윤여정과 그녀를 옆에서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챙기는 밝고 맑고 명랑한 정유미, 그리고 무뚝뚝해 보이지만 의외로 사려 깊고 그래서 어딘지 든든함을 주는 이서진. 이런 구성원이라면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이들이니 함께 무언가를 도모한다는 것은 얼마나 설레는 일이겠나. 

나영석 PD는 명민하게도 이렇게 낯선 곳에서 식당을 열고 새롭게 시작하는 일을 마치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처럼 그려냈다. 제아무리 요리를 못하는 사람도 불고기 하나를 메인으로 만들어 덮밥, 면, 햄버거로 만드는 건 할 수 있을 게다. 게다가 불고기는 호주인들 같은 경우에는 ‘코리안 바비큐’로 이미 유명해진 메뉴다. 쉽게 할 수 있지만 그 효과도 좋은 <윤식당>의 기본 메뉴는 그래서 이들의 ‘개업’에 시청자들이 쉽게 몰입할 수 있게 해주는 장치가 아닐 수 없다. 

낯선 곳으로의 여행과 정착이 그간 나영석 PD 예능의 핵심이었다면 <윤식당>은 이 두 가지를 엮었다. 나영석 PD표 예능의 또 다른 반복이 아니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윤식당>에는 기존 예능들과 달리 ‘개업’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집어넣었다. 힐링 예능으로서 보는 이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왔던 나영석 PD표 예능은 그래서 이 ‘개업’이라는 장치를 통해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긴장감을 더했다. 

게다가 <윤식당>은 윤여정, 이서진, 정유미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이 곳을 찾는 손님들과 벌어지는 교감이 또 다른 이야기의 축이 된다. 그들이 만든 요리를 맛있게 먹는 손님들을 보면서 느낄 어떤 보람 같은 것들은 <윤식당>을 보는 시청자들의 기대가 아닐 수 없다. 일에 있어서 보람 같은 걸 느껴본 게 도대체 언제였던가 싶은 분들에게는 더더욱. 

손님이 얼마나 올 것인가. 너무 많이 와도 걱정이고 너무 안와도 걱정이라는 윤여정에게 이서진은 긍정적인 비전을 내놓는다. 생각보다 더 많은 손님들이 올 것 같다는 것. 그 말에 윤여정은 기분좋아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걱정이 앞선다. 윤식당 개업 바로 전날 교차하는 설렘과 두려움. 그리고 개업일 손님을 기다리며 한없이 물을 들이키는 윤여정의 그 기분 좋은 긴장감. 그래도 새롭게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것이 주는 즐거움. <윤식당>은 나영석 PD표 예능의 핵심적인 요소들을 가져와 또 다른 세계를 열고 있다. 그런 곳에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면...

악역이 뭐길래...이준호·김재욱·엄기준, 주인공만큼 빛나는 존재감

KBS 수목드라마 <김과장>에서 펄펄 나는 건 주인공 남궁민만이 아니다. 악역으로 등장해 이제는 남궁민과 짝패가 된 이준호는 이 작품을 기점으로 연기자라는 타이틀을 제대로 얻었다. 그는 서율 이사라는 캐릭터를 통해 나이 많은 부하직원들에게 안하무인격으로 반말을 하고 필요하면 폭력까지 일삼는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윤하경(남상미) 대리 앞에서는 부드러운 면면을 드러낸다. 김과장과 대립하다가도 그가 죽을 위기에 몰리자 그를 구해주는 의외의 인간적인 면을 갖고 있어, 악역이지만 미워할 수 없는 악역이라는 독특한 캐릭터다. 

'김과장(사진출처:KBS)'

물론 이준호는 드라마 <기억>이나 영화 <스물> 등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연기력을 갖춘 아이돌로 평가받은 바 있다. 하지만 <김과장>의 서율이라는 캐릭터는 확실하게 그에게 연기자로서의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이것은 악역이 주는 힘일 것이다. 드라마에 긴장감과 갈등을 부여하는 역할로서 악역은 제대로만 연기해내면 주인공만큼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다. 지금껏 풋풋한 청년의 이미지가 강했던 이준호가 서율이라는 안하무인 악역 캐릭터로 만든 반전 이미지는 그에게는 연기자로 가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이처럼 악역은 그간 발견하지 못했던 연기자의 새로운 결을 드러내게 해준다. 종영한 OCN <보이스>에서 중반 이후부터 등장해 마지막회까지 긴장감을 놓치지 않게 해준 김재욱 역시 악역을 통해 새로운 면을 보여줬다. 등장만 해도 살벌한 느낌을 주는 모태구라는 악역은 조각 미남 김재욱의 이미지를 뒤집어 놓았다. 심지어 여성적인 느낌마저 주는 그 미남의 이미지가 거꾸로 살벌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기 때문이다. 

김재욱은 꽤 많은 작품들을 해왔다. 하지만 잘 생긴 외모는 오히려 연기자로서는 어떤 장애요소로 작용한 면이 더 크다. 다양한 연기를 해내기에는 그 외모가 주는 선입견이 너무 강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김재욱 역시 모태구라는 캐릭터를 통해 자신에게 부여된 이러한 선입견을 보기 좋게 무너뜨렸다고 볼 수 있다. 

역시 종영한 드라마 <피고인>에서의 엄기준 역시 차민호라는 악역을 통해 새삼 주목받았다. 사실상 <피고인>은 주인공인 지성과 악역인 엄기준이 서로 치고 받는 그 힘에 의해 끝까지 탄력을 잃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다소 과한 설정들과 개연성이 부족한 면들이 있었지만 그나마 끝까지 힘을 유지한 것도 지성과 엄기준이라는 배우의 열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도면밀하고 뻔뻔하기까지 한 살인자 재벌2세라는 캐릭터는 지금의 대중정서가 공분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요소들을 갖고 있었다. 그 요소들을 통해 엄기준은 냉철하고 냉혹한 악역을 만들어냈다. 어딘지 선해 보이는 엄기준이라는 배우의 이미지는 그래서 더 잔혹해지는 행동들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더 강렬해질 수 있었다. 

악역은 그 강렬한 이미지 때문에 연기자에게 덧씌워진 이미지를 깨는 힘을 발휘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연기자로서의 존재감을 만든 배우들을 보면 저마다 확실한 악역의 필모그라피가 있다. 남궁민이 주목을 받았던 것도 <리멤버-아들의 전쟁>에서 보여준 악역의 힘이 있었고, 유아인 역시 영화 <베테랑>에서의 악역이 있었다. 이준호, 김재욱, 엄기준 역시 이제 그 대열에 이름을 올렸다. 악역이 부여한 연기자로서의 면면을 드러내며.

사극은 무조건 장편? 늘어뜨리기보단 더 압축할 필요 있다

우리네 사극은 아직도 그 앞에 ‘대하’라는 수식어를 붙이길 좋아한다. 그래서 사극이라고 하면 적어도 30부작, 길게는 50부작 정도의 장편이어야 한다는 암묵적인 선입견 같은 것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러한 ‘대하사극’의 시대가 여전히 유효할까. 최근 방영되었거나 방영되고 있는 사극들, 이를테면 KBS <화랑>, MBC <역적>, SBS <사임당, 빛의 일기>를 보면 사극이라고 무조건 길게 늘어뜨리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는가 하는 의구심을 자아내게 만든다. 

'사임당, 빛의 일기(사진출처:SBS)'

종영한 <화랑>의 경우 20부작이었지만 굵직한 이야기는 실종되고 대신 인물들의 멜로와 소소한 미션들이 매회 배치되면서 기대이하의 성적으로 끝나버렸다. <화랑>이라고 하면 삼국통일을 이룬 그 인물들의 장중한 이야기가 있어야 했지만 이 사극은 화랑을 ‘꽃미남’ 아이돌처럼 해석함으로써, 애초에 하려던 신분으로 좌절된 청춘들의 현실을 담아내려던 의도마저 흐려져 버렸다. 이런 이야기라면 굳이 20부작이 필요했을까. 

30부작 <역적>은 역사에 기록된 실존인물 홍길동의 이야기를 재해석한 것이지만 그 절반에 해당하는 16부 동안 길동의 아버지 아모개(김상중)의 이야기로 채워졌다. 물론 이 사극이 갖는 현재의 현실을 빗댄 해석들은 실로 주목할 만한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가 지나치게 늘어진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무엇보다 주인공 홍길동의 활약과 이야기들이 생각만큼 다양하게 전개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 괜찮은 기획의도를 가진 작품의 시청률이 왜 갈수록 꺾어져 8%대까지 주저앉았는가를 설명해준다. 

역시 30부작인 <사임당, 빛의 일기>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이 사극과 현대극을 뒤섞은 드라마는 벌써 17부가 방영되었지만 애초에 그리려던 사임당(이영애)의 예술혼은 아직까지도 등장하지 않고 있다. 고려지를 재현해내려는 사임당의 이야기가 치열한 대결구도로 그려지고 있지만 그것이 과연 애초 기획의도였던 ‘히스토리’가 아닌 ‘허스토리’로서의 워킹맘 사임당의 일과 사랑, 그리고 예술의 세계를 얼마나 잘 구현하고 있는가는 미지수다. 

사실 30부작은 그나마 과거의 사극들이 대부분 50부작을 기점으로 만들어졌던 것에 비하면 많이 줄어든 것이다. 하지만 지금 방영되고 있는 <역적>이나 <사임당>을 두고 보면 그 30부작도 너무 느슨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매회 한 가지씩의 굵직한 사건들이 전개되며 밀도 있는 드라마를 기대하는 시청자들로서는 “아직도 그 얘기야?”라는 답답함을 토로하는 게 당연하다 여겨진다. 

지상파에 종편, 케이블까지 합쳐져 우리네 드라마 편수는 과거에 비해 어마어마하게 늘어났다. 지상파가 일일드라마와 주말드라마를 빼고도 한 주에 6편을 내놓고 있고, 케이블이 월화와 금토 또는 토일 편성으로 3편을 종편은 매 주 한 편씩을 내놓고 있다. 이것만 해도 일주일에 시청자들에게 보여지는 드라마가 10편에 달한다. 

이처럼 늘어난 드라마 편수는 시청자들이 더 압축적인 드라마를 요구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괜스레 질질 끌기보다는 한 편을 봐도 몇 편을 본 것처럼 확실한 이야기가 있는 드라마가 요구되고 있는 것. 그게 아니라면 굳이 채널을 고정시킬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사극은 그래서 과거의 연속극의 특성에서 더 과감한 탈피를 시도해야 할 필요가 있다. 물론 모든 사극이 그래야한다는 건 아니다. 이를테면 <육룡이 나르샤> 같은 사극은 50부작이었지만 매회 빈틈이라는 걸 느끼기 어려울 만큼 압축미가 있었다. 그렇지만 <역적>이나 <사임당> 같은 사극은 굳이 30부작을 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은 느슨함을 보이고 있다. 이래서는 그 어느 때보다 눈높이가 높아진 이탈하는 시청자를 잡기는 어렵지 않을까.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