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 해피엔딩과 새드엔딩을 동시에 껴안고 걸어가는

 

tvN 드라마 <도깨비>는 그 앞에 쓸쓸하고 찬란하신이라는 수식어를 달았을까. 이제 끝을 향해 달려가는 지점에 서서 다시 처음을 돌아보니 도깨비라는 캐릭터는 죽음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쓸쓸하지만 또한 찬란하게 스러진다. 그의 가슴에 꽂힌 검이란 어쩌면 우리 모두가 살면서 가슴 한 켠에 꽂고 살아가는 쓸쓸함과 찬란함을 표징하는 것일 게다. 그래서 그 검이 뽑히는 날 누구나 쓸쓸하고 찬란하신 죽음을 맞이하기 마련이다.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사진출처:tvN)'

여타의 드라마였다면 죽음은 그 이야기의 끝일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도깨비>는 죽음이 이야기의 끝이 아니다. 이미 그들은 여러 차례 죽었었다. 김신(공유)과 김선(유인나)은 이미 왕여(이동욱)의 지시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 바 있고, 그들은 다시 태어나 새로운 관계로 얽혀진다. 전생의 삶은 그렇게 이생의 삶으로 인연을 이어간다. 이 이야기에서 죽음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기도 하다. 김신의 죽음은 도깨비로의 부활로 이어지고 그 부활은 다시 도깨비신부를 만나 무()로 돌아가는 또 다른 죽음의 길을 걸어간다.

 

하지만 그렇게 사라져버린 도깨비는 그것으로 끝일까. 마치 마지막 회처럼 몰아친 한 회였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을 예고한다. 도깨비가 캐나다의 한 레스토랑에서 봤던 지은탁(김고은)이 누군가를 부르는 그 장면은 그래서 그 시작을 알리는 복선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그것이 다른 남자인 듯 질투를 보이는 도깨비의 모습으로 그려졌지만 어쩌면 그녀가 부르는 그 남자는 다시 시작된 삶을 살게 된 도깨비 자신이 아닐까.

 

<도깨비>가 흥미로운 건 쓸쓸하고 찬란하신이라는 이율배반적인 수식어를 달은 것처럼 희극과 비극이 겹쳐져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다시 살아나고 도깨비 신부를 만나는 그 과정은 삶의 행복이 묻어나는 희극이지만, 그 행복의 끝은 결국 도깨비의 가슴에 꽂힌 칼을 신부가 뽑아내는 비극이다. 여기에는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투영되어 있다. 삶이 찬란할 수 있는 건 어찌 보면 그 끝인 쓸쓸한 죽음이 있기 때문이다.

 

몇 차례의 죽음이 드라마 속에서 반복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드라마의 극성을 높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도깨비>의 시청률이 15.5%(닐슨 코리아)까지 상승할 수 있었던 건 이 드라마의 이런 독특한 이야기 구조 덕분이다. 시청자들은 그들의 밝고 경쾌한 이야기에 매료되면서도 거기에 서서히 드리워지는 죽음의 그림자에 안타까워한다. 그리고 도깨비의 죽음이라는 극적 상황을 보여주지만 또한 드라마의 이야기 구조상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여지를 남겨 놓는다.

 

해피엔딩과 새드엔딩. 드라마 시청자들은 그 끝이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해 민감하다. 그래서 엔딩을 암시하는 무언가가 등장할 때마다 기대감과 불안감을 드러낸다. 그런데 <도깨비>는 이 둘을 동시에 껴안고 끝을 향해 걸어간다. 도깨비의 죽음은 과연 새드엔딩일까. 그건 다시 벌어질 해피엔딩의 시작은 아닐까. 이 둘 사이에서 줄타기 하듯 걸어가는 <도깨비>에 시청자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이유다. 다시 살아 돌아오길 더더욱 간절히 기원하며. 이러니 다음을 기다리는 한 주가 900년 같다는 말이 나올 밖에.

<도깨비> 김병철, <푸른바다> 황신혜, <낭만닥터> 최진호의 유사점은

 

사실상 드라마의 반은 악역들이 만들어낸다. 악역이 있어야 갈등이 생기고 드라마도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갈등유발자로서의 악역은 시대와 무관하지 않다. 그 시대가 밟고 있는 지평 위에서 가장 민심을 건드릴 수 있는 악이 캐릭터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드라마의 주제의식은 주인공만큼 악역에게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사진출처:tvN)'

그런데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드라마들을 보면 악역들의 유사점들이 발견된다. 그들은 멀쩡한 얼굴로 거짓말을 일삼는 자들이고, ‘세치 혀를 놀려 사실상 모든 권력의 정점에 서서 전횡을 일삼는 인물들이다. 대중들 앞에서는 선한 척 명분을 내세우지만 그 실체는 추악하기 이를 데 없는 괴물들. 이 시대가 이른바 비선실세라고 부르는 그들.

 

tvN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에서 간신 박중헌(김병철)은 어린 왕을 세우고 그 왕을 조종해 세상에 군림하려는 자다. 알고 보면 이 <도깨비>의 모든 갈등의 근원은 바로 이 박중헌이라는 악역으로부터 비롯된 일들이다. 그의 세치 혀에 의해 외세를 물리친 김신(공유)은 왕을 위협하는 역적으로 몰아세워지고 결국 그와 그의 여동생까지 죽음에 이르게 만든다.

 

백성들의 간절한 기도에 힘입어 부활한 도깨비 김신은 그렇게 9백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오며 자신을 영원히 무()로 보내줄 도깨비 신부를 기다리지만 막상 만난 그녀를 김신은 사랑하게 된다. 그들 앞에 다시 나타나 세치 혀를 놀려 파국을 노리는 자가 바로 박중헌이다. 그는 김신과 함께 지내는 저승사자(이동욱)가 바로 그들을 죽게 만든 왕이었다고 말한다. 등장하면서 검은 세치 혀를 날름대는 장면은 박중헌이라는 악의 근원은 바로 그 말이라는 걸 말해준다.

 

SBS <푸른바다의 전설>에서 계모로 들어와 단란했던 가족을 붕괴시켜버린 강서희(황신혜) 역시 입만 열면 거짓말을 일삼는 악역이다. 자신이 함께 살았던 이들을 모두 죽음으로 몰아넣는 이 희대의 악녀는 결국 허준재(이민호)의 부친이자 그녀의 남편인 허일중(최정우)의 시력을 점점 잃게 만들더니 결국은 살해한다. 허준재를 만난 후 그녀를 의심하게 된 허일중이 그녀가 주는 약을 먹지 않고 버릴 때 그 모습을 바로 앞에서 보고 있는 장면은 마치 공포물의 한 장면을 연상시킬 정도로 소름을 돋게 만든다.

 

누군가의 눈을 멀게 하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하는 악역이란, 여러모로 허수아비를 세워 놓고 눈과 귀를 가리며 결국은 파국으로 이끄는 비선실세의 캐릭터 그대로다. 허일중의 죽음은 그래서 허준재를 각성하게 만든다. 가짜 행세를 해온 강서희와 그녀의 아들 허치현(이지훈)을 몰아내고 제 자리를 찾는 일이 그 무엇보다 중대한 사안으로 다가오는 것. 이만큼 현 시국과 닮은 상황이 있을까.

 

SBS <낭만닥터 김사부>에서 악의 근원은 도윤완(최진호) 거대병원 원장이다. 그는 과거 김사부(한석규)의 대리 수술을 실제로 주도한 인물이지만 그 문제가 불거지자 모든 죄를 김사부에게 뒤집어씌운다. 그는 실질적인 권력을 갖고 병원을 좌지우지하는 인물이지만 그렇다고 그가 병원의 주인은 아니다. 실제 주인은 신회장(주현)과 그의 딸(김혜은)이지만 도윤완이 주인 행세를 하는 격.

 

그는 권력을 이용해 어떻게든 김사부를 내쫓고 자신의 입지를 지켜내려 한다. 그러면서 실제로 김사부가 그 어려운 인공심장 교체 수술을 해낸 걸 마치 자신의 치적인 양 가로챈다. 신 회장은 자신의 건강상의 문제 때문에 병원 경영에서 한 발 물러서 있었지만 차츰 이런 현실을 알아차린다. 그 잘난 세치 혀로 사실상 비선실세의 역할을 해온 도윤완의 전횡을 김사부가 어떻게 저지하고 무너뜨리느냐가 이 드라마가 꿈꾸고 있는 사이다 결말이다.

 

드라마 악역들이 이처럼 비선실세들로 넘쳐난다는 사실은 어쩌다 겹친 우연처럼 보이지가 않는다. 그것이 현재 우리 사회가 처한 악의 근원이라는 걸 드라마들은 놓치지 않고 꺼내놓고 있다는 것. 그들의 세치 혀가 농단한 세상을 다시 본래 자리로 돌리는 것이 드라마들이 꿈꾸는 결말이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네 서민들이 꿈꾸는 결말이기도 하다

<썰전>, 비상식적 현실 유시민의 상식을 만나면

 

국정감사에서 난리가 났었는데 끝나고도 대책회의도 안했다는 건 놀고먹었다는 거다. 말이 되는 얘기를 해야지.” 유시민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대해 그 존재 자체를 몰랐다고 부인했던 조윤선 장관의 청문회 이야기를 하면서다. 사실 유시민이 말한 대로 상식적으로만 생각하면 그 말이 납득되기 어렵다는 건 누구나 다 알 수 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문화계 블랙리스트. 이런 중차대한 문건이 나돌고 있다는데 문화부 장관이라는 직책에서 그 존재 자체를 몰랐다? 유시민은 그것이 놀고먹었다는 이야기와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썰전(사진출처:JTBC)'

촛불민심을 소크라테스에 비유해 논란을 낳은 서석구 변호사의 이야기에 대해서도 유시민 작가는 명쾌한 상식으로 맞섰다. 소크라테스의 비유는 직접 민주주의의 의사결정이 항상 옳을 수만은 없다는 것을 경고하는 사례로 흔히 사용되는데, 이번 탄핵의 경우에는 이런 비유가 적절치 않다는 것. 탄핵에는 엄연히 헌법재판소의 심사가 있는데, 서석구 변호사의 말대로라면 헌법재판관들이 군중심리에 좌지우지되는 사람들로 오인될 수 있다는 것이다. “헌법재판관들은 법과 절차에 따라 법리적으로 심의할거다. 거기다 대고 이렇게 말하면 우리를 군중심리에 떠밀려 갈 사람으로 보는거야?’라며 반감을 살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지극히 당연한 상식적 추론이다.

 

또한 서석구 변호사가 거론한 촛불집회에서 “(대통령 퇴진곡을 만든) 윤민석이란 사람은 김일성 찬양 노래로 감옥 갔다 온 사람 아니냐.”는 주장에 대해서도 유시민 작가는 사실관계를 재차 명확히 했다. “윤민석씨가 국보법 위반으로 재판에 간 적 있지만 김일성 찬양 노래는 서석구 변호사의 주장일 뿐이라는 것.

 

이번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에 대한 특검 수사와 탄핵소추안에 대한 헌재의 심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쏟아져 나온 이런 저런 말들은 사실 대중들을 혼란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나름의 그럴 듯한 논리들을 들이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대중들을 미혹시키는 말들은 사실 한 발만 물러나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면 앞뒤가 맞지 않거나 말 자체가 부적절한 경우가 적지 않다. 유시민 작가가 그 말들이 가진 허점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방식으로 상식을 들고 나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건 그래서다. 엉뚱한 논리는 또 다른 차원에서 보면 비상식적인 면들을 고스란히 드러내기 때문이다.

 

한일 외교관계 역시 굉장히 복잡해 보이지만 유시민은 이를 명쾌하게 정리해냈다. 위안부 합의 문제에 대해 유시민은 한국을 뭘로 보는 거냐. 자기네가 이 문제에 대해 정부 당국자들끼리 협의 하면 온 국민이 따라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가?”라며 일본의 태도가 지극히 부적절하다는 점을 꼬집었다. 10억 엔을 내놨다는 건 저들이 잘못한 게 있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돈으로 때우는 게 아니라 진정한 사과가 우선 되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

 

여기에 대해서는 전원책 변호사 역시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과 일본이 위안부 합의란 걸 했다. 그런데 무슨 권리로 하냐. 박근혜 정부나 당시 서명한 윤병세 장관, 이병기 비서실장이 어떤 권리로 합의했는지 국회가 따져봐야 한다. 위안부 문제는 위안부 할머니가 당사자다. 이분들이 위임해준 적이 없는데 무슨 자격으로 그걸 했냐는 거다. 법률적으로 무효다.”라고 그는 말했다.

 

유시민 작가는 이 한일 문제에 있어서 망각이라는 키워드를 끄집어냈다. 그는 삼국시대에서 통일신라로 가면서 치렀던 학살을 잊을 수 있어서 한민족 공동체가 성립됐던 것처럼 망각 없이는 공동체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망각을 가능하게 해주는 기본 전제는 진정한 사과라는 걸 명확히 했다.

 

유시민 작가가 갖가지 복잡해 보이는 시사적인 사안들을 갖고 와도 명쾌하게 그것들의 진상을 드러내주는 방식은 어찌 보면 너무나 간단하다. 지극히 보편타당한 상식과 논리가 그것이다. 바로 이 점은 아마도 대중들이 유시민 작가에 열광하는 가장 큰 이유일 게다. 좋은 세상이 대단한 어떤 것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며, 상식만 지켜도 보다 좋은 세상이 될 수 있다는 걸 이제 대중들도 알게 됐기 때문이다

<푸른바다>의 눈 먼 어른은 진실에 눈 뜰 수 있을까

 

과연 그는 진실을 마주할 용기를 낼 수 있을까. SBS <푸른바다의 전설>이 진실이라는 새로운 카드를 꺼내들었다. 사라진 아버지를 찾기 위해 몰래 집으로 들어가 아버지와 마주친 허준재(이민호)는 어두컴컴한 방에서 시력을 잃어가며 죽어가고 있는 아버지에게 소리쳤다. “도대체 여기서 뭘 보고 계신 거냐구요? 여기 더 있다간 아버지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구요.”

 

'푸른바다의 전설(사진출처:SBS)'

허준재의 이 외침은 어째 예사롭지가 않다. 점점 시력을 잃어가며 앞을 보지 못하는 그의 아버지 허일중(최정우)이란 캐릭터 역시 마찬가지다. 그저 심청전의 심봉사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캐릭터처럼 보였지만, 거기에는 또한 눈이 있어도 앞을 보지 못하는 어른들을 표상하는 의미가 담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허일중은 아들의 그런 이야기가 다 거짓말이고 사기 같다. “여긴 내 집이야. 내 집에서 내가 무슨 일을 당한다고 그래.” 자신이 있는 곳이 바로 집이기에 자신이 거기 감금되어 있다고는 상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허준재는 허일중의 비서 남부장(박지일)이 사고를 당한 것도 또 아버지가 이렇게 된 것도 모두 새 어머니 강서희(황신혜) 때문이라고 폭로한다.

 

하지만 허일중은 그걸 믿으려 하지 않는다. “니가 지금 여기 어떻게 들어왔는지 모르겠지만 10년 만에 집에 들어와서 한다는 짓이 어머니를 모함하는 거냐?” 그것을 받아들이는 일은 허일중 자신의 과거 선택이 잘못됐다는 걸 인정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 아버지 선택은 잘못됐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다.” 그렇게 허준재는 얘기하지만 허일중은 그걸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다.

 

니가 뭔데 그걸 판단해. 내 선택이야. 내 인생이고. 잘못 되지 않았어. 난 행복했다. 겨우 시력이 조금 떨어지는 걸 가지고 내 선택이 내 인생이 실패했다고 말하고 싶은 거냐? 이 눈, 수술하면 다 나아져. 내 몸 상태가 나빠서 수술 못하고 있을 뿐이야. 수술만 하면은.” 그는 여전히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하고 심지어 자신의 인생이 행복했다고 말한다. 그것이 사실은 강서희에게 농단된 삶이었다는 걸 인정하지 못한다.

 

아버지는 눈앞에 있는 저만 못 보시는 게 아니네요. 아무것도 못 보시네요. 아버지 인생이 어디로 떨어지고 있는지 볼 생각조차 없으시네요.” 허준재의 이 말은 사실이다. 과거의 잘못된 선택을 인정하지 못하는 허일중은 진실을 모른다기보다는 진실을 바라볼 용기가 없는 것이다. 그것을 보고 인정하는 순간 자신이 살아왔던 삶이 무화되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애써 부정한다. “17년을 같이 산자신이 강서희를 누구보다 잘 안다고 믿고 싶다.

 

어째서 이들의 대화는 드라마 속의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을까. 허일중이라는 눈 먼 어른의 캐릭터를 통해 담아내고 있는 이 이야기는 우리가 지금 처해 있는 일부 눈 먼 어른 세대들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다가온다. 눈 앞에 이미 저들에 의해 농단된 현실을 마주하면서도 그것이 모두 거짓이라고 말하는 일부 눈 먼 어른들. 그들이 목소리를 높일 때마다 도대체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않고 생각했던 그들.

 

하지만 그렇게 진실을 바로 바라본다는 건 실로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푸른바다의 전설>은 에둘러 말해준다. 그 선택은 분명 잘못됐었지만 그걸 인정하는 건 자신의 삶을 부정하는 일처럼 다가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 역시 이미 알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걸 인정하지 않는 한 멀어가던 눈을 다시 뜰 수는 없다는 걸 말이다. 과연 <푸른바다의 전설>은 어떤 결말을 보여줄까. 그들은 다시 눈을 뜰 수 있을까. 흥미로워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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