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류’, 이 혼탁한 세상을 이들은 함께 헤쳐나갈 수 있을까

탁류

“우리 아버지 머슴이여.” 디즈니+ 드라마 <탁류>에서 무덕(박지환)의 안사람 작은애(오경화)는 남편이 왈패의 엄지가 됐다는 소식을 듣고는 시율(로운)을 앉혀놓고 다짐을 받아 놓으려 한다. 무덕이 엄지가 된 건 바로 남다른 완력과 싸움 기술을 가진 시율 때문이라는 걸 알아차려서다. 그는 자신이 어쩌다 무덕의 아내가 되어 살게 됐고 그를 살게 해준 무덕이 어떤 사람인가를 알려주기위해 먼저 자신의 기구했던 삶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근디 흉년에 너무 먹을 게 없어 갖고 울 큰언니 갖다 팔았어. 고다음 보릿고개엔 둘째 언니를 갖다 팔고. 아들은 팔 수 없응께 내 차례가 됐지. 대감집 종으로 팔려 갔는디 역병에 걸려 갖고 피를 토항께 그냥 길바닥에 픽 버리고 가대. 열이 펄펄 나 갖고 눈밭에 누웠는디 추운 줄도 몰랐어.” 사람 목숨이 쌀 줌도 안되는 가치로 평가받던 민초들의 삶이 그녀의 이야기 속에 묻어난다. 살려고 자식을 팔고, 그렇게 팔려간 이는 병에 걸리면 버려지던 그런 시대. 이 대사는 <탁류>라는 작품이 담고자 하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누구인가를 잘 드러낸다. 그건 바로 민초들이다. 

 

<탁류>를 쓴 천성일 작가는 물론 <도망자 PLAN B>나 영화 <7급공무원> 같은 현대극을 집필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사극 <추노>로 기억되는 작가다. 그만큼 <추노>라는 작품이 파격적인 명작으로 대중들에게 기억되고 있기 때문이다. 도망 노비와 그 노비를 잡는 추노꾼들의 이야기를 통해 역사가 버린 민초들의 삶을 사극을 통해 기록하려 했던 이 작품은 해학적이면서도 비장한 서사로 시청자들을 매료시켰다. <탁류>는 오랜만에 천성일 작가가 바로 그 계보를 잇는 작품으로 되돌아온 느낌이다. 저 작은애의 말처럼 이 작품은 가진 것 없이 가난해 가족에게조차 버려진 이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눈 떠 보니 요 집이여. 저 냥반이 몇 달 동안 괴기도 멕이고 약도 멕이고 그러면서 나를 살려내더라고. 그 길로 쭉 눌러 앉아 갖고 그 사람 각시가 됐제. 그 사람 아주 작지만 선한 마음이 있어. 근디 것도 너무 작아 갖고 없는 거나 매한가지여. 근디 그랴도 쬐끔은 살 자격이 있지 않겄는가. 내가 밥은 잘해 줄랑께 그 사람 등지지만 말어. 응? 약속할 수 있지?”

 

작은애가 시율에게 하는 이 말은 <탁류>가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풀어나갈 것인가를 예감케 한다. 그건 이 혼탁한 마포나루의 강물 같은 세상 속에서 가진 것 하나 없는 이들이 어떻게 살아남고 살아나가는가를 그릴 거라는 이야기다. 없어도 설움 받고 버림받는 이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서로 싸우면서도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아주 작지만 선한 마음’들로 버텨낸다. 무덕이 저 작은애의 숨을 이어 붙였듯이, 이제 시율은 무덕과 그 식솔들이 살아갈 수 있게 손을 내밀어준다. 

 

세상은 탁류 그 자체다. 마포나루 왈패들은 몸뚱아리 하나로 먹고 살려 이들의 고혈을 짜고, 관리들은 그 왈패들의 고혈을 짠다. 아무거나 갖다 붙여 세를 받고, 그 세금은 그 위로 상납된다. 사극으로 그려진 옛 세상의 풍경이지만, 지금이라고 다를까 싶은 시청자들도 적지 않을게다. 죽어라 일해도 뭐 하나 나아지는 것 없어 보이는 막막한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분들이라면 더더욱. 

 

“이런 게 가족입니다. 함께 하면 부러지지 않습니다.” 시율은 싸리비를 예로 들어 자신들이 어떻게 이 험난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가를 말한다. 그러자 작은애가 옆에서 장단을 쳐준다. “고럼 같이 먹고 같이 굶고 그게 가족이지.” 이 작지만 선한 마음들은 과연 저 거센 탁류 앞에서 지켜지고 서로를 살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을까. 해학적인 인물들에 웃다 보면 어느새 눈물 나는 천성일표 민초 사극에 각별한 애정이 가는 이유다.(사진:디즈니+)

다시 주목받는 가족서사, 우리 시대의 가족은?

가족드라마가 점점 퇴조하면서 가족은 지나간 옛 코드라 여겨졌지만 최근 들어 가족 서사는 다시금 전면에 떠오르고 있다. 어째서 가족 서사가 다시 부상하고 있을까. 또 그 가족 서사는 과거와 무엇이 달라졌을까. 

나미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가족의 탄생

최근 ENA에서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나미브’는 해고된 스타 제작자 강수현(고현정)이 방출된 장기 아이돌 연습생 유진우(려운)를 스타로 키워내 재기하려는 과정을 담은 작품이다. 소재적으로 보면 ‘드림하이’나 ‘아이돌:The Coup’ 같은 K팝 아이돌을 소재로 담고 있지만, ‘나미브’에서 어른거리는 건 가족 서사다. 강수현은 잠시 한눈을 판 사이 아들 심진우(이진우)가 교통사고를 당해 청각을 잃게 된 데 대한 죄책감에 어떻게든 돈을 벌어 아들의 미래를 열어주려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그런 강수현의 집착은 남편 심준석(윤상현)도 또 심진우도 오히려 힘겹게 만든다. 심진우는 자신이 원하는 것도 아닌 미래를 강요하는 엄마 때문에 힘겨워 하고, 심준석은 결국 이혼서류를 내민다. 이 위기의 가정에 소속사에서 방출되어 갈 곳 없게 된 유진우가 들어온다. 그는 천재적인 재능을 가졌지만 어려서 부모에게 버림받은 충격 때문에 자해를 하는 등 심적으로 불안한 상태다. 그래서 ‘나미브’가 그리는 건 유진우라는 연습생이 스타로 성장하는 과정만이 아니다. 가족으로부터 버려져 불안하게 떠돌던 이 인물이 강수현과 심준석, 심진우가 같은 이들과 만들어가는 새로운 가족의 틀에서 안정감을 찾아가는 과정 또한 담겼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결코 느낄 수 없었던 가족애를 혈육 바깥에서 찾는 이야기. ‘나미브’는 그 새로운 가족 서사를 꺼내놓고 있다. 

 

최근 전편이 공개된 쿠팡플레이 ‘가족계획’도 마찬가지다.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영수(배두나)네 가족은 어딘가 특이하다. 영수는 타인의 기억을 자유자재로 편집할 수 있는 특수한 능력을 가졌고 그녀의 남편 철희(류승범)는 수십 명쯤은 맨손으로 때려잡는 무공의 소유자다. 쌍둥이 지훈(로몬)과 지우(이수현)도 전학 온 학교에서 단번에 일진들을 때려눕히는 아이들이고, 할아버지 강성(백윤식)도 그런 아이들에게 ‘힘 조절’을 하라고 말하는 인물이다. 알고 보면 이들은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이 아니다. 아이들을 훈련시켜 살인무기로 만드는 특수교육대대라는 곳에서 함께 탈출해 꾸려진 가족이다. 그런데 이 모래알 같은 가족은 위기를 맞게 되면서 진짜 끈끈한 가족애를 드러낸다. 헌신적인 희생을 해온 영수를 중심으로 똘똘 뭉친 이 이상한 가족은 그렇게 진짜 가족이 되어간다. 피와 살점이 튀는 잔혹극 형식을 장르로 가져온 작품이 훈훈한 가족드라마 같은 느낌을 주는 이유다. 

 

이 새로운 가족이 태생적 가족보다 낫다?

흥미로운 건 이 혈연 바깥에서 새롭게 탄생한 가족이 기존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과 대결구도를 보이기도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종영한 JTBC 드라마 ‘조립식 가족’에서 윤정재(최원영)라는 아빠를 중심으로 김산하(황인엽), 윤주원(정채연), 강해준(배현성) 그리고 김대욱(최무성)이 말 그대로 조립식으로 꾸려낸 가족은 피로 연결된 혈육 관계의 가족들과 대결구도를 갖게 된다. 즉 진짜 가족 이상으로 끈끈하게 잘 살아가고 있는 이들 앞에 떠났던 부모들이 나타나 자식들을 데려가려 하면서 갈등이 생겨난다. 가족 코드에 더 몰입하는 중국드라마를 원작으로 가진 리메이크 작이지만 ‘조립식 가족’이 보여주는 이 새로운 가족의 서사는 국내 시청자들의 마음에도 울림이 적지 않았다. 가족드라마는 한때 공고했지만 지금은 사라져가고 있는 가부장제 시스템의 퇴조와 함께 힘을 잃은 지 오래다. 하지만 힘을 잃은 건 가부장적 시스템을 그대로 가져온 옛 가족드라마들일 뿐, 현재의 달라진 환경에 맞는 가족코드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걸 ‘조립식 가족’ 같은 작품이 보여준다. 

 

혈육이 아닌 타인이 가족이 되는 이런 새로운 경향은 사극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최근 JTBC에서 방영되고 있는 ‘옥씨부인전’에는 구덕이(임지연)라는 노비 신분의 인물이 옥태영이라는 양반가의 딸로 신분이 바뀌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가짜 옥태영을 가족으로 받아들인 건 다름 아닌 진짜 옥태영(손나은)의 할머니인 한씨부인(김미숙)이다. 한씨부인은 구덕이의 심성과 남다른 능력을 알아보고 그녀를 옥태영으로 살게 해준다. 이를 극구 사양하던 구덕이는 옥태영이 외지부(당대의 변호사)가 되어 억울한 일을 당한 힘없는 백성들을 돕겠다는 그 큰 뜻을 자신이 이뤄주겠다며 그 새로운 삶을 받아들인다. 그렇게 가짜 옥태영의 삶을 살게 되지만, 구덕이는 그 삶을 통해 막심(김재화), 도끼(오대환), 백이(윤서아), 끝동이(홍진기) 같은 노비들과 진짜 가족 같은 관계를 만들어간다. 그들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나서서 해결해주고, 노비와 상전 같은 상하관계가 아닌 수평적 가족 관계를 이어간다. 그런데 이렇게 이어진 구덕이와 그 주변인물들을 위협하는 이들은 혈연이지만 비뚤어진 가족관계를 가진 자들이다. 자기 아들이 노비인 백이를 좋아하게 되자 그 사이를 떼어놓기 위해 사람을 시켜 아들이 보는 앞에서 백이를 욕보이게 하려 했던 송씨부인(전익령)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자기 자식에 대한 엇나간 이런 집착은 결국 그 아들마저 자진하게 만드는 비극으로 끝이 난다. 

 

가족 바깥에서 찾아낸 새로운 가족

알다시피 가족드라마는 퇴조한 장르라 여겨진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건 가족드라마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KBS 가족드라마의 추락이다. 한때 50%까지 육박하던 KBS 가족드라마의 시청률은 최근 몇 년 사이 급속도로 떨어져 이제 20%도 넘기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물론 이 수치도 적은 건 아니지만, 과거에 비해 가족드라마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빠지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렇게 된 건 실제 우리네 사회가 1인가구가 급증하는 등, 과거 같은 대가족 체제가 사라지고 있는 현실과 맞물려 있다. 이제 더 이상 대가족이 등장하는 옛 가부장적 틀의 가족 서사가 공감을 주지 못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족 서사 자체가 무의미해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확실히 단촐해졌지만 여전히 가족 안에서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최근 등장하는 작품들에는 여전히 가족 서사에 대한 갈증들이 어른거린다. 다만 그 가족 서사는 과거의 가부장적 시스템과는 완전히 달라진 경향을 보일 뿐이다. 옛 방식의 가족 서사를 깨고 새로운 가족을 내세우는 건 그래서 최근 작품들의 새로운 경향이 되고 있다. 영화 ‘대가족’ 같은 작품을 보면 정자 기증이라는 코미디 코드를 활용해 우리 시대의 가족의 범주가 어디까지인가 대한 새로운 질문들을 유쾌하게 던지고 있다. ‘대가족’의 ‘대’가 ‘크다’가 아닌 ‘대하여’의 의미를 담아 영문 제목이 ‘About Family’인 이유다. 

 

‘나미브’의 강수현 가족과 유진우가 만들어가는 새로운 조합의 가족 서사나, ‘가족계획’이나 ‘조립식 가족’에서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이들이 가족이 되어가는 이야기는 이제 우리 시대가 꿈꾸는 새로운 가족의 그림들을 그려낸다. 이미 이런 변화의 징후들은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나 ‘남남’ 같은 작품들에서 피어나고 있었고, ‘히어로는 아닙니다만’ 같은 새로운 장르물과도 엮어지며 그 모습을 드러낸 바 있다. 한때 퇴조했다 여겨졌던 가족서사는 그래서 새로운 관계들을 등장시키며 다시 부활하는 중이다. 어쩌면 K콘텐츠의 핵심적인 매력이었다고 볼 수 있는 가족 서사는 이제 달라진 시대에 맞춰진 옷을 입을 화려한 외출을 하고 있는 중이다. (글:시사저널, 사진:ENA, 쿠팡플레이)

가족계획

이 가족, 어딘가 괴상하고 수상하다. 할아버지와 엄마, 아빠 그리고 쌍둥이 고등학생으로 구성된 가족이지만 딱 봐도 진짜 핏줄로 이어진 가족은 아니다. “내가 그 엄마 코스프레 좀 하지 말랬지. 친엄마도 아니면서 XX.” 엄마 역할(?)을 하고 있는 영수(배두나)에게 딸 역할 지우(이수현)가 욕설을 섞어 하는 말 속에 이들 가족이 얼마나 모래알 같은가가 잘 드러나 있다. 게다가 할아버지 강성(백윤식)은 지우에게 새로 전학 온 학교에서 건드리는 애들을 대비해 쇠구슬이 들어간 무기를 만들어주는 인물이고, 아빠 철희(류승범)는 영수 말이라면 물라면 물고 멈추라면 멈추는 인물로 아이들에게 제발 평범하게 좀 지내라고 당부한다. 

 

쿠팡플레이 드라마 ‘가족계획’은 제목에 ‘가족’이 들어가 있긴 하지만 어딘가 진짜 가족처럼 보이지 않는 영수네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다. 이 이상한 가족은 드라마 시작과 함께 짧게 보여주는 1996년도 특수교육대대라 불리는 곳에서 만났다. 버려진 아이들을 감금해 놓은 곳. 그 곳을 이끄는 안소진 대위(진서연)는 거기가 이제 ‘집’이고 자신이 앞으로 그 아이들의 ‘엄마’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탈출’은 생각도 하지 말라며 바깥세상은 더 큰 고통이 될거라고 엄포를 놓는다. “여길 나가는 순간 진짜 지옥이 시작될 거다. 너랑 그 핏덩이들 갈기갈기 찢어 죽일 때까지 내가 매일 추적자를 보낼 거니까.” 그 엄포에도 불구하고 영수네 가족은 그 곳을 탈출했고 그래서 늘 따라붙는 추적자들로부터 도망치며 맞서는 중이다. 

 

물론 그 곳에서 특수한 교육(?)을 받은 이 이상한 가족의 삶이 평범할 수는 없다. 맨손으로 수십 명 때려눕히는 건 일도 아니고, 특히 영수는 ‘브레인 해킹’이라는 기막힌 능력을 갖고 있다. 그녀가 “주목”이라고 외치는 순간 시작되는 이 브레인 해킹은 실제로 하는 것이 아니지만 상대의 기억 속에 고통스런 고문의 기억을 새겨넣을 수 있는 능력이다. 전학 오자마자 지훈(로몬)과 지우를 괴롭히는 일진 조규태(배재영)에게 영수는 허벅지 살을 도려내는 고통의 기억을 심어 놓음으로써 결국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만든다. 이 일로 인해 영수네 가족은 조규태네 가족인 조폭 조해팔(유승목)과 오길자(김국희)와 대결하게 되고, 그들을 뒤에서 조종하는 열망교회 윤명환 목사(남윤호)와도 맞서게 된다.

 

수위 높은 폭력과 액션이 펼쳐지는 19금 드라마지만, 이 드라마가 독특한 건 ‘가족’과 ‘기억’이라는 키워드를 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집과 엄마라고 부르는 특수교육대대와 그 곳을 이끄는 안소진 대위로부터 탈출한 영수네 가족은 역시 핏줄로 연결된 진짜 가족은 아니지만 시시각각 그들을 위협해오는 외부세력과 맞서 나가며 점점 가족이 되어간다. 그 가족의 중심에는 엄마 영수가 있다. 외부에 알려지면 안된다는 이유로 사진조차 찍지 못하게 하는 엄마에게 ‘엄마 코스프레’ 하지 말라며 툴툴대던 지우는, 그것이 플래시만 터지면 발작하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영수를 엄마라 부르기 시작한다. 브레인 해킹을 하면 영수 또한 고통을 겪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지훈은 엄마를 걱정하기 시작한다. 희대의 빌런으로 등장한 오길자가 지우를 납치하자 맨몸으로 뛰어들어 사투를 벌이는 영수의 모습은 이들이 영락없는 가족이라는 걸 증명해 보여준다. 

 

또한 이 이상한 가족은 과거 특수교육대대에서의 끔찍한 기억 속에서 살아간다. 그래서 그 곳으로부터 탈출하긴 했지만 그 트라우마가 트리거가 되어 한 순간에 괴물처럼 변하기도 한다. 플래시가 터지면 눈이 돌아 누군가의 피를 봐야 진정되는 지우가 그렇다. 그런 지우를 위해 영수는 기꺼이 자신의 피를 흘려줄 수 있는 엄마다. 잔혹극의 형태를 가졌지만 ‘가족계획’에는 이처럼 아픈 기억을 극복해가며 진짜 가족이 되어가는 따뜻한 가족드라마가 숨겨져 있다. 

 

‘마음은 혼자만의 장소다. 그 안에서는 지옥도 천국으로, 천국도 지옥으로 바꿀 수 있다.’ 존 밀턴의 ‘실락원’에 나오는 한 대목을 자막으로 보여주며 시작하는 이 드라마는 잔혹극 형태로 진짜 가족의 의미를 묻는다. 가족이라고 하지만 타인보다 더 잔혹한 가족이 있는 반면, 완전한 타인이지만 잔혹한 바깥세상으로부터 안전하게 보듬어주는 진짜 가족이 있다. 어떤 마음으로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지옥도 천국도 될 수 있는 가족. ‘가족계획’이라는 잔혹하지만 따뜻한 세계가 그려놓은 가족의 풍경이다. (글:일간스포츠, 사진:쿠팡플레이)

로이킴의 ‘로이액추얼리’, 스토리텔러다운 다채로운 사랑 이야기들

로이 액추얼리

로이킴은 어딘가 추운 겨울에 어울리는 목소리의 소유자다. 한없이 부드럽고 달달하지만 때론 격정을 향해 쏟아내는 그의 목소리는 늘 힘겨운 현대인들의 마음을 향해 있었다. 그래서 추운 겨울, 더더욱 한기가 느껴지는 마음에 로이킴의 노래는 각별하게 다가온다. 먼저 귀를 호강시키지만, 거기 머물지 않고 가슴으로 울려퍼지는 요동을 느끼게 한다. 그것은 노래와 더불어 따뜻함이 묻어나는 가삿말이 주는 힘이기도 하다. 

 

지난 6일부터 8일까지 서울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린 로이킴의 단독콘서트 ‘로이 액추얼리(Roy actually)’는 ‘사랑’을 테마로 삼았다. 겨울이면 떠오르는 영화 ‘러브 액추얼리’를 오마주한 ‘로이 액추얼리’는 최근 그가 신곡을 발표한 ‘내게 사랑이 뭐냐고 물어본다면’이라는 곡에서 연결된 서사로 관통되는 무대였다. 

 

콘서트는 로이킴이 길거리에서 아무에게나 다가가 사랑에 대해 물어 담아낸 인터뷰 영상으로부터 시작됐다.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나눔을 이야기하기도 하며, 엄마와 아빠의 사랑은 물론이고, 절절한 연인의 사랑까지 담아낸 그 영상은 영화 ‘러브 액추얼리’가 그려냈던 다양한 사랑의 양태들이 이 콘서트를 통해 펼쳐질 거라는 기대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무대는 로이킴이 그간 얼마나 다양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들을 노래에 담았는가를 증명하는 시간들이었다. 어느 날 우연히 여의도에서 보게 된 잘 차려입고 캠코더를 들고 있는 할아버지를 보며 상상해 썼다는 ‘할아버지와 카메라’가 노년 부부의 사랑을 담았다면, 어릴 적 추억을 그리며 썼다는 ‘어른으로’는 ‘아무 일도 없게 해주세요’라고 어른이 되어 말하게 됐다는 화자의 가삿말이 절절한 공감을 담았다. 또 세상을 떠난 반려견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담은 ‘홈(Home)’에서는 ‘웃으며 마중을 나가는 게 너에게 해줄 수 있는 나의 유일한 선물’이라는 가사가 지친 이들의 어깨를 토닥여주기에 충분했다. 

 

로이킴은 ‘로이 액추얼리’라는 오마주에 걸맞게 자평 ‘최초의 라이브 뮤직 드라마’를 선보이기도 했는데, 화면 가득 영화 같은 장면들과 내레이션이 얹어지고 그 스토리에 마치 OST처럼 ‘그때 헤어지면 돼’, ‘우리 그만 하자’, ‘그때로 돌아가’, ‘잘 지내자, 우리’를 연달아 부르는 독특한 무대가 펼쳐졌다. 로이킴의 노래에도 특징적인 스토리텔링을 극대화한 완성도 높은 무대가 아닐 수 없었다.   

 

로이킴은 공연 장인이라는 평에 걸맞는 무대 센스와 소통을 보여주기도 했다. 마치 애인과 밀당이라도 하듯 나누는 관객들과의 대화는 물론이고, 무대 위에서 옷을 갈아입는 퍼포먼스를 깜짝 선보이기도 했고, 모두가 기립해 답답한 현실을 한방에 날리는 흥겨운 시간들 또한 적극적으로 이끌어냈다. 그는 자신의 절친이 했던 짝사랑의 이야기를 담은 미발매곡 ‘그대의 두 눈을 보고 말하고 싶어요’를 들려주기도 했는데, 짝사랑의 애절함이 스토리와 어우러져 관객들을 촉촉하게 만들었다. 

 

로이킴이 ‘로이 액추얼리’에 담아낸 건 세상에 대한 대단한 메시지 같은 그런 건 아니었다. 그가 담으려 한 건 사랑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런데 그 사랑은 연인의 사랑을 넘어서 사람으로서의 인간애 같은 것들 또한 포함하는 것이란 점에서 답답하고 ‘정신없는’ 요즘 같은 시절에 소박하지만 따뜻한 위로와 응원을 전해주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유독 추운 겨울, 따뜻함 또한 커진 시간이었다.(사진:웨이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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