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진짜 돈 되는 건 다하는구나?” 허진호 감독의 영화 ‘보통의 가족’에서 재규(장동건)는 살인자를 변호하게 된 재완(설경구)에게 그렇게 비아냥댄다. 재완은 도로 위 시비 끝에 차로 치어 사람을 죽게 만든 의뢰인을 변호해야 하는 입장이다. 마침 그 차에 함께 타고 있다 크게 다친 피해자의 딸이 재규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재완은 그녀를 꼭 살려달라고 부탁한다. 그 생명의 소중함 때문이 아니라 그래야 의뢰인이 피해자와 해야할 합의에 유리할 것 같아서다. 그런 자신에 대해 재규가 비아냥대자 재완은 말한다. “넌 네 일 하는 거고 난 내 일 하는 거야.”
네 일과 내 일. 각자 자기가 맡은 대로 그 역할을 하는 건 상식이다. 하지만 “형은 돈 벌려고 하는 거고 나는 사람 살리려고 하는 일”이라는 재규의 말처럼, 이들의 일은 각각 가해자와 피해자를 돕는 거라는 점에서 달라보인다. 그렇게 가해자와 피해자 측으로 나뉘어 있는 것처럼 보이던 그들이 이제는 같은 위치에 서게 되는 사건이 터진다. 재완의 딸과 재규의 아들이 노숙자를 폭행하는 동영상이 퍼진 것이다. 처벌을 받게 할 것인가, 그대로 묻을 것인가. 더 이상 남 일 아닌 자식 문제 앞에서 엇갈린 형제의 갈등이 파국으로 치닫는다.
‘보통의 가족’이 충격적인 건 재완과 재규가 극단적인 선도 악도 아닌 보통으로 그려진다는 점이다. 직업에 충실하고 자식 사랑이 지극한 보통의 아빠이자 남편들이다. 그런데 자식이 연루된 사건 앞에서 그 보통은 비정상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사자 직업’으로 대변되는 성공지상주의나, 내 자식만 잘 되면 된다는 이른바 ‘내 새끼 지상주의’가 당연한 보통이 되어버린 우리 사회. 그 비정상적인 보통을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다. (글:동아일보, 사진: 영화 '보통의 가족')
어두운 밤 구불구불한 도로 위를 차 한 대가 달려나간다. 부감으로 비춰지는 그 광경 속에서 이 차는 어떤 방향으로 갈 지를 전혀 가늠이 되지 않는다. 헤드라이트의 불빛만이 거기 차가 있고 길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그 차가 한 참을 지났을 때 저 편에 온통 불빛들이 모여 있는 광경이 펼쳐진다. 그건 딱 봐도 사건 현장이다. 어둠 속을 뚫고 그 차들이 모여 빛이 겹쳐져 있는 사건 현장을 향해 달려가는 차의 모습은 앞으로 이 드라마가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펼쳐 나갈 것인가를 가늠하게 해준다.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진실을 향해 어둡지만 계속 나아가겠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것은 MBC 금토드라마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첫 회의 오프닝 시퀀스다. 그 차를 몰고 진실을 향해 가는 인물은 바로 베테랑 프로파일러 장태수(한석규)다. 현장을 슬쩍 훑어 보기만 해도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를 척척 알아보는 이 인물은 어딘가 이 일이 고통스러운 모습이다. 도움을 요청하는 오정환(윤경호) 강력1팀 팀장이 투덜대게 만들 정도로 퉁명스럽게 현장을 훑어본 후 곧바로 귀가한다. 그의 마음에는 아내가 죽고 하나 남은 유일한 가족인 딸 장하빈(채원빈)에 대한 양가적인 감정이 담겨 있다. 딸이니 챙겨야 한다는 부성애가 존재하지만, 동시에 그는 딸을 의심한다.
장태수가 딸을 의심하게 된 건 하빈이 어려서 겪은 비극적인 사건과 연관되어 있다. 캠핑을 갔다가 남동생과 함께 산으로 들어간 어린 하빈이 동생의 시신과 함께 발견된 것이다. 벼랑에서 떨어져 사망한 것으로 보이는 남동생과 피투성이로 나타난 하빈. 장태수는 하빈이 하는 말들이 거짓말이라는 걸 프로파일러라는 직업적 감각으로 알아차린다. 그래서 왜 거짓말을 했냐고 닦달하지만 끝내 하빈은 자기가 죽이지 않았다고 말하고, 이 일로 장태수는 아내 윤지수(오연수)와 틀어지게 된다. 결국 이혼하고 윤지수는 자살하고 마는데, 그렇게 남겨진 장태수와 장하빈은 결코 원만한 부녀 관계가 어려워진다.
그리고 마침 산 속의 어느 허름한 집에서 발견된 2리터에 가까운 피로 사체 없는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그 곳에 무슨 일인지 장하빈이 왔다 간 흔적들이 발견된다. 마지막 핸드폰이 켜졌던 위치가 바로 그 사건이 발생한 대화산 부근으로 찍혔고, 현장에서 발견된 빨간 섬유가 장하빈이 가방에 매달고 다니던 팬던트에서 나온 것이었기 때문이다. 또다시 장태수는 딸을 의심하게 된다. 그 곳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의 피해자가 마지막으로 만난 인물이 바로 딸이었다는 증언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는 이처럼 프로파일러인 장태수가 사건을 추적하면서 그 용의자가 자꾸만 딸 장하빈으로 좁혀지는 상황을 마주하면서 갖게 되는 복잡한 심리를 다루고 있다. 공적으로는 프로파일러로서 진실을 추적하는 것이 그의 일이지만, 그 화살이 자신의 가족을 향할 때 갖게 되는 고통이 그것이다. “범죄자 마음을 귀신 같이 읽으면서 애 마음을 그렇게 몰라?” 아내 윤지수가 아들의 죽음에 딸을 의심한 장태수를 나무란다. “무조건 믿어야지. 그게 그렇게 어려워?” 아내는 그렇게 말했지만 장태수는 도무지 모르겠다며 괴로워한다.
아들의 죽음이 딸 때문이라고 의심하고, 그것 때문에 이혼한 아내가 자살하게 된 것까지 장태수는 모두 자신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자책감을 갖고 있다. 그런데 그에게 또다시 딸을 의심하게 만드는 사건이 눈앞에 벌어지고 있다. 딸을 믿고 싶지만 거짓말을 하는 것이 너무나 잘 보이는 프로파일러라는 직업 앞에서 장태수는 괴로워한다.
“팀장님은 피곤하시겠어요. 남들보다 많은 게 보이는 사람은 모른 척 할 게 그만큼 많아지는 거잖아요.” 신입으로 들어온 프로파일러 이어진(한예리)가 하는 말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보다 객관적으로 사건을 들여다보고 진실을 보기 위해 의심하는 게 일이 되어버린 장태수는 범죄 현장에서는 베테랑이지만 가족까지 의심하게 되는 사건을 마주하면서 가족은 물론이고 자신마저 파탄지경의 고통 속으로 빠져든다.
하지만 또 한 명의 신입으로 들어온 구대홍(노재원)은 장태수와도 또 그를 롤모델로 삼는 이어진과도 다른 따뜻한 성품의 프로파일러다. 사람보다 사건을 우선시하는 저들과 달리, 그는 피해자들의 마음을 들여다봐야 제대로 진실을 알 수 있다고 말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이 사건에 장태수와 그 딸이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나서도 쉽게 그 일을 발설하려 하지 않는다. 그는 사건 이면에 무언가 저들이 겪었을 아픔이나 고통을 들여다보려 한다. “가출한 아이들이요. 어떻게든 범죄에 노출될 수밖에 없어요. 열악한 환경에 피해자가 되거나 아니면 가해자로 생존하려는 거죠.” 가출팸을 그저 잠재적 범법자로 보는 시선과 달리 그는 그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가를 들여다보려 한다.
그래서 장태수는 그의 신입들인 이어진과 구대홍의 서로 다른 사건에 대한 접근방식을 통해 자신 또한 변화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그는 사건 현장의 증거들이나 정황을 통해 합리적으로 딸을 의심하지만, 딸이 어떤 일을 겪었고 그로 인해 어떤 심리적 고통이나 아픔을 갖고 있는가는 아직 잘 모르고 있다. 그건 장하빈이 아버지 장태수를 한 집안에서 함께 있는 것조차 힘겹게 만드는 이유가 아닐까. “하준이 말야 정말 사고였을까? 엄마는? 엄마가 정말 자살했다고 생각해?” 장하빈의 그 말은 장태수에게는 마치 그들의 죽음에 장하빈이 연루된 것처럼 들리지만, 그건 어쩌면 장하빈에게는 그들의 죽음이 아빠의 가족에 대한 소홀함이 만든 것이라는 토로일 수 있다.
깜깜한 어둠 속에 헤드라이트 하나를 켜고 달려나가는 자동차처럼, 장태수는 막막한 어둠 속에 놓여 있다. 그건 도무지 진실을 알 수 없는 범죄현장 앞에 서 있는 모습이면서, 동시에 도무지 알 수 없는 딸의 마음을 마주하고 그 문앞에 서서 문을 열까 말까 고심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그 고통스러운 얼굴을 하고서도 끝내 진실을 향해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장태수의 모습은 그래서 인간적이고 숭고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일그러져 있지만 고통을 감내하면서 앞으로 걸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의도적으로 어두운 공간 속에 놓여진 장태수의 모습을 연출적으로 보여주는 건 그의 심리를 이만큼 정확하게 담아내는 미장센이 없어서다. 여기에 그 역할에 힘을 불어넣어주는 한석규의 내면 연기가 묻어난 얼굴과 표정이 대책없이 시청자들의 시선을 빨아들인다. 음영에 도드라진 고통스러운 얼굴이 아름답게 느껴질 정도다. 과연 이 인물은 가시덤불 가득한 그 어둠의 길들을 헤치고 끝내 진실을 향해 나아가 그걸 마주하게 될까. 그것이 어떤 고통과 두려움을 줄 거라는 걸 알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나아갈까.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가 가진 매력적인 힘은 바로 여기서 나온다. (사진:MBC)
“누가 지갑 잃어버렸다고 신고가 들어오면 그 지갑 찾았다고 금방 파출소로 가져고 들어오는 동네가 이 동네야.” KBS 특별기획 주말드라마 ‘다리미 패밀리’는 순찰을 돌며 이 동네의 청렴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경찰들의 목소리로 문을 연다. 동네 이름이 청렴이고, 이제 이 주말드라마의 주인공이 될 다림(금새록)이네 가족이 운영하는 세탁소 이름도 ‘청렴세탁소’다. 좀도둑 한 번 안들었다는 동네. 그 세탁소를 해온 다림의 할머니, 할아버지인 안길례(김영옥), 이만득(박인환)은 실제로 건조기에서 돈이 나오자 챙기기보다는 챙겨주려 하는 인물들이다.
하지만 과연 이러한 청렴은 계속 될 수 있을까. 다림이네 가족은 다림의 아버지가 1차 사시 패스를 수석으로 한 후 연거푸 떨어지면서 가세가 기울어진다. 무려 10차 재수를 하며 희망고문을 하던 다림의 아버지는 결국 병이 들어 사망하고, 다림의 엄마 고봉희(박지영)는 셋이나 되는 아이들에 노시부모들까지 부양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그리고 불행은 그게 끝이 아니다. 다림은 퇴행성 희귀 망막염에 걸려 어릴 때 2.0이던 시력이 0.02가 됐고 점점 주변 시야가 좁아지다 실명할 위기에 처했다.
그렇지만 다림이 살아오면서 느낀 가장 큰 고통은 ‘희망고문’이었다. 아버지의 희망고문이 만들었던 가족들의 아픔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서다. 그래서 심지어 실명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도 그는 “포기하겠습니다”라며 “엄마한테는 말씀하지 말아달라”고 의사선생님에게 말하는 인물이다. 그는 심지어 대학시절 좋아해 하룻밤을 보낸 서강주(김정현)에게조차 전화번호를 알려주지 않으려 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하면 그에게 기대하게 되고 기다리게 될 거라며.
하지만 그렇게 포기가 더 쉽다고 해도, 실명을 벗어날 수 있는 효과 있는 주사가 있다는 의사의 말에 희망을 갖지 않을 수가 있을까. 주사를 맞은 이들이 모두 시력을 되찾았다는 의사의 말에 반색하지만 그 주사비용이 한쪽에 4억씩 무려 8억이라는 말에 다림은 또다시 희망고문에 빠진다. 안 하던 로또를 사서 긁고 또 긁으며 실낱 같은 희망을 걸어보지만 그게 될 턱이 없다. 포기했다 생각했던 희망이 만든 고문 속에 또 다시 빠져든 것이다.
‘다리미 패밀리’에서 다림이네 가족의 짧은 서사는 의미심장하다. 그건 우리가 살아온 삶의 변화를 대변해주는 것 같기 때문이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좀도둑 한 번 안들 정도로 청렴하고 지킬 건 지키던 동네는 세월이 흘러 변해간다. 다림이네 가족이 그러한 것처럼, 아들의 성공에 희망을 걸기도 하며 착하고 성실하게만 살아왔던 우리네 서민들의 삶은 어찌 된 일인지 갈수록 어려워진다. 이런데도 청렴하게만 살 수 있어? 드라마는 그런 질문을 던지는 듯 하다.
물론 ‘다리미 패밀리’는 이러한 불행의 연속을 무겁게 그리지는 않는다. 발랄하고 경쾌하면서도 어딘가 페이소스가 묻어나는 코미디로 담아낸다. 그간 ‘파스타’부터 ‘질투의 화신’ 같은 로맨스와 코미디를 그려온 서숙향 작가의 공력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무겁지 않으면서도 문제의식을 잊지 않는 작품의 전개가 물흐르듯 자연스럽다. 이게 KBS 주말드라마일까 싶은 첫 회의 색다른 풍경이다.
사실 그간 방영됐던 KBS 주말드라마들의 첫 시작을 생각해보라. 거의 문법에 가깝게 극적 사건들이 빵빵 터지고 출생의 비밀의 밑거름을 깔아 놓는 식의 클리셰들도 꽉꽉 채워져오지 않았던가. 그래서 시청자들은 ‘이번엔 좀 다르겠지’ 하다가도 ‘또 시작됐군’ 하면서 기대감을 서서히 접게 되는 ‘희망고문’을 반복해 왔던 게 사실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포기하게 되면서 KBS 주말드라마는 시청률조차 뚝 떨어지는 추락을 겪었다.
‘다리미 패밀리’는 바로 그런 상황에 절치부심한 KBS가 내놓은 새로운 결과물이다. 먼저 서숙향 작가가 주말극에 처음 도전한다는 것 자체가 관심을 쏠리게 만든다. 매력적인 캐릭터와 페이소스가 묻어나는 코미디적 상황 그리고 달달하고 시크한 멜로까지 줄줄이 풀어내는 작가가 아니던가. 그가 시도하는 주말극이니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첫 회가 슬슬 풀어낸 작품의 문제의식은 역시 서숙향이라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가장 좋은 건 과도하게 극적인 상황을 만들어내려는 강박이 별로 없고, 하려는 이야기를 하나하나 풀어나가고 빌드업하려는 작가의 뚝심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완성도를 위해서 주로 50부작으로 기획되던 주말극이 이번에 36부작을 내세웠다는 것도 주목할만한 일이다. 괜스레 고무줄처럼 질질 끌려 늘리기보다는 그만큼 밀도있게 작품을 풀어나갈 수 있는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완성도가 아니면 이제 시선도 주지 않는 현 시청자들의 달라진 눈높이에 조응하는 선택이다.
희망고문은 과연 희망이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다리미 패밀리’의 다림이는 물론이고 그 가족들이 던지는 질문이고, 열심히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우리네 서민들이 다시금 던져보는 질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질문은 또한 그간 난맥상이었던 KBS 주말드라마를 그래도 관심있게 봐온 시청자들의 질문이 될 것이다. 과연 ‘다리미 패밀리’는 그동안 구겨져온 KBS 주말드라마의 주름과 무너진 자존심을 깨끗하게 다려줄 수 있을까. 모쪼록 그 질문의 답이 희망으로 돌아오길 기대한다. (사진:KBS)
“죽는 것보다 못한 고통. 그걸 저에게 주셨어요.” 지니TV 오리지널 월화드라마 ‘유어 아너’에서 송판호(손현주) 판사의 아들 송호영(김도훈)은 속으로 꾹꾹 눌러왔던 그 감정을 드디어 드러낸다. 판사인 아버지가 엄마를 성폭행한 김상혁(허남준)을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리해버린 건 송호영에게는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남았다. 그 충격으로 끝내 엄마가 자살하자 송호영은 ‘죽는 것보다 못한 고통’을 겪었다.
송호영에게 송판호는 그것이 살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말한다. 물론 자신이 아니라 아들을 살리기 위한 선택이다. 직접적으로 얘기하지 않았지만 송판호의 이야기는 아마도 당시 재판 역시 김강헌(김명민) 회장이 감옥에 있는 와중에도 막강했을 우원그룹의 외압이 있었다는 걸 암시한다. 하지만 송판호의 그 선택은 아들에게는 살아도 사는 게 아닌, 고통 뿐인 삶으로 돌아갔다.
송호영은 그래서 자신이 겪은 그 ‘죽는 것보다 못한 고통’을 김강헌에게도 고스란히 되돌려 주려고 복수를 계획한다. 그의 아들을 차로 치어 죽게 하는 것. 송호영이 저지른 뺑소니는 우연이 아니라 계획된 범죄였다. 이로써 김강헌 또한 죽는 것보다 못한 그 고통을 느끼게 됐다. 자신의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운 가족의 죽음. 이 지점은 ‘유어 아너’라는 작품이 여타의 작품들보다 극성이 높은 가장 중요한 이유다.
어찌 보면 드라마에 있어서 극적 갈등의 최고조는 죽음을 염두에 둘 때 생겨난다. 하지만 ‘유어 아너’는 죽음 그 이상의 고통을 극적 갈등으로 가져왔다. 그건 자신이 아닌 가족의 죽음이다. 송판호는 이미 아내를 잃었고 자칫 잘못하면 아들까지 잃게 될 위기에 처했다. 이미 한번 가족이 죽어 ‘죽는 것보다 못한 고통’을 겪어본 그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더더욱 결사적인 입장이 될 수밖에 없다.
이건 김강헌 회장도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 아들을 잃었다.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자지만 그 고통은 똑같이 클 수밖에 없다. 그가 처절한 복수에 나서는 이유다. 그런데 그에게 딜레마가 생겼다. 송호영이 의도적으로 김강헌 회장의 막내 딸 김은(박세현)에게 접근했기 때문이다. 지능장애를 갖고 있어 우울증을 겪으면 위험할 수 있는 김은은 송호영에 의지하기 시작한다. 김강헌 회장은 그럼에도 아들의 죽음에 대한 처절한 복수를 해야할까. 그 복수로 송호영이 죽게 된다면 자칫 딸이 위험하게 될 수도 있는데?
결국 김강헌 회장도 송판호 판사도 모두 자식을 잃게 되는 파국을 맞는다. 김상혁(허남준)에게 총을 쏜 송호영은 김상혁의 엄마 마지영(정애연)의 총에 맞아 사망하고, 죽은 송호영에 슬퍼하던 김은은 약물 과다 복용으로 식물인간이 된다. 살아남은 김상혁은 미국으로 도주하고 마지영의 살인은 충복인 박창혁(하수호)이 뒤집어쓴다. 자식을 잃지 않기 위해 넘지 말아야 할 선까지 넘어가며 안간힘을 썼지만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가 버린 것이다.
‘유어 아너’는 이처럼 송판호와 김강헌 당사자들이 복수하고 반격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들의 가족들이 당하거나 위협받는 상황 앞에서 더 절박해진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자신들이 죽는 것보다 더 두려운 건 가족의 죽음이고 그걸 봐야 하는 고통이다. 송판호와 송호영, 김강헌과 김상혁, 김은이 짝을 이뤄 얽히고 설키는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기 때문에 이 드라마의 갈등 양상은 죽음보다 더 큰 극성을 띠게 된다. ENA 채널로서는 이례적으로 최고시청률이 4.6%(닐슨 코리아)까지 치솟은 건 이 극적 구도에 시청자들이 빨려들어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나의 안위가 아닌 가족의 안위가 달린 문제를 짚어낸 이 드라마는, 정의로운 판사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살인까지 하게 되는 극적 상황들조차 공감하게 만든다. 또한 사람 목숨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이는 비정한 인물인 김강헌 같은 조직 보스조차 가족 안에서는 그다지 보통 사람들과 별다를 바 없는 아버지라는 걸 드러내게 해준다.
가족과 연결된 대결구도로서 시청자들의 시선을 빼앗은 드라마는 그 위에 정의와 생존 사이에 놓여진 딜레마라는 깊이있는 메시지를 던진다. 그래도 죽는 것보다는 나은 게 삶인가. 그래서 정의를 부정하고라도 생존을 선택해야 옳은 일일까. 아니면 그렇게 살아남는 건 차라리 죽는 게 더 나은 고통 속의 삶일 뿐인 것인가. 그러니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정의를 놓치지 않아야 하는 것일까. 강력한 몰입감과 더불어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봐야할 깊이있는 문제의식까지. ‘유어 아너’의 파죽지세는 당연할 수밖에 없었다.(사진:E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