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스필버그의 ‘파벨만스’, 기술과 예술, 현실과 상상 사이

파벨만스

극장 앞에서 어린 샘(마테오 조리안)은 겁에 질려 있다. 영화에는 거인이 등장한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던 모양이다. 그런 샘에서 아버지 버트(폴 다노)는 영화가 사진과 다르지 않으며 여러 사진을 빠르게 돌려 빛에 투과시키면 동영상이 된다는 ‘모션 픽처’의 원리를 설명한다. 그것이 그저 기술이고 허구라는 걸 알려줌으로써 샘이 겁먹지 않게 하려는 아버지의 노력이다. 

 

버트는 컴퓨터 천재 공학도로서 산업 현장에서 맞닥뜨리는 문제들을 기술적인 아이디어를 통해 극복해가며 기술을 발전시키는 인물이다. 그래서 그가 샘에게 하는 영화에 대한 설명은 다소 어린 아이에게는 과하고 딱딱하게 느껴지지만 이해되는 면이 있다. 하지만 그런 버트와 달리 피아노에 천재성을 가졌지만 아이 셋을 낳고 가정에 눌러 앉게 된 엄마 미치(미셸 윌리암스>는 샘에게 다른 이야기를 건넨다. “아들아, 영화는 꿈이란다. 영원히 잊히지 않는 꿈.”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파벨만스>의 이 같은 오프닝은 짧지만 영화에 대한 두 관점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영화는 카메라로 찍고 이를 편집해 영사기에 돌림으로써 가능한 과학적 기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기술이 발전해 더 좋은 카메라가 등장하면 더 좋은 영상들을 보다 쉽게 찍어 영화로 만드는 게 가능해진다. 그것은 결국 영화 역시 자본이 투입되는 현실과 무관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영화는 미치가 말하듯 현실을 훌쩍 넘어서는 상상의 세계를 담아내고, 인간이 꿈꾸는 것을 영상으로 표현해내는 예술이다. 샘은 그래서 버트와 미치라는 서로 다른 삶과 예술에 대한 입장을 가진 인물들 사이에서 태어났고, 그들의 영향을 받아 성장한다. 서로 다른 성향을 가진 부모는 ‘이기적인 삶’을 살지 않기 위해 애써 자신을 누른 채 가족을 지키려 하지만 그건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어서 결국 파열음을 낸다. 

 

샘은 아버지가 평생 엄마를 숭배하듯 헌신해왔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예술과 예술적 삶에 대한 갈증을 억누른 채 평범한 가정에 눌러 앉아 스스로 파괴되어가는 엄마를 이해한다. 어린 샘은 서로 다른 부모를 각각 이해하지만 그들의 부딪침이 갈등을 만들어내는 것을 수용하기가 어렵지만 영화 속에서는 이 배타적으로 보이는 양자들을 끌어안는다. 친구들과 영화를 찍으면서 아버지가 아이디어를 내 문제해결을 해나가는 것처럼 특수효과를 만들어내는데 재기발랄한 아이디어를 낸다. 그러면서 기술과 현실의 차원을 뛰어넘는 예술과 상상으로 그가 만든 영화를 보는 관객들을 감동시킨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파벨만스>는 샘이라는 아이를 통해 그가 가족들과 더불어 친구, 연인들과의 관계는 물론이고 그 과정에서 보고 찍은 영화에 어떤 영향을 받고 성장했는가를 에둘러 담고 있다. 엄마와 아빠의 설득을 통해 처음 그가 보게 된 영화 <지상 최대의 쇼>에서 기차와 자동차가 충돌하는 장면을 보고 충격에 빠진 샘이 선물로 받은 장난감 기차와 자동차를 충돌시켜 보고 엄마의 제안으로 그걸 카메라에 찍게 되는 장면은 그의 영화가 어떻게 탄생했는가를 잘 보여준다. 

 

영화에 대한 헌사를 담은 영화들이 있다. 엔리오 모리꼬네의 음악으로 기억되는 <시네마 천국>이 그렇고, 최근 방영됐던 <바빌론>도 그렇다. 이중 <파벨만스>는 <시네마 천국>에 더 가까운 영화지만, 그 안에는 스티븐 스필버그라는 거장의 영화가 어떤 토양에서 어떤 영향들을 받아 탄생했는가에 대한 단초들이 담겨있다. 영화 속에서 보리스 삼촌이 등장해 “예술과 가족, 그게 너를 둘로 찢어놓을 거란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가족과 예술의 대립항은 그에게는 중요한 숙제였던 걸로 보인다.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동화 같은 가족애를 담은 영화를 그려내곤 했던 감독이다. <파벨만스>라는 제목이 달린 것도 그래서다. 이것은 샘 파벨만이라는 거장의 탄생을 그리는 영화지만, 그걸 만들어낸 건 그를 둘러싼 가족들의 영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술을 향해 달려가지만 그 지향점으로서 늘 가족을 담았던 스티븐 스필버그의 자전적 이야기지만, 동시에 <파벨만스>는 이를 기반으로 영화가 어떻게 탄생하는가에 대한 이야기까지 담아낸다. 

 

그리고 가족에 대한 각별한 영향을 주고받는 우리에게도 이 영화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그것은 한 재능 있는 아이가 현실을 넘어 꿈을 이뤄가는 그 과정들을 부모들은 어떻게 바라보고 지지해줘야 하는가에 대한 단초가 이 영화 속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두 시간이 훌쩍 넘는 영화지만 가슴 따뜻한 이야기를 보고 나오는 길에 그 누구라도 자신의 가족들을 되돌아보게 되는 영화가 아닐 수 없다. 아마도 그것이 스티븐 스필버그가 끝내 이 영화를 통해 하고픈 말이었을 지도.(사진:영화 '파벨만스')

입소문 탄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 삶을 꿰뚫는 멀티버스 가족코미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다니엘 콴과 다니엘 쉐이너트 감독의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는 일단 제목이 너무 길어 머릿속에 단번에 입력되지 않는다. 포스터만 봐도 머리가 복잡해진다. 마치 만다라를 들여다보는 것 같은 그 포스터에는 중심에 주인공 에블린(양자경)이 서 있는데 그 뒤로 눈알을 이마에 붙인 복면의 존재가 마치 그를 조종하는 듯 보인다. 그리고 양자경 주변으로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딸 조이(스테파니 수), 세무국 직원 디어드리(제이미 리 커티스), 남편 웨이먼드(키 호이 콴), 아버지(제임스 홍)가 원형으로 포진되어 있다. 

 

멀티버스를 소재로 한다는 것을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포스터만으로 그 세계의 복잡함이 느껴진다. 실제로 영화는 시작과 함께 세탁소를 운영하며 국세청 조사에 시달리게 된 에블린의 복잡한 상황을 보여준다. 세무조사 준비로 정신이 없지만, 몸이 불편한 아버지의 식사를 챙겨야 하고, 어딘지 현실성이 떨어지고 지나치게 감성적인 남편의 이혼 요구를 받는다. 하지만 가장 큰 골칫거리는 성 소수자로 여자친구를 인정해달라는 딸 조이다. 에블린의 정신은 마치 세계 하나가 붕괴되기 직전의 상태 같다. 

 

미국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이민자 가족의 가족드라마처럼 시작하던 영화는, 그러나 이렇게 붕괴되기 일보 직전에 놓은 에블린 앞에 ‘멀티버스’ 우주를 펼쳐놓는다. 알파 지구에서 온 알파 웨이먼드가 이 우주에 있는 웨이먼드에 접속해 들어와 에블린에게 이 멀티버스를 설명해준다. 무한한 우주가 있고 여러 선택을 통해 다른 에블린이 살아가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그라는 것. 반면 알파 지구의 에블린은 다른 우주와 접속하는 기술을 개발한 인물이다. 알파 웨이먼드는 그 기술을 통해 자신이 이 우주의 웨이먼드 속으로 들어와 그 능력을 발휘하는 것처럼, 이제 에블린도 다른 우주의 에블린과 접속해 그 능력을 불러올 수 있다고 말한다.

 

즉 갑자기 펼쳐지는 이 멀티버스는 영화를 B급 코미디가 가미된 SF 판타지 액션 장르로 만들어버리지만, 어찌 보면 어떤 삶의 위기에 봉착한 에블린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펼쳐놓은 상상이나 백일몽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멀티버스 안의 설정들은 마치 꿈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현실과 연결고리를 갖는 것처럼 연결되어 있는 지점들을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다른 우주의 자신과 접속하기 위해는 엉뚱한 행동들을 해야 한다는 설정이 등장하는데, 이를 테면 신발 양쪽을 바꿔 신거나 손가락 사이를 종이로 베기, 립밤 먹기, 심지어 항문에 트로피를 끼우기 같은 이상한 행동들이 그것이다. 즉 현재의 자신과 전혀 맥락이 없는 행동을 해야 다른 우주의 새로운 자신을 끌어들일 수 있다는 이 설정은, 에블린이 지금껏 해보지 않은 엉뚱한 행동들이나 가보지 않은 길로 나간 적이 별로 없다는 걸 말해준다. 결국 삶에 있어서 어떤 새로운 가능성은 현재까지 걸어온 길 바깥으로 슬쩍 빠져나가는 것에서부터 생겨날 수 있다는 걸 그 설정이 보여주고 있는 것. 즉 이런 지점은 가족드라마로 시작한 영화가 멀티버스의 판타지 액션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서도 그 설정들 속에서 삶에 대한 어떤 통찰이 발견하게 해준다.

 

갑자기 알파 지구에서 접속해 들어온 웨이먼드가 조부 투파키라는 우주를 붕괴시킬 위기를 몰고온 존재에 대해 말하는 대목도 마찬가지다. 그 조부 투파키는 다름 아닌 알파 지구 에블린의 딸 조이가 흑화한 인물로 그를 그렇게 만든 건 바로 그 엄마다. 그를 이해하려 하지 않고 늘 윽박지르기만 하자, 조이는 멀티버스에 빠져들었고 그 곳에 있는 모든 조이들의 능력을 끌어와 뭐든 할 수 있고 파괴할 수 있는 존재가 됐다는 것. 웨이먼드가 들려 준 이 이야기에도 역시 이 세계에서 에블린이 딸 조이에게 느끼는 감정들이 녹아있다. 에블린은 성 소수자인 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함으로써 딸과 갈등하고 그건 마치 세계의 붕괴처럼 다가온다.

 

즉 이 멀티버스의 세계 속에서 펼쳐지는 에블린과 흑화한 딸 조부 투파키의 대결은 판타지 액션으로 펼쳐진다. 서로 다른 우주의 (다른 선택을 한) 또 다른 자신들의 능력을 서로 불러와 대결을 펼치는 것. 그 와중에 에블린은 다른 우주에서 화려한 영화배우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에블린과 접속한다. 그건 아버지가 반대했던 웨이먼드와 결혼하지 않는 선택을 했다면 살 수 있었던 지금과는 너무나 다른 화려한 삶이다.  

 

가족과의 갈등과 세무조사 같은 복잡한 주변 상황들 때문에 실패한 인생이라고 여기며 극단으로 몰렸던 에블린이 빠져보는 백일몽.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이것을 멀티버스 판타지 장르로 변환해 보여준다. 중요한 건 그 상상력이 단지 재미 차원이 아니라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깨달음의 차원으로까지 나간다는 점이다. 그건 마치 보리수 아래서 온갖 가능성의 세계들이 욕망과 맞물려 만들어내는 번민 속에서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싯다르타의 깨달음을 영화라는 영상을 통해 구현해낸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자신의 현재를 실패한 삶이라 규정하고, 그래서 과거에 다른 선택을 했다면 지금과는 다른 화려하게 성공한 삶을 살았을 거라 말하는 것 같은 에블린의 멀티버스는 바로 그 번민의 근원이다. 그 세계는 지금을 초라하게 만들고 저편으로 자신을 자꾸만 끌어당긴다. 하지만 멀티버스 속에서 에블린과 맞서는 조부 투파키는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우주의 가능성과 능력들을 마음대로 끌어와 뭐든 할 수 있게 됨으로써 흑화된 인물이다. 뭐든 다 할 수 있는 세계란 결국 아무 것도 의미가 없는 공허와 허무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늘 최악의 선택을 해서 모든 것들이 엇나가버린 듯한 에블린과, 모든 걸 마음대로 다 선택할 수 있어서 지독한 공허와 허무에 빠져버린 조이. 에블린은 깨닫게 된다. 마음대로 다 되지 않는 어떤 선택들로 만들어진 삶이기 때문에 그 하나하나가 소중한 것이고, 다만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기준에 맞춰 평가하기 때문에 성공이니 실패니 하는 것으로 그 삶을 재단하게 된다는 것을. 

 

갈등하고 부딪치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서로 상처주기도 하는 삶이지만, 그 삶을 살 수 있게 해주는 건 그래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다정하게’ 대하는 그 소소한 친절에 있다는 걸 에블린은 깨닫는다. 그건 마치 돌이나 행성처럼 도무지 합쳐질 수 없을 것 같은 두 세계가 부딪쳐 빅뱅을 일으키는 정도의 깨달음이다. 이 다정함이 공허와 허무로 가득한 세계와 싸우는 장면은 그래서 우습고, 통쾌하면서도 가슴 뭉클한 감동을 준다. 

 

아마도 영화를 보고 나오는 관객들은 이 소소하고 자잘한 것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을 때 비로소 그 가치를 느낄 수 있다는 이 작품의 이야기에 놀라워할 것이다. 또한 이 통찰의 과정을 거대한 멀티 버스의 소동 속으로 끌어들였다가 어느 순간 깨달음으로까지 이어가게 만들면서도 그것이 전하는 위로에 뭉클해질 것이다. 그걸 결국 이 거대한 우주 속 자잘한 우리의 존재 하나하나가 모두가 소중하고 결코 잘못된 선택이란 없다고 말하는 것이니까. (사진: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개그맨 오지헌, ‘유퀴즈’가 끄집어낸 세상 따뜻한 사람냄새

유퀴즈 온 더 블럭

“등반을 하다 보면 셰르파들이 필요하잖아요. 셰르파들이랑 같이 등반을 할 때 우리나라 사람들이 굉장히 급하고, 잘하니까 3일 정도 갈 길을 하루 만에 간 거죠. 근데 셰르파들이 인제 나 더 이상 못가겠다고 주저앉은 거에요. 왜 못가냐. 이대로 가면 히말라야 등반할 수 있는데. 셰르파들이 이렇게 이야기했대요. 내가 몸은 여기까지 왔지만, 아직 마음은 못 따라왔다. 제가 그런 상태였던 거 같아요.”

 

tvN <유퀴즈 온 더 블럭> ‘DNA편’에 젊어서 국사 1타 강사로 유명했던 아버지와 함께 출연한 개그맨 오지헌은 20대 때의 자신의 감정을 셰르파의 이야기로 전해줬다. 부모가 이혼한 후 지냈던 아버지와도 서로 표현이 어긋나 각자 살아가게 된 그는 재수를 하고 대학을 간 후 입대를 했고 군 제대 후 6개월 만에 개그맨이 되어 순식간에 스타덤에 올랐다. 너무나 짧은 기간에 일어난 그 많은 일들 속에서 오지헌은 ‘감정의 소용돌이’가 컸다고 했다. 

 

의외의 모습이고 의외의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오지헌은 과거 <개그콘서트> 초창기 시절을 기억하는 분들에게는 박준형, 정종철과 함께 무대에 서는 것만으로도 관객들을 빵빵 터트리던 개그맨이었다. 지금은 감수성이 달라져 외모 개그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이 과거와는 달라졌지만, 한때 고 이주일 선생님이 “못생겨서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유행시킬 정도로 외모 개그는 코미디의 한 분파였다. 그 흐름이 계속 이어져 <개그콘서트>에서 박준형, 정종철 그리고 오지헌이 가운에 수영모를 쓴 채 나와 했던 ‘사랑의 가족’은 엄청난 화제와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오지헌은 예능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개그 무대에서도 사라져 버렸다. 당시에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이 날 <유퀴즈 온 더 블럭>에 나온 오지헌은 당시의 혼란스러웠던 자신의 감정을 셰르파의 이야기로 들려줬다. “내 마음이 아직 못 따라왔는데 내 몸은 여기 가 있는 상태인 거예요.” 우리의 기억에는 그저 유쾌하고 ‘웃기는’ 인물로만 각인되어 있었던 오지헌. 하지만 <유퀴즈 온 더 블럭>에 나온 오지헌은 의외의 진지하고 따뜻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냄새가 묻어났다. 

 

아버지와 소원했던 관계가 풀어진 건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하게 된 할머니 덕분이라고 했다. 아버지가 먼저 전화를 해 병문안을 오라 했던 것. 오지헌은 당시를 회상하며 결국 아버지가 먼저 손을 내민 것에 대해 “죄송하다”고 했다. 그 시대의 부모님들이 표현이 참 어려웠을 텐데 먼저 손을 내밀어준 아버지에 대한 죄송함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아버지가 아들을 너무 사랑하는 걸 자신이 너무 잘 안다고 했다. “우리 아버지가 이 세상 사람들 중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저라는 걸 너무 잘 알아요.” 다만 표현이 서툴렀다는 것. 

 

아마도 이런 사실을 알게 된 건 본인도 아버지가 됐기 때문이었을 게다. 그 역시 아이들에게 제대로 표현하는 법을 잘 모르는 때가 많다고 했고 그럴 때마다 그런 것들을 “아내한테 많이 배운다”고 했다. 그는 그 젊은 시절 미처 따라오지 못했던 마음과 크게 소용돌이치던 감정을 이제 조금씩 마주하고 있었다. “뭔가 성공을 위해서 달려가거나 돈을 위해서 달려가는 게 아니라 좋은 아빠가 되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결혼 후 30대부터 방송이 들어와도 잘 하지 않았다는 오지헌은 대신 아내와 아이들과 지내는 소소한 행복들이 좋았다고 했다. 그렇게 순식간에 10년이 지났고 동료 개그맨들은 스타가 되어 있었지만 자신은 저 멀리 있었다고 했다. 그래도 그 시간을 그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 10년 동안에 마음이 많이 따라온 것 같았다”는 게 그 이유였다. 

 

이제는 손녀들에게 아버지가 너무나 끈끈하게 잘 해주고 있다는 오지헌. 그는 과거 ‘사랑의 가족’으로 관객들에게 빵빵 터트리는 웃음을 주며 살았지만, 10년 간의 공백기에는 자신의 가족과의 소소한 일상의 행복들을 만들고 소원했던 아버지와도 다시 끈끈해지며 진짜 ‘사랑의 가족’을 삶에서 만들어가고 있었다. (사진:tvN)

'펜트하우스', 진짜 복수극은 아이들이 한다

 

"적당히 좀 하세요! 제가 잘못 살았다면 그건 다 아버지 때문이에요." SBS 월화드라마 <펜트하우스>에서 오윤희(유진)에 의해 불륜과 이혼을 청아재단 이사장인 아버지 천명수(정성모)에게 들통 나 버리고 이사장 자리는 물론이고 모든 걸 잃게 된 천서진(김소연)은 빗속에서 그렇게 항변한다. 자신과 동생을 끝없이 비교 경쟁시키고 채찍질했던 아버지 때문에 사랑에 굶주렸다는 천서진. 하지만 그런 항변을 하는 천서진을 천명수는 어디다 말대꾸냐며 뺨을 올려붙이며 결국 하지 말아야 할 말까지 한다. 너는 더 이상 내 딸이 아니라고.

 

그리고 결국 드라마는 끝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다. 유서가 든 가방을 두고 부녀가 몸 싸움을 벌이다 아버지는 쓰러져 계단 밑으로 구르고, 도와달라는 아버지의 손길을 천서진은 마치 사이코패스 같은 눈빛으로 외면하고는 유서를 빼들고 도망친다. 존속 살해는 아니지만 아버지의 죽음을 방치하는 최악의 패륜마저 등장하는 것.

 

<펜트하우스>의 이 장면은 아마도 향후 천서진이 그의 딸 하은별(최예빈)에게 겪을 미래를 예고하는 것이 아닐까. 천서진이 그의 아버지에게 겪었던 경쟁과 비교를 고스란히 딸에게 대물림한 하은별은 점점 비정상적인 인물이 되어간다. 아버지 하윤철(윤종훈)이 정신과에 데려가 검사를 해보니 하은별이 겪고 있는 건 '가면증후군'이다. 천서진으로 인해 끝없이 누군가와 비교당하고 경쟁에 내몰리게 되면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가면을 쓰고 행동한다는 것.

 

천서진이 오윤희에게 저질렀던 끔찍한 범죄(트로피를 빼앗고 목을 그어 성악을 못하게 만든)는 고스란히 그들 자식들로 이어진다. 천서진의 딸 하은별은 오윤희의 딸 배로나(김현수)를 협박해 학교를 그만 두게 하려 한다. 심지어 엄마가 저지른 것처럼 배로나를 공격하려고까지 한다. 이미 누가 응징하지 않아도 천서진의 비극은 그래서 이미 예고되었다. 다른 이가 아닌 딸이 자신처럼 부모를 패륜하는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으니.

 

<펜트하우스>의 이런 상황 설정은 김순옥 작가표 사이다 저주의 실체가 무엇인가를 잘 드러낸다. 법의 심판대 위에 올리는 그런 정도로는 이 세계 속 악당들에 대한 저주와 처벌이 너무나 약하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그들이 하는 짓들은 거의 악마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순옥 작가가 가져오는 이들에 대한 저주는 저들 스스로 만든 지옥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가족 복수극'의 틀이다.

 

물론 '가족 복수극'은 누군가에게 가족이 불행을 당한 것을 복수하는 오윤희나 로건리(박은석)의 복수극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끔찍한 건 저 천서진의 집안에서 벌어지는 가족끼리 죽고 죽이는 지옥도다. 돈과 권력만이 삶의 존재 근거처럼 여기는 저들이 바로 그것 때문에 서로 물어뜯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 <펜트하우스>는 이들의 자극적인 패륜을 통해 사이다를 던져 놓는다.

 

이 설정은 통쾌함을 주긴 하지만, 너무나 자극적이어서 보기 불편한 지점들을 만들어낸다. 아버지가 빗속에서 쓰러져 죽어가고 있을 때 그를 버리고 헤라팰리스로 돌아온 천서진이 아버지의 피가 묻은 손으로 광기어린 피아노를 치는 장면은 그래서 소름끼친다. 그건 다름 아닌 지옥이고 그 곳에 스스로 떨어진 악마의 형상을 재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펜트하우스>에서 진짜 복수는 아이들이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아이들이지만 어른들의 범죄를 거의 똑같이 재연하는 아이들. 그들이 끔찍한 일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모습에서 지독한 자극과 더불어 저들 악당들에 대한 살벌한 저주가 느껴진다. 시청자들이 지독한 범죄적 설정과 개연성 없는 막장이라 부르면서도 보게 되는 건 그 선을 넘는 자극 속에 심어 넣은 일시적인 카타르시스 때문이 아닐까.(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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