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펀딩’, 가치 있는 일에 방송이 할 수 있는 것들

 

김태호 PD가 내놓은 MBC 새 주말예능 <같이 펀딩>에 출연한 유준상은 트렌드를 읽기 위해 예능 프로그램들을 많이 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동시간대 타 방송사들의 예능 프로그램들이 최근 다시 힘을 발휘하는 상황이라 <같이 펀딩>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조심스런 예측을 내놨다. 그건 사실이었다. 첫 회 시청률이 겨우 3%대(닐슨 코리아)로 동시간대 최고시청률을 낸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15% 시청률과의 격차는 뚜렷했다. SBS <집사부일체>의 6%대와도 격차가 분명했고.

 

하지만 시청률이 전부는 아닐 게다. 만일 가치로만 따진다면 <같이 펀딩>이 하려는 일들이 <슈퍼맨이 돌아왔다>가 보여주는 육아예능보다 훨씬 높다 여겨지기 때문이다. 첫 회에 유준상이 갖고 온 첫 아이템은 이른바 ‘태극기함 프로젝트’다. 국경일이면 당연히 태극기를 게양하던 시절이 무색하게 최근 들어 태극기를 거는 곳을 찾기가 힘겨워진 상황으로부터 유준상은 어떤 문제의식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태극기함이 있어 늘 태극기를 보관하고 국경일에 꺼내 게양하던 그 때의 기억을 소환하고, 집집마다 태극기함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랐던 것.

 

프로그램은 태극기함의 존재 가치를 위해 먼저 태극기의 의미부터 되짚은 시간을 가졌다. 북한산 진관사를 찾아간 유준상은 설민석을 통해 태극기에 얽힌 역사적 이야기들을 들었다. 그 중에서도 우리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백초월 스님의 태극기에 얽힌 이야기는 그 먹먹함에 유준상 역시 눈물을 뚝뚝 흘릴 수밖에 없었다. 모진 고초를 겪어가며 독립운동을 해왔지만 한국전쟁으로 모든 사료들이 소실되면서 존재 자체가 알려지지 않았던 초월 스님. 하지만 지난 2009년 진관사 칠성각에서 보수공사 도중 나온 보자기 하나가 그 놀라운 스님의 독립운동 궤적을 드러냈다.

 

독립운동 기사가 들어있는 신문들이 담겨 있던 그 보따리는 태극기 문양이 그려져 있었는데, 알고 보니 일장기 위에 덧대고 태극기를 그려 넣은 것이었다. 그 붓길 하나하나에 담겨져 있는 초월 스님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 했다. 예능 프로그램이지만 출연자들은 물론이고 시청자들도 모두 눈물 흘릴 수밖에 없는 이야기.

 

방송을 통한 이 같은 가치의 공유는 그 태극기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게 만들었고, 유준상이 하려는 태극기함 프로젝트에도 힘을 실어 주었다. 실제 펀딩에서 단 10분 만에 목표를 달성했고, 추가수량을 포함한 1만 개의 태극기함 펀딩 역시 방송 마감 후 30분 만에 완료됐다. 최종적으로 1차 펀딩 달성률은 무려 4,110%에 달했다.

 

<같이 펀딩>이 흥미로워지는 건, 방송이 현실을 어떻게 바꿔나갈 수 있을까 하는 지점이다. 사실 방송이라고 하면 그저 방송으로서의 재미로만 소비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방송이 가진 힘은 현실을 실제로 바꾸기도 한다. 다만 여기서 중요해지는 건 어떤 현실을 바꿀 것인가 하는 점이다.

 

‘가치의 공유’는 그래서 중요해진다. 누구나 공감하는 가치를 프로그램이 앞으로도 계속 던질 수 있다면 그것은 방송 프로그램의 재미 차원을 넘어서 세상을 조금씩 바꿔나가는 의미 있는 일이 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이미 펀딩을 엄청난 수치로 초과달성한 <같이 펀딩>은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게다. 시청률보다 더 큰 가치의 공유라는 성과를 얻었으니.(사진:MBC)

'골목' 포방터 돈가스집의 소신, 이거야말로 최고의 솔루션

 

“내가 못먹는 건 손님들한테도 드릴 수가 없어요. 이거 맛있는 부위인데 버려야 되요. 제 기준에서는 저는 못먹겠어요. 그래서 손님한테 주기가 미안해요. 그래서 다 벗겨내요.”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에 오랜만에 등장한 포방터 시장 돈가스집 사장님은 한 수 배우러 온 원주 미로예술시장 에비돈집 사장님들에게 그렇게 말했다.

 

돈가스집 사장님이 그렇게 말하며 ‘못 먹는 부위(?)’를 잘라내고 남은 등심은 아주 작아져 있었다. 그걸 본 에비돈집 사장이 “로스(손실)가 많다”고 하자, 그래도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고 돈가스집 사장님은 말했다. 방송이 나간 지 꽤 됐지만 포방터 시장 돈가스집은 여전했다. 사장님의 소신이 여전했고, 맛이 여전했으며, 당연히 그 새벽부터 찾아온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모습 또한 여전했다.

 

돈가스집에서 아예 따로 마련해놓은 대기실에는 새벽부터 온 손님들로 북적였다. 하지만 돈가스집 사장님은 하루 정확히 35팀만 받고 있었다. 그래서 아쉽게 35팀에 속하지 못한 손님은 발길을 돌려야 했다. 사장님은 연실 죄송하다며 미안한 마음을 표현했지만, 그래도 소신은 굳건했다. 미안해도 대신 그날 오신 손님들께 최선을 다하는 게 보답하는 길이라고 했다.

 

35팀만 받는 이유는 돈가스를 하나 만들어도 들어가는 정성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먹을 수 있는 분위만을 선별해내고, 하나하나 연육작업을 한다. 그는 튀기는 기름도 그냥 식용유가 아니라 개발 중이라고 했다. 백종원 대표에게 자문을 구해 테스트 중이라고 했다. 이러니 그가 튀겨내는 돈가스가 맛있을 수밖에 없었다.

 

포방터 시장 돈가스집의 얼음공주로 불리는 안사장님은 여전히 흔들림 없는 홀서빙을 홀로 해내고 있었다. 홀서빙을 에비돈집 사장에게 가르치며 실수하는 부분에는 “정신 놓지 말라”며 다잡았고, 밥 추가해달라는 손님에게 퍼준 밥을 다시 푸라며 “온정을 담아 더 주세요”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포방터 시장 돈가스집 사장님이나 그 안주인의 모습은 그저 장사를 하는 게 아니라 정성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그런 집의 돈가스니 맛이 없을 수가 있을까. 3시 반에 영업이 끝나고 드디어 돈가스 맛을 본 에비돈집 사장님들은 “그냥 다른 음식”이라고 했다. 또한 사장님은 자신이 백종원 대표에게 얼마나 큰 도움을 받았는지 뼈저리게 깨닫고 있다고 했다. 나중에 방송 찍고 나서도 전화하고 놀러오라며 “필요한 거 있으면 알려 드리겠다”고 한 건, 자신 또한 큰 도움을 받았던 경험 때문일 게다.

 

“다른 집에 가서도 음식 드셔보세요? 이 돈을 내고 먹을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 드는 음식들이 있잖아요. 저희는 이제 음식을 파는 사람들이이까 손님들이 저희 거 등심까스 7천 원, 치즈까스 8천 원을 내고 드실 때 이 돈이 아깝지 않다고 생각하시게끔 하고 싶다. 이런 마음으로 하거든요. 사장님은 내가 음식을 내놨을 때 돈 받고 팔기 부끄럽지 않은지 항상 생각하셔야 돼요.” 돈가스집 안주인의 이 한 마디는 잘 되는 집의 비결이 어디에 있는가를 정확히 짚어주었다. 흔들리지 않는 소신과 이를 지켜내기 위한 정성어린 노력. 그 이상의 비결이 있을까.(사진:SBS)

‘거리의 만찬’ 같은 프로그램이 KBS의 가치를 높여준다

시청률은 3%(닐슨 코리아)대다. 최고시청률 5.2%를 찍기도 했지만 사실 KBS <거리의 만찬>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방송사들의 격전지가 되어있는 금요일 밤 10시에 편성되어 있는 ‘시사’ 프로그램이니, 타 방송사의 웃음 터져 나오는 쟁쟁한 예능프로그램들과 경쟁이 될 리가.

게다가 이 프로그램은 웃음보다는(그렇다고 시종일관 심각하다는 얘긴 아니다) 진지함과 아픔 때로는 눈물을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대한 공감이 더 많다. 실제로 여기 고정출연해 매회 현장을 찾아가 그 곳의 ‘사람 이야기’를 들어주는 개그우먼 박미선, 정치학박사 김지윤, 아나운서 김소영은 그들의 이야기에 눈물을 흘리기 일쑤다. 그러니 즐기고픈 ‘불금’에 높은 시청률을 낸다는 건 애초부터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리의 만찬>에 대해 시청자들은 ‘수신료가 아깝지 않다’고 말한다. 그리고 필자는 시청률이 3%라도 이 프로그램이야말로 KBS 같은 공영방송이 제대로 해야할 일을 하는 프로그램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시사프로그램으로서 지금 현재 우리 사회가 들여다봐야할 중요한 문제들을 ‘용감하게’ 소재로 선택하고, 그 문제를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할 말이 있는 분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으며, 이로써 두루뭉술한 양비론적인 접근이 아니라 어느 한 쪽이라도 확실한 목소리를 담아낸다는 점이 그렇다. 

예를 들어 지난 18일 방영된 ‘노동의 조건 첫 번째 이야기-죽거나 다치지 않을 권리’가 다룬 하청 노동자들의 현실은, 최근 안타까운 죽음으로 사회적 관심이 집중된 고 김용균씨의 빈소를 찾아가 조문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비정규직과 하청, 청년실업 게다가 안전불감증까지 겹쳐져 있는 이 사안을 피하지 않고 소재로 가져와 문제를 환기시키고, 우리 사회에 결코 적지 않은 또 다른 김용균씨라고 할 수 있는 세 사람을 어느 삼겹살집에서 만나 이야기를 듣는다. 

대기업 하청공장에서 메탄올에 중독되어 실명을 하게 된 김영신씨와, 고 김용균씨의 동료인 태안화력발전소에서 근무하다 다리를 다쳐 수차례 수술을 받고 있는 김범락씨, 그리고 산업체 현장실습 중 사고로 목숨을 잃은 열아홉살 고 이민호군의 아버지가 그들이다. 메탄올의 위험성 따위는 알려주지도 않고 작업을 하게 했다는 사실이나, 사고가 났을 때 그 사실이 알려질까봐 앰블란스를 부르지도 않고 병원을 갈 정도로 쉬쉬했다는 이야기, 평소 말 잘 들으라 했던 말이 통한의 후회로 남는다는 아들의 죽음으로 무너진 아버지의 이야기는 이 사안이 가진 부조리를 드러내면서도 동시에 감정적인 울림을 만들어낸다.

아마도 뜨거운 심장을 가진 사람이라면 가슴이 먹먹해지고, 그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아픔과 슬픔을 이겨내기 어려웠을 게다. 그 삼겹살집에서 묵묵히 그 이야기들을 들어주는 세 명의 여성MC들과 그날 특별출연한 정의당 이정미 대표는 차오르는 눈물을 조용히 닦아내는 것으로 그 마음을 전했다. 그리고 그 청취와 눈물은 아마도 가슴 속 응어리처럼 단단하게 뭉쳐있던 그 아픈 이야기를 꺼내놓은 분들에게 천만분의 일이라도 무게를 덜어내주지 않았을까. 

찬반이 팽팽한 낙태문제 같은 소재도 피하지 않고 다룰 수 있었던 건 거기 어떤 이념이나 사심이 전혀 없는 진솔한 대화들이 오고갔기 때문이다. 실제 낙태를 경험한 여성들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머릿속 논리로만 생각해왔던 문제가 현실에 부딪쳤을 때 어떤 다른 파장으로 돌아가는가를 확인하게 해주는 것. 그것은 낙태라고 하면 일단 ‘죄’를 먼저 떠올리는 그 사회적 시선 이면에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고통을 홀로 감수하고 있는가를 공감하게 했다. 

희귀중증질환을 가진 어린 환자와 가족들을 찾아간 ‘내일도 행복할거야’ 편에서는 이런 문제들이 개인이 온전히 책임져야만 하는 사안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안아줘야 하는 사안이라는 걸 보여줬다. 아픈 아이들 때문에 온전한 삶 자체가 불가능한 엄마들과 나누는 이야기 속에서는 “웃어야 하기 때문에 웃는다”는 이 엄마들의 웃음 속에 깊이 담겨진 아픔들까지 고스란히 전해졌다. 

최근 들어 ‘지상파가 위기’라는 말은 이제 하나의 기정사실이 되어버렸다. 그래서인지 지금 지상파들은 생존하기 위해 오히려 더 자극적인 드라마를 편성하고 어떻게든 시청률을 내려 안간힘을 쓰는 모양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KBS 같은 공영방송에 시청자들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어차피 개인화되어가는 미디어 활용 때문에 보편적 시청을 추구하는 기존의 지상파의 헤게모니는 사라져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변화 속에서도 여전히 필요해지는 건 공영성이 아닐 수 없다. <거리의 만찬> 같은 공영성을 가진 시사교양프로그램이 KBS 같은 공영방송의 가치를 높여준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단지 시청률만 높은 프로그램이 아니라.(사진:KBS)

‘남자친구’, 송혜교, 박보검이 웃을 때마다 가슴이 아린 건

“부모잖아. 엄마고 딸이잖아.” tvN 수목드라마 <남자친구>에서 차수현(송혜교)은 그녀를 찾아와 영부인이 되고 싶다는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며 다짜고짜 “쥐죽은 듯 살라”고 말하는 진미옥(남기애)에게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그런 차수현에게 진미옥은 차갑게 대꾸한다. “관계가 중요해? 난 가치가 중요해. 쓸모 있는 자식으로 살아.”

이 말은 차수현의 숨을 턱턱 막히게 만든다. 관계보다 가치. 그건 부모자식 간의 관계로 모든 것이 허용되고 용서되기도 하는 보통의 관계와는 너무나 다른 차수현과 엄마의 관계를 잘 말해준다. 부모 자식이라도 가치가 없으면 필요 없다는 말이고, ‘쓸모’가 있어야 자식도 자식이라는 말이다. 차수현은 차 안에서 그 말을 떠올리며 깊은 한숨을 내쉰다. 

좀체 웃지 않고 무표정을 가장하고 있는 얼굴. 하지만 그 얼굴은 사실 애써 눈물을 참고 있는 얼굴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어두운 얼굴 속에 담긴 속내를 읽어내는 한 사람이 있다. 바로 김진혁(박보검)이다. 그는 그 얼굴을 보고는 어떤 메시지를 보내야 차수현을 위로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힘내세요’라고 적으려던 김진혁은 대신 ‘거봐요. 모델보다 더 예쁠 거라고 했잖아요. 봄입니다.’라고 보낸다. 그 문자 메시지 하나에 차수현은 살짝 미소를 짓는다.

전에 김진혁이 생일선물로 준 립스틱을 왜 바르지 않냐고 물었을 때 차수현은 봄에 어울릴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자 김진혁은 이렇게 말한다. “릴케라는 시인이요. 쌀쌀한 도시에서도 서로 손을 잡고 나란히 걷는 사람들만이 봄을 볼 수 있게 된다고 했거든요.” 그 말을 듣고 차수현이 바르고 나온 립스틱 이야기로 김진혁은 그의 겨울 같은 얼굴에 봄을 피어나게 한다. 

차수현은 관계보다 가치가 중요하다는 엄마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쌀쌀한 겨울 같은 세상에 홀로 던져져 있다. 정치인 아버지 때문에 자신의 삶을 살아온 적이 없고, 팔려가듯 결혼을 했으며 결국 이혼했지만 여전히 아버지의 정치 생명을 쥐고 흔드는 재벌가 시댁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관계보다 가치가 중요한 엄마는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재벌가 시댁에 딸을 다시 팔려고 한다. 

호텔 체인의 대표로서 모든 걸 다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가진 게 하나도 없는 인물이 바로 차수현이다. 그것은 자신이 스스로 결정해 살아가는 삶이 허용되지 않아서다. 제 아무리 많이 갖고 있으면 뭐하나.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조차 할 수 없는 처지라면. 차수현의 얼굴이 항상 무표정하지만, 그 무표정 속에서 마치 울기 직전까지 참고 있는 아이 같은 얼굴을 발견하게 되는 건 그래서다. 

회사 로비에서 차수현이 만나는 김진혁을 스캔들의 주인공처럼 몰아세우며 공개적인 해명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김진혁이 나서서 두 사람의 관계를 공개했을 때 차수현의 얼굴은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복잡한 모습을 보여준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듯한 눈이지만, 입은 이렇게 나서준 김진혁에 대한 기쁨으로 미소가 피어난다. 그 장면은 엄마와는 달리 가치보다 관계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차수현과 김진혁의 마음을 드러낸다. 

하지만 어디 세상이 그런가. 사람을 가진 것과 태생과 스펙으로 구분해 가치를 매기고, 겉보기에 그 가치가 등가로 매겨지는 사람과의 만남이 아니라면 그것을 부적절한 관계로 매도하기 마련이다. 이제 썸을 타기로 한 차수현과 김진혁은 그런 차가운 겨울의 시선들 속에 서 있다. 관계가 공개적으로 알려진 후 회사에서도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비뚤어져 있고, 차수현의 전 시어머니인 김화진(차화연)은 이 관계를 저들이 생각하듯 대표의 가치를 등에 업고 이용하려는 젊은 사원의 다른 의도가 있는 행동으로 치부한다. 

차수현은 본래부터 웃을 일이 없는 세상 속에 있었고, 김화진으로부터 모욕적이고 폭력적인 대우를 받은 김진혁은 차수현이 살아왔던 그 세상을 실감하게 된다. 두 사람은 결코 웃을 일이 없는 이 냉혹하고 쌀쌀한 겨울의 세상 깊숙이 들어와 있지만, 그럼에도 두 사람만의 시선이 마주칠 때는 미소를 띠운다. 어찌 보면 숨 막힐 듯한 현실 속에서 한숨으로 버텨왔던 차수현은 겨우 김진혁 앞에서 잠시라도 숨을 쉴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이들이 웃을 때는 가슴이 아려온다. 

내부순환도로 교각에 붙여진 김환기 화백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작품을 보며 그 작품의 모티브가 된 김광섭 시인의 ‘저녁에’라는 시구를 김진혁은 조용히 읊조린다.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그러자 화답하듯 차수현이 시구의 뒷부분을 이어준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그 시는 모든 만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말하고 있다. 가치 따위가 아니라 모든 관계들이. 그래서 그 시구 절 앞에서 다시 만나 썸 타기로 한 두 사람은 겨울의 현실 속에서도 아프지만 기쁜 봄날의 미소를 피워낸다. 

봄은 시간이 지난다고 그저 오는 게 아니고 또 기다려서 맞는 게 아니라고 이 드라마는 말하고 있다. 봄이 오면 화사한 색감의 립스틱을 바르겠다던 차수현은 김진혁을 통해 화사한 립스틱을 바르는 일로 봄이 올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우리의 진정한 관계들이 그러하지 않을까. 스스로 선택한 삶과 거기서 만나게 되는 진정한 관계들. 그 속에서만이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겨울 같은 우리네 삶을 봄으로 만들어줄 수 있을 것이니.(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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