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콘> ‘10년 후’, 채무관계를 인간관계로 바꾸는 훈훈함

 

도대체 이 짠함과 웃음의 정체가 뭘까. <개그콘서트> ‘10년 후라는 코너에는 10년 째 빌려간 돈을 받으러 오는 사채업자 권재관이 등장한다. 그런데 돈을 빌린 가겟집 아줌마 허안나를 10년 째 찾아오는 권재관은 겉으로는 사채업자의 으름장을 보여주지만, 그 속내는 완전히 다르다. 10년 전과 후의 모습이 교차하며 전혀 다른 권재관과 허안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이것이 이 코너가 갖고 있는 웃음의 원천이다.

 

'개그콘서트(사진출처:KBS)'

10년 전의 권재관은 허안나에게 아줌마. 돈 빌렸어요? 남의 돈 안 갚고 살면서 숨 쉬어져 숨쉬어지냐고?”라며 윽박지르지만 10년 후의 권재관은 똑같은 말을 하면서도 마치 익숙한 듯 옷을 꺼내 신상품 딱지를 붙여 진열할 만큼 이 가게에 익숙해진 모습이다. 그 익숙함은 가게 주인인 허안나도 마찬가지다. “아주 이 놈의 가게를 싹 다 엎어버려!”하며 옷을 던지는 권재관에게 10년 전은 두려운 모습이었지만 10년 후는 그 옷을 척척 받아서 진열대에 정리해 놓는 능숙함을 보여준다.

 

나 여기서 돈 받을 때까지 한 발자국도 안 움직여.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도 한 발자국도 안 움직인다. 알겠어?” 권재관이 던진 이 한 마디는 10년 동안 그를 이 작은 가게와 친숙하게 만든 동인이 된다. “아줌마. 오늘은 돈 갚아야지. 어떻게 사람을 여기 10년째 매일 오게 만들 수가 있어.”라는 투덜거림 속에는 그래서 알게 모르게 이 사채업자의 아줌마를 향한 연정을 엿보게 된다.

 

이런 설정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낯선 것이 아니다. 이미 황정민 주연의 <남자가 사랑할 때> 같은 영화가 이런 식의 사랑이야기를 우리에게 건넨 바 있다. 사실 채무관계라는 것이 돈을 받아오라고 지시하면서 빚쟁이와 직접적인 대면을 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그다지 감정적 개입이 생기지 않는 법이다. 하지만 그 돈을 받으러 가는 어찌 보면 똑같이 어려운 현실에 접한 이들에게는 때때로 동병상련의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10년 후의 세계는 그래서 그 10년 동안 벌어졌던 일들을 미루어 짐작하게 만든다. 옆 가게와 능숙하게 청바지와 티셔츠를 교환하고 청바지 사이즈가 28이라고 말하는 손님에게 그게 원래 조금 작게 나왔어라고 말하는 모습은 사채업자라기보다는 가게 주인이나 점원에 가깝다. 바지를 줄여달라면 척척 줄여주고, 그걸 던지면 종이백에 담아 손님에게 건네는 권재관과 허안나의 모습은 그래서 채무관계를 넘어선 가족관계를 보여준다.

 

이 감상적인(?) 사채업자는 심지어 허안나의 아들까지 챙겨준다. “마 엄마 바쁠 때 나한테 전화하라고 그랬잖아! 내가.”라고 하는 말이나, 야간 자율학습 땡땡이 쳤다는 사실에 애를 다그치자 애 때리지 말어! 얘 밤에 알바해.”라고 말하는 권재관에게서는 깊은 관심과 애정이 느껴진다. 헤드폰 갖고 싶다는 아이에게 마네킹에 선물을 걸어놓고 무심한 듯 마네킹이 뭐 하나 사왔나 보지.”라고 말하는 그에게서는 숨겨진 속내가 드러난다.

 

도대체 이 웃음과 짠함이 뒤섞인 ‘10년 후의 감정적 실체는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네 사회 시스템과 무관하지 않다.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은 세상의 어려움을 외면한다. 그래서 어려운 일들은 자신의 손을 쓰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을 앞세운다. 세상이 가난한 자들끼리의 경쟁의 장이 되는 건 바로 이런 부조리한 시스템에서 비롯된 일이다. 이것을 무수한 콘텐츠를 통해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사채업자와 채무자의 관계일 것이다. 그들은 아무런 연원관계도 없으면서 오로지 돈 문제 하나로 불행한 관계를 만든다.

 

하지만 ‘10년 후가 보여주는 것은 이러한 부조리한 시스템 속에서 꿈꾸는 자그마한 반전이다. 가난한 자들이 경쟁하기보다는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그 지점에서부터, 이제는 그들을 그런 관계로 몰아넣은 세상이 제대로 보여지게 된다. ‘큰 형님은 돈 때문에 아줌마의 인생을 종치게 만들려 한다. 거기에 던지는 권재관의 한 마디. “여기서 인생 끝나고 싶어? 여기서 인생 마감하고 싶냐고? 그렇게 되기 싫으면 나한테 오든가.” 부채관계가 인간관계로 넘어오는 순간이 주는 그 훈훈함. 이것이 웃기면서도 짠한 ‘10년 후의 세계다.

 

<개콘>, 남성들의 위상이 달라지고 있다

 

KBS <개그콘서트>나 혼자 남자다라는 코너는 그 제목에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그냥 제목만 보면 요즘 부쩍 여성화된 남성들을 풍자하면서 마치 나만 남자다라는 자신감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코너에서 레이디 컴퍼니라는 회사에 다니는 박성광을 통해 우리는 이 제목의 또 다른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나 혼자 남자다는 그 회사에서 거의 남자는 자기 혼자가 된 박성광의 처지를 말해주는 것이다.

 

'개그콘서트(사진출처:KBS)'

회사적응을 걱정하는 엄마에게 걱정 말라고 전화통화를 하는 박성광이지만. 그는 키 크고 당당하게 등장하는 허안나와 성현주, 김니나 앞에서 잔뜩 주눅 든 모습을 보여준다. 그를 내려다보며 허안나는 이렇게 말한다. “뭘 그렇게 긴장하고 그래. 여자 부장이라고 불편해하지 말고 그냥 편한 형이라고 생각해.”

 

업무 시작 전 함께하는 스트레칭에서 여자와 엉덩이가 부딪치게 되자 거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여자가 아니라 박성광이다. 메추리알을 껍질을 까서 먹느냐 아니면 통째로 먹느냐에 대해 후배 직원으로서 갈등하는 이도 박성광이다. 여자들을 상사로 두고 있는 남자직원의 고충. 아마도 이것은 최근 우리 사회에 새롭게 보여지는 현상일 것이다. 교육관련 회사들이나 출판사처럼 여성들이 많은 회사에서는 남자직원들은 심지어 여성화된다고까지 말한다.

 

같은 회사에서 박성광이 안일권과 정승환 같은 남자직원을 발견하고 즐거워하지만 곧 이들이 여성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웃음을 주는 나 혼자 남자다는 그래서 웃음 끝에 최근 여성화되어가는 남성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옷을 피팅해주고 잘 내려가지 않는 지퍼를 내려주겠다고 나서는 여자 부장의 모습에 화들짝 놀라는 박성광의 모습은 만약 그 남녀의 성별이 바뀌었다면 도무지 개그 소재로도 나오기 힘들었을 장면이다.

 

취해서 온 그대에서 취해서 온 이희경에게 거꾸로 성희롱을 당하는 건 늘 서태훈이다. 그녀는 남자 팬티를 선물하겠다고 서태훈에게 주다가 갑자기 돌변해 왜 이런 선물을 자기에게 주냐고 묻는 여자다. 술잔에 빠지려는 머리칼을 잡아주자 뭐예요?”하며 스킨십까지 해대는 착각녀’. 물론 술에 취해서 하는 행동이지만 여성에게 당하는 남성의 이미지가 그려지고 있는 건 흥미로운 대목이다.

 

은밀하게 연애하게는 겉으로 드러난 서열체계와 달리 연애관계에서는 정반대가 되는 관계의 역전을 웃음의 포인트로 잡아내고 있다. 즉 김기열은 타인이 보는 데서는 신입인 박보미를 호통치는 척 하지만 사람들이 없는 데서는 그녀에게 절절 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가장자리는 가장인 남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그들 위에 서 있는 여성들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이것은 쉰 밀회에서의 남녀 서열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물론 남녀 관계를 꼭 서열의 관점으로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개그콘서트>의 콩트 코미디가 여성들을 코너의 중심으로 세우고 그 대상화하는 남성을 희화화하거나 공감하게 만드는 이야기가 대거 많아졌다는 건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이것은 어쩌면 그간 지나치게 남성 중심으로 흘러왔기 때문에 그 변화가 더 도드라져 보이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여성들에게 당하는 남자들의 이미지가 전체적으로 드리워져 있고 그것이 개그의 공감 포인트로 제시되고 있다는 건 지금 현재 사회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개그콘서트>의 남성들의 위상은 달라지고 있다. 우리네 현실이 그런 것처럼.

 

<12>, 지나친 콩트는 야생을 스튜디오로 만든다

 

KBS <12>에 출연한 박태호 예능국장은 “<12>은 진정성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도 했다. 그가 말하는 진정성과 초심은 무엇일까. 그것은 야생이고 여행이며 리얼리티일 것이다. 어디든 무작정 떠난 길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의 교감이나 의외로 터진 사건이 점점 커지는 국면들이 말 그대로 자연스럽게 보여지는 것이 <12>의 진정성이자 초심이다.

 

'1박2일(사진출처:KBS)'

하지만 이번 강릉, 동해로 떠난 <12>은 그 진정성과 초심을 발견하기가 어려운 여행이 됐다. 지나친 콩트 설정이 눈에 띌 정도로 많이 등장했고, 그러면서 여행은 부자연스러워졌기 때문이다. 기차를 타고 좌석 복불복을 할 때까지만 해도 <12>은 본연의 색깔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박태호 예능국장이 그 빈 자리에 앉아 멤버들에게 불편함의 끝을 선사하면서부터 이야기는 점점 콩트로 흘러갔다.

 

물론 재미가 없었다는 건 아니다. 특히 박태호 예능국장은 베테랑다운 임기웅변으로 분위기를 쥐락펴락하며 큰 웃음을 만들었다. 과거 자신이 당했던 까나리카노를 멤버들에게 먹게 만드는 몰래카메라 설정을 보여주기도 했고, 출연자들을 불편하게 만들어 화장실 가는 것조차 한꺼번에 우 몰려가게 만드는 장관도 꽤 흥미로웠다.

 

하지만 재미가 있다고 그것이 <12>의 진정성을 살려주는 건 아니다. 중요한 건 그 재미가 얼마나 진짜냐는 것이다. 예능국장과 출연자들이 기차에서 그것도 같은 자리에서 만날 확률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니 그것은 의도된 만남일 수밖에 없다. ? 일종의 상사와 직원 같은 계급구조를 갖고 웃음을 줄 수 있는 콩트 코미디를 만들기 위함이다. 이런 기차 같은 공간에서의 불편한 동반자콘셉트의 콩트는 이미 과거 <유머일번지> 시절부터 콩트 코미디에 단골로 나왔던 소재다.

 

물론 그것으로 끝났다면 가끔 한두 번씩 나오는 의도된 상황극이라 치부하고 넘어갈 수 있다. <12>의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해 국장까지 프로그램에 나와 아낌없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건 그것이 상황극이라고 해도 충분히 이해되는 일이다. 하지만 그 후로 계속 이어지는 콩트의 연속은 <12>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박태호 국장이 준 용돈으로 잠깐 역에서 내린 출연자들이 국제분식에서 바가지를 쓰는 장면은 아예 그 공간을 스튜디오처럼 여겨지게 만들었다. 급조된 포장마차에 <12> 국제심판(?) 권기종이 주인이 되어 출연자들에게 바가지를 씌우고 돈을 내지 않으려 하자 갑자기 조폭(역할을 하는 사람)이 등장해 돈을 갈취하는 장면은 너무 인위적이라 그것이 <12>인지 <개그콘서트>인지 분간하기가 힘들었다.

 

해변에 도착해서도 콩트는 계속 이어졌다. 이번에는 미녀와 추녀를 비교하는 전형적인 <개그콘서트>형 콩트다. 현장에서 즉석에 섭외된 일반인들과 게임을 하는데 갑자기 미녀와의 데이트를 상으로 내세우는 건 실로 엉뚱한 설정이다. 비키니를 입은 여성을 상으로 세운다는 것이 <12> 같은 가족 예능 프로그램에 어울리지 않을뿐더러, 특히 여성 일반인 참여자에게는 더더욱 의미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비키니를 입은 여성들은 누가 봐도 섭외의 흔적이 역력하다. 카메라 앞에서 자연스런 포즈를 취할 정도면 이미 의도된 상황극 속에 들어와 있었다는 얘기이고, 마침 이들과 비교점을 세우는 오나미나 김혜선 역시 한 편의 콩트 설정으로 투입된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갑자기 뜬금없이 주어진 2시간 휴식에 출연자들이 몸단장을 하는 모습이 보여지더니 해변가에 놀러온 미녀들에게 천거된 출연자들이 한여름 낮의 꿈을 연출하고, 반면 천거 받지 못한 출연자들이 오나미와 김혜선과 함께 지옥을 경험하는 장면들이 병치된다.

 

물론 여기 등장한 비키니 미녀들이 처음부터 섭외된 연예인 지망생이었는지 아니면 현장에서 우연히 만나 섭외된 일반인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이 어느 쪽이든 이 웃음에 <12> 특유의 자연스러움이 사라진 것만은 사실이다. <12>은 여름휴가 시즌인 여행의 시기에 하필 이런 콩트 설정의 특집을 만들었을까. 차라리 여행을 못가 방에 콕 박혀 보내는 <무한도전>식의 콩트라면 이해가 가지만 굳이 동해까지 가서 스튜디오 예능을 할 필요가 있었을까.

 

웃음이라고 다 같은 웃음이 아니다. <12>이 여타의 예능 프로그램보다 우위에 설 수 있었던 힘은 바로 이 다 같지 않은 웃음의 진정성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콩트를 통해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웃음이 아니라 진짜 현장에서 뜻밖에 터지는 웃음이 있었기 때문에 <12>이 있을 수 있었다. 물론 <개그콘서트><개그콘서트> 나름의 웃음의 의미가 있지만 <개그콘서트>를 보며 기대하는 웃음과 <12>을 보며 기대하는 웃음은 다르기 마련이다. 지나친 콩트는 야생마저 스튜디오로 만들어버린다. <12><개그콘서트>가 돼서는 안 되는 이유다. <12>은 박태호 국장이 말하는 그 진정성과 초심으로 돌아와야 한다.

 

개그우먼들의 다양한 변신, 오나미와 박지선에게 필요한 건

 

<개그콘서트>의 개그우먼들들이 자신의 외모를 무기로 개그를 선보일 때마다 외모 비하논란이 생기기도 했지만 이제 그런 정도는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그만큼 외모 개그가 일반화되었고 무수히 반복되면서 둔감해진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외모로 웃기는 것 또한 개그의 한 부분이라고 인식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개그콘서트(사진출처:KBS)'

김준현이 뚱뚱한 몸 하나로 무대에서 빵빵 터트리더니 CF계의 떠오르는 별이 된 것처럼 외모개그는 폄하될 것이 아니라 제대로만 살려낸다면 오히려 편견을 깨고 긍정적인 이미지까지 얻을 수 있다. 김준현이 하고 있는 큰 세계같은 코너는 단적인 예다. <신세계>를 패러디한 큰 세계는 뚱뚱해야 보스로 인정받는다는 역발상으로 웃음을 주는 코너다. 이 코너를 보다보면 지나친 다이어트 열풍에 대한 일종의 카타르시스도 느낄 수 있다.

 

이 코너는 외모 비하의 차원을 넘어서서 오히려 당당하게 뚱뚱한 몸을 자랑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우리가 뚱뚱한 사람을 돼지라고 부르며 갖는 부정적 이미지를 상당부분 없애주기도 한다. 김준현이나 유민상 같은 뚱뚱한 몸을 내세우는 개그맨들은 그것을 긍정적으로 전화시키는 개그를 통해 이른바 돼지 캐릭터도 다른 느낌을 가질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김준현을 똑똑한 돼지라 부르고 유민상을 여유로운 돼지라 부르는 건 그런 이유다.

 

외모 개그에 있어서 특히 비판의 대상이 유독 많이 됐던 건 개그우먼들이다. 여성이라는 입장이 우선 외모 지적이나 비하에 대해 반감을 갖게 만드는 부분도 있지만 개그우먼들이 툭하면 외모로 웃기려는 경향이 비판의 이유가 됐다. 하지만 최근 서수민 PD에 이어 김상미 PD로 여성 PD들이 <개그콘서트>의 메가폰을 잡으면서 개그우먼들의 캐릭터도 다양해졌다.

 

사건의 전말쉰 밀회로 독특한 개그영역을 만들어내는 김지민이 그렇고, ‘두근두근같은 코너로 멜로 개그를 선보인 장효인이 그렇다. ‘선배, 선배!’의 이수지나 끝사랑의 김영희는 물론 외모 개그가 바탕에 깔려 있지만 그것만이라고 볼 수 없는 캐릭터의 재미가 묻어난다. 그도 그럴 것이 이수지는 황해에서 보이스피싱 연기로 주목을 받은 바 있고 김영희는 두분토론으로 여성의 입장을 대변한 바 있는 개그우먼이다.

 

그런데 이렇게 달라지고 다양해지고 있는 개그우먼들 속에서 너무 한 가지 모습으로만 갇혀 있는 두 개그우먼들이 있다. 바로 박지선과 오나미다. ‘우리동네 청문회에 출연하는 박지선은 스스로를 진상 박지선이라고 소개하며 외모 비하 개그를 보여준다. “속였잖아요. 저 그 말만 믿고 진짜 베란다에서 비키니 입고 선탠 하다가 주민신고 당했잖아요. 비키니 입고 경찰서에서 조서 썼잖아요.” “속였잖아요. 그 앞집총각 나랑 눈 마주치자마자 바로 이사 갔잖아요. 남자 없잖아요. 남자.” 이런 개그 속에는 못 생긴 얼굴이라는 닳고 닳은 박지선의 단골 개그 소재가 무한 반복된다.

 

이런 사정은 오나미도 마찬가지다. ‘억수르에 나미다라는 캐릭터로 등장한 그녀는 과장된 포즈를 취하고 애써 눈을 찡긋 대는 모습으로 웃음을 만들려한다. 그 외모개그에는 스스로 못생긴 얼굴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바닷가에 갔는데 안전요원이 비키니를 못 입게 하는 거야. 이제는 집에서만 비키니 입을게.”하고 오나미가 말하자 억수르가 바다 사줄게.”라고 한다거나, 김기열에게 인사하는 척 하면서 자기 다리를 봤다며 너도 남자구나. 오케이 콜. . 대놓고 봐. 안구정화해. 힐링시켜. 봐 봐 봐.”하는 대사 역시 이제는 좀 식상하게 다가온다.

 

물론 외모개그도 개그의 한 소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외모만을 캐릭터화해서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개그는 이제 과거만한 힘을 발휘하는 것 같지 않다. 이것은 박지선이나 오나미처럼 개그에 더 많은 장점을 가진 개그우먼들에게 마치 족쇄 같은 느낌마저 준다. 이제는 그것을 과감히 뛰어넘어야 할 때다. 물론 그것이 그녀들의 캐릭터이기 때문에 완전히 벗어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바탕 위에서 무언가 새롭게 외모에 대한 편견 자체를 깨버릴 수 있는 그런 캐릭터를 기대할 수는 없는 걸까. 훌륭한 개그우먼들이 단지 외모만이 아니라 다양한 끼와 재능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코너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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