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현대물, SBS 사회극, KBS 사극

TV 콘텐츠에서 드라마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높아져만 간다. 그러니 방송사들의 드라마에 거는 기대 또한 높아질 수밖에. 시쳇말로 잘 빠진 드라마 한 편은 방송사들을 웃게도 만들고 울게도 만드는 상황이다. 작년 내내 MBC를 웃게 만든 건 다름 아닌 ‘주몽’이었다. 최고시청률을 연일 갱신하며 월화의 밤을 장악해버린 이 퓨전사극으로 인해 타 지상파의 월화 드라마들은 연일 최저시청률을 경신하는 눈물의 밤을 보내야 했다.

세련된 현대극으로 승부하는 MBC
하지만 그 부담이 너무 컸던 것일까. ‘주몽’이 종영한 이후, MBC의 드라마 성적은 그다지 좋지 않다. ‘케세라세라’, ‘히트’, ‘메리 대구 공방전’, ‘에어시티’ 등 기대작들은 기대한 만큼의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다. 주목할만한 드라마로 ‘하얀거탑’과 ‘고맙습니다’ 정도가 완성도와 시청률 양쪽을 어느 정도 가져간 드라마로 기억될 뿐이다. 여기에 애초에 방영되기로 했던 ‘태왕사신기’가 계속 늦춰지면서 그 여파를 고스란히 다른 드라마들이 겪게 되었다.

MBC가 주도했던 ‘포스트 주몽’으로서 ‘태왕사신기’의 방영이 연기되고, ‘포스트 하얀거탑’으로 만들어낸 ‘히트’나 ‘에어시티’같은 전문직 장르 드라마들이 그다지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자 MBC가 갖고 있던 ‘드라마 왕국’의 이미지는 많이 희석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본래 MBC가 가졌던 강점인 현대물들로 그 어려움을 타개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기대작은 ‘커피 프린스 1호점’, ‘개와 늑대의 시간’ 같은 작품들이다.

MBC 드라마의 특징은 세련된 현대물이란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시청률에서는 그다지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던 ‘케세라세라’, ‘히트’, ‘에어시티’, ‘메리 대구 공방전’을 비롯해, 현재 좋은 분위기를 보이고 있는 ‘커피 프린스 1호점’은 모두 세련된 현대물이란 특징이 있다. 또한 드라마의 영상연출에 있어서도 이들 드라마들은 탁월한 감각적 화면을 잡아내고 있다. 하지만 이런 영상시도는 젊은 층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하지만 좀더 현실적인 느낌을 드라마를 통해 받길 원하는 40대 이상 시청자들에는 조금 낯선 것이 사실이다.

사회극으로 현실의 이슈화를 노리는 SBS
MBC가 내놓은 빈자리를 채운 것은 SBS. SBS 드라마는 그 시청자들에게 낯선 것보다는 좀더 현실적인 것을 보여주면서 사회적인 파장까지 이끌어내고 있다. SBS의 CP들은 최근 들어 오히려 사회적 이슈가 될만한 것을 기획한 다음, 그것을 드라마로 제작하는 방식을 쓰고 있다. ‘내 남자의 여자’가 불륜을 통해 이 시대의 달라진 남녀상을 현실감 있게 그려내 호평을 받은 것에 이어, ‘쩐의 전쟁’은 사채업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돈에 죽고 돈에 사는 사회의 모습을 그려냈다.

이어 현재 방영되고 있는 ‘강남엄마 따라잡기’는 교육문제를 좀더 사회적 시각으로 접근해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강남과 강북의 문제가 드라마를 통해 전면적으로 부딪치고 있는 것. 이 정도 되면 드라마는 그저 드라마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쩐의 전쟁’ 방영 후 그것이 실제 대부업체들의 이미지 전쟁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듯이, ‘강남엄마 따라잡기’ 역시 드라마가 방영되면서 드라마가 그려내는 모습들에 대한 뜨거운 찬반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SBS 드라마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드라마 자체의 힘에 외부적인 힘, 즉 현실의 힘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현실사회가 가진 문제들을 끄집어내는 것만으로도 이들 드라마들은 충분한 함의를 가진다. 드라마를 보면서 자꾸만 현실을 반추하게 하는 것은 어찌 보면 인터넷이란 매체를 통해 누구나 자신의 소리를 낼 수 있는 여건 속에서 가장 폭발적으로 시청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방식이 될 수 있다. 

KBS, 사극으로 부활을 노린다
MBC와 SBS의 틈바구니 속에서 가장 힘겨운 시간을 가졌던 것은 KBS. 공영방송이라는 무거운 옷을 입고 있어, 상대적으로 MBC가 했던 새로운 시도나 SBS가 했던 현실의 이슈화를 하기 어려운 상황에 있던 KBS는 결과적으로 이 두 방송사의 공격을 고스란히 받은 격이 됐다. 전통적으로 강점을 갖고 있는 일일드라마와 사극을 빼고는 대부분의 드라마들이 참패를 면치 못했다. ‘꽃 찾으러 왔단다’, ‘마왕’, ‘헬로 애기씨’ 같은 드라마들은 완성도를 떠나서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았다.

그러나 역시 사극은 KBS였다. 사극의 특성상 많은 노하우와 세트 등을 보유한 KBS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사극에서는 계속 강세를 유지했다. ‘황진이’가 호평과 함께 성공적인 시청률을 기록했고 ‘대조영’ 역시 꾸준히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최근 시작해 호평을 받고 있는 ‘경성스캔들’ 은 일제시대라는 시대적 상황을 끌어들였고 월화극으로 새로이 시작한 ‘한성별곡’ 역시 정조시대를 배경으로 그리고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사극만으로 만족할 수는 없는 법. 최근 KBS는 자체적으로 드라마 기획팀을 만드는 등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을 벗어나려 노력하고 있다.

방송사별로 드라마들이 이렇게 제 각각의 색깔을 내는 데는 공영방송으로서의 KBS와 그걸 깨기 위해 새로운 시도로 맞서는 MBC, 그리고 그 틈바구니에서 약간의 논란까지 감수하며 기꺼이 경쟁에 끼어 든 SBS, 이 방송3사의 입장이 깔려 있다. 게다가 거의 극에 이른 드라마 시청률 경쟁은 이제 남을 둘러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잘하는 것을 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이끈다. 어찌 됐건 골라보는 재미를 가지게된 시청자들로서는 반가운 일이다. 세 방송사가 천편일률적인 색깔을 보여준다면 그것만큼 지루한 것도 없을 테니까 말이다.

실시간 시청률이 마니아 드라마 만든다

‘마왕’, ‘케세라세라’, ‘경성스캔들’, ‘메리 대구 공방전’, 이 드라마들의 공통점은 시청률은 낮지만 소위 말하는 대박 드라마만큼의 호평을 받는 드라마라는 것이다. 만일 시청률이 의미하는 것이 그만큼 호평을 받는다는 것이라면 이 ‘시청률 낮은 호평 받는 드라마’는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래서 이상한 타이틀이 붙었다. 소위 ‘마니아 드라마’, ‘폐인 드라마’라는 것이다.

이 호칭이 붙는 순간, 그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은 마니아(심지어는 폐인?)가 되어버린다. 소수 취향에 특별한 광기(본래 마니아는 그리스어로 광기란 뜻)를 지닌 사람의 축에 끼게 되는 것. 하지만 진짜 그럴까. 그저 시청률에 의해 재단된 것은 아닐까. 만일 지금의 방식으로 산정되는 시청률이 현재 변화된 환경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면 어떨까. 마니아 드라마는 진짜 있는 것일까, 없는 것일까.

세대가 다른 프로그램에 대한 공감도
나이가 지긋하신 장년층 시청자분들은 ‘메리 대구 공방전’을 보면서 “도대체 저게 뭐 하는 것들이냐?”고 말한다. 등장인물들이 어려서가 아니라 그 독특한 스타일이 소위 말해 적응이 안 되는 것이다. ‘마왕’같은 작품은 아예 이해불가를 넘어서 고문에 가깝게 느껴진다. 작품 자체가 시청자들의 머리를 끝없이 추리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소위 호평 받는 프로그램들 대부분에 대한 반응도 비슷하다. ‘무한도전’같은 프로그램은 “지들끼리 나와 떠드는 걸 뭐하러 보냐”고 하기 일쑤다.

이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어느 정도 학습이 필요하다. ‘메리 대구 공방전’을 재미있게 보려면 적어도 인터넷 소설이 주는 만화처럼 톡톡 튀는 재미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마왕’이 재미있으려면 적극적으로 추리를 해보겠다는 약간의 도전정신(?)이 필요하다. ‘무한도전’이 재미있으려면 거기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한 사전지식이 있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TV 속에서 보여지는 것들은 아무런 의미를 던져주지 못한다.

이것은 과거, 일방향적인 TV의 시청 행태로는 지금 같이 쌍방향적인 TV 프로그램을 이해하기 어렵게 되었다는 점을 말해준다. 그래서 장년층들은 채널을 돌린다. 이해할 수 있고 코드에도 맞으며 자신들에게 재미있는 프로그램에 고정시킨다. 일일가족드라마가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는 것은 당연하다. 과거나 현재나 익숙하기 때문이다. 반면 똑같은 일일가족드라마라 해도 ‘거침없이 하이킥’처럼 어느 정도의 학습(적어도 이순재가 왜 야동순재로 떴는지는 알아야 한다)이 필요한 프로그램은 다르다. 시트콤이란 형식이 시청률에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20% 전후의 시청률에 머무르는 건 바로 그런 이유다.

TV와 컴퓨터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하지만 젊은 세대들에게 TV란 그저 정보와 재미를 ‘전달’해주는 매체를 넘어서 그 전달된 정보를 통해 새로운 재미를 생산할 수 있게 해주는 존재다. 인터넷이란 의견의 장은 그 재미를 무한히 증폭시켜준다. 그러니 그들은 기성세대들이 원하는 ‘익숙함’보다는 ‘새로움’을 찾게된다.

여기에 인터넷 다운로드 방식은 빠르게 젊은 세대들의 시청 형태로 자리잡고 있다. 그들은 TV로 방영되는 시간에 맞춰 드라마를 보는 것보다, 다운로드 받은 드라마 파일을 컴퓨터나 PMP 같은 뉴미디어를 이용해 아무 때나 보는 게 더 편하다. 심지어는 여러 편을 한꺼번에 보는 몰아보기를 선호하는 경향도 있다. TV가 기성세대의 매체가 되고 있는 반면, 젊은 세대의 매체로 뉴미디어들이 대체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세대간의 시청형태는 TV와 컴퓨터로 확실히 분리되어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새롭게 각광을 받고 있는 IPTV가 그것이다. 실시간으로 다운로드를 받아 프로그램을 아무 때나 볼 수 있는 이 마법의 장치는 인터넷과 TV가 만나는 지점에서 나온 것으로 과거 TV의 개념을 바꾸고 있다. 그 중 가장 첨예한 것은 실시간 시청이란 TV의 개념이 무너지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것은 엄밀히 말해 TV이기에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은 기성세대들조차 편리한 도구로 인식된다는 점에서 더 파괴적이다.

물론 이것은 이제 막 태동하는 TV의 진화이기에 그 변화의 양상이 피부에 아직까지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진화가 굉장히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어 시청형태의 변화는 곧 이루어질 거라는 점이다. 문제는 지금의 실시간 TV 중심으로 이뤄지는 시청률 산정이 이러한 변화를 반영하거나 최소한 준비하고 있느냐는 점이다.

마니아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은 마니아가 아니다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서 ‘시청률은 낮지만 소위 말하는 대박 드라마만큼의 호평을 받는 드라마’라는 말은 그 자체로 지금의 시청률 산정의 문제를 드러내는 게 아닐까. 그 호평은 특정 기관이 주는 것도 아니고, 몇몇 평론가들이 주는 것도 아닌 바로 시청자들이 주는 것이다. 따라서 호평을 받으면 시청률이 높고, 그렇지 못하면 시청률이 낮아야 당연한 것이다. 이 비례적인 등식을 반영하지 못하는 시청률이라면 그다지 신뢰하기 어려운 것이 된다.

그깟 시청률 신경 쓰지 말고 그냥 자기가 좋아하는 드라마나 보면 되지 않냐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지금처럼 산정된 시청률이 광고라는 힘을 등에 업고 드라마를 제작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자칫 잘못하면 현재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는 시청률 산정으로 인해 드라마 제작이 기형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그것은 또한 미래의 시청자들을 지금부터 버리는 행위가 된다.

엄밀히 말해서 마니아 드라마는 없다. 오히려 마니아 드라마의 존재는 지금의 시청률 산정이 반영하지 못한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거꾸로 말해 마니아 드라마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시청률 잣대로 인해 소외될 수 있는 세대들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이것이 마니아 드라마가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마니아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은 마니아가 아니다.

만화적 감수성이 돋보이는 ‘커피 프린스∼’, ‘경성스캔들’, ‘메대공’

‘커피 프린스 1호점’, ‘경성스캔들’, ‘메리 대구 공방전’의 드라마 구도는 어딘지 익숙한 것들이다. 우리가 보았던 멜로드라마나 트렌디 드라마, 심지어는 로맨틱 코미디에서 가졌던 구도들. 시청자들이 이제는 식상하다며 외면했던 바로 그 틀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드라마들이 과거의 그것들과 전혀 다른 느낌을 선사하는 이유는 무얼까. 이 드라마들은 전혀 식상하지 않고 오히려 참신하며 그 참신함을 넘어서 무언가 새로운 드라마 트렌드의 탄생을 예상하게 만든다. 그 키워드는 바로 만화적인 감수성이다.

만화적 감수성의 시도는 사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풀 하우스’와 ‘궁’에서 시도되었고, ‘환상의 커플’에서 만화 원작이 아닌 드라마 자체로의 시도를 성공리에 끝낸 바 있다. ‘환상의 커플’은 더 이상 ‘만화 같은 이야기’라는 수식어가 ‘황당하고 허술하다’는 부정적인 의미가 아닌 ‘재미있다’는 긍정적인 의미가 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3차원 드라마 세상에 나온 갑작스런 4차원 드라마의 출현이었다. 지금처럼 같은 시기에 비슷한 경향의 드라마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비현실적이라고? 효과는 만점
만화적인 장치들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카메라 연출이다. 과거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화면 속에 넣어지는 등장인물들의 속마음을 담은 자막들은, 만화책의 프레임과 말 풍선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참신하게 다가올 것이다. 드라마에서라면 조금은 거북할 법도 한 캐릭터들의 과잉행동은 그러나 만화적인 앵글과 편집으로 경쾌하게 변신한다. 갑자기 본 드라마 내용과는 어울리지 않는 상상 속의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 역시 바로 그런 만화적 감수성의 룰 안에서 용인되는 것들이다.

하지만 이러한 만화적 감수성은 단지 카메라 연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캐릭터의 설정이라든가, 이야기 전개에까지 효과적으로 사용된다. ‘메리 대구 공방전’에서 대구의 아버지인 풍운도사(이영하)의 캐릭터 소개는 말 그대로 만화적 설명이라 할 정도로 우화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경성스캔들’에서 모던 뽀이 선우완(강지환)의 캐릭터를 구성하는데 있어서 사용된 장치 역시, 그를 따르는 지라시 출판사의 만화 같은 캐릭터들의 만화 같은 행동들이 중요한 역할을 해냈다. ‘커피 프린스 1호점’ 역시 최한결(공유)이 남장여자인 고은찬(윤은혜)을 애인처럼 보여 선보는 여자들을 따돌리는 설정과 장면들은 바로 그 만화적 장치를 활용했다. 그 과정을 통해 그 둘의 관계가 이어질 거라는 점에서 이 만화적 장치는 비현실적이지만 효과적이다.

이러한 드라마 속 만화적 장치들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은 엇갈릴 수밖에 없다. 반드시 그렇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그것은 대체로 세대로 나뉘어진다. 만화적 표현을 실생활처럼 받아들이면서 살아온 젊은 세대들은 그 장면들에서 편안한 익숙함을 발견하는 반면, 그렇지 못한 기성세대들은 오히려 낯설음을 느끼게 된다. 이것은 마치 인터넷 소설에 대한 세대  간의 반응과 거의 맞아떨어진다. 인터넷 소설이 가진 가벼움을 기성세대는 경박함으로 말하는 반면 젊은 세대들은 상큼 발랄하다고 느끼는 것처럼.

공교롭게도 세 편 모두 인터넷 소설(한심남녀공방전, 커피 프린스 1호점), 로맨스 소설(경성애사)이 원작이다. 어떻게 대중소설이 만화적 감수성을 갖고 있는가는 그 소설들을 읽어본 독자라면 쉽게 이해할 것이다. 문학이 가진 완고한 문학적 틀에 반항하기라도 하듯 이들 소설들은 영상의 세례를 받고 태어났다. 그 영상이란 드라마, 영화는 물론이고 만화도 포함된다. 글이 가진 문학적 묘미보다는, 영상을 떠올리게 하는 장치로서의 글을 갖고 있기에 이들 작품들은 만화적 감수성과 교류한다.

질척이던 멜로를 구원한 만화적 감수성의 힘
새로운 드라마 트렌드의 탄생을 기대하게 하는 것은 이들 드라마들이 만화를 캐스팅하면서 분명히 얻은 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 첫 번째는 참신한 스토리다. 과거의 사랑타령(?)을 담은 멜로 드라마나 트렌디 드라마들은 거의 빤한 스토리 속에 안주하고 있었던 반면, 이들 드라마들은 나름대로의 메시지를 담은 스토리를 제공한다.

‘메리 대구 공방전’은 백수인 청년들을 내세워 꿈과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건넨다. ‘커피 프린스 1호점’은 기본적으로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여기에 제목에서 암시하듯 커피 프린스 1호점을 세우고 키워나가는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얹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경성 스캔들’은 일제시대라는 무게감 때문에 다루지 못했던 그 시대의 연애를 경쾌하게 다루면서도 또 한편으로 당대 젊은이들의 아픔을 놓치지 않는다. 만화적 상상력의 자유로움은 리얼리티가 가진 무게를 벗어내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장점이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 드라마가 만화적 장치를 가져오면서 그간 멜로 드라마들이 사랑 이야기를 하면서 갖지 못했던 감정의 균형감각을 획득했다는 점이다. 식상한 최루성 멜로 드라마와 트렌디 드라마들이 일시에 가라앉으면서 드라마가 고민해야했던 것은 앞으로 드라마 속에 어떻게 사랑 이야기를 넣느냐는 것이었다.

통속화되고 공식화된 멜로 드라마들이 만들어놓은 ‘사랑타령’으로 일축되는 현실 앞에서, 드라마의 재미 중 거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사랑이야기의 배치는 첨예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하얀거탑’ 같은 사랑이야기가 없는 전문직 장르 드라마의 탄생은 마치 ‘사랑타령’을 드라마의 질을 저하시키는 원인으로 오인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만화는 그 자체의 속성으로 인해 지나친 심각함에 빠지지 않으면서 하고자하는 어떤 메시지로 접근해간다. 아무리 생과 사가 오가는 심각한 장면이라도 만화 속에서는 이른바 희화화된 캐릭터의 얼굴이 등장하면서 적절한 감정의 균형상태를 만들어낸다. 만화를 통해 가져온 이 균형감각으로 인해, 이제 드라마들은 과거처럼 질척하게 진행되지 않는다.

심각한 상황 속에서 느닷없이 경쾌한 시그널이 삽입되고(경성스캔들), 속내를 내내 숨기며 시종일관 웃기고 있다가 느닷없이 눈물 한 방울로 찡하게 만들며(메리 대구 공방전), 당장 올려줄 전세금이 없으면 쫓겨나야 할 상황을 오히려 웃음의 원천으로 바꿔버리는(카페 프린스 1호점) 힘은 바로 그 만화적 장치에서 나온다.

지금 등장한 이러한 드라마가 하나의 트렌드를 이룰 것인지 아니면 그저 우연히 같은 시기에 등장했을 뿐인지는 현재로선 판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러한 드라마의 탄생이 식상한 멜로 드라마와 트렌디 드라마가 해놓은 드라마의 퇴행을 다시 진화의 방향으로 돌려놓은 공이 있다는 점이다. 어쨌거나 멜로를 포함한 사랑이야기는 드라마가 배제하기 어려운 소재가 아닌가. 그렇다면 멜로를 무조건 비난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도로 식상하지 않은 멜로를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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