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식이 삼촌’, 먹고사니즘에만 몰두했던 시대의 느와르

삼식이 삼촌

“피자 아세요? 드셔 보신 분? 의원님, 드셔 보셨습니까? 제가 유학시절에 피자집 다락방에서 살았습니다. 하루 한 끼 제대로 못 먹던 유학시절에 매일 피자 굽는 냄새에 밤잠을 설쳤습니다. 여러분 총칼이 아니라 경제입니다. 누구도 끼니 걱정하지 않는 나라. 하루 세끼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나라! 제가 유학시절에 가장 부러웠던 건 전투기도 항공모함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피자였습니다. 전 국민이 굶으면서 전쟁에 이기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개혁당 주인태(오광록)를 지지하는 연설에서 김산(변요한)이 하는 피자 이야기에 박두칠(송강호)의 눈이 반짝 빛난다. 그 역시 대한민국 정재계를 쥐고 흔드는 청우회 사람들 앞에서 한바탕 피자 이야기를 꺼냈던 적이 있어서다. 박두칠은 그 자리에서 김산이 앞으로 자신과 함께 같은 꿈을 펼쳐나갈 거라는 예감을 한다. 그건 김산이 연설에서 했던 말처럼, ‘하루 세끼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나라’에 대한 꿈이다.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삼식이 삼촌’은 1950년대말부터 60년대까지의 격동기를 배경으로 박두칠과 김산이 각자의 욕망과 꿈을 펼쳐나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알다시피 당시는 이승만 정권 말기로 3.15 부정선거가 치러지고 5.16 군사 쿠데타가 벌어져 군부 독재가 시작되던 시기다. 전후 피폐했던 삶은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시급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하루 세끼를 굶지 않고 먹기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다는 욕망들이 꿈틀대던 시대다. 

 

‘삼식이 삼촌’이라는 캐릭터가 독보적일 수밖에 없는 건, 바로 이 먹고사니즘이 극단화된 시대를 이만큼 대변할 수 있는 인물이 없기 때문이다. 그가 삼식이라고 불리게 된 이유에 대해 김산은 이렇게 말한다. “전쟁 중에도 하루 세끼 다 먹였다고. 자기 식구 친구 친척 그 누구도 굶기지 않는다고.” 이 인물에게 먹고사니즘은 자신의 삶의 목표이자 방식이다. 그 역시 단팥빵 하나 먹기 힘들었던 시절을 겪었지만 이제는 그 가게를 자기 소유로 하고 언제든 빵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이 됐다. 

 

그는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데 있어서도 바로 이 “먹여주는” 방법을 쓴다. 총칼이 아닌 경제에 대한 꿈을 갖고 있지만 혁신당 총수 주인태의 딸 주여진(진기주)과 헤어질 수 없어 박두칠이 제안하는 청우회 사람들과 뜻을 같이 하지 못하는 김산을 회유하는 방식도 바로 그 먹여주는 방식이다. 그는 김산의 집에 쌀을 갖다 주고 비싼 과자를 사주기도 한다. 물론 먹여주는 건 음식만이 아니다. 뇌물도 먹이고 때론 막강한 권력을 가진 자리도 제안한다. 

 

그 모든 것들이 먹고 사는 문제에 걸려 있다. 주인태 같은 정치인들은 개혁만이 살길이라고 외치는데 그것도 서민들의 먹고 사는 문제이고,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청우회 사람들도 공단을 만들려 하는데 그 명분 또한 먹고 사는 문제다. 물론 그 실상은 그들이 독식하는 돈과 권력의 문제이지만. 삼식이 박두칠은 이렇게 배고픈 욕망들이 널려 있는 사회 곳곳의 사람들을 이용한다. 각자가 갖고 있는 욕망들을 부추겨 자신에게 유리하게 행동하게 만든다. 

 

‘삼식이 삼촌’은 훗날 경제개발 5개년 계획 같은 것들이 만들어져 이른바 압축성장을 해내는 이 나라의 밑그림 속에 바로 그 삼식이 같은 인물의 먹고사니즘에 대한 욕망이 자리해 있다는 걸 그려내면서 동시에 거기 깔려 있는 시대의 비극들 또한 포착해간다. 즉 먹고 사는 문제만 해결되면 된다는 식의 절실함이 포기했던 무수한 인권들과 생명들과 대의들 같은 것들을 그려낸다. 그건 어쩌면 이제 먹고 살만해진 현재의 우리들이 맞닥뜨리고 있는 양극화의 문제 같은 그 압축성장의 후유증이 생겨난 원인들이기도 할 게다.

 

여러 욕망들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하고, 삼식이 삼촌 박두칠은 모든 그 욕망들과 연결되어 있다. 거대한 한 시대의 흐름이 박두칠이라는 인물과 끈으로 연결된 무수한 욕망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져 가는 과정이 그려진다. 그래서 박두칠이라는 인물은 이 작품에서 절대적인 위치에 서있다. 모든 욕망이 발현되고 촉발되며 그로 인해 사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이 인물이 납득되어야 ‘삼식이 삼촌’이라는 작품이 공감될 수 있는 구조다.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송강호는 역시 이러한 무게감을 든든히 떠받칠 수 있을만큼 어찌 보면 다소 판타지적인 이 인물에 자연스러움을 부여한다. 때론 몰아붙이다가도 때론 인간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그러면서도 목적을 위해서는 싸늘한 배신도 서슴지 않는 다양한 얼굴들을 삼식이 삼촌이라는 하나의 캐릭터로 단단히 붙잡아 놓는다. 

 

또한 다소 복잡할 수 있는 많은 인물들의 이야기로 펼쳐지는 ‘삼식이 삼촌’의 구심점 역할을 해주기도 한다. 많은 이야기의 갈래들의 송강호가 연기하는 박두칠이라는 인물로 수렴되고 거기서 또다시 새로운 이야기로 변주된다. 과연 송강호가 아니라면 감당이 가능할까 싶은 인물의 역할이 아닐 수 없다. 첫 드라마 출연이라고 겸양을 내보이고 있지만, 송강호에 의한, 송강호를 위한, 송강호의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삼식이 삼촌’이라는 당대를 대변하는 독보적 캐릭터를 창조해낸 신연식 감독의 지분이 분명하다. 세 끼를 굶지 않고 먹을 수 있는 것이 꿈이었던 시대를 이토록 명쾌하게 보여주는 캐릭터가 있을까. 이제 5회가 공개되었지만 향후 박두칠과 김산이라는 현실과 이상을 대변하는 두 인물이 어떻게 격동기를 헤쳐나가며 그들이 꿈꾸던 경제를 실현시켜 나가는지 남은 회차들이 못내 궁금해진다. (사진:디즈니+)

'머니게임', 심은경에 대한 여전한 신뢰와 유태오의 재발견

 

“어떻게 한 사람이 경제를 망칩니까?” 자신이 채병학 교수를 벼랑 끝에서 밀어버린 이유에 대해 끝까지 그가 우리 경제에 미친 해악을 꺼내놓는 허재(이성민)에게 채이헌(고수)은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허재의 확증편향은 변함이 없다. 채병학 교수의 그 신자유주의적 발상이 IMF 이후 제대로 된 구조조정을 하지 못함으로써 나라 경제를 지금껏 어렵게 만들었다고. 그래서 자신이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던 거라고.

 

“그래서 제 아버지를 죽여서 원하는 걸 얻으셨습니까? 누굴 희생시키면서 얻을 수 있는 거라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부총리님은 처음부터 틀렸습니다. 제 아버지를 죽여서가 아닙니다. 혼자 바꿀 수 있다는 생각, 내가 다 아니까 내가 알아서 하면 다 될 수 있다는 그 오만, 법을 이용하고 편법을 쓰고 법을 어겨서라도 기어이 이루고 말겠다는 그 병적인 집착.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그렇게 해서 바꿀 수 있는 세상은 아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 역시 다르지 않았습니다.”

 

채이헌은 자신 또한 허재와 다르지 않았다는 걸 인정하며 후회한다. 그리고 그 말은 단단해 보였던 허재의 확증편향 또한 무너뜨린다. 면회를 끝내고 돌아가는 길 허재는 갑자기 멈춰서 뒤돌아보더니 후회의 눈물을 쏟아낸다. 그는 자신의 선택이 나라의 경제를 위한 것이라 여겼지만 그건 자신의 엇나간 욕망이었을 뿐이었다.

 

종영한 수목드라마 tvN <머니게임>은 경제를 숫자놀음으로 치부하며 마치 게임하듯 농단하는 이들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런데 그걸 막는 이들 또한 두 부류로 나뉘어 있다는 걸 보여줬다. 허재도 채이헌도 나라 경제를 뒤흔드는 바하마의 유진한(유태오)과 맞서 싸웠지만 그들은 여전히 경제를 숫자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그들을 정신 나게 만든 인물은 이혜준(심은경)이라는 소신대로 살아가는 올곧은 사무관이었다. 그는 숫자 뒤에 존재하는 무수한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말해줬다.

 

결코 나라의 경제가 숫자에 좌우되는 게임이 돼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한 <머니게임>은 우리네 드라마에서 지금껏 좀체 다루지 않았던 경제를 소재로 했다는 점에서 가치와 의미를 가진 드라마였다. 물론 경제라는 것이 어려운 용어들과 숫자, 그리고 국내외 관계가 얽혀있는 사안이라 복잡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머니게임>은 애초부터 높은 시청률을 기대하긴 어려운 드라마였다.

 

하지만 드라마가 경제에 있어 숫자가 아닌 사람을 봐야한다고 말한 것처럼, 이 드라마의 가치 또한 시청률 같은 수치로 재단할 수는 없다고 여겨진다. 치밀한 사전취재를 통해 보다 깊게 경제적 사안들을 담아내려는 노력이 충분히 보여졌고, 그걸 구현해가는 과정에서의 스토리텔링도 괜찮았기 때문이다. 자칫 국가경제라는 거대담론으로만 흘러갈 수 있는 이야기는, 이혜준과 기재부 사람들 그리고 그의 고모인 이만옥(방은희) 가족의 이야기가 더해지면서 그 거대담론으로서의 경제정책이 서민들에게 어떤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가를 잘 구현해냈다.

 

특히 주목된 건 이 작품을 통해 더 단단한 배우로서의 입지를 보여준 심은경이다. 심은경은 지금껏 해왔던 발랄하고 명랑한 캐릭터의 이미지를 벗어버리고 진지하고 소신 있는 사무관 캐릭터를 제대로 소화해 연기했다. 심은경은 배우로서 자신의 스펙트럼이 훨씬 넓다는 걸 이 작품을 통해 충분히 증명해냈다.

 

안정적인 연기를 보인 고수, 이성민 같은 배우들은 물론이고 최병모, 조재룡 같은 배우들의 명품 연기가 전체적인 드라마에 안정감을 주었다면, 이 드라마 최고의 발견은 역시 유진한 역할을 연기한 유태오가 아닐까 싶다. <배가본드>, <초콜릿>에서 슬쩍 선보였던 유태오의 연기는 <머니게임>에서는 확실한 자기 존재감을 드러냈다.

 

실로 드라마의 홍수 시대에 살아가고 있지만 다뤄지는 장르들과 소재들만 반복되는 게 우리네 드라마의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시청률이 낮을 거라 해서 시도되지 않던 소재를 가져와 탄탄한 대본으로 엮어낸 신인 이영미 작가 또한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첫 작품 치고 이토록 무거운 주제를 무난하게 풀어냈다는 건 이 작가가 가진 잠재력을 기대하게 되는 이유다.(사진:tvN)

‘머니게임’, 쉽지 않지만 빠져 볼 수밖에 없는 이유

 

tvN 새 수목드라마 <머니게임>은 ‘경제’라는 만만찮은 소재를 다룬다. BIS(국제결제은행)가 어떻고 신자유주의니 정부의 관여니 하는 이야기들이 등장하니 머리가 복잡해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니게임>이 다루는 이야기에 집중하게 되는 건, 어쩌면 우리가 노력해도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거나, 열심히 잘 살고 있다가도 순식간에 길거리에 나앉게 되는 일이 저 ‘경제’ 때문이라는 걸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린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와 미국 리먼 브러더스 파산으로 전 세계로 확산됐던 금융위기를 겪지 않았던가.

 

IMF 시절, 갑자기 주거래은행이 문을 닫아 버리자 길바닥에 주저앉아 통곡하는 이들이 뉴스에 등장하곤 했던 것처럼 이 드라마에 나오는 이혜준(심은경)의 아버지는 바로 그 일을 겪었다. 2002년은 월드컵 당시 마치 IMF의 터널을 통과한 듯 들뜬 분위기였지만 이혜준의 아버지는 여전히 그 터널 속에서 죽어가고 있었다. 그걸 바라본 이혜준이 악착같이 공부해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 사무관이 된 건, 다시는 아버지 같은 그런 피해자가 나오지 않게 하겠다는 뜻에서였다.

 

이혜준의 아버지가 죽고 그를 거둬준 고모네의 사정은 서민경제의 단면을 보여준다. 꼬끼오진이라는 치킨집을 운영하는 이만옥(방은희)과 그 남편 진수호(김정팔)는 죽어라 일하지만 삶이 나아질 기미가 없다. 진수호는 그래서 투자를 통해 한 방에 역전을 꿈꾸지만 그게 생각대로 잘 되지 않는다. 한 방의 역전이란 거꾸로 그만한 리스크를 안기 마련이니 말이다. 이만옥 가족이 등장하는 건 향후 이 드라마가 그려나갈 금융스캔들 속에서 서민들이 어떤 직격탄을 받게 되는가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아버지가 그렇게 된 걸 본 이혜준은 과연 이 위기에 어떻게 대처해갈까.

 

하지만 현실적인 키를 쥐고 있는 건 정책결정권자들이다. 정인은행 문제에 대해 팔아야한다는 소신을 밝혀버린 채이헌(고수) 덕분에 차기 금융위원장이 유력하게 된 허재(이성민)는 국가경제에는 정부의 강력한 통제가 필요하다 여기는 인물. 그는 IMF 때 실무팀 막내로 참여하면서 힘없는 나라의 경제가 얼마나 처참하게 무너지는가를 경험한다. 하지만 그가 금융위원장이 되는 걸 채이헌의 아버지이자 최고 경제학자로 국가경제 정책을 좌지우지해온 채병학(정동환)이 반대하고 나선다. 철저한 신자유주의 신봉자인 채병학은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을 내세우며 허재와 대립한다.

 

허재는 자신의 소신을 어떻게든 밀고 나가 관철시키려는 인물로 채병학과 의견대립을 벌이다 우발적으로 그를 벼랑에서 밀어버린다. 그는 허약한 국가 경제의 체질 자체를 바꾸고 부실한 기업들은 정리해야 한다는 소신을 밀어붙이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물처럼 보인다. 뜻은 의미가 있지만 방법에는 동의할 수 없는 상황. 정인은행 매각의 뜻을 드러낸 채이헌은 그와 같은 길에 서 있는 듯 보이지만 과연 그 동거가 계속 될지는 의문이다. 그리고 이혜준이라는 의외의 복병(?)이 존재한다.

 

이처럼 <머니게임>은 제목에 담긴 것처럼 경제정책 결정에 대한 저마다 다른 입장을 가진 이들이 부딪치고 대결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경제 문제는 서로 얽혀 있어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는 희생되기도 한다. 그러니 입장 차이에서 발생하는 대결이 마치 게임처럼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게임을 게임으로만 볼 수 없는 건 거기에 우리네 서민들의 삶이 좌지우지된다는 사실 때문이다. 갑자기 터져버린 금융위기에 언제나 피해를 보는 건 서민들이었다. 결정은 정부가 하고 그 결정에 의해 서민경제는 하루아침에 망가진다. 그걸 이제 운명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그래서 <머니게임>의 복잡해 보이는 경제 이야기에 몰입하게 된다. 아무리 노력해도 정책 하나에 휘청대는 서민경제의 그 작동방식이 못내 궁금해지기 때문이다.(사진:tvN)

<상속자>, 현실의 축소판을 보는 재미 혹은 끔찍함

 

SBS가 새로 파일럿으로 내놓은 <인생게임-상속자(이하 상속자)>9명의 일반인들이 한 공간에 모여 네 계급으로 나뉜 채 살아가는 모습을 담아낸 일종의 리얼리티쇼다. 과거 <>이 애정촌에 모인 남녀들의 관계를 리얼리티쇼로 담아냈다면, <상속자>는 태생()적으로 정해진 계급에 의해 만들어지는 정치, 경제, 사회적인 양상들을 역시 리얼리티쇼 형식으로 담아낸다.

 

'상속자(사진출처:SBS)'

룰은 간단하다. 운으로 금수저를 뽑은 인물이 초대 상속자가 되어 계급의 맨 꼭대기에 서고 그가 바로 밑 계급 집사 1명과 그 밑 계급 정규직 3명을 뽑는다. 그리고 남은 인원 4명은 비정규직이 된다. 상속자는 이들이 지내는 방세와 식비를 받아 돈을 벌 수 있지만, 나머지 인원들은 방세와 식비를 내야 살아갈 수 있다. 물론 이 룰에서 집사는 예외적 존재다. 이렇게 해서 마지막에 가장 많은 돈을 갖고 있는 자가 우승자가 되는 게임.

 

아주 간단한 게임처럼 보이지만, 이렇게 계급으로 구성된 룰은 지독할 정도로 현실적이다. 금수저 흙수저의 현실이 고스란히 담기고, 권력을 가진 상속자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거의 폭군에 가까운 방세와 식비를 가져가려 한다. 조악한 상황에서 살아가야 하는 비정규직들은 연합하여 다음 선거에 권력을 잡으려 하지만 이게 만만치가 않다. 상속자와 정규직들이 이미 더 공고한 연합을 만들어 비정규직들을 지속적으로 배제하려 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장난처럼 시작한 게임이지만 어떻게든 계급을 넘어서기 위해 배신과 야합이 난무하면서 이들은 마음의 상처를 받게 된다. 그리고 아직 방영되지 않은 다음 편 예고에서는 눈물을 쏟는 이들의 모습이 담겨지기도 했다. 이처럼 게임이 게임에 머물지 않고 감정을 건드리는 건 그것이 고스란히 현실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등록금 대출금에 허덕이며 알바를 전전해 살아온 닉네임 샤샤샤라는 여성출연자가 상속자가 되어 그 호사와 권력에 취하는 모습은 너무 현실적이라 마음 한 구석이 씁쓸해지기까지 한다.

 

<상속자>는 이처럼 리얼리티쇼가 보여주곤 하는 사람들의 치부를 드러내면서도 거기에 우리 사회의 현실을 투영시킴으로써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대단히 자극적일 수 있는 내용들이다. 즉 누군가가 연합할 것처럼 행동하다가 갑자기 혼자 잘 살기 위해 배신을 하는 장면은 보는 이들마저 아연실색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이 계급의 시스템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는 걸 확인하는 건 어렵지 않다. 그리고 그 시스템이란 다름 아닌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작동방식 그대로다.

 

그런데 이 <상속자>에서 주목해야할 것이 있다. 그건 방영 전부터 예고편에 등장해 기대감을 높였던 김상중이다. 그리고 그는 마스터라는 이름으로 이 프로그램의 이면에 참여하고 있다. 대부분의 방송분량이 일반인 출연자들의 리얼한 행동들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이 마스터 김상중의 모습은 뒤편으로 슬쩍 빠져 있다. 도대체 김상중은 이렇게 전면에 나오지도 않으면서 왜 이 프로그램의 중요한 인물로 서 있는 걸까.

 

그건 바로 그가 이러한 끔찍한 현실이 그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조장되고 만들어진 현실이라는 걸 은연중에 드러내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계급사회라는 시스템 속에서 불공평한 삶을 살아가며 경쟁해야 하는 사람들. 그들은 하루하루가 힘들고 서로를 경쟁자로 생각하며 밟고 밟히며 살아가지만 그것이 사실은 누군가 조장한 시스템에 의해 만들어진 삶이라는 것. 김상중은 그런 존재가 현실에도 있다는 걸 보여줌으로써 잘 보이지 않던 우리네 현실을 다시금 들여다보게 만드는 인물이다.

 

김상중이라는 외부적 시선을 통해 보여지는 <상속자>는 그래서 인간군상을 보는 재미를 선사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그 적나라함이 주는 끔찍함 같은 걸 느끼게도 해준다. 물론 이 같은 시스템 상황 속에서도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당사자들에게 달려 있다. 그러니 실제 현실에서 어떤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이 이 가상 시스템 안에 들어오느냐에 따라 다른 스토리를 전해줄 가능성도 높다. <상속자>라는 파일럿의 확장 가능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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