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가 사랑이다, <질투의 화신>의 사랑방정식

 

난 더 질투하는 엄마랑 살 거야. 더 질투한다는 건 사랑한다는 거니까.” 빨강이(문가영)는 치열(김정현)에게 그렇게 말한다. 그녀를 좋아하는 치열과 대구(안우연) 사이에서 자신의 선택의 기준이 질투라는 걸, 자신을 두고 서로 같이 살자는 두 엄마들(친 엄마와 새 엄마) 이야기로 에둘러 말한 것. 이것은 SBS 수목드라마 <질투의 화신>의 독특한 사랑방정식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질투의 화신(사진출처:SBS)'

이 드라마에서 빨강이가 중요한 것은 그녀가 흩어져 있는 가족과 친지들을 모두 엮어내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절망한 그녀가 클럽에 갔다가 실랑이가 벌어져 경찰에 끌려가자 이 드라마의 거의 모든 인물들이 경찰서로 달려간다. 그녀가 삼촌이라 부르는 락 빌라의 주인인 김락(이성재)은 물론이고, 그녀의 친삼촌인 이화신(조정석), 그녀와 함께 있던 치열의 누나인 표나리(공효진)와 그녀와 같이 온 고정원(고경표), 그리고 그녀의 친엄마인 계성숙(이미숙)과 새엄마인 방자영(박지영)이 모두 모인다.

 

하지만 그렇게 모두가 모여 경찰서에서 나오며 그들은 세 팀(?)으로 나뉘어진다. 표나리와 고정원, 이화신이 한 팀이고, 빨강이와 치열, 대구가 또 한 팀, 그리고 김락과 계성숙, 방자영이 나머지 한 팀이다. 그들은 그렇게 각자 팀을 이뤄 삼각관계를 형성한다. 표나리를 사이에 두고 고정원과 이화신이 밀고 당기며, 빨강이를 사이에 두고 치열과 대구가 또 친 엄마인 계성숙과 새 엄마인 방자영이 그리고 김락을 사이에 두고 계성숙과 방자영이 삼각관계를 이루는 것.

 

<질투의 화신>은 이처럼 고교생의 풋사랑, 성장한 남녀의 일과 사랑, 딸을 두고 벌어지는 모성애 그리고 중년의 사랑 같은 다양한 양태의 사랑들을 한 자리에 모아 놓는다. 한 사람을 사이에 둔 두 사람의 관계는 때론 앙숙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친구 그 이상이다. 심지어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대는 계성숙과 방자영이지만 그들은 빨강이의 엄마라는 공통분모 하나로 빨강이의 집에 들어와 같은 침대에 누워 빨강이가 돌아가기를 기다린다.

 

그러니 이 관계는 의외로 팽팽하다. 표나리와 고정원이 가깝게 지내는 걸 한 걸음 물러서 바라보는 이화신은 질투로 가슴이 뜨거워지지만 그렇다고 거의 형제처럼 친한 친구인 고정원에게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것은 그가 회식 2차 노래방에서 부르는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이 그저 유행가가 아닌 것처럼 다가오는 이유다.

 

두 사람만이 공유한 비밀이 있다는 건 남은 한 사람을 굉장히 질투하게 만드는 일이다. 표나리와 이화신은 유방수술 동기(?)로서의 절대적인 두 사람만의 비밀을 공유하고 있다. 형의 장례식장에서 이화신이 절망하게된 건 그렇게 허망하게 죽은 형에 대한 애도와 함께, 그의 눈앞에서 펼쳐지던 표나리와 고정원이 함께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보며 웃는 장면 때문이었다. 자신과의 비밀인 유방암 수술을 한 사실을 고정원과 공유하는 줄 착각한 이화신은 그 비밀이 공개되는 것이 단지 창피해서 그렇게 화를 낸 것일까. 그것보다는 둘 만의 비밀이 공개됐고 그러면서 그들만의 비밀이 생긴 것에 대한 질투가 아니었을까.

 

이미 빨강이가 말한 것처럼 <질투의 화신>의 사랑방정식은 그래서 누가 누구에게 더 친절하고 더 잘해주느냐에 맞춰져 있는 게 아니다. 그걸 바라보는 누군가의 폭발하는 질투에 맞춰져 있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것이 사랑인 줄 모르다가 차츰 질투하고 있는 자신을 깨닫고 사랑임을 알아가는 것. 그것이 <질투의 화신>이 그려내는 사랑법이다.

 

하지만 과연 질투만 더 많이 한다고 진짜 사랑일까. 빨강이를 사이에 두고 계성숙과 방자영이 대립하는 구도는 마치 솔로몬의 선택에 나오는 엄마들처럼 치열하지만 결국 진짜 엄마를 가르는 건 아이를 위해 선택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과연 <질투의 화신>은 어떤 선택을 하는 인물들의 사랑이 진짜 사랑이라고 말하게 될까. 자못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힘들 때 내 편인 사람, 공표진표 로코의 핵심

 

사랑보다 더 강력한 게 내 편에 대한 판타지인가. 로맨틱 코미디가 그저 사랑만을 다루던 시대에서 이제 일과 사랑을 동시에 담기 시작한 지는 오래됐다. 이렇게 되면서 생겨난 새로운 양상은 현실에 치여 살아가는 주인공이 그 힘든 현실을 잊게 해주고 또 영원히 자기편이 되어줄 사람에 대한 판타지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해졌다는 사실이다.

 

'질투의 화신(사진출처:SBS)'

서숙향 작가는 일찍이 <파스타> 같은 작품을 통해 살벌한 일터에서 피어나는 로맨틱한 사랑의 이야기를 달달하면서도 짠 내 나게 그린 바 있다. 거기서도 주목되는 건 그 힘든 일터에서 남모르게 그녀를 챙겨주고 그녀의 편이 되어주는 셰프라는 인물이 제공한 강력한 판타지다. 그저 사적인 남녀의 만남과 사랑의 과정이 아니라, 이제는 일과 얽혀 서로의 편이 되어주는 것이 사랑만큼 커진 현대인들의 욕망이다.

 

SBS <질투의 화신>은 그 배경을 방송국으로 옮겼다. 그리고 여주인공인 표나리(공효진)는 이 방송국의 구박덩이로 살아간다. 나름 프로이고 세세하게 준비해 내보내는 그녀의 일 기상예보는 아무도 주목해서 바라보지 않는다. 그것이 뉴스인지 아니면 쇼인지 알 수 없는 애매한 어떤 일로 치부된다. 그런 그녀의 기상예보를 매일 매일 보는 남자가 등장한다. 바로 어패럴업을 하고 있는 재벌3세 고정원(고경표)이 그 사람이다.

 

모두가 주목하지 않을 때 그녀를 주목해 바라봐주고, 그녀가 자신의 잘못도 아니면서 치고 올라오는 후배의 계략에 의해 해고통보를 받을 때도 그걸 알아봐주는 인물. 아무도 챙기지 않는 그녀에게 옷을 챙겨다주고 후배와 누가 방송에 나갈 것인가를 두고 실랑이를 벌일 때 은근히 그녀를 도와주는 남자. 방송 후 쓰러져버린 그녀를 안고 병원에 바래다주고 엉망진창이 됐다고 여기는 일에 대해서도 잘 했다며 다독여주는 이가 바로 고정원이다. 재력과 능력을 겸비하고 있어 뭐든 다 해줄 수 있을 것 같은 그는 표나리에게 완벽한 자기 편이 되어주는 인물이다.

 

하지만 고정원보다 더 가까이서 그녀의 진짜 편이 되어주고 있는 인물은 사실 이화신(조정석)이다. 그는 툴툴대는 성격 때문에 그녀에게 버럭 대기 일쑤지만 그러면서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녀의 기상예보 방송을 볼 정도로 그녀의 편에 서 있다. 수술을 받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방송을 강행한 그녀에게 응급차를 보내려고 하지만 그 마음은 그녀에게 닿지 않는다. 고정원이 그녀를 향해 직진해온다면, 이화신은 쭈뼛쭈뼛 아닌 듯 다가와 버럭대며 슬쩍 마음을 꺼내놓는 츤데레다.

 

<질투의 화신>에 첫 눈에 반하고 확 불타오르는 그런 사랑은 없다. 또 재벌3세가 가진 현실적인 능력에 휘둘리는 신데렐라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이 로맨틱 코미디에는 그녀가 하는 일을 지지해주고 편들어주며 외적인 조건, 상황과 상관없이 그녀 자신을 바라봐주는 사람에 대한 판타지가 존재한다. 따뜻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봐주고 응원해주는 고정원이 그렇고, 그 고정원의 배려에 마음이 흔들리는 표나리를 보며 질투하면서 조금씩 그녀의 편에 서게 되는 이화신이 그렇다.

 

<질투의 화신>이 코미디보다도 더 웃기고 때론 그 어떤 비극보다도 슬프면서도 그저 단순한 사랑 이야기 그 이상의 공감대를 가져가는 건 바로 이 내편이 되어주는 사람에 대한 동경 때문이다. 거기에는 삶과 일의 문제가 끼어들고 그저 확 타오르는 사랑 그 이상의 현실적 공감과 위안이 들어간다. 시종일관 웃다가 조금씩 그 인물들의 마음에 빠져드는 건 어쩌면 현대인들이 가장 갈급해하는 그 욕망, ‘내 편에 대한 욕망때문이 아닐까.

<질투의 화신>, 웃긴데 짠한 이 기분은 뭐지

 

표나리와 피나리. SBS 수목드라마 <질투의 화신>에서 공효진의 이름이 표나리라고 붙여진 건 다분히 캐릭터의 성격을 담고 있다. 기상캐스터로서 분명 뉴스의 한 부분을 채우고 있지만 그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 존재. 그래서 그녀는 재벌3세인 고정원(고경표)이 그녀의 날씨 예보를 꼼꼼히 챙겨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반색한다. 그러면서 항의전화라도 좋으니 전화를 해달라고 한다. 그녀는 관심 받고 싶다. ‘표가 나고싶다.

 

'질투의 화신(사진출처:SBS)'

그런데 회사에서 표나리라는 이름표를 잘못 본 이화신(조정석)은 그녀를 피나리라고 부른다. 이런 지칭 역시 다분히 작가의 의도가 깔려 있다. 그녀는 일터에서 그 누구보다 열심히 뛰어다닌다. PD 커피 심부름은 물론이고 아나운서들 잔심부름까지 하며 자신이 맡은 날씨 예보를 한다. PD가 요구하는 이상한 포즈를 기꺼이 취해가며.

 

하지만 그녀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려는 후배 기상캐스터 때문에 술에 취해 날씨 예보를 하게 된 표나리는 그 자리에서 해고통보를 받는다. 그래서 시간이 난 그녀는 유방의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지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국장으로부터 날씨 예보를 하러 오라는 명령을 듣는다. 그녀가 했던 예보가 시청률이 치솟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 아픈 몸을 이끌고 방송국에 가서 예보 준비를 한다. 실로 피가 나는치열한 일의 현장이다.

 

<질투의 화신>이라는 로맨틱 코미디가 사랑과 일을 엮어내는 바로 그 지점이 표나리에서 심지어 피나리로까지 불리는 치열한 일터다. 그녀는 표가 나기 위해 피가 나게 뛰어다닌다. 그것은 사랑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무려 3년 간 그녀는 자신이 짝사랑해온 이화신의 주변을 뱅뱅 맴돌며 살아왔다. 그를 위해 비 내리는 날 우산을 갖다 놓아주고, 회식 자리 너저분하게 널려 있는 신발들 속에서 그의 신발만 가지런히 챙겨 놓아줬다. 하지만 그녀의 사랑은 표가 나지않는다.

 

그녀가 표가 나기 시작한 곳이 유방암 수술을 받은 병원에서부터 였다는 건 우습기도 하지만 짠하기도 한 일이다. 그녀는 수술을 받아야 하는 입장에 서게 되어서야, 그것도 자신이 짝사랑해왔던 이화신과 함께 병실에 있게 되어 이제는 남녀 관계라기보다는 수술을 앞둔 환자로서 동병상련의 입장이 되어서야 비로소 표가 나기 시작한다. 늘 그녀가 해왔던 뉴스의 한 자리가 그렇고, 늘 이화신을 쫓아다니며 짝사랑해왔지만 이젠 관심 없다고 말하자 왠지 그에게 느껴지는 빈 자리가 그렇다.

 

<질투의 화신>은 결국 이 피가 나게 노력해온 표나리가 표가 나는 인물이 되는 로맨틱 코미디다. 어찌 보면 이미 정해진 결과가 뻔하다고 여겨질 수 있지만, 의외로 우리는 이 표나리라는 인물이 주목받길 원한다. 그녀의 사정이란 어쩐지 지금의 현실에서 남일 같지가 않기 때문이다.

 

이화신이라는 이름도 그러고 보면 이 작품 속 캐릭터를 그대로 담고 있다고 보인다. 마초적인 남자지만 어쩌다 보니 그는 여자인 표나리에게 가슴을 내주었고, 그녀와 함께 유방 수술을 받았다. 게다가 그녀의 기습키스를 당하기까지. 어찌 보면 이 마초적인 남자에게 남녀 사이의 관계는 역전되어 있어 보인다. 그러면서 그는 이제 조금씩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기며 질투의화신이 되어갈 것이다.

 

뻔해 보여도 이 기꺼이 표나리를 응원하게 되는 마음은 의외로 강력한 판타지를 준다. 무엇보다 거의 개그콘서트를 방불케 하는 코믹한 상황들이 끊임없이 웃게 만들다가 어느 순간 표나리의 진심어린 얼굴을 쳐다보게 되면 먹먹해지는 상황. <질투의 화신>이 조금씩 시청자들의 마음을 열고 있다. 피가 나게 일터를 뛰어다니며 일에서도 사랑에서도 표가 나려 안간힘을 쓰는 표나리에 대한 심정적지지

<질투의 화신>, 이제 가슴하면 조정석이 떠오르는 까닭

 

왜 저렇게 여주인공이 가슴에 집착할까. 처음에는 조금 낯설고 불편한 느낌마저 들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게 반복되면서 의외로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가슴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이제 남주인공인 조정석이 떠오를 정도다. SBS 수목드라마 <질투의 화신>이 뻔한 공효진표 로맨틱 코미디라고 여겼다면 오산이다. 조정석표 병맛 로맨틱 코미디를 숨기고 있었으니.

 

'질투의 화신(사진출처:SBS)'

물론 이런 병맛 로맨틱 코미디를 제대로 만들어낼 수 있는 연기도 공효진 정도니 가능한 이야기다. 이상하게도 그녀가 하기 때문에 용서되는 상황들이 <질투의 화신>에는 꽤 많다. 첫 회부터 불거져 나왔던 기상캐스터 비하 논란도 공효진이 연기하는 표나리라는 캐릭터를 통해 훨씬 누그러질 수 있었다. 그것은 기상캐스터 전체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표나리라는 아나운서가 되고픈 특정 캐릭터의 욕망이라는 것이 공효진의 자연스러운 연기를 통해 잘 드러났기 때문이다.

 

또한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이화신(조정석)의 가슴을 자꾸 만지고 집착하는 장면 역시 공효진이 아니라면 더 이상하게 보였을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유방암에 걸린 엄마의 가슴과 비슷하다며 검사를 해보라는 그 장면은 말 그대로 병맛이지만 그녀는 그걸 꽤 진지하게 소화함으로써 오히려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코미디로 만들어냈다.

 

물론 이 병맛 로맨틱 코미디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은 조정석이 연기하는 화신이다. 굉장히 남자다운 모습을 보이려 하고 자신감에 넘치며 무엇보다 남자 셔츠의 핏은 가슴이라고 말하는 그가 부인과에서 유방암 검사를 하는 장면은 왠만한 코미디보다 더 웃음을 주는 상황이다. 표나리가 말했듯 가족력이 있는 유방의 문제를 그녀 역시 갖고 있고, 유방암 진단을 받은 화신은 그렇게 표나리와 가슴으로 연결된다.

 

처음에는 아무 의미 없이 심지어 불편할 정도로 마구 들이대는 듯한 가슴에 대한 집착은 이렇게 화신과 표나리가 한 병실에서 수술을 기다리고 있는 장면으로까지 이어지자 코미디로서의 재미는 물론이고 의미까지 갖게 되었다. 여성의 병으로만 여겨온 유방암을 실제로 경험하는 화신은 표나리와 말 그대로의 동병상련의 공감대를 갖게 되는 것. 이는 여성에 대한 이해를 갖게 되는 계기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쓰러진 빨강이(문가영)의 아버지 이중신(윤다훈)이 보는 환각으로 처리되어 있지만, 드라마가 갑자기 등장인물들을 한 명씩 등장시켜 그에게 꽃다발을 안기고 보니엠의 ‘Daddy cool’에 맞춰 춤을 추는 장면은 마치 인도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어색할 수 있는 장면이지만 이중신의 환각이라는 설정으로 되어 있어 이해가 되면서 동시에 병맛 코미디의 재미를 부가시키는 장면이기도 하다.

 

조정석은 본래 이런 병맛 코미디를 그 누구보다 천연덕스럽게 잘 소화해내는 연기자다. 우리에게 처음 그의 존재를 알렸던 게 바로 <건축학개론>의 납득이가 아니었던가. 코믹하지만 또한 인간 냄새가 물씬 풍기며 스스로는 굉장히 진지한 캐릭터. 조정석표 병맛 로맨틱 코미디의 탄생. <질투의 화신>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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