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듀사>, 예능으로도 드라마로도 완성도 높다

 

예능 드라마. <프로듀사>가 내세우고 있는 이 문구는 낯설다. 그래서인지 김수현 같은 초특급 배우가 캐스팅됐다는 사실은 이 드라마를 한 편의 이벤트성 작품처럼 오인되게 만든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12.2%의 시청률을 내고 드디어 11% 시청률의 SBS <정글의 법칙>을 뛰어넘었다는 사실은 이런 오인들을 무색하게 만든다.

 

'프로듀사(사진출처:KBS)'

금요일 밤 거의 한 번도 시청률 1위 자리를 내놓지 않던 <정글의 법칙>이 아니던가. KBS가 돌연변이존이라는 변칙 편성을 하면서 예능과 드라마를 다양하게 투입했지만 결코 뛰어넘을 수 없었던 것이 <정글의 법칙>이라는 아성이었다. 하지만 <프로듀사>라는 예능 드라마의 파괴력은 결국 <정글의 법칙>을 압도했다.

 

예능 드라마라는 표현은 낯설지만 <프로듀사>를 보다보면 이 드라마가 왜 그런 표현을 덧붙였는가를 쉽게 이해하게 된다. 즉 이 드라마는 예능만큼 코믹하다. 어떤 상황과 장면들은 하나의 콩트 코미디를 보는 것처럼 빵빵 터진다. 이를테면 백승찬(김수현)의 엄마인 이후남(김혜옥)이 탁예진(공효진)과 쓰레기 분리수거와 자동차 주차 문제로 티격태격하다가 두 사람이 승찬의 직장상사이고 또 승찬의 엄마라는 걸 서로 알고는 어쩔 줄 몰라 하는 장면은 한편의 <개그콘서트>.

 

박지은 작가는 이런 순간적인 상황에 웃음의 코드를 심어 넣는 데 너무나 능숙하다. 백승찬이 저녁으로 고기를 사주자 탁예진이 나 후배한테 이런 거 얻어먹고 그러는 사람 아니다라고 말한 후, 다음 장면에 허겁지겁 고기를 집어먹는 모습을 그려 넣는다. 회사 운동회에 가족들을 데려와 뷔페를 먹게 하는 김태호 PD는 직업을 이용해 가족들을 챙기는 인물로 웬만한 개그 캐릭터를 능가한다. <프로듀사>는 촘촘하게 이러한 예능적인 웃음의 코드들을 한 신 한 신 채워 넣는다. 예능 드라마라는 말이 실감나는 대목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저 소소한 시트콤에 머물지 않는 것은 이 드라마가 방송사 예능국 사람들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다루면서도 그 안에 드라마틱한 연애의 담론을 끼워 넣고 있기 때문이다. 5편집의 이해’, 7언론 플레이의 이해’, 8러브라인의 이해’, 9결방의 이해라는 부제를 가진 이야기들은 그래서 예능이라는 장르를 잘 들여다보게 해주면서도 그걸 통해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편집의 이해는 편집이 가진 선별적인 특성을 이 드라마의 인물관계를 통해 재해석했다. 즉 술김에 탁예진이 라준모(차태현)에게 마음을 고백한 것을 라준모는 모르는 척 기억의 편집을 해버린다. 하지만 편집된다고 해서 원본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그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백승찬은 라준모에게 비겁하다고 질책하기도 한다.

 

결방의 이해는 아이돌 신디(아이유)가 처한 상황과 라준모 PD<12>이 처한 상황을 기막히게 연결시켰다. <12>을 치고 들어오는 파일럿 프로그램 때문에 라준모 PD가 괴로워하는 장면은 변대표(나영희)에 의해 신인이 세워지고 대신 점점 밀려나는 신디의 처지와 오버랩된다. <프로듀사>는 예능국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으면서 예능의 방식을 끌어와 그것을 통해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프로듀사>가 그저 그런 기획성 작품에 머물지 않는 완성도를 드러내주는 대목이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몇 초마다 한 번씩 빵빵 터트려주는 예능 같은 드라마를 즐기면서도 그 안에서 예능국의 이야기들을 이해할 수 있고 또한 그것을 통해 사람 사는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게 된다. 그저 김수현만을 내세운 이벤트성 드라마라고? 그 안에 촘촘히 채워진 완성도를 들여다보지 못한 성급한 판단이다. <프로듀사>는 드라마적으로도 또 예능적으로도 꽤 잘 만들어진 작품이다.

 

박지은 작가의 캐릭터 운용, 놀라운 까닭

 

김수현의 최대 장점은 무엇일까. 어린 나이지만 하는 행동은 어른스럽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의 외모와 목소리에서 나온다. 그는 아직 고등학생을 연기해도 될 만큼 동안이지만 목소리는 꽤 신뢰를 주는 굵직한 톤을 갖고 있다. 그러니 연상녀들에게는 이만한 매력이 없다. 어딘지 듬직한 면을 갖고 있으면서도 극강 동안의 연하란 연상녀들에게는 다 갖춘 존재로서 다가온다.

 

'프로듀사(사진출처:KBS)'

<별에서 온 그대>의 도민준은 그래서 김수현에게 맞춤이었다. 아니 어찌 보면 김수현이라는 연기자를 위해 도민준이라는 캐릭터가 탄생한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늙지 않는 존재로 연하의 외모를 갖고 있지만 연상들도 기댈 수 있을 만큼의 경험치와 지적 능력을 모두 갖춘 도민준은 김수현이라는 인물을 판타지적으로 재해석한 것만 같았다.

 

<프로듀사>로 다시 돌아온 김수현의 그런 매력을 박지은 작가가 몰랐을까. 캐릭터는 어리버리 신입 예능 PD지만 이 백승찬 PD에게서는 도민준이 주었던 그 판타지가 고스란히 묻어난다. 바보스럽게 보이지만 그건 순수한 것이고, 때론 고집스럽게 보이지만 그건 자기주관이 뚜렷한 것이다. 그래서 그의 이런 모습들은 의외로 여성들에게 신뢰감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직장에서 신입 PD가 선배 PD에게 좋아하는 감정을 갖는다는 건 자칫 비현실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런데 이 부분이 자연스럽게 넘어간 데는 박지은 작가의 치밀한 사전 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박지은 작가가 백승찬의 대학선배인 혜주라는 인물을 굳이 세운 건 그래서다. 백승찬은 자신이 방송사 예능국에 들어온 이유로 첫사랑 혜주를 얘기하지만, 그녀는 초반에 휴직계를 내고 회사를 떠나는 모습으로 마무리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혜주라는 인물을 굳이 넣은 것이 자연스럽게 또 다른 연상인 탁예진 PD(공효진)로 넘어가기 위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백승찬 PD는 연달아 연상 취향임을 드러냈던 것. 김수현이 연상들의 마음을 녹이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이만큼 적절한 포진이 있을까.

 

이러한 백승찬의 연상 취향은 고스란히 아이돌 신디(아이유)에 대한 무심함을 설명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애초부터 백승찬은 신디에게 직접적인 일로서의 마음 그 이상은 없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신디는 바로 이러한 백승찬의 무심함 때문에 오히려 그에게 관심을 갖는 인물이다. 즉 백승찬이라는 캐릭터 하나를 제대로 세워놓음으로써 탁예진과 신디 사이의 러브 라인을 자연스럽게 풀어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시청자들이 김수현에게 바라는 모습이기도 하다. 만일 백승찬이 탁예진이 아니라 신디쪽에 마음을 주는 모습을 보였다는 어땠을까. 지상파 드라마들의 주 시청층의 마음을 상당 부분 끌어오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연령대가 있는 지상파 시청층들이 빙의되는 캐릭터는 신디보다는 탁예진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10.1%부터 시작해 지난 회 갑자기 13.5%로 껑충 시청률이 뛴 건 우연이 아니다. 치밀하게 포석되어 있는 김수현의 활용법이 드라마를 통해 조금씩 힘을 발휘하면서 생겨난 것이라는 것. 이것은 역시 로맨틱 코미디에 있어서 박지은 작가가 발군이라는 걸 증명하는 사실이다. 그녀의 캐릭터 운용을 자세히 보다보면 그래서 놀라움을 느낄 때가 많다.

 

<프로듀사> 김수현 바보 웃음에도 누나들은 심쿵

 

왜 김수현이 KBS <프로듀사>를 선택했는지 이제는 알 것 같다. 그에게 이만큼 맞춤인 작품이 있을까. SBS <별에서 온 그대>로 국내는 물론이고 중국 최고의 한류스타로 떠오른 그였다. 불멸의 존재로서 동안에 지적 능력, 초능력까지 가진 완벽한 캐릭터 도민준을 연기한 그가 차기작으로 어떤 작품을 할 것인가는 한중 양국 대중들에게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프로듀사(사진출처:KBS)'

결국 그의 선택은 <프로듀사>. 어리버리하고 아직까지는 공부로만 예능을 아는 초짜 백승찬 예능 PD가 그 인물이다. 그런데 이 어리버리한 인물 묘한 매력이 있다. 심지어 바보처럼 웃어도 누나들의 가슴을 심쿵하게 만드는 마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프로듀사>는 실질적으로 이 백승찬이란 인물의 힘으로 굴러가는 작품이다. 그걸 증명하는 건 그가 이 로맨틱 코미디의 중심에 서게 되면서 드라마가 확실한 동력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신디라는 아이돌 가수와 탁예진 예능 PD 사이에서 그가 보여주는 매력은 젊은 여성들부터 중년 여성들까지 설레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신디에게 백승찬이라는 인물은 지금껏 이 업계에서 보지 못했던 특별한 별종이다. 뭘 몰라서 더 순수하고 곧이곧대로 인 이 인물은 친절하긴 해도 PD로서의 선을 딱 그어놓는 그 태도 때문에 신디를 더욱 애타게 만든다. 무엇보다 이라고 부르지만 살인적인 스케줄을 만들어 사실은 돈 버는 기계처럼 자신을 대하는 변대표(나영희)에게 어눌하지만 자기 소신을 밝히는 이 PD의 모습에 신디는 홀딱 넘어갈 수밖에 없다.

 

한편 선배 PD지만 백승찬이 사고 칠 것 같다고 고백한 탁예진이라는 인물은 중년 여성들을 몰입하게 만드는 캐릭터다. 그녀는 오랫동안 친구사이로 지내왔던 라준모(차태현)PD를 좋아하지만 어느새 불쑥 자기 앞에 남자로 나타난 백승찬을 느낀다. 라준모 PD에게 상처를 받고 혼자 공원벤치에 앉아 울고 있는 그녀를 살짝 안아주는 백승찬의 모습은 그녀에 빙의된 중년 여성들의 마음을 심쿵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신디와 탁예진이라는 두 여자 사이에서 이 만큼의 로맨틱한 분위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인물로 백승찬이 설 수 있다는 사실은 김수현이라는 연기자의 가장 큰 장점을 보여준다. 김수현은 어린 나이에 동안 외모에도 그 팬층이 상당히 두텁다. <별에서 온 그대>에서 전지현과의 커플 연기가 자연스러웠던 건 어려보이지만 때로는 여성을 리드하는 독특한 매력이 그에게 있기 때문이다. 결국 신디와 탁예진을 모두 설레게 만드는 백승찬이란 캐릭터의 매력은 <프로듀사>가 좀 더 폭넓은 시청층을 소구할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제아무리 <별에서 온 그대>의 도민준을 만들어낸 박지은 작가의 작품이라고 해도 그가 <프로듀사>의 이 어리버리한 백승찬을 선택했다는 건 실로 놀라운 일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 선택이 그에게는 최선이고 최적이었다는 걸 알 수 있다. 도대체 죽지도 않고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초능력을 사용하는 도민준 같은 캐릭터를 대치할 판타지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러니 그럴 바엔 차라리 모든 걸 내려놓을 수 있는 백승찬 같은 캐릭터를 선택하는 게 최선일 수밖에 없다.

 

만일 김수현이 또 다른 도민준 같은 판타지를 차기작으로 선택했다고 생각해보라. 그것은 성공해도 실패해도 본인에게는 손실이 되는 일이다. 즉 성공한다면 기존 도민준 캐릭터 이미지가 깨지게 되는 것이고, 실패한다면 도민준 캐릭터 이미지에 대한 실망이 될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백승찬처럼 심지어 바보 웃음을 짓는 캐릭터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건 성공하면 그의 넓혀진 연기영역이 되는 것이고 실패한다 해도 도전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김수현의 선택은 옳았고 그 선택의 결과는 또 다른 백승찬 신드롬으로 이어질 기지개를 켜고 있다. 그는 도민준처럼 능력자는 아니지만 따뜻하고 순수하며 인간적인 매력으로 무장한 채 누나들의 마음 속으로 성큼성큼 들어서고 있다.

 

<프로듀사>가 멜로를 풀어가는 신선한 방식

 

편집은 포기다. 좋은 것과 더 좋은 것 중 더 좋은 걸 선택해야 하니까. 둘 다 가질 순 없는 거다. 욕심 부리다가 둘 다 잃을 수 있다.” KBS <프로듀사>에서 준모(차태현)의 이 대사는 편집에 빗대어 예진(공효진)을 생각하는 그의 속내가 들어 있다. 술에 취해 얼떨결에 사랑고백을 해버린 예진에게 자신도 취해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기억의 자체편집이었던 것.

 

'프로듀사(사진출처:KBS)'

한편 예진 역시 준모가 그 날의 자신의 사랑고백을 기억하지 못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것은 그렇게 드러낸 속내에 준모가 거절할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거기에 대해 승찬(김수현)은 굳이 준모가 예진의 말을 기억하느냐 안하느냐는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했다. 만일 그 말이 진심이라면 상대방에게 전해져야 하는 것이고, 거짓이라면 상대방에게 전해졌어도 아무 상관없는 일이니까.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승찬 역시 자신의 속내를 숨기고 있었다. 그는 그날 예진에게 준모가 집에 가자고 하자 술에 취해 예진 선배가 좋아한다잖아요. 그러니까 둘만 보내기 싫어.”라고 에둘러 예진을 생각하는 그의 마음을 드러냈다. 결국 그 날의 술자리는 세 사람의 숨기고 있던 속마음이 모두 드러난 자리였다. 예진은 준모를 좋아하고 있었고, 준모는 우정 관계를 넘어서는 예진의 마음을 불안하게 생각하고 있었으며, 승찬은 예진을 은근히 마음에 두고 있었다는 것.

 

어찌 보면 이것은 전형적인 멜로구도를 보여주는 것이지만 <프로듀사>가 편집과 기억의 문제를 가져와 이를 풀어내는 방식은 흥미롭다. 즉 방송 편집이 많은 촬영분들 속에서 어떤 건 살리고 어떤 죽이는 그 선별작업을 뜻하는 것처럼, 우리가 사랑하는 모습 역시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기억의 편집을 통해 왜곡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모두 그 날의 사실을 알고 있지만 모르는 것처럼 행동하거나 스스로 기억을 끊는다. 속내는 그게 아니지만 그걸 기억해냈을 때 상대방과의 관계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편안한 지금의 상태를 유지하던가 아니면 불안해도 진실된 속내를 드러내고 새로운 관계로 나아가던가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

 

이 편집된 기억들은 그래서 앞으로 <프로듀사>가 나아갈 관계의 부딪침을 예고한다. 그것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단지 숨겨져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결국 어떤 사건의 촉발지점이 생겨나면 그렇게 숨겨 놓았던 편집된 감정은 밖으로 드러나게 될 것이다. 이들 세 사람의 관계에 덧붙여 신디(아이유)가 조금씩 승찬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있다는 사실은 향후 이 드라마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준다.

 

<프로듀사>가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힘은 로맨틱 코미디에서 나온다. 즉 멜로구도가 팽팽해질수록 또 장면 장면이 <개콘>보다 빵빵 터질수록 힘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이것은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가 가진 정석이라는 점에서 바뀔 수 없는 드라마 문법이다. 하지만 그렇게 공식적이기 때문에 더 중요해지는 건 그 식상한 틀을 어떻게 신선하게 풀어내는가 하는 점이다.

 

예능 PD의 세계를 다루고 있는 <프로듀사>가 사랑의 문제를 방송 편집을 소재로 풀어낸다는 건 그래서 흥미롭다. 그것은 이 PD라는 일의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면서 동시에 편집관을 통해 캐릭터를 이해하게 해주고 그들의 관계를 또한 드러내주고 있기 때문이다. <프로듀사>가 갈수록 흥미진진해지는 건 이처럼 예능 PD라는 직군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들을 그들 방식으로 전해주고 있어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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