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와 결합해 시너지를 내는 힙해진 국악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드라마 ‘정년이’로 인해 여성 국극 나아가 국악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콘텐츠와 결합해 힙해지고 있는 국악의 세계. 그 시너지는 어떻게 생겨나고 있을까. 

정년이

여성 국극 1세대, 조영숙 명인의 한 마디

“죽을 때까지도 못 잊을 거예요. 내 나이가 벌써 90인데, 부모님이 물려주신 목구멍은 성해요. 그래서 말은 잘하고 노래는 잘하는데... 춤도 움직일 수는 있어요, 그러나 앞으로 더 남은 여생이라도 우리 여성 국극을 위해 힘쓰라는 말씀으로 알고 이 영광스러운 상을 받겠습니다.” 지난 10월25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이데일리 문화대상’에서 국악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조영숙 명인은 수상 소감에서 그렇게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그가 수상자가 된 건 ‘조 도깨비 영숙’이라는 작품에 서게 되면서다. 이 작품은 이날치 밴드의 베이시스트이자 각종 영화, 드라마의 음악감독이기도 한 장영규와, 가장 현대적인 방법으로 전통가곡을 노래하는 박민희가 여성 국극 1세대인 조영숙 명인의 삶과 예술을 조망한 하이브리드 무대다. ‘선화공주’의 전막을 올린 이 작품에서 조영숙 명인은 90세의 나이가 무색하게 선화공주부터 철쇠까지 1인5역을 소화해 기립박수를 받았다. 잔뜩 굽은 등으로 운신도 쉽지 않지만 여전히 쩌렁쩌렁한 목소리에서 젊은 시절의 여성 국극 배우가 떠오른다. 그건 다름 아닌 최근 tvN에서 방영되고 있는 ‘정년이’에서 우리가 푹 빠져 있는 매란국극단 배우들의 모습이다.

 

조영숙 명인이 수상 소감에서 밝힌 것처럼 여성 국극은 사실 이대로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러던 것이 세종문화회관에 조영숙 명인에 대한 헌정을 담은 무대가 올라 새롭게 조명받을 수 있었던 데는 드라마화된 ‘정년이’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 이미 웹툰으로도 레전드가 된 작품이지만, 드라마화되면서 당대의 여성국극이 얼마나 힙하고 멋진 것이었던가를 대중들에게 실제 무대를 통해 설득시켰기 때문이다. 

 

‘정년이’가 선보인 여성 국극은 195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창극의 한 갈래로 소리만이 아니라 춤, 연기까지 모두 소화하는 종합공연예술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고전 ‘춘향전’이나 호동과 낙랑공주 같은 역사를 소재로 한 ‘자명고’ 같은 작품들이 무대에 올려졌다. 드라마 ‘정년이’는 이를 재연해내기 위해 1년 이상의 공을 들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드라마를 통해 재연되어 공개된 ‘춘향전’, ‘자명고’는 극 중 극으로 호평받으며 화제가 됐다. 그리고 ‘정년이’가 촉발시킨 여성국극에 대한 관심은 이제 그 창극 속에 담겨진 춤과 소리에 대한 관심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장영규 음악감독의 진심이 느껴지는 음악

사실 드라마 ‘정년이’의 음악 감독은 저 조영숙 명인의 삶과 예술을 담은 ‘조 도깨비 영숙’에 참여한 장영규다. 그가 얼마나 이 일에 진심인가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장영규는 과거 어어부밴드 시절부터 국악 퓨전에 대한 열정을 드러냈고, 미국의 공영방송 라디오 NPR에 가발 쓰고 하이힐 신고 등장한 영상이 전 세계를 발칵 뒤집어 놓고 이희문이라는 걸출한 신예 국악인을 스타덤으로 올려 놓았던 민요 록밴드 씽씽밴드(SsingSsing)에도 베이시스트로 참여했다. 또 판소리 수궁가를 재해석한 ‘범내려온다’의 이날치 밴드로도 활약하고 있다. 국악의 현재화에 앞장서고 있는 대표적인 인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인지 그가 음악감독을 맡은 ‘정년이’는 우리의 소리가 얼마나 멋진가를 음악적으로도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첫 회에 천재 소리꾼인 정년이의 엄마 채공선이 부르는 ‘심청가’의 한 대목인 ‘추월만정’은 물론이고 ‘춘향가’의 ‘광한루 추천가’, ‘사랑가’, 또 ‘자명고’에서 구슬아기 역할의 주란(우다비)이 부르는 ‘왕자마마’ 같은 곡들이 너무나 멋스럽게 들린다. 물론 그건 드라마가 스토리와 캐릭터를 더해 들려주는 것이라 생겨나는 효과이기도 하지만, 음악적으로도 완성도 높게 구현된 결과여서 가능해진 일이 아닐 수 없다. 

 

현재화 하려는 국악, 한국무용

‘정년이’의 인기에는 그간 끊임없이 시도되어 왔던 젊은 국악인들의 도전이 밑거름이 되어 왔다는 걸 부인할 수 없다. 국악은 최근 10여 년 동안 현재와 호흡하기 위한 노력을 부단히 해왔다. ‘팬텀싱어’ 같은 프로그램에 참여해 국악이 세계음악과 기막히게 어우러지는 놀라운 무대들을 보여줬던 고영열이나, 홍대 클럽에서 시작해 전 세계를 ‘얼쑤’ 하는 추임새로 채워버린 이날치 밴드, 국악 오디션 프로그램 ‘풍류대장’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힙한 국악 밴드의 가능성을 보여준 서도밴드나 뮤지컬부터 창극까지 섭렵하며 방송에도 출연하는 젊은 소리꾼 김준수 같은 국악인들의 대표적이다. 특히 김준수와 고영열이 클래식을 베이스로 하는 퓨전밴드 두 번째달과 함께 2016년에 내놓은 ‘판소리 춘향가’는 국악의 현재적 재해석이라는 점에서 주목받은 명반이다. 여기서 고영열이 부른 ‘쑥대머리’는 한국적 정서가 물씬 배어난 발라드처럼 들리고, 김준수가 부른 ‘어사출두’는 엄청난 속도로 쏟아내는 가사들로 마치 한 편의 힙합을 듣는 듯한 느낌을 줬다. 또 ‘풍류대장’을 통해 새삼 정가의 매력을 전해주었던 해음도 빼놓을 수 없다. 해음은 정가를 하는 구민지, 가야금 하수연 그리고 거문고 황혜영으로 구성된 국악 그룹이다. 

 

‘정년이’로 인해 커진 한국무용에 대한 관심도 예사롭지 않다. 그런데 여기에도 한국무용을 현재화하려는 힙한 춤꾼들의 노력이 엿보인다. 최근 방영되고 있는 ‘스테이지 파이터’는 발레, 현대무용, 한국무용을 전공한 무용수들이 한 자리에 모여 치열한 계급전쟁을 벌이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인데, 여기서 유독 눈에 띠는 이들이 한국무용을 한 춤꾼들이다. 넘사벽의 테크닉과 표현력을 보여주는 최호종이나 그의 제자인 김규년, 치렁치렁한 머리로 야수 같은 춤사위로 시선을 잡아끄는 김시원, 절제와 균형미로 어떤 장르에도 자기 춤을 소화해내는 김효준 같은 춤꾼들이 그들이다. 한국무용이 가진 부드러운 춤선이 기반이 되어 있지만, 이들의 춤은 너무나 파격적이어서 발레나 현대무용 무용수들조차 놀라게 만든다. 

 

서브컬처화된 국악의 반격

사실 국악은 우리 고유의 문화지만, 현재에 이르러 그 대중적 저변이 사라진 게 사실이다. 8,90년대까지만 해도 국악은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정규로 자리하고 있었고, 조상현 같은 스타 국악인이 존재했다. 또 가요라고 해도 국악을 기반으로 하는 음악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팝 음악이 대중음악의 주류로 자리하면서 전통을 고집하던 국악은 갈수록 설 자리가 사라져갔다. 그래서 이런 표현이 아이러니하기는 해도 ‘서브컬처화’된 면이 있다. 메인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주변화되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최근 주류와 비주류를 나누어 메인과 서브컬처가 분리하는 그런 경계들이 무너지고 있다. 저마다의 취향으로 소비되는 문화의 시대로 넘어오면서 서브컬처를 좋아하며 마니아처럼 취급받던 이들이 주류로 떠오르는 흐름도 생겨나고 있다. 국악도 이 흐름을 타고 있다. 너무나 좋은 것이지만 많은 이들이 향유하지 않아 오히려 더더욱 응원하고픈 어떤 것으로서 국악이 주목되고 있고, ‘정년이’는 그걸 촉발시키고 있다. (글:시사저널, 사진:tvN)

‘정년이’, 완벽 빙의된 김태리, 그 성장서사에 시청자도 빠져든다

정년이

우리 소리가 이토록 힙했던가. tvN 토일드라마 ‘정년이’는 먼저 채공선이 부르는 ‘남원산성’으로 눈과 귀를 매료시킨다. 눈 내리는 어둑한 밤, 유려한 한옥집의 풍광 위로 낭낭하게 울려 퍼지는 ‘남원산성’은 듣는 이들의 마음을 이상하게 애절하게 만든다. “소리를 하면은 속이 뻥 뚫리는 거 같아 갖고 좋던디요.” 소리꾼이 되고 싶다는 공선에게 명창 임진(강지은)이 화려함 때문이냐고 묻자 공선이 하는 그 말은 소리가 가진 진짜 힘이 어디서 나오는가를 한 마디로 꺼내놓는다. “이 가슴에 뭐가 탁 맥힌 것맨치 답답하고 외롭고 할 때마다 소리를 하다 봉께는 그리 되었구만이라.” 

 

때는 1931년 일제강점기다. 춥디 추운 겨울 눈 내리는 한데서 달달 떨며 문 열어주길 기다리는 공선네 부녀처럼 서민들의 삶이 고달플 수밖에 없던 시절이다. 가슴 한 가운데 꽉 막힌 무언가 하나쯤은 누구나 갖고 살 수밖에 없던 시절, 소리는 그 막힌 걸 뚫어주고 풀어주는 힘이 되는 어떤 것이었다. 그로부터 25년이 흐른 1956년 목포로 화면이 전환되면서 먼저 들려오는 건 “어기야 디야 어기야 어야 디야-” 하는 노동요를 부르며 뻘밭에서 조개를 채취하는 아낙네들의 모습이다. 전쟁이 끝나고 피폐해진 삶에 그 때라고 가슴 한 가운데를 꽉 막아세우는 답답한 현실이 없었을까. 

 

시장 통에서 잡은 생선을 팔아 생계를 유지해가는 정년이네 가족은 번번히 자릿세를 내라며 행패를 부리는 무리들 때문에 힘겨워 한다. 그렇게 현실에 짓밟혀 꿈이라는 건 가져보지도 못한 채 하루하루를 노동으로 살아가면서 정년이의 가슴에도 무겁디 무거운 돌덩이가 생겼던 모양이다. 엄마가 그토록 반대하는 소리를 자꾸만 하고 싶고, 그래서 시장통에서 ‘남원산성’을 부른 게 그의 삶에 변곡점을 만들어줬다. 그 소리를 듣고 단박에 천재성을 타고 났다는 걸 간파한 매란국극의 스타 문옥경(정은채)이 그에게 자신이 하는 국극 ‘자명고’의 티켓을 주며 보러 오라고 한 것이다. 그 국극을 보고 난 후 정년이는 드디어 꿈을 갖게 된다. 자신도 문옥경 같은 국극의 스타가 되겠다고. ‘정년이’는 바로 이 청춘이 꿈을 향해 성장해가는 과정을 담은 드라마다. 

 

워낙 인기 웹툰으로 잘 알려진 ‘정년이’는 드라마로 리메이크된다고 했을 때 그게 가능할까 싶은 몇 가지 난점들이 보였던 게 사실이다. 그 첫 번째는 웹툰의 생명력 넘치는 정년이라는 캐릭터를 과연 누가 싱크로율을 맞춰 연기해낼 수 있을까 하는 점이고, 두 번째는 국극이라는 소재의 특성상 소리를 해야 하는데 그것 역시 시청자들이 설득될 수 있을만큼의 수준을 보여줄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또한 원작이 가진 퀴어적 색깔을 좀더 보편적으로 만들어내는 게 가능할까 싶은 면도 난점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제 막 방영을 시작한 ‘정년이’를 보니 이런 난점들이 기우에 불과했다는 걸 단박에 알게 된다. 그건 마치 저 첫 장면에 등장하는 명창 임진이 공선의 소리를 듣고 그 진심을 들여다보게 되는 것 같은(혹은 문옥경이 정년의 재능을 단박에 알아보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세심하게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한 대본과 연출 위에서 완벽하게 정년이라는 캐릭터에 빙의된 김태리의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얹어져 시청자들을 곧바로 설득시켰기 때문이다. 

 

또한 원작이 가진 퀴어적 요소들을 드라마는 직접적인 캐릭터를 통해 그려내기보다는 드라마 전체의 서사 안에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방식을 선택했다. 즉 문옥경과 윤정년의 관계는 마치 새내기를 이끌어주는 선배 같은 관계로 그려지지만 어딘지 그 이상의 애정이 묻어나고, 또 정년에게 애정을 주는 문옥경을 바라보는 서혜랑(김윤혜)의 시선에는 동료 이상의 질투 같은 게 느껴진다. 남성 주인공이 없다는 사실만 봐도, 이 작품이 가진 온전한 여성서사의 색깔을 이해하게 된다. 굳이 퀴어적 요소를 전면에 드러내지 않아도 여성들 간의 우정과 애정 혹은 애증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가장 큰 매력은 역시 우리네 소리가 가진 멋과 아름다움을 유려한 연출과 극적인 대본 그리고 실감나는 연기를 통해 꺼내놨다는 점이다. 국악에 별 관심이 없던 이들도 아마 ‘정년이’를 보게 되면 판소리 심청가에 한 대목인 ‘추월만정’ 같은 곡을 다시금 찾아보게 만들지 않을까 싶다. 국극이나 국악이라고 하면 어딘가 고리타분하지 않을까 싶었던 분들조차 매료시키는 연출, 대본, 연기의 삼박자가 아닐 수 없다. 

 

또 매란국극에 들어가 수련을 받는 일련의 과정들은 마치 K팝 아이돌들이 거치는 연습생 과정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도 흥미롭다. 오디션 과정을 거쳐 뽑히고, 그리고 나서 연구생이라는 이름으로 소리부터 춤, 연기를 배우고 무대에 서는(데뷔하는) 그 일련의 과정들이 담겨 있어서다. 천재적 재능을 가진 정년이가 그를 시기하는 동료들과 경쟁해가며 그려낼 쌍방 성장서사는 그래서 현재의 K팝 한류의 기원이 꽤 오래 전부터 태동해왔다는 걸 말해준다. 

 

하지만 무엇보다 상찬받아 마땅한 건 김태리라는 배우의 존재감이다. 웹툰에서 곧바로 튀어나온 것 같은 김태리의 연기는 정년이 그 자체처럼 보일 정도로 동작 하나 대사 하나가 살아 있는 느낌이다. 웹툰으로 보며 저랬을 것 같다는 그 모습을 김태리는 연기를 통해 공감하게 꺼내 보여주고 있다. ‘미스터 션샤인’과 ‘스물다섯 스물하나’, ‘악귀’를 거치며 청춘의 초상 같은 그만의 아우라를 계속 그려냈던 김태리는 이번에도 ‘정년이’를 통해 인생캐릭터를 또 한 번 경신할 모양이다. 정년이라는 인물이 그려낼 꿈을 향한 성장서사에 시청자들의 시선이 쏠리는 이유다.(사진:tvN)

'조선팝 어게인', 이 국악 퓨전과 콜라보 무대가 특별했던 건

 

지난해 추석 가장 주목받았던 특집 프로그램은 단연 KBS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였을까. 그 프로그램을 연출했던 송준영 PD가 올 설 특집으로 마련한 <조선팝 어게인>은 남다른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우선 '조선팝'이라는 지칭이 특이하게 다가온다. 아마도 국악을 새롭게 지칭한 것이라 보이는 '조선팝'은 이제 다양한 장르들과 퓨전되고 콜라보 되는 새로운 국악을 표현했다. 이건 아무래도 최근 '범 내려온다'로 이날치 밴드가 판소리를 재해석해 내놓은 얼터너티브 팝이나, 이희문이 이끌었던 싱싱밴드 같은 국악 퓨전밴드가 일으키고 있는 '국악의 새 바람'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조선팝 어게인>은 이날치 밴드의 '범 내려온다'로 문을 열었다. 이미 우리는 물론이고 외국인들에게도 익숙한 이 노래가 '조선팝'이라 명명한 이 공연의 색다른 음악들을 특별한 설명 없이도 바로 소개해줄 수 있어서다. 또한 글로벌한 팬덤을 확보하고 있는 K팝 아이돌 BTS의 'Idol'을 BAE173이 재해석한 무대로, 그 음악에도 국악의 흥이 깃들어 있다는 걸 보여줬다.

 

국악 퓨전으로 이미 이날치 밴드만큼 유명한 악단광칠이 엑소의 '으르렁'을 국악의 맛을 섞어 불러낸 무대나, 송소희와 포레스텔라가 'Nella Fantasia'와 '태평가'를 매시업 해 기막히게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무대는 실로 놀라웠다. 또한 '장구의 신'으로도 불리는 박서진이 장구 연주팀과 함께 '뱃노래'를 부르고, 나태주가 K타이거스와 함께 태권무를 하고 무대에서 줄타기 공연이 펼쳐지는 등 다양한 음악적 장르와, 악기와 퍼포먼스가 뒤섞이는 무대들이 연출되었다.

 

송가인은 트로트와 민요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를 '한 많은 대동강'은 물론이고, 조유아, 서진실이 함께 한 '엿타령' 무대로 보여줬고,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5시53분의 하늘에서 발견한 너와 나'를 국악버전으로 편곡해 불러주는 이색적인 무대도 선보였다. 그리고 엔딩에는 코로나19가 빨리 종식되기를 기원하는 한바탕 '굿'이 펼쳐지기도 했다.

 

<조선팝 어게인>은 코로나19 때문에 비대면 공연으로 시도됐지만 오히려 무대를 증강현실 기반으로 연출함으로써 매 무대가 갖는 색깔들을 더욱 잘 표현해낼 수 있었다. 이를 테면 '범 내려온다'에서 호랑이가 튀어나오고, 포레스텔라가 '새야 새야 파랑새야'를 부를 때 녹두꽃 밭이 펼쳐지는 식이었다. 이런 디지털의 특징이 묻어나는 무대는 '조선팝'이라는 다소 옛 음악을 더욱 현대적인 발랄한 느낌으로 만들어주는 힘을 발휘하기도 했다.

 

물론 이런 좋은 무대에 굳이 전현무와 김종민의 가벼운 상황극 연출이 왜 필요했는지 잘 모르겠고, 또한 비대면 외국인 관객들의 리액션 영상에 다소 지나치게 집중한 부분은 아쉬움이 남지만, 하나의 작품처럼 잘 만들어진 무대는 그런 아쉬움을 상쇄시키고도 남았다.

 

그간 옛 노래로 치부되곤 했던 국악이 변신하고 있다는 건 이미 어느 정도 대중들도 인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 국악이 어디까지 퓨전되고 콜라보될 수 있는가의 가능성을 <조선팝 어게인>은 보여준 면이 있다. 물론 설 특집으로 마련된 이벤트적 성격이 짙지만, 이번 프로그램을 계기로 향후에도 국악의 이런 다양한 변신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지길 기대한다.(사진:KBS)

'팬텀싱어3', K크로스오버의 무한한 가능성 실험중인 고영열

 

고영열이 또 일을 냈다. 이제 4중창단의 대결이 본격화된 JTBC 오디션 프로그램 <팬텀싱어3>에서 고영열은 다시 한 번 존 노와 만났고 여기에 정민성과 김바울이 더해져 이른바 포송포송 팀이 꾸려졌다. 고영열이 주도해 선택한 곡은 윤동주 시를 가곡으로 창작해 만든 '무서운 시간'. 고영열은 이 노래를 통해 윤동주 시인이 시를 쓰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서러움과 후회스러움을 잘 표현해보려고 애썼다고 했다.

 

"거 나를 부르는 것이 누구요-"로 시작하는 첫 소절에서부터 고영열 특유의 한이 서린 목소리가 귀가 아닌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곡이었다. 절절한 가사가 폐부를 끊는 듯한 절창으로 이어진 곡은 정민성과 김바울이 특유의 부드러운 목소리로 묵직하게 이어가다 존 노의 시원스런 고음과 고영열 특유의 국악 창법이 절규하듯 뿜어져 나오며 듣는 이들을 모두 전율하게 만들었다.

 

노래가 다 끝나고도 그 먹먹한 감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잠시 침묵이 흘렀다. 가수들은 물론이고 프로듀서들 그리고 다른 팀 가수들까지 할 말을 잃었다. 김문정 프로듀서는 울컥했고, 김이나 프로듀서는 "미쳤어"라고 소름 돋는 무대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 윤상 프로듀서는 "이곡을 알게 해주셔서 네 분께 정말 감사드린다"며 "팬텀 기억에 만점을 드린 적은 없는 것 같다"며 자신이 100점을 줬다는 사실을 밝혔다.

 

애초 국악인이 포함된 전 세계 유일무이한 크로스오버팀이라는 소개나, 'K크로스오버'라는 표현이 왜 나왔는가를 입증한 무대였다. 국악인 강권순이 부른 '무서운 시간'은 재즈 피아노에 얹어진 국악 창법의 곡이지만, 고영열은 이 곡을 좀더 4중창에 맞게 편곡했다. 그래서인지 국악 특유의 색깔이 고영열을 목소리를 통해 고스란히 드러나면서도, 4중창의 비장하고 웅장한 가곡의 느낌으로 재해석됐다. K크로스오버라는 표현에 딱 어울리는 편곡이 아닐 수 없었다.

 

생각해보면 고영열이 <팬텀싱어3>에 나오게 된 건 이 프로그램에는 가장 큰 수확이 아니었을까 싶다. 피아노 치는 국악인으로 소개 받고 나와 부른 '사랑가'는 이미 2018년에 '상사곡'이라는 앨범에 발표했던 곡으로 국악이 재즈와 너무나 잘 어우러질 수 있다는 걸 잘 보여준 곡이었다. 기립박수를 치게 만들었던 존노와 함께 불러 화제가 됐던 쿠바 노래 'Tú eres la música que tengo que cantar'와, 황건하와 불렀던 그리스 노래 'Ti pathos'에서도 고영열은 국악의 그 흥과 한의 정서가 어떻게 전 세계의 민속 음악과도 통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 바 있다. 음악이라는 것이 결국은 신산한 삶을 토로하거나 혹은 흥으로 승화하는 면으로 통한다는 걸 고영열은 매 무대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제 서른도 되지 않은 나이에 국악이 가진 깊은 민족적인 정서를 끌어내면서도, 해외의 어떤 장르에도 열린 고영열 같은 이들을 통해 K크로스오버가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는 걸 확인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보면 크로스오버 남성 4중창단을 목표로 하는 <팬텀싱어>가 이번 시즌에서 고영열 같은 인물을 출연시킬 수 있었던 건 이 프로그램이 한 걸음 더 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크로스오버에 국악이 더해지면서 'K'라는 수식어가 더더욱 잘 어울리게 되었으니 말이다.(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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