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케이투>가 깊은 몰입감은 어디서 나왔나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어느 새 마지막 회란다. 이것은 어쩌면 tvN <더 케이투>라는 작품을 가장 잘 설명하는 말이 아닐까. 시작부터 시종일관 액션으로 밀어붙인 <더 케이투>는 막바지에 이르러 피투성이가 된 채 뛰고 또 뛰는 김제하(지창욱)의 액션과 극한의 상황에까지 몰려 있지만 그 안에서도 상대방과 목숨을 걸고 하는 최유진(송윤아)의 체스판 정치 게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 두 축은 사실상 <더 케이투>가 가진 막강한 몰입감의 원천이었다.

 

'더 케이투(사진출처:tvN)'

<더 케이투>에서 김제하는 한 마디로 하드캐리 그 자체일 수밖에 없었다. 사실상 이 드라마에서 온전한 정신을 갖고 살아가는 인물이라고는 그가 거의 유일하기 때문이다. 대권을 쥐기 위해 대결하는 장세준(조성하)의원이나 그를 조력하는 최유진은 물론이고 그 반대편에 있는 박관수(김갑수) 의원 역시 어느 쪽이 낫다고 할 수 없을 만큼 오로지 권력욕을 내세우는 인물들이다. 이 체스판의 피해자가 일찌감치 되어버린 고안나(윤아) 역시 김제하에게 의지하는 인물. 그러니 김제하는 이 모든 인물들에 관여하며 쉴 틈 없이 뛰어야 하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김제하가 이 권력의 체스판 위에서 나이트역할을 맡아 하드캐리를 했다면, 그 체스는 두는 인물로서 최유진은 역할을 맡아 하드캐리를 펼쳤다. 김제하를 연기한 지창욱이 몸으로 보여주는 액션을 보여줬다면, 최유진을 연기한 송윤아는 얼굴 표정 하나만으로도 감정을 끄집어내는 또 다른 액션을 보여줬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최유진이라는 캐릭터는 사실상 <더 케이투>가 하려는 이야기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주목될 수밖에 없었다.

 

최유진의 본부라고 할 수 있는 클라우드 나인은 그 무수한 액션 속에서 <더 케이투>가 그리려는 메시지를 표징하는 공간이다. 세상의 거의 모든 정보를 취합하고 필요하면 콘트롤 할 수 있는 슈퍼컴퓨터가 있는 공간. 그러니 정보가 힘인 세상에 이 공간은 절대적인 권력을 상징하는 곳이 된다. 그런데 그 슈퍼컴퓨터를 최유진은 마치 백설공주의 왕비처럼 거울아라고 부른다. 결국 최유진과 슈퍼컴퓨터는 서로 거울로 비춰지는 동일한 존재가 되어 있다는 것.

 

하지만 이 공간을 김제하는 권력이 아니라 감옥이라고 말한다. 그 곳을 그에게 주겠다는 최유진에게 한 번 이 거울의 맛을 들이면 결코 빠져나올 수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최유진은 클라우드 나인을 지배하는 마녀이면서 동시에 그 곳에 갇힌 포로가 된 것이라고.

 

클라우드 나인은 그러나 이 지하공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드라마 속에서 김제하가 살아가는 권력 투쟁의 세계는 거대한 클라우드 나인이나 마찬가지다. 그는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지만 어느 순간 그 공간에 들어오게 된 그가 바깥으로 나가는 걸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김제하가 그토록 하드캐리를 하는 그 목표는 복수극이라기보다는 이 곳으로부터의 탈주 같다는 느낌을 준다.

 

그래서 <더 케이투>가 그토록 깊은 몰입감을 줄 수 있었던 원천은 바로 이 클라우드 나인이 가진 상반된 욕망의 양면성을 김제하와 최유진이라는 두 캐릭터가 두 개의 서로 다른 액션으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 양면성이란 그 곳을 쥐고 권력을 휘두르려는 욕망과 그 곳으로부터 탈주하려는 욕망이다. 지창욱과 송윤아라는 배우에 대한 찬사가 이어진 건 그래서다.

 

반면 남는 아쉬움은 고안나라는 인물의 수동적인 역할이다. 김제하와 최유진이 능동적으로 자신들의 욕망에 의해 움직이는 인물인 것과 비교해보면 고안나는 이 살벌한 체스판 위에서 특별한 자신만의 역할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 다만 김제하와 최유진이라는 캐릭터가 움직이는 동인 역할만 한 면이 있다. 윤아의 연기력에 대한 논란이 나온 건 물론 여전히 변함없는 그 연기의 폭에 이 캐릭터가 가진 수동성이 더해진 결과가 아닐까.

 

또한 액션과 멜로가 강조되다 보니 본래 작품이 하려던 보다 현실 정치나 권력구조를 환기시킬 수 있는 메시지들이 가려진 점도 아쉽다. 대통령이 허깨비처럼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대신 차기 대선을 노리는 정치꾼들에 의해 농단되고, 진심 없이 쇼로 이뤄지는 정치 행태가 드러나는 이 드라마는 어쩌면 지금 같은 현실에 더 깊은 울림을 줄 수도 있었을 게다

<아수라>의 호와 불호를 나눈 것들

 

영화 <아수라>는 다닥다닥 붙어 있는 안남시의 집들을 부감으로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그 집들에는 안남시장 박성배(황정민)는 물러가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그리고 카메라는 곧바로 이 안남시장 박성배의 가 되어 일하고 있는 형사 도경(정우성)으로 옮겨간다. 재개발, 시장, 비리형사, 조폭. 시작 부분의 몇 장면은 이 영화의 이야기가 어떤 것이 될 것이라는 걸 대부분 이야기해준다. 재개발을 하기 위해 조폭들과 비리형사들까지 싸그리 제 손아귀에 쥐고 흔들어대는 절대 악 박성배의 갖가지 비리들을 덥기 위해 도경은 손에 피를 묻힌다.

 

사진출처:영화<아수라>

그런데 그의 앞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박성배를 끌어내리려는 검사 김차인(곽도원)이 나타나면서 그는 박성배와 김차인 양자 사이에서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꼬여버린다. 도경은 회복되기 어려운 병으로 병원생활을 전전하며 살아가는 아내를 위해 박성배의 손을 잡고 있지만, 그의 비리를 꿰고 점점 압박해 들어오는 김차인 앞에서 어쩔 수 없이 그가 시키는 일들을 한다. 결국 중간에 끼어 양쪽에서 두들겨 맞는 도경의 얼굴은 갈수록 망가져간다.

 

<아수라>가 보여주려는 건 그래서 명확하다. 시장도 깡패도 검사도 형사조차도 믿을 수 없는 아수라판이 되어버린 세상이다. 정치와 손을 대고 있는 시장과 검사의 권력 다툼 사이에 끼어 새우등이 터지는 도경의 현실은 아마도 우리네 현실의 극화된 상징을 보여주는 것일 게다. 흔히들 말하는 하라는 민생은 안하고 쌈질들이나 하고 서민들만 죽어나가...”는 현실.

 

이처럼 <아수라>가 하려는 이야기는 분명하지만 영화는 스토리적인 개연성에 있어서는 많은 허점을 보인다. 즉 액션이 보여주는 막연한 현실 환기는 분명히 있지만 그것이 영화 속에서 인물들이 갖는 좀 더 구체적인 이유나 근거 같은 것들이 별로 제시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박성배는 왜 재개발을 하기 위해 그토록 극악한 짓을 하는지가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지 않고, 이는 또한 김차인이 그토록 박성배를 잡으려고 하는 이유 또한 구체적이지 않다. 그나마 구체성을 띤 인물은 도경이다. 그는 병으로 죽어가는 아내 때문에 모든 것들이 절실해진 캐릭터다.

 

이렇게 좀 더 확실하고 구체적인 개연성들이 제시되지 않은 상황을 이 영화는 이러한 누아르가 가진 클리셰로 넘어가고 있다. 첫 장면에 등장한 재개발, 시장, 조폭, 형사 같은 누아르물이 으레 우리에게 전하는 클리셰들. 대신 영화는 그 클리셰들을 김성수 감독 특유의 피가 철철 흐르는 잔혹함과 동시에 미학적으로 느낄 수 있는 영상 연출을 통해 넘어서려 한다.

 

실제로 이번 <아수라>에서 김성수 감독이 보여준 액션 연출은 독보적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 추격신에서 카메라가 차에서 차로 넘나드는 장면은 지금껏 우리네 영화에서는 보기 드문 액션 연출이었다. 하지만 개연성이 잘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 겹쳐지는 과할 정도로 피가 튀는 살벌한 장면들은 영화에 빠져들게 하기 보다는 어떤 불편함을 만들어낸다.

 

그나마 이러한 빈약한 개연성을 온전히 채워주는 건 연기자들의 명연기다. 황정민, 정우성, 주지훈, 곽도원, 정만식, 김원해... 한 명만 데리고도 티켓파워가 어마어마할 그들은 <아수라>에서 한 마디로 명불허전의 연기를 보여줬다. 보는 이들을 치가 떨리게 만드는 악역을 완성한 황정민, 어설픈 형사에서 점점 조폭의 잔인함에 물들어가는 과정을 제대로 연기한 주지훈, 황정민과 대응해 전혀 밀리지 않고 압도적인 긴장감을 만들어낸 곽도원이나 마치 마동석 같은 단단한 액션을 보여준 정만식, 그리고 이 영화의 작대기라는 캐릭터로 초반 강렬한 인상을 남긴 김원해가 그렇다. 물론 주인공인 정우성의 미친 듯한 신들린 연기도 빼놓을 수 없다.

 

즉 영화는 호불호의 요소들이 분명하다. 김성수 감독 특유의 누아르 연출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그 끝점을 경험할 수 있는 즐거움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피가 철철 흐르는 영화가 제 취향이 아닌 분들이라면 그 액션들이 너무 과하다 여겨질 수 있다. 영화가 말하려는 서민들만 등터지는현실 이야기에 대한 공감이 있고 무엇보다 명배우들의 명연기는 보는 이들을 소름 돋게 만들지만, 그럼에도 남는 구체성이 결여된 개연성의 부족은 아쉬움으로 남는 작품이다. <아수라>는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뉠 수밖에 없는 영화다.

액션 블록버스터 <더 케이투>, 지창욱에 기대는 까닭

 

tvN 금토드라마 <더 케이투>는 말 그대로 액션 블록버스터 드라마. 우리네 드라마에서는 조금 낯설 수 있지만 이 작품의 연출자인 곽정환 감독의 <추노>를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사극이지만 영화적 연출을 통해 한편의 서부극 같은 장르물의 색채를 만들어냈던 <추노>. <더 케이투>는 그래서 액션 연출이 상당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드라마라고 볼 수 있다.

 

'더 케이투(사진출처:tvN)'

이런 점은 첫 회의 대부분이 고안나(윤아)의 끝없는 탈출신과 그녀와 우연히 맞닥뜨린 도망자 김제하(지창욱)가 자신을 구해달라는 그녀의 애원에 괴한들과 한바탕 맞붙는 액션들과, 그로부터 6개월 후 간판 일을 하는 김제하가 건물 외벽에서 바람에 흩날리는 현수막을 정리하다 우연히 대권을 꿈꾸는 정치인 장세준(조성하)의 밀회 장면을 목격하고, 장세준을 함정에 빠뜨리려는 침입자들과 한 판 대결을 벌이는 장면들로 채워지고 있다는 걸로 확인될 수 있다.

 

곽정환 감독의 액션 연출은 확실히 <더 케이투>를 몰입시켜주는 힘을 발휘한다. 물론 지금은 일반화된 액션 장면 연출기법이기는 하지만, <매트릭스>의 한 장면처럼 여러 대의 카메라를 순차적으로 찍어 허공에 붕 뜬 인물이 상대방에게 타격을 입히는 장면을 빙 돌아가며 보여주는 장면 같은 것들은 드라마에서는 보기 쉽지 않은 연출이다.

 

하지만 이 작품이 곽정환 감독의 액션 연출에만 기대고 있는 건 아니다. 화려한 액션의 이면에는 <용팔이>를 쓴 장혁린 작가의 선 굵은 스토리들이 깔려 있다. 권력에 대한 욕망과 이로 인해 희생되는 인물들의 살아남기 위한 안간힘이 대립구도를 만들고, 따라서 액션 속에는 이렇게 희생을 당하는 인물들의 감정 선 같은 것들이 녹아든다.

 

쫓기는 신세가 된 김제하가 길에서 고장 난 차 때문에 오도가도 못 하는 노부부를 도와주고 그들의 집에서 잠시 기거하며 마음을 나누는 장면은 이 인물이 갖고 있는 감정을 잘 드러낸다. 아들의 49제를 하고 와 절망감을 드러내는 할아버지가 돌보지 않아 꼴이 흉해진 과수원의 나무들을 모조리 베어달라고 하자 김제하가 듬성 자란 풀을 베어주는 장면은 이 액션 히어로의 친 서민적 정서를 드러낸다.

 

자신이 죽을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하고 굳이 자신을 죽이라 명한 최유진(송윤아)을 찾아가게 되는 것도 사실은 그 노부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다치는 걸 원치 않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김제하라는 인물은 자신의 죽음 따위에는 초탈한 것처럼 보인다. 다만 자신의 주변에 있는 무고한 사람들이 다치는 걸 견디지 못할 뿐.

 

김제하 역할을 연기하는 지창욱의 액션 연기는 과거 <힐러>를 통해 이미 입증된 바 있다. 그저 몸을 쓰는 연기가 아니라 그의 액션에는 어떤 감정 같은 것들이 묻어난다. 이번 <더 케이투>에서 그의 액션에서 독특하게 느껴지는 건 맞아가며 싸우는액션이라는 점이다. 많은 액션물들에서 주인공들이 자신은 한 방도 맞지 않고 손쉽게 상대방을 제압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면 <더 케이투>의 김제하는 온 몸에 피투성이 멍투성이가 되어가며 싸운다.

 

이런 액션 연기는 그 액션 자체에도 어떤 감성을 만들 수밖에 없다. 단순히 통쾌함만 선사하는 게 아니라 그 인물이 살아나가는 방식의 힘겨움같은 것들이 거기 묻어나기 때문이다. 지창욱의 연기는 그 무심한 듯 보이는 얼굴과 상반되게 피투성이가 되어 있는 몸 사이의 어떤 긴장감 속에서 그 특유의 감성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액션 블록버스터를 아예 지향하고 있고 그 액션 속에 드라마가 전하려는 메시지도 감성적으로 깔려 있기 때문에 결국 <더 케이투>는 지창욱이라는 배우에 기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기대감을 지창욱은 확실히 채워주고 있다. 그의 액션으로 시작해 그의 액션으로 끝났다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청춘시대>, 풋풋하면서도 먹먹한 이 느낌은 뭘까

 

이 청춘은 어째서 이렇게 고통스런 삶을 버텨내며 살아가게 된 걸까.

 

'청춘시대(사진출처:JTBC)'

JTBC <청춘시대>의 윤진명(한예리)에게 청춘의 꽃길 따위는 없다. 알바에서 알바로 새벽까지 마치 이어달리기를 하는 듯한 하루하루. 엄마가 호흡기에 의지해 살고 있는 동생의 안부조차 묻지 않는다고 하자 그녀는 누가 죽은 사람의 안부를 묻냐고 퉁명스럽게 내뱉는다. 그녀에겐 자신의 삶이 살아도 살아있는 게 아니다. 행복은 누구나 꿈꿀 권리가 있다지만 그녀에게 행복이란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현실은 그런 그녀에게 무례하다. 절박한 그녀의 손을 잡아주기보다는 그 절박함을 미끼로 함부로 명령하고 함부로 폭력을 행사한다. 물론 물리적인 폭력은 아니지만 권력의 힘으로 제 멋대로 상대방에게 손을 뻗치는 행동들은 추행이자 폭력이 분명하다. 레스토랑 매니저라는 알량한 권력을 가진 자(민성욱)는 마치 그녀의 처지를 이해하는 듯 접근해 일자리를 제안하며 은근슬쩍 그녀를 추행하려 한다.

 

생각해보면 나랑 그렇게 다른 사람도 아닌데 이상하게 겁먹고. 마치 엄청난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인 것처럼.” 뒤늦게 사태를 깨닫고 정신을 차린 윤진명은 그렇게 말하며 매니저로부터 도망치듯 그 집을 빠져나온다. 그런 그녀에게 매니저가 던지는 덜 절박하구나라는 말은 가난하고 어떻게든 일자리를 얻어야 하는 위치에 놓여진 청춘들을 대하는 현실의 냉혹함을 잘 보여준다.

 

사랑 따윈 사치처럼 되어버린 삶을 살아가는 윤진명은 정말 기적처럼 다가온 박재완(윤박)을 밀어낸다. 자신을 좋아하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그런 말을 반복할수록 윤진명의 마음 속에 박재완이 얼마나 깊게 자리하고 있는가가 드러난다. 그녀는 그저 보통사람들처럼 박재완을 사랑하고 싶지만 그녀를 둘러싼 현실의 무게들은 그걸 허락하지 않는다.

 

하지만 <청춘시대>에는 선배인 윤종열(신현수)과 유은재(박혜수)가 만들어가는 풋풋한 사랑이야기도 있다. 물론 그녀 역시 죽은 아빠와 관련해 어딘가 숨겨진 아픔 같은 것들이 존재한다. 누군가를 자신이 죽였다는 혼잣말과 엄마를 바라보는 시선이 문득 문득 차가워지는 그녀에게서 무언가 비밀스런 과거가 느껴진다. 하지만 그래도 유은재의 사랑은 우리가 청춘에 기대하는 그 첫사랑의 면면들이 묻어난다.

 

그런가 하면 처절한 현실을 부정하고 아무렇게나 살아가는 강이나(류화영) 같은 청춘도 있다. 대학생이라 속이고 제 몸을 팔아 스폰서 받는 편한(?) 삶을 선택한 그녀. 스스로 쉬운 삶이고 자신을 창녀라고 말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삶일까. 그녀가 그런 삶을 선택하게 된 데는 과거 죽을 뻔 했던 사고에서 그녀의 말대로 운이 좋아 살아났기 때문이다. 그녀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삶에 지켜야할 것을 지키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되묻는다.

 

셰어하우스에 모인 다섯 명의 청춘들의 제각기 다른 현실과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청춘시대>는 청춘을 한 가지 얼굴로만 내밀지 않는다. 그들이 대하고 있는 청춘이란 윤진명이나 강이나처럼 혹독하기도 하지만 유은재처럼 달달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들은 서로 다른 배경과 상황 속에서 때론 갈등하지만 그러면서도 서로를 토닥이고 안아준다. 박재완을 애써 밀어내고 돌아와 그 아픔에 오열하는 윤진명을 송지원(박은빈)이 꼭 끌어안아주는 것처럼.

 

이것은 <청춘시대>가 가진 현실을 다루는 좋은 균형감각이다. <청춘시대>는 청춘이라는 그 지점이 가진 낯설음과 설렘을 내포하지만 그것을 두려움과 처절함으로까지 만들어내는 현실을 또한 외면하지 않는다. 보통의 청춘 멜로로서는 기대하기 힘든 무게감과 진중함이 유쾌한 청춘들의 이야기와 잘 어우러지게 된 건 이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작금의 청춘들을 섬세하게 드라마가 들여다보고 그 균형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현실의 무게 때문에 힘겨워 하고 있지만 그들이 서로를 위로해주고 도와주는 모습은 <청춘시대>가 진짜 그리고 있는 청춘의 판타지다. 남녀 간의 달달하고 강렬한 사랑만큼 지금의 청춘들에게 필요해진 것이 위로가 됐다는 건 어쩐지 슬픈 일이다. <청춘시대>의 셰어하우스에 함께 살아가는 다섯 청춘들의 이야기가 풋풋하면서도 먹먹해지는 건 그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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