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멤버보다 주목되는 <1박2일>의 변화

 

사실 모든 버라이어티 예능 프로그램들의 근원을 좇다 보면 거기서 우리가 만나는 건 다름 아닌 <무한도전>이다. 국내 예능에 있어 <무한도전>이 건드리지 않은 아이템은 없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 이것은 <무한도전>이 워낙 독보적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프로그램 성격상 끊임없는 형식 도전을 해온 것이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 <12>도 어찌 보면 <무한도전>이 했던 여행 도전의 한 분파로서 비롯되었다고 말할 수 있으니.

 


'1박2일(사진출처:KBS)'

그래서일까. 모든 버라이어티 예능 프로그램들의 궁극적인 목표이자 꿈도 <무한도전>을 지향하는 경향이 생긴다. <무한도전>의 추격전 같은 콘셉트에서 그 한 분파로 나와 자리를 잡았다고 말할 수 있는 <런닝맨>이 지향했던 것도 무한 게임도전같은 것이었다. 게임이라는 한 소재에 집중해 끝없는 게임 형식의 도전을 해왔던 것. 하지만 <12>은 조금 달랐다. <무한도전>의 한 지류로 등장했지만 오래도록 해오면서 <12>만의 색깔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 색깔은 다름 아닌 토착적인 느낌, 국내여행에서만 느낄 수 있는 현지 주민들과의 교류, 무엇보다 복불복 게임 같은 것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12>은 무언가 변화를 시도하려는 모습이 역력하다. 지금껏 달려왔던 길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색다른 도전과 느낌들을 담아내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하얼빈 특집은 <12>의 이런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아이템이다. 국내 여행지만 고집했던 <12>이 해외를 바라보게 된 것은 아마도 최근의 여행 버라이어티들이 워낙 밖으로 구석구석 다니기 시작하면서 생겨난 한계 같은 것을 넘고자 하는 시도다. 물론 토착적인 느낌이 강한 <12>이 해외를 가게 된다고 해도 거기에는 확실한 명분이 필요하다.

 

하얼빈 특집에서 안중근 의사의 발자취를 좇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12>의 해외 행에 대한 충분한 명분과 의미가 될 수 있었다. 중요한 건 하얼빈 특집을 통해 <12>은 이제 해외로 가는 일이 조금은 수월해졌다는 점이다. 그만한 의미만 있다면 갈 수 있다는 걸 하얼빈 특집은 인증해준 셈이다.

 

땅끝마을 해남으로 떠난 <12>봄맞이 간부수련회 특집이라는 타이틀을 붙였다. 보통의 경우였다면 봄맞이정도가 지금껏 해왔던 <12>의 특집이었을 게다. 하지만 <12>은 여기에 간부수련회라는 새로운 아이템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오프닝에 선거철을 맞아 갖가지 선거 행태를 풍자하는 반장 선거’, ‘회장 선거’, ‘왕 선거’, ‘짱 선거같은 걸 집어넣었다. 선거를 풍자하면서 그 과정에서 생기는 서열구조를 통해 자연스럽게 웃기는 상황극들이 만들어졌다.

 

유호진 PD는 이 과정에서 더 적극적으로 방송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저 여행을 하는 출연자들의 모습을 한 발 물러서 담아내기보다는 이제 확실한 미션들을 계속 투입해 재미있는 상황들을 만들어내려는 의지 같은 게 엿보였기 때문이다. 현지에서 음식을 놓고 벌이는 복불복에서도 알파고를 풍자한 알파오를 통해 오목대결을 벌이는 장면이 투입되었다. 사실 현지에서 그 특성에 맞게 복불복을 꾸며왔던 <12>과는 사뭇 다른 행보다. 현재 대중들이 관심을 가진 사안들, 이를 테면 선거나 알파고 같은 아이템들을 <12>이라는 여행 버라이어티에 녹여내려는 시도가 엿보였다.

 

프로그램 중간에 출연자들을 통해 얘기된 것이기도 하지만 <12>은 아직 김주혁의 빈자리를 채워줄 새 멤버를 충원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현재 새 멤버보다 더 흥미로운 건 이런 <12>의 새로운 변화들이다. 지금껏 유호진 PD가 들어와 <12>이 새롭게 부활할 수 있었던 건 원년의 그 정서들을 새로운 멤버들을 통해 잘 살려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제 유호진 PD가 자신만의 색깔을 담아내는 <12>을 만들려고 하고 있다.

 

그것은 오로지 여행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할 수 없었던 다양한 시도들을 <무한도전>이 그런 것처럼 <12> 안에서도 해보려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10년 넘게 전국을 다니면서 한 주도 빠지지 않고 해왔던 일이니 어떤 면에서는 새로움을 시도하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물론 그 시도가 <12>의 외연을 넓혀줄지, 아니면 본래 색깔을 퇴색 시킬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 현재 무언가를 새롭게 시도한다는 건 <12>로서는 어쩌면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일인지도 모른다.

<시그널>의 욕망, 조진웅의 몸과 이제훈의 머리

 

죄를 지었으면 돈이 많건, 빽이 있건, 거기에 맞는 죗값을 받게 해야죠. 그게 경찰이 해야 되는 일이잖아요.” 지극히 당연한 대사지만 이 대사가 주는 울림은 너무나 크다. 상식보다 권력이 앞서는 법 정의 현실에서 tvN 금토드라마 <시그널>의 이재한(조진웅) 경사라는 캐릭터는 이상적인 인물이다. 어떤 권력의 협박이나 유혹에도 굴하지 않고 우직하게 할 일을 실천해 가는 그런 인물.

 


'시그널(사진출처:tvN)'

이재한 경사는 지금의 과학수사와는 거리가 있는 인물이다. 영화 <살인의 추억>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듯이 당대의 형사들과 그리 다르지 않다. 그래서 대도사건 수사에서는 제보만으로 엉뚱한 인물을 체포함으로써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생각보다는 몸이 앞서지만 그가 여느 형사들과 다른 것은 정의에 대한 남다른 신념과 소신이다. 그의 대사를 통해서도 잘 드러나지만 그는 죄를 지었다면 그 사람이 누구든(심지어 잘 아는 사람이라도) 죗값을 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그와는 정반대의 형사도 있다. 그것은 자신을 향해 총을 쏜 안치수(정해균) 같은 형사다. 그는 바로 이 원죄 때문에 상관인 김범주(장현성)와 같은 배에 타게 된다. 이재한 경사처럼 정의를 위해 온 몸을 던진 이는 그렇게 죽음을 맞이하지만 권력과 결탁해 제 배를 채우는 김범주나 안치수 같은 인물은 현재까지도 잘 살아간다. 이 부조리한 현실은 시청자들이 분노하게 되는 이유다.

 

이재한 경사가 몸으로 뛰는 형사라면 그와 무전기로 연결되어 있는 현재의 프로파일러 박해영(이제훈)은 머리로 승부하는 형사다. 그는 프로파일러답게 모든 정황들을 사건현장의 작은 단서에서도 찾아낸다. 재벌가 자제로서 대도사건의 진범이자 이와 관련해 살인을 저지른 변호사 한세규(이동하)를 두뇌싸움으로 증언을 받아내는 과정에서 그는 사이다 같은 시원한 한 방을 보여준다. 요즘처럼 법을 잘 알고 그래서 법망을 이용하거나 빠져나가는 점점 지능화되는 범죄에서 박해영처럼 머리를 쓰는 형사가 필요한 이유를 잘 보여준다.

 

무전기라는 판타지로 연결되어 있지만 과거의 형사 이재한 경사와 현재의 프로파일러 박해영의 조합은 그래서 완벽하다. 이재한은 몸으로 뛰고 박해영은 머리로 분석한다. <시그널>이 타임 리프라는 설정으로 과거의 형사와 현재의 프로파일러를 각각 우직한 행동파와 과학수사의 상징처럼 엮어놓은 건 흥미롭다. 이 과거와 현재의 중첩이 그저 시간을 뛰어넘는 신기함만이 아니라 의미를 담고 있다는 얘기다. 어딘지 과학수사는 아니더라도 몸으로 더 뛰어 범인을 잡으려는 과거의 형사와 훨씬 진화된 방식으로 과학수사를 해나가는 현재의 프로파일러의 조합을 이상적인 형사상으로 그려내는 것.

 

물론 이 상이한 성향의 두 사람이라도 같은 점은 있다. 그것은 권력에 굴하지 않는 정신이다. 과거 이재한의 상사였고 현재는 박해영의 상사인 김범주의 그 긴 세월동안 해온 권력과의 결탁과 압력에도 두 사람은 모두 소신 있는 수사를 해나간다. 결국 <시그널>의 공적으로서 한세규나 김범주 같은 인물이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진 악의 고리이고 이재한과 박해영 두 사람 모두가 대결해야할 적이 되고 있다는 건 의미심장한 일이다. 그만큼 법 집행이 오래도록 권력과 결탁해왔다는 걸 말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시대를 살고 있는 두 형사. 한 사람은 사건 해결을 위해 몸을 사리지 않고 다른 한 사람은 끝없이 두뇌를 사용하지만 모두 정의 실현에 갈증을 가진 그들의 조합은 이상적이다. 그 이상적인 조합이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진 부조리의 상징처럼 등장하는 안치수, 김범주와 대결하는 이야기. <시그널>은 이 대결구도를 통해 지금 현재 우리네 서민들이 느끼는 공정하지 못한 법 집행의 연원이 꽤 오래도록 지속되어 왔다는 걸 말해주는 것만 같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달라지지 않고 있는 그 뿌리 깊은 부조리를 척결하는 것. 그것이 이 두 시대의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형사들을 이어놓은 이유가 아닐까.

<검사외전> 강동원, 복수극 속에서 그가 빵빵 터트린 이유

 

<검사외전>은 어떻게 설 명절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무려 5백만을 훌쩍 넘기는 관객을 동원하고 있을까. 사실 이 스토리는 그리 새로운 것도 아니다. 흔하디흔한 복수극.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게 된 검사가 그 안에서부터 치밀한 계획 하에 복수를 하는 이야기다.

 


사진출처: 영화 <검사외전>

장르적 유사성이나 이야기 구조상으로 보면 <베테랑>이나 <내부자들>과 크게 다른 느낌이 아니다. 거기에는 부패한 권력이 있고 부조리한 법 정의가 있으며 무고한 희생자가 있다. 사회 현실의 답답함을 영화 속으로 끌어와 속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것. <검사외전>은 거기에 충실한 오락영화다.

 

아무리 좋은 것도 여러 번 보게 되면 식상해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이야기 구조나 정서에 있어서 <베테랑>이나 <내부자들>과 그리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검사외전>은 만일 그것 만이었다면 쉽게 성공하기 어려웠을 영화다. 하지만 <검사외전>에는 강동원이 있었다. 그저 살 생긴 강동원의 팬덤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그가 연기하는 재욱이라는 귀여운 사기꾼 캐릭터가 <검사외전>만의 독특한 재미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재욱은 사기꾼이다. 돈 많은 여자나 후려내는 그렇고 그런 인물이지만 그가 보여주는 특유의 허세는 강동원이라는 연기자와 맞아 떨어지면서 관객들에게 시원한 웃음을 선사하는 캐릭터로 거듭난다. 잘 생긴 외모로 한껏 허세를 부리는 모습도 우습지만, 그런 그가 주먹이 무서워 찌질한 모습을 드러낼 때는 더욱 웃기다. 사기꾼이기는 하지만 어딘지 속내는 착해 보이고 어떤 면에서는 당하는 삶을 살아왔다는 점은 그가 밉지 않은 이유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건 정치인과 검사가 맞붙는 이 거창한 복수극 속에서 그가 위치한 어딘지 방관자적인 태도다. 그는 물론 억울하게 감방에 들어온 변재욱(황정민)을 돕는 입장에 서지만 사회 정의라던가 부조리에 대한 고발 같은 거창한 목적 따위는 그에게 없다. 그저 돈이 앞서고 그것이 아니라면 살아남기 위해 뛰는 것이며, 그저 가끔씩 인간적인 정 때문에 일에 뛰어들 뿐이다.

 

재욱의 위치는 정확히 서민들의 시선을 만들어낸다. 도대체 저 사회 정의고 어쩌고 하는 거대담론이 중요한 건 알겠는데 그게 우리네 서민들에게 어떤 희망을 준 적이 있는가 하고 그는 되묻는 듯하다. 그런 거대담론과 대결하기 보다는 그저 눈앞의 삶을 잘 살아가는 것이 더 갈급한 일이라는 걸 재욱이라는 캐릭터는 대변하고 있다.

 

그러니 복수극이라는 무거운 틀 속에서, 그것도 썩은 정치와 검은 돈과 유린되는 법 정의라는 어마어마한 사건들 속에서 일종의 냉소를 날리는 듯한 재욱의 캐릭터는 그 자체로 관객들에게 웃음을 자아내게 만든다. 잔뜩 긴장한 대치 상황 속에서 그가 등장하기만 하면 빵빵 터지는 건 그래서다. 그러면서도 어딘지 정의가 이기기를 바라는 재욱의 모습에 관객들도 자연스럽게 빙의되어간다.

 

<검은 사제들>이라는 영화가 결코 대중적일 수 없으면서도 흥행에 성공한 이면에 많은 이들이 강동원의 존재감을 얘기한다. 다른 이도 아니고 강동원이 사제복을 입었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관객들의 마음이 움직였을 거라는 것이다. <검사외전>도 마찬가지다. 강동원이 과거 <전우치>에서 보여줬던 그 냉소적이면서도 허세가 가득하고 그것이 기분 좋은 유쾌함으로 느껴지게 만드는 그 면면들이 <검사외전>에서도 빛을 발한다. 흔히들 강동원은 늘 옳다고 말하지만 그것이 왜 그런가를 확인시켜주는 영화다.

<내부자들>의 성취와 이병헌에 대한 호불호는 별개

 

영화 <내부자들>에 대한 관객 반응은 뜨겁다. 개봉 첫 주에 160만 관객을 동원해 역대 청불 영화 기록을 모두 갈아치웠고 최단기간 100만 관객 돌파 기록을 세웠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건 지금이 영화 비수기로 불리는 시기라는 점이다. 이런 시점에 <내부자들>이 이런 결과를 냈다는 건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진출처:영화<내부자들>

<내부자들>은 확실히 이런 기록을 낼만한 영화적 성취를 갖고 있다. 그 첫 번째 힘은 윤태호 원작이 갖는 그 스토리에서 나온다. 이미 <베테랑>에서 우리가 확인했던 것처럼 우리 사회 현실 속에 상존하는 권력의 부조리에 대한 대중들의 공분은 깊다. <내부자들>은 이 부조리의 심층부를 모두 도려내서 보여주는 듯한 느낌이다. 정계, 재계, 언론계, 법조계가 <내부자들>의 도마 위에 오른다. 그것만으로도 대중들은 반색할 만하다.

 

두 번째 힘은 이런 스토리를 실제처럼 만들어버리는 연기자들의 빈틈없는 연기다. 백윤식이나 이경영, 조승우, 이병헌까지 착한 역할은 좀체 찾아보기 힘들지만 그 욕망의 질주를 보여주는 연기들은 보는 이들을 공분하게도 하고 때로는 통쾌하게도 만든다. 이 정도면 악역 연기의 각축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흥미로운 건 <내부자들>의 이런 성공과 함께 솔솔 피어나고 있는 이병헌에 대한 언론의 반응이다. 마치 <내부자들> 하나로 그간 이병헌에게 쏟아졌던 비난들이 모두 잠재워지기나 한 것 같은 호들갑이다. 성급하게는 이제 모든 액땜을 한 이병헌이 <내부자들> 한 편으로 대중들의 마음을 돌려놓았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영화는 영화고 이병헌은 이병헌이다. 야속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영화에 대한 호평은 당연하다. 실로 잘 만들어진 영화니까. 또 연기에 대한 호평도 마찬가지다. 실로 이 영화 속에서 이병헌은 연기를 잘했다. 게다가 연기를 떠나서 그 밑바닥까지 보여주는 악역은 지금 현재의 이병헌에게는 그토록 잘 어울릴 수가 없었다. 그러니 연기는 잘 했다고 칭찬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이병헌에게 면죄부가 될 순 없다. 대중들은 여전히 지난 50억 협박 사건을 통해 드러난 이병헌의 행실에 대해 불편한 마음을 갖고 있다. 그건 영화가 성공하든, 연기를 잘했든 쉽게 사라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마침 그에게 딱 맞는 캐릭터가 <내부자들>에 있었다고 말하는 편이 맞다. 만일 그가 지금 시점에 깡패 역할이 아닌 순애보의 남자 캐릭터를 연기했다면 같은 반응이 나왔을까. 제아무리 연기를 잘해도 대중들이 몰입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영화의 성공 때문일까. 이병헌은 광고에 공공연히 얼굴을 내밀고 있다. 이제 논란이 만들어냈던 그 불편함을 스스로 털어 버린 듯한 모습이다. 여기에 공조해 언론들도 일제히 이병헌의 재기를 얘기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반응에 대해 대중들은 여전히 냉담하다. 이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한 이병헌이 오롯이 연기자로 다시 서게 되는 길은 더 멀어질 수 있다. 그러니 이제 작품 하나 잘 한 것으로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을 것이다.

 

연기자는 연기만 잘하면 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 연기자의 어떤 일상적인 행동이나 태도는 고스란히 그의 연기를 바라보는 대중들에게 어떤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그러니 연기는 어찌 보면 그저 만들어서 가짜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이제 첫 단추를 끼운 것이나 마찬가지다. 섣부른 샴페인 터트리기보다는 자신을 한껏 낮추고 지금부터 한 걸음 한 걸음 연기로 대중들에게 다가가겠다는 그런 겸허함이 필요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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