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2’의 공포에 가까운 몰입감, 용인되는 까닭

마치 영화 <곤지암>을 보는 것만 같았다. OCN 주말드라마 <보이스2>에 등장한 ‘인터넷 방송 비제이 고다윗 피습사건’ 얘기다. 미스터리한 공간을 찾아가는 인터넷 방송 비제이 고다윗(박은석). 군부대에 출몰했다는 좀비를 찾아가는 그의 모습은, <곤지암>의 공포를 안방극장에서 재연하기에 충분했다. 인터넷 방송이 갖기 마련인 거친 화면과, 마치 던전에 들어가듯 밀폐된 공간에서 하나하나 방문을 열고 들어가는 과정들, 그리고 거기서 맞닥뜨린 기괴한 사건들까지. 

이 <곤지암>을 떠올리게 하는 미스터리한 사건이 <보이스2>에 등장하게 된 건, 고다윗의 방송을 보던 시청자가 골든타임팀에 신고를 하는 설정을 통해서다. <곤지암>은 그 방송을 하던 비제이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다뤘지만, <보이스2>는 이 좀비가 출몰했다는 기이한 사건을 추적해가는 형사들의 관점으로 다뤄진다. 도강우(이진욱)는 좀비에게 피습됐다는 그 군부대의 폐건물을 찾아들어가 결국 공포에 질려 있는 고다윗을 찾아낸다. 

조금 뜬금없어 보이지만 이 사건은 한번 보게 되면 눈을 뗄 수 없는 몰입감을 만드는 게 사실이다. 드라마 후반부에 배치된 이 사건의 분량으로 인해 약 20분 간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들었던 것. 그런데 이 공포물에 가까운 상황과 사건들의 배치는 <보이스2>가 가진 중요한 추동력이다. 

<보이스2>는 전작에서도 그랬듯이 1분 1초가 중요한 급박한 사건들을 다룬다. 그래서 아동 성폭행범을 찾는 이야기는 아이가 잡혀 어떤 일을 당할지 알 수 없다는 그 공포의 전제 때문에 상황을 더 긴박하게 만들어냈다. 상황실에서 끊임없이 소리를 분석하고 정보를 취합하며 지시를 내리고, 현장에서 애타게 아이를 찾는 형사들의 모습들은 시청자들이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던 것.

일찌감치 연쇄살인을 뒤에서 조종하고 있는 인물이 방제수(권율)라는 걸 공개한 건 이런 긴박감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다. 그가 의도적으로 강권주(이하나)를 우연을 가장해 만나 자신이 해경이라고 소개하며 골든타임팀을 응원한다는 이야기를 건네는 장면은 그래서 더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평범하고 훈훈한 외모에 아파트 경비에게 친절한 모습까지 보이는 그가 집에는 죽은 어머니의 사체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도 그렇고, 지하실에 소파를 좀 보관해달라고 했다 거절당한 이웃 아주머니가 자신의 험담을 하자 엘리베이터에서 그를 죽이는 상상을 하는 장면도 그렇다. 그가 연쇄살인을 조종하는 끔찍한 살인마라는 게 밝혀져 있어서 나올 수 있는 공포감이다. 

그리고 <보이스2>는 여기에 도강우의 실체가 무엇이냐는 미스터리를 집어넣어 그 공포를 가중시킨다. 배 위에서 동료형사 나형준(홍경인)이 처참하게 손목이 잘려 죽는 첫 장면의 이야기는 그것이 도강우의 짓이었다고 의심하는 나홍수(유승목)와, 나아가 강권주에게 그 살인을 도강우와 함께 저질렀다고 말하는 방제수의 진술 때문에 궁금증을 갖게 한다. 과연 도강우는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지르고 기억을 조작했던 걸까.

이처럼 <보이스2>는 공포에 가까운 사건들을 가져와 그걸 해결하기 위해 급박하게 뛰어다니는 골든 타임팀의 이야기로 연결시킨다. 각각의 사건들이 매회 등장하고 해결하는 과정을 담지만, 동시에 전체 이야기의 대립구도를 만드는 방제수와 골든타임팀의 구도가 조금씩 동시에 진행된다. 자칫 공포영화에나 나올 법한 끔찍한 사건들이 자극으로만 치달을 수 있는 위험성이 있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런 사건들을 현실에서도 종종 겪고 있다. 마치 <곤지암>을 보는 것 같은 공포물이 형사물과 만나는 장면들이 용인되는 이유다. 극도의 몰입감을 만들어내는 극적 장치이기도 하지만.(사진:OCN)

‘귓속말’이 끄집어낸 숨은 공력의 연기자들

저 배우가 <낭만닥터 김사부>의 그 사람 좋은 미소를 보이던 그 돌담병원 원장이 맞아? 연기자 김홍파의 SBS 월화드라마 <귓속말>에서의 변신은 놀라웠다. 돌담병원 원장의 이미지가 기억이 안날 정도로 <귓속말>에서 그가 연기한 보국산업 강유택 회장의 그 강렬함은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실제 우리가 기억하는 대기업 총수 중 누군가를 떠올리게 할 정도였으니. 

'귓속말(사진출처:SBS)'

건들건들 대며 걷는 모습이나 로펌 태백의 최일환(김갑수) 대표와 각을 세울 때 빙글빙글 비웃음을 치며 눈에는 살기가 가득한 모습은 팽팽한 긴장감을 만들어냈다. <귓속말>의 치고 박는 복마전을 흥미롭게 만든 건 다름 아닌 이 강유택 회장과 최일환 대표라는 결코 밀리지 않을 것 같은 대립구도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기 베테랑으로 정평이 나있는 김갑수와 마주 서도 전혀 밀리지 않는 존재감이라니.

<귓속말>이 끝없이 상황이 바뀌고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는 이전투구의 상황들을 그려내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가 안정감을 갖는 이유는 바로 김홍파 같은 연기자가 다수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권율 역시 그런 연기자들 중 한 명이다. 물론 <싸우자 귀신아>에서도 의외로 섬뜩한 캐릭터 연기를 잘 소화해낸 그였지만 <귓속말>에서는 강유택의 아들 강정일 변호사 역할로 과거의 부드러운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을 정도의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차가운 얼굴은, 창백한 낯빛과 무표정으로 ‘악마의 형상’ 같은 캐릭터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최일환과 강유택의 대립구도가 위에서 조종하는 권력다툼이라면 이동준(이상윤)과 강정일의 대립구도는 그 밑에서 직접 실행을 통해 부딪치는 존재들이다. 여기서 악역으로서의 권율이 만들어내는 긴장감은 드라마에 중요한 힘으로 작용한다. 

김홍파와 권율이 그래도 과거 작품들을 통해 어느 정도 연기 공력을 감지할 수 있었던 배우라면 <귓속말>에서 스폰서 검사로 낙인찍혀 검사복을 벗어 최일환의 비서가 되었지만 그 사건이 결국 최일환의 사주에 의해 벌어진 일이라는 걸 알고는 분노하는 송태곤 역할의 김형묵이라는 배우는 갑자기 시청자들 앞에 나타난 ‘미친 존재감’이다. 물론 목소리를 들으면 수긍할 수 있을 정도로 뮤지컬배우로서 김형묵은 잘 알려져 있지만 배우로서는 그리 알려지지 않았던 게 사실. 최일환과 강유택 회장 사이에서 갈등하는 송태곤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그는 시청자들의 눈도장을 확실히 찍었다. 

드라마의 힘은 악역이 만들어낸다고 했던가. 그런 점에서 보면 <귓속말>이 발견해낸 김홍파, 권율, 김형묵은 이 드라마가 끝없이 요동치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어찌 보면 주인공들보다 더 강렬한 존재감이 이들에게서 느껴지는 건 그 캐릭터가 가진 매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들의 만만찮은 연기 공력도 한 몫을 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향후 이들이 보일 연기의 행보가 벌써부터 기대될 만큼.

‘귓속말’, 이들의 폭주가 보여주는 통쾌함과 씁쓸함

“법대로 살 수 없어 사는 법을 배웠죠.” 이동준(이상윤)이 태백의 대표 최일환(김갑수)에게 던진 이 말은 SBS 월화드라마 <귓속말>의 세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사실 이 드라마는 한 회 한 회 긴장을 늦추고 볼 수가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끝없는 대결구도로 이뤄진 이 드라마는 또한 끝없이 새로운 판이 그 때마다 짜지기 때문이다. 어제의 적은 오늘의 동지가 되고 오늘의 동지는 다시 내일의 적이 된다. 

'귓속말(사진출처:SBS)'

이들이 대립하는 가장 큰 골격은 로펌 태백의 경영권을 두고 벌어지는 최일환과 보국산업 강유택(김홍파)의 패권다툼이다. 하지만 이 대결구도 속에 틀어 앉은 또 하나의 사건이 방산비리다. 보국산업과 태백이 얽혀 있는 이 비리를 캐던 기자가 최일환의 딸 최수연의 사주로 인해 살해당하고 그녀의 연인인 강정일(권율) 역시 그 살해에 동조한다. 그리고 살인범으로 대신 신영주(이보영)의 아버지 신창호(강신일)가 누명을 쓰고 수감된다. 여기에 판사였던 이동준은 최일환의 위협에 못 이겨 신창호를 범인으로 지목하는 잘못된 판결을 내게 된다. 

비리 기업이 있고 그 비리에 동조하고 있는 로펌이 있으며 그걸 취재하다 죽음을 맞이한 기자가 있다. 그 기자를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간 아버지의 무고를 밝히기 위해 딸 신영주가 나선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이 관계들은 사건과 비리와 권력 등에 의해 만들어진 것들이다. 그리고 그 이해관계들은 부모자식 관계나 부부, 연인 관계보다도 더 앞서있다. 

최일환은 태백을 집어 삼키려는 보국산업 강유택 회장과 맞서기 위해 딸 최수연(박세영)이 사랑하는 강회장의 아들 강정일(권율)을 밀어내고 대신 이동준과 정략결혼을 시킨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최일환의 발목을 잡는 건 바로 이 딸이다. 강정일이 구속될 위기에 처하게 되자 딸은 모든 죄를 자신이 내린 것이라고 증언하라며 오히려 아버지 최일환을 겁박한다. 

이런 상황은 강정일과 강유택의 관계에서도 똑같이 나타난다. 강유택은 아들 강정일을 태백에 심어놓고 결국 그 태백을 집어삼킬 야망을 갖고 있다. 그래서 강정일을 밀어내려는 최일환의 공격으로부터 아들을 보호하려 한다. 하지만 그 아들이 최일환의 딸 최수연과 연인 관계라는 사실은 탐탁찮은 일이다. 그래서 위기에 몰린 강정일을 직접 도와주지 않고 대신 그에게 최수연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 씌우라고 제안한다. 

가족도 믿지 못하는 얄팍한 인간적 관계인데다, 법이란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타협하는 것으로 치부되는 이 <귓속말>의 세계는 그래서 팽팽해질 수밖에 없다. 거기에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고, 법 역시 정의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각자의 욕망이 부딪치는 이전투구의 장이 끊임없이 생겨나는 건 그래서다. 

<귓속말>이 한번 보면 빠져들 수밖에 없는 반전의 반전을 보여줄 수 있는 건 바로 이런 냉혹한 세계가 거기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박경수 작가가 <황금의 제국>이나 <펀치>를 통해 지금껏 그려온 권력자들의 세상이 시청자들에게 주는 흥미진진함이고 속 시원함이며 동시에 씁쓸함이다. 

엎치락뒤치락 하는 세계의 대결구도는 흥미진진하고, 한껏 몰렸던 누군가가 하나의 키를 새롭게 쥐고 상황을 반전시키는 이야기는 통쾌하지만, 동시에 한 걸음 물러나 이 싸움판을 보게 되면 우리네 현실이 얼마나 법 정의와는 멀어져 있는가를 확인하는 씁쓸함이 느껴진다. <귓속말>은 법 정의가 무너진 세상에서 사는 법에만 능숙한 이들의 대결을 보여주는 드라마다. 그리고 그 시선에는 풍자적 관점 또한 들어 있다. 도대체 저게 뭐하는 짓들인가.

대립-공조-공감, ‘귓속말’이 담는 특별한 멜로 방정식

신영주(이보영)와 이동준(이상윤)은 과연 진정한 관계가 될 수 있을까. 두 사람의 관계가 심상찮다. 조폭들에게 추적당하며 죽을 위기에 처한 이동준과 그를 구하러 온 신영주. 자신을 놔두고 가라며 조폭에게 소리를 내려하는 이동준의 입을 막은 신영주의 입. 그것은 키스였을까 아니면 살아남기 위한 어쩔 수 없는 행동에 불과했던 걸까. 

'귓속말(사진출처:SBS)'

SBS 월화드라마 <귓속말>에서 신영주와 이동준의 관계 변화는 이 드라마에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 거대 로펌 태백 안에서 벌어지는 권력 시소게임 속에서는 영원한 동지도 적도 있을 수 없다. 상황에 따라 필요하면 같은 편이 되었다가 또 다른 상황을 만나면 적으로 맞서게 되는 게 이 권력 시스템의 적자생존 구조다. 그것은 부모 자식 관계인 태백의 대표 최일환(김갑수)과 그 딸인 최수연(박세영)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그 태백의 권력 시스템 안에서 유일하게 다른 관계를 가진 이들은 강정일(권율)과 최수연이다. 그들은 단순한 이익관계나 살아남기 위한 선택에 의한 관계와는 다른 연인관계다. 어디서 어떤 배신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이 살벌한 시스템 안에서 이런 인간적 관계는 훨씬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단순한 이익을 위한 선택 그 이상의 선택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신영주와 이동준의 관계는 대립관계로부터 시작했다. 즉 판사시절 소신을 버린 이동준에 의해 신영주의 아버지가 감옥에 가게 되었고, 신영주 역시 형사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래서 신영주는 술 취한 이동준과 하룻밤을 보내고 그것을 영상으로 찍어 그를 협박한다. 대립관계지만 이동준만이 유일하게 자신의 아버지를 다시 사면시킬 수 있는 인물이라는 걸 알고 있는 신영주는 그래서 그와 각을 세우면서도 공조하는 입장이 된다. 

이동준의 비서로 태백에 들어온 신영주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돕게 되고 또 그녀의 도움을 받게 되면서 두 사람 관계는 조금씩 바뀐다. 이동준이 자신이 판사시절 소신을 버렸던 일을 차츰 후회하게 되고 그래서 단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공조하던 관계를 넘어서 그는 그녀와 그녀의 아버지에게 속죄하는 선택을 하게 된다. 폐암 3기를 판정받은 신영주 부친의 형 집행정지를 얻어내기 위해 스스로 사지에 들어가는 것. 이 선택은 이익이나 생존과는 상관없는 인간적 선택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자 신영주 역시 비슷한 인간적 선택을 하게 된다. 부친의 형 집행정지 신청이 받아들여져 이미 자신이 얻을 건 얻은 상황이지만 이동준을 구하기 위해 그 위험한 곳으로 뛰어든 것. 칼에 맞아 피를 흘리는 이동준과 그 상처부위를 손으로 누르며 그를 지지하는 신영주. 그리고 그 순간 신영주가 한 키스는 그래서 단순히 상대방의 입을 막기 위함만은 아니지 않았을까. 

신영주와 이동준의 이런 인간적 관계의 바탕이 되는 건 ‘공감’이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자신이 저질렀던 과오를 인정하며 참회하는 이동준은 그녀가 처한 입장을 공감한다. 그리고 그런 선택을 한 이동준의 입장을 또한 신영주 역시 공감하고 그 위험에 같이 뛰어든다. 

신영주와 이동준의 관계가 대립관계에서 시작해 공조관계 그리고 공감의 관계로까지 바뀌게 되면서 <귓속말>의 로펌 태백에서 벌어지는 권력 시소게임은 더 팽팽한 상황으로 접어들게 됐다. 강정일과 최수연의 관계와 이제 제대로 맞서게 될 신영주와 이동준의 관계가 만들어지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귓속말>은 굳이 주인공들 사이에 이런 관계의 변화를 그려 넣으려 했던 걸까. 그것은 물론 그저 치고 받는 권력의 시소게임만이 아니라 그 안에서 벌어지는 감정들을 함께 잡아내려 하는 것이고, 또한 이 복마전 속에 그래도 인간적인 면을 만들어내는 멜로 관계 같은 걸 집어넣으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뿐일까. 그보다는 살벌한 생존경쟁의 현실 속에서 우리가 맺고 있는 인간적 관계들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드러내기 위함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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