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수에 택연까지, <집밥 백선생2> 손님 오니 재미 두 배

 

JTBC <집밥 백선생2>에 이종혁의 아들 준수가 등장한다는 소식은 그 자체만으로도 기대감을 자아내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미 MBC <아빠 어디가>를 통해 준수는 독특한 4차원 매력을 선보인 바 있다. 아이답게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말과 행동은 그 순수함 때문에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집밥 백선생2(사진출처:tvN)'

백종원은 살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어른들이야 조금 요리가 생각만큼 맛이 없어도 예의 상 맛있다고도 해줄 수 있지만 아이들은 솔직하다. 특히 준수는 속에 없는 말을 절대 할 아이가 아니다. 그러니 막상 맛있게 음식을 만들어 놓고도 준수의 눈치를 살필 밖에.

 

준수의 등장은 아이의 입맛에 딱 맞는 돼지고기로 하는 부드러운 스테이크요리가 제격이게 만들었다. 사실 돼지고기 목살로 하는 스테이크 자체가 조금 낯설 수 있지만 늘 구워 먹기만 했던 목살이 이토록 고급진 스테이크 요리로 탄생할 지는 출연자들도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잘 구워진 스테이크에 백종원이 만든 특제소스를 얹어 내놓은 음식을 먹어본 준수는 부끄럽게 맛있어라고 한 마디 할 뿐이었다. 어찌 들으면 무미건조하게까지 들리는 그 한 마디 말.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그 말에 대한 신뢰는 높을 수밖에 없었다.

 

배운 대로 아빠 이종혁이 준수에게 직접 스테이크를 만들어주는 모습은 손님의 출연으로 <집밥 백선생2>가 이제 조금씩 새로운 스토리를 변주하기 시작했다는 걸 말해준다. 지난 회 정준영의 절친인 자취 4년차 최태준이 등장해 그가 좋아하는 매운 요리를 위한 소스 레시피가 공개된 것도 게스트 출연에 따른 스토리의 변화라고 볼 수 있다.

 

다음 주 예고편에는 <삼시세끼> 정선편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옥택연이 출연한다. 면 요리를 좋아한다는 그의 취향에 맞춰 <집밥 백선생2>는 각종 우동 요리들을 선보일 예정이란다. 그리고 이어지는 옥택연과 정준영의 요리 대결은 마치 <삼시세끼><집밥 백선생2>의 대결처럼 흥미진진해지는 지점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삼시세끼>에서 옥셰프라 불리던 옥택연이 아닌가.

 

<집밥 백선생2>는 물론 백종원만의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이고 그럴싸한 레시피가 재미의 핵심이다. 하지만 그것도 반복되면 어떤 이야기의 패턴처럼 프로그램이 느슨해질 수 있다. 손님의 출연은 그런 점에서 이 패턴에 변수를 더해 긴장감을 만들어낸다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또한 손님들은 <집밥 백선생2>가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점을 부각시키기도 한다. 외부인으로서의 손님은 시청자들을 대리해 그 요리의 세계에 들어가는 몰입을 주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외부인이 잠깐 배우는 레시피는 시청자들 역시 쉽게 그 선보인 요리를 시연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효과적인 레시피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끌던 <집밥 백선생2>. 이제는 손님을 통해 이야기를 변주함으로써 또 다른 재미를 만들어가고 있다

<또 오해영>, 로맨틱 코미디의 또 다른 진화

 

남자와 여자가 만나고 서로에게 빠져들지만 둘 사이를 가로막는 장애가 등장한다. 그 장애는 연적이 되기도 하고 부모가 되기도 하며 때로는 너무 다른 빈부 격차가 되기도 하고 아주 가끔씩은 사회적 편견이 되기도 한다. 달달하고 웃긴 코미디로 시작하지만 중반 이후로 흘러가면서 조금씩 무거워지고 심지어 비극을 향해 달려가기도 하는 흐름을 보인다. 해피엔딩이냐 새드엔딩이냐에 대한 논의들이 오갈 때 드라마는 적당한 수준에서 타협하며 끝을 마무리한다.

 

'또 오해영(사진출처:tvN)'

그 많은 로맨틱 코미디들이 보여줬던 공식들이다. tvN <또 오해영> 역시 이 틀에서 크게 벗어났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 전개과정은 사뭇 다르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지만 그것은 인연이 아닌 악연으로 시작하고 그 악연이 다름 아닌 같은 이름때문에 빚어진 오해로부터 비롯된다는 건 그 많던 공식들과 비교해보면 새롭게 다가온다.

 

그렇게 꼬이며 만나게 된 남녀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웃하며 벌이는 알콩 달콩한 시트콤적 상황들은 여지없이 로맨틱 코미디의 빠질 수 없는 요소다. 하지만 소리를 채취하고 만들어내기도 하는 음향 감독이라는 직업적 특성이 이 전형적 상황들을 변주시킴으로써 드라마를 새롭게 만든다. 허진호 감독의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살짝 보인 직업의 세계지만, <또 오해영>의 도경(에릭)이 들려준 창문을 열면 들려오는 햇볕의 소리같은 건 확실히 참신한 소재들이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이 드라마가 시도한 새로움은 도경이 갖고 있는 독특한 능력(혹은 병)을 통한 것들이다. 다름 아닌 오해영(서현진)과 관련되어 미래를 보는 능력은 이 로맨틱 코미디의 갈등 양상을 독특하게 만들었다. 벌어지지 않은 미래의 일들이 도경의 눈에 비춰지면서 드라마는 굉장한 긴장감을 만들었다. 즉 자꾸만 보이는 도경의 죽음을 암시하는 미래의 풍경들은 드라마 속에서 도경이 해영과 거리를 두려는 이유가 되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사랑하자는 의지를 만들어내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물론 그걸 보는 시청자들은 더 간절해진다. 혹여나 이 달달한 커플이 새드엔딩을 맞이하게 되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은 마지막회까지도 이어진다.

 

로맨틱 코미디는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본능이라고 할 수 있는 남녀 간의 사랑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시대를 뛰어넘는 이야기의 소재로 기능할 수 있었지만, 너무 많이 다뤄지면서 식상해지고 긴장감도 흐트러진 면이 있다. <또 오해영>이 흥미로운 건 이렇게 흐트러진 긴장감을 미래를 보는 능력이라는 정신 병리학적 상황을 투입함으로서 다시 팽팽하게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오해라는 어찌 보면 사소할 수 있는 사건이 수많은 사람들을 울고 웃게 만든다는 이 드라마의 이야기는 인간이 얼마나 가녀린 존재인가를 부지불식간에 드러낸다. 사랑은 굉장한 운명적 사건처럼 여겨지지만, 사실은 사소한 실수와 오해가 만들어낸 신의 장난같은 것이다. 도경과 해영의 만남이 그렇고, 수경(예지원)과 진상(김지석)이 관계를 맺는 과정이 그렇다.

 

비극이 운명 앞에 그 가녀린 존재로서의 인간을 동정과 연민의 시선으로 보게 만들어내는 것처럼 <또 오해영>은 그 사소한 부딪침들에 대해 웃음이 나다가도 어느 순간 그것들이 엮어내는 무거운 삶 앞에서 그들을 연민과 동정의 시각으로 보게 만든다. 아마도 도경이 가진 미래를 보는 일은 그래서 그것이 능력이라기보다는 극복해야할 질병처럼 느껴지는 것일 게다.

 

그렇게 모든 게 꼬일 대로 꼬인 사소한 오해를 통해 우리는 만나게 되지만 그 운명을 뛰어넘는 건 두 사람의 의지라는 점에서 사랑은 위대하다. <또 오해영>에서 도경이 보던 미래가 정해진 것이 아니라, 그가 해영을 더 깊게 사랑하게 되고 그럼으로써 다른 미래를 선택하는 것으로 미래를 바꾸게 된다는 이야기는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인간의 정해진 운명과 그걸 뛰어넘는 의지에 대한 이야기는 그래서 <또 오해영>이 로맨틱 코미디라는 가벼울 수 있는 장르를 가져와 얻어낸 적지 않은 성취다. 사실 어찌 보면 로맨틱 코미디는 그 장르 자체가 식상해진 게 아니라는 걸 이 드라마는 보여줬다. 그 틀이 마치 운명처럼 정해진 노선으로만 달렸던 것이 그 흔한 로맨틱 코미디들이 가진 한계였다면, 그 노선 바깥으로 슬쩍 방향을 돌려놓음으로써 그 밖에도 무한한 가능성의 로맨틱 코미디가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 건 <또 오해영>이라는 드라마의 중요한 가치가 될 것이다. 마치 도경이 정해진 미래를 벗어난 선택으로 미래를 바꾸었던 것처럼.

<대박>24부작인데, <몬스터>는 왜 50부작?

 

사실 드라마에서 길이 그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50부작이고 해도 한 회 한 회 저마다의 메시지를 담고 그것이 잘 엮어져 50부의 흐름을 관통한다면 그건 오히려 명작이 될 수 있다. 종영한 SBS <육룡이 나르샤>는 대표적이다. 조선 건국의 과정이라는 큰 스케일인데다, 여섯 명의 건국 영웅을 각각 다루면서 이들의 이합집산을 통한 다양한 이야기의 재미들이 매회 나왔기 때문에 50부작이라고 해도 순식간에 흘러가버린 듯한 몰입감을 주었다.

 


'몬스터(사진출처:MBC)'

하지만 MBC <몬스터>는 어떨까. 50부작이 예정되어 있고 이제 8회가 지났을 뿐이지만 이야기는 벌써부터 산으로 가고 있다. 애초에 이 이야기는 이국철(이기광)이라는 인물이 강기탄(강지환)으로 살아 돌아와 도도그룹에 복수를 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돌아온 강기탄이 도도그룹에 들어가 받는 인턴 연수의 과정은 너무나 비현실적이다. 인턴들이 한 회사의 생존이 달린 문제를 놓고 해외 연수를 가서 마치 스파이나 된 것처럼 경합을 벌이는 장면은 어찌 보면 유치한 어린이 드라마 같은 느낌마저 준다.

 

물론 이것 역시 강기탄이 도도그룹 깊숙이 들어가 복수를 해가는 과정이라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드라마라는 건 정서적인 일관성과 흐름이 있어야 긴장감이 흐트러지지 않는 법이다. 이런 비현실적인 게임과 미션들 속에서 강기탄의 애초 목적인 간절한 복수의 의지들은 슬쩍 가려진다. 무엇보다 극의 장르적 흐름이 복수극이 아닌 스파이극과 멜로 심지어 코미디 같은 기조로 흘러가는 건 너무 한가한 전개처럼 보인다. 본 이야기로 달려가지 못하고 자꾸 삼천포로 빠지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 근본적인 이유를 따져보면 그 50부작이라는 길이 때문이라는 걸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다. 사실 지금 같은 이야기 전개라면 굳이 <몬스터>50부의 길이로 갈 필요는 전혀 없다고 여겨진다. 강기탄으로 살아 돌아와 도도그룹에 복수하는 이야기를 지난한 인턴 과정 이야기를(그것도 지극히 비현실적인) 시시콜콜 다루면서 굳이 긴장감을 뺄 필요가 어디 있을까. 만일 20부작이나 24부작 정도였다면 과연 <몬스터>는 이렇게 한가한 삼천포 전개를 할 수 있었을까.

 

SBS <대박>이 사극임에도 불구하고 24부작인 이유는 굳이 50부작 같은 큰 흐름으로까지 갈 필요가 없는 이야기인데다, 좀 더 압축적인 이야기 전개를 보여주기 위함이기도 하다. 물론 <대박> 역시 여러 이야기의 허점들을 갖고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적어도 <몬스터>처럼 한가하지는 않다. 그것은 전적으로 드라마의 이야기가 가진 밀도에 비해 길이가 너무 긴 데서 비롯된 일이다.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풍성한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본 이야기와 관계없는 엉뚱한 이야기들이 얼기설기 붙어 있는 건 본 이야기의 기조마저 흐릿하게 만들어버릴 수 있다는 점에서 피해야 할 일이다. 결과는 이미 시청률 꼴찌가 말해주고 있다. 물론 시청률이 그 작품의 완성도를 말해주는 지표가 되지 못한 지는 오래다. 하지만 10분짜리 웹드라마가 나오는 시대에 굳이 대서사의 밀도가 없는 이야기에 50부작을 쓴다는 건 구태의연한 지상파드라마의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과거에야 50부작 같은 긴 호흡이 투자비 회수를 위해 용이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요즘처럼 완성도와 밀도를 보는 시청자들 앞에서 이런 단순한 길이 늘이기가 효과가 있을까. 자칫 잘못하면 더 큰 손실로 이어질 수도 있다

<피리부는 사나이>, 우리의 이야기 같지가 않다

 

사실 이 정도 되면 손에 땀을 쥐고 봐야 되는 게 아닐까. 하지만 이상하게도 tvN 월화드라마 <피리부는 사나이>에서는 그다지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은행강도 사건이 발생했어도, 시위현장에 한 사내가 가스통과 기름을 가득 채운 차로 돌진해도, 심지어 형사인 공지만(유승목)의 아들 정인(곽동연)이 피리부는 사나이의 전화를 받고, 지만이 그 피리부는 사나이가 보낸 아들을 찾으러 오라는 협박사진을 받았어도, 또 알고 보니 그것이 정인의 자작극이었고 또 그 뒤에는 피리부는 사나이인 척 한 성찬(신하균)이 있었다는 게 밝혀졌어도 그리 충격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피리부는 사나이(사진출처:tvN)'

도대체 왜 이럴까. 화면 상에서는 긴박하게 인물들이 움직이고 사회의 부조리가 만들어낸 분노에 가득 찬 사람들이 제 몸을 내던지며 그 부조리를 토로하고 있는데도 그다지 큰 공감대가 생겨나지 않는다. 또 그들의 이면에 피리부는 사나이가 휘파람을 불며 나타나 배후조종을 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 그다지 섬뜩하게 느껴지지 않고, 이를 막기 위해 치밀한 두뇌싸움으로 협상을 벌이는 성찬과 명하(조윤희)의 고군분투가 그리 감동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혹시 종영한 <시그널> 탓이 아닐까. 워낙 긴장감도 높았고, 또 그 간절함이 시청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었던 <시그널>이었다. 사실 무전기를 통해 과거와 현재가 연결된다는 판타지가 들어 있는 <시그널>이 이토록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고, 거기 뛰고 또 뛰는 형사들의 일거수일투족에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몰입시켰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피리부는 사나이>에는 그런 판타지 설정도 없다. 그런데 왜 이다지도 몰입이 안 되는 걸까.

 

그 첫 번째는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사건들에 대한 실감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은행강도 사건은 물론 우리에게도 종종 벌어지는 일이지만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사건의 정경은 미국 어디쯤에서 벌어질 법한 그런 장면을 보여준다. 일단 강도가 어디서 구한 것인지 총기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현실감이 떨어진다.

 

하지만 무엇보다 사회에 대한 분노를 가진 누군가를 배후조종해 폭력을 일으키는 피리부는 사나이라는 존재가 현실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점이 이 드라마에 대한 몰입감을 떨어뜨리는 가장 큰 이유다. 만화에는 어울릴 법 하지만 드라마처럼 좀 더 리얼리티를 보여줘야 하는 장르에는 어딘지 너무 만화적으로 느껴지는 캐릭터다.

 

게다가 이 드라마는 <시그널>이 그랬던 것처럼, 피해자들에 대한 정서적 공감을 위해 그들이 처한 저간의 사정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충분히 배려하지 않는다. 은행강도가 출연하지만 그가 왜 은행을 털었는지에 대한 이유는 잘 드러나지 않고 있다. 다만 뒤에 피리부는 사나이의 조종이 있었다는 것이 있을 뿐, 그 은행강도가 어떤 사회적 분노를 터트리고 있는지는 잘 알 수 없다.

 

대신 이 드라마는 협상을 통해 사건을 해결하는 성찬과 명하에 더 집중하고 있다. 협상을 통해 소통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멋진 협상팀의 모습을 보여주는 건 좋지만, 마치 그것이 그들의 능력을 자랑하고 있는 듯한 느낌 그 이상을 주지 못한다. 피해자와 희생자가 겪는 고통을 마치 내 일처럼 여기며 심지어 목숨을 거는 휴머니스트 이재한(조진웅) 같은 형사와는 너무 다른 모습이다.

 

결과적으로 이런 현실감이나 정서적 공감대 같은 것들이 잘 느껴지지 않는 <피리부는 사나이>는 우리 이야기 같지가 않다. <시그널>이 가장 잘 했던 그 부분이 빠져 있는 것. 이것이 <피리부는 사나이>가 가진 취약점이 아닐까. 그게 없어서 사건들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해도 그다지 긴장감이나 놀라움이 느껴지지 않는 게 아닐까. <피리부는 사나이>가 고민해야 할 지점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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