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과장’, 묵직한 메시지도 남궁민이 하면 발랄해지는 까닭

“22년을 이 회사를 위해서 또 내 가족을 위해서 일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나한텐 견딜 수 없는 치욕과 내 가족에 대한 미안함밖에 없습니다.” 오부장에게 대기실 발령은 왜 회사 옥상 난간 끝에 설 정도로 큰 치욕이었을까. 그건 그가 그만큼 자신이 다녔던 회사를 각별하게 생각했다는 방증이다. 그는 회사가 자신의 “인생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러니 그런 회사가 그에게 주는 치욕은 말 그대로 “삶이 무너지는 기분”을 주었을 게다. 

'김과장(사진출처:KBS)'

KBS 수목드라마 <김과장>은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회사의 일방적인 폭력을 꼬집었다. “회사가 회사지. 이 빌어먹을 회사”라고 김과장(남궁민)은 말하지만, 오부장은 그 모든 것을 회사의 잘못이 아니라 자신의 잘못으로 돌리고 있었다. “내가 잘못 살아온 겁니다. 내가 마무리를 잘 못한 겁니다.” 대기실 발령이라는 폭력이 만들어내는 건 그 치욕감 속에 스스로 자존감을 잃게 하고 심지어 자책하게 하는 일이다. 오부장이 자신이 22년 동안 다닌 회사의 옥상 난간에서 뛰어 내리려 하게 만든 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김과장이 말하듯 그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고 해도 회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아니 이미 김과장이 오기 전 그 자리를 지키다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이과장의 경우처럼, 회사는 오히려 모든 책임을 그들에게 전가한다. 심지어 회사의 비리까지 몽땅 뒤집어씌워 개인의 비리로 치부해버린다. 죽어서까지 이용당하는 셈이다. 

김과장이 안타까워한 건 바로 그렇게 회사를 탓하기보다는 자책하고 심지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들이 그 누구보다 잘 살아온 선량한 이들이라는 점 때문이다. “삥땅 쳐봤어요? 해먹어봤어요? 남의 눈탱이 치고 남의 돈 가지고 장난 쳐봤냐구. 근데 뭘 잘못 살아. 이 양반아. 잘만 살았구만. 남의 돈 다 해먹고 죄책감 하나 못 느끼는 그런 새끼들도 아주 떵떵거리면서 잘 살고 있는데 부장님이 왜 요단강 건너려고 그러는데 왜! 거기 올라가 가지고 뒈져야 될 거는 부장님이 아니라 바로 그 딴 새끼들이라고 그 딴 새끼들.... 빌어먹을 회사만 몰라 우리 부장님 최고로 잘 살아온 거. 여기 있는 우리 모두 다 아는데. 그죠?”

부끄럽지 않게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살아왔기 때문에 복도 한 편에 놓여진 빈 책상에서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방치하는 대기발령이라는 치욕을 더더욱 견디기 어려울 게다. 열심히 살아온 만큼 그 결과가 그런 취급을 받는 것이라는 배신감과 모멸감도 클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사실 김영삼 정부 시절 IMF 외환위기가 터졌을 때 구조조정이라는 칼날은 삶을 통째로 회사에 헌납한 채 살아온 가장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그로부터 어언 2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회사의 정리해고를 그리 큰 충격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만큼 일상화된 어떤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그렇다고 그 당사자들의 고통이 사라졌을까. 그렇지 않을 게다. 어떻게든 가족을 위해 모멸감을 참아가며 대기발령을 견디는 가장들의 고통이 어찌 무뎌질 수 있을까.

<김과장>은 겉으로 보면 경쾌한 블랙코미디처럼 보이지만 그 안을 뜯어보면 꽤 묵직한 메시지들이 발견된다. 기업의 회계비리라든가, 노조를 분쇄하기 위해 투입되는 폭력이라든가,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에 가까운 대기발령 에피소드 모두 우리네 기업문화의 어두운 면들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이러한 무거운 메시지들을 전하면서도 결코 그 무게에 짓눌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것이 가능해진 건 김과장이라는 캐릭터 덕분이다. 선량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순수하지도 않은 이 캐릭터는 그러면서도 사람에 대한 정이 있다. 바로 그 정 때문에 자신은 더럽혀져도 주변 사람들이 다치는 것을 그저 지나치지 못한다. 삥땅 전문인 김과장이 “삥땅 쳐봤냐”며 오부장을 설득하는 모습은 그래서 이 드라마의 독특한 위치를 잘 보여준다. 그는 회사에 뭘 그리 충성을 다하냐는 투로 말한다. 지나치게 회사에 충성하기보다는 자신을 더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자세. 의인이라고까지 불리는 김과장이 회사의 부조리에 맞서는 무거운 이야기를 전하면서도 발랄함을 잃지 않는 이유다.

‘김과장’, 남궁민만큼 주목되는 준호의 악역 연기

KBS 수목드라마 <김과장>을 이처럼 유쾌 상쾌 통쾌하게 만든 장본인은 모두가 인정하듯 연기자 남궁민이다. 심지어 그가 ‘갓궁민’이라고까지 불리게 된 데는 <김과장>이라는 블랙코미디 장르의 드라마에서 적절히 과장된 연기를 천연덕스럽게 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마치 짐 캐리가 보여주곤 했던 과장 연기를 통한 확실한 캐릭터 구축을 김과장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성공시키고 있는 듯하다. 폼 잡지 않고 지극히 소시민적인 인물이지만 ‘어쩌다 보니’ 의인이 되어가는 그 상황을 통해 때론 웃기고 때론 속 시원하게 만드는 김과장이라는 인물은 실로 남궁민이라는 연기자가 있어서 가능했다고 보인다. 

'김과장(사진출처:KBS)'

그런데 <김과장>에는 남궁민만 있는 게 아니다. 그만큼 주목되는 연기를 보여주는 인물이 있다. 바로 김과장과 대립각을 세우는 갑질 상사 서율 역할을 연기하고 있는 준호다. 우리에게 2PM으로 더 잘 알려져 있고, 드라마보다는 간간히 출연하곤 했던 예능 프로그램으로 더 이미지가 알려진 그지만 <김과장>에서는 서율이라는 강렬한 안하무인격 악역을 통해 그런 이미지들을 완전히 지워내고 있다. 도대체 <김과장>의 무엇이 준호의 이런 숨겨진 연기를 깨운 걸까. 

물론 <김과장> 이전에 우리는 tvN 드라마 <기억>에서 주인공을 돕는 어소시엣 변호사 정진을 연기하던 준호를 기억한다. 거기서도 준호는 꽤 괜찮은 새내기 변호사의 면면을 보여준 바 있지만 연기 도전이 일천한 신인으로서 인상적인 모습을 그려내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그저 준호 하면 본래 떠오르던 바른 청년의 이미지 그것을 연기로 반복해 보여주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던 것. 

하지만 <김과장>에서는 처음 그의 등장 자체가 어딘가 불편하게 느껴질 정도로 강렬한 악역을 그려내고 있다. 어찌 보면 이것은 배역에 딱 걸맞는 캐스팅의 성공처럼 보인다. 즉 <김과장>에서 그의 악역으로서의 존재감이 처음부터 살아난 건 어린 나이에도 ‘반말’하는 상사라는 그 캐릭터와 준호라는 인물이 잘 어우러졌기 때문이다. 서율이 김과장에게 혹은 회사 내 라이벌인 조민영 상무(서정연)에게 반말을 넘어 욕지거리까지를 하는 장면은 실제로도 한참 나이가 어린 준호가 남궁민이나 서정연 같은 연기 대선배에게 안하무인격으로 대하는 것 같은 불편함을 만들어냈다. 자연스럽게 준호의 악역 연기는 이 반말 하나만으로도 힘이 실리게 되었다. 

물론 이 모든 게 배역과 캐스팅의 기막힌 조화만으로 가능했다 말하긴 어렵다. 그걸 연기해내는 준호라는 신인이 기꺼이 자신의 이미지를 망가뜨려 재수 없는 악역으로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을 이끌어내려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해진 일이다. 처음에는 그 준호라는 실제 인물과 배역이 만들어내는 안하무인의 행동이 악역으로서의 기묘한 시너지를 만들어냈지만, 그 후로는 준호 역시 그 서율이라는 악역에 제대로 빙의된 듯 폭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악역만큼 연기자로서의 새로운 면을 끄집어낼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 준호에게 이번 <김과장>의 서율이라는 역할은 그래서 그가 앞으로 걸어갈 연기자의 길에 있어서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2PM의 준호가 아니라, 또 예능프로그램에서 봐왔던 바른 청년 이미지를 가진 준호가 아니라 연기자 준호의 모습을 깨워준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화랑’과 ‘미씽나인’, 어째서 소외됐을까

지상파 방송3사의 드라마 경쟁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애초에 기대작이었던 작품은 의외의 실망감을 주고,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작품은 갑자기 주목받는다. 어째서 이런 배반과 반전이 생겨난 걸까. 

'화랑(사진출처:KBS)'

월화드라마는 애초에 KBS <화랑>이 확실한 주도권을 가질 것처럼 여겨진 바 있다. 100% 사전 제작되어 중국 한류를 넘보는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신라시대의 화랑들을 미소년들이나 아이돌처럼 해석하기도 하고, 당대의 골품제도를 현재의 금수저 흙수저라는 청춘들의 현실로 그려낸 것도 기대를 자아내게 한 대목이었다. 

하지만 이런 기대와 달리 시청자들의 반응은 갈수록 미지근해지고 있다. 애초에 하려던 이야기가 자꾸만 멜로 쪽으로 기울고 무엇보다 드라마 전체를 꿰뚫는 간절한 이야기의 극적 구성이 잘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화랑>이 주춤하는 동안 SBS 월화드라마 <피고인>이 펄펄 날아 시청률 수위를 차지해버렸다. 

여기에 같은 시간대 새로 시작한 MBC <역적>이 호평을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화랑>에 대한 화제성은 더욱 줄어들었다. <피고인>과 <역적>의 대결처럼 보이는 월화드라마의 구도 속에서 <화랑>은 소외되는 양상을 보이게 된 것. 

이런 흐름은 수목드라마 경쟁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애초에는 SBS <사임당, 빛의 일기>의 독주일 것으로 예상했지만 의외로 KBS <김과장>이 시청률을 앞지르는 놀라운 반전을 기록했다. 물론 <사임당>이 계속 이 흐름에 끌려갈지는 알 수 없다. 향후에도 <김과장>과 <사임당>의 대결구도가 계속 이어질 거라는 전망이 많다.

이렇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MBC <미씽나인>에 대한 관심이 사라져가고 있다. 애초에 MBC는 <미씽나인>이라는 본격 생존 장르물에 거는 기대가 남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네 드라마로서는 새로운 장르의 시도로서 그 자체로도 어떤 가치가 있다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인도 생존기라는 낯선 이야기가 마니아적인 느낌을 주는 건 어쩔 수 없는 한계로 지목되었다. 여기에 <사임당>과 <김과장>의 대결구도라는 악재까지 끼어들게 된 것이다. 

요즘은 드라마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이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바뀌는 걸 발견하곤 한다. 과거에는 드라마가 첫 회에 어느 정도 시청률을 내면 그 흐름이 유지되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래서 첫 회에 모든 걸 쏟아 붓는 경향까지 만들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제 아무리 재밌고 기대를 하게 했던 작품도 몇 회가 지나 기대에 못 미친다는 것이 확인되면 가차 없이 채널이 돌아간다. 

유명 배우가 캐스팅 됐건, 엄청난 제작비를 투여했건 아무런 상관이 없다. 결국 관건이 되는 건 작품이 얼마나 재미있고 의미 있는가 하는 점이다. <사임당>을 이긴 <김과장>이나 <화랑>을 눌러버린 <피고인>이나 <역적>을 보면 확실히 지금의 시청자들의 드라마를 보는 방식이 과거와는 달라졌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그만큼 보는 눈이 높아져 있다는 것. 

안타깝게도 <화랑>과 <미씽나인>은 애초의 기대와는 달리 타 방송사들의 대결구도 속에서 소외되는 양상을 보이게 됐다. 하지만 이 또한 끝이 아니라는 건 지금의 시청자들의 조변석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언제든 긴장감 있는 이야기를 끌어 오기만 한다면 반전은 가능하다. 물론 한 번 꺾인 흐름을 되돌리기 위해서는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할 테지만.

‘김과장’, 입소문이 갈수록 커지는 건 우연이 아니다

“나? 김과장!” KBS 수목드라마 <김과장>에서 김성룡(남궁민)에게 당신이 누구냐고 묻는 장면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곤 한다. 사실 과장이라는 직급이 회사 내에서 그리 높은 건 아닐 게다. 이 드라마 속 TQ그룹에서는 회장에 사장, 상무, 이사들은 물론이고 회장 아들까지 그 갑질이 일상이니 말이다. 그런데 김과장은 뭐가 그리 폼이 나는지 당당하게 자신을 그렇게 내세우곤 한다.

'김과장(사진출처:KBS)'

김과장이 일하는 경리부서는 TQ그룹에서도 을 중의 을인 부서다. 연말정산 시기가 되면 별의 별 문의가 다 이 부서로 들어와 전화기에 불이 난다. 게다가 TQ그룹 박현도 회장(박영규) 아들인 박명석(동하) 본부장은 사적으로 쓴 비용까지 처리를 해주지 않는다고 경리부에서 행패를 부리기 일쑤다. 심지어 김과장이 들어오게 된 경리과장 자리는 억울하게 모든 문제를 떠안은 채 자살한 이과장의 자리다. 

그래서 경리부서로 온 김과장에게 경리부장인 추남호(김원해)가 제일 먼저 알려주는 건 일이 아니라 회사 조직도다. 누구에게는 경비 처리하는데 있어서 토를 달지 말아야 하고 누구에게는 적당히 쪼아도 된다는 걸 알려주는 것. 결국 이 회사는 정상적으로 경영되는 회사가 아니다. 제 멋대로 경비가 처리되고 있고 그것은 직급이나 회장 아들 같은 관계의 권력이 좌우한다. 그런 부조리와 비리를 못 참겠다면? 경리부장은 “힘들면 관둬야지 뭐”라는 한 마디로 이 상황을 정리해준다. 

부조리하게 운영되는 회사. 갑질이 횡행하는 곳. 하지만 거기에 반기를 들면 돌아오는 건 반성문을 쓰거나 대기발령이 나거나 심지어 회사에서 잘리는 일이다. 모두 이 시스템 속에서 힘들어도 참아가며 버텨낸다. 자신들의 잘못이 아니라 애초에 자료가 잘못 넘어왔어도 그걸 창의적으로(?) 메워 넣지 못하면 회사의 갑들에게 한 바탕 지청구를 듣는다. 

물론 그 속에도 부조리에 나름 저항하는 윤하경(남상미) 같은 인물이 있지만 그녀 역시 대놓고 뭐라 하지는 못한다. 괜스레 전화통화로 외부업체에게 화를 내는 척하는 정도가 그녀의 저항이다. 그래서 이 회사에 다니는 이들은 대부분 즐거운 표정이 아니다. 하루하루를 버텨내며 사는 것이니 즐거울 일이 없다. 

그런데 김과장은 다르다. 그는 “나 김과장”이라고 당당히 자신을 얘기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뭐가 좋은지 늘 빙긋빙긋 웃고 있고 다들 바쁘게 출근하는 그 길에서도 여유만만인 모습이다. 그가 이렇게 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건 그의 회사를 다니는 목적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는 이 TQ그룹이라는 회사에 목매고 있지 않다. 애초 목적은 ‘삥땅’이었고, 그 목적이 새로운 재무이사 서율(준호)에게 들키게 되자 선선히 회사를 떠나고 싶어한다. 

그래서 회사에서 잘리고 싶어 그는 그 누구도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한다. 회장 아들이라고 툭하면 내려와 부장의 조인트를 까는 박명석 본부장을 대놓고 혼내준다. 그것이 가장 자연스럽게 잘릴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김과장의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통쾌함을 안겨준다. 그건 그가 진정으로 ‘의인’이기 때문이 아니다. 모두가 굴종하는 그 부조리한 시스템 속에서 그가 보여주는 자유로움 때문이다. 그는 시스템 밖에서 시스템을 조롱한다. 

김과장이 보여주는 이러한 통쾌한 면면들은 그저 한 회사를 배경으로 하는 코미디 설정으로 치부하기엔 그 함의하는 면들이 예사롭지 않다. TQ그룹은 어찌 보면 최근 들어 탄핵 정국과 함께 불거져 나온 기업들의 면면들을 표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필요하면 청와대와도 줄을 대고 불법을 저지르지만 권력의 힘은 그들을 처벌하지 않는다. 그러니 그 기업에서 일하는 선량한 샐러리맨들은 어떨까. 부조리한 시스템 속에서도 힘들면 본인이 관둬야 한다는 패배의식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낼 수밖에 없다. 더러워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참을 수밖에 없는 삶.

이것은 좀 더 확장해서 보면 우리 사회의 면면 그대로이기도 하다. 심지어 ‘헬조선’이라 불리는 부조리함을 곳곳에서 목격하게 되는 사회지만 어쩌랴 살기 위해 버텨낼 수밖에 없으니. 김과장의 돌출은 이처럼 수직 계열화되어 있는 부조리한 시스템 바깥에 서있기 때문에 “자른다”는 엄포에도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조소를 날리는 모습을 통해 통쾌함을 선사한다. 이 사회에서 그 누구도 하지 못했던 행보를 보이는 것. 

그런데 그 행보는 김과장의 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TQ그룹 같은 회사가 자신을 챙겨줄 것이라는 믿음 자체가 없다. 그의 아버지가 성실하게 정직하게 살았지만 돌아온 건 해고였다는 걸 어린 시절부터 목격하며 자라온 그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김과장은 회사는 포기했어도 사람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쁜 놈들에게 때때로 피가 끓는다. 시스템 바깥에서 조소를 날리던 그가 어쩌다 보니 ‘의인’이 되고 또 어쩌다 보니 그 시스템과 맞서게 되는 그 과정을 그리게 되는 건 바로 그가 모든 걸 포기했어도 여전히 남아있는 사람에 대한 희망 때문이다. 

<김과장>의 입소문이 갈수록 커지고 그 반응 역시 폭발적인 건 그저 우연이 아니다. 그저 가볍게만 보였던 이 코미디는 의외로 현재의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건드리고 있고, 그 부조리를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참아가며 버텨내는 샐러리맨들의 답답한 속을 잠시나마 시원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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