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자 귀신아>, 인물의 매력 없이 이야기는 의미 없다

 

tvN <싸우자 귀신아>는 어째서 갈수록 힘이 빠질까. 이야기의 흥미로움이 없는 건 아니다. 귀신 보는 남자와 귀신의 썸이란 설정 또한 독특하다. 게다가 매 회 귀신과 육박전을 방불케 하는 액션도 볼거리다. 귀신 보는 남자와 귀신이 짝을 이뤄 귀신을 물리치고, 둘 사이에 밀고 당기는 청춘 멜로도 있으며, 또 귀신보다 더 소름끼치는 인물의 미스테리하고 공포스러운 행적이 깔려 있어 그와의 일전 또한 기대되지 않는 건 아니다. 그런데 <싸우자 귀신아>는 이상하게도 끌리지는 않는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걸까.

 

'싸우자 귀신아(사진출처:tvN)'

첫 회 시청률 4.055%(닐슨 코리아)로 시작하며 잔뜩 기대감을 줬던 <싸우자 귀신아>는 지금 3.4%로 떨어졌다. 물론 시청률이 모든 걸 말해주는 건 아니지만 <싸우자 귀신아>의 경우 시청자들이 보지 않고는 못 배기는 그런 요소들이 그다지 잘 보이지 않는다. 전작이었던 <또 오해영>을 떠올려 보라. 평이해 보이는 로맨틱 코미디처럼 보였지만 미래를 내다보는 남자 주인공의 설정 때문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다음 회를 꼭 챙겨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싸우자 귀신아>는 그 흐름이 너무 평이하다. 즉 매회 귀신이 출몰하고 퇴마를 하며 두 사람의 밀당이 반복된다. 박봉팔(옥택연)이 대학 선배인 임서연(백서이)을 짝사랑하고, 그런 박봉팔을 귀신 김현지(박소현)가 따라다니며 질투하며 그들 사이에 어딘지 살벌한 분위기를 풍기는 주혜성(권율)이 끼어 있는 멜로 구도는 그것이 귀신이 엮여있다는 점에서 참신하게 해석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멜로 구도 역시 평이하고 새로운 느낌을 주지 못한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캐릭터다. 이상하게도 박봉팔이나 김현지에게서 그다지 매력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박봉팔이란 인물은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인물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딘지 좀스러워서 웃음을 유발시키는 인물도 아니다. 그렇다고 대단한 아픔이 느껴지는 캐릭터도 아니고 타인의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캐릭터는 더더욱 아니다. 그저 귀신을 보고 귀신을 물리칠 수 있다는 것이 그가 가진 캐릭터의 특징 전부인 것처럼 보인다. 이래서는 시청자들의 눈을 잡아 끌 수가 없다.

 

김현지 역시 마찬가지다. 상큼 발랄한 귀신이라는 캐릭터 설정은 좋지만 그것이 시청자들을 매료시킬 만큼 끌림을 만들어내지는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여성 캐릭터로서 동 세대의 여성시청자들이 공감할만한 요소들이 그리 많이 느껴지지 않는다. 귀신이니 취업 걱정을 하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와 열정적인 사랑에 빠져드는 그런 캐릭터도 아니다.

 

오히려 <싸우자 귀신아>에서 살아있는 캐릭터는 감초 역할을 하고 있는 어설픈 미스테리 동아리 회장 최천상(강기영)과 부회장인 김인랑(이다윗)이다. 이 두 사람은 선배지만 박봉팔 앞에서는 마치 후배처럼 소심해지고, 귀신을 추적하지만 막상 귀신 앞에서는 오금을 저리며, 어딘지 불쌍하지만 그래서 웃음이 나는 감초 콤비로 드라마에 톡톡한 매력을 부가하고 있다.

 

이것은 캐릭터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연기의 문제이기도 하다. 옥택연이나 김소현은 무난하게 연기를 해내며 성장하는 연기자들인 건 맞지만 아직 둘 다 주연으로서 드라마 전체를 이끌어가기에는 어딘지 부족해 보인다. 주인공은 어쨌든 드라마의 끌림을 만들어내는 매력을 그 캐릭터의 면면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어필해야 하는 위치다. 하지만 옥택연과 김소현의 연기는 그만한 힘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물론 가장 큰 건 캐릭터 문제다. 많은 이들이 드라마는 스토리라고 생각하지만 그 스토리보다 더 중요한 건 캐릭터의 매력이다. 스토리가 참신하지 못하다고 해도 캐릭터가 참신하면 시청자들은 그 캐릭터에 빠져들 수 있다. 하지만 스토리가 아무리 기상천외해도 캐릭터가 참신하지 못하면 드라마가 힘을 받을 수가 없다. <싸우자 귀신아>가 처한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이 캐릭터의 매력 부족에서 비롯되고 있다

<싸우자 귀신아>, 멜로-공포-액션에서 길을 잃다

 

tvN 월화드라마 <싸우자 귀신아>는 도대체 장르의 정체가 뭘까. 귀신과 인간 사이의 멜로? 공포? 퇴마 액션? 그것도 아니면 코미디? 물론 요즘처럼 장르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이른바 복합장르의 시대에 이런 질문은 그다지 의미가 없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멜로와 공포와 액션 그리고 코미디가 엮어지는 복합장르라면 그 모든 장르적 요소들이 살아나야 성공적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싸우자 귀신아>는 그런 복합적인 장르들을 성공적으로 결합시키고 있을까.

 

'싸우자 귀신아(사진출처:tvN)'

이질적인 요소들로 보여도 공포는 멜로와도 또 코미디나 액션과도 잘 어울리는 장르다. <스위니 토드> 같은 작품은 대표적이다. 공포가 주는 긴장감은 남녀 주인공 사이의 사랑이야기를 더 절절하고 쫄깃하게 만들어주기도 하고, 때론 <무한도전> 귀곡성 특집이 보여주듯 공포에 절절 매는 모습만으로 폭소를 유발해내기도 한다. 물론 <퇴마록> 이후 많은 퇴마 이야기들이 그러하듯이 액션과도 잘 어울린다.

 

하지만 <싸우자 귀신아>는 어딘지 이야기가 겉도는 느낌이다. 박봉팔(옥택연)과 김현지(김소현)의 멜로는 그리 강렬하지 않고, 또한 둘 사이에서 이뤄지는 코미디적 요소도 그리 강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대신 CG를 통한 공포와 액션에 상당히 공을 들인 면이 잇는데 이렇게 드라마적인 요소 없이 강화된 공포와 액션이란 사실 볼거리에 치중되기 마련이다. 결국 남녀 주인공 간의 케미가 확실히 살아나지 않는 <싸우자 귀신아>는 눈요기는 돼도 감정이입은 잘 되지 않는다.

 

이렇게 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옥택연이 연기하고 있는 박봉팔이라는 캐릭터다. 웹툰이 그리고 있는 박봉팔은 드라마와는 달리 찌질함과 외로움 같은 요소들을 갖고 있는 캐릭터다. 그래서 어딘지 귀신 소녀 김현지 앞에서 조금은 어눌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 점은 공포와 멜로, 코미디에서 모두 괜찮은 느낌을 만들어낸다. 즉 그 찌질함과 외로움이 하나의 장애요소가 되어 상황과 관계들을 더 흥미롭게 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라마 속 박봉팔은 이미 퇴마 능력을 갖춘 근육질의 잘 생긴 남자다. 사실 귀신과 싸우거나 남녀 간의 멜로에 있어서 그다지 어려움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첫 회 박봉팔과 귀신 소녀 김현지가 만나는 장면은 그래서 별다른 긴장감을 주지 못했고 대신 무협을 보는 듯한 액션이 그 빈 자리를 채웠다. 악플에 상처받아 자살한 원귀와 싸우는 대목에서도 박봉팔은 귀신과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대단한 완력을 보여준다.

 

아무래도 캐릭터와 그 심적 상황이 만들어내는 멜로와 코미디에서 확실한 재미를 만들어내지 못하자 <싸우자 귀신아>는 공포 액션물처럼 보여지는 면이 있다. 이것은 많은 시청자들이 <싸우자 귀신아>에서 보기 원하는 부분이 아닐 것이다. 전작이었던 <또 오해영>이 거둔 성과를 생각한다면, 그 차기작으로서 그 편성시간대에 시청자들이 원하는 건 로맨틱 코미디가 아니었을까.

 

첫 회 시청률이 4.055%(닐슨 코리아)나 나왔다는 건 여러 모로 <또 오해영>이 만들어낸 tvN 월화드라마에 대한 기대감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불안했던 시청률은 3회 만에 3%대로 떨어진 것은 기대만큼을 채워주지 못했다는 반증이다. 볼거리가 아니라 좀 더 심리적인 요소들을 살려내야 한다. 그래야 <싸우자 귀신아>의 원작 웹툰 팬들도 또 <또 오해영>으로 tvN 월화드라마를 기대하는 팬들도 다시 끌어 모을 수 있다.

일주일 내내, 드라마는 콩 볶는 중

 

월화드라마 대전에서 SBS <닥터스>KBS <뷰티풀 마인드>의 성패를 가른 건 무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로 지목되는 건 바로 멜로다. 공교롭게도 같은 의학드라마 장르지만 <닥터스>는 멜로가 있고 <뷰티풀 마인드>는 멜로가 없다. 그것도 <닥터스>의 멜로는 손발이 오글거릴 정도로 대사나 행동들이 적극적이다.

 

'닥터스(사진출처:SBS)'

<닥터스>에서 수술은 그 보조자를 누구로 하느냐 마저 멜로적인 구도로 그려진다. 혜정(박신혜)이 홍지홍(김래원)의 수술에 보조로 들어가기로 하자 서우(이성경)는 질투를 하며 자신도 들어가겠다고 요구한다. 또 혜정에게 마음을 조금씩 빼앗기고 있는 정윤도(윤균상)는 아예 대놓고 혜정에게 자신의 수술에 들어오라고 요구하며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다.

 

이처럼 <닥터스>에서는 대부분의 사건과 상황들이 멜로로 귀결된다. 부모의 정을 받지 못하고 살아와 홀로 서려하고 누군가에게 기대지 못하는 혜정이 성장해가는 과정은 다름 아닌 홍지홍과의 멜로를 통해서다. 또한 그녀가 의사라는 전문가로서 성장하는 과정 역시 홍지홍, 정윤도, 서우와 엮어지는 멜로적 관계와 무관하지 않다. 향후 아마도 이어질 현성병원의 후계 구도를 두고 벌어지는 쟁탈전 역시 어떤 식으로든 혜정과 홍지홍의 멜로를 강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보면 <닥터스>의 성공은 의학드라마의 전문성도 물론 깔려 있지만 다름 아닌 멜로드라마의 달달함 덕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KBS <태양의 후예>가 지상파의 시청률 기록을 세울 수 있었던 원동력도 결과적으로 보면 멜로다. 유시진(송중기)과 강모연(송혜교) 그리고 서대영(진구)과 윤명주(김지원)가 전쟁, 재난 상황 속에서 그려낸 멜로의 힘은 모든 이슈를 빨아들일 만큼 강력했다. <태양의 후예>가 끝나고 난항을 겪던 수목드라마에 다시 두 자릿 수 시청률을 만들며 화제를 모으고 있는 KBS <함부로 애틋하게> 역시 그 힘은 멜로에서 나온다. 이 드라마는 중국에서 최단기간 4천만뷰를 넘어서며 벌써부터 <태양의 후예>의 뒤를 이을 작품으로까지 지목되고 있다.

 

그토록 주말극에 힘을 실으려 노력했던 SBS가 그나마 성과를 가져온 작품은 <미녀 공심이>. 가족드라마도 복수극, 장르물도 아닌, 어찌 보면 평이해 보이기까지 한 멜로드라마가 이토록 강력한 힘을 발휘할지 누가 알았으랴. 안단태(남궁민)와 공심이(민아)의 알콩달콩한 사랑이야기에 시청자들은 일주일의 피로를 녹이는 중이다.

 

tvN이 월화드라마라는 새로운 편성시간대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도 멜로의 힘이다. <치즈 인 더 트랩>으로 그 가능성을 확인한 tvN 월화드라마는 <또 오해영>으로 엄청난 성과를 가져왔다. 시청률은 물론이고 화제성도 단연 높았던 <또 오해영>은 확실하게 tvN 월화드라마 브랜드를 구축해냈다. 이어진 <싸우자 귀신아>가 첫 회에 4%를 넘기는 좋은 성적을 거둔 건 이제 믿고 보는 tvN 드라마에 대한 시청자들의 신뢰가 생겼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싸우자 귀신아> 역시 외피는 공포물에 코믹을 섞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달달한 멜로라는 점이다. 귀신을 보는 능력을 가진 박봉팔(옥택연)이 기억을 잃어버린 귀신 김현지(김소현)와 가까워지는 이야기. 박봉팔과 엎치락뒤치락하다 입을 맞추게 되면서 과거의 기억을 살짝 떠올리게 된 김현지는 그 기억을 되살린다는 이유로 그와 다시 입을 맞추려 한다. 코믹 공포물이 멜로로 귀결되어 가는 증거다.

 

이제 의사가 나와도 귀신을 만나도 그 귀결은 멜로다. 사실 과거 같으면 기승전멜로라는 수식은 비판적인 의미가 더 강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그렇지 않다. 과거 기승전멜로드라마가 비판받았던 건 멜로로 귀결돼서가 아니라 그 과정들인 기승전이 너무 디테일과 전문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멜로 하는 드라마가 문제가 아니라 그 병원의 의사들이 보여주는 디테일한 상황들이 문제였다는 것. 하지만 <닥터스> 같은 드라마가 보여주듯 요즘은 멜로로 귀결된다 해도 그 안에 병원의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다.

 

물론 모든 드라마가 멜로로 귀결되는 것이 드라마 다양성의 차원에서 긍정적이라고만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이처럼 멜로에 집중되고 그것이 계속해서 대중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는 건 그것이 가진 사회적 의미를 들여다보게 만든다. 도대체 무엇이 이러한 멜로 중독을 만들고 있는 걸까.

 

지금의 시청자들이 조금치의 무거움이나 답답함을 견디지 못한다는 건 이미 여러 드라마들의 성패를 통해 확인된 바 있다. 이제 드라마는 더 이상 작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대중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위로해주고 때로는 답답한 현실을 잊게 해주는 기능을 가진 어떤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니 보다 직접적인 즐거움을 원하게 되는 것이고, 여성 시청자들이라면 단연 멜로가 주는 달달함을 원하게 되는 것.

 

이것은 거의 멜로 중독에 가깝다. 직장인들이 하루의 피곤을 맥주 한 잔으로 털어버리듯, 이제 하루를 살아낸 시청자들은 멜로 한 편으로 잠시 현실을 벗어난 판타지의 세계로 빠져들고 있다. 그런데 그 중독의 대상이 하필이면 멜로라는 점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결국 사람냄새가 나는 장르의 총아가 바로 멜로가 아닌가. 지금의 대중들이 어디에 갈급하고 있는가가 이 멜로 중독이라는 증상에 고스란히 투영되어 나타나고 있다.

여진구, 김소현, 박유천, 유승호 그리고 윤은혜까지

 

좋은 작품은 좋은 캐릭터를 만들고, 좋은 캐릭터는 좋은 연기자를 발견한다. <보고싶다>는 딱 그런 작품이다. 주역으로서의 아역(여진구, 김소현)에서부터 성인역(박유천, 유승호, 윤은혜)까지, 그리고 조역이지만 든든한 기둥을 세워주는 중견(송옥숙, 한진희, 전광렬, 김미경)까지 <보고싶다>는 말 그대로 연기 보는 맛이 나는 작품이다.

 

'보고싶다'(사진출처:MBC)

<해를 품은 달>을 통해 시청자들을 품은 여진구는 <보고싶다>에 와서 더 단단해진 연기의 무게감을 보여주었다. 누가 그를 보고 아역이라고 하겠는가. 김소현과 함께 보여준 풋풋한 멜로 연기는 물론 <해를 품은 달>에서부터 정평이 나 있었던 것이지만, 그녀를 홀로 버려두고 도망친 후 죄책감과 그리움이 뒤엉켜 울부짖는 모습은 여진구만의 아우라를 만들기에 충분했다. 아이지만 아이 같지 않은 감성 연기는 앞으로 그가 하는 작품에 여진구 프리미엄을 만들 것으로 보인다.

 

여진구와 함께 절절한 멜로 연기를 보여준 김소현도 마찬가지다. 아역으로서 성인들의 감성까지 울리는 여자배우로 여진구가 <해를 품은 달>에서 함께 연기한 김유정이 거의 유일하다 여겼다면 이제 김소현도 그 자리 하나를 차지한 셈이다. 하지만 김유정과는 달리 더 갸냘픈 그녀만의 선은 보는 이들의 보호본능을 자극한다. 이건 김소현이라는 준비된 아역(사실 아역이란 표현이 어설프다)과 함께 여진구라는 든든한 상대역이 서로 시너지를 만든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보통 이런 정도의 아역들의 존재감은 그 바톤을 이어받는 연기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들어버리기 일쑤다. 하지만 여진구와 김소현의 바톤을 이어받은 박유천과 윤은혜는 놀랍게도 그 감성을 더 깊게 만들면서 아무런 이물감조차 느끼지 못하게 만들어버린다. 무려 14년을 미친놈처럼 잃어버린 그녀를 찾아온 그 절절한 그리움은 박유천이라는 몰입 좋은 배우의 깊은 눈빛으로 되살아났고, 상처를 지우려 과거를 지워버렸지만 다시 나타난 그로 인해 옛사랑 앞에 흔들리는 그녀는 윤은혜의 눈물 연기 속에서 절절해졌다.

 

그 둘 사이에 서 있는 해리이자 강형준(유승호)은 분열된 두 개의 자아를 가진 인물이다. 그에게 과거는 지워야할 상처이면서 동시에 복수해야할 대상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수연(윤은혜) 앞에서는 한없이 부드럽다가도 돌아서면 차가운 복수와 욕망에 시달리는 양면성을 가진 캐릭터다. 류승호에게 이런 캐릭터는 이중의 어려움을 만들어낸다. 즉 유승호가 가진 너무 앳된 동안은 진중한 성인역과 부딪칠 수밖에 없다. 그 위에서 그는 이중성격의 소유자를 연기해야 한다.

 

하지만 바로 이 어려움이 유승호에게서 아역의 딱지를 떼어내주는 역할을 해주고 있다. 이수연을 소유하려는 욕망과 어머니에 대한 복수를 하려는 그 욕망은 서서히 어린아이처럼 웃는 유승호의 이면에 놓여진 섬뜩함을 기대하게 만든다. 아마도 앞으로 유승호가 걸어갈 연기세계에서 <보고싶다>는 그에게 대단히 중요했던 전기를 제공한 작품으로 기억될 것이다.

 

물론 이 젊은 배우들이 마음껏 감정의 폭발을 할 수 있는 든든한 바탕을 만들어주는 중견들을 빼놓을 수 없다. 거칠지만 대단히 인간적인 엄마상을 그려내고 있는 송옥숙은 아마도 이 드라마의 반 정도의 지분을 갖고 있는 연기자일 것이다. 그가 있어서 맘껏 울 수 있고 어리광부릴 수 있는 박유천과 윤은혜의 공간이 만들어졌다. 한진희는 이 드라마의 동력을 만들어내는 악역이고, 전광렬은 이 어른과 아이들의 대결구도 속에서 어른이면서 아이의 마음을 가지려 했던 어찌 보면 드라마의 주제와 맞닿는 캐릭터를 보여준 연기자다. 물론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 피해자 어머니 역할의 김미경도 빼놓을 수 없다.

 

<보고싶다>는 바로 이 든든한 중견의 바탕 위에서 젊은 연기자들을 재발견해준 드라마다. 아마도 훗날 제 각각의 연기 영역을 펼쳐나갈 이들은 어쩌면 <보고싶다>를 떠올리게 될 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연기 가능성을 최대치로 뽑아내준 이 작품은 그래서 그들의 성장과 함께 훗날 자꾸 더 보고 싶어질 지도 모를 일이다. 다시 말하지만 좋은 연기자는 좋은 작품을 통해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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