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문화 속에 담긴 현실을 모색하는 곳 더키앙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4788)
블로거의 시선 (96)
네모난 세상 (4577)
SPECIEL (19)
문화 코드 (1)
생활의 발견 (23)
술술 풀리는 이야기 (4)
스토리로 떠나는 여행 (10)
책으로 세상보기 (8)
문화 깊게 읽기 (4)
스토리스토리 (24)
사진 한 장의 이야기 (4)
드라마틱한 삶을 꿈꾸다 (7)
대중문화와 마케팅 (9)
Total13,245,289
Today247
Yesterday389

예술혼과 진심이 느껴지는 나홍진 감독의 집념

 

나홍진 감독의 영화 <곡성>500만 관객을 넘어섰다. 그리고 이 수치는 여기서 머물 것 같지 않다. 영화의 특성 상 재관람이 이어지고 있고, 칸느에서의 호평 덕분에 영화에 대한 관심 또한 높아졌기 때문이다.

 

사진출처: 영화 <곡성>

하지만 뒤돌아서 생각해보면 <곡성>처럼 쉽지도 않고 또 보기 편하지도 않은 영화가 500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도대체 무엇이 관객들의 발길을 <곡성>으로 향하게 했던 걸까.

 

그 첫 번째는 절대로 현혹되지 말라는 포스터 문구가 역설적으로 보여준 이 영화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영화가 개봉되기 전부터 나홍진 감독의 신작이라는 데 대중적 관심은 분명 있었고, 시사회를 통해 드러난 평들은 이 작품이 문제작이라는 것에 모두가 공감하게 만들었다.

 

나홍진 감독은 영화 홍보를 위한 인터뷰를 통해 <곡성>에 대한 여러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이야기를 꺼냈고, 그것은 이 영화의 훌륭한 미끼가 되어주었다. 대중들의 궁금증은 점점 커져갔고 영화를 보고 나서도 여전히 남는 궁금증 때문에 분분한 의견들과 해석이 오히려 더 큰 궁금증을 만들었다. 미끼가 또 다른 미끼로 탄생할 수 있었던 것.

 

하지만 이런 미끼를 던졌다고 해도 영화가 나름의 진정성을 갖지 못했다면 관객의 심기는 상당히 불편해졌을 것이다. <곡성>은 그러나 단지 관객들을 미궁 속에 빠뜨려 허우적대는 걸 즐기는 그런 영화가 아니었다. 나홍진 감독은 스스로도 말하듯 우리네 인간 인식의 한계를 집요하게 탐구하는 모습을 영화를 통해 느끼게 해주었다.

 

그것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대목은 주인공인 종구(곽도원)에게서 느껴지는 연민의 감정이다. 처음에는 시골 동네에 있는 겁 많은 경찰로 바로 옆집 아저씨 같은 친근함으로 다가오지만 마지막에는 자신의 어쩔 수 없는 선택에 의해 가족의 비극을 야기하게 되는 그런 인물이다.

 

이 정도의 피가 튀기고 사람이 죽어나가는 이야기 속에서 인물에 대한 연민과 애정을 느끼게 되는 건 그만큼 나홍진 감독이 영화에 기울인 진심이 깊다는 이야기다. 나홍진 감독은 그래서 <곡성>을 통해 인간 존재와 구원 혹은 그 한계에 대한 진심어린 질문을 던졌고, 그것이 관객들에게도 느껴졌다는 것이다.

 

종교를 통한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는 건 자칫 잘못하면 먹물들의 자의식 강한 영화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나홍진 감독의 <곡성>은 그렇지 않았다. 쉽게 현혹되고 흔들리는 인간 존재를 그리면서도 그들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있었기 때문에 관객들도 기꺼이 이 미궁 속에서 종구라는 인물의 혼돈에 빙의될 수 있었다.

 

결국 예술혼이란 작가의 진심이 얼마만큼 담기느냐에 따라 달리 보일 수 있다. <곡성>은 어려운 문제지만 에둘러 가지 않고 정면으로 직시하며 앞으로 걸어 나간 감독의 흔적을 느끼게 해주었다. 영화가 끝나고 남는 미진함이 허탈감이 아니라 감독이 끝까지 던진 질문으로 여겨지게 된 건 3시간 가까이 보여준 영화의 집념 덕분이다. 500만 관객은 그것이 통했다는 걸 말해준다

Posted by 더키앙

관객에게 빙의체험을 하게 하는 <곡성>

 

나홍진 감독의 <곡성>은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뉘는 영화다. 어떤 이들은 이 영화의 엄청난 에너지에 놀라고 기독교적 세계관을 뒤집어놓은 도발적인 구상에 혀를 내두른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영화가 일종의 미끼를 던져놓고 관객을 끝까지 이리저리 끌고 다닌다며 불편해 한다.

 

사진출처:영화<곡성>

영화 평론가나 기자 같은 전문가들은 <곡성>에 대해 대체로 호의적이다. 이것은 해외에서 특히 더 두드러진다. 칸 영화제에서 시사회가 끝난 후 전 세계 언론과 평단은 <곡성>에 대한 찬사를 서둘러 쏟아냈다. ‘올해의 영화’, ‘칸 영화제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걸작’, ‘왜 경쟁부문에 안 올라왔는지 모르겠다’, ‘악마에 홀린 듯 대단한 걸작’, ‘넋이 나갈 만큼 좋다’, ‘최근 한국영화 중 최고등등 찬사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해외의 반응이 이처럼 뜨거운 건 이 영화가 지금껏 해왔던 그 어떤 영화들보다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저 작은 마을에 벌어지는 이상한 사건들과 죽어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그 안에는 스릴러적인 요소는 물론이고 무당과 귀신이 등장하는 오컬트적 요소, 나아가 악마와 좀비까지 등장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아우르고 있다.

 

<곡성>의 독특한 점은 어떤 명쾌한 메시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 자체로 <곡성>이라는 영화의 메시지다. 낚시라는 상징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물고기는 자신이 왜 미끼에 걸려 이리저리 휘둘리다 비극적인 끝을 맞이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이런 저런 의심을 하고 추정을 하고 믿어보기도 하지만 또 불신하며 배신한다. <곡성>의 종구(곽도원)은 그 과정을 몸으로 겪는 인물이다.

 

그리고 관객이 종구라는 인물을 통해 그 불가해한 일들을 겪어내며 풀어보려 안간힘을 쓴다는 점에서 그는 또한 관객의 매체가 되는 셈이다. 마치 무당이 귀신을 불러내어 그들의 세계를 들여다보고 그걸 이해해보려 하는 것처럼 종구는 관객에게는 <곡성>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세계를 들여다보게 만드는 무당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사실 어떤 상정된 메시지를 향해 당연히 달려가는 일반적인 영화를 보던 관점으로 <곡성>을 들여다보면 불편하기 이를 데가 없다. 종구라는 인물 속에 빙의되지만 그 인물이 보고 판단하는 것들이 오류투성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구는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마을에 벌어지는가를 궁구하며 그 깊숙이 파고 들어가지만 그럴수록 더 깊은 미궁에 빠져 허우적댄다.

 

영화 후반부에 일광(황정민)이라는 무당이 등장해 한판 살풀이굿을 하는 장면은 그래서 관객에게는 굉장한 에너지로 다가온다. 처음에는 이 조금은 허술해 보이는 종구라는 인물을 통해 코미디처럼 실실 웃으며 <곡성>의 영화 속으로 이끌려 들어간 관객들은 그가 처한 막막함과 절망감에 숨이 턱턱 막힌다. 마치 귀신들린 사람 같은 느낌을 관객 역시 똑같이 느끼게 된다. 그러니 일광의 살풀이는 마치 그걸 풀어줄 것 같은 강력한 에너지로 다가온다. 물론 풀어지기는커녕 더 복잡한 미궁으로 종구는 빠져버리지만.

 

<곡성>절대 현혹되지 마라라는 문구가 달려 있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현혹될 수밖에 없는 영화다. 절대 현혹되지 않으려는 안간힘은 사실은 현혹되고 있는 자신을 반증할 뿐이다. 종구는 그 미끼를 물었고 관객은 종구에 빙의되어 역시 미끼를 물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명쾌하지 않은 영화의 결론은 관객들에게 불편함을 주지만 그건 그렇기 때문에 중요하다. 감독은 의도한 바가 있겠지만 그 결론을 관객들의 몫이라고 남겼다. 이것도 어쩌면 미끼일 것이다. 사실 귀신과 영혼, 악마에 대해 현혹되는 이야기에 명쾌한 결론이 어디 있겠는가. 마치 명쾌한 결론이 있을 것이라는 우리의 생각을 영화는 역으로 공격한다.

 

<곡성>은 그래서 마치 빙의 체험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처음에는 믿지 않다가 바로 그 저항감 때문에 오히려 더 깊게 빠져들고 결국은 그 이면의 실체를 들여다보게 만든다. 그 체험이 모든 이들에게 즐겁기만 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 영화에 대해 극과 극의 반응이 나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Posted by 더키앙

<곡성>, 무서운데 웃긴다? 에너지 넘치는 문제작

 

간만에 보는 문제작이다. 무당, 퇴마, 귀신 같은 하나만 나와도 섬뜩해질 소재들이 <곡성>에는 한데 어우러져 있다. 그러니 무서울 수밖에 없다. 공포와 스릴러가 주요 장르지만 나홍진 감독은 여기에 코미디적인 요소도 빼놓지 않았다. 마치 공포의 집에 들어가 호들갑을 떠는 납량특집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듯한 장면들이 곳곳에 깃들어 있어 숨 막힐 듯 소름 돋는 영화지만 간간히 웃음을 터트리게 만든다.

 

사진출처:영화<곡성>

영화는 낚시를 하는 한 사내를 비춰주며 시작한다. 사내가 낚시 바늘에 미끼를 꿰는 장면은 <곡성>이라는 영화가 가진 특징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영화는 끊임없이 주인공 종구(곽도원)에게 그리고 관객들에게 미끼를 던진다. 처음에는 믿지 않았던 이야기들에 차츰 종구가 깊숙이 들어가고 그것은 결국 종구와 그 가족을 송두리째 삼켜버린다.

 

<곡성>을 문제작이라고 부르는 건 그 이야기가 쉽게 이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귀신이나 퇴마의 이야기는 그 자체가 이성적으로 이해하기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종구가 그러하듯 관객들도 갑자기 마을에 깃든 어두운 기운과 계속해서 죽어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그 이유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여기에 문제를 해결할 것처럼 등장하는 무당은 도움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종구를 더 혼란스럽게 만든다. 종구가 끊임없이 미궁 속에 빠져버리고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기 때문에 영화는 뒤로 갈수록 점점 더 에너지가 커진다. 사실 3시간 짜리 영화에서 이토록 강력한 에너지를 가질 수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곡성>이란 영화를 명쾌하게 해석하는 건 쉽지 않고 또 이 영화에 합당한 것도 아니다. 다만 이렇게 난해한 문제를 미끼로 던져놓는 것 자체가 <곡성>이라는 영화의 힘이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관객은 도대체 저런 일은 왜 벌어진 것일까를 궁구하면서 영화 속에 깊게 빠져든다. 그것은 마치 낚시 바늘에 걸린 미끼를 덥석 물어버린 관객이 누가 왜 그러는지도 모른 채 이리 저리 끌려 다니는 것과 닮아있다. 이유를 알기 위해 또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그럴수록 낚시 바늘은 더 깊게 상처를 파고든다.

 

이런 과정을 통해 영화가 건드리고 있는 건 믿음혹은 현혹에 대한 것이다.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막연한 공포와 그러한 미지 앞에서 사람은 어떻게 반응하는가. 나홍진 감독은 그 미지의 공포들을 관객 앞에 죽 세워두고 우리를 현혹시킨다. 이 영화가 두렵지만 시선을 돌릴 수 없는 건, 미지의 세계 앞에 두렵지만 궁금증을 참을 수 없어하는 인간의 본능을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곡성>은 그래서 나홍진 감독이 관객들에게 던진 미끼처럼 느껴진다. 영화 자체가 하나의 미끼이기 때문에 일단 영화관에 들어서는 순간 헤어 나올 수 없는 미궁의 엄청난 에너지를 체험하게 된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영화 체험이 아닐 수 없다

Posted by 더키앙

최근에 달린 댓글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