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용', 돈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정의가 실현되려면

 

세상에 이런 변호사와 기자가 있을까. 돈이 되지 않고 이길 확률도 낮은데다 길게는 5년이나 갈 수도 있는 재심을 기꺼이 맡는 변호사 박태용(권상우). 그는 심지어 재심 의뢰인이 폭행 사건에 연루되자 직접 찾아가 변론을 해주고 피해자에게 합의 먼저 받아내라고 박삼수(배성우) 기자에게 부탁한다. 그런데 언론사 뉴스앤뉴에서 잘려 백수가 된 박삼수 기자는 투덜대면서도 없는 돈을 탈탈 털어 합의금을 대신 내준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의뢰인의 집을 찾은 박태용 변호사는 난방조차 잘 되지 않은 곳에서 조현병을 앓고 있는 노모를 모시며 살고 있는 의뢰인의 처지를 딱하게 생각해 사비를 들여 집을 구해주는데 보증금을 대준다. SBS 금토드라마 '날아라 개천용'의 박태용 변호사와 박삼수 기자는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변호사와 기자에 대한 선입견을 여지없이 깨버린다. 돈과 권력이 먼저 떠오르는 그 직업에서 '사람 냄새'가 먼저 풀풀 풍겨나기 때문이다.

 

이들이 재심에 뛰어든 삼정시 3인조 사건에서 억울하게 가해자로 지목되어 감옥살이를 하게 됐던 세 사람 중 한 명인 그 의뢰인이 슈퍼마켓에서 폭행을 하게 된 건 자신의 억울한 감옥살이 이후 어머니가 갖게 된 조현병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세 사람이 억울한 감옥살이를 하게 된 데는 경찰이 실적을 얻기 위해 강압과 폭력으로 쓰게 한 조서 때문이었다. 장애가 있는 그들을 싸잡아 범인으로 몰아세운 것.

 

훗날 부산지검의 검사가 진범을 잡았지만 사건을 조작했던 장윤석(정웅인) 검사는 그 사건이 뒤집어지면 거기에 연루된 사람들이 모두 날아갈 수 있다며 수사를 덮고 범인들을 풀어줬다. 당시 검사가 녹음한 파일을 테이프로 피해자측에 주었지만, 피해자가 박삼수 기자에게 준 그 테이프는 뉴스앤뉴의 사장 문주형(차순배)에 의해 사라져버렸다.

 

삼정시 3인조 사건에 연루되어 있는 강철우 시장(김응수)은 배후에서 박태용과 박삼수의 재심을 방해한다. 그런데 그 방식이 지극히 자본주의적(?)이다. 마이너스 통장에 1억 가까이 빚이 있는데다 여동생 가족의 생계까지 챙겨야 하는 박태용 변호사를 찾아온 김병대(박지일) 대석 로펌 고문은 그의 회사로 들어오는 조건으로 재심을 포기하라고 종용한다. 그런데 그 배후에는 강철우 시장이 있다.

 

또 박삼수 역시 뉴스앤뉴의 문주형 사장이 재심사건 취재를 더 이상 하지 말라고 요구한다. 그런데 그 배후 역시 강철우 시장이다. 강철우 시장이 쥐고 있는 재개발 택지 사업을 통해 이 회사의 몇 백억이 왔다 갔다 하기 때문이다. 결국 진실을 위해 또 약자들을 위해 사비를 들여서까지 애쓰는 박태용 변호사와 박삼수 기자를 가로막기 위해 저들이 쓰는 방식은 치졸하게도 '돈'이다.

 

그렇다면 돈에 의해 정의도 마구 정해지는 현실 속에서 박태용 변호사가 가진 유일한 무기는 뭘까. "변론은 가방끈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의뢰인을 진심으로 이해하는 일종의 진정성이랄까. 그런 게 있어야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진실의 언어가 이렇게 올라오는 겁니다." 친부 폭생치사 사건에서 아버지를 살해한 정명희의 변론을 맡아 그 심정을 고스란히 전함으로써 가슴을 울리는 변론을 한 박태용 변호사가 가진 무기는 바로 '진정성'이다.

 

'날아라 개천용'이 다루는 재심 사건들은 대부분 '돈이 정의가 되는' 안타까운 현실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그런데 그 재심을 하기 위해서 소신을 향해 나가는 변호사나 기자는 모두 돈의 현실 앞에서 갈등하고 고통 받는다. 그래서 박태용 변호사는 입만 열면 '독지가'를 이야기한다. 정의가 돈이 되지는 않아도 적어도 정의를 구현하는데 있어서 돈이 장애가 되지는 않는 그런 사회는 불가능한가에 대한 질문을 이 드라마는 던지고 있다.(사진:SBS)

'날아라 개천용', 과연 드라마는 실화의 진정성을 담아낼 수 있을까

 

"내가 이 새끼들 싹 다 엎어버려." "아유 진짜 이것들 진짜 해도 해도 너무 하네 이거 진짜. 니들 나한테 다 죽었어." SBS 새 금토드라마 <날아라 개천용>은 이렇게 각각 외치는 박삼수(배성우) 기자와 박태용(권상우) 변호사의 일갈로 시작한다. 이들은 무엇에 이리도 분노하는 걸까.

 

사실 드라마를 보지 않은 시청자라도 <날아라 개천용>의 실제 모델이 된 인물들이 박준영 변호사와 박상규 기자라는 사실이라는 걸 안다면 저들이 무엇에 분노하는지 쉽게 감을 잡을 게다. 박준영 변호사는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의 재심을 소재로 다뤘던 영화 <재심>의 실제 인물로서 알려진 유명한 재심 전문 변호사가 아닌가.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도 출연해 화제가 됐던 인물이기도 하다.

 

게다가 박상규 기자는 바로 그 박준영 변호사의 재심 사건들을 보도함으로써 무고한 피해자들의 무죄와 재심을 이끌어낸 기자다. 익산 택시기사 살인사건,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치사사건, 무기수 김신혜 사건을 보도했고 최근에는 양진호 위디스크 회장의 갑질 영상을 최초 보도, 동물권단체 케어 박소연 대표의 비밀 안락사 폭로, 양승태 사법부 재판거래 피해자 보도 등을 한 기자다.

 

그러니 이들의 실제 이야기를 드라마로 담은 <날아라 개천용>의 인물들의 분노가 지목하는 건 분명하다. 그건 '진실'과 '정의'가 권력이나 위력에 의해 제대로 구현되지 않은 것에 대한 분노다. 이들이 쓴 책 <지연된 정의>에는 "주먹으로 치고 몽둥이로 때리는 고문보다 잔혹하고 교묘한 게" 바로 "많이 배워서 똑똑한 놈들이 저지르는 '조서 조작'"이라는 글귀가 들어 있다. 이른바 '배운 놈들'이 더 "교묘하게 피의자가 허위자백하게 만들고 조서 조작"을 해서 나중에 검증하기도 어렵게 만든다는 것.

 

박준영 변호사와 박상규 기자의 이야기를 드라마화하면서 그 제목에 '개천용' 같은 문구가 달린 건 이들이 스펙사회에서 그 위치에 서 있는 인물이라는 걸 드러내기 위함이다. 대학을 졸업하지 못해 고졸 출신으로 사법고시 패스해 변호사가 된 드라마 속 인물 박태용이나, 이름도 잘 모르겠는 수천대학교를 나와 현장에서 구르며 발로 뛰어 특종을 잡는 것으로 인터넷매체의 베테랑기자가 된 박삼수나 스펙사회에서는 '배운 놈' 측에 들지 않는 개천용이기 때문이다.

 

그 어려운 재심에 성공해 이제 의뢰인들이 줄을 서고 돈방석에 앉을 줄 알았던 박태용이 오히려 재심 같은 힘들지만 돈은 안 되는 사건들만 밀려오고 그래서 결국 수입이 없어 직원들까지 다 떠나가 심지어 재심사건의 의뢰인이었던 노숙자에게 돈을 빌리는 상황은 '배운 놈들'만이 적당히 해먹고 살아가는 현실을 말해준다. 약자들을 위해 변호하는 변호사들은 그래서 점점 가난해지고, 강자들을 위해 변호하는 이들만 더 떵떵 거리며 사는 현실.

 

이것은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며 살아가는 기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검사, 의사, 변호사, 기자 등 배운 놈들끼리 밀어주고 당겨주는 스펙사회 속에서 박삼수 같은 기자는 특종을 내도 장윤석(정웅인) 검사에게 모욕을 당하는 처지다. 하지만 다른 이들이 쓰면 소소한 기사가 되지만 그가 쓰면 특종이 되는 이유를 그는 발로 뛰며 현장에 직접 가는 데서 찾는 박삼수는 자신이 "타고 났다"며 갖은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온 삶이 어려운 이들의 이야기를 남다르게 듣게 만들었다 말한다.

 

실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박상규 기자가 대본을 쓴 <날아라 개천용>은 그래서 무엇보다 생생한 사건들이 강점인 드라마다. 궁금해지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이들 실제 인물들의 드라마틱한 삶을 과연 이 드라마가 어떤 방식으로 담아낼 것인가 하는 점이다. 진실과 정의에 대한 갈증이 남다른 지금의 대중들에게 다소 돈키호테 같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고 권력과 도전하는 이들의 행보는 얼마나 큰 속 시원한 사이다를 안겨줄까.

 

사실 최근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기자나 변호사들은 대부분 부정적인 캐릭터들이 적지 않았다. 특히 드라마에 나오는 기자는 대부분 주인공을 괴롭히는 '기레기'로 그려지기 일쑤였다. 물론 실제 현실이 그런 점도 적지 않지만, 그 속에서도 자신의 본분을 지켜가며 소신대로 살아가는 기자나 변호사들도 존재한다. 어쩌면 이 드라마는 그래서 우리가 진정으로 보고 싶었던 기자와 변호사에 대한 갈증을 풀어줄 지도 모르겠다. 부당한 거짓에 분노할 줄 아는 진짜 기자와 변호사에 대한 갈증을.(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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