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 스물하나’, 시대와 대결하는 이주명

스물다섯 스물하나

“내 친구가 또 맞았어. 학주가 내 친구 뺨을 때리고 머리를 때리고 결국 입술에 피가 터졌어. 구경하던 애들은 크게 놀라지도 않았어. 학주가 이러는 게 한두 번이 아니니까. 모든 상황들이 마치 당연한 것처럼 흘러갔고 나는 이 당연함을 끊어야겠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경찰을 불렀어. 근데 경찰은 아무 것도 해결해주지 않았어. 내가 무슨 생각했는지 알아? 그럴 줄 알았다.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 세상이 너무 자연스럽더라. 나는 적어도 여기서만큼은 꼭 말하고 싶어. 이건 부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그 일이 오늘 태양고등학교에서 일어났고 그 일을 반복하는 폭력교사 이름은 서영성이야.”

 

tvN 토일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 지승완(이주명)은 자신이 하는 해적방송을 통해 학교에서 지속적으로 벌어진 교사의 폭력을 폭로했다. 지승완의 절친 문지웅(최현욱)이 신창원 티셔츠를 입고 와 생긴 사단이었다. 그건 물론 문지웅의 잘못일 수 있었지만,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이 교사의 상습적인 폭행이었다. 말로 타이르고 꾸짖을 수 있는 문제에 그는 당연한 듯 먼저 손을 들었다. 입술에 피가 터지는 문지웅을 보며 결국 참다못한 지승완이 “그만 두라!”고 소리쳤다.

 

전교 1등. 그리고 수능을 한 달여 남긴 고3. 폭력교사는 교칙을 내세워 지승완이 한 방송을 문제 삼는다. 그래서 방송을 금지하고, 반성문을 쓴 후 이를 공개 낭독한 후 자신에게도 정식으로 사과하라고 시킨다. 하지만 지승완은 이에 굴하지 않고 오히려 되묻는다. “지웅이한테는 사과하셨어요?” 폭력교사가 ‘징계’라고 한 표현을 ‘폭행’이라고 정정하고, ‘말조심’하라는 교사의 말 앞에 ‘손조심’ 하라고 되받는다.  

 

결국 굴복하지 않고 폭력교사와 맞선 지승완은 ‘자퇴’를 결정한다. 때론 부러지기보다는 구부러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하는 엄마에게 그걸 알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다고 말한다. 엄마도 지승완의 그 뜻을 이해하고 딸을 꼭 껴안아줌으로서 이를 받아들인다. 그 해의 수능을 포기하고 대신 검정고시를 쳐야 하는 불이익을 감수하고라도 결코 굴복할 수 없는 뜻. 지승완의 이 행보는 <스물다섯 스물하나>가 그 시작점에서 내세웠던 “시대와 싸우는” 면면을 다시금 드러낸다. 

 

지금 돌아보면 당대의 체벌은 부당한 폭력이 분명했지만, 마치 당연한 교권인 양 받아들여지곤 했던 일들이다.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고등학생들이 등장하는 청춘멜로로서 이들이 당시 겪은 ‘시대의 문제’로서 체벌을 가져온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이 체벌과 싸우는 인물이 나희도(김태리)나 문지웅이 아니라 전교 1등이자, 반 아이들의 신뢰가 두터운 모범생 지승완이라는 점이다. 자퇴 같은 선택을 한다면 가장 많은 것을 잃을 수 있는 인물. 그래서 그가 모든 걸 버리고 싸우는 모습은 이 ‘시대와의 대결’을 더욱 극적으로 그려낸다.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IMF라는 시대의 무게감을 온전히 감당해야 하는 청춘들의 이야기로 문을 연 바 있다. 나희도는 펜싱부가 사라졌고, 백이진(남주혁)은 아버지의 사업 부도로 가족 모두가 뿔뿔이 흩어진 채 살아야 했다. 하지만 이 청춘들은 시대에 굴복하지 않고 이와 맞선다. 나희도는 학교를 옮겨 다시 펜싱을 시작해 국가대표가 되고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거머쥔다. 백이진은 고졸이지만 어렵게 방송사에 취업해 적응해나간다.

 

이들이 시대와 싸워 이렇게 이겨낼 수 있었던 힘은 서로가 서로에게 해준 응원과 위로 덕분이다. 물론 여기에는 폭력교사 같은 잘못된 어른들과는 사뭇 다른, 양찬미(김혜은) 코치나, 딸이 똑 닮은 지승완의 엄마 같은 어른들의 지지가 있어서다. <스물다섯 스물하나>가 담아내고 있는 시대와 대결하는 청춘들과 그 속에서의 어른들의 역할이, 현재의 청춘들과 기성세대에 대한 어떤 시사점을 제시하는 건 그래서다. 

 

세상은 어떻게 나아지는가. 그건 어쩌면 부당한 것들에 굴복하기보다는 싸워 바꾸려는 젊은 세대들의 대결로 시작되는 일일 게다. 물론 거기에는 지승완처럼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는 용가 전제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청춘들을 지지해주고 응원해주는 기성세대들이 필요하다.

 

지승완이라는 캐릭터가 매력적으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건드린 건 이 역할을 찰떡 같이 소화해낸 이주명이라는 배우의 연기 덕분이다. 전면에 선 주인공은 아니지만, 주변 친구 역할로서 분명한 자기 존재감을 드러낸 것. 자기 목소리를 당당히 낸 지승완이라는 인물처럼 이 배우 역시 자기 색깔을 앞으로의 필모 속에서 분명하게 드러내기를 기대한다.(사진:tvN)

김태리와 남주혁의 무지개, 봄을 부르는 청춘멜로(‘스물다섯 스물하나’)

스물다섯 스물하나

“정리할 말이 없어. 우리 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아직 세상에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지인, 친구, 연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그 구분 중엔 속하는 게 없어. 근데 생각해보니까. 우리가 어떤 관계인지 우리만 알잖아. 그러니까 우리가 정의하면 돼. 설명할 수 있는 단어는 없지만 까짓것 우리가 만들면 되는 거 아닌가? 뭐 우리 관계는 전화기다, 물 컵이다, 가위다 아니면 구름이다, 무지개다. 우리가 만들면 되는 거잖아.”

 

tvN 토일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 나희도(김태리)는 백이진(남주혁)에게 자신들의 관계를 정의할 수 있는 단어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백이진에게 요즘 “너 땜에 미치도록 복잡하다”며 질투하고, 좋아하고, 열등감도 느끼고 그래서 진짜 싫다는 복잡하지만 정리할 수 없는 그 마음을 있는 그대로 털어놓은 바 있다. 그리고 며칠 후 다시 만난 백이진이 그 관계에 대해 묻자 나희도는 엉뚱하게도 무지개 운운 한다. 하지만 이미 그 관계가 무엇인지 고민이 끝난 백이진은 그 엉뚱한 나희도고 귀엽다는 듯 “너는 참...”하며 자신은 ‘무지개’가 좋다고 말한다.

 

아마도 나희도가 백이진에게 그 관계를 그 무엇으로도 정의하기 어려워 ‘정의를 만들자’는 건, 특유의 천진난만하고 순수한데다 뭐든 직설적으로 툭 내뱉고는 ‘쪽팔려’ 하는, 이 대책 없이 귀여운 나희도라는 캐릭터에 딱 어울리는 이야기일 게다. 그리고 그것은 아직 사랑이라는 걸 해보지 않았지만 이미 불쑥 그걸 하고 있는 ‘첫사랑’을 하는 이들의 어리숙함과 순수함이 뒤섞인 모양 그대로일 게다. 그래서 첫사랑을 아는 이들이라면 나희도의 얘기를 듣고 희미하게 웃는 백이진의 풋풋한 미소가 공감됐을 게다. 이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있나.

 

그런데 이건 <스물다섯 스물하나>가 흔한 클리셰와 상투적 관계들로 적당히 버무려진 여타의 멜로드라마들과는 다르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아마도 이제 첫사랑을 하기 시작하는 청춘멜로를 다뤄서이겠지만, 실제로 이 드라마는 9회까지 그 흔한 키스신 하나가 없다. 그런데 그래서일까. 그 어떤 멜로드라마보다 더 설레고 가슴을 뒤흔들어 놓는다. 눈빛 하나로도 또 마음이 담긴 때론 따뜻하고 때론 엉뚱하며 때론 티격태격하는 그 말들 하나로도 설렌다. 

 

백이진이 다큐 촬영 도중 다친 나희도를 태우고 병원으로 가는 길, 거대한 무지개가 등장하자 나희도는 잠시 멈춰 그걸 보고 가자고 조른다. 그 자리에서 백이진은 나희도에게 자신의 진심을 고백한다. “너는 항상 나를 좋은 곳으로 이끄는 재주가 있네. 너라서 달려갔어... 아시안 게임 때 심판 인터뷰 따러 공항까지. 생각해봤는데 네가 아니었으면 안 갔을 것 같애. 근데 네가 아니었어도 가야했어. 기자니까. 넌 결국 기자로서 내가 옳은 일을 하게 했어. 넌 항상 옳은 곳으로 좋은 곳으로 이끌어.”

 

당시에는 나희도에게 네가 아니라도 달려갔을 거라고 말했던 백이진이었다.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고도 스타플레이어인 고유림(김지연)이 이에 불복하자 ‘금메달을 빼앗았다’는 논란에 휩싸였던 나희도. 백이진은 이를 바로 잡기 위해 출국하려는 심판을 공항까지 찾아가 인터뷰를 따냈다. 그런데 그것이 사실은 단지 기자로서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 아니라 나희도였기 때문이라고 말한 건 사실상 백이진의 고백이다. 

 

그런 고백에도 기분은 좋지만 그것이 ‘사랑고백’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채 천진하게 웃는 나희도는 그게 바로 자신이 생각하는 그들 관계의 정의라며 “이름은 무지개”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백이진에게 묻는다. 너에게는 우리 관계가 뭐냐고. 그리고 드디어 백이진이 나희도가 알아들을 수 있게 직접적으로 고백한다. “사랑. 사랑해. 난 널 사랑하고 있어 나희도. 무지개는 필요 없어.”

 

최근 멜로드라마들은 요즘 세태를 반영해서인지, 첫 회부터 하룻밤을 보내는 것으로 관계를 시작하곤 한다. 그건 물론 다루는 사랑의 이야기가 달라서 그런 것이지만, 너무 쉽게 전개되는 남녀 간의 사랑이야기는 자극적이지만 설렘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런 점에서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오랜만에 첫사랑의 풋풋한 설렘이 느껴지는 청춘멜로다. 작은 것 하나로도 두근거리게 만드는 청춘멜로의 빛나는 순간들이 사라졌다 생각했던 연애세포들을 봄날 햇살을 맞고 돋아나는 새싹처럼 피어나게 만드는 드라마. 

 

촉촉한 비와 햇살이 만나,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지만 아름답기 그지없는 ‘무지개’처럼, 그 무엇으로도 정의하기 어렵지만 보는 내내 감정을 뒤흔들고 설레게 만드는 어떤 것.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그 첫사랑의 기억을 되살려내고 있다. 마치 긴긴 겨울 동안 결코 오지 않을 것처럼 느껴지던 봄이 오는 것 같은 그런 청춘멜로가 찾아왔다.(사진:tvN)

‘스물다섯 스물하나’, 순정만화 같은 응원 혹은 사랑

 

스물다섯 스물하나

“백이진. 나야. 희도. 네가 사라져서 슬프지만 원망하진 않아. 네가 이유 없이 나를 응원했듯이 내가 너를 응원할 차례가 된 거야. 네가 어디에 있든 네가 있는 곳에 내 응원이 닿게 할게. 내가 가서 닿을게. 그 때 보자.”

 

공중전화 부스에서 삐삐에 나희도(김태리)가 녹음해 남긴 메시지를 백이진(남주혁)은 계속 반복해서 듣는다. 그 장면은 마치 순정만화의 한 대목이 영상으로 그려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빨간 공중전화 부스에 초록빛 전화통, 그리고 거기에 쌓아 둔 동전을 계속 넣는 손. 특히 그 음성을 계속 듣는 백이진의 쓸쓸함과 그리움이 묻어나는 표정이 그렇다. 마치 순정만화의 한 대목처럼 느껴지는 장면. tvN 토일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가 그리는 세계다.

 

IMF로 이제 겨우 스물둘의 나이에 대학생활을 포기한 채 도망치듯 외삼촌이 있는 바닷가 마을로 내려와 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내야 하는 쉽지 않은 삶. 백이진은 나희도의 그 응원 메시지로 힘을 내며 살아간다. 동생을 위해 시골로 내려왔다고 변명했지만, 그 스스로도 알고 있다. 도망친 건 자신이었다는 걸. 하지만 그 쓸쓸함과 힘겨움 앞에서도 수도꼭지를 뒤로 틀어 마치 분수처럼 물이 솟아오르는 걸 보는 백이진은 나희도를 떠올린다. 힘겨울 때 그 분수(?)로 자신을 위로해줬던 나희도를 생각하자 미소가 피어오른다. 

 

마침 눈이 내리고 그걸 올려다보는 백이진을 부감으로 찍어낸 장면은, 아마도 태릉선수촌에 있는 수도 앞에 서 있는 나희도로 이어지고, 두 사람이 서로 다른 공간에 서 있는 분할화면으로 연출된다. 백이진이 나희도에게 국가대표가 되어 TV에 나온 걸 축하한다고 말하고 나희도는 마치 그 말을 듣기나 한 것처럼 기분 좋은 미소를 짓는다. 서로 다른 공간에 나뉘어 있지만 양쪽에서 똑같이 내리는 눈발은 두 사람이 한 공간에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고, 백이진이 갑자기 분할화면을 넘어 나희도의 손을 잡고는 자신이 있는 공간으로 끌고 들어가 함께 달려 나간다. 

 

판타지로 연출한 장면이지만 그 속에서 손을 꼭 잡은 장면은 보는 이들을 심쿵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 장면은 이제 나희도가 백이진이 답장처럼 남긴 음성메시지를 공중전화 부스에서 듣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보고 싶었어. 근데 봤어. 네가 보여줘서. 그래서 오늘은 웃었어. 풀하우스 14권은 나왔어? 15권 나오기 전에 나타날게. 기다려. 희도야.” 눈물을 뚝 떨어뜨리는 나희도는 백이진이 그랬던 것처럼 동전을 넣어가며 반복해서 그 메시지를 듣는다. 

 

마치 그대로 그리면 순정만화가 될 것 같은 장면들의 연속.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보다보면 느끼게 되는 설렘과 아픔은 그래서 독특한 질감을 갖는다. 어쩌면 너무나 무거울 수 있는 현실의 아픔들이 존재하고 그래서 슬픔의 감정이 생겨나지만, 그렇다고 그 무게에 질식되지 않는 청춘 특유의 발랄함이 느껴진다. 그 아픔은 ‘시대’가 만든 것이지만, 이 청춘들은 그 시대에 무너지기보다는 버텨내고 넘어서려 한다.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 백이진과 나희도의 사랑은, 그저 두 사람 간의 매력에 이끌리는 질척함보다는 풋풋함이 느껴지는 적당한 거리를 보여준다. 사랑이 맞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마치 응원 같다. 서로의 청춘에게 보내는 응원. 한 사람이 그 응원을 받고 일어서면, 이번에는 일어선 그가 다른 사람을 응원한다. 응원과 지지가 그 어떤 애정보다 더 가슴을 벅차게 만드는 사랑으로 표현된다. 

 

이들은 시간이 지나 수습기자가 된 백이진과 국가대표가 된 나희도가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나는 그 순간에도 결코 풋풋함을 잃지 않는다. 적당한 거리에서 서로의 안부를 묻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도 순정만화의 한 장면이 연상된다. 순정만화들이 흔히 그려내는 판타지는 대부분 이 남녀 관계의 적당한 거리에서 가능해지는 것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보면 <스물다섯 스물하나>가 그리는 사랑의 풍경이 이토록 초록빛일 수 있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그래서 다시 생각해보면 이 순정만화 속으로 들어간 것 같은 풋풋함과 순수함 그리고 설렘 같은 걸 너무나 자연스럽게 연기해내고 있는 김태리와 남주혁이 새삼 대단해 보인다. 흔히들 ‘만찢남’, ‘만찢녀’라고 표현하지만, 이들이야말로 막 만화를 찢고 나온 듯한 장면들을 연기해내고 있어서다. 김태리와 남주혁이 환하게 웃는 장면이나 그저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장면은 그 자체로 순정만화의 판타지를 떠오르게 하는 힘을 발휘하고 있다. 실로 이들이어서 가능한 장면들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사진:tvN)

김태리, 남주혁의 청춘멜로, 1998년을 소환한 까닭(‘스물다섯 스물하나’)

스물 다섯 스물 하나

‘응답하라 1998’이 아닐까. tvN 토일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오프닝에 90년대 풍경과 더불어 당대의 추억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복고적 영상을 선보였다. 마치 옛날 드라마를 보는 것만 같은 톤 앤 매너를 연출적 포인트로 삼은 것. 신원호 감독의 <응답하라 1997>이 떠오르는 건 당연하다. 당시 <응답하라 1997>도 PC통신의 접속 장면과 신호음을 오프닝에 담아 당대의 추억 속으로 시청자들을 이끌었기 때문이다.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1998년을 시대적 배경으로 가져왔다. 이 시대적 배경이 중요한 건 IMF라는 사건(?)에 의해 여기 등장하는 청춘들, 나희도(김태리)와 백이진(남주혁)의 삶이 통째로 흔들리는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네 꿈을 뺏은 건 내가 아냐. 시대지.” 이렇게 말하는 코치의 말 속에 이 시대의 무게감이 느껴진다. 나희도는 다니던 학교 펜싱부가 사라지게 되면서 어려서부터 꿈이었던 펜싱을 더 이상 못하게 될 위기에 처하고, 백이진은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홀로 살아남아야 하는 생존 상황에 놓이게 됐다. 

 

그래서 1998년을 떠올리게 하는 풍경들이 드라마 속에 담겨진다. IMF도 그렇지만, 만화 풀하우스, 미국 직배 영화에 맞서 스크린쿼터를 요구하는 영화인들의 시위, PC통신, 비디오 플레이어, 금 모으기 운동, 더블데크, 만화 대여점... 풍경만으로도 당대로 기억을 소환시키는 소품들과 광경들이 <스물다섯 스물하나>에 채워진다. 현재 너무 치열해진 경쟁사회에 코로나19까지 더해져 갑갑한 청춘들의 현실을 떠올려 보면 IMF가 막 터진 그 때가 오히려 좋았던 시절이라는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여러모로 90년대, 그 중에서도 IMF를 전후한 시기는 복고를 담는 콘텐츠들에는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는 걸 이 드라마도 여지없이 보여준다. 

 

그런데 이 시대가 주는 무게감과는 사뭇 상반되게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청춘멜로가 갖는 풋풋함과 설렘, 밝고 명랑한 분위기가 가득하다. 그 이유는 나희도가 당대의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에 대해 던지는 대사 속에 담겨 있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잃어가나 보다. 그치만 나랑은 상관없는 어른들의 일이다. 난 뭔가를 잃기엔 너무 열여덟이니까. 내가 가진 것들은 잃을 수 없는 것들이다. 예를 들면 꿈, 동경.” 즉 이 나희도나 백이진 같은 청춘들은 시대의 무거움과 마치 정면승부를 펼치겠다고 선언하는 것 같은 발랄함을 보여준다. 

 

나희도의 이런 발랄함과 생기 넘치는 에너지는 빵빵 터지는 코믹한 상황들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유쾌하게 전해진다. 백이진과 처음 만나게 되는 순간부터가 그렇다. 생계를 위해 신문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는 백이진이 던진 신문에 오줌 누는 소년상의 성기 부문이 잘려나가자 따지는 나희도의 대사는 빵빵 터지는 웃음과 더불어 이 엉뚱발랄한 캐릭터를 잘 드러낸다. “신문사절 안보여? 신문을 사절한다는데 왜 사절을 안 해서 가만있는 애를 고자로 만드냐고?”

 

펜싱부가 사라지자 자신이 동경하는 고유림(보나) 선수가 있는 태양고로 전학을 가고픈 나희도가 사고를 쳐서 강제전학을 하려던 계획이 번번이 수포로 돌아가는 에피소드들도 큰 웃음을 선사한다. 패싸움에 뛰어들어 펜싱 실력으로 남자들까지 제압하지만, 정작 자신이 붙잡히게 되길 원해 부른 경찰들이 자신은 놔두고 도망치는 친구들만 뒤쫓자 툭 던지는 한 마디가 그렇다. “잡히려면 도망가야 되는구나.”

 

또 펜싱을 고집하는 나희도와 말다툼을 하다 대여점에서 빌려온 풀하우스를 엄마가 찢어 버리자 찢겨진 부분을 손으로 그려 붙여 대여점에 몰래 되돌려주려다 백이진에게 딱 걸리는 에피소드도 마찬가지다. 백이진 앞에서 무슨 말을 하는 지도 알 수 없게 우는 나희도의 모습도 우습지만, 그가 그려놓은 엉성한 그림과 ‘외않되...?’라고 잘못 쓴 대사에 키득키득 웃는 백이진의 모습도 빵빵 터진다. 

 

하지만 백이진에게 드리워진 ‘시대의 그늘’은 그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크고 무겁다. 아버지 사업의 부도로 피해를 입은 업체 아저씨들이 찾아와 그에게 아버지 때문에 겪는 어려움을 토로할 때 백이진은 이렇게 말한다. “저도 절대 행복하지 않을 게요. 아저씨들 고통들 생각하면서 살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어떤 순간에도 정말, 어떤 순간에도 정말 행복하지 않을 게요. 정말 죄송합니다.”

 

마침 그 순간 우연히 그 광경을 보게 된 나희도는 슈퍼 앞 평상에 앉아 ‘함부로’ 백이진의 그 무거운 현실을 툭툭 꺼내놓으며 과거 학창시절 방송반에서 잘 나가던 그 백이진과 너무 다르다고 말한다. 어찌 보면 무례할 수 있는 그 ‘함부로’ 던지는 발언을 그러나 백이진은 좋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그렇게 아무렇게나 말할 수 있는 나희도를 통해 자신에게도 있었던 그 시절이 떠올라서다. “너 보면 내 생각이 나. 열여덟의 나 같애.” 그는 그 때로 절실히 돌아가고 싶어 한다. 그는 심지어 그 때의 ‘걱정들’이 그립다고 한다. “뭐 숙제가 너무 많고, 방송부 선배들이 너무 무섭고 축제 때 무대에서 실수할까봐 뭐 좋아하는 여자애가 나 안 좋아할까봐 뭐 그런 걱정.”

 

당대에는 하늘이 무너질 것처럼 힘들게 느껴졌지만 지나고 나면 그 때의 ‘걱정들’조차 그리워지는 어떤 시기가 온다는 것.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스물둘이 열여덟을 만나 위로를 받는 이야기다. 그건 장차 스물다섯 스물하나에 그 때를 이야기하며 그 걱정들조차 그리워하는 어떤 순간들을 불러올 거라는 예감을 만든다. 

 

“우리 가끔 이렇게 놀자. 싫어도 해. 선택지 없어 해야 돼. 네가 그 아저씨들한테 그랬잖아. 앞으로 어떤 순간도 행복하지 않겠다고. 난 그 말에 반대야. 시대가 다 포기하게 만들었는데 어떻게 행복까지 포기해? 근데 넌 이미 그 아저씨들하고 약속했으니까. 이렇게 하자. 앞으로 나랑 놀 때만 그 아저씨들 몰래 행복해지는 거야.”

 

즉 1998년의 IMF 상황이라는 무거운 시대의 분위기를 가져왔지만 드라마는 청춘의 풋풋함으로 그 ‘시대와 대결하는’ 듯한 건강함을 보여준다. 이 청춘멜로가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건 코로나19로 인해 가뜩이나 힘겨운 현실에 잠시 동안이나마 시간을 되돌려 숨 쉴 틈을 제공하고 있어서다. 그런데 왜 하필 1998년이라는 시대적 상황이었을까. 

 

그것은 IMF로 인해 암울하기 그지없었던 그 시대 역시 결국 잘 지나왔다는 사실을 통해 현재에 던지는 위로가 크기 때문일 게다. 하지만 그것만큼 의미 있어 보이는 건, 마치 어디로 갈지 알 수 없었던 청춘의 시대를 거쳐 이제 중년으로 가고 있는 우리 사회가 이제 그 시기를 되돌아보고픈 청춘의 시대로 인식하고 있어서다.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그래서 지금의 청춘들에게 어려운 시기는 어느 때나 지나간다는 위로를 건네고, 지금의 중년들에게는 잊고 있던 그 때의 에너지를 다시금 떠올리게 해주고 있다.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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