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문화 속에 담긴 현실을 모색하는 곳 더키앙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4656)
블로거의 시선 (96)
네모난 세상 (4445)
SPECIEL (19)
문화 코드 (1)
생활의 발견 (23)
술술 풀리는 이야기 (4)
스토리로 떠나는 여행 (10)
책으로 세상보기 (8)
문화 깊게 읽기 (4)
스토리스토리 (24)
사진 한 장의 이야기 (4)
드라마틱한 삶을 꿈꾸다 (7)
대중문화와 마케팅 (9)
Total13,185,716
Today127
Yesterday355

<진짜 사나이>, 유준상이어서 괜찮은 몇 가지 이유

 

<진짜 사나이> 여군특집은 애초에 기대한 것 이상의 성과를 뽑아내고 있다. 그저 여군 체험 정도로 살짝 쉬어가는 특집으로 여겨졌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반응이 오히려 남자들보다 더 좋게 나타나고 있다. 항간에는 여군특집이 훨씬 더 리얼에 가깝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진짜 사나이(사진출처:MBC)'

사실 여자 연예인들을 화생방에까지 들어가게 할 줄은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사격훈련의 PRI, 그리고 유격 같은 훈련은 남자들도 버텨내기가 쉽지 않은 것들이다. 가만히 서 있어도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김소연이 그래도 이를 악물고 버텨내려 하는 모습은 보는 이들을 짠하게 만들고, 남편 닮아 처신을 곧게 해나가는 홍은희가 호흡곤란을 호소하는 장면은 보는 이들마저 안타깝게 만든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았던 지나가 어려운 언어장벽에도 열심히 훈련에 임하는 자세나, 아들 생각하며 아픈 다리에도 든든하게 대대장 포스를 보이며 버텨내는 라미란은 정말 이들과 함께 있다는 것 자체가 다행스럽게 다가올 정도다. 운동선수 특유의 체력과 정신력으로 묵묵히 훈련에 임하는 박승희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눈물 콧물까지 흘려가며 화생방 훈련을 받는 모습은 남자 연예인들이 하던 그 장면들보다 더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도 그럴 것이 여성들이기 때문이다. 군대와 여성. 요즘은 여성들도 자원해 군인이 되는 경우가 심심찮게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군대는 남성의 전유물처럼 여겨지곤 한다. 그래서일 것이다. 이 여성 연예인들이 남성들이 하는 훈련을 받으며 그 고통에 공감하는 모습은 남성들의 마음까지 뭉클하게 만든다. 예전에는 군대 간 친구가 전화 오면 받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꼭 받아야겠다는 그녀들의 이야기는 실로 진심으로 다가온다.

 

흥미로운 건 이번 여군 특집에 내레이션을 홍은희의 남편 유준상이 맡았다는 점이다. <진짜 사나이>의 내레이션은 고생하는 이들과 공감대를 이어주는 중요한 역할이다. 그래서 남자 연예인들이 나왔을 때는 여성들이 그걸 맡아왔다. 하필 왜 유준상이어야 했을까 하는 점은 방송을 보면 명백하게 드러난다. 즉 이처럼 혹독한 훈련을 받는 여성들을 상대로 때론 유쾌하게 농담을 던지고 때론 격려의 목소리를 더하는 인물로 유준상만한 인물이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다른 남자가 이 내레이션을 맡았다면 자칫 여성들이 고생하는 장면을 보며 유쾌해하는 악취미로 보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홍은희의 남편으로서 고생하는 아내에게 유쾌한 농담과 격려를 던지는 모습은 보는 이들마저 기분 좋게 만든다. 때론 힘내라고 소리를 쳐주고 때론 화장기 없는 아침의 얼굴을 보며 여전히 아름답다고 고백하는 대목에서는 남편의 아내를 향한 사랑이 묻어난다.

 

이번 여군 특집에서 유준상은 확실히 숨은 공로자다. 그의 목소리는 이들 고생하는 여성들을 보는 남성들의 이중적인 시선을 대변해주고 있다. 사실 군대라는 곳이 남성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면서 여성들도 그곳이 얼마나 힘든가를 체험해봤으면 하는 마음은 군대를 다녀온 남자들이라면 조금은 있을 것이다. 그런 마음을 대변하듯 정신 못차리는 여자 연예인들을 향해 정신차려!”하고 외칠 수 있는 내레이션으로 유준상 만한 인물이 있을까. 이번 여군 특집은 그래서 유준상과 홍은희라는 유쾌한 부부를 재발견시켜 주고 있다.

 

Posted by 더키앙

 ‘오션스’, 보는 맛만큼 듣는 맛도 일품이다

“야 이 빵꾸똥꾸야!” 어찌 들으면 욕 같기도 한 이 말. 그런데 이상하게 진지희라는 아이의 입을 통해 던져지는 이 말에는 막힌 속을 확 풀어주는 어떤 힘이 있는 것 같다.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연실 ‘빵꾸똥꾸’란 말로 현대사회의 부조리한 부분들을 거침없이 하이킥 하던 진지희. 그녀가 이번에는 극장용 다큐멘터리 영화 ‘오션스’로 돌아왔다. 어딘지 어눌하면서도 정이 가는 극중 그녀의 아버지였던 정보석과 함께.

여름방학 시즌에 맞춰 쏟아져 나오는 대작 영화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오션스’는 다큐멘터리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개봉 4일만에 18만 관객을 돌파하는 꽤 괜찮은 성적을 올리고 있다. 시선을 압도하는 바다 생물들의 경연장 같은 ‘오션스’의 세계가 대중들을 매료시키는 이유는 물론 그 스펙터클이 가진 힘 때문이다. 거대한 대왕고래의 위용에서부터 4억년 동안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살아있는 화석이라 불리는 투구게, 신기하게 생긴 담요문어는 물론이고, 전갱이떼의 군무나, 마치 그림 같은 해파리떼들, 시속 40킬로로 질주하는 돌고래와 수천 마리의 황다랑어떼 같은 장면들은 거대한 스크린으로 관객을 압도한다.

이미 ‘마이크로 코스모스’로 놀라운 곤충들의 세계를 조명했던 자크 페렝이 무려 7년 간 촬영한 끝에 잡아낸 ‘오션스’의 영상들은 저게 과연 우리 지구의 모습일까 의구심이 들 정도로 아름답다. 자크 페렝은 프랑스의 국민배우로 우리에게는 ‘시네마 천국’의 주인공 살바토레로 더 잘 알려진 인물이다. 이제 그는 생생히 살아 숨 쉬는 바다의 생물들을 우리에게 보여주며 그 존재들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들인지를 말한다. 물론 이 가치 있는 존재들을 마구 파헤치고 파괴하는 인간들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함이다.

다큐멘터리 영화가 가진 스펙터클의 힘은 그러나 아마도 진지희와 정보석의 톡톡 튀는 내레이션이 아니었다면 자칫 지루하게 느껴졌을 수 있다. 정보석의 어눌한 랩에 진지희의 다소 엉뚱한 멘트들은 이 다큐멘터리 영화에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아름다운 영상들은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만들어진 이 부녀의 캐릭터와 이야기를 덧붙이면서 다큐멘터리에 유머를 부여했다. 진지희의 아이의 시점에서 쏟아내는 톡톡 튀는 멘트들에 어린 관객들이 빵 터지는 것은 그 시점이 다소 무거울 수 있는 다큐멘터리에 친숙함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정감어린 아빠의 목소리로 딸에게 차근차근 바다생물들을 설명해주는 정보석의 내레이션은 자칫 가르치려는 고정된 다큐멘터리의 목소리가 가진 무게감을 덜어냄으로써 편안해졌다. 정보석의 내레이션은 어른의 목소리라기보다는 아이와 함께 이 바다 여행을 즐기는(어찌 보면 아이 만큼 들떠있는)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 아빠의 목소리다.

흥미로운 것은 ‘빵꾸똥꾸’의 힘이 여기서도 여전히 발휘된다는 점이다. 후반부에 이르러 다소 잔인할 정도로 그려지는 인간들의 해양생물 도륙 장면들에 이르면 진지희가 감정을 실어 쏟아내는 “이 빵꾸똥꾸들아!”라는 말에 동감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마음 한 구석이 짠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속이 시원해지는 아이의 외침이 ‘빵꾸똥꾸’라는 대사로 잘 표현된 셈이다. ‘오션스’의 흥행에는 분명 ‘빵꾸똥꾸’로 대변되는 톡톡 튀는 내레이션의 힘이 분명 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오션스’는 그 장관을 보는 맛뿐만 아니라, 듣는 맛도 일품이다.

Posted by 더키앙

동화(同化)를 버리고 이화(異化)를 선택한 책녀, 그 효과는?

‘돌아온 일지매’는 기존 사극과 달리 이른바 책녀라 불리는 내레이션이 극 중간에 끼여든다. 드라마에서 내레이션은 여러 기능을 갖고 있다. 등장인물의 내면적 독백을 드러내는 일인칭 시점의 내레이션은 극에 대한 몰입을 더욱 강화시키는 힘을 발휘한다. 하지만 책녀처럼 등장인물 밖에서 극을 설명하듯 개입하는 전지적 작가 시점의 내레이션은 몰입을 통한 동화(同化)보다는 이화(異化)의 기능을 위한 것이다.

지금 ‘돌아온 일지매’의 책녀에 대해 쏟아지는 논란의 실체는 바로 이 동화와 이화의 부딪침이다. 드라마를 몰입으로 보는 시청자들에게(사실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동화를 방해하는 책녀의 틈입은 불편할 수밖에 없다. 책녀의 존재는 시청자들의 위치를 드라마 속이 아니라, 드라마 밖으로 늘 끄집어내게 만든다. “당신은 지금 드라마를 시청하고 있습니다”하고 책녀의 존재 자체가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온 일지매’는 왜 책녀라는 이화의 장치를 사용한 것일까. 그 첫 번째는 고우영 원작에 충실하고자하는 노력으로 보인다. 고우영 원작 만화의 특징으로 작자의 목소리 개입은 절대적이라 할 수 있다. 조선시대의 상황을 그리면서 작자는 그 상황을 현대적인 문명의 이기에 빗대 설명하기도 한다. 등장인물들이 길을 찾는 대목에 갑자기 내레이션으로서의 지문이 ‘네비게이션’운운하는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바로 이 과거를 현대와 연결시키는 내레이션은 실로 작품에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게 된다. 그것은 과거의 이야기가 거기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대적인 의미로 재해석되는 지점을 만들어내게 된다. 그것은 과거 속에서 찾아지는 현재적 역사의 의미뿐만 아니라, 단순히 재미 그 자체로서도 충분히 기능한다. 즉 해설이 주는 기능적 목적에 재미 또한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책녀의 또 다른 기능은 그 존재 자체가 이 사극을 역사적 사실과 별개로 구분 짓게 해준다는 데 있다. 소소한 에피소드들을 책녀가 설명해주는 과정에서 이것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이야기라는 뉘앙스를 시청자들에게 전해준다. 책녀는 이 드라마의 재미가 역사적 사실의 드라마틱한 이야기에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작자의 끝간데 없이 뻗어나가는 상상력에 있다는 걸 은연중에 알려주고 시청자는 바로 그 부분은 어느 순간부터 기대하게 된다.

당연한 것이지만 책녀의 개입을 통해 이야기의 사실성을 통한 몰입을 포기하고 나면 오히려 그 마음대로 갈 수 있는 상상력을 얻게 된다. ‘돌아온 일지매’의 이야기 구조가 아주 소소한 엉뚱한 이야기에서 일지매 같은 중심인물로 위치이동하며 흥미진진해지는 것은 바로 이 시공을 넘나드는 책녀의 존재로 갖게된 무한상상의 가능함 때문이다. 왕횡보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는 이런 과정 속에서 빛을 발하게 된다.

‘돌아온 일지매’의 책녀는 몰입을 방해하지만, 거꾸로 무한한 상상력의 재미를 선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책녀의 내레이션이 얼마만큼 적절하고 촌철살인의 힘을 가졌느냐는 점일 것이다. 그저 책녀의 존재가 설명 그 이상이 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몰입만을 방해하는 방해꾼의 위치에 설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이상을 넘어선다면 이만큼 독특하고 재미있는 사극의 내레이션을 가져온 책녀의 존재에 대해 새로운 평가가 이루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Posted by 더키앙

최근에 달린 댓글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