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두꽃', 동학군의 적을 좀 더 명쾌하게 세우지 않는다면

 

SBS 금토드라마 <녹두꽃>은 이런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뭉클한 면이 있다. 대포와 회전포까지 갖고 온 경군들을 상대로 싸운 황룡강 전투 장면은 그 스케일만으로도 압도되고, 총알이 빗발치듯 날아오는 데는 솜을 채운 장태를 밀며 적진을 향해 전진하는 동학군의 모습에서 먹먹함마저 느껴진다.

 

무엇이 이들을 죽음을 감수하고라도 이렇게 전장에 나서게 했을까. 백이강(조정석)이 그의 이복동생 백이현(윤시윤)에 의해 위기에 빠진 버들(노행하)과 번개(병헌)를 구해 도망칠 때, 그들을 따르던 일련의 거지들이 동학군에 합류해 한 끼 밥을 먹고는 전장의 최전선에서 목숨을 던져 대포를 무력화시키는 장면이 그렇다. 그들이 그렇게 해서 얻고자 한 건 뭐였을까.

 

<녹두꽃>은 지금껏 우리네 사극이 좀체 다루지 않았던 동학농민혁명을 소재로 삼았다는 점만으로도 박수 받을 만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드라마라면 갖춰야할 극적 재미에 아쉬운 점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바로 보다 선명한 악역 혹은 악의 세력이 아직까지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는 점이다.

 

동학군의 첫 봉기 원인이 됐던 고부 군수 조병갑(장광)은 <녹두꽃>의 첫 악역이었지만 탐관오리라는 정도로 그려졌을 뿐 드라마의 극성을 끌어올리는 악랄함이 전면에 그려지지는 않았다. 대신 드라마의 시작점에 악역 역할을 한 건 백가(박혁권)다. 이방으로서 조병갑을 등에 업고 민초들을 수탈해온 인물. 그의 서자 백이강이 그 악행을 대신해 도맡아 했지만, 실질적인 악은 바로 그를 그렇게 만든 백가였다고 볼 수 있다.

 

<녹두꽃>이 제대로 동학군이 봉기하게 되는 근거로서 악을 세우려 했다면 백가보다는 조병갑 같은 인물을 좀 더 전면에 내세워야 하지 않았을까. 백가는 악당이긴 하지만 그 역시 중인으로서 성공하기 위해 그런 짓들을 벌였던 인물이다. 그 역시 어찌 보면 결국 동학군이 지목하고 있는 잘못된 나라의 시스템(세상의 주인이 민초가 아닌)의 일부분일 뿐 뿌리는 아닐 수 있다.

 

그 다음 <녹두꽃>이 악역으로 지목되는 인물은 황석주(최원영)다. 그는 처음 전봉준(최무성)과 함께 봉기했지만 양반이라는 신분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봉건적 틀에서 점점 추락해가는 인물. 자신을 고문해 누이동생인 황명심(박규영)을 며느리 삼으려는 백가 앞에 무릎 꿇는 척하지만 그는 그 혼사를 막기 위해 백가의 아들이자 자신의 제자인 백이현을 향군으로 나가게 한다. 전장에서 그가 죽기를 바라는 것.

 

황석주의 그런 행동은 백이현이 점점 악독해지는 이유로 작용한다. 전장에서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면서도 황명심을 애모하는 마음에 살아 돌아오려 노력하던 그는 자신을 그 전장으로 보낸 게 바로 황석주라는 사실을 알고는 분노하고 절망한다. 그는 결국 신분의 벽은 넘을 수 없는 것이라 여기고 동학군을 적으로 삼으며 백가의 가족으로 돌아가고, 이방이 되어 자기 방식(?)으로 세상에 분노를 터트리려 한다.

 

<녹두꽃>은 이처럼 좀 더 전면에 나와 있는 악역이 백가나 황석주 같은 인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악역들이 동학군의 봉기의 근거가 되기는 어렵다. 동학군이 봉기한 건 민초를 핍박하는 조선 봉건사회의 비뚤어진 시스템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시스템을 대변하는 보다 확실하고 명쾌한 악역이 세워져야 동학군의 목숨을 건 봉기가 더 절절하게 다가올 수 있지 않을까.

 

동학군의 전투는 장쾌하고 뭉클하게까지 다가오지만, 그것을 더 감정적으로 몰입하게 만들고 의미 또한 더할 수 있게 하는 건 이들이 왜 이렇게 싸우는가를 보여주는 명쾌한 적을 보여주는 일이다. 뭉클한 감동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왜 이들이 싸우고 있는지 다 알고 있지 않느냐는 식으로 처리되어 저 뒤로 물러나 있는 적들을 보다 전면으로 끌고 와야 시청자들이 좀 더 몰입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사진:SBS)

동학혁명 다룬 ‘녹두꽃’, 어째서 민초의 역사 외면 받았나

 

5월 11일은 동학농민혁명 기념일이다. 이 날을 동학농민혁명을 기리는 공식적인 국가기념일로 정하게 된 건, 이 날이 125년 전 동학농민군이 관군을 크게 이긴 황토현 전투 전승일이기 때문이다. 지금껏 소외되어 왔던 동학농민혁명이 법정기념일로 선정된 건 지난해였다. 무려 125년 만에 기념일로 제정된 것. 무엇이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평가를 이토록 늦게 만들었던 걸까.

 

이 날 SBS 금토드라마 <녹두꽃>은 바로 그 황토현 전투를 다뤘다. <녹두꽃>이라는 드라마의 탄생에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이런 재조명의 움직임이 전제되어 있었다는 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니 마침 그 기념일인데다, 황토현 전투 전승일이 5월 11일에 맞춰 그 전투를 재연해낸 건 드라마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녹두꽃>은 백이강(조정석), 백이현(윤시윤) 이복형제가 동학농민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동학농민군 의병대와 관에 의해 동원된 향병으로 나뉘어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복형제인데다 적자와 서자로 나뉘어 있어 두 사람은 너무나 다르게 자라났지만,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은 형제 그 이상이다. 탐관오리에 붙어 악랄한 이방으로 치부해온 백가(박혁권)는 서자인 백이강을 민초들의 고혈을 빠는 ‘거시기’로 키우지만, 적자인 백이현은 유학까지 보낸 도련님으로 키운다. 하지만 백이현은 부친의 악행에 죄책감과 부끄러움을 느끼며 살아왔고, 백이강을 형님으로 대해왔다.

 

녹두장군 전봉준(최무성)이 등장하긴 하지만, <녹두꽃>이 그리는 건 그런 드러난 인물이 아니라 동학농민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이름 없이 살다 죽어간 백이강이나 백이현 같은 민초들의 삶이다. 그들은 의병과 향병으로 나뉘어 있지만, 전투 속에서도 서로를 구해내고 챙기려 한다. 결국 향병들도 관군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징발된 무고한 민초들이다. 그래서 녹두장군 전봉준은 향병들은 죽이지 말라고 명을 내린다. 그들은 관군에 의해 총알받이로 내세워지고, 도망치려는 자들은 저들의 칼날 아래 처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녹두꽃>이 재연해낸 황토현 전투 속에서도 의병들과 향병들이 모두 관군에 의해 핍박받는 상황을 그려낸다. 백이현이 이 전투 속에서 처음으로 죽이게 되는 사람이 적이 아니라 같은 향병이라는 사실은 이런 상황을 잘 보여준다. 대신 이 와중에도 술과 향락을 즐기는 탐관오리들은 동학농민혁명의 정당성을 드러낸다. 그들이 방심하고 있을 때 별동대 대원들이 적의 진지로 숨어들어가고 의병대가 습격을 해 시작된 것이 바로 황토현 전투다.

 

사실 그토록 많은 사극들이 만들어졌지만, 동학농민혁명을 소재로 한 드라마는 거의 없었다. 그것은 지난해에 비로소 기념일이 제정된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1970~,80년대 군부독재 시절에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레드 콤플렉스는 동학농민혁명을 역사적으로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게 된 원인이 됐다. 왕에 대한 이야기들이 사극의 소재로 쏟아져 나왔지만, 민초들의 역사가 상대적으로 소외되었던 건 이런 시대적 상황 때문이었다.

 

그러다 정통사극에서 퓨전사극으로 바뀌어가는 과정에 차츰 역사 바깥을 탐색하던 사극들이 민초들의 역사를 담으려 했다. <대장금>에서부터 <추노> 같은 작품들이 그러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상상력으로 그려낸 민초들의 역사였다. 그런 점에서 보면 <녹두꽃>이 비로소 동학농민혁명을 통해 진짜 민초들의 역사를 재현해내고 있다는 건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것이 가능해진 건 촛불 혁명 같은 민초들의 역사가 다시금 피어나고 있어서다. 기념일에 즈음해 이낙연 국무총리가 “촛불혁명도 잘못된 권력을 백성이 바로잡는다는 동학정신의 표출”이라고 말한 건 이런 변화된 현재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이 기념일에 <녹두꽃>의 황토현 전투 재현이 더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다.(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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