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친구아들’의 호불호는 가족드라마 형태에서 나온다

엄마친구아들

정해인과 정소민이 출연한다는 사실은 tvN 토일드라마 ‘엄마친구아들’이 로맨틱 코미디일 거라는 예상을 하게 만든다. 실제로 이 ‘엄마친구아들’은 엄친아, 엄친딸로 오래도록 친구처럼 지내왔던 승효(정해인)와 석류(정소민)가 드디어 조금씩 사랑을 피워나가는 멜로드라마다. 미국까지 가서 누구나 선망하던 글로벌 기업까지 다니던 석류가 약혼도 파혼하고 회사도 그만두고 귀국하면서 드라마는 시작한다. 석류가 원하는 건 자신의 삶이고 행복이다. 부모의 자랑 같은 게 아니고. 멜로와 더불어 진짜 자신의 행복이 무언가를 말하는 사회극적 요소도 거기에는 담겨 있다. 

 

그런데 ‘엄마친구아들’의 이야기는 승효와 석류의 멜로만이 아니다. 이들의 친구인 모음(김지은)과 홀로 딸을 키우며 살아가는 강단호(윤지온)의 사랑이야기도 더해져 있고, 석류의 엄마 미숙(박지영)과 그 친구들인 쑥자매 혜숙(장영남), 재숙(김금순) 그리고 인숙(한예주)과의 중년의 우정이야기도 들어있고, 미숙과 그의 남편 근식(조한철) 그리고 혜숙과 그의 남편 경종(이승준)의 가족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또 여기에 승효네 건축 사무실 직원들 이야기와 모음의 119구급대 이야기 같은 직장 스토리까지 들어있다. 

 

승효와 석류의 멜로드라마가 주축이긴 하지만, 이것은 차라리 가족드라마에 가깝다. 승효네 가족과 석류네 가족 또 모음네 가족과 단호네 가족(딸 하나지만)의 서사가 다양한 스토리들로 묶여져 있어서다. 세련되고 트렌디한 멜로드라마의 틀에서 시선을 빼내, ‘엄마친구아들’이 가진 서사들을 들여다보면 자꾸만 KBS 가족드라마에 그토록 많이 등장해왔던 소재들이 떠오른다. 특히 후반부에 이르러 석류의 귀국 원인인 암과 우울증 투병 이야기가 본격 진행되면서 이런 느낌은 더 강해졌다. 

 

뒤늦게 석류가 암에 걸렸었고 그 사실을 숨긴 채 홀로 투병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가족과 친구들이 보이는 반응들은 가족드라마들이 종종 활용하는 ‘불치병’ 콘셉트의 드라마 투르기를 보여준다. 너무나 가슴 아파하던 가족과 친구들이 석류를 위해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준비하고 엄마인 미숙이 하는 말은 더더욱 전형적인 가족드라마의 향기가 느껴진다. “우리 가족이야. 좋은 것만 함께 하자고 있는 가족 아니야. 힘든 거 슬픈 거 아픈 것도 함께 하자고 있는 가족이야.” 

 

딸이 있는 단호와 모음이 그려나갈 로맨스나, 혜숙이 불륜이라고 오해해 경종이 성급하게도 이혼하자고 말하는 대목이나, 석류가 암 투병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친구들이 미숙에게 차라리 화를 내라며 우린 그래도 되는 친구라고 하는 장면 같은 에피소드들 역시 ‘엄마친구아들’이 멜로드라마의 틀이 아닌 가족드라마의 틀에 가깝다는 걸 느끼게 해준다. 

 

이런 선택은 최근 지상파, 케이블, 종편이 보다 폭넓은 시청층을 가져가 시청률을 확보하려는 의도와 맞닿아 있다. 로맨스는 세련된 느낌을 주지만 그것만으로는 어딘가 부족하다. 그래서 가족드라마의 다양한 서사구조들을 다시 불러온다. 알다시피 가족드라마는 최근 몇 년간 거의 사라져버렸고 남은 건 KBS 주말드라마 정도다. 과거에 비해 힘이 많이 빠졌다고 해도 KBS 주말드라마는 아직도 20% 시청률은 무난히 나온다. 충성도 높은 중장년 시청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되돌아 생각해보면 지난 봄 큰 화제성과 최고 시청률 24.8%(닐슨 코리아)를 기록했던 ‘눈물의 여왕’도 그 틀은 가족드라마에 가깝다. 물론 현우(김수현)와 해인(김지원)의 세련된 멜로가 중심이지만 그 인물의 가족이 서로 얽히는 데서 만들어진 눈물과 웃음이 압권이었던 드라마가 아닌가. 그리고 JTBC 드라마 역시 ‘닥터 차정숙’에서부터 ‘나쁜 엄마’ 등을 거쳐 최근 방영된 ‘가족X멜로’에 이르기까지 이런 가족드라마의 형태에 로맨스가 어우러지는 방식으로 괜찮은 성과를 냈던 게 사실이다. 그러고보면 가족드라마는 사라진 게 아니라 달라진 환경에 맞게 변화하고 세련되어졌다고 볼 수 있다. 

 

‘엄마친구아들’은 그런 점에서 보면 tvN식 가족드라마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런 선택이 잘못됐다는 건 아니다. 다만 우리에게 tvN이나 JTBC 같은 채널과 가족드라마의 조합이 어딘가 낯설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에 이 지점에서 호불호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시청률은 잘 나오지만 가족드라마 형태는 다소 산만해질 수 있는 게 사실이다. ‘엄마친구아들’을 승효와 석류의 로맨틱 코미디로만 보면 가족드라마의 다양한 양태를 담은 이 드라마가 너무 곁가지를 많이 펼쳐 놓은 느낌이 들 수 있다는 것이다. 

 

‘엄마친구아들’은 너무 짜여진 극적인 밀도를 기대하기보다는 조금 느슨해도 다양한 관계의 맛이 담긴 종합선물세트 같은 드라마로 보면 더할 나위 없이 다채로운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드라마다. 하지만 기존의 tvN 드라마들이 그러했듯이 밀도 높은 로맨틱 코미디만을 기대한다면 너무 장황한 변죽이 많은 드라마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결과로 다가오더라도 이런 선택은 OTT가 등장하면서 점점 시청층을 빼앗기고 있는 리니어 미디어들의 안간힘이자 색다른 진화가 아닐 수 없다. (사진:tvN)

‘눈물의 여왕’, 9천억과 행복한 기억의 대결구도가 말해주는 것

눈물의 여왕

“평생을 악착같이 돈을 모았고 모은 돈 안 뺏기려고 수단, 방법 안 가리고 발악을 했지. 그러느라 내 인생 대부분의 시간을 써버렸어. 그래서 무엇이 남았나. 나는 내가 잘못 살았다는 이 고백을 너희에게 유산으로 주고 싶구나. 너희는 나와는 다른 삶을 살기 바란다. 그리하여 허무하지 않은 마지막을 맞이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tvN 토일드라마 ‘눈물의 여왕’에서 홍만대(김갑수) 회장은 홍해인(김지원)이 남겨 둔 녹음기에 유언을 남겼다. 그런데 그 유언을 통해 홍만대 회장이 유산으로 남긴 건 재산 같은 돈이 아니다. 자신이 ‘잘못 살았다는 고백’이다. 퀸즈가 저택 지하의 비밀 공간에 9천억이나 되는 비자금을 현금으로 쌓아뒀지만 그는 재산이 아닌 삶의 지혜를 유산으로 남겼다. 돈 때문에 인생 대부분의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는 것. 그래서 허무하지 않은 삶을 살라는 것이 그것이다. 

 

홍만대 회장을 묻는 묘소에서 홍해인은 이것이 마치 리허설 같다고 말한다. 그 역시 시한부 인생으로 홍회장의 죽음이 남일 같지 않아서다. 자신 역시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라 그렇게 관 하나에 들어가 묻히고, 유족들이 울다가 결국 떠나가면 혼자 덩그라니 남게 될 거라는 걸 그는 홍만대 회장의 죽음을 통해 실감한다. 결국 인간은 누구나 다 죽는다. 수천억을 가진 부자든 아니면 돈 한 푼 없는 가난한 자든 죽음 앞에 공평하다. 그러니 새삼 삶에서 진짜 소중한 것들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자신의 병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을 백현우(김수현)가 찾아내고, 홍해인은 “앞으로”라는 말이 너무나 좋다는 걸 실감한다. 백현우와 앞으로를 계획할 수 있다는 것이. 다시 살 수 있다는 희망 속에 홍해인은 진짜 소중한 것이 ‘행복한 기억’을 많이 만드는 것이라는 걸 깨닫는다. 살다보면 고비가 올지도 모르지만 그 때마다 “달콤했던 기억들을 유리병에서 사탕 꺼내 먹는 것처럼 하나씩 까먹으면서 힘들고 쓴 시간을 견딜” 거라고 말한다. 그러니 좋을 때 행복한 기억들을 잔뜩 모아둬야 한다고. “나 이제 주식이랑 지분 모으는 것보다 행복한 기억들을 모으는데 더 집중해 볼 거야. 나한테는 이제 그 유리병을 채우는 일이 제일 중요해.”

 

수술을 받으면 살 수 있지만, 그로 인한 후유증으로 기억을 모두 잃을 수도 있다는 걸 모르는 홍해인이 ‘행복한 기억들’을 유리병에 채우겠다고 말하지만, 이 사실을 알고 있는 백현우는 머리가 복잡하다. 당연히 홍해인을 살려내고 싶지만 그로 인해 자신과 있었던 모든 기억들을 잃게 되는 건 너무나 가혹하다. 하지만 그래도 그는 홍해인에게 야구연습장에 자주 왔던 이유에 빗대 자신의 생각을 에둘러 말한다. “그냥 복잡할 땐 한 가지에만 집중하는 게 좋더라고. 지금 나한테 가장 중요한 거 딱 하나만 보는 거지.” 그 중요한 거 딱 하나는 바로 홍해인을 살리는 것이다. “난 그것만 중요해. 난 그것만 볼거야.”

 

이제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눈물의 여왕’은 ‘행복한 기억’이라는 삶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 그려온 이 드라마의 메시지를 본격적으로 꺼내놨다. 홍만대 회장이 죽으며 남긴 유서가 그 뚜껑을 열었다. ‘허무하지 않은 마지막’이라는 화두는 수천억의 돈을 벌고 갖고 있어도 허무할 수 있는 삶에 대한 역설이다. 그것보다 더 소중한 건 홍해인이 수술 후 기억을 잃을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현우가 행복한 기억들을 채워주려는 그 노력 자체에 있다는 것이다.   

 

수술을 앞두고 이 사실을 알게 된 홍해인이 죽어도 기억을 잃고 싶지 않다며 수술을 거부하려는 모습이나, 그러는 홍해인을 붙잡고 “너는 살아. 사는 거야. 제발 살자.”고 말하면서도 기억을 잃을지도 모르는 홍해인을 위해 비디오에 마음을 기록해 담는 모습 모두, 이들이 쌓아온 기억들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9천억의 비자금을 찾아내고 훔친 모슬희가 윤은성에게 그것이 자신이 그를 사랑하는 방식이라고 말하는 장면은 그래서, 막대한 유산 대신 허무하지 않은 마지막을 맞이하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 홍만대의 사랑하는 방식과 대비되고, 기억을 잃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윤은성이 백현우의 기억을 가로채려 하는 모습과 기억을 잃을 수도 있음에도 행복으로 채워주려 하는 백현우의 모습이 대비된다. 모슬희가 채우려는 9천억 비자금과 김수현이 채워주려는 행복한 기억. 동화처럼 익숙한 대결구도지만 어쩌다 돈이면 뭐든 되는 것처럼 여기게 된 우리네 세태 때문일까. 이 대결이 작지 않은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사진:tvN)

‘눈물의 여왕’, 울지 않는 마녀 이미숙과 우는 남자들 김수현, 홍수철

눈물의 여왕

홍만대(김갑수) 회장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휠체어를 몰아 계단 끝에서 자신을 죽음을 향해 내던지기 전, 그는 마지막으로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생을 마감했다. 자신이 죽어야 모슬희(이미숙)라는 마녀의 손아귀에 들어간 퀸즈 그룹의 모든 것들을 다시 가족들에게 되돌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왜 미소를 지으며 끝을 맺었을까. 복수의 의미도 담겨 있을 테지만, 가족들에게 보내는 따스한 마음의 의미도 있지 않았을까. 극단적인 선택을 결행하기 전, 그가 홍해인이 두고 간 녹음기에 남겨뒀을 메시지가 궁금해진다. 거기에는 아마도 그 미소의 의미를 이해하게 해줄 그의 마음이 담겨 있을 테니. 

 

tvN 토일드라마 ‘눈물의 여왕’은 제목에서도 느껴지지만 한 편의 ‘동화’ 같은 로맨틱 코미디다. 퀸즈가라는 왕궁에서 살아오던 공주 홍해인(김지원)은 온갖 시련을 맞이하게 된다. 시한부 판정을 받았고, 사랑했지만 그걸 표현하지는 못했던 남편 백현우(김수현)와 이혼한 데다, 모든 걸 모슬희라는 마녀에게 빼앗겼다. 하지만 그 위기는 홍해인에게 그간 잊고 있던 진정한 삶의 가치가 무엇인가를 다시금 깨닫게 해준다. 

 

퀸즈가에서 쫓겨난 백현우는 그걸 알게 해주는 흑기사 같은 인물이다. 그는 이혼했지만 홍해인 옆에 끝까지 남아 그의 행복을 위해 노력한다. 저 마녀가 장악한 퀸즈가를 되돌려 놓으려 한다. 그런데 이 흑기사 캐릭터는 우리가 동화에서 봐왔던 그 모습과는 사뭇 다른 면이 있다. 툭하면 눈물을 흘리는 흑기사다.

 

처가살이를 토로하며 술에 취해 흘리던 눈물은 어딘가 찌질해 보였지만 그의 눈물은 깊은 공감의 발현이라는 게 갈수록 드러난다. 홍해인을 너무나 사랑하고 그래서 그 도도하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한 얼굴 이면에 담긴 아픔이나 상처를 공감한다. 그래서 눈물을 흘리고 또 흘린다. 로맨틱 코미디에서 이토록 우는 남자가 주인공인 경우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다. 

 

그런데 그 눈물은 약해서 흘리는 게 아니다. 오히려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는 능력의 눈물이다. 그와 정반대 위치에 서 있는 모슬희나 그의 아들 윤은성(박성훈)이 눈물 한 방울을 보여주지 않는 모습과 대비해 보면 그 가치가 무엇인가가 드러난다. 자신이 원하는 걸 갖기 위해 아들마저 보육원에 보내버리면서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던 모슬희는 괴물처럼 그려진다. 비뚤어진 모성을 가진 이 괴물은 아들을 학대한 양부모를 죽인 건 자신이라며 그것이 아들을 위한 자신의 마음이라 말하는 자다. 어찌 보면 윤은성에 대한 연민의 감정마저 들게 만드는 괴물 모성의 모습이 아닌가. 

 

‘눈물의 여왕’에는 또 한 명의 우는 남자가 있다. 그는 홍수철(곽동연)이다. 모슬희와 함께 사기를 치고 도망쳐버렸지만 그는 아내 천다혜(이주빈)와 아들 건우를 그리워하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바보처럼 윤은성의 사기에 넘어갔고 능력자인 누나 홍해인에 대한 열등감에 눈이 멀어 그런 사건을 만들었지만 이 남자가 사랑하는 방식은 순정 그 자체다. 돌아와 용서를비는 천다혜 잘못을 저질렀지만 홍수철에 의해 구원받는다. 가짜 얼굴로 연기하던 그의 눈에는 눈물이 피어난다.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같은 문구가 여전히 화장실에 붙어 있을 정도로 남자의 눈물은 여전히 흘리지 말아야 할 어떤 것으로 치부되는 세상이지만, ‘눈물의 여왕’은 정반대로 그 눈물이 가진 가치를 꺼내놓는다. 그래서 처음에는 ‘눈물의 여왕’이라는 제목의 의미가 눈물 흘리는 홍해인을 뜻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차츰 그 의미가 새로워진다. ‘눈물 흘리는 남자 백현우의 여왕 홍해인’이라는 뜻으로. 그러고 보면 모든 걸 되돌리기 위해 마지막 최후를 맞이하며 보였던 홍만대의 희미한 미소는 또 다른 눈물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싶다. 

 

고 이어령 선생님은 ‘눈물 한 방울’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쓴 바 있다. ‘우리는 피 흘린 혁명도 경험해봤고, 땀 흘려 경제도 부흥해봤다. 딱 하나,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 눈물, 즉 박애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모르는 타인을 위해서 흘리는 눈물, 인간의 따스한 체온이 담긴 눈물. 인류는 이미 피의 논리, 땀의 논리를 가지고는 생존할 수 없는 시대를 맞이했다.’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눈물이란 없다. 그것만큼 가치 있는 것도 없다는 것을 이 드라마 속 새로운 남자들인 백현우나 홍수철 같은 인물들이 보여주고 있다.(사진:tvN)

변방에서 오히려 도드라지는 김지원의 페르소나

눈물의 여왕

“좋아한다, 싫어한다, 좋아한다, 싫어한다, 좋아한다, 싫어한다 오? 좋아한다고? 아, 진짜? 아... 나는 아닌데.. 나는... 사랑하는데...” tvN 토일드라마 ‘눈물의 여왕’에서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오는 백현우(김수현)는 꺾은 가지에서 잎 하나씩을 떼어내며 홍해인(김지원)을 두고 좋아한다, 싫어한다를 점쳐본다. 그러다 문득 마지막 하나에 ‘사랑한다’는 잎 하나를 발견하자 수줍은 듯 속내를 꺼내놓는다. 좋아하는 게 아니라 사랑한다는 속마음을. 

 

결혼해 어느 정도 세월을 겪어낸 부부들이라면 이 짧은 장면에 담긴 이들의 사랑표현에 공감할 게다. 사랑이라는 말은 어딘가 낯설고 그래서 좋아하거나 싫어한다는 말로 그 애증(?)의 속내를 꺼내놓기 마련인 부부들. 사랑한다는 말은 술에 잔뜩 취하거나, 꺾은 가지로 잎 하나씩을 떼내며 점을 치는 식의 장난을 더해서야 비로소 슬쩍 꺼내놓는 그런 부부들의 마음이 그 장면에 담겨있다. 그런데 그건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어딘가 사랑이라는 말로는 부족한 마음 때문이 아닐까. 

 

“난 한 번은 채워지고 싶어. 그러니까 날 추앙해요. 사랑으론 안 돼. 추앙해요.” 문득 ‘나의 해방일지’에서 미정(김지원)이 구씨(손석구)에게 갑자기 다가와 뜬금없이 그렇게 말했던 대목이 떠오른다. 구씨가 혼자 사전으로 찾아본 ‘추앙’의 뜻은 ‘높이 받들어 우러러 봄’이다. “고객님 사랑합니다” 같은 표현이 있을 정도로 여기저기 쏟아져 나오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너무 흔하고 익숙해져 그 본래의 의미를 잃어버린 시대에, 미정은 ‘추앙’이라는 새로운 단어를 가져온다. 낯설지만 어딘가 사랑이라는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진심이 느껴지는 단어다. 

 

‘눈물의 여왕’에서 백현우가 결코 쉽지 않은 마음으로 진짜 사랑을 표현하는 홍해인이라는 인물이나, ‘나의 해방일지’에서 사랑으로는 부족하다며 자신을 추앙하라고 말하는 미정이라는 인물이나 모두 김지원이라는 배우가 가진 독특한 이미지가 더해져 더욱 빛이 난다. 그건 같은 시공간에 있지만 어딘가 다른 곳에서 온 듯한 도도한 이방인의 이미지다. 그는 자신이 선 자리에서 그 곳과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더더욱 도드라진 아우라를 드러내는 배우다. 

 

‘나의 해방일지’에서 경기도 어디쯤의 가상소도시인 산포시에 거주하는 미정은 출퇴근 시간으로 하루가 다 가서 퇴근 후 여가도 없는 ‘변방’의 삶을 살아가지만 그처럼 벼랑 끝에 서 있어서인지 오히려 진짜 행복을 직시하고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용감한 인물이다. 도시의 삶이 점심에 무엇을 먹고, 여름휴가를 어디로 가고, 다달이 받는 월급으로 ‘행복하다’ 여기는 그저 그런 시시한 삶에 무감각해져 있다면, 미정은 ‘고객님 사랑합니다’ 같은 사랑 대신 추앙을 이야기할 정도로 진짜 행복을 추구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도시에서 한 가락 했지만 사람들에 염증을 느끼고 이 변방으로 칩거해 술에 빠져 살아가는 구씨조차 미정의 요구를 거부하지 못한다.

 

“너 내가 어떤 인간인지 알면 깜짝 놀란다. 나 진짜 무서운 놈이거든? 옆구리에 칼이 들어와도 꿈쩍 안 해. 근데 넌 날 쫄게 해. 네가 눈앞에 보이면 긴장해. 그래서 병신 같아서 짜증 나. 짜증 나는데 자꾸 기다려.” 구씨가 한 이 고백은 보통 사람과는 다른 미정의 아우라면서 그걸 연기한 김지원이라는 배우가 가진 아우라이기도 하다. 변방에 서 있지만 어딘가 그 곳에서 그럭저럭 살아갈 사람 같지 않은 도도한 이방인의 면면이 그것이다. 

 

‘눈물의 여왕’에서도 홍해인이라는 인물을 연기하는 김지원의 이런 아우라는 빛을 발한다. 퀸즈 백화점의 대표로서 그 화려하고 빛나는 세계 속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이 인물은, 자꾸만 그 세계 바깥으로 밀려나면서 오히려 도드라지는 모습을 드러낸다. 뭐 하나 부러울 것 없어 보이지만 뇌종양 시한부 판정을 받고 평범한 사람들보다 못한 처지로 미끌어지고, 백현우에게 프로포즈를 하기 위해 헬기를 타고 용두리로 내려왔던 ‘여왕’의 위치에서 하루아침에 쫄닥 망해 이혼한 전 남편 시댁에 얹혀 사는 처지로 떨어진다. 하지만 그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시골의 소박한 삶 속에서도, 또 시한부 판정을 받은 처지임에도 이 인물은 여전히 꽂꽂하고 도도하다. 그래서 변방으로 밀려났지만 여전히 그 곳과 유리된 이방인으로서 자꾸만 시선이 머물게 만드는 아우라를 드러낸다. 

 

일찍이 ‘상속자들’에서 유라헬이라는 악역으로 김은숙 작가의 눈도장을 찍고는, ‘태양의 후예’에서 육사 출신 군의장교 윤명주 중위로 서대영(진구)과의 커플 연기를 보여줬을 때도, 김지원이 가진 이러한 아우라는 그 세계 바깥에 나와 있어 오히려 추앙하게 만드는 그런 존재들을 빚어내곤 했다. 임상춘 작가의 ‘쌈,마이웨이’에서 연기한, 아나운서의 꿈을 꾸지만 현실은 백화점 인포데스크에서 일하는 최애라라는 인물도 마찬가지다. 스펙 때문에 ‘쌈마이’ 취급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지만, 그 변방의 세계에서도 밝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이 이방인 같은 존재는 결국 ‘마이웨이’를 선택하는 당당함으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빼앗았다. 그리고 김영현, 박상연 작가가 쓴 선사시대의 인류사를 다룬 판타지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에서는 탄야라는 신적인 아우라를 가진 존재를 연기하기도 했다.

 

김지원은 어딘가 추앙하게 만드는 아우라를 가진 배우다. 그것은 평범하게만 보이는 세계 속에서 그 안에 스며들기보다는 자신의 진짜를 꼿꼿하게 유지하며 그 정체성을 지켜내는데서 나오는 아우라다. 그리고 이건 우리가 스스로의 삶을 특별하게 만들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삶을 그저 흘려 보내는 것이 아니라, 가끔은 이방인의 시선으로 낯설게 바라보고 그 의미를 되새기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그 흐름에서 벗어나 조금은 관조적인 자세를 가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반복되는 삶이 답답하거나 시시하게 느껴질 때, 이방인의 시선으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라. 그건 스스로를 추앙함으로써 특별하게 만드는 일이 될 수도 있을테니.(글:국방일보,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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