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타지보다는 공감을 끌어내는 ‘달콤한 나의 도시’

SBS 금요드라마 ‘달콤한 나의 도시’는 여러 모로 ‘섹스 앤 더 시티’를 닮았다. 조금씩 다른 성향과 직업을 가진 커리어 우먼들이 캐릭터들로 등장하는 것이 그렇고, 문화의 아이콘으로 생각될 수 있는 도시, 즉 뉴욕과 서울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 그러하며, 거기서 다루어지는 것이 그네들의 솔직한 연애와 사랑의 이야기라는 것이 그러하다.

하지만 ‘달콤한 나의 도시’와 ‘섹스 앤 더 시티’를 근본적으로 다른 드라마로 만드는 요인이 있다. 그것은 뉴욕과 서울이라는 공간과의 거리감이 만들어내는 시청자의 수용태도에서 비롯된다. 뉴요커가 보는 ‘섹스 앤 더 시티’는 공감을 자아내는 현실감 넘치는 드라마가 될 수 있겠지만, 서울에 사는 우리들의 눈에는 환타지로 받아들여진다.

‘섹스 앤 더 시티’가 우리에게 인기 미드로서 자리잡은 것은, 그네들의 도발적인 성담론이 우리 사회에서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게 됐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저들은 자유롭게 구가한다는 점에서 선망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 뿐이다.

여기에 스타 벅스 모닝커피와 뉴요커로 상징되는 독특한 뉴욕 문화에 대한 동경, 그리고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통해 보여주었던 뉴욕의 패션 트렌드까지 ‘섹스 앤 더 시티’는 우리네 여성 시청자들에게는 꿈꾸고 싶은 환타지 그 자체였다. 패션쇼를 방불케 하는 명품들의 상찬은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들고, 따라서 그런 도시에서의 로맨스는 이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에게는 그만큼 환상적일 수밖에 없다.

물론 이것은 꽤 먼 거리에 떨어져 있는 막연한 뉴욕이라는 공간이 주는 이국적인 이미지에서 비롯된 것이 크다. 하지만 이러한 정서는 실제 우리네 시청자들이 현실로서 살아가는 서울이라는 공간을 다루는 ‘달콤한 나의 도시’에서는 기대하기가 어렵다. 대신 우리가 ‘달콤한 나의 도시’를 통해 보게 되는 것은 그 속에 담겨진 현실성 있는 이야기들에 대한 공감이다.

그러니 지금 서울이라는 공간에서 이 두 드라마를 보면서 우리가 갖는 재미는 사실은 상반된 것이다. ‘섹스 앤 더 시티’가 환타지에 대한 동경이라면, ‘달콤한 나의 도시’는 동시대의 같은 공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만드는 리얼한 상황에 대한 공감이다. ‘섹스 앤 더 시티’의 과장된 파티 문화 속에서 어떤 뉴욕 문화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꿈꾼다면, ‘달콤한 나의 도시’의 퇴근 후 조촐한 술자리에서는 공감 가는 이야기들이 흘러나온다.

정서적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이겠지만 ‘섹스 앤 더 시티’가 화려한 상류층의 분위기를 갖고 있다면, ‘달콤한 나의 도시’는 소박하지만 예쁜 서민적인 분위기를 갖고 있다. ‘달콤한 나의 도시’에는 섣불리 재벌집 2세들이 등장해 환타지를 조장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부족하고 모자란 인물들이 각자 현실에서 부딪치는 사건들을 진솔하게 꾸미지 않고 보여줄 뿐이다. ‘달콤한 나의 도시’가 ‘섹스 앤 더 시티’보다 좋은 이유는 바로 이 점, 즉 막연한 환타지로의 침잠보다는, 우리네 현실 속에서 꿈과의 타협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이다.

명품드라마의 조건, 돈이 아닌 작품성

대충 아줌마들의 입장을 대변해주는 직업이나 상황을 재료로, 삼각 사각으로 엮은 멜로를 조리법으로, 그리고 결국에는 불륜이라는 자극적인 조미료로 맛을 내곤 했던 금요 드라마들은, 이제 이 ‘달콤한 프리미엄’의 맛에 생각을 고쳐먹어야 할 것 같다. 프리미엄 드라마라는 기치를 내걸고 이 조미료 가득한 금요일 밥상 위에, 제대로 된 맛을 선보이고 있는 ‘달콤한 나의 도시’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무미건조하고 답답하기만 했던 입에 물린 도시라는 재료조차 달콤해진다.

‘드라마 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쏟아져 나오는 드라마들의 편편들은 저 스스로 자신들의 맛이 최고라고 외친다. 시청자들의 드라마 밥상은 그래서 양적으로는 전라도 백반만큼 풍성해졌지만 그렇다고 젓가락이 모든 반찬들에 가 닿는 것은 아니다. 이른바 메인 요리에서 밀려난 어떤 음식들은 재수 없게도 젓가락 한 번 가지 않은 채 물려져 쓰레기통으로 던져지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드라마들은 기본적인 맛에 충실하기보다는 일단은 젓가락을 가져가게 하기 위한 자극적인 방식들을 동원하게 되었다.

영화에 ‘5분의 법칙’이 있듯이 드라마에는 이제 ‘첫 회의 법칙’이라는 것이 생겼다. 첫 회에 모든 걸 보여주지 못하면, 그래서 그 입맛을 당기지 못하면 영영 젓가락이 오지 않을 거라는 강박이 생긴 것이다. 앞으로 새롭게 시작되는 월화드라마들의 치열한 편성전쟁은 바로 그 첫 회에 ‘올인’하는 드라마들의 처지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첫 회에 드라마들은 대부분 화려한 액션 신(사극)을 보여주거나, 해외 로케(멜로 드라마)를 하거나, 긴박한 상황(전문직 장르 드라마)을 연출하려 노력한다.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나, 그렇게 시작한 드라마들이 첫 회 이후에도 그 맛을 계속 보여주는 지는 의문이다.

이런 첫 회에 강박적인 여타의 드라마들과는 상반되게 ‘달콤한 나의 도시’는 그 첫 회를 담담하게 풀어낸다. 이 드라마는 만원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는 은수(최강희)가 처한 상황, 즉 옛 애인은 결혼을 하고, 자신은 늘 똑같은 도시의 일상으로 챗바퀴 돌 듯 돌아가는 그 상황을 독백으로 담담하게 시작한다. 눈길을 확 잡아끄는 자극적인 영상 대신에, 커피 자판기 앞에서 늘 잔돈이 없다며 돈을 빌려가는 상사에게 ‘이 자판기는 1000원짜리 지폐도 들어간다는 걸 모르는 걸까’하는 식의 공감 가는 대사를 풀어낸다. 그리고 이 드라마의 가장 진한 맛이라 할 수 있는 은수의 친구들의 일상들이 그 위에 겹쳐진다. 유희(문정희)나 재인(진재영) 같은 우리가 일상 속에서 꼭 존재하는 매력적이지만 물리지 않는 그 친구들의 세계로 시청자들을 끌어들인다.

‘달콤한 나의 도시’는 바로 이 담담하지만 점점 끌리는 맛을 가진 드라마다. 그것은 머리가 아플 정도로 자극적인 쓰디쓴 도시 생활 속에서의 달콤한 맛을 꿈꾸는 도시인들의 환타지가 조미료 대신 맛을 낸다. 따라서 이 맛은 돈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이 드라마가 ‘프리미엄’인 것은 그 촘촘한 구성력과 연출력, 그리고 도시인들의 가슴에 콕콕 박히는 공감 가는 대사들에 공을 들였다는 뜻이다. 그것은 눈과 입과 귀를 먹게 하는 자극적인 맛은 아니지만 공감이라는 특제 조리법으로 조리된 마음을 열게 하는 맛이다. 금요일의 드라마 밥상이 그만큼 더 기다려지는 것은 매일 매일 반복되는 자극적인 밥맛에 입이 물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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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나의 도시’, ‘연애시대’를 꿈꾸다

불륜이나 신파 없이 금요일 밤의 드라마를 채울 수 있을까. 한 때 이 질문의 답은 ‘없다’였을 지도 모른다. 일찌감치 금요일밤의 트렌드를 장악해버린 KBS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의 강력한 불륜 앞에 그 어느 방송사의 드라마도 대적할 상대가 없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8시 뉴스를 방영하고 곧바로 9시부터 그것도 2회에 걸쳐 파격 편성된 SBS의 드라마들이 성인드라마(거의 불륜이 많은)를 연달아 기획해왔던 이유는, 그 금요일이란 시간대 때문이었다.

한 편에는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이 버티고 서 있었고, 다른 한 편에는 주5일 근무제로 공백이 된 안방극장의 젊은 시청층 대신 남게된 중장년층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트렌드는 이제 그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그 본격적인 변화의 기류는 새로 시작한 금요드라마 ‘달콤한 나의 도시’에서부터 비롯된다.

‘달콤한 나의 도시’는 이제 31살 도시 직장여성들의 솔직 담백한 연애담을 담고 있다. 여기서 키워드는 제목에서 보이듯이 ‘도시’와 ‘연애’다. 이 제목만으로 언뜻 떠오르는 건 바로 최근에 영화화된 ‘섹스 앤 더 시티’라는 미국 드라마다. 여기에는 뉴욕이라는 도시와 거기서 생활하는 네 명의 여성들의 연애담이 등장한다. 대신 ‘달콤한 나의 도시’에는 세 명의 여성, 오은수(최강희)와 남유희(문정희), 하재인(진재영) 이렇게 세 명의 여성의 이야기들이 중첩된다.

중요한 것은 ‘도시’라는 키워드다. 그것은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시티’가 뉴욕의 문화적 트렌드를 기본 바탕에 깔고 가는 것처럼, ‘달콤한 나의 도시’도 서울로 대변되는 도시의 문화적 트렌드를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드라마는 주로 도시적 공간, 즉 영화관이나 카페, 술집, 혹은 원룸형 집을 배경으로 하면서 그 도시적 감성들을 잡아낸다. 바로 이런 세련된 부분들이 같은 금요일 밤의 연애 드라마라고 해도 질척하지 않고 자극적이지 않은 드라마가 되는 이유다.

‘달콤한 나의 도시’가 꿈꾸는 이런 도시적 연애의 감성은 한때 명품드라마로 주목받았던 ‘연애시대’를 떠올리게 한다. ‘달콤한 나의 도시’가 ‘연애시대’에서처럼 프리미엄드라마를 주창하고, 정이현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했으며, 도시와 여성과 연애를 다루고 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박흥식 영화감독이 연출을 하고 있다는 점은, 역시 영화인들에 의해 최초로 시도되었던 드라마 ‘연애시대’의 연장선상에 이 드라마가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첫 1,2회를 통해 판단되는 것은 금요드라마가 이제는 불륜 없이도 된다는 것이다. ‘달콤한 나의 도시’는 31살의 연애담을 담고 있지만 그 표현의 수위는 높은 편이다. 하지만 진한 딥키스와 처음 만나 하룻밤을 지내는 이야기는 파격적이지만 그것이 무리 없이 읽히는 것은 저 ‘섹스 앤 더 시티’가 무기처럼 들고 나왔던 그 솔직대담함 때문이다. 솔직한 주인공들의 대담한 이야기는, 오히려 감춰지고 숨겨짐으로써 구질구질해지는 멜로 드라마의 틀을 벗어나게 해준다.

이렇게 금요 드라마의 중심부에 과감한 변신을 시도하게 된 것은 그간의 금요일 밤 성인 드라마들이 어떤 한계를 보였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시청률도 시청률이지만 불륜드라마라는 낙인이 찍히면서 점차 화제에서 비껴나게 된 금요드라마는 잘 하면 불륜에서 연애로, 금요트렌드를 바꿀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드라마를 통해 제 2의 ‘연애시대’를 꿈꾸게 되는 것은 가장 비판받았던 금요 드라마를 가장 찬사 받는 명품 드라마 시간대로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그 역발상에 고개가 끄덕여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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