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짜’, ‘에덴의 동쪽’이 도박을 소재로 하는 이유

‘에덴의 동쪽’은 태백의 탄광촌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동철(송승헌)은 어린 시절, 그 탄광 속에서 죽은 아버지를 가슴에 묻고 살아간다. 그리고 한참의 세월을 돌아서 이동철은 동생 이동욱(연정훈)과 함께 그 자리에 서서 이 불모의 땅을 희망의 땅으로 바꾸고 싶다고 말한다. 사막 위에 라스베가스를 세운 것처럼.

‘에덴의 동쪽’의 배경이 태백인 것과 카지노 대부로 국회장(유동근)이 등장하는 것 그리고 이동철이 카지노 딜러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에덴의 동쪽’을 장악하고 있는 정서가 어린 시절 신태환(조민기)에 의해 갈갈이 찢겨진 가족 간의 절절한 그리움, 형제애 같은 것이기에, 이 카지노라는 소재는 그렇게 전면에 드러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 드라마를 움직이는 또 하나의 힘은 분명 이 카지노라는 도박의 세계에 있다.

“당신은 라이어스 포커(Liar's Poker)일 뿐이야.” 국회장의 딸 영란(이연희)이 이동철에게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단지 그가 딜러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라이어스 포커란 말 그대로 내 패를 숨기고 상대방의 패를 읽어 거짓말로 승리를 얻어내는 포커의 생리를 빗대 실제 사업의 세계를 설명한 말이다. 즉 ‘에덴의 동쪽’에서 이동철은 카지노판에서 뿐만 아니라 사업을 두고 벌어지는 신태환과의 대결구도 자체에서도 딜러인 셈이다. 바로 이 욕망을 꿈틀대게 하는 도박의 세계는 이동철의 복수극과 만나면서 이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힘이 된다.

‘에덴의 동쪽’이 카지노라는 배경을 깔고는 있지만 우회적으로 도박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면 SBS의 ‘타짜’는 그 속으로 뛰어들어가 보다 적나라한 도박의 세계를 그려낸다. 친구를 도와주기 위해 어느 날 발을 디딘 하우스에서, 새 가게를 얻기 위해 모아놓은 어머니의 돈까지 날려버린 고니(장혁)는 그 돈을 되찾기 위해 도박판을 전전한다. 생활형 타짜인 고광열(손현주)을 만나고 평경장(임현식) 밑에서 수련(?)한 고니는 결국 아귀와 맞설 운명에 처해있다.

‘타짜’를 끌어가는 힘은 사실상 ‘에덴의 동쪽’의 그것과 유사하다. 고니가 결국 하려는 것도 어머니에게 돌아가기 위해 돈을 버는 것이고,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의 원한을 갚는 것이다. 두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일찍부터 밑바닥 인생으로 내팽개쳐지고 그 바닥에서부터 복수심과 돈에 대한 욕망을 붙들고 한 계단씩 위로 올라간다.

이처럼 월화 드라마가 도박을 다루는 것은 그것이 우리네 실제 삶의 욕망들을 가장 단적으로 끄집어내 보여주기 때문이다. 돈의 세계가 지배한 세상, 바로 그 돈을 장악할 수 있는 고도의 심리게임들은 현대인들의 욕망을 자극한다. 하지만 통상적인 것이지만 대부분의 도박을 소재로 한 드라마들의 끝이 그다지 좋지는 않다는 것이다. 즉 도박은 욕망의 질주를 보여줄 수 있는 드라마의 좋은 소재이면서, 또한 욕망의 헛됨을 쉽게 드러낼 수 있는 소재이기도 하다. 월화 드라마들은 지금 바로 그 욕망에 푹 빠져있다.

‘타짜’, 아귀의 손아귀가 말해주는 것

선정적인 장면이라 할 수 있겠지만 ‘타짜’에서 손모가지를 걸고 행해지는 도박은 이 드라마의 백미라 할 수 있다. 보통의 도박이라면 돈만 잃고 나오면 될 일을 어째서 손모가지까지 걸게 되는 것일까. 여기에는 ‘타짜’가 말하는 이른바 ‘구라(도박판에서 상대방을 속이는 것)’의 세계가 끼여든다. 즉 ‘구라를 친 것이 발각이 되면’ 그 자리에서 손모가지를 잘라버린다는 것이다.

손모가지 자른다고 욕망이 끝날까
도박에 판돈 이외에 신체를 건다는 이 설정은 확실히 자극적이다. 이미 상영되어 대성공을 거둔 영화 ‘타짜’에서 아귀라는 캐릭터를 연기한 김윤석이 순식간에 스타덤에 오른 이유에는 그 섬뜩한 캐릭터가 한 몫을 차지했다. 아귀는 상대방의 돈만을 목적으로 도박을 하지는 않는다. 어떨 때는 그가 다른 타짜의 손모가지를 더 원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

드라마화 된 ‘타짜’에서 아귀(김갑수)는 이 면모를 먼저 드러내 보여주었다. 그는 자신의 경쟁자인 타짜 대호(이기영)를 끌어들여 손모가지를 걸고 순전히 복수를 위한 한 판을 벌인다. 그리고 그 대호의 손모가지를 자르기 위해 준비된 섬뜩한 도박은 부메랑처럼 아귀에게 되돌아와 그의 손모가지를 날려버린다.

그런데 왜 손모가지를 자르는가에 대한 의문을 품어볼 만하다. 그것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도박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만들어버린다는 징벌의 의미가 있다. 하지만 과연 손모가지를 자른다고 도박을 포기하게 될까. 아귀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지만, 손모가지와 도박의 포기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는 여전히 하우스(도박장)를 들락거리며 호구(돈을 잃어줄 대상)들의 돈을 갈취한다.

보이는 손과 보이지 않는 손
아귀는 직접 패를 들고 싸우는 도박 현장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있지만, 이 하우스 전체는 그의 손아귀에 들어있다. 보이지 않는 그의 손모가지가 하우스 전체를 놓고 도박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그는 보이지 않는 손모가지처럼 보이지 않는 존재로 이 세계를 장악하고 있다. 그의 손모가지(여기서는 얼굴도 포함된다)를 대신하는 손은 다름 아닌 영민(김민준)의 손이다.

따라서 ‘타짜’에는 두 개의 세계가 존재한다. 실제 삼팔광땡과 장땡을 들고 팽팽하게 맞서는 현장 도박의 세계가 있고, 그 도박의 세계 위에서 이뤄지는 작전 도박의 세계가 있다. 현장 도박의 세계가 눈에 보이는 손의 세계라면, 작전 도박의 세계는 보이지 않는 손모가지의 세계다. 즉 손이 없어도 도박이 이뤄지는 세계라는 말이다.

‘타짜’가 이 두 세계를 그리고 있다는 것은 이 드라마가 단순히 도박의 재미만을 추구하는 드라마가 아니라는 걸 말해준다. 순수한 의미(?)의 도박은 손의 경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도박은 상대방의 패를 읽을 수 있는 빠른 두뇌와 휘둘리지 않고 배팅을 걸 수 있는 배짱의 경기다. 그러나 ‘타짜’의 세계에는 두뇌와 배짱과 함께 손 기술이 들어간다. 물론 그 손 기술은 욕망의 상징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아귀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손이 없어도 이뤄지는 이 도박의 세계 속에서는 손 기술로 손모가지가 날아가도 여전히 손 기술은 사용된다.

타짜의 세계, 현실의 축소판
‘타짜’가 채용하고 있는 것은 도박이라는 소재, 즉 손의 세계지만, 그것이 말하려는 것은 도박 그 위에 존재하는 손이 없어도 여전히 존재하는 욕망이라는 괴물이다. 조금 비약해서 말한다면 이들이 드나드는 이 하우스는 지금 우리들이 살아가는 세계의 축소판이다. 돈 한 푼 없어도 일단 사고 싶은 욕망은 늘 존재하며, 사회는 그 욕망을 가능한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즉 눈에 보이는 돈(현금)이 없어도 눈에 보이지 않는 돈(신용)이 움직이는 욕망의 수레바퀴는 멈추지 않는다.

이 세계 속에는 늘 아귀 같은 존재가 판의 시스템을 장악하고 당신의 주머니를 노리고 있다. 당신이 이 시스템을 전혀 모르는 호구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쪽쪽 빨려 빈털터리가 될 때에서야 비로소 후회하게 될 지도 모른다. 또 정반대로 당신은 이 시스템 속에 들어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타짜가 되는 교육을 받고는 타인의 주머니를 노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타짜’에서의 하우스는 그 안으로 들어가느냐 마느냐의 선택의 기회라도 있지만, 현실이라는 하우스에서 선택의 기회 따위는 없다. 누구나 다 이 욕망의 수레바퀴 속에 던져지게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인정해야할 것이 있다. 안타깝게도 이 욕망의 하우스는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타짜’가 도박을 통해 보여주려는 세계는 바로 여기까지다. 그것은 도박이 옳으냐 옳지 않으냐 하는 윤리적인 문제가 아니다. 대신 바로 그 도박의 세계, 그 세계를 움직이는 보이는 손과 보이지 않는 손, 욕망이 바로 당신이 지금 살아가는 세계의 축소판이라는 것. 그것을 관조하게 하는 드라마가 바로 ‘타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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