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는 바뀔 수 있다...<또 오해영>의 사랑론

 

미래는 바뀔 수 있다. 종영한 드라마 <시그널>에서 그토록 많이 들었던 그 목소리가 tvN 월화드라마 <또 오해영>에서도 들려온다. 물론 <시그널>이 과거를 고쳐 미래를 바꾸는 설정이 판타지를 통해서였다면, <또 오해영>은 도경(에릭)이 갖고 있는 미래를 보는 능력 혹은 기시감을 통해서다. 도경은 이미 본 미래와 다른 말과 행동을 선택함으로써 그 미래를 바꾸게 됐다.

 

'또 오해영(사진출처:tvN)'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때 기시감 속에서 도경은 오해영(서현진)에게 미안하다. 아는 척해서라고 속내를 숨긴 채 말하고 있었지만, 그는 실제로는 신발 바꿔 신어. 발소리 불편하게 들려라는 말로 슬쩍 자신의 걱정하는 속내를 드러냈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항상 속내를 감추며 살아왔던 도경이 변화를 선택했다는 걸 보여준다.

 

도경이 변화하자 그 다음의 일들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기시감 속에서 오해영이 한태진과 손잡고 가는 장면은 두 사람이 거리를 둔 채 걸어가는 장면으로 바뀌었다. 병원에서 오해영을 재회한 도경은 또 기시감과는 다른 말을 건넸다. 늘 해왔던 미안하다는 말 대신 그는 미안하지만 후회하지 않는다는 솔직한 마음을 전했다.

 

반갑다. 나만 아프면 억울할 뻔 했는데 너도 아파서 반갑다. 시간을 다시 돌려도 난 네 결혼을 깰 거고 옆방에서 다시 만날 거다. 정말 미안한데 네 결혼 깬 것 하나도 안 미안하다. 미안한데 이게 진심이다. 너 안고 뒹굴고 싶은 것 참느라 병났다.” 이 말은 결국 오해영의 마음을 돌리게 만들었다. 병원을 나선 도경의 뒤로 한 달음에 달려오는 그녀의 발이 보였다. 두 사람은 결국 키스하며 다시 사랑을 확인했다.

 

<또 오해영>이라는 멜로드라마가 시청자들을 오리무중에 빠뜨리며 헤어 나올 수 없게 한 장치는 도경이 갖고 있는 미래를 보는 능력이다. 사실 그건 능력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증상에 가깝다. 그가 정신과의사 박순택(최병모)을 찾아와 상담을 하는 건 그래서다. 교통사고로 쓰러져 피를 흘리고 있는 도경의 모습이 그 기시감을 통해 보여지면서 시청자들은 그가 죽어가고 있고 그 시점에서 오해영과의 사랑을 회고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기시감이 생겨난다고 추측하게 했다. 그래서 일찌감치 새드엔딩에 대한 불안감이 생겨났던 것.

 

하지만 <또 오해영>은 이런 이미 결정된 운명에 수동적으로 흘러갈 수 있는 이야기를 능동적으로 바꾸었다. 도경의 선택에 의해 미래를 바꾸게 된다는 것이 이 드라마가 제시하고 있는 해결방식이다. 결국 도경의 기시감이 말해주는 건 미래가 마음이 그리는 그림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지금 내가 하는 선택 하나하나가 모여 미래를 구성한다는 것. 도경의 기시감이 주는 비극적인 상황들은 사실 그가 상처를 받을 지라도 속내를 드러내고 부딪치지 않고, 그저 상처받을 것이 두려워 스스로 예단한 미래 때문에 생겨난 일인 셈이다.

 

주치의인 박순택이 도경에게 인생은 마음에 대한 시나리오라고 말하듯 <또 오해영>은 우리의 마음과 그 마음이 선택하는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건네고 있다. 이런 다소 철학적인 이야기를 건네는 로맨틱 코미디가 과연 있었던가. 사랑을 두고 해피엔딩이냐 새드엔딩이냐만을 논하던 로맨틱 코미디가 차원을 훌쩍 뛰어넘어 마음과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마음을 통해 미래는 바뀔 수 있다. 이건 마치 멜로판 <시그널>을 보는 듯하다

<또 오해영>, 오해가 풀려도 비극은 끝나지 않는다

 

tvN <또 오해영>이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라고 생각했던 건 오해였던가. 그저 발랄하게만 느껴졌던 <또 오해영>에게서 진중한 비극의 냄새가 난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가녀린 존재로서의 인간의 운명이 그려내는 고통 같은 것이 배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오해영(사진출처:tvN)'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라면 분명한 악역이 존재해야하는 게 맞다. 하지만 <또 오해영>에는 악역이 잘 보이지 않는다. 물론 그냥 오해영(서현진)과 늘 비교되는 존재로 그녀를 괴롭게 만든 예쁜 오해영(전혜빈, 이하 전해영)이 있긴 하다. 하지만 전해영은 악역이라기보다는 밉상에 가깝다.

 

그녀는 이른바 예쁜 척 하는그런 캐릭터로 보인다. 가만있어도 남자들이 모여들고 늘 주목받는 존재이며, 사회생활에서도 부족함 없이 잘 나가는 인물이다. 이런 존재는 드라마 여자 캐릭터로서는 밉상으로 그려지기 마련이다. 어딘지 자기중심적인 캐릭터인데다 드라마 시청자들의 마음을 빼앗는 남자주인공을 현혹(?)시키는 존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전혜영은 도경(에릭)이 오해영의 남자친구였던 태진(이재윤)을 파산시킨 것을 그가 자신을 사랑했다는 증거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이 대목은 그녀가 얼마나 자기중심적인가를 드러내는 장면이다. 그래도 오해영에게 친구라고 늘 밝은 얼굴로 다가가곤 했던 그녀가 아닌가. 하지만 그녀와 도경의 불행을 알면서도 전혜영은 자신의 입장만을 드러낸다.

 

그래서 밉상이지만 그렇다고 전혜영이 악의를 가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녀 역시 겉으로는 늘 밝은 표정을 짓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아픔이 있기 때문이다. 도경의 어머니의 노골적인 반대는 전혜영이 도경과의 결혼을 포기하게 된 이유가 되었다. 게다가 그녀는 자신을 살갑게 챙겨주는 가족이 없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아버지라고 있는 장회장(강남길)은 도경의 엄마와 사귀면서 전혜영에게 더 이상 보지 말자고 말한다. 또한 도경과 가까이 지내지 말라고도. 전혜영 역시 의지할 데 없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또 오해영>의 갈등이 선명한 악역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이 드라마가 궁극적으로 하려는 이야기인 오해에서 비롯되는 것이란 점은 이 드라마를 그저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로 바라보게 하지 않는다. 제목과 인물의 이름이 말해주고 있는 것처럼 이 드라마는 오해가 얼마나 인간을 비극으로 몰아가는가를 담고 있다. 거기에서 느껴지는 건 운명 앞에 스러지는 인간들에 대한 연민과 동정이다.

 

전혜영이 결혼식 당일 나타나지 않은 것에 대해 도경은 깊은 오해를 했고 분노했다. 그래서 전혜영이 새로 사귄다는 남자 이야기를 듣고 그 남자를 파산시켰다. 하지만 그건 오해였다. 그 남자, 태진은 전혜영의 남자가 아니라 오해영의 남자였던 것. 그래서 태진 역시 결혼식 전날 오해영에게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파혼 선언을 하고 구치소에 들어간다.

 

오해영은 태진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다고 절망했지만 그것 역시 오해. 그녀 앞에 다시 나타난 도경은 자신이 저지른 원죄 때문에 오해영에 대한 연민과 동정의 마음에서부터 시작해 점점 사랑이 싹텄지만 나중에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오해영은 도경의 접근을 의도적인 것으로 오해한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태진 역시 그렇게 오해하지만 그것이 결국은 똑같은 이름 때문에 생겨난 오해라는 걸 그도 오해영도 알게 된다.

 

이렇게 모든 것이 오해로부터 시작되었고 그래서 오해영도 전혜영도 또 도경도 태진도 비극적인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안타까운 건 이 비극적 상황이 오해가 풀린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오해로 시작되었다고 해도 그 과정에 보였던 많은 행동들이 그 진심을 의심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오해영은 여전히 도경이 자신에게 다가온 이유의 발단이 전혜영을 그토록 사랑했고 그래서 미워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은 전혜영의 생각도 마찬가지다. 도경과 태진은 어쩌다 이 오해로 빚어진 사건의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되어버렸다.

 

이처럼 악역이 존재한다기보다는 인간이 어쩔 수 없는 운명이나 한계 앞에서 비극을 겪게 된다는 점에서 <또 오해영>이 보여주는 갈등은 훨씬 근원적인 면이 있다. 마치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들처럼 인물들은 그 작은 오해로도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존재로서 고통 받는다. 그걸 전지적 시점에서 바라보는 시청자들은 연민과 동정을 느끼게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또 오해영>이 그리스 비극이 가진 힘을 닮은 구석이다.

 

그저 작은 로맨틱 코미디로 시작했던 <또 오해영>은 그래서 이제 인간의 운명을 슬쩍 들여다보는 비극의 틀로 확장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이 드라마를 그저 달달한 남녀 관계를 다루는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로만 치부했던 것 역시 오해가 아니었나 싶다. 물론 그렇다고 이 드라마가 비극적 결말로 치닫는 걸 바라는 건 아니지만.

잘나가는 로맨스, 무얼 말하는 걸까

 

한때는 tvN <시그널> 같은 스릴러 장르가 드라마의 중심축을 이뤘다면 KBS <태양의 후예> 이후로 현재의 tvN <또 오해영>에 이르기까지 달달한 로맨스 장르가 그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최근 방영되고 있는 SBS <미녀 공심이>MBC <운빨로맨스>는 물론이고, 앞으로 방영될 KBS <함부로 애틋하게>, <구르미 그린 달빛>이나 SBS <보보경심려>도 결국 로맨스물이다. 김우빈과 수지, 박보검과 김유정 그리고 이준기와 아이유. 그 캐스팅만 봐도 달달함이 벌써부터 느껴진다.

 

'미녀 공심이(사진출처:SBS)'

스릴러물이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 끈 건 우리네 사회 현실과 법 정의의 문제를 이들 드라마들이 정확히 꿰뚫었기 때문이다. <시그널>은 여러 미제사건들을 건드렸지만 마지막에 가면 결국 권력의 문제로 귀결된다. 가진 자들은 위법한 행위를 하고도 버젓이 살아가고 못 가진 자들은 억울한 죽음을 당하고도 진실조차 규명 받지 못한다. 끝까지 진실을 향해 온 몸을 던지는 이재한(조진웅) 같은 형사에 대한 판타지가 만들어지는 건 당연한 귀결이다.

 

하지만 스릴러물이 끄집어내는 현실이란 제 아무리 판타지적인 해결을 보여준다고 하더라도 때로는 제시되는 것만으로도 불편하고 보기 어려워질 수 있다. 특히 현실이 견딜 수 없도록 갑갑해지는 상황이라면 굳이 그런 현실을 드라마를 통해서 또 확인하는 것이 못내 고통스럽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이렇게 해서 나오게 된 것이 이른바 사이다 드라마들에 대한 갈증이다. 물론 사이다 드라마라고 해서 판타지만 나오는 게 아니다. 거기에도 현실이 들어가지만(또 꼭 그래야 공감대를 가져간다) 그 고구마 현실의 답답함의 분량은 점점 줄어들고 대신 그걸 통쾌하게 해결하는 사이다 판타지 분량이 늘어나는 게 요즘 드라마의 추세다.

 

과거 직장인들의 애환을 현실적으로 그린 tvN <미생>이 큰 화제가 되었지만, 어언 1년이 지난 후 그 직장의 문제를 다룬 JTBC <욱씨남정기>가 이것을 코미디로 풀어냈다는 걸 상기해보라. 현실적인 문제들은 두 드라마가 모두 진중하게 소재로서 다루었지만 지나친 무거움보다는 시원스런 판타지가 <욱씨남정기>에 보다 전면에 깔려 있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시청자들의 달라진 요구사항에 따라 최근 주목받는 로맨틱 코미디들은 과거와 어떤 다른 점들을 보이고 있을까. 그것은 <욱씨남정기>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판타지와 현실을 섞고 있다. 즉 최근 방영되고 있는 <미녀 공심이>는 정반대로 로맨틱 코미디 장르를 표방하지만 그 안에 현실적인 코드들을 집어넣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심이(민아)는 단태(남궁민)와 준수(온주완) 사이에서 밀고 당기는 달달한 멜로를 보여주지만 정작 자신은 아르바이트 하다가 갑질 하는 사모님에게 구타당하기도 하고, 비서로 채용됐다가 일방적으로 해고당하기도 한다. 그런 그녀가 단태를 찾아와 그가 주었던 씨앗에 자신이 그토록 물을 열심히 주는데도 왜 자라지 않냐고 토로하는 장면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만든다.

 

<미녀 공심이>의 이야기 구조는 현실에서의 어려움을 겪는 여자 주인공과 그녀를 든든히 안아주는 남자주인공의 이야기를 통해 현실과 로맨스를 엮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최근 화제를 모으고 있는 tvN <또 오해영>에서도 동일하게 보이는 이야기 구조다. 사회생활에서 예쁜 오해영(전혜빈)과 비교당하고 무시당하기 일쑤인 그냥 오해영(서현진)은 도경(에릭)을 통해 이해받는다.

 

로맨틱 코미디가 현실과 엮어지며 만들어낸 이러한 새로운 드라마 공식은 결국 현실과 싸우는 문제해결이 아니라 일종의 사적인 사랑으로의 도피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판타지가 더 많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달달함의 연속이지만 그 기저에 깔려 있는 현실 문제는 바뀌지 않는다는 점에서 현실성을 유지한다.

 

지금의 시청자들은 지독한 현실이든 사랑이든 어떤 식으로도 판타지를 달라고 말하는 것 같다. <미녀 공심이>의 공심이나 <또 오해영>의 오해영은 모두 어차피 현실은 바뀌지 않을 것이고 그러니 잠시 동안이라도 자신을 이해해달라고 강변한다. 심지어 오해영은 사랑은 바라지도 않는다. 심심하다!”고 외쳐 그걸 보는 시청자들의 마음을 울렸다.

 

이제 사랑과 성공을 모두 쟁취하는 신데렐라 따위는 더 이상 공감 받지 못하는 시대다. 그러니 성공은 저만치 제쳐두고 그나마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사랑으로 위안 받으려는 것이 아닐까. 물론 그 사랑이라는 것도 성공만큼이나 현실은 냉혹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지만.

<운빨로맨스>, 어째서 <또 오해영>이 못되는 걸까

 

MBC 수목드라마 <운빨로맨스>의 시청률은 갈수록 떨어진다. 첫 회는 황정음, 류준열이라는 캐스팅과 동명 원작 웹툰의 기대감 때문에 10.3%(닐슨 코리아)로 시작했지만 3회 만에 8%로 떨어졌다. 이제 본격적으로 로맨스가 시작되는 시점이기 때문에 제대로 인물에 몰입되었다면 시청률이 올라야 하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게 지금 현재 <운빨로맨스>가 처한 현실이다.

 

'운빨로맨스(사진출처:MBC)'

tvN 월화드라마 <또 오해영>이나 SBS 주말드라마 <미녀 공심이>가 로맨틱 코미디의 부활을 알리고 있는 요즘 어째서 <운빨로맨스>는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걸까. 같은 로맨틱 코미디라고 해도 등장인물에 대한 공감대가 크지 않은 점이 가장 큰 문제로 지목된다. 오해영(서현진)이나 공심이(민아)를 떠올려보면 이 인물들이 가진 사회적 공감대가 크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인물과 집안과 스펙으로 비교하는 사회에서 소외된 캐릭터들. 하지만 <운빨로맨스> 심보늬(황정음)에게서는 그런 현실감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그녀가 처한 현실이 결코 쉽지 않다는 건 공통점이다. 그녀는 교통사고를 당해 식물인간 상태로 병원신세를 져야 하는 동생을 둔 인물이다. 마침 최고의 게임회사인 제제팩토리에서 입사시험을 보던 중에 당한 사고였다. 그래서 그녀는 그 회사에 합격하고도 입사하지 않고 작은 게임회사인 대박소프트에 들어간다. 하지만 그 회사는 망하기 일보직전이다.

 

사실 이러한 심보늬라는 인물의 설정은 그 캐릭터에 대한 공감대를 상당 부분 흐트러뜨린다. 즉 마침 제제팩토리 시험 중에 당한 동생의 사고라는 것이 그녀가 그 회사를 저버리는 이유가 될까 싶은 것이다. 현실적이라면 병상에 있는 동생을 책임지기 위해서라도 그녀는 이 회사에 들어가는 것이 상식적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상식적인 선택을 하지 않는다.

 

그렇게 된 이유로 제시되고 있는 건 그녀의 캐릭터다. 그녀는 운수에 민감하다. 그녀가 만든 기획안이 제제팩토리 제수호(류준열)의 눈에 들어 입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지만 그녀는 여기서도 갈등한다. ‘재수 없는 회사에 들어가는 게 꺼려진다는 이유다. 결국 그녀가 그 회사에 들어갈 결심을 하게 되는 건 무속인 아저씨 구신(김종구)의 말 한 마디 때문이다. 거기에 그녀의 액운을 풀어줄 호랑이띠 남자가 있다는 말.

 

물론 운에 이토록 집착하는 캐릭터가 우습긴 하다. 게다가 호랑이띠 남자라면 액운을 풀기 위해 누구든 하룻밤을 불사하려는 심보늬와, 그런 운수 따위는 결코 믿지 않을 이성을 장착한 무성애자 제수호의 조합은 흥미로운 면이 있다. 하지만 이 웃음이 현실적인 공감대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지는 의문이다. 너무 운에 집착하며 그것 때문에 심지어 비현실적인 선택을 하기도 하는 심보늬라는 캐릭터는 그만한 현실적인 이유를 제시해내지 못하고 있다.

 

어쩌다 심보늬는 이토록 운에 집착하게 되었을까. 도대체 한참 능동적인 선택을 해야 할 청춘이 결국은 운빨이라며 일종의 자포자기를 하는 모습은 왜 일어나는 걸까. 지독히 불운한 청춘이 왜 그 불운과 맞서려 하지 않고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운수에 집착하는 걸까. 물론 이런 질문들은 드라마를 무겁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아도 최소한의 공감대를 가져갈 수 있는 캐릭터에 대한 이런 질문들에 드라마는 살짝이라도 답해줘야 하지 않을까.

 

황정음과 류준열은 전작에서 그러했듯이 이 작품에서도 열일하는 연기자들이다. 특히 황정음은 어찌 보면 감정 선이 일정하지 않은 이 드라마에 그 누구보다 열심히 몰입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제 아무리 연기자들이 열심히 해도 캐릭터가 그걸 받쳐주지 못하면 그다지 효과가 나오지 않는다. 무엇보다 고개가 끄덕여질 수 있는 인물들을 세우는 게 우선이다. 그들이 만들어가는 알콩달콩한 케미는 그 공감대 위에서만이 힘을 발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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