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한수>, <군도>의 이슈화, 할리우드를 잠재운 까닭

 

<트랜스포머 : 사라진 시대(이하 트랜스포머4)>가 개봉했을 때까지만 해도 이번 여름철 블록버스터 시장은 또 할리우드가 장악할 것이라는 예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압도적인 비주얼에 개봉했다 하면 관객수 신기록을 경신해버리는 <트랜스포머> 시리즈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혹성탈출 : 반격의 서막(이하 혹성탈출)>이 가세하면서 할리우드의 장악은 더 공고하게 여겨졌다.

 

'사진출처:영화 <트랜스포머:사라진 세계>'

하지만 이런 예측은 한국영화들이 하나 둘 블록버스터 시장에 선을 보이면서 여지없이 깨져버렸다. <트랜스포머4>가 워낙 중국시장을 겨냥했기 때문에 우리네 관객에게는 그다지 어필하지 못한 면이 강하지만 그래도 이제 5백만 관객을 조금 넘어섰다는 건 그리 좋은 성적은 아니다. 이것은 <혹성탈출>도 마찬가지다. 좋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관객수는 현재 4백만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반면 19금이라는 족쇄에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신의 한수><트랜스포머4><혹성탈출> 사이에서 35십만 관객을 돌파한 건 대단한 성과다. 또한 개봉하면서부터 흥행 돌풍을 일으킨 <군도 : 민란의 시대>가 순식간에 4백만 관객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군도> 역시 평단이나 관객의 평가가 그리 좋지 못했던 건 마찬가지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과거라면 단순히 한국영화라는 프리미엄이 있었겠지만 요즘은 한국영화니 더 봐달라는 식은 마케팅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다. 그러니 작품의 완성도에 있어서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으면서도 괜찮은 성적을 낸 <신의 한수><군도>는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는 최근 변화한 영화 마케팅 방식이 한 몫을 차지한 것으로 보인다.

 

<신의 한수><군도>가 보여준 것은 이슈화의 성공이다. 좋은 평가가 나오던 좋지 않은 평가가 나오던 일단 말이 많이 나오는 작품에 관객들이 관심이 가는 건 당연한 이치다. <군도>의 바람몰이는 본격적인 이번 여름 우리 블록버스터의 첫 걸음을 기화로 활활 타올랐다. 평가는 호불호가 갈렸지만 그럼에도 <군도>는 일정한 완성도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 호불호를 호기심으로 바꾸며 끊임없이 관객들을 유입시킬 수 있었다.

 

<군도>의 이슈화가 워낙 강하다 보니 할리우드 영화들의 이야기는 저만치 멀어져 버렸다. 여기에는 계속 연이어 개봉되는 <명량>, <해적>, <해무> 같은 한국영화의 라인업으로 더 힘을 받았다. <명량><군도>의 비교점을 만들면서 벌써부터 흥행 대박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중요한 건 영화가 일정 부분의 완성도를 유지하고 있다면 이 우리 블록버스터 이슈화 바람에 쉽게 올라탈 수 있다는 점이다.

 

생각해보면 <트랜스포머><혹성탈출> 그리고 <드래곤 길들이기> 같은 할리우드 대작들이 쏟아져 나오는 와중에 이 정도의 선전을 하고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여기에는 논란이나 호불호마저 이슈화하고 잘 꾸며진 라인업으로 밀고 당겨주는 마케팅의 힘이 느껴진다. 과거 할리우드 대작들이 들어오면 거의 초토화되어버렸던 극장가를 생각해보면 확실히 최근 들어 제작뿐만 아니라 이제 마케팅적인 면에서도 성공하고 있는 우리 영화의 달라진 면모를 볼 수 있다.

 

<군도>의 평가와 다른 흥행돌풍, <명량>에 미칠 효과

 

영화 <군도 : 민란의 시대(이하 군도)>의 평점은 6점대까지 떨어졌다. 이례적으로 관객과 평단의 평가가 거의 비슷하다. 항간에는 격한 목소리로 <군도>를 비판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만큼 기대가 컸다는 얘기겠지만 실상 <군도>의 기획은 엇나간 부분이 없지 않다. 너무 스타일로 폼을 잡다 보니 정작 <군도>의 핵심이랄 수 있는 민중의 정서가 빠져버린 탓이다.

 

'사진출처:영화 <명량>'

만일 민중의 적으로 묘사된 조윤 강동원과 그와 맞서 싸우는 의적 도치 하정우의 스타일리쉬한 액션이 아니라 봉기하는 민중의 한 사람이었던 장씨 역할의 김성균이 좀 더 부각됐으면 어땠을까. 만일 이 스타일이 잘 빠진 액션 활극을 민중들의 분노와 좀 더 끈끈하게 엮어냈다면 이 작품은 더 놀라운 결과를 만들었을 지도 모른다.

 

마케팅적으로 보면 4일 만에 2백만 관객 돌파 같은 속도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나 입소문을 타고 그 흥행이 유지되느냐가 더 중요하다. <군도>는 그런 점에서 불리한 입장이다. 보고 나온 관객과 평단 모두 좋지 않은 평가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평가가 좋지 않은데도 흥행속도가 빨라지는 이유는 뭘까? 가장 큰 것은 이 영화가 적어도 확인하고 싶은 욕구를 건드린다는 점이다. ‘민란의 시대라는 거대한 타이틀이 걸려 있는데다 포스터를 뚫고 나올 듯한 하정우의 강렬한 인상과 칼날처럼 날카로운 이미지를 보여주는 강동원을 보고 나면 왜 이렇게 평가가 안 좋지?”하는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드라마라면 계속 이어보는 것이기 때문에 낮은 평가는 다음 시청률에 반영돼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기본적으로 직접 확인해봐야 그 결과를 평가할 수 있는 장르다. 또 누군가 재미없다고 해도 또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재미있을 수 있는 게 영화다. 그러니 더더욱 타인의 평가가 자신의 기대치를 무너뜨리는 것에 대해 오히려 더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군도>가 이번 우리네 블록버스터의 첫 발을 끊은 것도 흥행돌풍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방학이 시작되는 시점이고 영화관으로 사람들이 발길을 모으는 블록버스터의 계절이 막 열리는 그 시기에 <군도>가 그 첫 번째 갈증을 풀어주는 영화로 개봉된 것은 마케팅적으로 대단히 유리한 상황이다. 물론 <트랜스포머3><혹성탈출2> 같은 만만찮은 경쟁작들이 이미 포진했지만 우리 영화에 대한 대중들의 기대감은 조금 더 높은 편이다.

 

<트랜스포머3>가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듯한 인상이 짙고, <혹성탈출2>도 작품은 좋지만 전편만 못하다는 평가도 <군도>에게는 좋은 결과로 작용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군도>에게도 앞으로 똑같이 해당되는 문제로 다가올 가능성이 높다. 즉 곧 개봉할 <명량>이 이미 만들어진 기대감 위에 관객과 평단의 좋은 평가까지 갖게 된다면 대중들의 시선은 금세 <명량>쪽으로 기울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군도>를 보고 어떤 실망감을 느낀 관객이라면 그 보상욕구로서 <명량>을 찾아볼 가능성도 높다. 올 여름 개봉을 앞둔 우리네 영화들이 블록버스터인데다가 같은 역사극이라는 점은 이런 상관관계를 만들어낸다. <군도>를 보며 액션활극의 장쾌함은 느꼈을지 몰라도 정서적인 울림을 갖지 못한 관객은 <명량>의 이순신의 대사 한 마디가 엄청난 끌림으로 다가올 수 있다.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아있사옵니다.” 이 대사가 만들어내는 정서적 울림은 과연 <군도>의 흥행돌풍을 압도할 수 있을까. <명량>의 폭풍전야가 기대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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