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로드라마에서 키스신은 어떤 의미인가

 

멜로드라마에서 키스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 혹자는 사실상 멜로드라마를 보는 이유가 남녀가 키스하는 그 순간의 달달함 때문이라고까지 말하기도 한다. 그만큼 멜로드라마에서의 키스는 남녀의 관계가 좋은 감정 이상의 임계점을 넘기는 순간이고, 그로부터 멜로 특유의 행복감이 생겨나는 지점이며 또한 불안감이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닥터스(사진출처:SBS)'

최근 부쩍 많아진 멜로드라마들에서 키스 장면이 만들어내는 관심거리와 화제는 그 드라마의 인기의 척도처럼 얘기된다. 이를테면 종영한 tvN <또 오해영>에서 오해영(서현진)과 박도경(에릭)이 하는 키스신은 서로 치고 받는 격렬한 느낌을 줌으로써 큰 화제가 되었다. 두 사람의 쌓여 있던 감정들과 그것이 풀어내지는 과정을 그런 독특한 키스신이 담아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SBS 월화드라마 <닥터스>에서 홍지홍(김래원)과 유혜정(박신혜)이 하는 키스신은 조금 어색하고 서툴러 더 설레는 장면이 되었다. 즉 한 번도 키스 같은 건 해본 적 없는 사람들처럼 떨림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 키스신은 <닥터스>가 그려나가는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변화를 주며 성장해가는 그 과정에 잘 걸 맞는 것이었다. 키스신조차 기분 좋은 경험과 배움 같은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MBC 수목드라마 <W>의 키스신은 작품의 성격에 맞게 맥락 없이자주 벌어진다. 즉 극중 여주인공인 오연주(한효주)가 웹툰 속 인물인 강철(이종석)에게 뜬금없이 키스를 해대는 것. 물론 그 이유는 그녀가 웹툰에서 빠져나와 현실로 돌아오려는 목적 때문이지만, 그런 잦은 키스신을 통해 두 사람의 관계는 급진전되었다. 유머 있고 위트 있는 키스신이 작품의 묘미를 한층 높여준 사례가 아닐 수 없다.

 

KBS 수목드라마 <함부로 애틋하게>의 키스신은 자못 비장하다. 시한부의 삶을 살고 있는 신준영(김우빈)은 자신이 점점 사랑하게 된 노을(수지)을 자꾸 밀어내다가 결국 기습키스를 하게 된다. 이 키스신은 신준영이 참다 참다 못해 내적으로 응축된 그 사랑을 폭발적으로 풀어내는 장면으로서 임팩트가 있게 다가온다.

 

tvN 월화드라마 <싸우자 귀신아>에서는 자신이 왜 죽었는지 그 기억을 잃어버린 귀신인 김현지(김소현)가 귀신 보는 박봉팔(옥택연)과 키스를 우연히 하게 됐을 때 그 기억이 떠올랐다는 사실 때문에 나중에는 의도적으로 키스를 하게 된다. 일종의 핑계처럼 보이지만 이런 설정이 의외로 선선히 키스신을 가능하게 해 남녀의 관계를 더 가깝게 만드는 장치인 건 분명하다.

 

한편 KBS 월화드라마 <뷰티풀 마인드>에서는 공감 능력이 없는 이영오(장혁)가 계진성(박소담)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그걸 받아들이는 답변으로서 계진성이 이영오에게 키스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은 아무래도 공감 능력이 없어 사랑의 감정은 물론이고 표현이 익숙하지 않은 이영오에게 계진성이 한 걸음 다가가는 의미로서 키스신이 그 역할을 해내고 있다.

 

멜로드라마에서 키스신은 이처럼 그저 연출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작품의 성격과 내용에 맞게 변주된다. 때론 의도적으로 관계를 급진전시키기 위해 다양한 설정들을 통해 넣기도 하지만, 때론 향후의 폭발적인 힘을 내기 위해 오히려 자제되기도 한다. 어떤 면에서 보면 키스신의 한 장면을 제대로 이해하면 그 멜로드라마의 성격을 볼 수도 있다고 여겨진다. 키스신의 반응은 그 드라마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도를 고스란히 드러내준다.

<닥터스>, 윤균상의 직진 외사랑에 매료되는 까닭

 

정말 사랑해서 잡고 싶은 사람이라면 지금 그 인생에 들어가야죠. 타이밍 좋은 건데.” 자신이 사랑하고 있는 유혜정(박신혜)에게 정윤도(윤균상)는 홍지홍(김래원)에게 연락하라며 그런 조언을 던진다. 사실 이런 마음을 갖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홍지홍은 자신의 연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닌가.

 

'닥터스(사진출처:SBS)'

SBS 월화드라마 <닥터스>에서 사랑의 주역은 유혜정과 홍지홍이지만 그만큼 빛나는 인물이 바로 정윤도다. 유혜정은 자신이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 한 사람은 홍지홍일 거라고 정윤도에게 얘기하지만, 그는 그렇다고 해도 자신은 자신의 사랑을 다할 것이라고 유혜정에게 털어놓는다. 받을 걸 전제로 하지 않는 일방통행의 사랑. 정윤도의 그것은 외사랑이다.

 

<닥터스>라는 드라마에서 정윤도 같은 인물은 중요하다. 어찌 보면 유혜정과 홍지홍의 사랑은 우리가 흔히 멜로드라마에서 봐왔던 그런 사랑이다. 하지만 정윤도 같은 인물이 보여주는 사랑은 <닥터스>에 독특한 온기를 만들어낸다. 만일 전형적인 멜로드라마의 구도처럼 정윤도가 홍지홍과 유혜정을 사이에 두고 치열한 각을 세운다면 어땠을까. <닥터스> 특유의 따스함은 사라졌을 게다.

 

물론 이런 전형적인 멜로드라마 속의 각을 세우는 인물이 <닥터스>에 없지는 않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진서우(이성경). 서우는 학창시절에는 홍지홍을 또 현재는 정윤도를 좋아하지만 그 두 사람이 모두 유혜정을 바라본다는 사실에 피해의식을 갖는다. 그래서 괜스레 유혜정에게 화풀이를 해대지만 그렇다고 사랑의 방향이 바뀌지는 않는다. 하지만 진서우 역시 전형적인 멜로드라마의 틀에서는 벗어난다. 그녀는 이러한 유혜정에 대한 피해의식이 터무니없는 것이란 걸 깨닫는다.

 

정윤도라는 캐릭터가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건 자신의 마음 속으로 들어왔지만 연인이 될 가망이 전혀 없는 유혜정에게 끝까지 진심을 다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을 좋아하고 있는 진서우의 마음 또한 배려해준다는 점이다. 게다가 연적일 수 있는 홍지홍과는 대놓고 유혜정에 대한 마음을 드러내면서도 마치 형 동생 같은 친밀한 관계를 보여준다. 이것은 정윤도라는 인물의 따뜻한 인성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닥터스>는 의학드라마지만 사랑에 대한 담론들을 담고 있는 드라마다. 사랑은 타인을 위해 변화하는 것이라며 유혜정은 홍지홍에게 변화하라고 대놓고 요구하다가, 나중에는 그 자체를 사랑하겠다고 마음먹는다. 홍지홍은 사랑하는 이에게 자신이 하고픈 대로 연락하는 것보다 차라리 연락이 오는 걸 기다리는 마음이 더 진정한 사랑이라는 걸 깨닫는다. 늘 홀로 결정하며 살아와 마음을 좀체 열지 않는 홍지홍에게 유혜정은 그 마음 속으로 들어가겠다고 한다. 모두가 서툴지만 서로가 만나 변화하고 성장시키는 사랑. 이들의 사랑은 마치 서로가 서로를 치유하는 과정처럼 보인다.

 

그 속에서 정윤도는 이상적인 인물이다. 자신의 사랑이 빗나간다고 해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그런 인물. 또 자신의 그 사랑으로 인해 누군가 아픔을 겪게 된다면 그것 또한 배려하는 인물. 그러면서도 그것에 엄살 부리지 않고 늘 밝고 긍정적으로 부딪치며 살아가는 그런 인물. 이러니 그의 직진 외사랑에 여심이 설레지 않을 수 있을까. 어쩌면 하명희 작가가 생각하는 진정한 사랑의 이상을 보여주는 인물이 바로 그가 아닐까 싶다.

<닥터스>, 상투성을 깨는 하명희 작가의 좋은 시선

 

병원에서의 직진 로맨스와 34각 멜로, 병원 권력을 잡기 위한 대결 구도, 수술대에서 돌아가신 할머니의 사인에 의혹을 품고 그 진짜 이유를 찾기 위한 추적. SBS <닥터스>가 다루는 소재들은 의학드라마에서 늘 봐오던 것들이다. 로맨스야 심지어 가운 입고 연애한다는 비판까지 들을 정도로 많이 나온 소재이고, 권력 대결은 <하얀거탑> 이후 의학드라마의 전가의 보도처럼 등장하는 소재다. 여기에 죽음의 사인을 추적하는 이야기 역시 그리 새롭다 말하긴 어렵다.

 

'닥터스(사진출처:SBS)'

하지만 이상한 일이다. <닥터스>는 이처럼 어찌 보면 상투적인 소재들을 다루면서도 전혀 상투적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어떤 상황에 들어가면 신선한 느낌마저 준다. 예를 들어 이미 홍지홍(김래원)과 유혜정(박신혜)이 서로 좋은 감정을 드러내고 남녀로서 가까워지고 있지만, 유혜정에게 공공연히 호감을 드러내는 정윤도(윤균상)와 또 그를 좋아하는 진서우(이성경)의 멜로구도를 보자. 이건 틀에 박힌 4각 구도가 아닌가.

 

하지만 그 4각 구도가 보여주는 양상은 여타의 멜로드라마들이 그려낸 것과는 너무나 다르다. 정윤도는 유혜정과 홍지홍이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발전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자신의 연정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걸 질시하기보다는 오히려 대놓고 틈만 보이면 자신이 비집고 들어갈 거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연적이라고 할 수도 있는 홍지홍에게 마치 동생처럼 밥 사라고 투덜대기도 한다. 이들의 멜로 관계는 그 속내를 다 알지만 질척임 같은 것도 없고 작가가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갈등 같은 건 더더욱 없다.

 

정윤도를 좋아하지만 그가 유혜정에게 호감을 보이자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내는 진서우라는 캐릭터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는 이 드라마에서 자기중심적인 모습으로 밉상 캐릭터의 전형을 보여주지만 그렇다고 전형적인 4각 멜로에서 보여주는 그런 식의 폭주를 하지는 않는다. 그저 상황과 자라온 환경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을 뿐, 태생적으로 구제불능 캐릭터처럼 보이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녀 주변에 피영국(백성현) 같은 친구가 있어 그녀를 이해의 관점으로 바라봐주는 건 이 캐릭터에 대해 작가가 역시 얼마나 애정을 갖고 있는가를 드러낸다.

 

병원 권력을 잡기 위해 홍두식(이호재)과 진성종(전국환)이 대립하고 그래서 홍두식은 진성종의 얼굴을 주먹으로 가격하기도 하지만 두 사람은 본래 친구관계였다는 걸 끝내 버리지 않는다. 재수술을 앞두고 있는 진성종에게 홍두식이 면회 오자 그는 얼굴은 괜찮냐고 묻는다. 그러면서도 홍두식은 진성종의 비자금을 알고 있다며 각을 세운다. 사적으로는 친구 관계지만 공적으로는 대립적인 관계라는 게 둘 사이에서는 공존한다.

 

이 이야기를 들은 그의 아들 진명훈(엄효섭)수술이 잘못 됐으면 좋겠다고 말하자 진성종은 발끈하며 그래도 어떻게 그렇게 말하냐고 오히려 자식을 질책하는 대목 역시 독특하다. 흔한 병원 권력 투쟁의 이야기라면 이 진성종-진명훈 부자가 권력 쟁취를 위해 막나가는 그런 장면들이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닥터스>가 보여주는 인물들은 그와는 사뭇 다른 양상들을 보여준다.

 

도대체 이런 상투적 소재들 속에서도 상투성을 뛰어넘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그것은 이 드라마의 주제이기도 하면서(이 드라마는 결국 사람과의 관계가 그 사람에게 영향을 미쳐 변화를 만들어낸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하명희 작가가 일관되게 추구해온 남다른 인물관에서 비롯된다.

 

하명희 작가는 심지어 불륜 속에서도 그 사람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들을 애써 찾아낼 정도로 인물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보여주는 작가다. 그러니 우리가 흔히 갈등을 부추기기 위해 인물들이 폭주하는 그런 막장적인 상황 속에서도 전혀 다른 이야기가 그려진다. 우리가 그저 극적 전개를 위한 악역으로 치부해온 인물들도 그 속으로 들어가 이해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달리 보이기 때문이다.

 

진서우라는 밉상 캐릭터에게 홍지홍이 난 네 담탱이야. 네가 잘 되길 빌어.”라고 말하는 대목은 그래서 마치 작가의 목소리처럼 느껴진다. 그녀는 이 드라마의 대표적인 밉상이지만 그래도 작가는 끝까지 그녀가 좋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좋은 영향을 통해 변화할 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닥터스>는 그래서 의학드라마지만 환자를 고치는 이야기라는 의미에서의 의학드라마라기보다는, 의사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어떻게 좋은 관계들을 통해 치유 받을 수 있는가를 다루는 의학드라마처럼 보인다. 유혜정은 그렇게 나락에서 홍지홍을 통해 구원받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렇다고 인물의 구원이나 성장이 교사가 학생에게 주는 것 같은 그런 일방향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드라마는 말한다. 다시 의사가 되어 유혜정을 만난 홍지홍은 그녀에게 기대는 법을 배우라고 한다. 홀로 서는 일에만 익숙했던 유혜정의 삶은 그것 때문에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는 걸 홍지홍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유혜정은 홍지홍에게 힘든 일도 모두 공유하자고 말한다. 홍지홍 역시 모든 걸 혼자 떠안고 결정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결국 두 사람은 일방적으로 누가 누구에게 도움을 받는 그런 관계가 아니다. 서로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서로가 변화하고 성장한다. 뻔한 상투성의 소재 속에서도 <닥터스>가 주는 따뜻함과 위로, 위안 나아가 구원 같은 느낌은 바로 이 하명희 작가의 사람을 바라보는 남다른 시선에서 비롯되고 있다

일주일 내내, 드라마는 콩 볶는 중

 

월화드라마 대전에서 SBS <닥터스>KBS <뷰티풀 마인드>의 성패를 가른 건 무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로 지목되는 건 바로 멜로다. 공교롭게도 같은 의학드라마 장르지만 <닥터스>는 멜로가 있고 <뷰티풀 마인드>는 멜로가 없다. 그것도 <닥터스>의 멜로는 손발이 오글거릴 정도로 대사나 행동들이 적극적이다.

 

'닥터스(사진출처:SBS)'

<닥터스>에서 수술은 그 보조자를 누구로 하느냐 마저 멜로적인 구도로 그려진다. 혜정(박신혜)이 홍지홍(김래원)의 수술에 보조로 들어가기로 하자 서우(이성경)는 질투를 하며 자신도 들어가겠다고 요구한다. 또 혜정에게 마음을 조금씩 빼앗기고 있는 정윤도(윤균상)는 아예 대놓고 혜정에게 자신의 수술에 들어오라고 요구하며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다.

 

이처럼 <닥터스>에서는 대부분의 사건과 상황들이 멜로로 귀결된다. 부모의 정을 받지 못하고 살아와 홀로 서려하고 누군가에게 기대지 못하는 혜정이 성장해가는 과정은 다름 아닌 홍지홍과의 멜로를 통해서다. 또한 그녀가 의사라는 전문가로서 성장하는 과정 역시 홍지홍, 정윤도, 서우와 엮어지는 멜로적 관계와 무관하지 않다. 향후 아마도 이어질 현성병원의 후계 구도를 두고 벌어지는 쟁탈전 역시 어떤 식으로든 혜정과 홍지홍의 멜로를 강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보면 <닥터스>의 성공은 의학드라마의 전문성도 물론 깔려 있지만 다름 아닌 멜로드라마의 달달함 덕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KBS <태양의 후예>가 지상파의 시청률 기록을 세울 수 있었던 원동력도 결과적으로 보면 멜로다. 유시진(송중기)과 강모연(송혜교) 그리고 서대영(진구)과 윤명주(김지원)가 전쟁, 재난 상황 속에서 그려낸 멜로의 힘은 모든 이슈를 빨아들일 만큼 강력했다. <태양의 후예>가 끝나고 난항을 겪던 수목드라마에 다시 두 자릿 수 시청률을 만들며 화제를 모으고 있는 KBS <함부로 애틋하게> 역시 그 힘은 멜로에서 나온다. 이 드라마는 중국에서 최단기간 4천만뷰를 넘어서며 벌써부터 <태양의 후예>의 뒤를 이을 작품으로까지 지목되고 있다.

 

그토록 주말극에 힘을 실으려 노력했던 SBS가 그나마 성과를 가져온 작품은 <미녀 공심이>. 가족드라마도 복수극, 장르물도 아닌, 어찌 보면 평이해 보이기까지 한 멜로드라마가 이토록 강력한 힘을 발휘할지 누가 알았으랴. 안단태(남궁민)와 공심이(민아)의 알콩달콩한 사랑이야기에 시청자들은 일주일의 피로를 녹이는 중이다.

 

tvN이 월화드라마라는 새로운 편성시간대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도 멜로의 힘이다. <치즈 인 더 트랩>으로 그 가능성을 확인한 tvN 월화드라마는 <또 오해영>으로 엄청난 성과를 가져왔다. 시청률은 물론이고 화제성도 단연 높았던 <또 오해영>은 확실하게 tvN 월화드라마 브랜드를 구축해냈다. 이어진 <싸우자 귀신아>가 첫 회에 4%를 넘기는 좋은 성적을 거둔 건 이제 믿고 보는 tvN 드라마에 대한 시청자들의 신뢰가 생겼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싸우자 귀신아> 역시 외피는 공포물에 코믹을 섞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달달한 멜로라는 점이다. 귀신을 보는 능력을 가진 박봉팔(옥택연)이 기억을 잃어버린 귀신 김현지(김소현)와 가까워지는 이야기. 박봉팔과 엎치락뒤치락하다 입을 맞추게 되면서 과거의 기억을 살짝 떠올리게 된 김현지는 그 기억을 되살린다는 이유로 그와 다시 입을 맞추려 한다. 코믹 공포물이 멜로로 귀결되어 가는 증거다.

 

이제 의사가 나와도 귀신을 만나도 그 귀결은 멜로다. 사실 과거 같으면 기승전멜로라는 수식은 비판적인 의미가 더 강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그렇지 않다. 과거 기승전멜로드라마가 비판받았던 건 멜로로 귀결돼서가 아니라 그 과정들인 기승전이 너무 디테일과 전문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멜로 하는 드라마가 문제가 아니라 그 병원의 의사들이 보여주는 디테일한 상황들이 문제였다는 것. 하지만 <닥터스> 같은 드라마가 보여주듯 요즘은 멜로로 귀결된다 해도 그 안에 병원의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다.

 

물론 모든 드라마가 멜로로 귀결되는 것이 드라마 다양성의 차원에서 긍정적이라고만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이처럼 멜로에 집중되고 그것이 계속해서 대중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는 건 그것이 가진 사회적 의미를 들여다보게 만든다. 도대체 무엇이 이러한 멜로 중독을 만들고 있는 걸까.

 

지금의 시청자들이 조금치의 무거움이나 답답함을 견디지 못한다는 건 이미 여러 드라마들의 성패를 통해 확인된 바 있다. 이제 드라마는 더 이상 작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대중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위로해주고 때로는 답답한 현실을 잊게 해주는 기능을 가진 어떤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니 보다 직접적인 즐거움을 원하게 되는 것이고, 여성 시청자들이라면 단연 멜로가 주는 달달함을 원하게 되는 것.

 

이것은 거의 멜로 중독에 가깝다. 직장인들이 하루의 피곤을 맥주 한 잔으로 털어버리듯, 이제 하루를 살아낸 시청자들은 멜로 한 편으로 잠시 현실을 벗어난 판타지의 세계로 빠져들고 있다. 그런데 그 중독의 대상이 하필이면 멜로라는 점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결국 사람냄새가 나는 장르의 총아가 바로 멜로가 아닌가. 지금의 대중들이 어디에 갈급하고 있는가가 이 멜로 중독이라는 증상에 고스란히 투영되어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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