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시세끼>의 건강한 공기, 그 반은 옥빙구 덕

 

아무 것도 안하고 싶다. 이미 아무 것도 안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게 아무 것도 안하고 싶다.’ 유해진이 나온 한 광고 카피는 <삼시세끼>의 정서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정선의 세끼 집은 그래서 어린 나이에 데뷔해 쉴 새 없이 뛰어온 아이돌 조상인 보아 같은 인물에게는 그 자체로 휴식이 된다. 그 흔한 콩나물국 하나를 끓여도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고, 몇 주간 벌들이 모아온 꿀을 채취하면 마음마저 달달하게 녹아내린다. 밥 한 끼 지어 먹는 일이 이토록 즐거운 일이었던가. 아무 것도 안 해도 되는 곳. 세끼 집이 도시인들에게 로망이 되는 이유다.

 

'삼시세끼(사진출처:tvN)'

그런데 아무 것도 안하고 생활한다는 건 사실 불가능한 일이다. 누구든 조금씩 일을 하고 있지만 그것이 일처럼 느껴지지 않을 뿐. 때로는 커다란 얼음을 간이 냉장고에 담아 옮겨 놓는 힘든 일도 해야 하고, 불안할 수밖에 없는 벌꿀 채취에 손을 걷어 부치고 나서기도 해야 하며, 넓디넓은 옥수수밭에 가득 자란 잡초도 제거해야 한다. 또 매 끼니 그럭저럭 밥을 챙겨 먹는 일도 빠질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시세끼>가 그 한가함을 보여줄 수 있는 건 옥택연이라는 기분 좋고 활력 넘치는 청년이 있기 때문이다. “빙구 빙구 빙구-”하고 노래를 하며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빙구 바이러스를 퍼트리는 이 청년은 사실 꽤 고된 일들을 거의 도맡아 하고 있다. 매 끼니마다 불을 피우고 무거운 솥단지를 옮겨놓는 일도 그의 몫이고, 매 끼니 미션처럼 주어지는 메뉴를 어머니에게 물어물어 하나씩 해보는 아마추어 셰프 일도 그의 몫이다.

 

가끔은 비주얼이 이상한 괴식을 내놓기도 하고 정작 요리는 잘 해놓고도 마지막 플레이팅에서는 전혀 미적 감각을 보여주지 못해 이서진에게 지청구를 듣는 그는 그래도 늘 해맑은 웃음을 보여주는 옥빙구다. 기분 좋을 땐 저도 모르게 춤을 춰 그걸 본 김광규와 보아에게 정신이 이상해지고 있다는 의심을 받기도 한다. 괴력을 발휘하다가다도 누가 자기를 부르면 갑자기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여자 목소리를 내는 다중인격의 능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혼자 밥을 짓거나 일을 할 때 그는 마치 식재료가 하는 말을 대변하기라도 하는 듯이 혼잣말을 중얼중얼거린다. 그 때 보이는 건 일이 아니라 즐거움이다. 세끼 집도 누군가 계속 힘쓰는 일을 해야 하지만 그런 힘겨운 느낌을 별로 나지 않게 해주는 인물이 알고 보면 옥빙구다. 그는 바보처럼 즐거워하며 이런저런 일들을 하고 있어 그게 일처럼 보이지 않게 만드는 묘한 마력을 발휘한다.

 

옥빙구가 세끼 집에 긍정 바이러스를 퍼트릴 수 있는 건 그의 진짜 밝은 마음이 늘 솔직하게 밖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90년대 동년생 여자들이 왔을 때 그의 반응이 폭발했던 건 그 기쁘고 설레는 마음이 고스란히 밖으로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고아라와 박신혜가 왔을 때 그래서 그는 풀 파워로 즐겁게 일에 뛰어드는 모습을 보여줬다. 한참 선배인 보아 앞에서 속내 그대로 약간의 긴장감을 갖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금세 누나 같은 친근함을 보이는 모습 역시 그의 솔직하고 순수한 면을 잘 드러내줬다.

 

<삼시세끼> 옥순봉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활력이 있다. 그건 바로 옥빙구 바이러스. 그 활력 넘치고 기분 좋은 바이러스는 아무 것도 안하고 싶은 이들에게는 든든한 편안함을 준다. 가끔 너무 좋아 바보처럼 헤벌쭉 웃기도 하지만 그렇게 모든 도시의 긴장이 풀어지는 순간들을 옥빙구는 온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삼시세끼> 만재도에 차승원 정선의 박신혜

 

<삼시세끼> 어촌편에 차승원이 있었다면 정선편에는 박신혜가 있었다. 곱창집 딸답게 맛난 곱창, 대창 구이를 맛보게 해주더니, 들깨 미역국, 송사리 튀김, 파전에 이어 박신혜표 초간단 샤브샤브까지 선보였다. 이서진은 연실 넌 왜 못하는 게 없냐고 보조개를 만들었고, 김광규는 못 먹는다는 날계란에 샤브샤브를 맛나게도 먹었다. 옥택연은 시키지도 않은 소주로 만든 모이토를 선보였다.

 

'삼시세끼(사진출처:tvN)'

게스트인지 호스트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끝없이 일을 하는 박신혜는 주변 사람들도 일을 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선보였다. 다들 멍하게 앉아 있는 그들에게 한숨 한 번 쉬어주고 눈빛 한 번 날리기만 해도 남자들은 알아서 재게 몸을 놀렸다. 괜히 그러고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묘한 기분을 만들었던 것. 박신혜의 한 마디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세 남자들을 보며 나영석 PD그녀의 노예라고 놀리기도 했다.

 

그 넓은 밭에 옥수수를 심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박신혜의 에너지는 옥택연을 펄펄 날게 만들었다. 이서진의 말대로 박신혜는 옥택연이 지금껏 해온 노동량의 세 배 이상을 일하게 했다. 힘겨워 보이는 이서진과 김광규 팀과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달달한 귀농 신혼부부 포스를 내는 그들은 그것이 일처럼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 그들의 달달한 모습을 보며 이서진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저녁식사를 끝내고 나서도 집에서 깍두기를 담그는 박신혜와 옥택연의 모습은 훈훈한 정경을 만들었다. 그 달달함 때문에 괜스레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김광규는 밖에서 설거지를 하며 이것이 가장 속편하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박신혜가 특별했던 것은 손쉽게 맛난 음식들을 척척 만들어주면서도 주변 인물들이 즐겁게 일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남자 호스트들은 그녀의 눈에 들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하고 진심으로 무언가를 해주려는 마음이 가득했다. 밤새 따뜻하게 지낼 수 있게 하기 위해 15분 만에 꺼져가는 아궁이의 불을 지피는 세 남자의 모습이라니.

 

이서진이 바게트를 구워내는데 있어서도 그렇게 긴장한 데는 박신혜라는 게스트가 있다는 점도 어느 정도 작용했을 것이다. 초조하게 마치 산모가 아기를 낳는 걸 기다리듯 화덕 앞에서 빵이 구워지길 기다리는 이서진의 모습은 지금껏 <삼시세끼> 이래 처음 보는 진지함이 느껴졌다.

 

생각 외로 잘 구워진 바게트를 더욱 맛나게 만든 장본인도 결국은 박신혜였다. 그녀는 없는 재료를 탈탈 털어 마늘을 다지고 올리브유와 설탕, 소금을 넣어 바게트 위에 얹을 토핑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토핑을 얹어 다시 구워진 마늘 바게트는 비주얼도 맛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요리가 되었다.

 

사실 요리도 요리지만 박신혜가 독보적인 역대급 게스트가 된 것은 그녀가 만들어내는 <삼시세끼>의 완전히 다른 느낌들 때문이다. 힘겨운 노동 속에서도 달달한 웃음이 끊이지 않고, 없는 재료를 갖고도 충분히 넉넉한 식사를 즐길 수 있는 것. 이것은 어쩌면 <삼시세끼>라는 어른들의 소꿉장난이 도시인들의 로망으로 다가오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박신혜에게 너 고정해라는 이서진의 말이 그저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다. 그건 또한 시청자들의 마음일 테니까.

 

나영석 PD, 최고의 자리에서 프로그램 홍보라니

 

박신혜 2탄이 남았다. 이번 주 <프로듀사> 보다가 루즈한 부분 나올 때 바로 채널 돌리면 박신혜 씨가 나올 거다. 많은 시청 부탁드린다.” 백상예술대상에서 나영석 PD는 이런 말로 TV부문 대상 수상소감의 마무리를 했다. 예능PD로서는 처음으로 대상을 거머쥔 PD치고는 참으로 싸 보이는수상 소감이 아닐 수 없다. 최고의 자리에서 프로그램 홍보라니.

 

'백상예술대상(사진출처:JTBC)'

그런데 바로 이런 점이 나영석 PD가 가진 최고의 장점이다. 사실 최고의 위치라는 것은 더 이상 오르지 못하고 내려올 일만 남았다는 걸 말해주기도 한다. 그런데 나영석 PD가 그 최고의 위치에서 한 것은 깨알 같은 프로그램 홍보였다. 이 얘기는 그런 시상식에서도 그는 여전히 프로그램을 열심히 만드는 PD라는 사실을 되새겨주었다. 최고의 위치에 대상 수상자로 서게 됐지만 다시 저 치열한 촬영현장의 PD로 단번에 돌아가는 모습을 보인 것.

 

그는 예능은 자 붙은 상 받으면 잘 안 된다는 징크스를 얘기하기도 했다. 이건 그냥 나온 얘기가 아니다. 예능은 가장 낮은 위치에 서 있을 때 유리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서민들의 눈높이를 가장 잘 대변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대상이라는 높이는 더 많은 책임감이나 무게감을 갖게 만든다. 그는 이 불리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이 말에는 또한 그간 예능이 대상을 받지 못해왔던 것에 대한 아쉬움 역시 묻어난다. 왜 예능이 대상을 받는다는 것이 이상하게 생각될까. 드라마나 영화에 비해 예능은 상대적으로 평가 절하되어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이번 백상예술대상에서 나영석 PD가 대상을 받은 것에는 이런 편견을 깨는 일이기도 했다.

 

나영석 PD가 백상예술대상의 최고상에 선정된 데는 지금 현재의 대중문화 트렌드가 반영되어 있다. 즉 지금은 바야흐로 예능의 시대다. 잘 만들어진 예능 프로그램 하나가 웬만한 드라마나 영화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나영석 PD<꽃보다> 시리즈가 만든 해외 배낭여행 트렌드나 실버트렌드, 그리고 <삼시세끼>가 만든 쿡방 트렌드나 유기농 라이프 트렌드가 그 증거들이다.

 

게다가 이제 예능의 주인공은 출연자들이라기보다는 예능을 만드는 PD라는 것이 최근 달라지고 있는 시선이다. 즉 똑같은 아이템을 줘도 어떤 PD가 만드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그림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니 과거처럼 몇몇 스타 예능 MC들이 프로그램을 좌지우지하던 시대는 지났다는 것이다. 굳이 프로그램도 또 출연자도 아닌 나영석 PD를 백상이 선택한 데는 그런 의미도 깔려 있다.

 

그러니 나영석 PD는 본인 스스로 표현했듯이 뜬금없는대상에 겸연쩍어할 필요가 없다. 받을 만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받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영석 PD의 그 싸 보이는수상 소감은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높은 위치에 오른다고 해도 굳이 자신을 저 밑으로 끌어내리려는 그 모습에서는 늘 대중들과 똑같은 보통의 눈높이를 추구하는 그의 모습이 담겨져 있었다. 이러니 그의 깨알 홍보에 기꺼이 넘어갈밖에.

 

무엇이 <삼시세끼>의 박신혜를 특별하게 했을까

 

사람 한 명의 에너지가 이토록 대단한 것이었나. tvN <삼시세끼>의 게스트 박신혜에게는 어떤 특별함이 있었던 걸까. 시커먼 남정네들만 있는 곳에 찾아온 예쁜 소녀라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박신혜를 본 옥택연은 내내 싱글벙글이었고, 그녀 앞에서 멋진 농부의 모습을 보이려 허세를 부리기도 했으며, 심지어 칠렐레팔렐레 바보처럼 즐거워하기도 했다. 그걸 본 이서진이 동네 미친 놈 같다고 할 정도로.

 

'삼시세끼(사진출처:tvN)'

그렇게 말하기는 해도 이서진 역시 만면 가득 미소를 지울 수가 없는 얼굴이었다. 그는 특유의 퉁퉁거리는 말투로 광규형 대신 니가 고정해라라고 에둘러 박신혜에 대한 반가운 마음을 전해주었다. 마치 여동생이라도 놀러온 것처럼 그녀가 잘 방을 따뜻하게 데우고 늦게까지 잘 수 있게 창문에 암막을 쳐주는 모습까지 보였다.

 

도착하자마자 설거지부터 시작하더니 화덕을 만드는 일에서 의외의 재능을 보인 그녀를 보며 이서진과 옥택연은 자기들이 박신혜 집에 일 도와주러 놀러온 사람 같다고 말했다. 그만큼 척척 일 잘 하는 박신혜가 대견스러웠던 것. 이렇게 됐던 것은 박신혜가 가진 특유의 친화력과 싹싹하고 배려심 많은 심성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녀가 이 프로그램을 그만큼 친숙하게 느끼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박신혜는 <삼시세끼> 프로그램을 거의 꿰고 있었다. 솥에 물을 끓일 때 김이 솟아 나와 그 안의 내용물이 잘 보이지 않는 걸 보며 이게 이래서 이랬구나하고 얘기하자 나영석 PD도 그런 걸 어떻게 아냐고 물을 정도였다. “방송에서 봤다고 하자 옥택연은 방송을 우리보다 더 많이 챙겨보는 거 같아요라고 외치기도 했다.

 

게스트가 방송을 꿰고 있어 마치 자기 집에 있듯이 편안하게 요리도 하고 밭일도 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점은 주인들인 이서진과 옥택연으로 하여금 그녀가 게스트가 아닌 호스트라는 느낌을 갖게 만든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이 박신혜의 입장과 그녀가 세끼집에서 보여준 모습은 시청자들이 <삼시세끼>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느끼는 그 감정과 다르지 않다. 어느덧 이 프로그램을 계속 봐온 시청자들은 저들이 사는 공간이 마치 내 집처럼 편안하게 느껴지고 그래서 그들의 즐거움이 마치 나의 즐거움처럼 받아들여진다는 점이다.

 

이것은 <삼시세끼>가 별 특별한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지만 왜 그토록 시청자들을 열광케 하는가 하는 그 해답이 들어있다. 이 프로그램은 정선의 세끼 집이라는 공간을 저들만의 놀이터로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시청자들이 함께 들여다보고 함께 키워가는 공간으로 그려낸다. 프로그램이 그 세끼 집에서 자라는 풀들과 꽃 야채는 물론이고 아침 산책을 나서는 닭장을 빠져나온 마틸다, 염소 잭슨과 자식들 그리고 밍키를 먼저 챙겨보는 것에서 시작하는 건 그래서다.

 

그들이 어떻게 자라나고 있고, 그들이 어떻게 지냈는지를 먼저 살피는 이 시선은 그래서 고스란히 이 집을 찾는 이서진과 옥택연의 시선이면서 시청자들의 시선이기도 하다. 그러니 온전히 시청자의 시선으로만 있던 박신혜가 그 낯선 곳에 처음 들어가서도 마치 호스트처럼 느낄 수 있게 된 것. 시청자를 호스트로 느끼게 해주는 <삼시세끼>라는 프로그램의 특별함. 긍정 에너지를 한껏 가져온 박신혜라는 호스트 같은 게스트는 바로 이 프로그램의 힘을 온전히 느끼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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