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풍 <개콘>, 달달해졌지만 현실풍자 사라져

 

<개그콘서트>남자가 필요 없는 이유가 폐지됐다. 8개월 동안 지속되면서 요물-”이라는 유행어까지 낳은 코너지만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다보니 식상해졌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 코너는 최근 <개그콘서트>에 불고 있는 여풍(女風)을 가장 잘 보여주는 코너였다. 서수민 PD 체제에서 김상미 PD 체제로 넘어오면서 <개그콘서트>가 전면에 내세운 것은 개그우먼들이었다. 지난 1년 동안 <개그콘서트>는 그간 개그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어왔던(?) 여심을 잡으려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개그콘서트(사진출처:KBS)'

먼저 폐지된 남자가 필요 없는 이유가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코너들 중 상당 부분이 남녀관계의 연애심리를 담고 있거나 바탕에 깔고 있는 것이었다. ‘댄수다는 이것을 커플 댄스를 통한 춤으로 풀어냈고, ‘두근두근은 마치 친구처럼 지내왔지만 사실은 연애감정을 가진 남녀의 속내를 끄집어냄으로써 웃음으로 만들었다. ‘끝사랑은 이 남녀 관계의 중년판이고, ‘후궁뎐은 사극판, ‘놈놈놈은 여성 판타지 드라마의 개그판이라고 볼 수 있다.

 

개그우먼들은 거의 모든 코너에서 중심적인 위치로 들어왔다. 힘겹게 살다가 성공했지만 여전히 버려지지 않는 과거의 습관들이라는 섬세한 심리가 돋보이는 누려같은 코너는 과거라면 개그맨들이 나왔을 가능성이 높은 코너다. 하지만 이희경과 박지선이 그 중심을 잡았다. 엔딩 코너로 자리한 뿜엔터테인먼트의 주축 역시 개그우먼이다. “잠시만요! 보라언니-”로 신보라보다 주목받는 박은영이나, 먹방 콘셉트로 빵빵 터트리는 김민경, ‘느낌 아는개그우먼 김지민이 그 주역들이다. 물론 여장한 대상 개그맨 김준호도 빼놓을 수 없다.

 

폭탄 콘셉트로 유민상과 송영길을 내세운 안생겨요나 박성광 특유의 날카로움이 돋보이는 시청률의 제왕역시 여성 관객과 시청자를 겨냥한 코너다. ‘안생겨요가 뭐니뭐니 해도 외모가 먼저 들어올 수밖에 없는 여성들의 심리를 꺼내놓는다면, ‘시청률의 제왕은 여성들의 주 관심사인 드라마들의 시청률 만들기 문법을 꼬집는다. 약간의 세태 풍자가 들어가 있지만 본격적인 현실풍자나 시사풍자에서는 약간 벗어나 있는 게 사실이다.

 

그나마 현실을 좀 더 드러내고 있는 코너는 백수들의 잉여적 삶을 풍자하는 놀고있네나 직장생활의 애환을 에둘러 표현한 편하게 있어정도지만 이 코너들 역시 과거의 최효종이나 동혁이형이 답답한 서민들의 속을 시원하게 뚫어주던 쓴 소리와는 너무나 다르다. <개그콘서트>는 확실히 달달해졌다.

 

<개그콘서트>가 달달해진 이유로 개그우먼들이 전면에 포진한 것을 든다는 것은 자칫 성적 편견이 될 수 있다. 마치 여성들은 현실문제나 시사문제와는 거리가 먼 존재들처럼 치부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현재 <개그콘서트>의 개그우먼들이 현실문제와는 점점 거리를 둔 연애담이나 가십거리에서 더 많은 공감 포인트를 얻어가려는 모습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것은 자칫 지금껏 전면에 등장하지 않고 소외되어 왜곡된 이미지로 자리했던 것만큼 개그우먼들을 왜곡시킬 위험성이 있다.

 

<개그콘서트>에 그간 남성 개그맨들의 대상으로 혹은 남성들의 시선에 좌우되는(그래서 주로 외모로 웃기는) 모습으로 소외되어 왔던 개그우먼들이 이제 전면에 등장했다는 것은 반갑고도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무대의 중앙으로 들어온 개그우먼들의 역할이 연애담 같은 소소함에만 머물고 있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달달해졌지만 현실풍자의 쓴 맛이 사라진 <개그콘서트>가 아쉬운 이유다.

‘용감한 녀석들’, ‘네가지’에 이어 ‘희극여배우들’까지

 

“나는 까진 여자가 아니다.” 개그우먼 허안나는 잔뜩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도발적인 대사를 던진다. 마치 기자회견을 자청한 것처럼 보이는 이 자리, 그녀 옆에는 박지선과 정경미가 X표가 새겨진 마스크를 쓰고 앉아있고, 그녀 앞에는 기자들로 보이는 일단의 무리들이 앉아있다. 허안나는 개그우먼으로서 자신을 왜곡시켰다며 “나를 에로배우 만든 제작진을 고소한다!”고 외친다. <개그콘서트>에서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희극여배우들’의 한 풍경이다.

 

'개그콘서트'(사진출처:KBS)

허안나가 소리를 질러가며 항변을 할 때마다 관객들은 말 그대로 빵빵 터진다. 어떤 관객은 그녀의 항변에 속시원함마저 느끼는 표정이다. 허안나가 토로를 끝내고 나면 박지선이 나선다. 박지선의 첫 멘트는 “저는 못생기지 않았습니다”다. 그녀는 개그우먼으로서 외모 비하를 통해 웃음을 줄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한탄한다. 물론 웃기기 위한 설정이지만, 그녀의 발언 하나 하나는 외모 지상주의에 일침을 놓는 통쾌함을 선사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선 정경미는 윤형빈과의 사적인 관계가 윤형빈의 공공연한 애인 선언으로 인해 대중들에게 알려진 것에 대한 후회를 웃음으로 바꾼다. 허안나와 박지선이 건드리고 있는 것이 좀 더 현실적인 부분이라면, 정경미의 설정은 사적인 부분을 끄집어낸다는 점에서 이 코너가 지나치게 현실 풍자로 흐르는 것을 막아주는 장치가 된다.

 

‘희극여배우들’이 흥미로운 것은 김준현과 허경환, 양상국, 김기열이 한 명씩 발언대에 올라 저마다의 항변을 하는 코너, ‘네가지’와 닮아있다는 점이다. ‘희극여배우들’은 마치 ‘네가지’의 여성 버전처럼 보인다. 이들은 모두 자신이 외모나 상황에 의해 오해받고 당했던 일들을 발언대 위로 끄집어낸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세상의 비뚤어진 편견이나 오해들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한바탕 항변을 하는 이런 코너들의 특징은 웃음과 공감은 물론이고 나아가 속 시원한 통쾌함까지 전해준다는 점이다. 과거 ‘동혁이형’ 같은 캐릭터가 촌철살인의 멘트 하나로 대중적인 공감을 끌어냄으로써 화제를 모았다면, 최근의 ‘네가지’나 ‘희극여배우들’ 같은 이른바 ‘속풀이 개그’들은 그 이상의 카타르시스를 전해준다. 공감개그의 ‘끄덕거림’은 이제 속풀이 개그로 와서 막힌 것을 풀어내는 해소까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용감한 녀석들’ 역시 속풀이 개그의 한 트렌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힙합음악과 함께 거기에 잘 어울리는 디스 멘트를 덧붙여 답답한 속을 풀어내는 개그다. 남녀 간의 상황을 주로 다루지만 코너 속의 코너로서 한 명씩 나와서 세상을 향해 던지는 발언이 어쩌면 이 코너의 핵심적인 색깔로 인식되고 있는 건 아마도 대중들의 답답한 속을 이 멘트들이 풀어내기 때문일 게다.

 

이른바 속풀이 개그가 최근 들어 하나의 트렌드를 이루는 것은 아마도 그만큼 우리 현실의 답답함이 그 어느 때보다 많다는 씁쓸한 반증일 것이다. 사실 개그맨이라는 직업은 이 웃을 것 없는 사회에서 어쩌면 우리에게 웃음을 주는 유일한 존재들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그들이 힘겨운 대중들을 위해 개그에 현실을 끌어와 한 판 속풀이를 해준다는 그 행위는 어쩔 때는 숭고하게까지 여겨진다. 더 날선 풍자로 답답한 대중들의 속을 시원하게 풀어주기를.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