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은 작가의 캐릭터 운용, 놀라운 까닭

 

김수현의 최대 장점은 무엇일까. 어린 나이지만 하는 행동은 어른스럽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의 외모와 목소리에서 나온다. 그는 아직 고등학생을 연기해도 될 만큼 동안이지만 목소리는 꽤 신뢰를 주는 굵직한 톤을 갖고 있다. 그러니 연상녀들에게는 이만한 매력이 없다. 어딘지 듬직한 면을 갖고 있으면서도 극강 동안의 연하란 연상녀들에게는 다 갖춘 존재로서 다가온다.

 

'프로듀사(사진출처:KBS)'

<별에서 온 그대>의 도민준은 그래서 김수현에게 맞춤이었다. 아니 어찌 보면 김수현이라는 연기자를 위해 도민준이라는 캐릭터가 탄생한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늙지 않는 존재로 연하의 외모를 갖고 있지만 연상들도 기댈 수 있을 만큼의 경험치와 지적 능력을 모두 갖춘 도민준은 김수현이라는 인물을 판타지적으로 재해석한 것만 같았다.

 

<프로듀사>로 다시 돌아온 김수현의 그런 매력을 박지은 작가가 몰랐을까. 캐릭터는 어리버리 신입 예능 PD지만 이 백승찬 PD에게서는 도민준이 주었던 그 판타지가 고스란히 묻어난다. 바보스럽게 보이지만 그건 순수한 것이고, 때론 고집스럽게 보이지만 그건 자기주관이 뚜렷한 것이다. 그래서 그의 이런 모습들은 의외로 여성들에게 신뢰감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직장에서 신입 PD가 선배 PD에게 좋아하는 감정을 갖는다는 건 자칫 비현실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런데 이 부분이 자연스럽게 넘어간 데는 박지은 작가의 치밀한 사전 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박지은 작가가 백승찬의 대학선배인 혜주라는 인물을 굳이 세운 건 그래서다. 백승찬은 자신이 방송사 예능국에 들어온 이유로 첫사랑 혜주를 얘기하지만, 그녀는 초반에 휴직계를 내고 회사를 떠나는 모습으로 마무리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혜주라는 인물을 굳이 넣은 것이 자연스럽게 또 다른 연상인 탁예진 PD(공효진)로 넘어가기 위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백승찬 PD는 연달아 연상 취향임을 드러냈던 것. 김수현이 연상들의 마음을 녹이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이만큼 적절한 포진이 있을까.

 

이러한 백승찬의 연상 취향은 고스란히 아이돌 신디(아이유)에 대한 무심함을 설명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애초부터 백승찬은 신디에게 직접적인 일로서의 마음 그 이상은 없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신디는 바로 이러한 백승찬의 무심함 때문에 오히려 그에게 관심을 갖는 인물이다. 즉 백승찬이라는 캐릭터 하나를 제대로 세워놓음으로써 탁예진과 신디 사이의 러브 라인을 자연스럽게 풀어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시청자들이 김수현에게 바라는 모습이기도 하다. 만일 백승찬이 탁예진이 아니라 신디쪽에 마음을 주는 모습을 보였다는 어땠을까. 지상파 드라마들의 주 시청층의 마음을 상당 부분 끌어오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연령대가 있는 지상파 시청층들이 빙의되는 캐릭터는 신디보다는 탁예진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10.1%부터 시작해 지난 회 갑자기 13.5%로 껑충 시청률이 뛴 건 우연이 아니다. 치밀하게 포석되어 있는 김수현의 활용법이 드라마를 통해 조금씩 힘을 발휘하면서 생겨난 것이라는 것. 이것은 역시 로맨틱 코미디에 있어서 박지은 작가가 발군이라는 걸 증명하는 사실이다. 그녀의 캐릭터 운용을 자세히 보다보면 그래서 놀라움을 느낄 때가 많다.

 

<프로듀사> 김수현 바보 웃음에도 누나들은 심쿵

 

왜 김수현이 KBS <프로듀사>를 선택했는지 이제는 알 것 같다. 그에게 이만큼 맞춤인 작품이 있을까. SBS <별에서 온 그대>로 국내는 물론이고 중국 최고의 한류스타로 떠오른 그였다. 불멸의 존재로서 동안에 지적 능력, 초능력까지 가진 완벽한 캐릭터 도민준을 연기한 그가 차기작으로 어떤 작품을 할 것인가는 한중 양국 대중들에게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프로듀사(사진출처:KBS)'

결국 그의 선택은 <프로듀사>. 어리버리하고 아직까지는 공부로만 예능을 아는 초짜 백승찬 예능 PD가 그 인물이다. 그런데 이 어리버리한 인물 묘한 매력이 있다. 심지어 바보처럼 웃어도 누나들의 가슴을 심쿵하게 만드는 마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프로듀사>는 실질적으로 이 백승찬이란 인물의 힘으로 굴러가는 작품이다. 그걸 증명하는 건 그가 이 로맨틱 코미디의 중심에 서게 되면서 드라마가 확실한 동력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신디라는 아이돌 가수와 탁예진 예능 PD 사이에서 그가 보여주는 매력은 젊은 여성들부터 중년 여성들까지 설레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신디에게 백승찬이라는 인물은 지금껏 이 업계에서 보지 못했던 특별한 별종이다. 뭘 몰라서 더 순수하고 곧이곧대로 인 이 인물은 친절하긴 해도 PD로서의 선을 딱 그어놓는 그 태도 때문에 신디를 더욱 애타게 만든다. 무엇보다 이라고 부르지만 살인적인 스케줄을 만들어 사실은 돈 버는 기계처럼 자신을 대하는 변대표(나영희)에게 어눌하지만 자기 소신을 밝히는 이 PD의 모습에 신디는 홀딱 넘어갈 수밖에 없다.

 

한편 선배 PD지만 백승찬이 사고 칠 것 같다고 고백한 탁예진이라는 인물은 중년 여성들을 몰입하게 만드는 캐릭터다. 그녀는 오랫동안 친구사이로 지내왔던 라준모(차태현)PD를 좋아하지만 어느새 불쑥 자기 앞에 남자로 나타난 백승찬을 느낀다. 라준모 PD에게 상처를 받고 혼자 공원벤치에 앉아 울고 있는 그녀를 살짝 안아주는 백승찬의 모습은 그녀에 빙의된 중년 여성들의 마음을 심쿵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신디와 탁예진이라는 두 여자 사이에서 이 만큼의 로맨틱한 분위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인물로 백승찬이 설 수 있다는 사실은 김수현이라는 연기자의 가장 큰 장점을 보여준다. 김수현은 어린 나이에 동안 외모에도 그 팬층이 상당히 두텁다. <별에서 온 그대>에서 전지현과의 커플 연기가 자연스러웠던 건 어려보이지만 때로는 여성을 리드하는 독특한 매력이 그에게 있기 때문이다. 결국 신디와 탁예진을 모두 설레게 만드는 백승찬이란 캐릭터의 매력은 <프로듀사>가 좀 더 폭넓은 시청층을 소구할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제아무리 <별에서 온 그대>의 도민준을 만들어낸 박지은 작가의 작품이라고 해도 그가 <프로듀사>의 이 어리버리한 백승찬을 선택했다는 건 실로 놀라운 일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 선택이 그에게는 최선이고 최적이었다는 걸 알 수 있다. 도대체 죽지도 않고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초능력을 사용하는 도민준 같은 캐릭터를 대치할 판타지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러니 그럴 바엔 차라리 모든 걸 내려놓을 수 있는 백승찬 같은 캐릭터를 선택하는 게 최선일 수밖에 없다.

 

만일 김수현이 또 다른 도민준 같은 판타지를 차기작으로 선택했다고 생각해보라. 그것은 성공해도 실패해도 본인에게는 손실이 되는 일이다. 즉 성공한다면 기존 도민준 캐릭터 이미지가 깨지게 되는 것이고, 실패한다면 도민준 캐릭터 이미지에 대한 실망이 될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백승찬처럼 심지어 바보 웃음을 짓는 캐릭터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건 성공하면 그의 넓혀진 연기영역이 되는 것이고 실패한다 해도 도전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김수현의 선택은 옳았고 그 선택의 결과는 또 다른 백승찬 신드롬으로 이어질 기지개를 켜고 있다. 그는 도민준처럼 능력자는 아니지만 따뜻하고 순수하며 인간적인 매력으로 무장한 채 누나들의 마음 속으로 성큼성큼 들어서고 있다.

 

오랜만에 최강 라인업 세운 KBS

 

최근 KBS의 행보가 심상찮다. 한때 베끼기가 늘상 해오던 관행처럼 여겨지기도 했던 KBS이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번 금요일 밤의 라인업은 한 마디로 승부수라고 해도 될 만큼 공격적이다. <프로듀사><오렌지 마말레이드> 1,2회를 잇따라 연속 편성한 것이 그것이다.

 

'프로듀사(사진출처:KBS)'

이 두 프로그램은 과연 KBS의 프로그램이 맞는가가 의심될 정도로 새롭고 파격적이다. <프로듀사>는 예능 드라마라는 새로운 콘셉트로 접근해 만들어진 드라마다. 서수민 CP<별에서 온 그대>의 박지은 작가 그리고 표민수 PD가 힘을 합쳤고, 그 위에 김수현, 공효진, 차태현, 아이유라는 어벤져스급 캐스팅이 이뤄졌다.

 

예능 드라마라는 기치를 내세운 만큼 예능적인 웃음이 중심이 되면서도 예능 PD들의 리얼한 이야기들이 드라마틱하게 전개될 것이라고 한다. 최근 방송의 중심으로 점점 서고 있는 예능 PD들의 이야기는 다른 한편으로 보면 지금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의 변화를 에둘러 담아내는 것이기도 하다. 예능과 드라마, 그리고 재미와 의미가 결합하는 괜찮은 퓨전의 예감이 벌써부터 물씬 풍겨난다.

 

<오렌지 마말레이드>는 이미 웹툰 팬들에게는 그 제목만으로도 기대감을 만드는 드라마다. 워낙 큰 인기를 끈 원작 웹툰이 가진 존재감을 드라마로 풀어낸다는 것이 부담이 되기는 하지만, 여진구 같은 든든한 연기자가 서 있어 어떤 면에서는 <미생>처럼 웹툰 그 이상의 반응을 만들어낼 드라마가 될 것이라는 조심스런 예상도 나오고 있다.

 

뱀파이어와 사람이 공존하는 세상에서의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낼 것이라는 이 드라마 역시 다양한 이질적 요소들을 결합해낸 퓨전 콘텐츠다. 당연히 판타지가 들어갈 수밖에 없고 그 위에 애절하면서도 달달한 사랑이야기가 얹어질 것으로 보인다. 시대적 배경도 조선에서부터 현재까지를 아우르고 있어 사극과 현대극을 넘나드는 다이내믹한 전개를 보일 것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이 시간대에 이런 파격적인 승부수를 던질 수 있게 된 것은 KBS가 편성을 새롭게 꾸미면서 금요일 밤에 마련해 놓은 이른바 돌연변이존이 있었기 때문이다. 드라마든 예능이든 교양이든 그 때 그 때 맞춰 자유롭게 들어가게 만들어놓은 이 시간대가 있어 <오렌지 마말레이드> 같은 드라마가 금요일 밤에 연달아 세워질 수 있었던 것. 여기에 <프로듀사>는 예능과 드라마를 넘나드는 장르적 혼용을 갖고 있어 자연스럽게 그 앞 시간에 배치될 수 있었다.

 

이것은 최근 몇 년 동안 보기 힘든 KBS의 승부수가 아닐 수 없다. 금요일 밤 타 지상파와 케이블에 치이며 존재감을 좀체 보이지 못했던 KBS의 이런 행보는 지금까지와의 흐름과는 사뭇 이례적이라 주목된다. 과연 이 승부수는 좋은 결과를 맺을 수 있을까. 만일 이것이 괜찮은 성과로 이어진다면 그것은 KBS의 앞으로 전개될 행보에 꽤 괜찮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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