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학교>, 연출, 연기, 대본 뭐 하나 건질 게 없네

 

이건 혹시 병맛이 아닐까. 아마도 KBS의 새 월화드라마 <무림학교> 첫 회를 보던 시청자들은 그런 생각을 했을 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이 드라마에 이현우 같은 배우가 나온다는 것으로 호의를 갖고 있던 분들이라면. 하지만 보통의 시청자라면 어땠을까.

 


'무림학교(사진출처:KBS)'

한 아이를 안고 도주하는 황무송(신현준)이 그를 추격하는 일단의 사내들과 벌이는 일전은 이 드라마가 현대적 시점에 무협장르를 섞고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 아이가 누구이고 황무송은 왜 사내들에게 쫓기고 있는가 하는 이 첫 도입부의 이야기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첫 회가 다 끝나기까지 아무 것도 드러난 게 없었다.

 

물론 첫 회는 인물들을 소개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야기의 맥락 없이 캐릭터만을 보여주는 건 드라마에 대한 몰입도를 떨어뜨리는 일이다. 아이돌 가수 윤시우(이현우)와 상해그룹 왕하우 회장의 아들 왕치앙(홍빈) 그리고 무림학교를 다니는 심순덕(서예지)과 황무송의 딸 황선아(정유진)를 한 명씩 소개하는 장면들은 이야기는 없고 보여주기 일변도였다.

 

뜬금없이 웃통을 벗고 상체 복근을 보여주는 장면이나, 회장 아들의 그렇고 그런 위세를 보이는 장면, 아이돌 가수를 음모에 빠뜨려 추락시키는 소속사 이야기, 그리고 생계를 책임지며 일을 전전하지만 그래도 씩씩하고 명랑한 여주인공. 어디선가 봤던 클리쉐들을 모두 모아놓은 듯한 장면들이 반복됐다.

 

이렇게 현실감 떨어지는 이야기라면 그것을 안착시킬 무게감 있는 캐릭터 하나 정도는 필요할 테지만 그런 인물은 보이지 않았다. 결국 이야기는 허공으로 떠버릴 수밖에 없다. 게다가 중국시장을 의식한 듯 끝없이 이어지는 중국과 관련된 이야기소재들은 보기에 불편할 정도였다. 상해그룹 회장 아들이지만 괜스레 중국어를 해대고, 무협물을 보는 듯한 장면들이 이어지며, 거기에 중국 팬들이 관심 있을 아이돌 가수라는 설정이 들어가 있다. 중국 시장을 겨냥하겠다는 건 나쁜 게 아니지만 그것도 일단은 작품이 먼저 어떤 이야기가 된 후에야 생각할 문제다.

 

이야기의 맥락이 뚝뚝 끊기는 대본과 현실성을 별반 느끼기 어려운 과잉된 연출. 그 속에서 이현우 같은 괜찮은 배우라고 해도 좋은 연기가 나오기는 어려웠을 게다. 그러니 왕치앙 역할을 하고 있는 홍빈처럼 연기 경험이 일천한 배우는 심지어 발연기에 가까운 어색함을 보여줄 수밖에 없다. 이현우처럼 괜찮은 배우를 이런 정도로밖에 보여주지 못하다니 안타까운 일이다.

 

학원물과 무협물의 퓨전은 사실 새로운 건 아니다. 이미 <화산고> 같은 작품이 그것을 시도했던 바 있다. 하지만 이 가상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는 학원무협물이 조심해야 할 것은 너무 가벼운 이야기로 연출하기 시작하면 만화처럼 되어버린다는 점이다. <무림학교>는 그 첫 회만 봐서는 구성이 허술한 만화 같은 느낌이다. 현실성도 그렇다고 판타지도 강렬하지 않은 어정쩡한 클리쉐 흉내 내기만 가득하다.

 

동시간대에 방영되고 있는 <육룡이 나르샤>에서는 척사광이라는 무술의 고수의 정체를 두고 벌어지는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전개됐다. 거기에도 무협적인 요소들은 어김없이 들어갔다. 칼 위에 물이 채워진 잔을 올려놓고 무술 수련을 하는 이방지(변요한)의 이야기는 현실적인 이야기일 수 없지만 팽팽한 극적 구성의 이야기 속에서 잘 만들어진 연출을 통해 보여짐으로써 시청자들을 감탄시켰다.

 

<육룡이 나르샤>는 무협 장르가 섞여 있지만 그건 중심의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무협의 이야기가 중심일 수밖에 없는 <무림학교>와 비교해보면 천지 차이의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결국 <무림학교> 첫 회는 결코 의도된 병맛일 수 없다. 만일 그렇다면 여러 장면에서 웃음이 나왔어야 한다. 하지만 잔뜩 기대했던 시청자들은 그 총체적 부실에 결코 웃을 수 없었다



'오 마이 레이디', 그 오지랖과 발연기의 의미

흔히들 연기력은 ‘인간에 대한 이해’에서 나온다고 한다. 캐릭터라는 옷을 입고 타인의 삶을 살아내는 연기자들에게 그 타인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란 이야기. ‘오 마이 레이디’는 톱스타 성민우(최시원)의 쳐다보기조차 쉽지 않은 손발이 오그라드는 발연기에서부터 시작한다. 국어책을 읽는 듯한 어색함은 기본이고 캐릭터와 일체되지 않는 그 어정쩡한 연기동작. 무엇보다 이 톱스타는 자신의 발연기를 고칠 생각조차 없는 것 같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것은 연기가 아니라 톱스타라는 그 화려함일 뿐이라고 생각하니까.

아이돌들의 연기진출이 점점 일상화되어가는 요즘, 실제 아이돌 그룹 슈퍼주니어의 최시원이 발연기로 특징되는 성민우를 연기한다는 것은 재미있는 선택이다. 거기에는 인기를 업고 연기의 세계로 뛰어든 아이돌들의 발연기에 대한 귀여운 비판이 들어있으면서도, 실제 아이돌 최시원이 그 ‘발연기를 연기’하는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발연기를 연기’하는 최시원은 꽤 괜찮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그의 앞에 갑자기 나타난 아줌마 윤개화(채림)는 성민우가 발연기를 하는 이유를 ‘타인에 대한 이해’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성민우는 “당신의 딸을 잘 부탁한다”는 편지와 함께 자신의 공간 속으로 들어온 예은(김유빈)을 부정하기만 한다. 안하무인에 뭐든 제 멋대로인 이 톱스타 성민우의 타인에 대한 배려 없는 태도는 그의 발연기에 근본적인 이유를 제공한다. 자신의 일(그것도 자기 좋은 일만)에만 관심이 있는 성민우에게 타인의 삶을 연기한다는 게 가당한 일일까.

반면 성민우와 달리 윤개화는 주변 모든 이들의 일들을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는 ‘오지랖 아줌마’다. 이혼 당했고, 집도 직장도 없어 아이를 전 남편에게 보내놓은 상태지만, 그 와중에도 성민우에게 갑자기 나타난 딸을 걱정할 정도. 그녀의 오지랖이 타인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는데서 비롯된다는 것은, 이 오지랖이 어떻게 발연기와 만나 화학작용을 일으키는지를 잘 말해준다.

윤개화의 오지랖이 타인에 무관심한 성민우를 변화시키고, 그를 통해 발연기에서 벗어나게 해준다는 것이 이 드라마가 가진 주요 스토리텔링이다. 여기에 멜로드라마적인 장치가 곁들여지면서 톱스타에 대한 아줌마 판타지가 극성을 끌어올린다. 즉 윤개화와 성민우 사이에 벌어지는 로맨스는 서로를 성장시킨다. 윤개화는 오지랖만 넓었지 뭐 하나 자기 일에 충실하지 못했던(이것은 오지랖 넓은 캐릭터들의 특징이다) 삶을 성민우를 통해 바꿔나가게 되고, 성민우는 거꾸로 윤개화를 통해 타인에 대한 이해를 하게 되고 그를 통해 발연기에서 벗어난다는 것.

이 유쾌한 코믹 로맨스 드라마는 또한 이를 연기하는 채림과 최시원에게는 의미있는 도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채림은 과거의 앳된 이미지에서 아직까지는 아줌마 연기 같은 본격 연기자로서의 모습으로 변신을 완수하지 못했다. 따라서 ‘오 마이 레이디’의 오지랖 윤개화는 채림의 연기 스펙트럼을 적어도 걸(girl)에서 레이디(lady)로 확장시켜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최시원은 아이돌이라면 늘 백안시되기 마련인 발연기에 대한 오해를 극중 성민우의 발연기를 통해 풀어줄 수 있을 것이다. 극중 캐릭터들의 성장처럼 연기자들의 성장까지 볼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채림과 최시원에게 ‘오 마이 레이디’는 그만큼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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