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숲’은 비밀의 늪, 한번 빠지면 나올 수 없네

끝없이 궁금하고 의심하게 하라. 아마도 tvN 주말드라마 <비밀의 숲>의 동력은 여기서 나오는 게 아닐까. <비밀의 숲>은 제목이 가진 뉘앙스처럼 끝없이 비밀로 가득한 숲을 헤매는 느낌이다. 그런데 그 헤매는 느낌이 나쁘지 않다. 오랜만에 자발적으로 빠지고픈 그런 몰입의 느낌. <비밀의 숲>은 그래서 마치 ‘비밀의 늪’ 같다. 한 번도 안본 사람은 있을지 몰라도 한 번 보고 계속 빠지지 않을 수 없는.

'비밀의 숲(사진출처:tvN)'

스폰서의 죽음. 그리고 용의자로 지목된 당일 케이블 수리기사. 하지만 자신이 그 집에 갔을 때는 이미 그 스폰서가 죽어있었다고 항변하는 수리기사는, 집 앞에 세워져 있던 차의 블랙박스에 찍혀진 영상에 의해 그 증언이 거짓이라는 게 밝혀진다. 그 영상 속에는 수리기사가 마침 그 집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창가에 한 사내의 모습이 찍혀 있었던 것. 그래서 수리기사는 살인자로 감옥에 가게 되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자신은 무죄이며 억울하다는 글을 남김으로써 이 사건을 수사한 검찰에 대한 비판여론이 생겨난다. 

검사 황시목(조승우)은 경찰 한여진(배두나)과 이 사건을 수사하다 그것이 검찰의 스폰서 비리와 연관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차츰 그 ‘비밀의 숲’ 깊숙이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모든 것들이 의심스러워진다. 그 배후에는 서부지검 차장검사 이창준(유재명)과 그의 오른팔인 서동재(이준혁)가 있다는 게 분명해지지만, 또한 신출내기 검사로만 알았던 영은수(신혜선)의 아버지가 전직 법무부장관이었다 비리 누명을 쓰고 물러난 영일재(이호재) 법무부 장관이었고 이 사건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황시목은 이 모든 것이 영일재가 만든 완벽히 짜여진 시나리오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고, 이창준 역시 이 사건의 배후에 그가 있다고 의심한다. 한편 이창준의 오른팔이었던 서동재는 자신이 팽 당할 위기에 처하자 이창준의 성 접대를 했던 업소 여인을 찾으려 하고, 황시목 역시 그녀를 쫓지만 결국 그녀는 처참하게 살해된 채 발견된다... 

<비밀의 숲>은 그래서 결국 진실을 향해 다가가는 황시목과 한여진의 수사 과정이 이어지지만, 거기에 대해 어떤 실마리나 단서들을 속 시원해 내놓지 않는다. 대신 진실을 향해 다가간다는 그 사실 때문에 그 진실과 연루된 인물들이 오히려 죽어나간다. 게다가 진실을 좇는 황시목은 과거 폭력행위가 드러나기도 하고 또 용의자 누명을 쓰기도 한다. 

그래서 이 <비밀의 숲>은 마치 미로 같다. 부감으로 내려다보면 그 숲이 지목하는 방향이나 그림을 볼 수 있지만, 그 안에 들어서면 나무들만 빽빽이 채워져 있어 길을 잃기 십상이다. 그 복잡한 수수께끼를 숲 바깥이 아니라 그 숲 안에서 풀어내는 일. 그것이 황시목이 걷는 그 길 하나하나에 시청자들이 집중하는 이유다. 

보통 이런 정도의 복잡함을 가진 수사물이 좋은 시청률을 가져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비밀의 숲>은 4% 대의 괜찮은 시청률을 내고 있다. 이것이 가능해지는 건 이 드라마가 가진 시청자들이 시선을 돌릴 수 없게 만드는 독특한 상황전개와 그것에 몰입하게 만드는 각별한 연출력 덕분이다. 사실은 아주 사소한 것처럼 보이는 사안들조차 <비밀의 숲>은 집중하게 만드는 연출을 보여준다. 

그 연출은 시청자들 앞에 상황을 끝없이 던져 반전의 반전을 이어가며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 그런 방식이 아니다. 오히려 그저 지나칠 수 있는 상황들에도 카메라를 비춰 어떤 의구심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이 더 큰 몰입감을 주는 건 시청자들이 자발적으로 그 추리 과정에 동참하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은 어느 순간부터 그 냉철한 이성으로 똘똘 뭉쳐 있는 황시목의 시선으로 이 숲을 헤매는 즐거움에 빠져든다. 

황시목이 선천적으로 뇌에 이상을 갖고 태어나 뇌 절제 수술을 받아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게 된 부분은 두 가지 차원에서 드라마에 잘 녹아든다. 그 하나는 검찰 내부에서 내부자로서 수사하는 인물로서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공명정대하게 수사를 할 수 있는 캐릭터가 되기 위해서는 이 정도의 냉철함을 갖춰야한다는 개연성과 공감대다. 그리고 또 하나는 그 수사과정에서 이를 방해하기 위해 들어오는 갖가지 모략들 속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 이렇게 감정 자체에 둔감한 캐릭터가 필요했다는 점이다. 황시목이라는 무감한 캐릭터는 그래서 거기에 몰입하는 시청자들이 수사 과정에서 느껴질 힘겨움을 상쇄시켜주는 역할도 해준다. 

이처럼 냉정하지만 시선을 돌릴 수 없을 정도로 깊은 몰입감을 주는 드라마가 있었던가. 보통 “낚인다”고 하면 불쾌한 감정이 들어있기 마련이지만 <비밀의 숲>은 황시목이라는 무감한 캐릭터에 의해 약간은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게 함으로써 그 불쾌함을 상쇄시키고 대신 복잡한 퍼즐을 푸는 재미를 만들어낸다. 풀릴 듯 풀릴 듯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하나씩 풀어나가는 재미가 주는 일종의 ‘낚이는 즐거움’이라니.

‘비밀의 숲’, 시청자들은 그 숲에 기꺼이 빠져들었다

스폰서 검사들. 그 검사들에게 뇌물을 뿌려온 스폰서의 죽음. 그 스폰서가 갖고 있었다는 검찰 비리 관련 진실들. 그 죽음을 그저 단순 강도 살인으로 덮으려는 부장검사. tvN 주말드라마 <비밀의 숲>은 그 첫 회만으로도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가를 명확하게 드러냈다. 법 정의를 집행해야할 검찰이 오히려 가장 법을 많이 어기는 상황을 목도해오며 수없이 싸워왔지만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그들 앞에 오히려 내부고발자라는 낙인이 찍혀 왕따가 되어버린 황시목(조승우)이 그 검찰 비리를 파헤쳐나가는 이야기다. 

'비밀의 숲(사진출처:tvN)'

그런데 이 황시목이라는 인물의 설정이 독특하다. 어린 시절 뇌수술로 인해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일상적인 삶을 살기는 어려운 인물이지만 어째 바로 이런 무감정한 면들이 검찰 내부의 비리를 파헤치는 검사로서는 최적이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오로지 이성적인 판단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점이 그렇다. 황시목처럼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는 극단적인 캐릭터를 세워놓은 건 이 정도의 인물이어야 검찰 내부의 비리를 끄집어내는 일이 가능할 수도 있을 정도로 그 검찰이라는 ‘비밀스런 숲’이 깊고 어둡다는 걸 말해준다. 

하지만 황시목과 스폰서 살인사건으로 인연을 맺게 되고 향후 같이 이 힘겨운 진실 파헤치기를 해나갈 경찰 한여진(배두나)은 그와는 정반대의 캐릭터다. 그녀는 타인의 고통을 마치 자신의 것처럼 공감하는 인물이다. 피해자의 상가를 찾아와 그 노모를 위로하고 부조금을 낼 정도. 경찰로서 자신이 할 역할의 선이 분명하지만, 그 선을 넘어 인간적인 면모를 가진 그녀가 황시목과 파트너가 된다는 건, 황시목과는 정반대로 이 정도로 피해자의 고통을 공감하는 인물이어야 그 어떤 유혹에도 휘둘리지 않고 수사를 해나갈 수 있다는 의미다. 

무감하거나 다소 과하게 공감하거나. 사실 어느 쪽도 보통의 수준이라고 말하긴 어려운 인물들의 성향이지만 그래서 이러한 검찰 개혁의 문제를 환부 수준이 아니라 시스템을 고치는 계기를 만들 것으로 기대되는 인물들이다. 사실 스폰서 검사에 관한 보도들로 대중들도 검찰을 잘 신뢰하지 못하게 됐다는 건 무수히 많은 장르물들이 검찰을 얼마나 비리단체로 그리고 있는가로 잘 드러난다. <비밀의 숲>은 이러한 현실적인 대중정서를 소재로 끌어와 그들과 대적해가는 검사와 경찰 사이의 팽팽한 대결구도를 세워 놓았다. 

하지만 <비밀의 숲> 첫 회가 시청자들을 몰입시킨 건, 이런 대결구도와 정황들을 일일이 설명하지 않고 인물들 간의 부딪침을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내주었기 때문이다. <비밀의 숲>의 이야기 전개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보통 남녀 주인공의 첫 만남을 드라마가 그릴 때 다소 과장되게 극적으로 그려내는 것과는 정반대다. 

스폰서의 집을 찾아가는 황시목. 그가 길가에서 우연히 만난 스폰서의 어머니. 그래서 집에 함께 가지만 문을 들어서자마자 확인된 살인현장. 그래서 바로 현장 상황들을 통해 그 집에 왔었던 수리기사가 범행에 관련되었을 거라고 짐작하고 바로 쫓기 시작하는 황시목. 그렇게 다짜고짜 자기 길만 가는 황시목을 쫓게 되는 한여진. 그래서 결국은 용의자를 같이 쫓게 되면서 이어지는 인연.... 이런 이야기 흐름들이 너무나 인위적인 흔적 없이 흘러간다. 

사실 그래서 <비밀의 숲>에 대한 기대감은 바로 이렇게 자연스러운 전개를 통해 시청자들을 몰입시키는 이야기 전개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 전개 과정은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있는 그대로 사건들을 툭툭 던져 나열해 줌으로써 오히려 더 시청자들로 하여금 몰입하게 만드는 이상한 힘을 발휘한다. 그 무감함 속에 무언가 비밀스러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지만 애써 설명하거나 제시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더 집중해서 그 안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그런 힘.

이것은 황시목이라는 무감정한 캐릭터가 주는 몰입감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물론 거대한 검찰 비리와 맞서는 인물로서 오히려 힘을 발휘하는 캐릭터 설정이지만, 그 무감정함 뒤에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하는 그 비밀스러움이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자극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으로 다가온다. 

<비밀의 숲>이라는 제목은 그래서 여러 가지 차원으로 해석가능하다. 그것은 부패했지만 베일에 가려진 검찰 조직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고, 그들과 대결해가는 인물들 이를 테면 황시목이나 한여진 나아가 신출내기 수습 검사인 영은수(신혜선)가 숨기고 있는 어떤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시청자들은 이미 그 숲의 한 가운데 기꺼이 들어가 있다.

‘맨투맨’의 브로맨스, 멜로와는 다른 휴머니즘이 보인다

다크데스 여운광(박성웅)과 김가드 김설우(박해진). 닉네임만으로 보면 이 조합은 B급 슈퍼히어로물의 주인공들처럼 보인다. 배우로서 영화 속에서는 ‘나쁜 놈’으로 불리는 다크데스지만 실제로는 사고로 인한 트라우마와 헤어진 연인을 여전히 잊지 못하고 아파하는 평범한 남자 여운광. 그리고 그의 보디가드처럼 다가왔지만 사실은 특명을 받고 접근한 코드명 K 국정원 고스트 요원 김설우. JTBC 금토드라마 <맨투맨>의 조합은 보이는 것과 실제가 다른 두 남자들을 중심에 세우고 있다. 

'맨투맨(사진출처:JTBC)'

대놓고 브로맨스를 그려보겠다는 건 <맨투맨>이라는 제목에서부터 이미 감지할 수 있는 일. <맨투맨>은 보디가드와 배우라는 직업적 관계로 만난(실제로는 다른 목적으로 만난 것이지만) 두 사람이 함께 시간을 보내다보니 그 직업적 관계를 넘어선 인간적인 관계로 가까워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처음에는 오로지 여운광이 방문하기로 한 러시아의 빅토르 저택에서 목각상을 빼오는 것이 김설우의 임무지만, 그는 죽을 위기에 처한 그를 구해주며 조금씩 그의 안위를 걱정하기 시작한다. 

여운광이 연기 연습을 하겠다며 김설우에게 여자 역할을 시키는 장면은 그래서 코믹하면서도 두 사람의 관계가 달라져 있다는 걸 슬쩍 드러낸다. 의외로 여자 역할을 잘 연기해내는 김설우는 연기 연습이 끝난 후에도 감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정도로 과도하게 몰입하며 눈물까지 흘린다. 물론 이건 웃음을 위한 코미디 설정이다. 하지만 그 장면은 또한 연기로 시작한 김설우의 접근이 어느 순간부터 과도하게 몰입되어 있다는 걸 보여준다. 

그러고 보면 <맨투맨>에서 멜로 관계는 생각만큼 잘 보이지 않는다. 여운광의 1호팬이며 그의 매니저인 차도하 실장(김민정)은 물론 그에 대한 무한 애정을 보이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연인 관계라기보다는 오누이 관계처럼 보인다. 여운광이 살뜰하게 차도하를 챙기지만 거기에 사랑의 감정은 좀체 느껴지지 않는다. 

여운광은 한 때 그가 사랑했지만 사고를 당한 후 이별통보도 없이 모승재(연정훈)와 결혼을 해버린 송미은(채정안)에 대한 마음이 여전히 남아있다. 그래서 그녀에 대한 애증을 드러내지만 아직도 그 이별의 아픔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여운광과 이미 결혼한 송미은 사이에 멜로 관계가 이어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 <맨투맨>에서 집중되는 건 멜로가 아니다. 대신 여운광과 김설우의 관계가 갈수록 더 깊어지고, 김설우를 처음부터 스토커로 오인했던 차도하가 여운광을 목숨을 걸고 구해낸 그에게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에 더 집중된다. 또 여운광과 차도하 사이에 흐르는 오누이 관계 같은 훈훈함이나, 김설우와 그의 국정원 담당관인 이동현(정만식) 사이의 형제 같은 모습도 보는 이들을 따뜻하게 만든다. 하다못해 이 드라마는 이동현과 목각상 프로젝트의 국정원 팀장인 장팀장(장현성)의 관계도 사무적 관계로 그리지 않는다. 이 국정원 요원들이 막걸리를 마시거나 국밥집에서 함께 밥을 먹으며 나누는 대화는 마치 오래된 친구같다.

<맨투맨>은 그래서 멜로 관계를 살짝 빠져 나오면서 보이는 인간적인 관계들이 느껴지게 하는 그 훈훈함이 드라마의 중요한 정서로 깔려 있다. 멜로를 넘어선 휴머니즘의 관점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맨투맨’의 의미는 단지 여운광과 김설우라는 ‘남자 대 남자’의 의미에만 머무는 것 같지가 않다. 그것은 혹 형식적 관계를 벗어버린 ‘인간 대 인간’의 진정한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마을>, 이 복잡한 미로가 보여주는 것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SBS <마을 아치아라의 비밀(이하 마을)>은 지금껏 우리가 봐왔던 드라마와는 사뭇 다르다. 드라마는 영화와는 다른 장르다. 폐쇄된 공간이 아닌 개방된 공간에서 시청하기 때문에 지나치게 압도적인 몰입감은 오히려 시청자를 유입하는데 장애로 작용할 수 있다.

 


'마을 아치아라의 비밀(사진출처:SBS)'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을>은 마치 이런 장르적 한계에 도전이라도 하겠다는 듯 시청자들 앞에 복잡한 미로를 펼쳐놓는다. 하나의 미로를 지났다고 생각하면 또 다른 미로가 나타나는 이 드라마는 그래서 불친절한 느낌을 받는다. 무슨 일인가가 벌어지고 있지만 그 단서들은 사건의 실체에 다가가기보다는 오히려 의문들을 더욱 증폭시켜 놓는다.

 

사건 없는 마을에 암매장된 시체가 발견됐다는 건 이 드라마의 화두다. 아무 일도 없어 보이는 그저 작은 마을. 그러나 그 고요함 뒤편으로 들여다보면 수군수군 대는 수상한 목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그 시체가 외지에서 온 김혜진(장희진)이라는 미스테리한 여인이고 그 여자는 이 마을의 최대 권력자인 서창권(정성모)과 내연관계였으며 그것 때문에 서창권의 새 아내인 윤지숙(신은경)과 드잡이까지 했었다는 사실은 이 사건이 이들 가족과 무관하지 않다는 걸 말해준다.

 

그리고 그 죽은 김혜진이라는 인물이 이 마을에 영어교사로 들어온 한소윤(문근영)의 언니가 아닐까 하는 단서들은 서창권의 가족과 한소윤의 가족이 과거 어떤 일인가로 얽혀 있었다는 걸 말해준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만들어내는 의심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약국을 운영하고 있는 윤지숙의 배다른 동생 강주희(장소연) 역시 김혜진과 무언가를 함께 꾸미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녀 역시 이 살인사건과 무관하지 않을 거라는 심증을 갖게 한다.

 

<마을>은 살인사건의 용의자를 하나씩 지워나가는 것이 아니라 매회 한 명씩 늘려나가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확장시킨다. 그러니 시청자들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무언가 단서를 잡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또 다른 인물이 용의자로 등장해 사건을 더 복잡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이렇게 끊임없이 단서를 뒤집고, 확실한 이야기를 숨긴 채 용의자를 줄이기보다는 늘려 나가는 불친절함이 의외로 드라마에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것이 많은 추리물과 스릴러물이 가진 힘일 것이다. 숨겨진 비밀과 그 비밀이 양파 껍질 까듯 벗기고 나면 또 다른 국면으로 흘러가는 것이 반복될수록 궁금증과 호기심은 증폭된다.

 

물론 이건 드라마로서는 도전적인 일이다. 시청률을 담보해내지 못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몰입감이 높을수록 시청자들의 새로운 유입은 요원해진다. 중간에 봐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단 드라마에 발을 디딘 시청자라면 결코 벗어나기 힘든 미로를 만나게 된다. 그 미로는 복잡해도 꽤나 매력적이다.

 

그런데 도대체 <마을>은 이런 미로를 통해 무슨 얘기를 하려고 하는 것일까. 사건의 전개는 마을 사람 모두를 의심스럽게 만들고 있다. 즉 애초에 평화로워 보이던 사건 없는 마을은 회가 거듭될수록 엄청난 의뭉스런 사건들이 숨겨져 있는 공간으로 바뀌게 된다. 이처럼 고요한 표면 속에 꿈틀대는 욕망 덩어리들을 하나하나 펼쳐 보이는 까닭은 무엇일까.

 

한소윤이 외부인으로서 이 마을에 들어와 느끼는 공포감과 무슨 일이 벌어졌던가에 대한 궁금증은 고스란히 시청자들의 시선에 맞닿아 있다. 시청자들은 한소윤이라는 인물을 통해 이 의문의 마을을 들여다보게 되는 셈이다. 은폐된 진실. 그리고 그 진실을 파헤치려는 소윤과 우재(육성재) 같은 인물.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이지만 사실은 그 안에 엄청난 욕망들이 뒤얽혀있고 그것은 때로는 범죄의 형태로 나타나지만 그러면서도 그 욕망에 일조한 모두는 쉬쉬하며 숨기는 상황.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이라고 이 드라마는 말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러니 이 미로 같은 드라마를 즐기는 법은 매번 뒤통수를 치는 사건 전개의 복잡함에 빠져들면서도 전체의 맥락을 놓치지 않는 일이다. 소윤이 이 마을에 들어오면서 마을이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가를 보라. 모두가 모두를 의심하고 모두가 한 가지씩의 비밀을 숨긴 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미로를 즐기기 위해서는 실타래가 필요하다. 소윤과 우재라는 실타래를 쥐고 걸어가면 의외로 놀라운 마을의 실체를 발견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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