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푸드는 어떻게 예능과 함께 진화해왔나

이제 김치는 더 이상 외국인들에게 낯선 한식이 아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김치에 열광하는 외국인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됐다. 방송과 K푸드가 그간 해온 공생은 어떤 시너지를 만들었을까. 

서진이네2

‘서진이네2’가 보여준 비비고 컵떡볶이 PPL

“아 떡볶이 먹고 싶다-” tvN 예능 ‘서진이네2’에서 점심 한 타임을 보내고 숨을 돌리는 시간, 직원들이 모여 앉아 간식을 먹을 준비를 한다. 그런데 간식은 이들이 직접 해먹는 게 아니라 간편식으로 나온 컵떡볶이다. PPL로 들어간 이 장면에서 박서준은 친절하게 물을 붓고 전자렌지에 3분만 돌리면 완성되는 컵떡볶이를 시연해 보여주며 그 간편함을 설득한다. 컵떡볶이를 받아든 직원들 모두가 그 간편함과 맛에 감탄사를 연발한다. “진짜 신기하다. 그냥 소스넣고 물넣고 렌즈 돌리면 이렇게 음식이 완성되는거야?” PPL이지만 최우식의 이 한 마디에는 이 음식이 갖고 있는 장점이 다 들어있다. 한국인들도 한번쯤 편의점 같은 곳에서 사서 즉석으로 만들어 먹어보고픈 욕구가 생기는데, 외국인들은 어떨까. 한식이 전 세계에서 핫한 음식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만들어 먹기에는 어딘가 낯설었다면 이 간편함에 매료되지 않을까. 외국인들도 쉽게 알아볼 수 있을 커다란 문구로 비비고가 새겨져 있고 ‘Tteokbokki’라고 영문으로도 적혀져 있는 건 이제 이 상품이 겨냥하는 건 국내만이 아니라는 걸 말해준다. 

 

그런데 이 컵떡볶이 PPL은 의외의 효과 또한 제공한다. 그것은 이 ‘서진이네’라는 프로그램이 어찌 보면 하나의 거대한 한식 홍보 프로그램일 수 있다는 걸 가리는 효과다. 장 보드리야르가 디즈니랜드는 실제 미국 전체가 디즈니랜드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했듯이, 이 껍떡볶이 PPL은 이 프로그램 전체가 한식을 홍보하는 프로그램일 수 있다는 사실을 가리는 효과를 낸다. 물론 그렇다고 ‘서진이네’가 한식 홍보 이상의 예능적 재미요소를 갖추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서진이네’는 이서진의 성장사가 주는 묘미와 그가 동료 연예인들인 직원들(?)과 함께 낯선 타국에서 한식으로 장사를 하는 과정을 리얼리티로 보여주는 재미를 가진 예능 프로그램이다. 그렇지만 그 진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전혀 홍보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 한식 홍보를 효과적으로 해내는 성과들을 내고 있다는 건 엄연한 사실이다. 

 

이것은 지난 ‘서진이네’ 첫 번째 시즌에서 멕시코 바칼라르로 갔을 때 시도했던 메뉴들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당시 ‘서진이네’ 음식점의 콘셉트는 분식이었고 그래서 등장한 음식들은 김밥, 떡볶이, 핫도그, 라면(일반 라면, 붉닭볶음면), 치킨이었다. 이 메뉴들은 어찌 보면 이미 전 세계의 K푸드 붐을 이끄는 음식들이라서 프로그램이 이를 수용한 면이 있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비비고가 컵떡볶이를 출시하듯이 간편식으로 상품화가 용이한 메뉴들이기도 하다. ‘서진이네’를 봐온 외국인 팬들이라면 첫 시즌에서 메뉴로 나왔던 떡볶이가 ‘컵떡볶이’로 나왔다는 사실에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만큼 자연스러운 한식 홍보가 있을까. 

 

K예능과 함께 하는 K푸드

‘서진이네’ 첫 시즌이 분식이라는 훨씬 진입장벽이 낮은 한식을 메뉴로 내세웠다면, 아이슬란드에서 펼쳐진 ‘서진이네2’는 이보다는 진입장벽이 좀 있는 한식들을 가져왔다. 추운 나라에서 뜨끈한 음식을 선보이겠다는 취지로 ‘서진뚝배기’라는 음식점을 열고, 꼬리곰탕, 뚝배기불고기, 소갈비찜, 돌솥비빔밥, 닭갈비, 순두부찌개, 육전비빔국수 등을 메뉴로 내놨다. 시즌1에 비해 보다 한식에 가깝게 접근한 것이고, 그래서 이 음식들을 주문에 맞춰 만들어야 하는 출연자들의 미션도 난이도가 높아졌다. 그런데 이렇게 보다 외국인들에게는 낯설 수 있는 한식을 꺼내온 건 두 가지 요인 때문이다. 그 하나는 이제 그만큼 외국인들에게 알려지게 된 한식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방송적으로도 익숙한 맛이 아닌 새로운 맛에 반응하는 외국인들의 모습을 담겠다는 것이다. 

 

이 자신감은 ‘서진이네2’에서는 확실한 성과로 돌아왔다. 즉 보통은 입소문이 나지 않아 한산했던 첫날부터 오픈런이 이어졌고, 음식들에 대한 만족도는 거의 모두가 최상급이었다. 그래서 ‘서진이네2’의 관전 포인트는 장사가 잘 될까 안될까 하는 불안감을 극복해가는 과정이 아니라, 문만 열면 오픈런하는 손님들의 주문들을 과연 잘 소화해낼 수 있을까 하는 것에 맞춰졌다. 일 잘하는 고민시가 단번에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끌었고, 이제 주방일에 익숙해진 출연자들의 부지런함에 사장인 이서진이 “쉬면서 해”라고 얘기하는 반전의 스토리텔링이 생겨났다. 즉 한식에 대한 좋은 반응은 거의 기정사실이 됐다는 것. 대신 이 인기를 감당할 수 있는가가 새로운 한식의 스토리로 떠올랐다. 

 

그런데 알다시피 이 복잡해 보이는 음식들도 대부분 간편식으로 상품화되는 추세다. 곰탕도 불고기도 비빔밥도 또 찌개도 이제는 저 ‘컵떡볶이’치럼 상품화가 가능해진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러니 K예능이 담아내는 음식 관련 콘텐츠들은 K푸드와 동반성장하는 시너지를 더욱 낼 수 있게 됐다. 그 간편식으로 한식에 익숙해진다면 그 다음은 직접 해먹는 단계로 넘어갈 수 있지 않겠는가. 

 

뉴욕에 뜬 한국식 기사식당의 위용

K푸드 열풍은 물론 드라마, 영화, K팝 같은 K콘텐츠가 촉발시켰다. 드라마, 영화 속에 등장하는 라면이나 김밥은 외국인들이 먹고 싶어하는 한식이 됐고, 좋아하는 K팝 아이돌이 먹은 음식들 역시 큰 화제를 불러 일으키며 외국인들을 입맛 다시게 했다. 여기에 음식을 소재로 하는 예능 프로그램들의 지분 역시 적지 않다. 특히 나영석 사단이 ‘삼시세끼’에 이어 ‘윤식당’ 그리고 ‘서진이네’로까지 이어온 일련의 음식 관련 여행 예능프로그램은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특히 ‘서진이네’ 시즌1은 아마존 프라임에 소개되면서 화제가 됐는데 여기에 방탄소년단 뷔는 물론이고 ‘기생충’의 최우식 그리고 ‘이태원클라쓰’의 박서준 같은 글로벌 스타들이 포진한 건 우연이 아니었다. 또 백종원을 중심으로 내세운 ‘장사천재 백사장’ 같은 프로그램도 외국 현지에서 한식을 선보임으로써 보다 친숙하게 외국인들에게 다가간 면이 있다. 이 일련의 흐름을 CJ가 전면에서 끌어간 건 콘텐츠는 물론이고 푸드 산업 또한 유기적으로 연결된 그 시스템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K콘텐츠를 통해 낮춰진 한식 열풍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건 뉴욕 맨해튼에 지난 봄 등장한 한국식 기사식당이다. 어찌 보면 국내의 기사식당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돼지불백이나 계란찜 같은 한국식 백반을 메뉴로 하는 이 기사식당은 개점부터 길게 늘어선 대기줄이 화제가 됐다. 그저 김밥이나 떡볶이 같은 이제는 일상화된 한식이 아니라 좀더 깊게 경험해보고 싶은 한식에 대한 외국인들의 욕구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뉴욕에는 뉴욕타임즈가 선정한 2024년 뉴욕 최고의 레스토랑 100곳에 한식당만 7곳이 들어 있다고 한다. 

 

‘서진이네2’에서 한식에 대한 외국인들이 갖는 호감을 가장 잘 드러내는 장면은 김치에 열광하는 모습이다. 한 때는 냄새 난다며 외국인들이 인상을 찌푸리기도 했던 음식이 아닌가. 그만큼 한식에 친숙해진 이들은 김치 맛에 깊게 빠져들고 있는데 김치 맛을 안다는 건 한식을 그만큼 이들 역시 이해하게 됐다는 걸 의미한다. 직접 집에서 김치를 담근다는 외국인들의 이야기나, 한식을 맛보기 위해 한국에 너무 가고 싶다는 이들의 이야기까지 K푸드는 어느새 세계인들의 음식으로 자리하게 됐다. 물론 여기에는 ‘서진이네’ 같은 전혀 한식 홍보 같지 않지만 그 효과는 200%인 방송과의 시너지도 빼놓을 수 없다. (글:시사저널, 사진:tvN)

‘서진이네2’, 이제 외국인들은 한식 문화까지 즐기려 한다

서진이네2

“닭갈비.” 한 외국인 손님이 그렇게 메뉴를 주문하자 그걸 받아적던 최우식이 “완벽한 발음이네요.”라고 말해준다. 실제로 그렇다. 이 외국인은 어디서 보고 들었는지 이 음식을 발음하는 게 낯설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음식이 나오자 마침 함께 앉아 있는 테이블에서 그 날 처음 만난 다른 손님에게 먹어보고 싶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하자 닭갈비와 더불어 함께 나온 비빔면도 나눠준다. 

 

tvN ‘서진이네2’의 이 광경은 어딘가 익숙하다. 그건 함께 둘러 앉아 나눠 먹는 한식의 풍경이기 때문이다. 주로 각자의 음식을 따로 먹는 외국인들의 음식 문화와는 사뭇 달라 때론 이상하게 여겨지기도 하던 그 풍경을 외국인들이 자연스럽게 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서진뚝배기’라는 음식점 이름에 걸맞게 뚝배기에 나온 음식을 함께 자리에 앉은 친구나 가족이 맛을 보겠다며 숟가락으로 음식을 가져가 먹는 광경도 익숙하게 등장한다. 

 

그 닭갈비를 나눠 준 외국인은 함께 앉은 다른 손님들에게 자신이 한국음식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를 들려준다. 코로나 기간에 알게 된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들 덕분에 한국드라마와 문화를 알게 됐다는 것이다. 또 친구들과 한국드라마에 대해 같이 이야기를 나누곤 했는데 “그런데 음식이 계속 눈에 들어오는 거예요. 먹어보면 어떨까 궁금했는데 이번에 처음 제대로 된 한국음식을 먹어 봤어요. 맛있었어요.” 

 

이건 어쩌면 외국인들이 이제는 한국음식에 점점 익숙해지게 된 중요한 이유일 게다. 영화나 드라마가 먼저 알려지고 그래서 그 콘텐츠들을 즐기다 보니 자연스레 거기 등장하는 한식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한식을 음식만이 아닌 그걸 먹는 방식, 즉 음식 문화에 대한 것 또한 이들이 관심을 보인다는 점이다. 실제로 ‘서진이네2’에 서진뚝배기를 찾은 손님 중에는 유창하게 한국어를 구사하는 이도 있었는데 콘텐츠를 통해 배운 것이라고 했다.  

 

나눠 먹는 일은 이상한 것이 아니라 점점 한국의 음식문화가 가진 ‘정’으로 느껴지고 자꾸만 다 먹고 나서는 “감사합니다” 같은 한국말로 고마움을 표현하려 한다. 뜨끈한 국물과 더불어 소주를 찾는 외국인들의 모습도 흥미롭다. 건배를 한 후 한 번에 쭉 마시는 모습은 영락없이 드라마 같은 데서 봤던 걸 따라하는 것일 게다. 어떤 손님은 다 마시고 나서 빈 잔을 머리 위에 터는 모습까지 보인다. 

 

‘윤식당’ 때부터 ‘윤스테이’를 거쳐 ‘서진이네’까지 나영석 사단은 지금까지 약 7년 동안 외국에서 한식을 소개하는 프로그램들을 보여줬다. 세계 각지를 다니며 한식을 만들어 외국인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를 들여다 봐온 것이다. 그런데 처음에 봤던 외국인들이 한식을 접하는 모습과 현재에는 차이가 느껴진다. 처음에는 숟가락을 쓰는 것도 낯설어 굳이 젓가락으로 힘들게 먹던(그것이 마치 예의라고 생각했던 듯 하다) 그들이 지금은 숟가락으로 밥을 퍼서 뚝배기불고기의 국물에 살짝 담갔다 빼서 먹는 모습을 보여준다. 

 

닭갈비를 비빔면에 싸서 먹거나, 육전과 비빔국수를 함께 해서 먹는 모습도 익숙하다. 그렇게 먹어야 음식이 더 맛있다는 걸 알려주기도 해서지만, 그렇게 함께 먹는 방식이 한식문화에는 익숙하다는 걸 이들도 알고 있는 눈치다. 맥주에 소주를 넣어 소맥을 만들어 마시기도 하는 이들 중에는 이렇게 콘텐츠를 통해 알게 된 음식 문화 때문에 한국에 직접 가보고 싶다고 말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K콘텐츠의 저력이 느껴지는 ‘서진이네2’의 색다른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사진:tvN)

‘서진이네2’의 육각형 인재와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의 광기 사이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민시야. 물은 마셨어?” tvN 예능 ‘서진이네2’에서 정신없이 몰려오는 손님들 때문에 쉬지 않고 요리를 내놓느라 탈탈 털린 최우식이 함께 일한 고민시에게 그렇게 묻는다. 그러자 고민시는 놀라운 답변을 내놓는다. “아니요. 전 화장실 갈까 봐도 못 마시겠어요.” 그 말에 최우식이 놀랐다는 표정을 지으며 짐짓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다. “미처 그거까지는 내가 생각을 못했다”며 무릎을 꿇는 모습으로 웃음을 준다. 

 

사실 ‘서진이네2’에 새롭게 합류한 고민시지만 그가 영업 첫날부터 이만큼 놀라운 존재감을 드러낼 줄은 예상 밖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껏 ‘윤식당’이나 ‘서진이네’를 하면서 첫 날은 아직 소문이 나지 않아 손님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일 메인 셰프를 바꿔가며 하자는 새로운 룰을 제안한 이서진도 첫 날 셰프로 상대적으로 약하게(?) 느껴진 최우식을 세운 거였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첫날부터 오픈런하는 상황이 벌어졌고 그 날의 메인셰프를 맡은 최우식과 인턴 주방 보조인 고민시는 넉다운될 정도로 음식을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위기가 그 사람의 진가를 드러낸다고 했던가. 고민시는 다양한 알바 경험들을 했다는 말이 그냥 한 말이 아니라는 걸 입증이라도 하듯 빠릿하게 모든 상황들을 알아서 보조해주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런데 그건 고민시라는 육각형 인재의 진가가 이제 겨우 첫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에 불과했다. 다음날에도 또 그 다음날에도 메인 셰프만 정유미, 박서준으로 바뀌고 모든 날 주방 보조로 일을 하게 된 고민시는 갈수록 진화해가는 모습을 보였다. 재료 준비에서부터 메인 셰프가 바쁠 때는 직접 요리까지 했고, 시간이 걸리는 음식은 손님이 오기도 전부터 미리미리 준비해놓음으로써 모든 상황들을 물 흐르듯 막힘 없게 만들었다. 게다가 ‘서진이네2’라는 예능 프로그램에도 어느 순간 적응한 그는 그 날의 메인 셰프에 맞는 다양한 케미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즉 어딘가 서툴지만 그래도 해내는 모습으로 웃음을 주는 최우식과는 빵빵 터지는 남매 케미를 보여줬다면, 안정감 있는 주방을 만들어내는 정유미와는 전혀 불안함이 느껴지지 않는 든든한 자매 케미를 선사했다. 반면 ‘이태원 클라쓰’의 박새로이가 온 듯한 박서준과는 마치 새롭게 창업한 청춘들의 가게 같은 동료로서의 케미를 그려냈다. 

 

물론 예능 프로그램이지만 ‘서진이네2’는 여러모로 고민시라는 배우가 가진 저력이 어디에서 비롯되는가를 드러낸 면이 있다. 그건 못할 것처럼 보여도 막상 뛰어들어 열심히 해내는 데서 나오는 저력이다. 첫 날 그 고생을 하고도 “내일은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무엇을 미리 준비해야 하는가를 줄줄이 이야기하는 고민시에게서는, 배역을 맡았을 때의 그의 모습이 슬쩍 비춰진다. 연기에 있어서 쉬운 역할이 어디 있으랴. 다만 얼마나 열심히 준비하느냐에 따라 조금씩 익숙해지는 것이고 나중에는 자연스러워지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는 것일 테니 말이다.

 

마침 ‘서진이네2’와 함께 서비스된 두 작품에서의 고민시가 새롭게 보이는 건 그래서다. ‘스위트홈3’와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가 그 두 작품으로 둘다 넷플릭스를 통해 소개되었다. ‘스위트홈’은 사실상 처음으로 고민시라는 배우의 존재감을 알린 작품이기도 하다. 극 중 고민시가 연기한 이은유라는 캐릭터는 발목 부상으로 발레의 꿈을 접은 인물이다. 그래서 발레를 하는 짧은 장면이 등장하는데, 그걸 위해 고민시는 7개월 동안 발레를 배웠다고 한다. 작품이 끝난 후에도 계속 발레를 하고 있다는 그는 그래서인지 ‘서진이네2’에서 스트레칭을 할 때 엄청난 유연성을 보여준 바 있다. 이러한 유연한 피지컬은 시즌3까지 이어진 ‘스위트홈’은 물론이고 최근 서비스된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의 액션 연기가 자연스러운 이유가 아닐까 싶다. 

 

고민시는 특유의 강인한 이미지가 매력적인 배우다. 단호한 얼굴로 부릅 뜬 눈은 그래서 심지어 죽음 앞에서도 결연함 같은 게 느껴지게 만든다. ‘오월의 청춘’은 이 강인함이 김명희라는 생명력 넘치는 간호사 역할로 그려졌다. 80년 5월 광주의 비극을 다룬 작품이다. ‘백의의 전사’에 가까운 강인한 면모를 가진 간호사여서 희태(이도현)와의 비극적이고 절절한 사랑이 더욱 먹먹하게 느껴지게 하는 그런 연기를 펼쳤다. 마찬가지로 이 강인한 이미지는 ‘스위트홈3’에서 모든 게 무너지고 오빠마저 잃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여전사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아마도 고민시의 이런 매력적인 이미지가 가장 잘 드러난 작품으로 이제는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를 꼽아야 할 것 같다. 이 작품에서 고민시는 섬뜩하면서도 어딘가 신비롭기까지 한 미스테리한 인물 유성아를 실감나게 표현해냈다.  

 

어느 고요한 숲속에 자리한 전영하(김윤석)가 운영하는 펜션에 유성아가 한 아이와 함께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충격적인 사건을 그린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는 실로 고민시로 시작해 고민시로 끝을 맺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그의 지분이 확실한 작품이다. 평화롭던 숲속의 펜션을 순간 긴장감으로 가득 채움으로서 이 스릴러를 연 고민시는,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거의 광기에 가까운 폭주를 보여줌으로써 극을 파국으로 흘러가게 만드는 연기를 보여준다. 섬뜩하게 아름다운 미장센으로 연출된 작품 안에서 고민시는 반쯤 풀린 듯한 눈빛과 순간 노려보는 눈빛으로 허무와 광기를 드러내며 시청자들의 심장을 쥐락펴락한다. 분위기로 만들어내는 공포감은 물론이고 후반부에 벌어지는 육박전은 웬만한 액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실감을 담아낸다.  

 

“아무도 없는 숲 속에서 커다란 나무가 쓰러졌다. 쿵 소리가 났겠는가? 안났겠는가?” 매 회 이러한 화두에 가까운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이 드라마는 사건 사고에 무관심하거나 혹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알면서도 모른 척 하는 세상을 꼬집는 스릴러다. 분명 큰 사건이 터졌지만 그걸 모른 척 한 것이 어떤 비극으로 돌아오는가를 말해주는 작품. 그런데 이 화두는 드라마를 끝까지 다 보고 나서도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 고민시의 연기를 얘기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고요 속의 강렬함이라고 해야할까. 고민시가 가진 그런 이미지가 끝내 쿵 소리를 내며 시청자들의 가슴에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 때문이다. 뭐든 새로운 영역에 들어가서도 금세 적응해내고 마치 본래부터 그런 사람이었다 여겨질 정도로 빠져드는 이 몰입의 힘은 이 배우가 향후 확장해나갈 무한한 가능성을 예상케 하는 면이 있다. (글:국방일보, 사진:넷플릭스)

‘서진이네2’, 추운 아이슬란드라서 뜨끈한 뚝배기의 훈훈함이 더 크다

서진이네2

“도움을 주신 분들. 여기 공사해 주신 분, 다른 곳 섭외해 주신 분...” tvN ‘서진이네2’에서 ‘초대의 날’이 뭐냐고 묻는 최우식에게 제작진은 그 취지를 설명해준다. ‘서진뚝배기’가 개업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줬던 분들을 초대하는 날이란다. 

 

사실 기존 ‘윤식당’이나 ‘서진이네’에서 이처럼 현지 개업에 도움을 주신 분들은 손님으로 찾아온 바 있다. 그래서 맛난 한 끼를 드시는 와중에 자신이 현지 식당을 위해 어떤 걸 했다는 걸 깜짝 알려주는 것으로 반가움을 더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아이슬란드에서 펼쳐진 ‘서진이네2’는 첫 날부터 오픈런하는 손님들 때문에 그런 분들이 문앞에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생겼다. 굳이 ‘초대의 날’이라고 이름 붙여서 그 하루를 도움 준 분들만 받는 날로 한 건 그런 이유였다. 

 

‘윤식당’부터 ‘서진이네’까지 거치며 이들 현지에서 한식을 만들어 손님들에게 내놓는 어찌 보면 단순해보이는 서사가 지금껏 여러 스핀오프들까지 만들어지며 성공해왔던 데는 이들 프로그램만이 갖는 독특한 지점이 있어서다. 그건 그저 출연자들이 만든 한식이 얼마나 맛있었나를 확인하는 즐거움만이 아니다. 오히려 손님들에게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해 아낌없이 노력하는 모습이 불러 일으키는 흐뭇한 감정 같은 것들이다. 

 

음식이 주는 포만감이 기본이지만, 그 음식에 담긴 정성이 전해주는 마음의 포만감 같은 게 ‘서진이네’에는 있다. 그래서일까. ‘서진이네2’가 추운 아이슬란드에서 뜨끈한 뚝배기를 내놓는 그 광경은 음식 그 이상의 정서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가만히 서 있기도 힘들 정도로 추워 종종 걸음으로 걷는 사람들이, 서진뚝배기를 찾아와 뜨끈한 국물과 지글지글 소리를 내는 돌솥비빔밥을 먹는 그 광경이 주는 훈훈함이라니. 

 

도움을 주신 고마운 분들을 위한 ‘한 뚝배기’는 그래서 더더욱 시청자들의 마음을 잡아끈다. 찾은 손님들 중에는 출연자들이 머물 숙소를 제공해준 셰프도 있고, 현지 코디와 통역울 도와준 분들도 있으며, 서진뚝배기를 예쁘게 장식한 식기들을 제공한 분들은 물론이고 운전 담당으로 촬영에 도움을 준 분도 있다. 현지인도 있지만 그 곳에서 살아가는 한국인도 있다. 그러니 이들의 면면은 보는 것만으로도 대접해드리고픈 마음이 절로 생겨난다. 

 

이 날의 셰프는 정유미가 맡았고, 그가 내놓을 특별 메뉴는 ‘육전비빔국수’다. 맛있게 뽑아낸 국수를 달콤 새콤한 장에 비벼 그 위에 보기에도 먹음직한 계란 입힌 육전을 얹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군침이 도는데, 그걸 맛볼 손님들이 얼마나 그 맛을 즐기며 행복감을 느낄지 기대가 될 수밖에 없다. 또 이 가게의 시그니처처럼 되어 있는 ‘돌솥비빔밥’을 시킨 한 손님은 지글지글 내는 소리가 너무 좋다며 조용히 그 소리를 듣는 모습을 보여준다. 따뜻한 음식들이 뚝배기 안에서 온기를 잃지 않고 끓는 것처럼, 전해지는 마음들도 더 따뜻해진다. 

 

마침 최우식의 생일을 맞아 깜짝 이벤트로 마련된 생일상도 조촐한 미역국에 카레 그리고 케이크지만 일찍 일어나 음식을 준비한 정유미와 케이크, 선물 등을 사온 박서준의 마음이 담겼다. 너무나 추운 아이슬란드지만 그래서 역설적으로 더 따뜻해지는 마음들. 이것이 ‘서진이네2’가 시청자들에게 주는 정서적 행복감이 아닐까. 추운 날들이어서 오히려 더 아름답고 따뜻하게 느껴지는 오로라와 눈송이들 같은 그런 행복감 혹은 포만감.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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