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이네2’, 이서진의 경영 시스템 개선이 만든 효과

서진이네2

제목은 ‘서진이네2’인데, 정작 이서진은 앞이 아니라 뒤에 서 있는 느낌이다. 서빙을 하고 몰려드는 손님들을 나서서 정리하는(?) 역할을 선보이기도 하지만, ‘서진이네2’를 매 회 채우는 건 역시 주방이다. 그 날의 셰프로 선정된 이가 사실상 그 회차의 주인공이나 마찬가지고 새로 들어와 그 주방보조로 고정된 고민시는 그 주인공과 함께 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실제로 첫 영업날 셰프로 나선 최우식은 역시 예능을 잘 아는 그의 매력을 한껏 드러냈다. 첫 날은 손님이 많지 않을 걸로 예상해 ‘버리는 카드’로 등판한 줄 알았지만 의외로 몰려온 손님들 속에서 최우식은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하얗게 불태우는 모습으로 웃음을 줬다. 인턴으로 처음 ‘서진이네2’에 합류한 고민시의 존재감도 최우식의 이런 허허실실한 모습 속에서 더 빛날 수 있었다. 화장실 가는 게 두려워 물도 마시지 않았다는 고민시의 한 마디가 최우식과의 케미에서 나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둘쨋날에는 정유미가 셰프로 나서서 최우식과는 상반되는 주방의 모습을 보여줬다. 고민시의 말대로 분명 바쁜데 ‘안 바쁜’ 편안한 주방의 풍경이 연출된 것. 그건 뭐든 미리미리 준비해두는 정유미 특유의 꼼꼼하면서도 차분한 성격이 작용한 결과였다. 그리고 셋쨋날에는 ‘서진이네’의 에이스인 박서준이 등판해 고민시와 함께 ‘이태원 클라쓰’의 단밤 케미를 보여줬다. 박새로이의 부활을 보는 듯 했다. 

 

이러니 나영석 PD가 고민시에게 각 셰프들의 특징을 묻고, 그래서 난감해하는 고민시를 통해 한바탕 웃음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고민시의 이야기를 정리해보면 최우식은 재미있었고, 정유미는 안정감이 있었으며 박서준은 솔선수범의 아이콘이었다는 거였다. 만일 진짜 식당을 한다면 어디로 가고 싶으냐는 이우정 작가의 질문에 고민시가 돈은 박서준이 가장 많이 벌 것 같고 정유미는 안정감이 있을 것 같았다고 했고 최우식은 자기와 같이 들어가면 될 것 같다고 말하는 장면도 역시 예능적 재미를 줄 수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직원들이 저마다의 활약상을 드러내고 있을 때 이서진은 흐뭇한 얼굴로 뒤편에서 미소짓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래서 뭔가 전면에 자신을 드러내고 있지는 않았지만, 알고 보면 이 모든 화젯거리들을 그의 선택으로부터 시작된 거였다. 첫 날 최우식을 그 날의 셰프로 세운 것도 이서진이었고, 둘쨋 날 정유미를 셋째 날, 넷째 날 연달아 박서준을 세운 것도 그였다. 

 

특히 연달아 박서준을 메인 셰프로 등판시키고 10분씩 늦춰서 손님들을 차례로 사전예약을 받는 새로운 시스템을 적용해본 건 이서진이 왜 ‘서진뚝배기’의 사장인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똑같이 박서준을 세웠던 건 점점 더 많은 인파가 몰려올 거라는 걸 인지한 판단이면서, 또한 10분 간격을 둔 예약시스템이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줄 수 있는 선택이기도 했다. 

 

한꺼번에 주문이 몰렸던 전날 눈코뜰 새 없이 바빴던 박서준과 고민시의 주방은 바로 이 새로운 시스템이 적용되면서 너무나 여유로운 풍경으로 바뀌었다. 무엇보다 이 시스템이 좋은 건 주방만이 아니라 홀의 손님 응대에 있어서도 여유를 만들어줬다는 점이다. 그저 음식 주문받고 내놓고 먹고 나가는 것의 반복이 아니라, 최우식이나 이서진이 손님들에게 다가가 스몰토크를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는 것. 방송적으로 봐도 이 선택이 얼마나 큰 효과를 발휘했는가를 잘 보여준다. 

 

그 시스템 개선으로 주방도 홀도 모두 평화를 되찾았지만, 그 풍경은 직원들이 보여주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정작 그 주인공인 이서진은 한 발 뒤로 물러나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쪽이었다. 나서지는 않지만 뒤편에서 묵묵히 든든한 비빌언덕이 되어주는 이서진의 존재감이 확연히 드러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사진:tvN)

‘서진이네2’로 돌아온 이서진의 곰탕 같은 매력

서진이네2

“곰탕집 하나 할까봐요.” 10년 전 정선에서 처음 tvN 예능 ‘삼시세끼’가 문을 열었을 때 자급자족을 해먹으라는 제작진의 요구에 이서진은 커다란 솥단지에 소꼬리와 뼈를 넣어 오래도록 끓여낸 곰탕을 만들었다. 손님으로 찾아와 그 맛을 본 신구, 백일섭 할배들이 유명한 곰탕집보다 낫다는 평가를 내놓자 이서진은 특유의 보조개로 환하게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은 10년 후 현실이 됐다. ‘서진이네2’로 아이슬란드에서 열게 된 한식점 ‘서진뚝배기’의 메인 요리가 바로 이서진이 끓여내는 꼬리곰탕이 됐기 때문이다. 나라 이름만 들어도 한기가 느껴지는 아이슬란드와 뜨끈한 우리의 정이 느껴지는 꼬리곰탕의 만남. 그 사이에는 10년의 세월을 거쳐 진국으로 우러난 이서진이라는 인물이 서 있다. 배우지만 나영석 PD와 만나 예능에서도 일가를 이룬 오래도록 끓여 굳이 뭘 넣지 않아도 그 자체로 맛을 내는 곰탕 같은 매력의 소유자가 바로 그다. 

 

나와는 오랜 인연이 있는 나영석 PD가 처음 ‘삼시세끼’를 찍고 막 돌아왔을 때 했던 이야기가 있다. 그는 대뜸 “이번에는 진짜 망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제목을 ‘삼시세끼’라 짓고 정말 하루 세 끼 챙겨먹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미션도 없는 예능을 시도했는데, 진짜로 출연자들이 아무 것도 하지 않더란다. 그런데 이러한 우려와는 정반대로 ‘삼시세끼’는 대박을 냈다. 그건 당시 이미 미션 같은 인위적 설정에 물린 시청자들이 더 리얼한 걸 요구하기 시작했던 변화와 맞물린 덕분이기도 했지만, 그 아무 것도 하지 않는데도 계속 보게 만드는 매력의 소유자 이서진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나영석 PD는 이서진의 매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방송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진짜로 다 해요.”

 

이런 모습은 ‘서진이네2’의 출연자들이 처음 아이슬란드에 내려 차를 타고 서진뚝배기를 향해 가는 길에서도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이서진과는 상반되게 대놓고 방송 분량을 만들겠다고 나서며 흐린 날씨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지만 “와 멋있다 진짜”라고 일부러 말하는 최우식에게 단박에 “거짓말 하지 마”라고 웃으며 선을 긋는 모습이 그것이다. 그의 이런 진솔한 모습은 일찍이 ‘1박2일’ 시절부터 나영석 PD의 눈에 들어왔고, ‘꽃보다 할배’의 짐꾼을 거치면서 요리왕을 꿈꾸던 것이 ‘삼시세끼’로 또 이어졌다. 그리고 ‘윤식당’과 ‘윤스테이’를 거쳐 ‘서진이네’로 성장했다. 나영석 PD가 일부러 그렇게 한 건 아니지만, 이 과정을 보면 마치 이서진이라는 인물의 자수성가 성장담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처음에는 그저 할배들 밥을 챙기다가 해외와 국내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한식당 경영을 해보더니 드디어 해외에 자기 한식당을 열게 된 사장이랄까. 

 

‘서진이네2’에서도 오랜 시간을 거쳐 매력적인 캐릭터로 자리잡은 이서진의 겉은 차갑지만 속은 따뜻한 면모들이 돋보인다. 매일 메인셰프를 정해 운영하겠다는 새로운 방침에 따라 누구를 첫 날 세울 것인가를 고민하던 이서진은 최우식을 스타트로 세우면서 그 이유로 분명 첫날은 손님이 별로 없을 거라는 합리적인 추론을 내세웠다. 나영석 PD가 “버리는 카드냐”고 묻자 이서진은 웃음기 없는 진지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아니 버리는 게 아니라 그래서 얘가 데뷔하기 좋은 기회라는 거지.” 그 말에 붙은 ‘따뜻한 속마음도 차갑게 표현하라’는 자막은 이서진이 가진 솔직하면서도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잘 드러낸다. 어찌 보면 간지러운(?) 말이나 상황들을 견디지 못하는 것 같은 이 인물은 요리를 하다가 최우식이 살짝 엄지손가락을 데이자 무심한 척 걱정하는 목소리를 내다가도, 상처부위를 들여다 보고는 자신도 과거에 그런 일을 겪었다며 네 상처는 별거 아니라고 ‘자기 식’의 위로를 덧붙인다. 

 

이러한 ‘겉차속따’의 면모는 이서진이 변화하는 예능 환경 속에서 도드라지는 인물로 성장하게 된 중요한 이유다. 과거 연예인들은 방송에서 정반대로 ‘겉따속차’의 모습을 보이는 걸 일종의 이미지 관리로 해왔던 경향이 있었다. 실제로는 차갑지만 인간적인 면모들을 방송에 나올 때만 강조하는 것이 연예인들의 관리된 이미지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서진은 그 틀을 깨고 나와 있는 그대로의 툴툴거리고 때론 투덜대는 자신의 면모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꽃보다 할배’에서 어르신들을 챙기는 짐꾼 역할을 누구보다 성실하게 하지만, 나영석 PD와 앉아 뒷풀이로 술을 마시거나 할 때는 한없이 푸념을 늘어놓는 모습을 보여준 것. 그것은 거짓이 아닌 진실된 면모로 시청자들에게 다가왔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힘들어 투덜대는 것일 뿐, 어르신들에 대한 배려는 진심이라는 걸 드러냈다. 즉 인간은 두 가지 감정이 공존할 수 있다는 걸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점점 리얼함을 요구하게 된 방송 환경 속에서 이서진이 주목된 이유다. 

 

물론 이서진의 본업은 배우다. 그래서 최근에도 ‘조폭인 내가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에 김득팔이라는 조폭으로 특별출연해 존재감을 드러낸 바 있고, ‘연예인 매니저로 살아남기’에서는 메쏘드엔터 총괄이사인 마태오 역할을 또 ‘내과 박원장’에서는 대머리 내과의사 박원장 역할로 파격적인 연기 변신을 보여주기도 했다. 물론 ‘트랩’이나 ‘타임즈’ 같은 작품에서 진지한 역할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워낙 예능 이미지가 강해지다보니 조금은 희화화된 캐릭터로 소비되는 경향이 생겼다. 하지만 그의 과거를 들여다보면 그 유명한 “아프냐? 나도 아프다.”라는 명대사를 남긴 ‘다모’의 주인공이었고 ‘연인’에서 김정은과 호흡을 맞춘 멜로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이기도 했다. 즉 현재의 흐름대로 예능에서 얻은 이미지로 배역 또한 소비되고 있지만 언제든 또다른 변신이 가능한 배우라는 점이다. 

 

중요한 건 물 흐르듯 변화하는 상황에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서 나오는 다양한 감정들을 이서진은 대중들에게 그대로 납득시켜주는 면이 있다는 점이다. 투덜대도 그 밑에 깔린 따뜻함이 느껴지고, 따뜻한 목소리에도 장난기를 숨기는 그런 다양한 감정의 공존이 그는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건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며 누군가의 감정을 일면으로만 파악하긴 어렵고 그것이 결국 인간적인 매력이라는 것을 에둘러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끓이고 끓여야 비로소 진국의 맛이 우러나는 곰탕처럼.(글:국방일보, 사진:tvN)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