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닥터>, 갈수록 팽팽해지는 까닭

 

갈수록 더 팽팽해진다. 많은 드라마들이 초반에 팽팽한 긴박감을 유지하다가 중반을 넘기면서 흐지부지되고 결국 용두사미라는 얘기를 듣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SBS <낭만닥터 김사부>는 갈수록 힘을 받고 있다.

 

'낭만닥터 김사부(사진출처:SBS)'

이걸 가장 잘 말해주는 건 시청률 곡선이다. 첫 회 9.5%(닐슨 코리아)에 시작했지만 8회 만에 20%를 넘겼고 잠시 숨고르기를 하더니 17회에서는 25.1%를 기록했다. 이제 남은 건 20회까지 3회 분. 어쩌면 미니시리즈에서는 기록하기 힘들다는 30% 시청률 돌파도 그리 불가능한 수치처럼 보이지 않는다.

 

<낭만닥터 김사부>의 이야기 구조는 매 회 하나의 에피소드로 완결성을 가지면서도 전체 이야기가 점층적으로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형태로 이뤄져 있다. 이런 점은 특별히 이 드라마를 처음부터 보지 않은 시청자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해준다. 그저 한 편의 이야기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완결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동시에 이를 계속 본방사수해온 시청자들 역시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에 갈수록 빠져들 수밖에 없는 구성을 갖고 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 바로 강동주(유연석). 아버지가 제때 수술을 받지 못해 죽게 되자 세상에 대한 복수심을 드러냈던 소년 강동주를 떠올려보라. 그는 어떻게든 성공해서 힘 있는 자가 되어야 복수도 할 수 있다고 여기며 의사가 된 인물이다.

 

그런데 지금 현재의 강동주는 그 때의 강동주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성장해 있다. 김사부(한석규)를 통해 자신도 모르게 환자 중심으로 생각하고 있고 그 생명에는 귀천이 없다는 생각에까지도 이르고 있다. 신 회장(주현) 수술이라는 중차대한 일을 앞두고 있었지만, 당장 수술이 위급한 환자를 외면하지 않고 김사부 모르게 수술을 시행한 그가 아닌가. 그에게 김사부가 잘 했다고 칭찬을 해주자 깜짝 놀라는 강동주는 스스로도 자신이 그렇게 변화했다는 걸 잘 모르는 눈치다.

 

강동주의 성장담과 함께 그가 첫 회부터 연정의 마음을 드러냈던 윤서정(서현진)과의 사랑이야기 역시 조금씩 무르익어갔다. 물론 드라마에서 이 멜로 부분은 다른 극적 상황들의 이야기에 비해 그리 강조된 건 아니었다. 그저 드라마를 보는 또 한 축의 재미로서 달달한 그들의 멜로가 조금씩 깊어가는 걸 보여줬을 뿐. 하지만 이 역시 드라마를 애청해온 시청자들이라면 계속 몰입해서 보게 되는 유인이 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갈수록 이야기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중요한 에피소드는 역시 김사부의 과거와 연결되어 있다. 과거 어떤 의료사고가 벌어졌고 거기서 억울한 누명을 쓴 채 변방으로 쫓겨나야 했던 김사부의 과거. 17회에 이르러 기자가 등장하고, 드디어 그 김사부의 과거 이야기가 본격화되며 그 진실이 무엇이었는가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면서 시청률이 폭발한 건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지금 같은 시국에 특히 진실의 문제가 그 어느 때보다 시청자들의 마음을 잡아끄는 건 당연한 일이다. 부용주라는 이름을 버리고 김사부로 살아가는 그 캐릭터는 애초부터 진실의 문제를 화두로 담고 있는 인물이었다. 진실이 무엇이냐고 추궁하는 기자에게 오히려 진실을 알면 세상에 전할 용기는 있냐?”고 되묻는 김사부의 일갈은 진실이 진실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그걸 제대로 전하고 그 진실에 마주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말해준다.

 

매 회가 완결성 있는 이야기로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재미를 주고, 그 회의 연결이 인물들의 성장드라마와 멜로, 그리고 진실에 접근해가는 점층적 구조를 갖고 있다는 건 <낭만닥터 김사부>가 후반부로 갈수록 더 힘을 내는 이유다. 물론 30% 시청률이 결코 쉬운 수치는 아니지만 어쩌면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건 그래서다

평범 속의 비범, <또 오해영>에 이은 <낭만닥터>의 서현진


tvN <또 오해영>에서 서현진은 너무나 평범해서 똑같은 이름을 가진 또 다른 오해영과 비교당하며 살아가는 역할을 연기했다. 늘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주변인이 되어버리고, 하는 일도 또 연애도 주인공들 뒤편에서 바라보는 역할에 머무는 삶. <또 오해영>이라는 작품은 그래서 이미 2001년에 걸 그룹으로 데뷔했지만 별 주목을 받지 못하고 해체된 후, 2016년 이 작품을 만나기 전까지 아주 천천히 하지만 결코 느슨하지 않게 작은 역할들을 연기하며 나아가기를 멈추지 않았던 서현진의 실제 삶과도 겹쳐지는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어땠던가. 그 평범함에 묻혀 있던 서현진이 <또 오해영>이라는 작품으로 더할 나위 없는 매력을 가진 주인공임을 증명하지 않았던가.

 

'낭만닥터 김사부(사진출처:SBS)'

SBS <낭만닥터 김사부>는 서현진에게는 그래서 감회가 남달랐을 작품이다. 그 이전까지는 주인공이라고 해도 주목받는 입장은 아니었지만 이번 작품은 다르기 때문이다. <낭만닥터 김사부>는 물론 김사부 역할의 한석규나 강동주 역할의 유연석이 있지만 그 중심추로서 윤서정을 연기하는 서현진이 서 있다. 그녀는 온전히 그 여주인공으로서의 무게를 감당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

 

<낭만닥터 김사부>에서 윤서정이란 캐릭터는 결코 쉽게 연기할 수 있는 인물은 아니다. 등장하자마자 결혼을 약속했던 남자를 교통사고로 잃었다. 그것도 그녀는 차 안에서 그에게 했던 말 한 마디가 그런 교통사고로 이어졌을 거라는 자책감까지 갖게 됐다. 충격에 산을 오르다 손을 다쳤고 외과의사로서 사형선고가 내려질 그 위기를 김사부가 구해줬다. 하지만 그 과거의 아픔과 상처는 여전히 남아있다. 하지만 병원 내사를 통해 밝혀진 것처럼 윤서정은 결코 죽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인물은 아니다. 대신 그 와중에도 살겠다는 의지가 있어 그것이 미안한 감정으로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러니 그 살겠다는 의지가 절실하게 붙들고 있는 것이 바로 돌담병원과 김사부다.

 

이런 복합적인 감정을 가진 채 그녀는 다양한 연기의 폭을 보여줘야 한다. 유연석과는 밀고 당기는 멜로의 감정과 함께 과거 교통사고로 사망한 전 남자친구의 트라우마를 넘어서는 연기를 보여줘야 하고, 한석규와는 그 트라우마 때문에 바닥까지 내려왔던 외과의사로서의 길을 다시금 걸을 수 있는 치열한 성장드라마의 연기를 보여줘야 한다.

 

서현진은 이 장르적으로는 멜로드라마와 장르드라마를 오가는 작품을 너무나 잘 소화해내고 있다. 외과의사로서의 진정성이 느껴지는 면면이 보여지는 동시에, 연애의 풋풋함과 아픈 기억의 절망감이 연기에 잘 녹아들어 있다. 무엇보다 서현진이라는 배우가 괜찮다 여겨지는 건 자연스러움이다. 그녀의 연기를 보면 튀기보다는 상황 속에 잘 스며있다는 느낌을 준다.

 

평범 속의 비범. 아마도 서현진이라는 배우를 한 마디로 표현하라면 이런 말이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지극히 평범해 길거리 어디선가 마주쳤을 지도 모를 그런 이미지를 보이지만 자세히 그 안을 들여다보면 비범한 매력들이 드러난다. 이것은 서현진이 향후 다양한 역할들을 소화해낼 연기자로서 성장하는데 좋은 바탕을 갖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중장년 연기자들은 넘쳐나도 이제 중심을 잡아줄 새로운 연기자들은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특히 여배우들은 더더욱 그렇다. 젊은 나이에 주목을 끌던 여배우가 조금씩 필모그라피를 쌓아가며 성장하는 배우로 자리매김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서현진이라는 여배우의 등장은 우리네 드라마나 영화에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전성시대에 걸맞는 참 괜찮은 배우를 만나게 되었으니.

'객주' 장혁, 순애보는 달달하고 성장기는 살벌하고

 

MBC <그녀는 예뻤다>의 그림자에 가려 잘 보이지 않던 KBS <장사의 신-객주(이후 객주)>가 조금씩 눈에 띄기 시작한다. <그녀는 예뻤다>가 종영한 자리에 <객주>가 그 자리를 꿰찰 수 있을지 주목되는 시점이다.

 


'장사의 신 객주(사진출처:KBS)'

김주영 작가의 원작소설 <객주>79년부터 서울신문에 연재되어 84년까지 총 9권 분량으로 씌어진 대하소설이다. 내내 미련이 남았다는 김주영 작가는 최근 10권을 내놓으며 그 마침표를 찍은 바 있다. 아무래도 79년부터 84년까지 쓰인 소설이기 때문에 2015년 현재의 공기와는 사뭇 다른 느낌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이야기가 진부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 이야기 속의 정서들이 지금의 쿨한 세태와는 조금 결을 달리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사극 <객주>는 마치 옛 사극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어린 시절 파산해버린 천가객주의 후계로 태어나 누이와도 이별한 채 송파마방에서 잔뼈가 굵은 천봉삼(장혁)이라는 인물의 인생역정과 성장스토리가 그렇다. 그 성장스토리는 우리가 성장사극에서 많이 봐왔던 그 익숙한 구조 그대로다. 또 천봉삼의 조소사(한채아)에 대한 순애보 역시 요즘 정서의 사랑이야기와는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하지만 지금의 세태와는 사뭇 달라 조금은 촌스럽게까지 느껴지는 이 이야기가 의외로 강력한 몰입감을 주는 건 왜일까. 송파마방의 쇠살주인 조성준(김명수)이 친동생 같은 차인행수 송만치(박상면)가 아닌 천봉삼에게 객주를 물려주려 하자 송만치가 조성준의 처인 방금이(양정아)와 도주해 마방을 팔아먹는 이야기는 <객주>가 단지 장사에서 이문을 남기거나 혹은 손해를 보는 정도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잘 보여준다.

 

이 사건으로 결국 조성준에게 붙잡힌 방금이는 오른쪽 발뒷꿈치를 작두로 잘리고, 송만치는 거세된다. 즉 장사만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객주의 엄격한 규칙 속에서 사람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결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 혀를 잘못 놀리면 그대로 잡혀 혀가 잘린 채 길바닥에 버려진다. 이것이 객주라는 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객주>는 망하면 식구들이 모두 길거리에 나앉아 굶어죽을 수도 있다는 그 살벌함을 바탕에 깔아놓는다. 또한 돈을 벌겠다는 욕망이 과할 때 그 결과가 참혹하다는 것도 알려준다. 그래서 <객주>는 하나의 전쟁터 같은 살벌함을 장사라는 판에 끼워 넣는다. 무수한 인물들이 저마다의 욕망을 또아리처럼 틀고 앉아 기회를 노리고 있는 상황이니 이야기의 극성은 최고조로 올라갈 수밖에 없다.

 

여기에 <객주>는 천봉삼의 조소사에 대한 달달한 순애보와 그런 천봉삼을 또 사모하는 매월(김민정)의 비틀린 사랑을 더해 놓는다. 또 어릴 때 헤어졌던 누이 천소례(박은혜)와 천봉삼의 극적인 상봉 이야기는 마치 출생의 비밀 같은 강력한 힘을 심어놓는다. 성장스토리와 멜로, 가족이야기와 복수극. 실로 대하사극이 담아낼 수 있는 거의 모든 이야기적 요소들을 갖춘 셈이다.

 

그 중심에 천봉삼이라는 인물이 서 있다. 그는 누이도 찾아야 하고 스스로를 성장시켜 다시 천가객주를 되살려야 한다. 게다가 천가객주를 그렇게 만든 이들에게 복수를 해야 하며 동시에 그를 따르는 여인들과 애증의 멜로를 그려나가야 한다.

 

결국 조금은 촌스럽게 느껴져도 한번 들여다보면 빨려들 수밖에 없는 몰입감의 원천은 생생히 저마다의 욕망이 꿈틀대는 캐릭터들과 그들이 엮어가는 스토리의 힘에서 나온다. 순애보는 달달하지만 성장기는 살벌한 <객주>가 의외로 강한 이유다



<킹스맨>, 타란티노식 유머와 007 스파이액션의 만남

 

쿠엔틴 타란티노식의 유혈이 낭자한 폭력 미학과 007식의 스파이액션이 만나면 이런 그림일까. 우리에게는 <킥애스>로 잘 알려진 매튜 본 감독의 <킹스맨 : 시크릿에이전트>의 액션이 서 있는 지점은 절묘하다.

 

사진출처 : 영화 <킹스맨>

첫 시퀀스부터가 그렇다. 마치 제임스 본드처럼 잘 차려입은 누가 봐도 스파이인 사내가 누가 봐도 제임스 본드 같은 영국식 절도의 권총 액션을 보여주지만 그 후에 등장하는 건 발이 칼날로 되어 있는 여 고수에 의해 반 토막 나는 사람들이다. 앞부분이 007 스파이액션을 기대케 한다면 그걸 바로 도륙하는 건 이 영화가 그렇게 젠틀맨의 겉모습만이 아닌 적나라한 타란티노식의 유혈낭자 액션 히어로를 그릴 거라는 걸 암시한다.

 

그런데 이 흐름은 또 엉뚱하게도 에그시(태런 애거튼) 같은 청년의 성장드라마로 그려진다. 영화는 흥미진진한 액션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지만 그래도 하나의 메시지를 잡아내는 건 바로 이 루저로 살아가던 청년이 어떻게 젠틀맨이 되어 가는가 하는 지점이다.

 

<킥애스>에서 청소년물에 피가 철철 흐르는 액션을 시침 뚝 떼고 잘도 연결해낸 매튜 본 감독은 역시 <킹스맨>을 통해서도 몸이 반으로 나뉘는 그 살벌한 긴장감과 함께 심지어 그것을 블랙유머로 승화시키는 면모까지 보여준다. 만일 타란티노가 이 영화를 봤다면 박장대소하며 즐거워 했을 지도 모를 장면들이 <킹스맨>에는 가득하다. 특히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폭죽(?)’ 장면은 영화 속 대사 그대로 놀라운 스펙타클을 보여준다.

 

당연히 영화는 청소년 관람불가다. 게다가 스파이 액션은 이미 냉전시대가 끝난 후 007 시리즈를 통해 보여진 것처럼 끝물 아니냐는 관점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킹스맨>이 이토록 대중들의 열광을 얻어낸 것은 그 액션 자체가 독특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매튜 본 감독 특유의 인간관과 이질적인 것들을 엮어내는 연출 덕분이다.

 

007 시리즈가 힘이 있었던 것과 또 힘이 빠졌던 것은 모두 냉전시대가 가진 흑백논리와 선악구도 덕분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단순하게 구분되는 시대가 아니다. 적인지 아군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존재들이 때로는 자기만의 논리에 빠져 무수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기도 하는 시대. <킹스맨>의 베테랑 요원 해리 하트(콜린 퍼스)가 갖고 있는 압도적인 살상 능력은 그가 어느 편에 서느냐에 따라 든든한 기사가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악마 같은 괴물이 되기도 한다.

 

즉 매튜 본 감독이 바라보는 인간관은 성악설에 가깝다. 가만히 내버려두면 무슨 짓을 저지를 줄 모르는 존재, 때로는 그 위협이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하는 그런 존재가 매튜 본이 바라보는 인간이다. 바로 이 인간관은 이 스파이 액션에 타란티노식 유혈 미학이 곁들어지면서도 그 안에 젠틀맨이 되어가는 청년의 성장담을 담아낼 수 있는 근거가 된다.

 

<킹스맨>의 놀라운 선전은 우리가 지금껏 봐왔던 액션과는 사뭇 다른 결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놀라운 균형감각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스파이 액션의 틀 위에서 폭력 미학이라고 해도 좋을 자극적인 액션을 보여주면서도 감독이 갖고 있는 인간관에 대한 이야기를 적절히 메시지로 담아내는 능력. 이것이 <킹스맨>이라는 이종 액션 영화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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