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 국민여동생 이미지 벗어나야

 

슈퍼주니어 은혁과 함께 찍은 셀카 사진이 SNS를 통해 유포되면서 아이유의 국민여동생 이미지는 큰 타격을 입었다. 귀여운 외모에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당찬 모습의 그녀가 “나는요 오빠가 좋은 걸-”하고 노래를 부를 때 삼촌 팬들은 열광했었다. 하지만 이 야릇한 사진 한 장은 그 모든 이미지와 판타지를 깨버렸다. 아이유와 아이유 소속사로서는 엄청난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아이유'(사진출처:로엔엔터테인먼트)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고 또 언젠가는 벌어질 일이다. 국민여동생이라는 이미지가 언제까지고 계속될 수는 없는 일이니까. 누구나 성장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성장하고 있는(또 해야 하는) 연예인에게 국민여동생이란 이미지는 족쇄가 되기도 한다. 물론 아이유는 그 이미지를 통해 많은 팬덤을 형성하고 그를 통해 이익을 얻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장기적으로 보면 그렇게 굳어져버린 이미지는 아이유에게는 결국 독이 되기 마련이다.

 

영원히 팬들에게 국민여동생으로 남기 위해서는 그 어린 나이에 성장이 멈춰야 한다. 이미지적으로 말하면 이미지가 변질되기 전에 은퇴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 영원히 아이유는 국민여동생으로 봉인될 수 있다. 하지만 이건 너무 가혹한 일이다. 아이유는 한 명의 아티스트로서 많은 가능성과 장점을 가진 가수이기 때문이다.

 

셀카 사진이 이미 SNS를 통해 유포되었을 때 소속사가 “아이유 집으로 은혁이 병문안 와서 찍은 사진”이라고 진실 공방으로 대응한 것은 잘못된 방식이다. 이미지란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믿고 싶은’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속사가 봐야 했던 것은 그것이 진실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대중들이 뭘 믿고 싶어하는가 하는 그 정서다.

 

이것은 SNS 시대에 언제고 터질 수밖에 없는 수많은 연예인들의 이미지 논란에서 반드시 먼저 생각해야 할 문제다. 타블로와 티아라 사태가 일파만파 번졌던 것은(그리고 여전히 그 불씨가 남아있는 것은) 바로 이 대중정서를 읽지 않고 사건에 대한 진실공방에만 억울해하고 매달렸기 때문이다. 이미지로 벌어진 사건은 사실 진실과 그다지 큰 관계가 없다.

 

아이유는 스스로도 자신이 국민여동생이라는 틀에 갇혀 있는 것을 버거워했을 수 있다. 하지만 어쩌랴. 그것이 대중들이 그녀에게 기대하는 이미지인 걸. 과거 문근영이 국민여동생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겪은 성장통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덧입혀진 그 이미지를 벗어던지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잘 말해준다.

 

그 사진의 진위가 어떻든 셀카 사진 한 장으로 생겨난 이 아이유 이미지의 균열은 그녀에게는 어쩌면 새로운 성장의 기회가 될 지도 모른다. 많은 이들이 그녀가 나이에 비해 어른스러운 면모를 가졌고 털털하면서도 개념 발언을 많이 한다고들 한다. 통기타 하나 들고 앉아 자신이 만든 곡을 담담히 불러내는 싱어 송 라이터로서도 그녀는 충분한 가능성을 갖고 있는 가수다. 그간 너무 ‘여동생’의 이미지를 부여한 가사에서 탈피해 그녀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담겨있는 그런 노래를 부르는 아이유는 기대하면 안 되는 일일까. 이번 일을 성장의 기회로 삼아야 아이유는 더 롱런할 수 있을 것이다.

도전과 성장, <정글2>의 진면목

 

<정글의 법칙>에서 김병만과 그 동료들은 정글 한 가운데서 최소한의 생존 장비만 주어진 채 살아남아야 한다. 특정한 상황 속에 출연진들이 놓여지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가감 없이 포착해내는 이런 형식은 물론 낯선 것이 아니다. 이미 우리는 <무한도전>에서 무인도에 던져진 출연진들이 생존하기 위해 몸에 상처를 입으면서까지 야자수를 따는 장면을 기억한다. 또 알래스카에 김상덕씨를 찾기 위해 갔다가 그 혹한의 얼음 밭 위에서 말도 안되는 간이 올림픽 경기를 상처를 입어가며(?) 했던 장면들을 기억한다.

 

 

'정글의 법칙2'(사진출처:SBS)

우리네 리얼 예능의 계보에서 <무한도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이토록 크다. <무한도전>은 이미 그 야생의 낯선 지대로 뛰어 들어가 생존하기 위해 갖은 날것의 도전을 하는 그 예능의 형식적 틀을 이미 실험해 보여주었다. 물론 이것은 또한 서구의 리얼리티쇼들이 이미 선취했던 것들이기도 하다. 다만 <무한도전>이 의미 있는 것은 이러한 서구의 리얼리티쇼들의 형식을 지극히 한국적인 방식으로 해석하고 풀어냈다는 점일 게다.

 

어쨌든 <정글의 법칙>에는 그 근간에 도전이라는 코드가 들어가 있다. 그들은 정글 깊숙이 들어가 문명과 다른 삶을 살아가는 원주민들을 만나고 그들의 생존법칙을 하나하나 체득해간다. <무한도전>의 초창기가 그러했듯이, <정글의 법칙>의 초반부는 역시 이 정글에 놓여진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도전이 되었다. 사실상 첫 번째 미션 장소였던 아프리카 나미비아의 악어 섬은 지금 생각해보면 아늑할 정도로 야생 가운데 안전이 어느 정도 확보된 공간이었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파푸아에서 진행된 두 번째 정글 미션은 말 그대로 진짜 정글이었다. 이광규는 벌레들의 습격(?)에 알레르기를 일으키고 결국은 중도에 귀국했고, 코로와이족을 찾아가는 길은 극도의 한계를 시험하는 진정한 정글로드로서 출연자들을 기진맥진하게 만들었다. 마지막에는 정글을 탈출하다 제작진이 실종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의 이 진짜 정글 경험은 또 다른 도전의 자양분이 되었다.

 

남태평양 바누아투에서 찍은 <정글의 법칙2>는 그런 점에서 또 한 번의 업그레이드된 도전이다. 이번엔 그들을 위협하는 물이 있고 화산이 있고 정글이 있다. 이렇게 보면 <정글의 법칙2>는 <무한도전>이 그런 것처럼 정글의 무한 도전이 되는 셈이다. 계속해서 새로운 도전 목표를 세우고 그 안에 인물들이 투입된다. 그리고 도전을 겪어가면서 인물들의 생존능력 또한 성장한다. 이 프로그램이 계속 방영된다면 아마도 몇 년 후의 김병만과 그 동료들은 지금과는 달라져 있을 지도 모른다. 어쩌면 타잔 비슷하게 되어 있을지도.

 

진짜 리얼 프로그램의 특징은 그 안의 캐릭터들이 점점 실체가 되어간다는 점이다. <무한도전>의 유재석과 그 멤버들은 초창기에는 '대한민국 평균 이하'라는 캐릭터로 시작했지만, 차츰 도전과 성장을 거듭하면서 지금의 최고 위치에 오르게 되었다. 이렇게 실제로 성장한 출연진들 때문에 미션과 프로그램의 방향조차 바꿔야 했을 정도. 특히 유재석은 도전의 아이콘이 되었다. 방송가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그저 방송을 위해 보여주는 도전의 제스처가 아니라 실제로 대단한 도전정신의 소유자가 되었다고 한다. 프로그램이 출연자와 만나 허구가 현실이 되어버린 것이다. 김병만 역시 그런 야생과 정글의 달인이 되지 않을까.

 

흥미로운 건 <무한도전>이 저 해외의 리얼리티쇼를 한국화해서 이른바 '리얼 버라이어티쇼라는 형식을 만들었듯이, <정글의 법칙> 또한 해외의 서바이벌 리얼리티쇼를 상당 부분 한국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날 것의 정글이라는 상황 속에서도 팀원들이 하나의 유사가족을 형성하는 점이 그렇다. 자칫 힘겨운 자극에만 매몰될 수 있는 정글의 경험이 때론 웃음이 피어나고 때론 감동적인 눈물이 연출되는 건 바로 이 지극히 한국적인 가족이라는 틀이 있기 때문이다.

 

<정글의 법칙>은 시즌을 거듭하면서 과연 <무한도전> 같은 성장을 이룰 수 있을까. 김병만의 무뚝뚝해 보이면서도 어딘지 장난기 가득하며 때론 놀라운 달인의 면모를 보여주는 캐릭터가 앞에서 끌어주는 한, 이러한 성취가 꿈만은 아닐 것이다. 김병만의 성실과 도전정신을 보며, 정글판 <무한도전>처럼 보이는 <정글의 법칙>에서 제2의 유재석을 예감하는 건 섣부른 일일까.

사회의 양극화를 잘 드러내는 대사, "네까짓 게"

"네가 뭔데. 네까짓 게 뭔데 내 자존심을 건드려!" 이 대사는 '나는 전설이다'에서 차지욱(김승수)이 그 아내 전설희(김정은)에게 던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 대사는 화를 못 참아 돌발적으로 나온 그런 것이 아니다. 그는 습관적으로 아내를 이런 식으로 부르곤 한다. 이 상류층 집안사람들도 전설희를 늘 이런 식으로 대한다. 뭐 하나 가진 것 없고 그저 그런 집안에서 태어난 전설희가 언감생심 이 좋은 집안에 시집왔다는 것 자체가 불쾌하다는 식이다. 전설희의 시어머니는 입에 '네까짓 게'를 달고 산다. 결국 이혼을 결심한 전설희는 그런 시어머니에게 말한다. "결혼 내내 어머니께 수도 없이 들었던 네까짓 거라는 말 더 이상 듣기 싫습니다."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이보다 서민들의 감정을 건드리는 대사를 찾기가 어려운 것인지, 다른 드라마에서도 '네까짓 게'는 종종 등장한다. '자이언트'에서 황정식(김정현)의 엄마로 나오는 오남숙(문희경)은 가끔 배다른 자식 정연(박진희)에게 '네까짓 게'라는 표현을 쓴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다고 해도 할 말 안할 말이 있기 마련이지만, 자신의 못난 자식을 후계자로 세우려는 야심은 심지어 정연이 죽기를 바라게 만든다.

'제빵왕 김탁구'에서 서인숙(전인화) 역시 이 말의 애용자다. 그녀는 남편 구일중(전광렬)이 데려온 김탁구에게 이 말을 쓰며 폄하하더니, 이젠 자신의 아들 마준(주원)이 사랑하게 된 신유경(유진)에게 "네까짓 게 감히" 어딜 넘보냐며 그녀를 밀어낸다. 이미 종영한 '나쁜 남자'에서도 '네까짓 게 감히'는 등장한다. 이 말은 다름 아닌 이 드라마 속 비극을 양태한 희대의 악역이었던 신여사(김혜옥)의 전매특허다. 문재인(한가인)은 어렵게 자신이 구해온 유리가면을 깬 것에 대해 홍태성(김재욱)을 나무라다가 신여사에게 뺨을 맞는다. "네까짓 게 감히 뭔데 선을 넘어와!"

우연의 일치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 일련의 드라마에서 모든 악역들이 "네까짓 게"를 외치는 것에는 어떤 공통점이 추출된다. 첫째 그 대사를 하는 인물들은 모두 우리가 상상하기도 어려운 부를 손에 쥐고 있는 초상류층들이다. 둘째, 그 "네까짓 게"를 듣는 대상은 이 초상류층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평범한(혹은 그 이하인) 서민들(서민의식을 가진 인물)이다. 셋째, 이 "네까짓 게"라는 소리를 듣는 인물은 신분상승을 꿈꾼다. 그래서 그런 소리를 하는 이들을 실력으로 넘어서려 안간힘을 쓴다.

이 공통점들은 작금의 우리 사회가 가진 점점 심화되어가는 양극화와 그것에 대한 서민들의 양반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초상류층의 안하무인격의 행실을 재수 없어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실력으로 그 문턱을 넘어서려 안간힘을 쓰는. 이것은 지금 우리나라에서 왜 성장드라마가 그토록 인기가 있는가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성장(신분상승)에 대한 강한 욕망은, 그 성장의 욕망이 사실은 거의 태생적으로 정해져 여의치 않은 현실의 반영이기도 하니까.

"네까짓 게 감히!"라는 드라마 속 대사를 들으며 왠지 가슴 한 켠이 울컥했다면 그것은 이 드라마들이 이 사회가 가진 욕구불만의 옆구리를 제대로 짚은 것이다. 물론 이건 드라마 속의 한 대사일 뿐이다. 하지만 그 대사가 환기시키는 어떤 울분을 떠올려보면, 우리는 거기서 물질로 사람이 평가되고, 또 그 물질조차 태생적으로 규정되는 갑갑한 현실과, 아무렇지도 않게 습관적으로 모욕을 주는 세상을 발견하게 된다.

'제빵왕 김탁구'와 생활의 달인

"제가요. 5년 전쯤에 반죽가게에서 일한 적이 있었거든요. 밀가루 반죽이 바로 제 담당이었는데요, 거기서 일하는 2년 내내 주구장창 반죽만 해대서 말입니다. 이제 반죽에 손만 대면 반죽이 어떤 상태인지 알게 된 거죠." '제빵왕 김탁구'에서 김탁구가 팔봉선생(장항선) 앞에서 밀가루 반죽을 하는 이 장면에서 떠오르는 프로그램 하나. 바로 '생활의 달인'이다. 아버지에게 배웠던 우아한 빵 동작(?)으로 손가락 끝에 닿는 공기 중의 습기를 체크한다거나, 허공에 스프레이를 뿌리며, "실내가 건조해서요. 이러면 반죽이 금방 마르거든요."하는 김탁구에게서는 저 '생활의 달인'에서 익숙하게 봐왔던 달인들의 기가 느껴진다.

김탁구의 달인 포스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밀가루 덩어리를 대충 떼어낸 후 "제가 잘라놓은 부위가 대충 500g 정도 되니까 100g씩 5등분을 해보겠습니다."하고 호언장담한다. 어찌 그 무게를 그리 정확히 아느냐는 팔봉선생의 물음에,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제가요. 또 한 일 년 넘게 일한 곳이 있었는데요. 거기서는 근수를 정확히 재는 게 생명이거든요. 자르고 재고 자르고 재고 그렇게 일 년 내내 자르고 재다 보니까 저울에 달지 않고도 대충 손으로도 무게를 알 수 있게 된 거죠."

'생활의 달인'에 등장했던 달인들이 그러하듯이 김탁구의 기예에 가까운 기술은 먹고 살기 위해 했던 생활에서 비롯된다. 거의 손버릇처럼 만들고 또 만들고 하면서 이제는 척 만져보기만 해도 반죽의 습도가 어떤 상태인지를 알게 되고, 또 대충 잘라도 정확한 양이 나오게 된 것이다. 그러고 보면 어린 탁구에서 성인 탁구로 넘어오면서 지나가버린 12년의 세월이 단지 탁구가 엄마를 찾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그 속에서 계속 일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빵과 관련된 일을. 딱 한 번 본 것뿐이지만 결코 잊을 수 없었던 아버지의 그 빵 만드는 모습을 떠올리면서 절망적인 시간을 이겨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제빵왕 김탁구'는 이제 2라운드를 시작하고 있다. 1라운드가 김탁구가 살아왔던 평탄치 못한 70년대 막가는 세월을 그려냈다면, 2라운드는 그 세월을 뚫고 성장해온 김탁구가 본격적으로 제빵왕이 되어가는 그 과정을 그린다. 재미있는 것은 김탁구와 구마준(주원)의 빵을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대결이다. 구마준이 전 세계를 떠돌며 아버지가 좋아했던 빵들을 교육을 통해 배워왔다면, 김탁구는 그것을 생계와 생활을 통해 배웠다. 이 대결구도는 단순해보이지만 그것이 함의하는 바는 결코 적지 않다. 물론 극적으로 변형되어 상당히 경쾌하게 그려지고 있지만, 거기에는 개발시대에 소외된 우리네 민초들의 삶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그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기술에 놀라다가 어느 순간 찡한 느낌을 받는 것은 그들을 달인으로 만든 그 시대의 고단함이 거기서 비춰지기 때문이다. 단지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열심히 생활하다보니 달인이 된 그들에게서 우리는 성공에 대한 집착을 넘어서는 건강함을 발견한다. '제빵왕 김탁구'가 어떤 시대극으로서 당대를 살아온 분들에 대한 헌사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김탁구라는 캐릭터 자체가 온몸으로 정직하게 그 시대를 뚫고 성장해온 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일 게다.

그러니 어쩌면 한 시대를 살아내기 위해 '생활의 달인'이 된 김탁구는, 당대를 건강하게 살아내면서 보잘 것 없는 교육과 위치에도 꿋꿋이 자신만의 노력으로 성공한 분들의 자화상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 표상으로서 김탁구라는 인물의 비범함은 단지 타고난 후각과 기술습득 능력이 아니다. 빵을 만들면서 맛을 경쟁하기보다는 그 빵을 먹을 사람의 행복을 생각하는 그 마음이 그를 비범하게 한다. 그리고 이것은 어쩌면 개발시대를 온몸으로 넘어선 이 땅의 모든 생활의 달인들이 비범한 이유이기도 하다. '제빵왕 김탁구'는 지금 그 시대와의 한판 유쾌한 대결을 벌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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