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후드>, 시간의 궤적을 담아낸 궁극의 영화

 

시간을 본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만일 이 느낌이 궁금하다면 <보이후드>라는 영화의 165분에 빠져볼 일이다. 이 영화는 특별한 극적 스토리라인을 그다지 발견할 수 없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한 사람의 성장기를 오롯이 들여다보는 효과를 만들어낸다. 극중 메이슨 역할을 무려 12년 동안 연기해낸 엘라 콜트레인은 분명 시나리오에 있는 대로 연기를 한 것이지만, 이 영화 안에 자신의 소년시절을 그대로 담아냈다.

 

사진출처: 영화 <보이후드>

6살의 메이슨은 앳되고 밝은 얼굴의 엘라 콜트레인을 보여주지만, 12년 간 15분 남짓의 영화 분량을 찍기 위해 한 해에 3-4일 정도 만나 찍혀진 그 얼굴의 변화는 천진함에서 어둠과 우울을 거쳐 깊이가 조금씩 만들어지는 아이의 성장통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물론 영화의 스토리가 엘라 콜트레인의 다큐는 아니지만 그 얼굴의 변화와 그 속에 담겨진 느낌은 한 소년의 진짜가 틀림없다. 거기에는 우리가 자신도 모르게 살아가면서 그 변화를 놓치기 마련인 시간이 남기고 간 궤적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기적 같은 체험이다.

 

그렇게 들여다본 한 소년의 성장기란 어떤 것일까. 특별한 극적 내러티브를 사용하기보다는 그 정도 나이에 누구나 했음직한 고민들과 갈등들을 담담하게 영화는 풀어낸다. 엄마의 잇따른 결혼 실패와 의붓 아빠들의 폭력은 소년의 얼굴에 우수를 깃들게 만들고, 밖으로 내보내지 못한 그 고통과 아픔들은 소년의 내면 속에서 성장통으로 변모하며 삶의 의미를 물어보게 한다. 소년이 던지는 진지한 삶에 대한 질문은 그의 성장을 지속적으로 들여다본 관객에게는 결코 웃을 수 없는 무게로 다가온다.

 

물론 그 아슬아슬한 성장기를 잡아주는 건 때론 친구 같고 때론 기댈 언덕 같은 친 아빠 메이슨 시니어(에단 호크)라는 소울 메이트 덕분이다. 이 영화를 찍은 리차트 링클레이터 감독의 <비포선라이즈>를 함께 한 배우답게 에단 호크는 기꺼이 그 12년 세월의 흔적을 영화에 헌납했다. 고통을 수반하는 성장이 무에 그리 즐거울 일이 있을까. 하지만 그 성장에 햇볕을 주고 물을 주는 메이슨 시니어 같은 존재가 있기 때문에 소년이 청년이 될 수 있다는 걸 우리는 영화를 통해 발견하게 된다.

 

사실 누군가의 삶을 온전히 들여다본다는 건 그 자체로 마음 한 구석을 짠하게 만드는 경험이다. 갑자기 떠난 신해철이 대학가요제 시절 무한궤도로 나와 그대에게를 부르는 옛 영상을 볼 때 느껴지는 것처럼, 또 그렇게 순수한 열정에 가득했던 그가 넥스트 같은 밴드로 돌아와 세상에 묵직한 메시지를 노래로 전달하는 그 변화의 과정을 보는 것처럼.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누군가의 삶을 더 짧은 영상 속에서 한 눈에 바라보는 그 느낌에는 왠지 모를 서글픔과 놀라움이 교차할 수밖에 없다.

 

<보이후드>는 바로 그 특별할 것 없지만, 그래서 더욱 특별해지는 소년에서 청년으로의’ 12년을 담담하게 담아냈다. 만일 우리가 지나온 시간들이 궁금하다면 <보이후드>라는 한 소년의 앨범을 한번쯤 들여다보는 것으로 충분할 지도 모른다. 그 아무 것도 없다 여겨졌던 그 지나간 시간 속에서 어떤 기적 같은 힘을 보게 될 테니.

 

<꽃청춘>, 뜬금없이 떠난 여행의 패닉? 혹은 즐거움!

 

<꽃보다 청춘>. 이것이 청춘의 여행이다. 갑자기 떠날 수 있다는 것. 현실의 족쇄들이 점점 견고하게 우리의 발목을 잡아채는 중년이라면 쉽게 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이 뜬금없이 떠나는 여행이다. 특히 해야 될 일이 있고 만나야 될 사람들이 있고 게다가 가족까지 있다면 이런 여행은 심지어 무책임한 것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청춘이야 치기라고도 말할 수 있지만, 중년이란 책임이라는 이름으로 적당히 자신을 희생하며 살아내야 하는 어떤 시간이다.

 

'꽃보다 청춘(사진출처:tvN)'

그런데 이 아무 준비도 없이 미팅을 한다며 모인 윤상, 유희열, 이적이 그 날 바로 갑자기 페루로 떠나는 여행에서 보여지는 그들의 반응이 흥미롭다. 그들은 당황하는 표정이 역력했지만 또 한 편으로는 이러고 가란 말야?”하고 맨발을 내밀며 웃는 유희열처럼 약간은 즐겁고 들떠있는 모습이었다. 패닉과 설렘. 중년이라는 견고한 책임감과 그걸 살짝 벗어버린다는 데서 오는 들뜸.

 

공항패션은커녕 거지꼴을 하고 출국하는 공항에서 이적은 어 이상해 왜 자꾸 웃음이 나지?”하고 말했다. 아마도 그런 치기어린 여행을 했던 청춘에서 이제 꽤 멀리 걸어온 중년이 갑자기 떠나면서 느끼는 현실과의 거리감이 그런 이상한 웃음을 만들어냈을 게다. 프로그램이 자막을 통해 보여주듯, 그들은 나이 들었지만 그들의 마음 속에는 여전히 소년이 살아있었다. 다만 숨겨져 있었을 뿐.

 

혼자가 아닌 마음 맞는 친구와 떠나는 여행은 더더욱 그 소년의 치기를 밖으로 끌어낸다. 일종의 공모의식. 다 같이 업계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동료이자 친구이자 선후배지만 그걸 다 뒤로 남겨두고 훌쩍 떠난다는 그 같은 마음에서 생겨나는 공범(?)의식이 그들을 더욱 현실 바깥으로 밀어낸다. 그리고 그들은 현실의 관계에서는 드러내지 않았던 의외의 능력과 개성들을 발견한다.

 

비행기에서 잠도 자지 않고 열심히 책을 들여다보고 여행을 준비하는 유희열은 의외의 리더십을 발휘하고 그런 형이 믿음직스런 이적은 이 형이 이런 형이라니까하고 든든해하며, 윤상은 희열이만 믿어하고 신뢰를 보낸다. 장소 찾는데 능력을 보이는 지리맨 유희열은 돈데 에스타...’라는 한 마디 할 줄 아는 스페인어로 시장을 찾아낸다.

 

꼼꼼하게 경비를 하나하나 체크하는 이적은 페루라고 새겨진 작은 지갑 하나를 사고는 어린애처럼 즐거워한다. 유희열은 작은 지갑 하나의 의미를 되새긴다. “카드가 없는 삶은 이걸로 되더라구... 가죽지갑을 사면 신분증이니... 뭐든 꽂아야 되잖아. 다 필요 없던 거야.” 좁은 공간에서 수건 하나로 함께 샤워를 하는 경험이나 미처 챙겨가지 못한 속옷을 현지에서 사고, 혼성 도미토리에서 다양한 인종과 함께 혼숙을 하는 체험은 아마도 갑자기 떠나기 전까지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었을 것이다.

 

<꽃보다 할배><꽃보다 누나>의 여행을 통해 우리가 발견한 건 오히려 청춘이었다. 할배 신구는 유럽까지 날아가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 청춘을 찬양했고, 누나들은 크로아티아까지 날아가 여전히 젊고 소녀 같은 감성이 그 속에 살아있다는 걸 발견했다. <꽃보다 청춘>은 그래서 이 배낭여행 프로젝트의 일관된 메시지가 어디에 있었는가를 잘 보여주는 마지막 프로젝트다. 그건 바로 청춘이다. 여행을 통해 다시 찾는 청춘의 나. 언제든 무작정 떠날 수 있는 소년, 소녀가 여전히 우리 마음 한 구석에는 살아가고 있다는 걸 이 특별한 여행은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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