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회가 공감, <미생> 수직상승의 비결

 

아이를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워킹맘은 죄인이다. 회사에서는 야근시간에 아이를 챙겨줄 시어머니나 친정어머니에게 사정하기 바쁘고, 그도 안 되면 잠깐 나와 어린이집에 있는 아이를 집에 데려다놓고 다시 회사에 출근해야 한다. 회사에서도 눈치를 보지만 워킹맘은 집에서도 눈치를 본다. 맞벌이 하는 남편도 바쁘기는 마찬가지지만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슈퍼우먼이어야 하고, 아침부터 바쁜 업무로 전화 통화를 하다가 엄마를 보내는 아이의 슬픈 눈빛을 마주하기도 해야 한다. 그것이 tvN <미생>이 보여준 워킹맘의 비애다.

 

'미생(사진출처:tvN)'

첫 회부터 장그래(임시완)를 통해 스펙 없는 청춘의 비애로 깊은 공감을 이끌어낸 <미생>, 2회에서 인턴 장그래가 누명을 쓰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 진실이 한 가장을 곤란하게 만들 것을 알고는 술자리 푸념으로 풀어내는 팀장으로서 가장으로서 살아가는 중년의 비애를 오과장(이성민)을 통해 보여준 바 있다. 그리고 3회에서는 부하직원의 징계를 막기 위해 싫어하는 상사에게 고개를 숙이는 오과장을 통해 팀장이라는 이름의 무게감을 느끼게 해주었고, 4회에서는 인턴들의 PT를 통해 경쟁과 협력이라는 직장생활의 양면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5회는 여자로서 회사생활을 한다는 것의 비애를 선차장(신은정)과 신입사원 안영이(강소라)가 겪는 차별과 모욕을 통해 보여주더니, 6회에서는 갑과 을의 관계에 대해, 비즈니스를 위해 친한 친구를 접대해야 하는 오과장의 이야기와, 착하고 여린 심성 때문에 거래처에게 오히려 휘둘리는 박용구 대리(최귀화)와 그를 돕는 장그래의 이야기를 통해 전해주었다.

 

회사 생활에서 부딪치는 일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미생>이 담아내는 건 완전히 새로운 사건들이 아니라 바로 그 우리네 샐러리맨들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회사 생활의 편린들이다. 거기에는 부하직원으로서의 괴로움도 있지만 팀장으로서의 고충도 있고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겪기 마련인 사회적 차별의 시선도 있다. 갑을 관계라고 하면 무조건 을에게 갑질 하는 것만을 떠올리지만 <미생>은 때로는 갑을 두고 을질 하는 거래처도 있다는 걸 보여준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낸 그들이 그래서 저녁 시간에 너 나랑 술 한 잔 할래?”하고 물어보는 그 말에는 깊은 페이소스가 느껴진다. <미생>에서 종종 나오는 팀장과 부하직원 간의 선술집에서의 소주 한 잔은 그래서 보는 이들의 마음을 짠하게 만든다. 그 소소한 한 잔만이 하루를 견뎌낸 그들이 갖는 유일한 위안과 위로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술 취한 체 돌아온 집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가족은 늘 사직서를 책상 한 귀퉁이에 넣어두고도 그 하루를 버텨내는 힘이 된다.

 

이것은 <미생>이라는 드라마가 매 회 수직상승하는 비결이다. 특별할 것 없는 우리 주변의 이야기들을 카메라는 아주 가까이 다가가 하나하나 포착해내고, 그 이면에 담겨진 소소한 기쁨과 커다란 아픔들을 공감하게 해준다. 이 샐러리맨들의 하루하루 이야기가 특별하게 다가오는 건 그 이야기가 완전히 새롭다거나 극적이어서가 아니다. 그것은 좀 더 가까이 그 이야기에 다가간 바로 그 따뜻한 시선에서 나온다.

 

<미생>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길거리에서 회사에서 혹은 집에서조차 지나치고 마는 샐러리맨들에게 보내는 헌사다. 그들의 일상이 그저 그렇게 지나칠 정도로 가치 없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 드라마의 디테일은 그래서 그 자체로 샐러리맨들에 대한 이 작품의 태도를 담아낸다. 그러니 이제 주변에 사회생활을 하는 이들이 있다면 다시 한 번 그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라. 그들의 삶에서 특별함이 발견될 것이니. 밥벌이 앞에 그 누구도 위대하지 않은 이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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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폿집 소주 그 소통의 맛, ‘엄마가 뿔났다’

‘엄마가 뿔났다’의 자식들 때문에 잔뜩 뿔이 난 엄마, 김한자(김혜자). 그녀에게 남편 나일석(백일섭)이 소주잔을 건네며 묻는다. “한 잔 할텨?” 김한자는 남편의 살뜰함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소주잔을 거부감 없이 받아든다. 집안에서 엄마가 마시는 소주는 아버지가 마시는 소주하고는 느낌이 다르다. 엄마는 소주 한 잔에 속내를 수다로 풀어내지만, 아버지는 그저 빙그레 웃을 뿐 좀체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자신의 시커먼 속을 드러내는 것이 가족들에게 하등 좋을 것이 없기에 혼자 곱씹을 뿐이다.

주사라도 정겨운, 품위라도 갑갑한 술
‘엄마가 뿔났다’에서 술을 마시면 거침없이 속엣말을 해대는 쪽은 따라서 여자들이다. 김한자네 집에서 술을 권하는 사람은 나이석(강부자)이다. 그녀는 오빠와 아버지(이순재)를 찾아와 입버릇처럼 “술 한 잔 할래요?”하고 묻는다. 바람나서 남편이 도망가버린 이후로 그녀가 스스럼없이 대화할 수 있는 이들이 그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녀가 권하는 술은 자신의 풀 길 없는 속내를 받아달라는 신호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술만 마시면 주사를 부리는 나이석이 나일석은 늘 곤혹스럽다. 하지만 아무리 예의 없는 행동이라도 그저 그뿐인 것은, 나일석 역시 그녀의 상처투성이 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이석과 나일석은 어딘지 모자란 듯 정이 가는 소주의 서민적인 얼굴을 그대로 닮았다.

반면 입만 열면 ‘품위’를 들먹이는 상류층 사모님, 고은아(장미희)가 닮은 것은 그녀의 손  위에 품위 있게 올려져 있는 와인이다. 그녀는 와인을 품격 있는 귀족적인 행위로서 마신다. 물론 이것은 그녀만의 시각이지 이 드라마가 와인을 보는 시각은 아니다(영수(신은경)와 종원(류진)이 함께 마시는 와인은 그런 부담감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 와인 정말 맛있어요”하고 말하는 고은아 앞에 억지로 앉아 와인을 홀짝이는 며느리 영미(이유리)는 그 자리가 고역이다. 그것은 고은아의 남편 김진규(김용건)나 아들 정현(기태영)도 마찬가지다. 그저 편하게 즐기면 되는 것이지만, 고은아가 마시는 것은 그저 술이 아니라 그 술에 잔뜩 품위라는 의미를 부여한 격식이기 때문이다.

소주와 와인, 그 충돌과 소통
이것은 저 격식은커녕 위아래도 없어 보일 정도로(?) 편안한 서민적인 모습의 나이석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영미와 정현이 결혼하기 전, 서로 상견례 자리에서 나일석의 잔과 김진규의 잔이 부딪쳐 깨지는 장면은 그래서 인상적이다. 나일석이 잔을 강하게 부딪친 것은 서민적인 소주문화에서는 그만큼 반가움을 표시하는 것이지만, 와인문화의 외피에 경도된 고은아에게는 늘상 입에 달고 다니는 ‘품위 없는 행위’로 치부된다. 그들이 들고 있는 것은 똑같은 와인 잔이었지만, 그 잔을 들고 있는 사람이 가진 문화적 차이가 서로 충돌했던 것이다. 바로 이 부딪침은 결혼 과정에서 벌어질 고은아와 김한자의 갈등 상황을 미리 예시하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술은 그러나 태생적으로 이러한 계층 간 문화의 차이로 꽁꽁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는 힘을 갖고 있다. 그것은 나일석네 막내로 잠깐 등장했던 나삼석(김상중)의 주사 에피소드를 통해 볼 수 있다. 나삼석은 가족의 뒷바라지로 성공해 미국에서 살고 있는 의사로 국내에서도 알아주는 권위자이다. 이미 상류생활에 익숙해져 버린 그를, 나일석네 집을 대표해 몰아세우는 이는 다름 아닌 가장 서민적인 모습을 보이는 나이석이다. 계속 해서 파렴치한 인간으로 자신을 몰아세우는 나이석에게 잔뜩 기분이 상해 술에 취해버리는 나삼석은 품위고 뭐고 내동댕이친 채 주사를 부린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장면에서 이들은 서로의 속내를 드러내며 정을 확인하게 된다.

드라마에 단골로 등장하는 술은 그 종류도 가지각색이지만 무엇보다 속내를 드러내게 해주는 술은 서민적인 술, 소주다. 그것은 빈부와 계층을 막론하고 그렇다. 그러니 품격 있는 자리보다 마치 대폿집처럼 어딘지 허술한 자리가 더 정겨운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가진 것 없어도 나눌 수 있는 마음이 있는 한, 그 곳에는 적어도 소통과 대화가 있다. ‘엄마가 뿔났다’의 김한자네 집이 보여주는 풍경은 바로 그 소주를 나누는 대폿집 풍경이다. 화려하진 않아도 수수한 정이 느껴지는 그 곳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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