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특히 잘 어울리는 하현상, 따뜻한 슬픔 ‘Elegy’

하현상 콘서트 'Elegy'

“나이 먹을수록 더 당당하고 앞에 나서야 하고 이래야 되는데 저는 더 숨기만 했던 것 같아요. 내년부터는 여러분들이 조금 더 자주 보실 수 있게 얼굴 많이 바추겠습니다. 숨어 있는 가수 좋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현상 콘서트 ‘Elegy’에서 하현상은 관객들에게 수줍게 그렇게 말했다. 숨어 있는 가수, 하현상. 스스로 자신을 그렇게 표현했지만 관객들은 어쩌면 그래서 그를 좋아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할 때면 소년미 가득한 어색함이 묻어나고, 그래서 나서기보다는 조용히 자신의 세계 깊숙이 들어가는 시간이 더 많아 보이는 하현상이어서 오히려 팬들의 마음은 더 애틋해지고 촉촉해지니 말이다. 

 

그 숨기를 나서기보다 좋아하는 가수 하현상이 연말 콘서트 ‘Elegy’로 관객들 앞에 섰다. 뒤에서 비추는 조명에 그림자 같은 음영으로 무대에 선 하현상은 특유의 읖조리는 듯한 목소리로 자신이 연주하는 기타에 맞춰 노래한다. 그 조용하게 시작하는 목소리에 관객들도 조금씩 빠져들고, 그러다 어느 순간 뒤쪽 조명이 하나씩 켜지면서 오케스트라가 내는 스트링 사운드와 비트감을 얹어주는 밴드 사운드가 웅장하게 겹쳐진다. 그래서 그의 노래는 조용한 감정들이 하나하나 끌어내지고 모아지다가 어느 한 지점에서 뭉쳐 하늘 위로 붕붕 떠오르는 듯한 느낌을 준다. ‘Elegy’ 콘서트의 첫 오프닝 곡으로 부른 신곡 ‘비행’이 그렇다. 

 

‘비가’라는 뜻을 가진 ‘Elegy’라는 제목처럼, 이번 앨범에 담긴 곡들은 이별, 슬픔 같은 정조들을 담았다. ‘비행’이 헤어진 연인에 대한 그리움을 처음 만난 그 때로 날아가는 마음으로 표현했다면, 이 앨범의 타이틀 곡인 ‘향기’ 역시 이별의 아픔을 사라져가는 향기에 빗대 노래했다. 또 ‘계절비’가 어느 비 내리는 날 스쳐가는 계절의 흐름을 느끼며 사랑이 떠나버렸다는 걸 알게 된 비감을 담았다면, ‘나도 모르게’는 떠난 이를 나도 모르게 생각하고 기다리고 있는 자신을 이야기했다. 

 

콘서트는 이 신곡들과 더불어 지금껏 사랑받았던 곡들을 세트리스트에 올렸다. ‘Laputa’, ‘불꽃놀이’, ‘사랑이라고 말해줘’, ‘데려가줘’, ‘등대’, ‘집에 가는 길’, ‘파도’, ‘어떤 이의 편지’ 등등. 싱어 송 라이터라는 지칭에 걸맞게 본격적인 활동을 한 지 5년여만에 놀랍게도 이토록 많은 명곡들이 채워져 있다는 게 콘서트에서 고스란히 느껴졌다. 본인 스스로 숨어 있는 가수라 표현한 것처럼 방송활동보다는 음악활동에 전념해 온 결과다. 

 

그런데 이번 앨범명이자 콘서트의 제목인 ‘Elegy’가 담고 있는 슬픔의 정조는 침잠하는 그런 슬픔이 아니다. 그건 슬픔을 켜켜이 쌓아 올려 찾아낸 기쁨이라고 해야할까. 아픔이 살아있다는 증명이듯이, 슬픔은 기쁨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또 다른 방식이라는 걸 하현상은 이 앨범과 콘서트에 담았다. 처연하게 시작하던 노래가 점점 그 감정이 고조되고 하늘 위로 떠오르다가 차분히 갈무리되는 듯한 그 일련의 과정들이 그렇다. 오케스트라 사운드와 밴드 사운드가 좌청룡 우백호처럼 하현상의 기타와 피아노 솔로 뒤에서 든든히 받쳐주며 곡을 고조시키는 모습은 이 외롭고 슬픈 자아를 혼자가 아니라며 껴안아주는 위로처럼 느껴진다. 

 

아티스트와 팬은 닮기 마련일까. 극 ‘I’가 아닐까 생각되는 건 아티스트만이 아니라 팬들도 마찬가지다. 곡이 끝나고 나면 열광적인 박수갈채가 쏟아지지만, 노래가 흘러나올 때는 조용 조용히 경청하는 관객들이다. 수줍은 하현상의 말 몇 마디에 역시 수줍게 관객들의 웃음이 터진다. 물론 간간히 “하현상 넌 내 거야!”라고 외치는 관객의 목소리가 폭소를 자아내게 하지만, 이 콘서트는 차분하다. 흔히들 뜨거운 열기가 콘서트의 묘미라 여길지 모르지만, 다소 내향적인 이들에게는 따뜻함이 뜨거움보다 나을 때가 있다.

 

“제 노래를 들으시는 분들은 혼자 마음 속으로 우셨던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하현상의 그 말처럼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지만 속으로는 감성으로 가득한 이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는 듯한 콘서트였다. 그래서 조용히 감정을 꺼내놓고, 공감하고, 나아가 그 감정들을 폭발하듯 고조시키는 그 일련의 과정들이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콘서트. 하현상의 말대로 ‘겨울에 더 어울리는’ 그의 노래는 30일과 12월1일 서울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을 시작으로 25일 부산, 28일 대구에서도 이어진다. (사진:웨이크원)

‘눈물의 여왕’, 김수현의 시월드와 신데렐라 뒤집기는 왜 빵빵 터질까

눈물의 여왕

“나 그 때 왜 그랬지? 왜 귀여웠지? 왜 막 귀엽고 필살기 쓰고 홍애인 설레게 만들고 그래 가지고 내 팔자를 내가... 꼬았지? 안 귀여웠으면 이런 결혼도 안 했을텐데, 내가.” 술에 취한 백현우(김수현)는 울면서 절친 김양기(문태유)에게 신세한탄을 한다. 그런데 그건 자기 자랑인지 신세한탄인지 알 수 없는 말들이다. 이 웃픈 상황이 웃음을 만든다. 백현우 본인은 진심으로 펑펑 울며 속내를 토로하고 있지만 보는 이들에게 그 장면은 빵빵 터지는 웃음을 만든다. 

 

tvN 토일드라마 <눈물의 여왕>은 박지은 작가 특유의 코미디로 문을 열었다. 그 코미디는 고정관념을 뒤집는 아이러니로 펼쳐진다. 그많은 신데렐라 스토리들이 그려내곤 했듯이, 흔히들 재벌가와 결혼했다고 하면 인생 역전의 판타지를 떠올릴 테지만, 퀸즈그룹 재벌가의 딸이자 퀸즈백화점 사장인 홍해인(김지원)과 결혼한 백현우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그 때 왜 자신이 귀여워 홍애인을 설레게 만들어 스스로 팔자를 꼬았는지 한탄을 하고 있으니.

 

<눈물의 여왕>은 재벌가 신데렐라 스토리를 남녀를 뒤집어 놓은 이른바 ‘남데렐라’ 버전으로 꺼내놓은 후, 그렇게 막상 신데렐라가 되어 재벌가의 사위가 됐지만, 판타지와는 전혀 다른 마치 현실 버전의 처월드(시월드의 처가버전)가 열리게 됐다는 기막힌 블랙코미디로 또 한 번 뒤집는다. 이 재벌가 처월드에 빠져버린 남데렐라가 눈물을 흘리며 결혼을 후회하고 이혼까지 결심하는 일련의 과정들은 그래서 그간 우리가 봐왔던 시월드와 신데렐라 이야기를 모두 뒤틀어놓은 지점에서 빵빵 터지는 웃음을 만든다. 

 

“나만 보면 돼.” 재벌가 입성이 결코 만만치 않을 거라 여긴 백현우에게 홍해인이 하는 이 말은 그 숱한 왕자님들이 신데렐라들을 재벌가에 들일 때 했던 현실성 없는 이야기들이고, 저녁 9시마다 모여 ‘종례’하듯 대화를 나누고 크리스마스니 생일이니 제사니 하는 걸 함께 가족이 하다보니 ‘내 시간’이 사라진 백현우의 처지 역시 숱은 시월드에 입성했던 며느리들이 겪던 일들이다. 

 

백현우가 일년에 15번이나 차린다는 제사는 어떤가. 옛날 진짜 양반가에서는 남자들이 다 제사준비를 했다며 저마다 빵빵한 전문 이력을 가진 사위들이 제사상을 모두 준비하는 풍경이라니! 그러면서 손끝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는 홍애인의 동생 홍수철(곽동연) 같은 인물은 시월드에 시어머니도 보다 더 얄미운 ‘시누이’의 처가 버전처럼 그려진다. 이건 마치 시집살이에 손과 눈에 물 마를 날 없는 며느리의 재벌가 처가 버전 미러링 같다. 그래서 백현우의 신세한탄과 눈물이 주는 빵빵 터지는 웃음 속에서는 블랙코미디적인 통쾌함이 묻어난다. 

 

이 블랙코미디에는 박지은 작가 특유의 디테일들이 채워져 있다. 제사상 차림에 하버드에서 케미컬 전공한 사위가 그 전공으로 전이 제대로 익혀졌나를 파악한 후 “뒤집어!”를 외치는 장면이나, 파슨스 디자인 스쿨을 나온 또 다른 사위가 플레이팅을 하는 제삿날 장관(?)을 보며 “재능 낭비”라는 백현우의 툴툴대는 모습이 그렇고, 우울증으로 정신과를 찾은 백현우의 처가살이 신세한탄을 다 듣고 난 후 의사가 도리어 상담이라도 받은 듯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사랑해”라고 고백하는 장명도 그렇다. 평범한 삶이 오히려 재벌가 사위의 삶보다 낫다는 반전과 더불어, 환자가 오히려 의사의 마음을 다독이게 만드는 아이러니까지 그 코미디에는 담겨 있다.

 

재벌가 딸과 결혼한 평범한 남자의 이야기. 그 자체로는 그리 새로울 것 없는 구도지만 성역할을 뒤집고 신데렐라 판타지를 혹독한 처월드 현실로 뒤집어 놓는 것으로 <눈물의 여왕>은 새로운 웃음과 색다른 기대감을 만들었다. 과연 이 처월드로부터 탈피하려는 백현우는 그가 원하는 대로 자신의 삶을 되찾고 사랑 또한 다시 확인할 수 있을까. 펑펑 울면서 빵빵 터지는 웃음을 선사한 김수현의 열연과 더불어, 이 인물이 그려나갈 색다른 관계의 판타지와 웃음에 시청자들의 마음도 빠져들기 시작했다.(사진:tvN)

‘사랑이라 말해요’가 말하는 사랑이란

사랑이라 밀해요

“세상 외로워 보이고 세상 심심해 보이는 그 등짝이 제일 별로라고. 겉만 멀쩡하면 뭐해? 그런 축축한 등짝을 달고 사는데. 미련해 보여서 싫어.” 디즈니+ 오리지널 드라마 <사랑이라 말해요>에서 우주(이성경)는 동진(김영광)에 대해 그렇게 말한다. 그 말 속에는 애증이 담겨있다. 그건 다름 아닌 ‘불쌍하다’는 이야기지만, 우주는 애써 그게 ‘별로’이고 ‘싫다’고 한다. 

 

이 복합적인 감정은 우주가 동진에게 접근한 이유에서부터 비롯된다. 우주가 동진의 회사에 계약직으로 들어가 의도적으로 접근한 건, 그의 어머니이자 자신의 아버지의 내연녀였던 마희자(남기애)에게 복수하기 위해서였다. 마희자는 우주의 인생을 꼬이게 만든 장본인이었기 때문이다. 내연녀 마희자 때문에 아버지는 집을 나갔고, 엄마는 화를 속으로 삭이다 암에 걸렸다. 겨우 언니와 동생과 함께 버텨가며 살았지만,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그들이 살던 집조차 마희자가 빼앗아버린다. 우주는 뭐라도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지경에 이른다.   

 

“매일 매 순간 매 초마다 생각했어. 내 주제에 무슨 복수냐. 관두자. 참는 게 남는 거다. 근데 이거 내 생각이 아니라 우리 엄마가 입에 달고 산 말이거든? 나는 여전히 그 때 우리 엄마가 그 아줌마 머리채라도 잡았어야 된다고 생각해. 그럼 적어도 암은 안 걸렸을 거 같아. 그래서 난 뭐라도 해야겠다고. 안 그럼 내가 미쳐버릴 것 같거든.” 

 

그런데 그렇게 복수하기 위해 동진의 회사에 들어온 우주는 가까이서 이 남자를 들여다보며 연민을 느낀다. 지독히도 당하고 아프게만 살아가는 사람인데 뭐 하나 아프다고도 말하지 않고 항변조차 않는 남자. 그의 주변에는 배신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7년 만났던 애인이 배신했고, 살뜰하게 자신이 가정사까지 일일이 챙겨줬던 거래처 본부장이 배신을 했으며, 직원마저 회사를 망하게 하기 위해 내부 정보를 빼돌리는 배신을 했다.

 

그런데도 이 남자는 그 배신의 상처 앞에 이렇다 할 말 한 마디를 토로하지 않는다. 애인이 배신했을 때는 죽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지만 꾹꾹 눌러 참았고, 배신한 거래처 본부장을 찾아가 “술 적게 드시고 건강 챙기라”고 말한다. 직원의 배신을 알고도 그는 대놓고 뭐라 하지 않는다. 라이벌업체의 신대표(신문성)가 그 배후인 걸 알고 그 사실을 드러내면 또 다른 직원에게 접근할 거라는 이유 때문이다.

 

그래서 뭐라 항변도 하지 않고 늘 당하기만 하는 그가 우주는 몹시 눈에 밟히기 시작한다. 혼자 편의점에서 라면을 먹거나 술을 마시고 힘겹게 걸어가는 뒷모습이 눈에 밟히고, 비틀대다 차가 달려와도 마치 그대로 죽고 싶다는 듯 가만히 서 있는 그를 애써 끌어당겨 구해낸다. 그러면서 뭐라도 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은 우주는 끝없이 대놓고 동진에게 속에 있는 날이 선 말들을 쏟아낸다. 그러자 참다못한 동진이 드디어 입을 연다. 

 

“근데요, 그렇게 매번 속에 있는 말 다 하고 살면 편해요? 심우주씨 눈엔 다른 사람들이 미련해서 참는 거 같은가 본데, 속에 있는 말 다 해버리면 실시간으로 내 말에 상처받는 얼굴들 보고 있어야 하니까. 그게 참는 거보다 더 고역이라서 안간힘 쓰는 사람도 있어요.” 동진의 그 말은 우주를 주춤하게 만든다.  

 

<사랑이라 말해요>에서 우주와 동진의 관계는 결코 사랑처럼 시작하지 않는다. 아니 복수로 시작한다. 하지만 그 복수의 마음은 우주가 동진에게 연민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누그러지고 어떤 지점에서는 지독히도 상처받은 이들로서의 동질감을 느끼게 만든다. 한없이 저마다의 세상에서 눈물을 삼키며 버텨내던 두 사람이 어느 순간 그 지치고 지친 눈으로 서로를 바라볼 때 알 수 없는 뭉클함이 솟아오르는 건 그래서다. 그 눈들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너도 아파? 나도 그래. 

 

우주는 뭐라도 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은 상황에 놓여 있고, 정반대로 동진은 뭐라도 하면 누군가 상처를 입는 걸 봐야하는 걸 견디지 못해 아무 것도 하면 안 될 것 같은 상황에 놓여 있다. 상반되어 보이지만, 이 두 청춘의 공통점은 그래서 그 참혹한 현실 앞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위치에 서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부모들 사이의 관계로 들여다보면 결코 가까워지면 안 될 것 같은 두 사람이, 차라리 잘 됐으면, 그 아픔을 서로가 보듬었으면 하는 마음을 갖게 만든다. 

 

김영광은 <썸바디>의 그 살벌했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한없이 연민을 느끼게 만드는 동진을 뒷모습마저 공감하게 만들고, 이성경은 그저 밝기만한 청춘의 이미지를 탈피해 한없이 텅 빈 슬픈 눈빛으로 톡톡 쏘아대는 상반된 모습을 통해 이 복합적인 감정의 인물을 놀라울 정도로 잘 소화해내고 있다. 여기에 밑바닥을 긁는 주인공들의 축축함을 순식간에 말려주는 신스틸러 성준과 김예원, 전석호의 연기가 더해져 <사랑이라 말해요>는 균형 잡힌 드라마가 됐다.   

 

그래서 <사랑이라 말해요>가 말하는 사랑이란 뭘까. 어른들에 의해 꼬이고 꼬인 관계 속에 놓여 있고 그래서 참 많은 설명과 설득이 필요한 관계지만, 둘 다 굳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라만 봐도 서로를 이해하고 행복감이 느껴지며 마음이 따뜻해지는 어떤 것. 그걸 이 드라마는 사랑이라 말하고 있다. (사진:디즈니+)

트로트의 진가 보여준 ‘미스터트롯’, 패밀리가 떴다

 

마치 인생 전체를 담아낸 뮤지컬 한 편을 보는 것만 같았다. 10분 남짓의 짧은 시간에 이어진 노래 한 곡 한 곡이 우리네 삶의 희노애락을 담았다. TV조선 <미스터트롯>에 기부금 팀미션으로 김호중이 이찬원, 고재근, 정동원과 함께 꾸린 팀 ‘패밀리가 떴다’는 그 날 무대의 주제를 ‘청춘’으로 잡았다. 10대의 정동원, 20대 이찬원, 30대 김호중과 40대 고재근까지, 다양한 연령대를 갖춘 이들은 고민 끝에 정동원이 낸 ‘청춘’이라는 키워드에 맞춰 무대를 구성했다.

 

이 날 무대가 보다 특별하게 다가온 건 정동원이 조부상을 당하는 비보가 공연 전 보여졌기 때문이다. 정동원은 <미스터트롯>에 나오게 된 이유에 대해 할아버지에게 자신이 TV에 나오는 걸 보여드리고 싶어서라고 한 바 있다. 이제 열세 살에 빈소를 지키고 있는 정동원을 위로해주기 위해 <미스터트롯> 출연자들이 조문을 했다. 먼저 찾아온 ‘패밀리가 떴다’팀은 물론이고 다른 출연자들도 무려 6시간을 달려 하동에 있는 빈소를 찾았다.

 

뭉클했던 건 이들이 정동원과 나누는 대화 속에 담겨진 따뜻함이었다. 슬프지 않냐고 묻는 남승민에게 슬픈 데 참고 있다는 정동원은 울면 할아버지가 더 안 좋아한다고 말했고, 장민호와 영탁은 할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보다 백 배는 응원해주실 거라며 이번에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말해주었다. 장민호는 동원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삼촌들이 엄청 응원할게 동원이. 끝까지. 동원이 다 커서 어른이 될 때까지. 좋지. 동원이 스무 살 넘을 때까지 삼촌들이 응원해줄게. 그 뒤로는 네가 아마 우리를 지켜줘야 될 거야.”

 

한 사람의 생의 끝자락을 들여다본 터였기 때문이었을까. 이들이 무대에 올라 오프닝으로 부른 ‘백세인생’의 가사 하나하나가 가슴에 콕 박혔다. “칠십 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하는 그 가사가 관객들을 순식간에 몰입시켰다. 그리고 이어진 정동원이 부르는 김창완의 ‘청춘’은 열세 살 감성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처연한 느낌마저 주었다.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으로 이어지는 가사의 구슬픔이라니.

 

‘고장난 벽시계’는 고장도 없는 세월의 야속함을 경쾌한 트로트 리듬으로 전했다. 슬픔이나 비감을 오히려 한바탕 흥으로 풀어내는 트로트의 맛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어진 ‘다함께 차차차’ 역시 근심 따위 훌훌 털어놓고 한 바탕 놀아보는 것이 우리네 삶이라는 걸 노래를 통해 전해주었다. 우리네 삶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인 청춘을 예찬하는 김수철의 ‘젊은 그대’ 역시.

 

하지만 역시 압권은 엔딩으로 부른 ‘희망가’였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로 시작하는 그 노래는 마치 인생의 끝자락에서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삶의 순간들을 되돌아보는 듯한 헛헛함과 쓸쓸함 그리고 이를 관조하듯 긍정하는 것처럼 들렸다. 마지막 스포트라이트 속에서 정동원이 ‘희망가’를 전하며 그 무대의 시작과 끝을 장식했다.

 

김호중의 테너와 트로트 창법을 넘나드는 목소리에 빠져들고, 진또배기로 한 바탕 한을 흥으로 바꿔내는 이찬원의 노래는 우리네 민요가락이 가진 새삼스러운 맛을 느끼게 해주었다. 록커답게 콕콕 찔러대는 고음을 선사하는 고재근에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슬픔을 가득 담은 목소리로 노래하는 정동원까지 그 4인4색의 목소리 또한 우리네 인생의 사계처럼 다채로웠다.

 

이 무대가 한편의 뮤지컬처럼 담아냈듯이 우리네 삶의 기쁨과 슬픔을 한과 흥으로 풀어내는 것. 그것이 트로트의 진가가 아닐까. 장윤정 마스터가 정동원에 해준 말은 그래서 더 의미심장했다. “어렸을 때부터 지냈던 환경 때문에 슬픔이 자꾸 많아지다 보면 어른들이 말하는 한이라는 게 생기고, 근데 아이한테 한이라는 표현을 하는 데는 미안함도 있고 그렇긴 한데 그런 아이들이 노래로 위로를 받고 관객의 박수를 받아서 치유를 할 수 있다면 동원이가 계속 그 무대에서 노래를 할 수 있도록 우리 어른들이 기회를 계속해서 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사진:TV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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