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영웅

사춘기 청소년들이 마주한 폭력적 현실은 글로벌 화두가 되고 있는 걸까.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영국드라마 ‘소년의 시간’과, 최근 웨이브에서 넷플릭스로 옮겨 시즌1이 선공개되고 곧 시즌2 공개를 앞두고 있는 ‘약한영웅’ 이야기다. ‘소년의 시간’이 어른들은 모르는 아이들이 마주한 혐오의 폭력을 편집점 없는 원테이크로 그 막막한 현실 그대로를 담아냈다면, ‘약한영웅’은 범죄와도 맞닿은 학교폭력에도 불구하고 이를 방치하는 어른들의 무관심 속에서 아이들이 맞닥뜨리는 무력감을 전형적인 ‘너드 히어로물’의 틀로 그려냈다. 범죄와는 거리가 멀 것처럼 느껴지고 또 응당 그래야 할 아이들이 마주한 끔찍한 폭력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사건들은 자못 충격적이지만, 두 작품 모두 그 폭력의 밑그림을 제공하는 사회 현실의 문제들을 놓지 않고 있다. 두 작품 모두 글로벌 화제작으로 떠올라, 글로벌 OTT 순위 사이트인 플릭스 패트롤에는 ‘소년의 시간’이 부동의 1위에 올라있고, ‘약한영웅’ 역시 공개되자마자 글로벌 3위까지 오르는 놀라운 결과를 보여줬다. 

 

특히 ‘약한영웅’이 넷플릭스 공개만으로 글로벌 흥행의 신호탄을 쐈다는 건 주목할만한 일이다. 이미 2022년 웨이브 오리지널 드라마로 공개됐던 ‘약한영웅’은 당시에도 웨이브 구독자 유입에 혁혁한 성과를 낸 바 있다. 시즌2에 대한 요구들이 봇물처럼 쏟아졌지만 누적적자로 인해 웨이브의 투자가 어려워졌던 ‘약한영웅’은 넷플릭스에서 시즌2를 제작 공개하는 이례적인 선택을 하게 됐다. 그래서 복습 차원으로 넷플릭스에서 선공개된 ‘약한영웅’ 시즌1이 순식간에 글로벌 반응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는 건 이 작품이 ‘국내용’ 그 이상의 콘텐츠였다는 걸 말해준다. 

 

사실 웨이브 오리지널로 ‘약한영웅’이 공개됐을 때, 이 작품은 토종 OTT의 영민한 선택으로 여겨진 면이 있었다. 즉 넷플릭스처럼 거대 제작비를 투여할 수 없는 토종 OTT로서 탄탄한 웹툰 원작을 대본화하고, 신인이라고 할 수 있는 박지훈, 최현욱, 홍경, 신승호, 이연 같은 배우들을 캐스팅해 최적의 효과를 내는 결과물을 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넷플릭스로 옮겨진 후 복습의 차원으로 다시 ‘약한영웅’ 시즌1을 들여다본다면 이 작품이 갖고 있는 파괴력과 완성도를 다시금 실감하기에 충분하다. 글로벌 반응이 당연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다시 보면 신인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박지훈의 시종일관 공허한 듯한 반항적인 눈빛 연기가 인상적이고, 최현욱의 액션과 홍경의 기막힌 내면 연기를 새삼 발견하게 된다. 박지훈이 ‘약한영웅’이 가진 무관심한 어른들에 대해 속으로 이글이글 타오르는 분노를 응축해냄으로써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압도한다면, 최현욱의 발랄한 액션은 그 무게감에 질식되지 않게 하면서 작품을 즐기게 해주고 여기에 홍경이 보여주는 ‘자신도 왜 그러는지 모르는 엇나가는’ 모습을 정교한 내면연기는 작품에 밀도와 깊이감을 만들어낸다. 특히 국회의원의 이미지메이킹용으로 입양되어 마치 전리품처럼 이용만 당하는 오범석(홍경)이라는 인물이 마주하게 되는 막막함과 분노 그리고 탈선을 끝까지 막으려 하고 이해해주려 하는 이가 어른들이 아닌 친구인 연시은(박지훈)과 안수호(최현욱)라는 지점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도 찌르는 면이 있다. ‘약한영웅’이 흔한 학원액션물이나 너드 히어로물에 머물지 않고 진한 여운을 남겼던 건 바로 이 지점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던 ‘소년의 시간’처럼 ‘약한영웅’ 역시 어른들을 충격에 빠뜨리는 아이들의 현실을 우리 눈앞에 던져 놓는다. 물론 ‘소년의 시간’이 보다 진지한 사회극의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작품이라면, ‘약한영웅’은 훨씬 학원액션물의 타격감을 갖춘 작품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시원시원한 도파민 액션이 매회 폭발하지만 이 아이들에게 내재된 불안과 분노와 막막함이 주는 문제의식이 결코 약하다 말하긴 어렵다. 

이 달 25일 ‘약한영웅 Class 2’가 드디어 넷플릭스를 통해 돌아온다. 시즌1이 공개되자마자 글로벌 반응이 터진 것처럼, 이 시즌2가 불러일으킬 반향이 궁금해진다. 과연 넷플릭스라는 새로운 글로벌 무대 위에 선 ‘약한영웅’은 어떤 글로벌 평가를 받게 될까. 박지훈이 새로 전학가게 된 은장고등학교에서 또 어떤 폭력과 마주해 싸우게 될지 자못 궁금해진다. (글:일간스포츠, 사진:넷플릭스)

‘약한 영웅’, 웨이브의 다양한 색깔 보여준 미친 드라마

약한 영웅

뭐 이런 미친 드라마가 다 있나. 웨이브 오리지널 시리즈 <약한 영웅>을 보다 보면 절로 이 드라마 속 안수호(최현욱)가 연시은(박지훈)과 농담처럼 주고받는 “넌 진짜 또라이야”라고 하는 그 말 속의 감정에 빠져들게 된다. 오로지 공부만을 위해 사는 것 같은 공부벌레에, 이른도 어딘가 연약해 보이는 연시은이지만, 이 약해 보이는 고교생이 보는 내내 감정을 쥐고 흔든다. 

 

피가 끓고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그러다 절규처럼 쏟아내는 주먹질에 무언가 카타르시스가 느껴지지만 그 뒷 끝에 남는 건 지독한 쓸쓸함과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뒤틀어진 감정이다. 연시은의 허무로 가득 채워진 눈빛에 빨려 들어가 그 감정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이 약해 보이는 인물이 안수호의 말처럼 무언가에 의해 미쳐버린 광기를 내뿜는 인물로 보이기 시작한다. 그 즈음 알게 된다. <약한 영웅>이라는 제목의 진짜 뜻을. 그건 연약한 영웅 연시은이 아니라, 시쳇말로 ‘약 빤’ 영웅이라는 것. 

 

무엇이 그저 평범하게 공부하며 살아가려던 이 인물을 ‘약 빨게’ 만들었을까. 겉으로 보이는 건 ‘학교 폭력’이다. 이 학교 교실은 폭력이 일상이다. 주먹질은 물론이고 술과 담배 나아가 심지어 펜타닐 같은 마약 패치를 하기도 한다. 오범석(홍경)처럼 어딘가에서 왕따를 당하다 전학 온 친구는 여지없이 또 다시 먹잇감이 된다. 격투기를 배워 싸움 잘 하는 안수호는 그나마 약한 애들을 돕는 정의파지만, 그는 할머니를 혼자 부양하기 위해 갖가지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도 바쁜 친구다. 

 

그런데 이 겉으로 보이는 ‘학교 폭력’의 이면을 파고 들어가면 이들을 방치하거나 이들을 이용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은폐하는 어른들이 있다. 부모가 있지만 없는 거나 마찬가지로 방치하며 살아가는 연시은의 부모가 그렇고, 자신의 이미지 세탁을 위해 입양해 놓고 이용해먹기만 하려는 오범석의 국회의원 아버지가 그렇다. 안수호는 아예 자신을 보호해주는 보호자 자체가 없고 오히려 부양해야할 할머니만 있지만 이를 들여다봐주는 어른은 없다. 

 

학교 선생님들도 모두 이 폭력들을 알고 있지만 거기에는 관심을 주지 않는다. 오로지 성적과 학교 정문에 플래카드로 붙는 명문대 명단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폭력이 터져도 오범석의 국회의원 아버지와 결탁해 사건을 덮어버리는 게 다반사다. 또 길수(나철) 같은 인물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아이들을 이용해 범죄를 저지른다. 도박 게임에 빠지게 만들고 돈을 빌리게 해서 고리대금을 뜯어내며 그걸 빌미로 부모까지 협박한다. 전석대(신승호)나 영이(이연)처럼 집 밖으로 나온 아이들은 길수 같은 인간이 쳐놓은 거미줄에 걸려 범죄의 길로 들어선다. 

 

그래서 의지할 데 없고 심지어 살아남아야 했던 연시은과 안수호 그리고 오범석은 그 과정에서 친구가 된다. 단 한 번도 웃음을 보이지 않던 연시은이 유일하게 웃음을 보이는 건 친구들 앞에서 뿐이다. 하지만 이미 폭력적인 상황 속에서 연약해질 대로 연약해진 아이들의 그 빈 틈이 조금씩 균열을 만든다. 아버지의 상습적인 폭력에 노출되어 자존감이 없고 지독하게 외로운 오범석은 친구들을 통해 조금씩 회복되는 듯 보이지만 금세 그 연약한 감정 속에 억눌려져 왔던 분노가 엉뚱한 방향으로 터져 버린다. 

 

이미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뜨거운 반응을 받았던 <약한 영웅>은 그 자극의 강도가 상상 그 이상이다. 과거 넷플릭스가 오리지널 시리즈로 만들어 큰 반향을 일으켰던 <인간수업>이 고등학생이 등장하는 드라마지만 청소년 성매매부터 학교 폭력까지 적나라하게 다룸으로써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이끌어냈다면, <약한 영웅>은 그보다 한 발 더 나간 느낌이다. 학교폭력이 소재이고 그 이면에 깔린 부조리한 어른 사회들에 대한 비판의식이 담겨 있지만, 하나의 ‘하드 보일드 액션 드라마’로 봐도 될 정도로 강렬한 인상과 몰입감을 주는 작품이다. 

 

특히 이 작품은 그간 웨이브라는 OTT에 선입견처럼 드리워져 있던 ‘지상파’ 이미지를 일소할 만큼 강렬한 인상을 준다. 마치 <영웅본색>의 한국식 고교생 버전처럼도 느껴지는 이 작품은 원작이 가진 탄탄한 스토리와 감정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연출 그리고 무엇보다 말 그대로 ‘약 빤’ 연기를 보여주는 연기자들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최현욱이나 <D.P.>, <환혼>의 신승호는 이미 대중들에게 눈도장을 찍은 배우들이지만, 연시은 역할의 박지훈이나 오범석 역할의 홍경은 말 그대로 엄청난 잠재력을 폭발시킨 연기를 보여준다. 특히 박지훈은 워너원 출신의 아이돌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깊이 있는 감정 연기를 보여줌으로써 극에 끝까지 밀고 나가는 추진력을 만들어냈다. 

 

“넌 진짜 또라이야”라고 안수호가 연시은에게 말할 때마다 연시은은 “네가 할 말은 아닌 거 같은데”라고 응수하곤 한다. 하지만 드라마 말미에 안수호가 연시은의 상상 속에서 “넌 진짜... 진짜 또라이야. 알아?”라고 물을 때 연시은이 “미안해”라고 말하고, 안수호 또한 자기도 미안하다고 말하는 장면은 너무나 아프고 슬프다. 그건 이들을 이렇게 극으로까지 몰고 왔지만 이들에게 그 누구도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어서다. 그래서 이들은 서로에게라도 미안하다고 말하며 버텨내고 있는 게 아닐까. 드라마가 끝나고 나서도 이들이 나눈 이 대화가 주는 먹먹한 감정이 긴 여운으로 남는다. 

 

드라마는 8부작으로 <약한 영웅 Class 1>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건 Class 2를 기대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로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된 연시은은 또 다시 그 곳에서 똑같이 이어지고 있는 학교폭력을 마주하게 되는 것으로 ‘Class 1’을 끝맺는다. Class 2로 돌아온다면 연시은은 다시금 안수호와 오범석과 함께 보내며 잠깐 동안 가졌던 그 행복한 웃음을 되찾을 수 있을까. 이제 막 공개된 작품이지만 벌써부터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게 된다.(사진:웨이브)

‘열여덟의 순간’, 이 시대의 엄석대가 사는 집에서 난다는 건

 

JTBC 월화드라마 <열여덟의 순간>은 고교생들이 등장하는 청춘로맨스가 아니다. 그것보다는 오히려 <스카이캐슬>에 가깝다. 가난하지만 건강하게 살아가는 최준우(옹성우)와 부자지만 피폐해 있는 마휘영(신승호)의 대결구도가 세워져 있고 그 중심에 유수빈(김향기)과의 밀고 당기는 관계가 세워져 있어 마치 청춘로맨스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이보다 아이들을 둘러싼 어른들의 문제가 사회적으로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학교에서 강제전학 온 최준우는 이 학교에서 전교 1등을 하고 있는 마휘영과 그 반이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는 걸 보게 된다. 선생님보다 반장인 마휘영의 말에 아이들이 움직이는 것. 그는 항상 명분으로 학생부에 기재될 성적을 내세운다. 선생님에게는 상의도 없이 반배치를 바꾸는 것도 그것이 성적을 내기가 더 수월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반배치는 아이들 사이에 위계를 세우는 일이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을 나눠놓는 것. 그에게 도움을 받는 아이들은 그를 동조하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소외되는 걸 감수한다.

 

모든 것에 모범생처럼 행동하는 최준우는 아이들 성적까지 관리해주고 심지어 선생님이 해야 할 일도 척척 자신이 해놓는다. 하지만 그 반의 담임을 맡게 된 오한결(강기영)은 그런 모습이 어딘가 잘못되어 있다고 여기게 된다. 그리고 마휘영이 겉으로 보이는 모범생의 모습과는 다른 또 다른 얼굴이 있다는 걸 감지한다.

 

최준우가 훔치지도 않은 시계를 훔쳤다는 누명을 쓰게 된 일도 마휘영이 한 짓이고, 최준우가 강제전학을 오면서까지 지킨 친구를 죽음에 이르게 만든 것도 마휘영이 돈을 써서 한 짓이다. 앞에서도 모두의 모범이 되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최준우는 그것이 거짓이라는 걸 안다.

 

여기서 우리는 오래된 작품의 인물 하나를 떠올리게 된다. 그건 이문열 원작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 등장하는 엄석대라는 인물이다. 그런데 엄석대와 마휘영은 그 삶의 배경 자체가 다르다. 엄석대는 시골학교에서 선생님의 신임 하에 아이들을 주먹으로 지배하는 독재자였지만, 마휘영은 서울학교에서 아이들을 전교 1등에 집안까지 등에 업고 지배하는 인물이다. 엄석대의 집안은 가난하지만 마휘영은 부자다. 엄석대는 새로운 선생님이 부임하면서 결국 비리가 밝혀지자 학교에 불을 지르고 도망치는 인물이지만, 마휘영은 새로운 담임선생님에게도 집안의 힘을 업고 물러나지 않는 인물이다.

 

물론 <열여덟의 순간>의 마휘영은 저 엄석대와는 달리 그 자신도 피해자다. 그는 아이들에게 엄청난 짓까지 저지르지만, 알고 보면 그건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축적된 분노와 불안이 만들어낸 일들이다. 전교 1등을 하고 있지만 마휘영은 그래서 더더욱 아버지로부터 압박을 받는다. 또 엄마를 폭행하는 아빠에 대한 분노는 그를 시한폭탄 같은 인물로 만들었다. 이 부분에서 <열여덟의 순간>의 우리 시대에 그리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아니라 <스카이캐슬>에 가까워진다. 어른들의 잘못으로 엇나가는 아이들의 이야기.

 

그 속에서 최준우는 유일하게 제대로 된 어른(엄마) 밑에서 잘 자란 아이의 모습을 표상한다. 아이들은 그 시기에 한 번 망치면 인생 전체를 망친다는 강박관념 속에 살아가지만, 최준우는 말한다. “이미 망친 인생이란 없어. 아직 열여덟인데.”라고. <열여덟의 순간>은 그래서 청춘로맨스의 달달함보다 아이들을 아프게 만드는 어른들에 대한 날선 비판의식이 최준우와 마휘영, 유수빈 같은 인물들을 통해 더 눈에 밟히는 드라마다.(사진:JTBC)

+ Recent posts